Quadratus Annianus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 | |
<colbgcolor=#8b0000><colcolor=#fecd21> 전체 이름 | 마르쿠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 Marcus Ummidius Quadratus Annianus |
출생 | 138년 |
사망 | 182년 |
직위 | 원로원 의원, 집정관, 황족 |
가족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외삼촌) 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어머니) 가이우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아버지) 움미디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여동생)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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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시기의 원로원 의원, 서기 167년 정규 집정관, 방계 황족이자 반역자.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여동생 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가 낳은 아들이다. 외삼촌의 후원을 받고 집정관을 지내고, 황족 지위를 받으면서, 어린 콤모두스의 후견인 중 한명이 됐다. 그렇지만 권좌를 노린 사촌여동생 루킬라와 불륜 중인 양자 콰드라투스 등과 공모해 콤모두스를 콜로세움에서 암살하려고 하다가, 실패 후 반역죄로 처형됐다.
2. 생애
전체 이름은 마르쿠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로, 보통은 줄여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 혹은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라고 한다.서기 138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여동생 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와 그녀의 남편인 원로원 의원 가이우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동생으로는 안니아 파우스티나의 외할머니 움미디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가 있다.
로버트 사임으로 대표된 고전학자들에 따르면, 《파스티 오스티엔세스》에 적힌 146년 가이우스 안니아누스 베루스가 그의 아버지 가이우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그의 아버지는 보결 집정관을 지낸 가이우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 베루스가 되는데,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의 숙부일 확률도 있어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다.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의 출신 가문은 평민귀족 중 기원전 1세기부터 원로원에 입성한 움미디우스 가문이다. 이 가문 출신 중 가장 유명한, 클라우디우스 1세 시대의 원로원 의원, 집정관, 시리아 총독 가이우스 움미디우스 두르미우스 콰드라투스는 그의 직계조상이다.
어머니 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의 오빠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고, 어머니의 고모부가 안토니누스 피우스, 법적 사촌이 루키우스 베루스인데다, 이 세 사람과 어머니 관계가 특별해, 아주 어릴 때부터 황족 지위를 얻고 특권을 받았다. 따라서 어린 나이부터 명예로운 경력을 밞았고, 여동생과 함께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비호 속에서, 종신독재관 술라가 처음 차지했던 피시디아 대영지를 나란히 선물받아 상속까지 받았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의 관계가 돈독했고,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받은 재산을 많이 상속받아, 진짜 부유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152년~158년 사이에서 사망했는데, 여동생과 어머니 재산을 나눠 상속받음에도 로마 최고의 부자가 됐다고 한다.
외삼촌의 후원, 추천으로 집정관이 됐고,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와 안니아 갈레리아 아우렐리아 파우스티나 공주의 결혼에 앞서,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가 첫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갓난 아이를 입양했다. 그렇게 해서 입양하게 된 아들이 그의 양자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이다.
대단히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이미지가 좋아 보이나, 이와 별개로 사생활이 화려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여러 정부를 거느렸는데, 이중 한명이 후일 콤모두스의 그리스인 자유민 애첩 마르키아이다.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을 때, 그가 선정한 콤모두스 황제의 후견인 중 한명이 됐다.
콤모두스가 즉위한 뒤, 콤모두스의 맏누이 루킬라가 로마에서 조용하고 부유한 귀부인으로 사는 처지를 한탄하면서 자신의 지위, 권력을 되찾겠다고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이때 루킬라는 콤모두스가 변덕스럽게 자신을 무시한다고 주장했고, 콤모두스의 아내 브루티아 크리스피나가 아우구스타 지위를 받음을 혐오했다. 따라서 루킬라는 첫 남편이자 삼촌인 루키우스 베루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3 자녀 중 유일한 생존자인 딸 플라우티아와 함께 사람을 은밀히 모았다. 이때 그녀는 권력과 금은보화 등을 내걸면서 콤모두스 암살을 기도했는데,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 부자 역시 여기에 적극 가담했다. 이때 그와 그의 양자 콰드라투스는 폼페이아누스와 별거 중인 루킬라와 일찍부터 오랜 불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들은 182년 루킬라의 두번째 남편 폼페이아누스를 콤모두스로 대체해주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완력이 강하고 용감한 퀸티아누스(폼페이아누스의 조카) 등을 포섭하고, 추가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사위들을 포섭했다.[1] 따라서 182년 콜로세움에서 콤모두스 황제 암살을 시도한 사건(콜로세움 암살미수 사건)이 터졌을 때, 그 파장은 엄청났다.
퀸티아누스는 콜로세움에서 국가 행사를 위해 입구로 들어오던 콤모두스를 단검으로 찌르기 전, "여기 원로원이 네놈에게 보낸 검을 받아라!"라고 외쳤고, 이는 황제 주변에 있는 경호대, 프라이토리아니, 콤모두스의 두 매형 폼페이아누스, 퀸틸루스의 제지 속에 실패했다. 이때 콤모두스는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실신해 황궁으로 실려갔다. 이후 퀸티아누스가 현장에서 체포돼, 심문이 시작됐는데, 심문 시작과 동시에 퀸티아누스는 모든 공모자와 주범을 폭로했다. 그래서 큰 충격 속에서 깨어난 콤모두스는 어머니 같이 따른 누나 루킬라가 친척들과 공모해 자신과 아내의 모든 지위와 재산을 빼앗겠다는 욕심으로 이를 벌임을 알고 1주일 정도 병석에 누울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는 양자 콰드라투스와 함께, 루킬라와 오랫동안 육체적 불륜 관계를 맺었고, 이를 주도한 만큼, 체포되자마자 재판에 회부됐다. 이때 콤모두스 황제는 콰드라투스 부자를 그 자리에서 사형에 처하게 하면서, 아무런 실정도 하지 않은 자신을 배신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에 격분했다. 그래서 그는 양자와 함께 처형됐고, 모든 재산은 압수됐다. 그렇지만 피시디아 대영지는 여동생 소유라서 압류되지 않아, 이는 그녀의 외손녀 안니아 파우스티나 몫이 됐다.
[1] 그렇지만 폼페이아누스, 퀸틸루스는 이 제안을 받지 못했거나, 받았음에도 완전히 무시했는지 몰라도, 이 사건과는 완전 무관했다. 심지어 이들은 콤모두스를 보호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이는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도 비슷했는데, 그는 스토아 철학과 공부에 열중하겠다면서 아예 이들과 연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