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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09 06:33:10

모리스 앙드레

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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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gcolor=#FFF,#1f2023>파일:D8FE539D-CCB2-44DA-9D5B-B6EEC0E8759F.png그라모폰 명예의 전당은 예술적 탁월함, 혁신, 혹은 상상력을 통해 클래식 음악 녹음에 기여한 예술가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는 첫 발표(2012년)때 헌액된 인물들이다.
☆는 두번째 발표(2013년)때 헌액된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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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모리스 앙드레
Maurice André
파일:모리스 앙드레.jpg
출생 1933년 5월 21일
프랑스 알레스
사망 2012년 2월 25일 (향년 78세)
프랑스 바욘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직업 음악가
장르 클래식
악기 트럼펫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2. 생애3. 위상4. 음악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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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리스 앙드레의 1970년 모습(37세때)[1]

프랑스 출신의 트럼페터.

2. 생애

1933년 프랑스 알레스 지역에서 출생했다. 아버지가 아마추어 트럼페터였으나 아버지가 광부일을 하고 후에 파리 음악원을 조건으로 들어간 것을 보면 가정형편이 좋았던 것 같지는 않다.

12세 이전에는 아버지를 따라 광부로 일 하였는데 아버지와 주변인물이 능력을 알아보고 권하였으나 처음에 그는 트럼펫을 배울 생각이 없었고 성악을 배우는 것에도 흥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레온 발리델레미라는 사람을 통해 음악교육을 받게 되었으며 이후 트럼펫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1951년 18세의 나이에는 파리음악원을 다니기 위해 군악대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정식적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1953년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1955년에 제네바 국제 콩쿨에서 1위로 당당히 입상하게 되는데 1962년에는 프랑스 코미크 악단의 단원으로 선출 되었다. 이후 1963년에는 뮌헨 국제 콩쿨에서 심사위원에 위촉하였으나 거절하고 자신이 8년만에 출전해 또 1등으로 입상한다.

이후 장 - 프랑수아 파이야르[2]장 피에르 랑팔[3]등과 교류하며 주로 바로크 시대의 음반을 많이 남겼다.

1974년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함께 트럼펫 협주곡을 취입해 화제가 되었는데 카라얀의 생애 유일한 트럼펫 협주곡 녹음이 되었다.

1975년에는 일본에서 공연을 개최하였고 1979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모리스 앙드레 콩쿨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기에 들어 콘서트를 줄이기 시작하더니 2003년 기준으로 콘서트를 열지는 않았으나 음반을 계속 취입해 죽는 순간까지 250~300개에 달하는 음반을 남겼다.[4] 이후 고령으로 인해 2004년을 끝으로 아들인 니콜라스[5][6]와 함께 순회 공연을 한 뒤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오른쪽 눈에 백내장이 오는 바람에 죽을 때 까지 양쪽의 알이 다른 안경을 써야했다.[7] 상당히 고생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인터뷰를 보면 실제로 그렇다.

2012년도에 열린 그의 마지막 트럼펫 연주. 전성기에 비해 많이 쇠퇴되고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존했지만 연주가 끝나고 트럼페터들은 물론 연주자들에게 기립박수를 받는 그의 모습은 그가 트럼페터들의 우상임을 인증한다.

업적으로는 1959년피콜로 트럼펫이라는 악기를 개량하였는데 이 악기는 바로크시대의 악기 중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클라리노를 차용해 개량 한 것이다. 물론 자신은 이 악기를 거의 가지고 놀다시피 자유자재로 연주하였으나 다른 트럼펫 주자들은 다루기 어려워 했다.

3. 위상

세계적인 트럼페터로 생전에도 사후에도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으며 트럼펫 연주에 있어서는 독보적 위치의 인물로 그를 능가하는 트럼펫 주자는 아직 없다는 게 중론이다.

세계적인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8년 뒤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초청 받았으나 심사위원 자리를 거부하고 다시 재출전해 우승한 경우는 모리스 앙드레가 유일하며. 그가 바로크 시대의 트럼펫 연주곡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트럼펫이 독주 악기로 각광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음악적 특징

주요 레퍼토리는 로카텔리 , 바흐 , 훔멜 , 하이든 , 헨델 등의 바로크나 전기 낭만주의 시대 음악에 치우쳐져 있으나 그가 남긴 많은 트럼펫 협주곡 중에서는 오늘날에 다른 트럼페터는 녹음으로 남기지 않은 곡들도 있으며 재즈같은 음악도 음반으로 남겼다.

다른 트럼펫 주자와 비교해도 같은 곡을 연주하는데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교와 해석을 보여주는데 특히 카덴차에서 강세를 보였다. 그 이유는 다른 주자에 비해 폐활량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이며 2번의 국제 콩쿨에서 1위로 우승한 것도 여기에서 기인 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의 연주 중 가장 화려하면서도 뛰어난 연주가 부각되는 헨델의 오르간과 트럼펫을 위한 협주곡 3악장을 들어보자.[8] 옆의 연주인낙소스에서 녹음 된 미로슬라브 케즈마의 연주와 비교해서 들어보면 왜 앙드레가 추앙받는지 알 수 있다. 낙소스에서 녹음 된 것은 속도도 느리게 연주하면서 굉장히 불안하게 연주하는데 모리스 앙드레는 템포는 1.25배[9] 빠른데도 안정감 있게 시원하게 불러준다. 어느정도냐면 두 연주가 똑같이 1분 23초에 마치는데 모리스 앙드레의 연주는 반복 부분을 포함하고도 1분 23초인데 모리스 앙드레는 빠르게 연주하고도 안정감 있는 완벽한 연주다.[10]

라크메의 <종의 노래>
이건 모차르트의 밤의 여왕 아리아다.

두 곡 모두 소프라노들의 기교가 엄청나게 요구되는 아리아이다.


[1] 1960,70년대는 앙드레의 최전성기였다.[2] 1928~2013 바로크 음악에 정통했던 지휘자. 본인의 이름을 딴 실내악단을 구성해 활동했다.[3] 1922~2000 플룻의 대가로 여겨지는 인물로 국내와는 달리 외국에서는 제임스 골웨이보다 더 높이 평가 한다. 클로드 볼링과 크로스오버 음반을 발매해 530주간 40위를 유지한 전설적인 인물이다.[4] 거의가 모두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다. 한 곡을 각자 다른 년도에 녹음 하는 경우도 있었고 아직 그만 유일하게 녹음 한 곡도 있다.[5] 아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트럼페터로 활동 중이다.[6] 큰 아들 리오네 앙드레 역시 트럼페터였으나 1988년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7] 오른쪽 안경 알만 선글라스 알이었다.[8] 이 곡은 원래 플루트 소나타이다. 다만 리코더를 당시 플루트로 불렀기 때문에 대부분의 녹음이 리코더로 연주한 것이고 장 피에르 랑팔의 경우는 플루트 연주로 음반을 남겼다.[9] 낙소스의 연주를 1.25배 해서 들으면 모리스 앙드레 녹음의 속도가 나온다.[10] 3악장이 Furioso이기 때문인데 저 악상기호는 맹렬하게. 미친듯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기준은 없지만 프레스토의 상위 단계인 알레그리시모 급의 속도로 연주해야 한다는 소리다. 저 악상기호를 생각해보면 모리스 앙드레가 충실하게 연주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다만 케즈마의 연주는 그렇지 못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