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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5:48:35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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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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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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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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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333333>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로타어 마테우스 150회 1980.6.14 2000.6.20
2 미로슬라프 클로제 137회 2001.3.24 2014.7.13
3 루카스 포돌스키 130회 2004.6.6 2017.3.22
4 토마스 뮐러 128회 2010.3.3 2024.3.26
5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121회 2004.6.6 2016.8.31
6 마누엘 노이어 117회 2009.6.2 2022.12.1
7 필립 람 113회 2004.2.18 2014.7.13
8 토니 크로스 108회 2010.3.3 2024.3.26
위르겐 클린스만 1987.12.12 1998.7.4
10 위르겐 콜러 105회 1986.9.24 1998.7.4
11 페어 메르테사커 104회 2004.10.9 2014.7.13
12 프란츠 베켄바워 103회 1965.9.26 1977.2.23
13 토마스 헤슬러 101회 1988.8.31 2000.6.20
14 울프 키르스텐 100회 1985.5.8 2000.6.20
}}}}}}}}}}}}}}} ||
독일의 前 축구 선수
파일:슈바인슈타이거 월드컵 우승.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Bastian Schweinsteiger
출생 1984년 8월 1일 ([age(1984-08-01)]세)
독일 바이에른주 오버바이에른현 콜버모어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 체중 83kg
주발 오른발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유스 FV 오베라우도르프 (1990~1992)
TSV 1860 로젠하임 (1992~1998)
FC 바이에른 뮌헨 JT (1998~2002)
프로 FC 바이에른 뮌헨 II (2001~2005)
FC 바이에른 뮌헨 (2002~201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5~2017)
시카고 파이어 SC (2017~2019)
국가대표 121경기[2] 24골 (독일 / 2004~2016)
<colcolor=#000000,#e5e5e5>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5px"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eeeeee,#191919> 가족 토비아스 슈바인슈타이거
아내 아나 이바노비치
아들 슬하 2남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주요 기록들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수훈5.4. 출전 기록
6. 슈바인슈타이거에 대한 말, 말, 말7. 여담
7.1. 흑역사
7.1.1. 파이터 기질
7.2. 소녀감성7.3. 동료와의 관계7.4. 축구 이외의 능력7.5. 외모7.6. WAGs

[clearfix]

1. 개요

독일 국적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3]였다.

2003년 프로 무대에 데뷔하여 바이에른 뮌헨에서 14년 동안 활약하며 2012-13 시즌 트레블을 비롯해 UCL 1회 우승과 분데스리가 8회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독일 대표팀에서도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에 기여하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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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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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레이 스타일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국가대표팀의 공격 방향, 템포 조절, 공수 밸런스를 책임졌던 중앙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다. 팀이 수비진영에서 공격을 만들어갈때는 최종수비라인까지 내려와 롱패스를 쏴주고, 상대 압박 밀도를 보고 공격 활로가 될 선수에게 볼배급을 해주며, 필요에 따라 자신이 상대 박스까지 침투해 골과 어시스트까지 쏟아냈다. 여기에 최정상급의 압박 능력까지 보유했다. 탈압박 능력은 모드리치나 이니에스타 급[4]까진 아니지만 한두명 정도 압박은 간단한 탈압박 스킬로 벗겨내 볼을 잘 간수했다.[5] 말 그대로 팀의 공수 밸런스를 책임지는 중원의 살림꾼으로, 특히 2010년대 초반 슈바인슈타이거의 전성기때는 슈바이니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인해 팀 클래스가 확연하게 차이나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1984년생으로 같은 해에 태어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아르연 로번 등과 함께 뛰어난 실력과 노안(...)을 적절히 겸비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창조성 넘치는 플레이와 뛰어난 드리블, 패스 능력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본래 왼쪽 윙어로 자주 뛰었지만 경기 중 기복이 심하고 스탯이나 쌓는 플레이를 일관하며 점점 계륵화되어갔으나 루이 판할이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한 2009-10 시즌에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이때부터 바이에른과 독일 중원의 핵심이 되었다. 특히 윙어로 오래 뛴 게 좋은 영향을 끼쳐서 안 그래도 많은 활동량으로 경기장의 중앙을 앞뒤로 뛰어다니는 건 물론 활동범위도 심히 넓어 공격, 수비시 중앙 측면 가리지 않고 단단하게 아우른다. 말 그대로 종횡을 가리지않고, 무진 뛰어다니며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 윙어일 때는 결코 빠르지는 않은 스피드의 한계 탓에 돌파를 잘 못했지만 그 대신 몸은 단단했는데, 중앙으로 오고 나서는 볼을 돌리는 와중에 상대의 위치나 바디밸런스 상태에 따라 한두 명 정도는 손쉽게 돌파 해내기도 한다.[6] 특히 강력한 중거리 슈팅 외에도 숨겨진 장점을 꼽자면 반대쪽 윙에서 올라오는 볼을 순식간에 돌아들어가며 잘라먹는 솜씨 하나는 월드클래스였다. 정말 경기를 보면 반대편에서 어느새 돌아들어온건지 어딘가에서 '번쩍' 나타나 (받아먹기로) 골을 넣으며 팀을 구해내는게 일상 다반사였다. 물론 그 정도의 판단력이나 결정력, 활동량도 뒷받침되었다는 얘기.

정확한 볼배급과 패스 센스, 수비력, 활동량, 대포알같은 중거리슛 모두 최상급이다. 허나 플레이에 기복이 있는데 다른 말로 하면 큰 경기에 약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다. 슈바이니의 합류 이후 바이에른이나 독일 대표팀이 공식 대회에서 중요한 순간 패배할 때는 항상 슈바이니가 제 기능을 못했고 그로 인한 균열이 경기력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7] 그렇다고 슈바이니가 결장하면 팀 벨런스가 아예 나락으로 치닫는데, 2011-12 시즌 슈바이니가 장기부상으로 이탈하자 토니 크로스아나톨리 티모슈크, 루이스 구스타보, 토마스 뮐러등은 모두 슈바이니의 공백을 메우는데 실패했고, 선두자리를 도르트문트에게 빼앗겼다. 이래저래 아쉬운 면이 있긴 하면서도 대체 불가능한 선수. 바이에른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시즌도 4강쯤 올라가면 슈바이니가 중심잡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곧 바이에른의 경기력이 회복되는데 걸리는 시간인 경우도 있었다. 도르트문트와의 결승전에서는 전반에 슈바이니가 압박에 시달리며 지워지자 바이에른의 경기력이 그야말로 시망이었는데, 점점 위치를 잡으며 압박을 벗겨내자 경기력이 서서히 살아났다.[8]

이런 큰 경기에서의 기복은 2012-13 시즌에 접어들면서 챔스 유벤투스바르셀로나전에서 맹활약하면서 거의 해소되었고, 최근에는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맹활약하며 큰 경기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줄, 감독이 꼭 필요로 하는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또 한 가지는 2011-12 시즌 막판과 UEFA 유로 2012에서의 부진에서 알 수 있듯 부상당해서 돌아오면 폼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린다는게 큰 단점이다. 이 점 때문에 클래스에 비해 전성기 기량이 하락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희한할 정도로 2년 주기 부상에 시달리는데, 격년 주기로 한창 폼이 오르다가 시즌 중반에 부상 당해서 침체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2013-14 시즌도 2011-12 시즌만큼이나 장기부상으로 떨어진 폼을 회복하는데 꽤나 애먹고 있는 실정. 게다가 펩 과르디올라 체제에서는 거의 세르히오 부스케츠같은 롤을 수행하다보니 이전 같이 본인이 빌드업 대부분을 책임지던 시절에 비해 양질의 패스 솜씨와 중거리슛도 보기 어려워졌다.

단점이 하나 더 있는데, 패널티킥이 약하다는 점이다. 2011-12 UCL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5번 주자로 나왔으나 실축해 이로인해 FC 바이에른 뮌헨은 챔스리그 우승을 했으며, 유로 2016 8강 역시 이탈리아 상대로 승부차기 실축을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독일이 탈락할뻔한 아찔한 순간을 맞이한 끝에 6-5로 겨우 이겼을 정도로 골키퍼와 1:1 상황에서 슈팅 능력이 부족하다.

2014년 이전에는 전천후 미드필더로서 공격지원과 볼배급, 중거리슈터 역할을 했다면 나이가 든 현재는 포백 바로 앞에 위치해 공격에 이따금씩 관여하긴 하지만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역할을 중점적으로 맡고 있다. 일단 팀이 짧은 패스 위주로 바뀌다보니 슈바이니의 롱패스가 크게 빛을 발할 일이 없어 필립 람토니 크로스가 대부분 볼배급을 담당하고 슈바이니는 가끔씩 롱패스나 중거리를 때릴 뿐 주로 포백 바로앞에서 진공청소기같은 역할을 하거나 순간적인 박스 침투로 마무리를 짓는 롤을 담당하고 있다. 뭔가 이전엔 중거리 잘때리는 전천후 미드필더였다가 2013-14시즌에 와서 공격->수비 위주로 역할변화를 한 이력은 뭔가 스티븐 제라드와 흡사하다. 특히 8강 프랑스전과 4강 브라질전은 이런 슈바이니의 수비형 미드필더로써의 능력을 유감없이 잘 보여줬다.

4. 주요 기록들

역대 스텟은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통산 기록은 500경기 출전 68골 101어시스트[9]를 올리고 있어 바이에른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치고는 꽤 스텟이 좋은 편인데, 물론 2009년 이전까지는 윙어로 뛰었다보니 어시스트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독일 국가대표 통산 기록은 (2016년 7월 기준) 120경기 출전 (A매치 최다 출전 4위 & 역대 5번째 센츄리 클럽) 24골 40어시스트이며, 그보다 많은 출전을 기록한 선수는 마테우스, 클로제, 포돌스키밖에 없다. 월드컵에서는 20경기에 출장했고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 총합 38경기에 출장하는 기록을 남겼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수훈

5.4. 출전 기록[13]

시즌 소속팀 리그 대륙 기타 총계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02/03 FC 바이에른 뮌헨 14 0 2 1 2 1 1 0 0 - - - 16 2 2
2003/04 26 4 5 4 0 0 3 0 0 - - - 33 4 5
2004/05 26 3 6 5 0 2 7 1 1 - - - 38 4 9
2005/06 30 3 3 5 0 2 7 0 3 - - - 42 3 8
2006/07 27 4 6 5 0 1 8 2 1 - - - 40 6 8
2007/08 30 1 9 6 1 0 12 0 3 - - - 48 2 12
2008/09 31 5 13 4 2 0 9 2 2 - - - 44 9 15
2009/10 33 2 2 4 1 1 12 0 0 - - - 49 3 3
2010/11 32 4 7 5 2 1 7 2 2 1 0 0 45 8 10
2011/12 22 3 3 3 1 0 11 1 2 - - - 36 5 5
2012/13 28 7 5 5 0 2 12 2 4 - - - 45 9 11
2013/14 23 4 5 4 1 0 8 3 0 1 0 0 36 8 5
2014/15 20 5 4 2 0 0 6 0 4 - - - 28 5 8
누적 342 45 69 55 10 9 103 13 22 2 0 0 500 68 100
시즌 소속팀 리그 대륙 기타 총계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15/1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8 1 1 3 0 0 10 0 1 - - - 31 1 2
2016/17 - - - 3 1 1 1 0 0 - - - 4 1 1
누적 18 1 1 6 1 1 11 0 1 - - - 35 2 3

6. 슈바인슈타이거에 대한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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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인슈타이거는 경이로운 선수다. 가장 효과적인 축구를 하고 있으며, 대표팀 내 최고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 프란츠 베켄바워
그는 나에게 로이 킨을 연상시킨다.
- 파트리크 비에라
내게 있어서 아주 위대한 선수다. 나는 그의 플레이를 좋아한다.
- 지네딘 지단
슈바인슈타이거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다. 그는 큰 경기에서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
- 올리버 칸
사비 에르난데스? 필요없다. 바이에른엔 슈바인슈타이거가 있지 않은가.
- 유프 하인케스
독일의 중심은 단연 슈바인슈타이거다. 그는 경기의 속도를 조율할 줄 아는 선수다. 그의 출장은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 토마스 헬머
독일은 슈바인슈타이거가 허리에 있을 때 최고의 안정성을 자랑한다.
- 주제 무리뉴
그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이다. 그러나 골프는 영 꽝이다.
- 토마스 뮐러
모든 사람들이 아는 바대로 슈바인슈타이거는 환상적인 선수다. 우리 팀에 합류한 후 그는 환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팀의 모든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처럼 경험이 많고 성공한 선수를 보유하는 것은 팀에 큰 도움이 된다.
- 웨인 루니
슈바인슈타이거는 세계 최고다. 그에게서 많은 점들은 배울 수 있다고 확신하다. 그는 항상 볼을 안전하게 소유하고 그의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미리 파악하고 있다.
- 안데르 에레라
슈바인슈타이거는 특별한 무언가를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그는 팀에 경험과 자신감을 가져다준다. 타이틀을 따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선수다.
- 알렉스 퍼거슨
그가 여자였었다면, 내가 그를 가졌을 것이다.[14]
- 루카스 포돌스키

7. 여담

파일:external/blogfiles.naver.net/tumblr_nothetMx6B1qgmhjro2_500.gif

7.1. 흑역사

7.1.1. 파이터 기질

파일:attachment/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Materazzi_fights_with_Schweinsteiger01.jpg
안그래도 분위기 안좋은데 거기에 기름을 붓는 마테라치. 삿대질하며 면전에 대놓고 욕하는 장면
파일:attachment/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Materazzi_fights_with_Schweinsteiger02.jpg
달려드는거 뿌리치고 최대한 자제하고 가려는데 3~4차례 연거푸 몸싸움을 거는 마테라치.
파일:attachment/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Materazzi_fights_with_Schweinsteiger03.jpg
그나마 예전에 한솥밥먹던 동료인 루시우가 와서 달래는 중이다. 해당 경기 VOD를 보면 경기 종료 직후 두 선수의 충돌이 나오는데, 확실히 슈바이니가 먼저 가만히 있는 마테라치에게 주먹을 휘두르기 위해 접근한 것이다. 둘 다 다행히도 직접적인 가격으로 징계를 먹진 않았지만 거의 폭발직전의 몸싸움까지 간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고, 옆에있던 필립 람과 라노키아가 재빨리 달려들어 갈라놓지 않았다면 진짜 싸웠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인터밀란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마테라치를 끌어냈고, 옆에있던 사무엘 에투와 전 바이에른 뮌헨 동료였던 루시우가 등을 감싸면서 슈바인슈타이거를 끌어냈다. 슈바이니는 곧바로 "(2006 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날린) 지네딘 지단의 심정이 어땠을지 완전히 이해했다"라며 맞받아쳤다. 반면 마테라치는 이에 대해 슈바인슈타이거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며, 그가 "바이에른 뮌헨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한 것에 대한 화풀이를 인터밀란에게 해야 한다."[33]라든지, "AC 밀란에서 뛰는 선수들이라면 좀 알지만, 인터밀란 선수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 그런데 바이에른과 레알 마드리드 CF는 챔스 결승에서는 단 1회도 만난 적 없다. 당시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맞붙은게 06/07 시즌으로, 바이에른 뮌헨이 이겼다. 최근에 레알에게 패해 탈락한 것도 03/04시즌 합계 1:2로 패한, 무려 7시즌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7.2. 소녀감성

전형적인 게르만 상남자의 포스를 뿜어내는, 군복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얼굴에다가 심지어 데뷔 초에는 은근히 다혈질인 것으로도 이름이 있덨던 슈바이니였다. 하지만 알고보면 원래 성격은 소녀감성인데 그 중 흑역사로 남은 일화는 아래와 같다.
파일:external/4.bp.blogspot.com/SIMPLY+BASTIAN.jpg

7.3. 동료와의 관계

7.4. 축구 이외의 능력

7.5. 외모

상당히 노안으로 유명하다. 위의 항목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알겠지만 유망주 시절부터 노안이었다. 그리고 "독일 사람" 이미지에 딱 맞는 선 굵고 무뚝뚝해보이는 외모가 특징이다.

파일:external/image.fmkorea.com/c0429068bae176097f9e8245152ddc88.jpg

중국에서 독일 국방군 병사 피규어에 슈바인슈타이거의 얼굴을 박아서 시판한 업체가 생겨서 이 업체와 소송이 붙었다.# 저 피규어의 이름조차 슈바인슈타이거의 이름을 본딴 바스틴이다.

7.6. WAGs

파일:external/media-cache-ec0.pinimg.com/eb74e974b386683bc45d3b4c03cdb00c.jpg

파일:external/liveloaded.com/30.-Sarah-Brandner-Bastien-Schwanstieger.jpg

파일:attachment/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sarahbrandner5.jpg

파일:슈바인슈타이거 부인.jpg

파일:슈바인슈타이거 부인1.jpg

파일:슈바인슈타이거 부인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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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우승 후 한 달 만에 세르비아의 테니스 선수 아나 이바노비치와 열애설이 터졌다. 뉴욕 근교에서 슈바이니-이바노비치 커플의 비밀 데이트가 포착됐다. 슈바인슈타이거는 2014년 8월, 이비자 섬에서 열린 자신의 생일 파티에 여자친구인 모델 사라 브란트너를 초대하지 않았다. 이 날 생일 파티는 네이마르와 패리스 힐튼이 참석해 더욱 유명해졌지만, 그의 애인 브란트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 슈바인슈타이거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하고 다음 참가자로 이바노비치를 지명하면서 떡밥을 던지더니 결국 그 떡밥이 풀린 셈이다. 이미 브란트너와 결별하고 이바노비치와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녀가 출전하는 윔블던 대회에 응원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정직하게 기사로 쓴 기자들은 제목에 낚인 수많은 팬들의 지탄을 받아야했으며 2016년 7월 12일에 결혼식을 올렸고 12월 28일 아나 이바노비치는 은퇴를 선언했다. 2018년 3월 시카고에서 아들을 출산했다.


[1]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2]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전 공동 4위[3] 커리어 초창기에는 윙어세컨드 스트라이커를 오가며 뛰었지만, 루이 판할의 포지션 변경으로 인해 이후부터는 아예 미드필더로 전향했다. 특히 중앙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유프 하인케스 체제의 4-2-3-1 포메이션에서 하비 마르티네스수비형 미드필더(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자주 출전했으며, 과르디올라 체제에서는 원볼란테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었었다. 이 포지션 변경이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월드클래스로 성장했다.[4] 사실 이 둘은 역대급 탈압박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받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이 둘과 비교하는건 조금 가혹할 수도 있다.[5] 흔히들 슈바이니를 과거 전형적인 독일스러운 투박한 스타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부드러움을 겸비했다.[6] 윙어 시절에는 닌자짓에 능했던 만큼 낮은 지점에서의 돌파나 간단한 탈압박 정도로 살짝 새겨들어야 한다.[7] 대표적인 예로 유로 2012 4강 이탈리아전 패배나 2010 남아공 월드컵 4강 스페인전의 패배가 있다. 슈바이니가 상대의 집중견제에 시달려 경기장에서 지워지면 팀은 거의 패배의 길을 걸었다.[8] 물론 유념해야 할 점은 이 경기에서 도르트문트의 압박도 거셌지만 슈바인슈타이거는 경기 직전 트레이닝에서 마리오 만주키치와의 충돌로 아킬레스건에 부상을 입은 채로 풀타임을 뛰었다.[9] 주요 3개 대회 외에도 슈퍼컵과 UEFA컵(현 UEFA 유로파 리그)까지 합산한 기록[10] 유로 2004에서도 3경기에 전부 출장했으나,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선 후반 23분경 교체 투입되었고 라트비아와의 경기에서도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바로 투입되었기에 주전으로 보기엔 쬐끔 무리가 있다.[11] 2013-14 시즌 7번째 포칼을 우승하며 개인통산 역대 최다 포칼 우승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6년 필립 람 역시 7회 우승을 기록하며 공동 1위. 참고로 슈바인슈타이거는 분데스리가를 우승한 시즌에 모두 포칼을 우승했다. 슈바이니의 독일 내 대회 우승은 모두 더블이었으나, 2014-15 시즌 4강에서 도르트문트를 만나 포칼에서 탈락하면서 이 기록은 깨졌다.[12] 독일 정부에서 주요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게 수여하는 가장 명예로운 훈장이다.[13] DFL-리가포칼은 2007년에 폐지, 2팀은 참여불가[14] 커플 드립이 많이 나오는 슈바이니답게 포돌스키가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다[15] 독일어로 "축구의 신(Fussballgott)"이라는 뜻으로 바이에른 선수들 입장하기 전 이름을 외쳐줄 때와(Mannschaftsaufstellung), 골넣고 이름 외쳐줄 때(Toransage) 바이에른 팬들이 슈바인슈타이거에게 오랫동안 뒤에 붙여주던 별명이다. 장내 아나운서의 선창에 팬들은 다른선수들의 경우 이름만 답해주는데, 슈바인슈타이거는 BASTIAN 외치면 관중들은 SCHWEINSTEIGER FUSSBALLGOTT! 하고 외쳐준다. 다른 선수는 없고 슈바인슈타이거만 저렇게 해준다. 그 정도로 뮌헨 팬들의 슈바인슈타이거를 향한 애정이 각별했다.[16] 2018년 8월 28일, 슈바인슈타이거가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전당에 등록되었는데, 그의 칭호가 바로 이것이다.[17] 언론이나 팬들은 슈바이니(Schweini)라고 많이 칭하지만 본인은 뭔가 돼지 같다며 별로라고 한다.(Das Schwein: 돼지) 그냥 돼지라는 의미만 가지고 있어도 어감이 별로이겠지만 독일어에서 schwein이라는 단어는 한국어에서 '개'와 같이 안좋은 의미의 접두사 및 욕설로 애용되는 단어이다. 그래서 자기 애칭을 바스티(Basti)로 불러주길 바란다고. 하지만 워낙 오랜시간 듣다보니 그냥 슈바이니로 굳어져 버렸다. 대한민국 팬들 한정으로는 바인타이거의 뭔가 독일스러운 슈를 두개 따서 슈슈라고들 많이 부른다.[18] 한국에서는 특유의 어감 때문인지 멋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으나 독일인들은 슈바인슈타이거를 들을 때 Schweinbesteiger(pig f***er라는 뜻)가 연상된다면서 별로 고상한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19] 독일 선수들은 원래 어린시절 데뷔할 때 달던 등번호를 끝까지 다는걸 선호하기도 한다.[20] UEFA 올해의 팀이야 전세계적인 팬 투표의 특성상 중앙 미드필더나 수비형 미드필더가 선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미드필더 4명이 공격형미드필더나 윙어로 채워지지만, 포지션별로 각 팀 주장/감독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FIFA FIFPro 월드 XI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뭐 각팀 주장/감독이 선정한다 해도 객관성이 떨어지고 인맥이 많이 작용하는건 마찬가지다.[21] 단 2010년은 저 세 선수가 가장 먼저 미드필더진에 거론되었고, 슈바인슈타이거가 선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 논란은 거의 없었다. 차비와 이니에스타는 클럽 커리어는 FC 바르셀로나라리가 우승만 있었지만 대신 국가대표 커리어에서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첫 월드컵 우승에 엄청난 기량과 퍼포먼스로 크게 일조하였고, 스네이더르는 클럽 커리어로서는 두 말할 필요없이 인터 밀란세리에 A 클럽 최초 트레블의 최대 공신 중 한 명이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엄청난 맹활약을 펼치며 네덜란드전승준 및 스네이더르 개인은 실버볼과 브론즈슈를 수상하였다. 이 세 선수가 2010년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서 슈바인슈타이거로서는 선정되기 더욱 어려웠을 것이고 이는 같은 해 UEFA 올해의 팀 선정에도 해당되는 부분이다.[22] 단 이는 슈바인슈타이거가 2013년 후반기에 부상으로 결장이 잦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뽑히기 어려웠다는 의견들도 있다.[23] 스티븐 제라드미하엘 발락처럼 맞고뒈져라슛을 구사하는건 아니지만 상당히 묵직하고 코스가 좋다.[24] 중거리슛은 답답한 상황을 풀어갈 열쇠가 될 수도 있지만 라인을 끌어올린 상황에서 한순간에 역습을 허용할 수 있고, 볼 소유권을 상대에게 넘겨줄 확률이 높아 볼점유율을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감독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25] 이전에 번역기를 돌리면 '돼지 교배시키는 사람'이라고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 뜻으로 알고있는 축구팬들도 많다. 이는 영어권도 마찬가지이다.[26] 다행히 이 경기는 마누엘 노이어의 선방으로 독일이 이겼다.[27] 2008-09 챔스 8강에서 메시의 대활약에 바이에른이 털린 경기가 있지만 당시 슈바이니는 부상으로 인해 후반 교체출장했으며, 2014-15 챔스 4강에서도 MSN의 바르셀로나에게 완패했다.[28] 다만, 당시 메시는 햄스트링 부상 중이었다. PSG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에서도 팀을 구원하기 위해 교체로 투입되는 등, 이전부터 부상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용되는 중이었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의해 탈락한 후 이어진 빌바오와의 프리메라 리가에서, 또 다시 교체 투입되었다.[29] 하지만 불행히도 슈바인슈타이거는 카잔의 치욕이 일어나기 전 오히려 박한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이유는 바로 필립 람의 존재와 2014년 월드컵 우승 이 후 유로 2016까지 당시 독일의 기대이하 행보 때문이다. 알다시피 필립 람은 2014년 월드컵 직후 국대에 은퇴 했는데 이 후 독일은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질 못했고 유로 2016에서 4강에 그치자 많은 팬들은 필립 람만 있었어도 우승했다. 라며 슈슈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했지만 카잔의 치욕 이후엔 슈슈 덕분에 그래도 유로 2016에 4강까지 갈 수 있었다. 라며 재평가를 한 것.[30] 다만 이 부분은 17-18 시즌 분데스리가 평점 1위 라스 벤더를 안 뽑은 뢰프 감독의 실책이 크다.[31] 21/22 시즌 바이에른 뮌헨이 홈에서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현장에도 있었다. ESPN과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토마스 뮐러뱅자맹 파바르에게 맥주 세례를 당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이후 뮐러를 붙잡고 “내가 그거 하지 말라고 했지! 두번이나!” 라고 말했다. 이후 같이 맥주를 맞은 인터뷰어가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그럴줄 알고 여벌 옷을 챙겨왔다고 대답했다. 이후 트위터에 “뮐러가 뮐러했다.” 라고 올렸다.[32] 마테라치는 슈바이니가 경기전에 "레알에게 패한 것을 인터밀란을 박살냄으로써 분풀이해야 한다."라고 언플로 먼저 시비를 건 것이라고 하는데, 참고로 슈바이니의 데뷔시즌인 02/03시즌 레알에게 원정다득점으로 8강에서 탈락했지만 그건 10년 전 얘기인데다 슈바이니는 출장도 안했고, 06-07시즌 16강에서는 로이 마카이의 10.5초골을 앞세운 원정다득점으로 바이에른 뮌헨이 이겼다. 2010년 프리시즌 베켄바워컵에서는 0대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레알이 이겼지만, 역시 이 경기는 자선경기여서 경기 분위기도 라이벌 매치가 아닌 친선경기 분위기였고, 바이에른은 1.5군이 나왔으며 슈바이니는 출장도 안했다. 즉 되도않는 핑계로 시비를 건것이다.[33] 왜 하필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복수가 생뚱맞게 인터밀란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겠지만, 슈바인슈타이거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이탈리아인들처럼 축구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물론 이건 마테라치의 주장이다.[34] 더군다나 지난 대회 8강에서도 경기 후 올리버 비어호프 코치가 독일 선수들에게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독일어를 못 알아 들으니까 독일어로 맘껏 욕해도 된다.' 라고 했지만 독일계 아르헨티나인 선수였던 가브리엘 에인세가 이 말을 듣고 한 바탕 충돌이 일어났었다. 그리고 4강에 오른 독일은 이탈리아에게 패배하면서 3, 4위전으로 갔다.[35] 또 이것 때문에 슈슈에 대한 선수의 평가도 떨어지게 된 원인이었다. 대표적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4강에서 독일은 스페인에게 무기력하게 패했는데 사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제일 잘한 선수가 슈슈였다. 문제는 이 짓거리 때문에 당시 국내 독일팬덤에선 저 놈 대신 발락이 있었으면 독일이 스페인 꺾었음 이라며 대차게 슈슈를 까버렸다.[41] 또 11-12 UCL 에서의 충격의 준우승을 당하자 그렇게 이빨 까더니 쌤통이다 라며 오히려 뮌헨 팬덤에서도 슈슈를 까기에 바빴고, 또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2010년대 초 독일 축구의 황금기는 Only 필립 람 존재 덕분 이라며 슈슈에 대해선 아오안 취급을 하는 등 그동안 밉보인 행동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가혹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나마 11-12 시즌 이 후 이러한 어그로를 자제한 덕분에 이 후에 슈슈의 이미지는 좋아졌지만, 슈슈의 어그로를 기억하는 올드팬들은 아직도 슈슈를 곱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본다.[36] 보루센 개xx쯤 되는 욕이 포함됨[37] 근데 이 항목과 관계없는 얘기이긴 하지만 그로스크로이츠는 월드컵 데뷔전 기회가 슈바인스타이거때문에 무산된 바가 있다. 연장 후반 슈바이니가 아게로와의 충돌로 출혈이 있었고, 요아힘 뢰프가 그로스크로이츠와 교체하려했으나 본인이 끝끝내 뛰겠다고 요청해 마취도 없이 즉석으로 찢어진 안면 부위를 꿰메고 복귀하는 투혼을 보여줬기 때문이다.[38] 그러나 슈바이니의 국대 데뷔 이후 발락의 간접프리킥 롤은 슈바이니가 가로챘다. 이유는 발락의 헤더 능력이 워낙 좋기 때문이다.[39] 이 와중에 여자친구의 테니스 경기를 보러가는 등의 구설수도 있었다.[40] 독일인들은 전반적으로 영어를 잘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