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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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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행크 애런 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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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행크 애런 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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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 라미레즈 Manny Ramírez | |
본명 | 마누엘 아리스티데스 라미레스 오넬시다 Manuel Arístides Ramírez Onelcida |
출생 | 1972년 5월 30일 ([age(1972-05-30)]세) |
산토도밍고 |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조지 워싱턴 고등학교 |
신체 | 183cm / 102kg |
포지션 | 좌익수, 우익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1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3번, CLE) |
소속팀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3~2000) 보스턴 레드삭스 (2001~2008)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8~2010) 시카고 화이트삭스 (2010) 탬파베이 레이스 (2011) EDA 라이노스 (2013) 고치 파이팅 독스 (2017) 시드니 블루삭스 (2020~2021)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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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리그의 前 야구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외야수로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선수이다.통산 타율 0.312, 출루율 0.411, 장타율 0.585, 555홈런, 1831타점을 기록했고 30홈런 100타점을 12번 기록했다.
하지만 약물 복용검사에서 2번이나 적발되는 바람에 명예가 실추되었고 이후론 배리 본즈,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과 함께 스테로이드 시대의 어두운 면을 대표하는 선수로 인식된다.
2. 선수 경력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7위였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2.1.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1991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3번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지명을 받은 매니 라미레즈는 1993년 확장 로스터에 포함되며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기 시작했고[1] 1994년에는 91경기를 뛰면서 17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신인왕 투표 2위에 오른다.
1995년부터 우익수로 본격적인 주전으로 활약한 라미레즈는 곧장 31홈런, 107타점을 기록했고 1996년에는 33홈런, 112타점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주로 6, 7번타자로 뛰면서 세운 기록이다.[2] 기량을 인정받은 라미레즈는 1997년부터 인디언스의 중심 타선에 포진되었고 인디언스의 타선을 이끌어나갔다.
1999년에는 165타점[3][4]을 기록하며 무시무시한 타점본능을 보여준 라미레즈는 2000년에는 118경기에만 출장하면서도 122타점을 기록한다.
인디언스에서 매니 라미레즈는 타율 0.313, 출루율 0.407, 장타율 0.592, 236홈런, 804타점, 4번의 실버 슬러거 수상과 올스타전 출장을 기록한다.
그러나 당시 인디언스는 매니를 붙잡을 만한 페이롤을 보유한 팀이 아니었다. 인디언스는 7년간 연평균 1700만달러를 제시했지만 매니를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매니 라미레즈는 FA시장으로 나온다.
2.2.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2000년 12월, 8년간 1억 6000만달러라는 거액으로 매니 라미레즈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FA계약했고 입단 회견에서 "뉴욕 양키스의 독주에는 질렸다."라는 말을 남기며 타도 양키스를 밝힌다.[5]
타격 능력에 비해 부족한 수비력[6]으로 인해 라미레즈는 레드삭스의 좌익수로 활약했으며 스프링캠프에서는 크게 부진하며 먹튀가 되나 하는 우려를 받았지만 이적 첫해부터 곧장 41홈런과 125타점을 기록한 라미레즈는 2번째 시즌에는 타율 0.349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타율 1위를 차지한다.
2003년부터는 데이비드 오티즈와 공포의 중심타선을 형성했고 2004년에는 지긋지긋한 밤비노의 저주를 깨면서 월드시리즈 MVP를 받는 등의 큰 역할을 한다.
비록, 수비에서는 약점을 많이 노출했지만[7] 그것을 커버해주고도 훨씬 남는 타격 능력이 있었고, 특히 라미레즈는 포스트 시즌에서 더욱 더 강력한 타자가 되었다. 보스턴에서 보여준 활약, 더욱이 보스턴이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데 매우 큰 기여를 한 선수라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이적 이후 보스턴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였다.
매니 라미레즈는 레드삭스에서 8년간 있으면서 타율 0.312, 출루율 0.411, 장타율 0.588, 274홈런, 868타점을 기록했고 6번의 실버 슬러거 수상과 8번의 올스타전 출장을 기록했다.
2.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과 그 이후
매니 라미레즈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어 2008년 6월 5일, 탬파베이 레이스 전에서는 팀 동료 케빈 유킬리스와 다투고 7월에는 라미레즈가 직접적으로 레드삭스를 비난하는등 결국 매니는 7월 31일, 보스턴 레드삭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LA 다저스의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게된다.[8]
그런데 사람이 달라졌다. 강력한 파이팅으로 라미레즈는 다저스의 팀 분위기를 이끌었다. 또한 자신도 불방망이를 휘두르며[9] 다저스의 타선을 이끌어나갔고, 매니 이적 전까지 5할에도 못미치던 성적을 기록하던 다저스는 후반기 대질주를 보여주면서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한다. 다저스 프런트는 이에 감복하여 매니와 2년 $45M의 연장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009년 5월 7일 약물검사에서 배란 억제제 사용이 걸리며 50경기 출장 정지를 받으면서 몰락이 시작되었다.[10]
50경기 출장 정지후 돌아왔지만 이후, 예전만큼의 기량은 보이지 못했고 2010년에는 시즌 도중,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었으나 또다시 부진했다. 2010년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로 시장에 나온 후에는 탬파베이 레이스와 계약, 레드삭스시절 팀 동료였던 동굴맨과 한 팀에서 뛰게 되었지만 또다시 약물검사에서 걸렸다. 첫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자 항소를 했는데, 변호인 측에서 참관한 가운데 실시한 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오자 데꿀멍했다. 그에 따라 100경기 출장 정지를 받은 라미레즈는 결국 2011년 4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둘러 은퇴한다.
다시, 메이저리그 복귀를 희망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아내 폭행으로 다시 신문기사에 이름이 오르는 등 복귀는 영영 물건너갔다.
그리고 최근 사진을 보면 한때, 우리가 알던 그 매니 라미레즈가 맞나 싶을정도로 말라깽이가 되어있다. 본인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복귀하지 못하면 일본프로야구 진출까지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결국 2011년 오프시즌 플로리다에서 일본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입단 테스트까지 참가했지만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메이저리그 복귀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미 기량이 떨어진 매니를 잡으려는 팀이 드물며 설혹 복귀를 한다 하더라도 100경기 출장 정지부터 채워야 하기때문에 현실적으로 매니의 복귀는 불가능에 가까울 줄 알았는데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그가 한 시즌을 쉬었음을 감안하여 출장 정지 경기 수를 50경기로 경감해 줬고, 2월 20일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그를 연봉 50만 달러에 영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애슬레틱스에선 매니의 자리가 없었는지 징계가 풀린이후에도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했고 매니가 구단에 FA를 요청하면서 결국 방출당했다.
2.4. 대만 진출
미국 ESPN이 3월 7일까지 매니가 팀을 구하지 못하면 대만 프로야구 리그로 가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고 결국 대만으로 가는 것이 확정되었다. 팀은 EDA 라이노스[11]이따 EDA는 매니의 요구에 따라 대형 빌라를 임대해주었으며, 자동차, 운전기사와 경호원 그리고 특유의 헤어 스타일을 관리할 수 있게 전속 미용실까지 제공하는 등 특급 대우를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3년 3월 27일 슝디 엘리펀츠와의 개막전에서 지명타자로 출전했으며, 4월 4일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와의 접전에서는 대만 진출 첫 홈런을 뽑아냈다. 덤으로 CPBL 7000번째 홈런의 주인공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한물 간 슈퍼스타이지만 2013년 CPBL의 흥행 보증수표 역할을 했다.2013년 4월 4일 기준으로 매진경기가 17회 중 총 3회 있었는데 이 중 두 경기가 이다 라이노스의 경기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매니 라미레즈 보려고 야구 보러 온 사람이 늘었다는 소리인 셈. 대만에서의 매니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선전과 더불어 매니 영입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로 대만 프로야구 평균관중이 무려 300%나 상승했다고 한다.
하지만 매니는 기본 3개월 단위의 단기계약인 기존 계약 내용에 따라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3개월만 뛰고 대만을 떠나기로 했다. 소속팀인 EDA는 이미 리그 최고 연봉자인[12] 매니에게 파격적인 연봉인상을 제시하는 등 매니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으나, 뉴욕에 있는 가족이 그립다고 거절했다. 매니는 CPBL 통산 49경기에 나와서 타율 0.352 출루율 0.422 장타율 0.555 8홈런 43타점을 기록했다.[13]
여담으로 한 팬이 매니를 응원하겠다고 커다란 사진에다 응원 문구를 적어왔는데 실은 그 사진이 현역 메이저리그 투수인 자니 쿠에토의 사진이어서 해외 팬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으며 이후 6월 텍사스 레인저스 산하 마이너리그팀과 계약을 맺고 마이너리그 경기에 출장했으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8월 방출되었다.
단 3개월만 뛰고 대만을 떠났었으나 갑자기 2020년 47세의 나이로 대만 리그에서 뛰고 싶다고 현역 복귀 의사를 밝혔다.
2.5. 시카고 컵스 시절
2014년 5월 말에 시카고 컵스가 산하 마이너 리그 트리플A 팀인 아이오와 컵스의 플레잉코치로 영입했다. 아직 매니가 메이저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어서 코치보다는 선수로 더 뛰지 않겠냐는 게 중론이었지만 아리스멘디 알칸타라, 하비에르 바에즈, 호르헤 솔레어 등 젊은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타격코치로 좋은 능력을 보였다[14]. 매니를 영입한 테오 엡스타인도 이 정도로 해줄 줄 몰랐다며 놀랐다고 한다.하지만 무릎부상으로 마이너리그 일정이 끝나기 전에 아이오와 컵스에서 나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매니는 선수 생활에 미련을 갖고 있어 컵스의 기대처럼 코치로 남아 선수들을 지도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테오의 부름에 타격 컨설턴트라는 이름을 달고 다시 시카고 컵스로 돌아왔다.
2.6. 고치 파이팅 독스 시절
2017년에는 일본의 독립 리그인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 소속의 고치 파이팅 독스에서 뛰게 되었다. 확실히 오랜 공백을 느낄 수 있는게 비교적 통통했던 현역 시절과 비교해봐도 어마어마하게 살이 쪘다. 약물 적발된 직후의 말라깽이는 어디로 갔는지 23경기에서 타율 .413, 3홈런, 22타점을 때려내며 왕년의 대타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무릎 수술 때문에 8월에 미국으로 귀국하며 시즌 아웃되었다.여담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마이너 선수로 인연이 있던 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감독인 알렉스 라미레즈와 방송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2.7. 시드니 블루삭스 시절
2020년 8월 시드니 블루삭스와 1년 계약을 맺으며 48세의 나이에 현역 생활을 연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단 2경기 출전에 그친 채 2021년 1월 11일 방출되었다.3.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연도 | 득표율(%) |
2017 | 23.8 |
2018 | 22.0 |
2019 | 22.8 |
2020 | 28.2 |
2021 | 28.2 |
2022 | 28.9 |
2023 | 33.2 |
2024 | 32.5 |
500홈런 타자라는 점으로 인해 성적상으로는 첫 턴 입성이 당연시되며, 이외에도 높은 WAR과 OPS 1.000에 육박하는 준수한 비율스탯, 포스트시즌 활약상까지 고려할 시 평가가 더욱 높아진다.[15]
하지만 약물 복용 적발 경력으로 인해 비슷한 성적을 낸 청정 타자들에 비하면 입성 가능성이 극도로 떨어진다. 다만 도핑 테스트에서 두 번이나 걸린 선수 치고 너무 후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빅맥이나 소사, 팔메이로가 투표율 10~15 퍼센트였거나 광탈한 걸 생각하면 투표인단의 약쟁이에 대한 인식이 희석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당장 빅 파피부터가 첫 턴 입성에 성공했으니... 물론 오티즈는 공식적인 적발 경력이 없는, 즉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태여서 첫 턴 입성이 가능했던 것이고, 매니는 이미 정식 도핑 검사에서 2번이나 약물이 적발된 것이기 때문에 오티즈와는 아예 상황이 다르긴 하다.
4. Manny Being Manny
그의 기행 모음집.
원래부터 똘끼가 있긴 했지만 레드삭스 시절 특유의 빛을 발했다.[16]
2002년 취임한 테오 엡스타인 단장은 매니가 훌륭한 타자이긴 하나, 수비 실력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오버페이가 심하다고 봤다. 그러다보니 매해 웨이버 공시[17]나 트레이드 시도를 했고 그에 대한 반항으로 똘끼 분출이 시작되면서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어쨌든 매니는 방망이 하나만으로 연봉 값보다 좋은 활약을 했고,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보스턴이 우승을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테오가 실수할 뻔했다. 만약 테오가 매니를 이적시켰다면 보스턴의 우승은 한참 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팬들은 Manny Being Manny라는 피켓을 들고 매니를 옹호하게 되었다. 번역하자면 '매니(의 똘끼)는 원래 그래요.', '매니를 좀 내버려 두세요.' 매니가 '매니'하는게 뭐가 문제? 정도다. 기행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1. 1994년 4월 4일, 원바운드로 담장을 넘어간 타구를 홈런인줄 알고 그냥 홈까지 내닫다가 3루심에게 제지받았다. 참고로 이게 본인 커리어 첫 안타였다. 보스턴 시절이랑 관계가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매니의 똘끼가 원래부터 그랬다는 좋은 옹호거리가 되기도 한다.
2. 2001년 12월 10일, 레드삭스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해서 레드삭스가 독립된 인터뷰실을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매니는 정작 만들어줬더니 안 써먹었다.
3. 2002년 9월 17일, 타석등장시 나오는 노래를 대마초 사용에 관한 가사를 담은 "Good Times"로 바꿨다. 보통 이런 노래들은 방송 등에서의 사용을 위해 순화를 거친 버전과 원래 가사가 그대로 나오는 Explicit 버전이 따로 있는데, 매니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Explicit 버전을 썼다.
4. 2003년 8월 29일에는 뉴욕 양키스에서 뛰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그 다음날에는 몸이 좋지 않아 경기에 나설 수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친구와 함께 호텔 바에서 함께 있었던 장면이 찍혔다.
5. 2003년 9월 1일에는 감독의 대타 출장을 거부했다.
6. 2004년 7월 21일에는 팀 동료였던 중견수 조니 데이먼의 송구를 중간에서 컷하려고 불필요한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3루타 내주고 말걸 인사이드 파크 홈런으로 만들어줬으며 타자는 데이비드 뉴핸이었다.
7. 2005년 8월 24일에는 1사 만루에서 땅볼을 치자 1루로 뛰지않아 병살을 당했고 결국 팀 패배에 일조했다.
그 외에도 공수 교대 타임에 그린 몬스터 안에 들어가서 전화를 한다든가 안에서 점수판 조작하는 직원[18]과 노가리를 깐적도 있다. 참고로 다저스 이적 후에도 비슷한 행동을 해서 팀 동료였던 제프 켄트가 '너 거기서 뭐하냐?'이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수비에서는 몸개그로 유명하지만 가끔 이런 것도 잡아서 더블 플레이를 만들어줬으며 환호하는 외야 관중과의 하이파이브까지 했다.[19] 근데 사실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늦은 타구 판단[20]과 매니의 느린 주력이 합쳐져서 어렵게 잡은거지, 수비 좀 하는 외야수였으면 타구가 빠르긴 했어도 머리 바로 위 정도에서 어렵지 않게 잡았을 것이다. 1루주자의 오버런도 좌익수가 매니여서 더 빠질거라고 보고 뛰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볍게 툭 던지는것같은데 커트맨한테 레이저처럼 날아가는 강견은 대단하다.
5. 평가
2000년대의 모든 타자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더욱 강력한 모습을 보였고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우승을 두 번이나 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물론, 경기장 내외에서 여러 기행을 보이기는 했고 수비력에서 문제점이 노출되기는 했지만 그걸 덮어주는 압도적인 타격이 있었다. 더구나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매일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등의 철저한 자기관리는 타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다.허나 약물 검사에서 2번이나 걸려버린 탓에 현재는 타 팀 팬들에게는 그저 스테로이드 시대의 상징 중 한 명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래도 포스트시즌 클러치 능력은 발군이었는데, 밤비노의 저주를 깬 것을 포함해서 보스턴의 00년대 2번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에 보스턴 팬들에게는 데이비드 오티즈와 함께 아직도 사랑받는 선수다.[21]
6. 여담
헬멧이 매우 꼬질꼬질하다. 보통 야구팬들에게도 매니 헬멧으로 유명한데, 투수가 로진가루를 만지듯 타자들도 미끄럼방지를 위해 손에 송진을 묻히는데 보통 손에다가 직접 제품을 바르나, 헬멧 정수리쯤 발라놓고 손으로 문질문질하는 식으로 묻히는 선수도 있다. 이게 시간이 지나면 송진이 헬멧에 많이 묻어서 더러워지는 것. 이렇게 하면 손을 안 보면서 묻힐 수 있어서 대기타석에 있으면서도 투수의 투구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 다만 보통 액체송진을 바르기보다는 고체형으로 나온 제품을 발라서 녹이 스는 정도로 끝나곤 하는데 매니는 액체송진을 듬뿍 묻히는데다 시합후 세척도 안해서 녹만 스는 정도가 아닌 아예 송진이 굳어 우툴두툴해진 헬멧을 쓴다. 첫 사진의 헬멧을 유심히 보자. 여튼 매니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 크레이그 비지오와 함께 이 녹슨 헬멧 스타일의 대표적인 타자로 꼽힌다.이것도 야구팬들 사이에선 일종의 빈티지 스타일로서 하나의 멋으로 인정받았었는데, 2010년대 이후로는 스프레이 캔 형태로 뿌리는 제품이 나와서 젊은 타자들은 그걸 쓰고 헬멧에는 잘 바르지 않아서 점점 사라져 가는 문화다.
KBO에선 두산 시절 최준석이 우둘투둘할 정도의 더러운 헬멧을 썼는데 롯데로 이적 한 후로는 깨끗한 헬멧을 썼고, 김주찬이나 김태균이 스틱형 제품을 헬멧에 발랐는데 김태균도 헬멧의 팀컬러가 주황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뀐 이후로는 스프레이 캔으로 갈아타서 김주찬과 이범호가 가장 마지막까지 애용했다가 이범호는 은퇴, 김주찬은 스프레이 캔으로 갈아타서 KBO에서도 사멸해 가는 문화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트레이드 후 다저스는 다저 스타디움 좌측 파울라인 쪽에 매니우드라는 것까지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했지만 매니가 도핑에 걸리고 성적까지 시들시들해지자 결국 치워버렸다. 그럼에도 다저스와 어떻게 다시 연을 맺은 것인지, 2024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의 시구자로 선정되었다.
포스트시즌 역대 최다 홈런기록을 가지고 있다. (29개). 현역인 알투베가 27개, 슈와버가 21개라 깨질 확률이 높은편.
7. 연도별 기록
매니 라미레즈의 역대 MLB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93 | CLE | 22 | 55 | 9 | 1 | 0 | 2 | 5 | 5 | 0 | 2 | 8 | .170 | .200 | .302 | .502 | -0.6 | -0.8 |
1994 | 91 | 336 | 78 | 22 | 0 | 17 | 51 | 60 | 4 | 42 | 72 | .269 | .357 | .521 | .878 | 1.5 | 1.6 | |
1995 | 137 | 571 | 149 | 26 | 1 | 31 | 85 | 107 | 6 | 75 | 112 | .308 | .402 | .558 | .960 | 3.2 | 3.0 | |
1996 | 152 | 647 | 170 | 45 | 3 | 33 | 95 | 112 | 8 | 85 | 104 | .309 | .399 | .582 | .981 | 4.3 | 4.2 | |
1997 | 150 | 651 | 184 | 40 | 0 | 26 | 99 | 88 | 2 | 79 | 115 | .328 | .415 | .538 | .953 | 4.6 | 4.6 | |
1998 | 150 | 664 | 168 | 35 | 2 | 45 | 108 | 145 | 5 | 76 | 121 | .299 | .377 | .599 | .976 | 5.4 | 5.3 | |
1999 | 147 | 640 | 174 | 34 | 3 | 44 | 131 | 165 | 2 | 96 | 131 | .333 | .442 | .663 | 1.105 | 7.5 | 7.3 | |
2000 | 118 | 532 | 154 | 34 | 2 | 38 | 92 | 122 | 1 | 86 | 117 | .351 | .457 | .697 | 1.154 | 4.8 | 4.8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2001 | BOS | 142 | 620 | 162 | 33 | 1 | 41 | 93 | 125 | 0 | 81 | 147 | .306 | .405 | .609 | 1.014 | 5.2 | 5.2 |
2002 | 120 | 518 | 152 | 31 | 0 | 33 | 84 | 107 | 0 | 73 | 85 | .349 | .450 | .647 | 1.097 | 5.3 | 6.0 | |
2003 | 154 | 679 | 185 | 36 | 1 | 37 | 117 | 104 | 3 | 97 | 94 | .325 | .427 | .587 | 1.014 | 5.8 | 5.4 | |
2004 | 152 | 663 | 175 | 44 | 0 | 43 | 108 | 130 | 2 | 82 | 124 | .308 | .397 | .613 | 1.009 | 3.3 | 4.1 | |
2005 | 152 | 650 | 162 | 30 | 1 | 45 | 112 | 144 | 1 | 80 | 119 | .292 | .388 | .594 | .982 | 2.9 | 4.4 | |
2006 | 130 | 558 | 144 | 27 | 1 | 35 | 79 | 102 | 0 | 100 | 102 | .321 | .439 | .619 | 1.058 | 2.9 | 4.5 | |
2007 | 133 | 569 | 143 | 33 | 1 | 20 | 84 | 88 | 0 | 71 | 92 | .296 | .388 | .493 | .881 | 1.2 | 1.1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2008 | BOS/LAD | 153 | 654 | 183 | 36 | 1 | 37 | 102 | 121 | 3 | 87 | 124 | .332 | .430 | .601 | 1.031 | 5.9 | 6.0 |
2009 | LAD | 104 | 431 | 102 | 24 | 1 | 19 | 62 | 63 | 0 | 71 | 81 | .290 | .418 | .531 | .949 | 2.5 | 2.2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2010 | LAD/CHW | 90 | 325 | 79 | 16 | 0 | 9 | 38 | 42 | 1 | 46 | 61 | .298 | .409 | .460 | .870 | 1.1 | 0.8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2011 | TB | 5 | 17 | 1 | 0 | 0 | 0 | 0 | 1 | 0 | 0 | 4 | .059 | .059 | .059 | .118 | -0.3 | -0.3 |
MLB 통산 (19시즌) | 2302 | 9774 | 2574 | 547 | 20 | 555 | 1544 | 1881 | 38 | 1329 | 1813 | .312 | .411 | .585 | .996 | 66.3 | 69.3 |
[1] 커리어 첫 안타를 인정 2루타로 장식했는데, 이걸 홈런으로 착각하고 3루를 돌다 덕아웃에 있는 카를로스 바에르가 등 동료들이 알려주자 그제서야 2루로 돌아간 매니다운 에피소드가 있다.[2] 이 당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타선에는 50홈런-50 2루타, 140타점을 기록한 알버트 벨, 3000안타 - 500홈런을 기록한 에디 머레이, 통산 612홈런의 짐 토미, 전성기로 달려가던 오마 비스켈, 최고의 테이블 세터로 뽑히는 케니 로프턴, 백업 포수로 나서면서도 10개의 홈런을 때린 샌디 알로마 주니어 등이 포진한 살인타선이었다. 나중에는 최고의 공수겸장 2루수이자 샌디의 동생인 로베르토 알로마가 합류해 비즈켈과 전설적인 '미국과 캐나다 국경을 커버하는' 키스톤 콤비를 구축하기도 했다.[3] 단일시즌 1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지만 12위까지는 모두 1938년까지 나온 기록이다. 즉 1939년 이후 1위이다.[4] 그 당시 핵 윌슨의 단일시즌 타점 기록을 깰 선수로 매니와 후안 곤잘레스를 주목했었다.[5]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매니는 드래프트 참가 당시 1순위 픽을 갖고 있었던 뉴욕 양키스의 지명을 내심 기대했지만 양키스가 자신을 거르자 이 때부터 양키스를 싫어하게 됐다고 한다. 참고로 그 때 양키스가 1순위로 지명한 좌완 투수 브라이언 테일러는 1992년 BA 선정 유망주 1위에 오르는 활약을 하기도 했지만 1993년 12월에 자기 형제와 주먹다짐을 하다 부상을 당하는 황당한 일을 겪고 나서는 1994 시즌을 통째로 날리고 이후 마이너에 복귀하긴 했지만 탈탈 털리는 배팅볼 투수가 되어 메이저 무대는 밟지도 못하고 은퇴하게 된다.[6] 우익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어깨는 강했다. 하지만 집중력이 많이 부족해 항상 큰 실수를 하였다.[7] 그래서 입단 초기에는 지명타자로 많이 뛰었지만 데이비드 오티즈가 온 이후로는 어쩔 수 없이 좌익수로 붙박이 출장을 해야 했다.[8] 대신 레드삭스가 매니 대신 얻어온 좌익수는 제이슨 베이였다.[9] 다저스 이적 후 타율 .396 17홈런 53타점 ops 1.232였다. 참고로 불과 53경기동안의 기록이다.[10] 이후 7월에 뉴욕 타임즈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03년 비공개 도핑테스트에서 걸린 104명의 메이저리거 중 매니의 이름도 올라 있었다고 한다.[11] 2012년 시즌 후 싱농 불스를 인수하여 구성한 팀이다. 2017년부터 모기업이 푸방으로 바뀌면서 푸방 가디언즈로 팀명이 바뀌었다.[12] 그래봤자 월봉 5만 달러. 풀 시즌을 뛰었어도 50만 달러 수준이었다. 당시 대만리그를 생각하면 2020년 KBO 수준으로 연봉 300만 달러 이상의 파격 대우다. 대만에서 에이스급 외인 선수들도 당시에는 연봉 20만 달러 정도였으며, 2023년 현재도 50만 달러 정도면 평균 이상의 고액외인이다.[13] 홈런이 엄청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매니가 대만에서 뛴 시즌이 대만 최악의 홈런기근 시즌이었던 2013년이라 홈런이 8개밖에 안 나온거지, 사실 이 페이스로 풀 시즌을 뛰었으면 매니가 단독 홈런왕이었다.(경기수 기준으로 계산하면 20홈런. 이 시즌 홈런왕은 18홈런의 린이취엔. 여담으로 이 시즌 대만의 10홈런 타자는 겨우 5명이었다. 4팀에서 5명이면 사실 일본 통일구보다 더 안 나온 수준이라고 할 수도 있다.)[14] 특히 바에즈의 경우에는 그의 가족들과도 친해질 정도로 애착을 뒀다고 한다.[15] 매니의 비율 스탯은 그와 마찬가지로 도핑 논란으로 명성을 잃은 오티즈, 소사, 팔메이로보다 상대적으로 분명 뛰어나다.[16] 레드삭스 팀메이트였던 김선우도 훗날 인터뷰에서 매니 라미레즈는 어떤 선수였냐는 질문에 "그 사람은 약간 개인주의. 행동 자체가 그냥 애였어요(웃음)."라고 답한 바 있다.[17] 하지만 연봉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클레임을 거는 팀이 없었다.[18] 펜웨이 파크와 리글리 필드, T-모바일 파크는 아직도 수동으로 점수판을 돌린다. 물론 셋 다 전광판은 따로 있다.[19] 자세히 보면 손이 마주치진 않았다.[20] 영상을 느리게 돌려보면 카메라가 매니를 잡는 시점에야 낙구 지점을 잡고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는걸 볼 수 있다.[21] 시간이 흐른 후 보스턴의 우승을 기념하는 의미로 팬웨이 파크에 우승 주역인 매니 라미레즈, 노마 가르시아파라, 페드로 마르티네즈, 쟈니 데이먼 등을 초대했는데, 이때 매니 라미레즈가 던진 공을 쟈니 데이먼이 가로채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