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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武藝諸譜. 조선 중기의 병학자인 한교가 1598년(선조 31년)에 편찬한 한국의 고전 무예서적. 현재 우리나라에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무예서이다. 프랑스 파리 동양언어문화학교 도서관과 수원화성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수원화성박물관 소장본이 2021년 12월 22일에 보물로 지정됐다.
2. 내용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기존 장사정 원거리 무기 위주의 전술이 왜군에게 잘 먹혀들지 않자 조선 조정에서 당시 훈련도감낭청(訓練都監郞廳)으로서 기효신서를 번역했던 한교로 하여금 근접전투 무예 수련을 위한 무예서를 만들게 한 것이다. 이에 한교가 6기(六技) 곤봉ㆍ등패ㆍ장창ㆍ당파ㆍ낭선ㆍ쌍수도의 여섯 수입산 무기들의 운용 무술을 집필하여 1598년에 처음 간행하였다.이러한 무예제보는 6.25 전쟁을 거치면서 국내 소장본이 모두 소실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고, 이에 국내에서는 무예제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1993년 9월 11일 박기동 교수가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 무예제보의 마이크로 필름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당시 학계와 무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조선 말, 근현대 격변기 당시 프랑스 초대 공사였던 콜랭드 플랑시가 파리 동양언어문화학교 도서관으로 무예제보 1부를 유출하였었는데, 1982년 한불협정에 의거하여 프랑스에 소장된 한국 출처 전적 일부분을 마이크로 필름으로 찍어 우리나라에 보내주었을 때 이 무예제보를 찍은 필름도 같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이 학계에 알려지지 않아 10여년간 필름이 수장고에 처박혀 있었다.
이 필름이 발견된 후 학계에서 프랑스 파리 동양언어문화학교 도서관에 급히 문의한 결과 1598년에 한교가 제작한 무예제보 초간본이 프랑스에 현존하고 있음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2017년 초에 국내에서도 무예제보 진본이 발견되어 수원박물관이 거액에 매입하였다.최초의 무예서 '무예제보' 찾았다, 조선 시대 무예서의 시초 '무예제보', [사설] '무예제보' 유네스코 세계유산 서둘러야 이로써 국내에도 무예제보가 현존하게 되었다.
150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한글 무예서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이 무예제보를 바탕으로 하여 1610년에 최기남(崔起南)이 무예제보번역속집을 편찬하였다.
3. 외부 링크
4. 문화재청 소개글
'무예제보(武藝諸譜)'는 한교(韓嶠, 1556∼1627)가 왕명을 받고 중국 명나라 장군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를 참고하여 조선의 무인이나 대중들의 이해를 돕고자 「대봉(大棒, 곤봉)」ㆍ「등패(藤牌, 방패)」ㆍ「낭선(狼筅, 낭선창)」ㆍ「장창(長鎗, 긴창)」ㆍ「당파(鎲鈀, 삼지창)」ㆍ「장도(長刀, 장검)」 등 무기 6종의 제작법과 도해(圖解)를 수록해 편찬하고 그 내용을 한글로 언해(諺解)하여 1598년(선조 31) 10월 목판으로 간행한 무예서이다.
이 책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무예서 중 가장 먼저 편찬되어 후대의 무예서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 더욱이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학술적ㆍ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1610년(광해군 2)년에 간행된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무예제보’는 기 지정본보다 앞서 간행된 책으로 조선의 국가 방위를 위한 노력의 과정 속에서 증보 간행된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이러한 사유로 ‘무예제보’는 우리나라 무예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이 책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무예서 중 가장 먼저 편찬되어 후대의 무예서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 더욱이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학술적ㆍ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1610년(광해군 2)년에 간행된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무예제보’는 기 지정본보다 앞서 간행된 책으로 조선의 국가 방위를 위한 노력의 과정 속에서 증보 간행된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이러한 사유로 ‘무예제보’는 우리나라 무예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