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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30 16:08:10

문호준/여담 및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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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담 목록
1.1. 체중과 실력이 비례하는 징크스1.2. 현역 시절 주장으로서의 능력

1. 여담 목록


1.1. 체중과 실력이 비례하는 징크스

본인이 자주 언급하는 징크스이자 듀얼레이스 시즌 3에서 인터뷰를 통해 결국 인정했다.#

이걸 언급하기 시작한 때가 2017년 말에 있었던 중국 리그에 나가면서였다. 그 때부터 조금씩 살을 찌우면서 우승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실제로 비교적 말랐던 시절이었던 2015년부터 2016년에는 본인 커리어의 위엄이 제대로 보여지지 못했는데 2015년 열린 에볼루션 리그에서는 준우승, 다음 리그인 버닝타임 시즌에서는 아예 8강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그 다음 우승할 것이라 예측되었던 듀얼레이스 개인전도 3위를 차지했고(그래도 팀전은 우승했다.), 듀얼 레이스 시즌 2에서는 개인전 입상도 하지 못했고, 팀전도 3위에 그쳤다.[65] 그러나 2017년 말부터 살을 불리기 시작하더니 1년 만에 3번의 우승[66]을 달성하였다.[67]

예전에도 어렸을 적 많이 통통할 때 최전성기 시절로 몇 번 우승했었다. 2008년 중반부터 살이 붙었는데, 그 전에는 우승 한 번 달성한 이후로 계속 결승전에서 무릎을 꿇었던 적이 많았지만, 12살 때부터 살이 붙기 시작하더니 2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였다.

사족으로 자신은 먹는거에 스트레스 받는게 제일 싫다며, 대회 전에는 열심히 다이어트하고 대회 도중엔 그냥 마구마구 먹는다고 한다. 실제로 2019 시즌 1 예선전 첫 날의 문호준과 결승전 때의 문호준 턱라인의 차이가 큰 편임을 알 수 있다.

2020 시즌 1 예선 개인전에서 상기되었듯 엄청난 헬조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는데, 경기 끝나고 인터뷰 사진을 보니 전 시즌에 비해 꽤나 살이 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감독이 된 21 시즌 1 에는 다이어트 중이라고 밝혔다 5분 24초부터

1.2. 현역 시절 주장으로서의 능력

카트리그에서 유영혁과 함께 가장 오래된 선수이다보니 팀을 이끌어가는 스타일이 서로 다른데, 유영혁팀원들을 업고 케어해서 앞에서 같이 이끌어가는 스타일이라면 문호준팀원들이 스스로 따라올 수 있도록 기량을 끌어올리는 스타일이다.[68]

문호준은 그 선수들의 플레이 성향과 스타일의 수준을 극대화로 끌어올려준다. 부족한 부분마저 채워줘서 완전히 올라운더 같은 스타일 완전체 모습으로 만들어 준다.[69]

하지만 문호준 방식의 경우 유저들과 팬들 사이에서 가끔 너무 심하다는 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호준이 팀원들에게 절대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호준은 리그 내에서 신인 선수들에게 진심어린 조언과 충고를 잘해줌으로서 당근과 채찍을 잘 쓰는 편.[70]
문호준 자신은 신인 선수들의 교육방식에 대해 "자신이 카트를 배울 때 아버지한테 빡세게 배웠다."[71]고 언급한 적이 있다. 마냥 나긋나긋하게 하지 않고 연방 때나 내전 때 수시로 신인 선수들의 동선이나 라인, 작업 방식 등을 체크하며 잘못한 것은 확실히 지적하고 최대한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한다. 실전에서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동기 부여를 해줘서 지고 있어도 최대한 격려를 하며 부스 분위기를 밝게 가져간다고 한다.쌈바~~!!!! 다만 경기력이 매우 좋지 않을 땐 부스에서 바로 회초리를 휘두르기도 한다.

거기다가 최근 어렸을 때 부터 문호준과 함께 현역으로 뛰었던 고참 선수들이 각 팀의 주장격으로 있는데, 각자 신인 선수들을 키우고는 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보니 문호준의 코칭 방식이 상대적으로 좀 더 고평가를 받고있다.[72][73]

문호준의 마지막 시즌인 2020 시즌 2에서는 미래지향적인 팀 운영을 고수했다. 8강 풀리그 3번의 에결에 본인 대신 배성빈을 3번 내보낸 것. 결과는 2승 1패로 나름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개인전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최영훈이 개인전 4위로 대약진하며 커리어 하이를 갱신하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비록 배성빈과 박도현이 작년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기는 하지만, 문호준이 감독으로 전향했으므로 그들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히는 기복 문제를 해결한다면 반짝 신인이라는 의심도 보기 좋게 떨쳐내고 비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74]


[1] 대한민국 e스포츠 역사상 최연소 데뷔 기록이다. 앞으로는 사실상 이 기록이 깨질 일이 없는데, KeSPA 규정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발로란트,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등 12세/15세/18세 이상 이용가 게임은 만 17세 이상 선수만 등록이 가능하고, 카트라이더 등의 전체 이용가 게임은 게임사가 정한 규칙에 의거해서 선수 등록이 가능한데, 카트라이더 리그는 2021년부터 만 14세 이상 선수만 예선 참여 가능이라는 규칙을 내걸고 있기에 문호준의 최연소 데뷔 기록은 사실상 불멸의 기록이 되었다.[2] 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옐로우 라이더는 탑 시드를 의미하는데 그는 최다 기록으로 20-1시즌 기준 결승전[3] 문호준은 와일드카드전이나 패자부활전 혹은 패자전으로 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서 결승전에서는 최소[4] 팀전 변환 후 꽤나 시간이 많이 지난 현재 아이템전에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실력이 상향되었음에도 스피드, 아이템전에서 모두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선수는 드물다.[5] 다만 2020년에 들어선 최근엔 팀전 리그에서 아이템전을 했던 기간이 길어지면서 선수들의 아이템 실력이 상향평준화되어 스피드 아이템 모두 준수한 능력치를 가진 선수는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리그 내에 문호준의 아이템 기량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6] 10차 리그 또한 리그 초반에 아쉬운 부진이 있었고, 듀얼레이스3 또한 마지막 3세트 1대1 대결에서 2대1로 풀세트 경기를 통해 이겼다.[7] 이 부분은 2019 시즌 1 개인전 결승전에서 더욱 잘 보여졌는데, 사실상 2인 진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였던 것을 3연속 1등을 꽂아 드라마를 써내면서 우승한 부분은 카트리그 역사에서 길이 남을 부분.[8] 강진우는 최초의 더블원, 김대겸은 최초의 카트리그 우승자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깊다. 그렇기에 그 때부터 활약한 문호준이 존경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저 두 명의 공통점은 카트리그에서 수많은 최초, 최다의 기록을 가진 문호준이 가지지 못한 얼마 안되는 커리어인 로열 로더를 달성했다는 점이며, 이중 강진우는 아예 문호준의 로열 로더 도전을 손수 좌절시키면서 더블원까지 달성한 선수이다.[9] 김대겸은 사실 1차리그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고 해설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강진우는 워낙 임팩트가 커서 오래된 카트팬들에게는 아직도 회자되는 선수이다.(김대겸의 1차리그 결승은 조현준의 광꼬 벨트 갈아타기 실수가 오히려 임팩트가 큰 게 문제...) 특히 카트리그의 명경기를 꼽으라면 6차리그 결승전 마지막 트랙인 사빙공 경기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top 5에도 충분히 들어갈만 하다고 볼 수 있다.[10] 오프라인 예선에서 활약하여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공동 5위를 차지하여 오렌지 우성민과 5,6위 패부 결정전 에결을 갈 정도로 활약을 했지만 짬이 좀 있는우성민에게 아쉽게 패배하여 32강에서 광탈했다. 여담으로 해설진들이 언급한 바로는 여수에서 부모님 차 타고 갓 상경하여 개인전 경기 당일 바로 데뷔한 따끈따끈한 신인이라고(…)[11] 특히나 역로비 같은 경우엔 본인의 1픽 맵으로, 개인전 리그 시절 항상 이 맵에서 1등을 꽂을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12] 리그 맵이였던 5~13차 리그 시절에는 부빙에서 문호준 답지 않게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여 하위권으로 쳐지는 모습을 많이 보이곤 했다. 대표적으로 우승했던 9, 10차리그에서는 라운드 파이널, 그랜드 파이널에서 다른 맵 다 잘했음에도 부빙에서 대부분 하위권을 찍었다.[13] 2019 시즌 2에서 부빙에서 리그 베스트 레코드를 세우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현재는 부빙도 굉장히 잘한다.[14] 김대겸 해설의 분석에 의하면 문호준이 부빙에 약했던 이유는, 부빙 마지막 지름길 쪽 틈새에 자꾸 걸려서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문호준 혼자 약한 것이 아니라, 극한의 라인을 파려고 하는 성향이 있는 선수들이라면 다들 그 구간에서 자꾸 걸리곤 했다고 한다.(문호준은 플레이 스타일이 변칙적이라 그렇지, 인코스를 파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그 전대웅보다도 극한의 인코스를 추구하곤 한다. 일명 "호세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그 플레이가 나오는 것도 이런 성향이라 그런 듯) 그런데 요즘은 카트바디의 속도가 워낙 인플레이션이 됐기 때문에 어지간히 깊이 파도 속도가 빨라서 다 넘어가진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그 구간도 문호준의 주행에 방해가 안 된다고.[15] 하필 대은지에서 같이 포인트 경쟁중이던 유창현이 사고가 크게 나면서 결승 2라운드에 진출해 더더욱 극적인 효과가 나왔다.[16] 물론 좋은 기억이 워낙 많아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선수 생활을 워낙 오래 했기 때문에 좋지 않은 기억도 있다. 당시엔 이벤트 리그 취급을 받아 본인도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았던 듀얼레이스 시즌 1 개인전 2세트 마지막 트랙에서 최하위를 기록해 김승태에게 밀려 3세트 진출에 실패했다.[17] 현재 듀얼레이스 1 개인전도 공식리그로 쳐주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이벤트 리그 취급하던 이유가 오프라인 예선조차 치르지 않아서 그런 듯 하다. 개인전 선수들은 전부 팀전 본선에 진출한 32명을 개인전에 내보냈다. 공식리그로 인정해준 것도 듀얼레이스가 끝난 후였다.[18] 공교롭게도, 2019년 이후 신흥 빅3로 불리는 유창현, 박인수, 이재혁의 스타일도 이와 유사한데, 유창현은 문호준과 비슷한 안정적인 상위권 점수 획득 위주 플레이, 이재혁은 초반에 점수를 몰아먹고 운영을 통해서 중후반부 점수를 차근차근 쌓는 플레이, 박인수는 되는대로 1등을 몰아쳐서 먹는 플레이를 많이 한다.[19] 문호준과는 달리 둘은 최전성기가 지나면서 본인의 운영 스타일이 발목을 잡기도 하는데, 유영혁은 초반에 몰아치거나 후반에 발동이 걸리는 선수들이 많아서 중반에 점수를 주로 챙기고 초반 후반에 뒤로 쳐지면서 마지막에 점수가 약간 부족한 경우가 많고, 전대웅은 지나치게 1등 위주 플레이를 하다보니 사고에 많이 휘말려서 순위 편차가 매우 극단적이다.[20] 같은 1997년생인 야구선수 이영하와 비슷한 케이스. 그 역시 15살 터울의 남동생과 19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다.[21] 온게임 팀은 4~7차 리그 까지 존재하였다. 팀원들은 다음과 같았다. 김강인(4차 리그), 윤용준(4차 리그), 이상우(4차리그)(그러나 예선탈락하여 본선 진출 기록 없음), 정선호(4~7차 리그), 유임덕(4~7차 리그), 김진희(4~6차 리그), 전인권(4~5차 리그), 문호준(4~7차 리그)[22] 초창기 여러 게임종목이 난립했을 때의 다종목 최강자는 셀 수도 없고, 알려진 사람들 중 다종목 최강자는 스타 C&C 에이지 그외 여러종목 국가대표 경력이 수두룩한 오정환, C&C젠너럴 워3 모두 우승한 황연택,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 C&C 최고수에 워3 강자였던 이진섭, 피파와 워크래프트3에서 모두 우승권에 있었던 이형주,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3에서 동시 4강(비슷한 시기에 2종의 게임을 연습해서 둘 모두 4강에 오른 것이다.)의 위업을 달성하고 포커에서도 최강전설을 찍고 있는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 그리고 킹덤언더파이어의 강호였다가 스타크래프트로 넘어온 전상욱, OSL 우승자 이면서 킹덤언더파이어 준우승 경력도 있는 김동수, 카오스와 LOL에서 정점을 찍은 이정현 등이 있다.[23] 문호준 본인의 말로는 그랜드마스터 120등대까지 순위를 찍어봤다고 한다.[24]Loud G[25] 신동이는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스트리머가 되었다.[26] 안기준 선수는 아이템전에서 문호준의 팀원으로 출전, 정승하 선수는 핸디캡 대결 문호준을 이겨라 출전.[27] 먼저 결성된 세비어가 강팀이었기 때문에 플레임이라는 드림팀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28] 기사마다 다른데 우승을 못했으면 은퇴 선언을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나중에 개인방송에서 말한바에 따르면 양대우승했으면 진짜 은퇴했을거라고 한다.[29] 지금은 이 셋 중에서 구독자 수가 가장 많다.[30] 작년 여름에 열렸던 듀얼레이스 X는 입장 시간에 딱 맞춰 가도 대기줄이 거의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카트라이더와 카트라이더 리그의 인기가 엄청나게 상승했음을 보여준다.[31] 건너편 건물 앞 광장에 그 인파가 몰렸는데 해당 건물 관계자가 나와 거세게 항의를 했다.[32] 이 점을 본인이 다시 한번 의식했던 순간이 KBS 더 드리머 촬영 때인데, 본인이 페이커의 팬으로서 사진을 찍으려 기다리다 자신의 팬들의 입장을 깨닫고 내가 눈인사만 하고 가면 팬들이 얼마나 속상할까라고 말하기도 하였다.[33] 남성팬 한정이었다. 오해가 생길수도 있으니. 하지만 이젠 허락을 받으면 여성팬에게도 해 준다고 한다.[34] 새벽부터 넥슨 아레나 계단에서 대기를 하면 넥슨 아레나가 지하이고, 리그가 열리는 기간이 겨울이기 때문이다.[35] 이날 기온이 영하 6도였다. 새벽부터 대기했던 팬들은 엄청난 추위와 싸워야 했다.[36] 당시 약 10명 정도 대기하고 있었다.(새벽 12시~1시 경)[37] 사실 타 종목인 카트라이더 선수라서 모를 수 있다. 다만, 정규시즌 때 샌드박스 카트라이더 팀은 카메라에 잡혔었고 당시 성승헌 캐스터가 바로 이름을 언급했다.[38] 참고로 한화 이글스와 한화생명E스포츠의 롤팀 우승 횟수는 다 합쳐 1회다. 1999년 한화 이글스의 우승 이후 단 한 번도 우승 내지 결승전에 올라간 적이 없어서 우승이 1회인것은 맞으나 한화 이글스는 2006년에도 코리안시리즈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했었다. 그렇다한들 문호준은 커녕 2019년 시즌 2 당시의 최영훈, 이은택보다도 우승 횟수가 적다.[39] 말 그대로 팀 이름만 빌려주는 네이밍스폰이라 숙소, 연습실 등의 지원은 없다. 하지만 네이밍스폰이라고 해도 카트라이더라는 게임에 대기업의 네이밍 스폰이 들어온 것 자체가 대단한 일.[40] 추가적으로 김치도 이파리 부분만 먹는다고 한다.[41] 박도현은 1라운드에서는 1위를 했으나 2라운드에서 3대1로 지면서 준우승으로 밀렸다.[42] 우승 후 인터뷰를 보면 문초리를 엄청나게 휘두른 모양. 특히 아이템도 갑작스럽게 병행해야 했던 박도현이 문초리를 제일 호되게 맞았다고 한다.[43] 정규리그만 따져도 듀레1부터 2020 시즌1까지 6시즌이고, 이벤트전과 온라인 대회까지 합하면 무려 8번을 같은 팀을 했다!사실 9번이라 카더라 팀스피릿 리그 당시에 지금의 최영훈이 아닌 다른 동명이인의 최영훈과 팀을 한 적이 있다.[44] 2019 시즌1 종료 후, 플레임 해체 때 최영훈이 문호준에게 저렇게 말했다고 한다.[45] 가장 큰 예로 절친인 김상수가 사고를 쳐도 끝까지 안고 간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46] 그리고 유영혁이 프릭스 게이트라는 큰 사건에 휘말리며 민심이 바닥을 치자, 적어도 문호준은 자기 편에게 뒤통수는 치지 않는다라는 재평가 아닌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더불어 개인전 은퇴 때 한 말을 보면, 한화생명 팀원들은 모두 자기가 데려왔다며 책임감을 보였고, 배성빈과 박도현에 대해서는 이제는 자기가 했던 운영 등 개인전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자기 편에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사람이 맞다.[47] 2020년 5월 23일.[48] 그리고 이 히페리온은 얼마 115만 6천원으로 히페리온을 또 뽑은 뒤 파라곤 X에 장착할 파츠를 얻기 위해 갈아버렸는데, 유니크 바퀴 1(...)이 나왔다.[49] 작년에는 2019시즌1에서 같은 팀으로 활동했던 유영혁이 지하철 전광판에 생일 축하빵을 받기도 하였다.[50] 이어달리기 바통 터치하듯이 축하빵을 받는 느낌이 나서 역시 영혼의 듀오라는 말이 많다.재작년에는 레스트바티칸이 받은 것이 걸리기는 하지만[51] 군산에는 기아의 제2홈구장인 월명 야구장이 있으며 전국 최강의 야구 명문 팀인 군산상일고등학교 야구부가 운영 중이다.[52]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맞는 얘기이기도 한다. 정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롤팀과 야구팀은 하위권만 하고 있는 반면 네이밍스폰인데 매 시즌마다 한화라는 네이밍으로 결승을 3회진출을 했고 그중 2회 우승을 했기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도 성캐에 이 한마디에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 였다.[53] 비슷한 예로 형독패달을 이용해 발로 드리프트를 해서 L1 라이센스 미션들을 클리어하는 컨텐츠를 진행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방식은 많이 다르지만 둘 모두 상당한 실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카트라이더를 10년 이상 한 짬밥과 실력은 어디 안 간다는 말이 많다.[54] 매니저 계정 자기소개란에도 가기 전 아예 문호준 계정이라고 바꿔놓은 걸 보면 문호준이 자신의 계정을 쓰는 것을 딱히 개의치 않는 듯하다.[55] 이걸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문호준이 했던 비트 X의 리뷰 영상이다. 이 당시 다른 유저나 프로게이머들은 비트 X를 상당히 고평가했었는데, 문호준만은 "대회에 내놓으려고 급조한 카트바디같다. 솔직히 좋다고는 평가 못하겠다"라고 상당히 부정적으로 평가했었다. 그 영상은 싫어요 수가 미친듯이 올라갔으며 유저들도 이 평가는 좀 아니지 않냐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문호준도 맨 나중에 가서는 비트를 좋게 봤었고 대회에서도 잘 타고 다녔는데, 당시 영상의 맥락을 보면 감속도 굉장히 좋았던 이온과 폭스와 달리 감속이 상대적으로 떨어져서 굳이 탈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나이트 세이버 V1의 출시로 탑승한 뒤 혹평을 내리면서 카갤에서 이런 글도 올라왔다. 다만 나이트 세이버는 감속과 드립감에 비례해서 L타입 익시드가 아니고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림을 감안해야 한다.[56] 그런데 문호준의 특이점으로 가끔 다른 선수들과 다른 카트바디 선택을 보여주곤 했다. 11~12차리그 당시에는 다른 선수들의 대부분의 선택은 4륜 2대에 바이크 2대를 타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본인은 4륜 1대에 바이크 3대를 타기도 했고 2019 시즌 1 당시에 16강 승자전이 끝난 후였는데 방송중에서 리뷰를 할 때 도검에서 다들 멘티스 타는데 나만 블랙코튼을 타서 "X됐다"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한 적 있다.[57] 멀리 갈 것도 없이, 박인재 감독이 저평가받던 카트바디들을 분석해 수많은 조합을 만들어내며 팀의 순위를 끌어올린 것을 예시로 들 수 있다.[58] 직행이 힘들었던 이유는 룰이 특이했다는 점에 있다. 조별예선 - 쿼터파이널 - 라운드파이널을 이렇게 3차례를 진행하는데 여기서 결승을 직행하려면 라운드파이널까지 가서 무조건 1위를 해야만 했다. 즉 결승 직행 티켓이 3개였다. 그리고 만약에 동일한 선수가 라운드 파이널에서 연속으로 1등을 하면 직행 티켓도 적어지기에 적으면 단 1명만 결승으로 직행하는 사태가 나올 수도 있었다.[59] 다만 1명 직행은 4차리그까지고 5차리그는 포인트다득점제라는 것이 있었기에 최소 2명이었다.[60] 정승하, 신종민, 신동이 등등. 아무래도 본인도 세대교체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61] 롤모델 하우스에 2020 시즌 1, 2020 시즌 2 우승 상금판에 우승 트로피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파일:wavve 아이콘.svg[62] 카트종목 최초로 입성한것이다.[63] 선수 시절 때도 그랬고 감독으로 지휘하는 시절에도 선수들이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것이 폐인처럼 느껴지다 보니 최대한 선수들 배려차원에서 합숙을 경기 전날에 하는 것으로 변경.[64] 상금 분배도 그렇고 현재 KDL 기준 본인이 선수를 복귀 하여도 아이템 에이스 영입할 매물이 없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일리는 있다. 그리고 현재 본인이 함께하는 팀원들을 생각해도 굳이 5인체제는 할 필요가 없다.[65] 반면 이 기간 동안 유영혁은 에볼루션, 버닝타임, 듀얼 레이스 개인전으로 3연속 우승하는데 성공했고, 듀얼레이스 팀전, 듀얼레이스 시즌 2 양대 준우승을 달성하는 등 여러모로 이 당시의 커리어는 라이벌인 유영혁이 압도적이었다.[66] 듀얼 레이스 3 양대우승, 2019 시즌 개인전 우승[67] 이와 정 반대로 유영혁은 오히려 마른 체형이던 빅 3 시절인 2011년부터 2017년까지는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었으나 살이 붙기 시작한 2018년부턴 점점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해 체중과 실력이 반비례하는 징크스 드립을 듣고 있다.[68] 이를 위해 타 팀원들을 넥슨 정규리그뿐만 아니라 타 대회에도 팀을 그대로 짜 내보내 기량을 올려주려는 노력을 한다.[69] 모든 선수들이 포지션은 다르지만 한화생명 선수들은 포지션대로 성향이 강한거지 사실상 올라운더형 선수들이다.[70] 문호준의 성격상 어감이 세게 말하는 타입이다. 팀원들을 대할때는 엄격하게 대하지만 사적으로는 정말 동네 형같이 편하게 대해준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화생명 팀원들이 왜 계속 문호준을 따르는지 알 수가 있다.[71] 실제 유튜브 스트리밍 중 박도현이 뉴커팅을 제대로 못하자 목소리 톤을 높이다가 시청자들이 좀 심한 거 같다고 하자, 본인은 어릴 때 잘 못할 때마다 딱밤을 맞았다고 한다.[72] 박도현과 배성빈이 2019년 리그 시즌 2에서 각각 2등, 3등으로 입상을 한 것이 고평가 받는 이유다.[73] 다른 주장들이 스크림 방송할 때 팀원 대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문호준은 이기든 지든 한 판 끝나면 그 판 상황이나 이유에 대해 피드백을 자주 해주는데 다른 팀들은 이기면 좋아하느라 넘기고 있고, 지면 왜 졌는지 모르는채 그냥 넘기고 있는데 문호준은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한 피드백을 해주는 타입이다. 여기서 왜 비교가 되는지 알 수 있다.[74] 문호준은 이제 선수들 멘탈 케어를 해주는 역할이 큰거지 기복적인 부분은 자신들이 해야하는 것이다. 일일이 케어해줘도 본인들이 못이겨내면 어쩔수 없는 것이며, 선수 본인들한테도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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