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7:49

박건우/선수 경력/두산 베어스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박건우/선수 경력
박건우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4.svg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5.svg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6.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5 2016 2019

파일:PLAYERS_CHOICE_AWARDS_LOGO_1.png2016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기량발전상
}}} ||
박건우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두산 베어스 등번호 15번
윤석민
(2004~2008)
<colbgcolor=#ed1c24> 박건우
(2009~2010)
안규영
(2011)
두산 베어스 등번호 56번
이현호
(2012)
박건우
(2013~2014)
허준혁
(2015~2016)
두산 베어스 등번호 37번
허준혁
(2014)
박건우
(2015~2021)
김대한
(2022~)
}}} ||

1. 개요2. 두산 베어스 3. 두산에서의 기록

1. 개요

NC 다이노스 소속 외야수 박건우두산 베어스 시절 경력을 서술한 문서. 200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 베어스에 2차 2라운드 전체 10순위로 입단해, 경찰 야구단 복무 기간을 포함한 2021년 NC로 이적하기 전까지 13여년간 두산에서 뛰었다.

2. 두산 베어스

2.1. 2009~2012 시즌

파일:20130430PKW.jpg

야수로서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 두산 베어스가 2009년 2차 지명 2라운드에서 지명하였다. 입단 이후 퓨처스리그에서 상당한 활약을 보이면서 자주 올스타에도 뽑혔지만, 워낙 두산이 탄탄한 탓에 자주 기회를 잡지는 못했다. 동기인 정수빈이 주루와 수비라는 특화된 툴을 바탕으로 먼저 기회를 얻는 데 성공했다면, 박건우는 특화된 툴은 없고 골고루 잘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2군에서 미래를 생각하여 전략적으로 키우던 선수 중 하나였다.

2010 시즌 후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여 2012년에 제대하여 두산 베어스에 복귀하였다.

2.2. 2013 시즌

2013 시즌 시범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으나, 두산 베어스의 두터운 야수진에 밀려서 1군에 자리를 잡는데는 실패했다. 그래도 데뷔 첫 홈런을 쏘아올리는 등[1] 나름의 가능성은 보여주었다. 퓨처스리그 최고의 외야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종욱NC 다이노스로 이적한 이상 2014 시즌에 주전급 선수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2.3. 2014 시즌

2014년 4월 2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부상을 입어서 5월 7일 퓨처스리그 경기에 출장했다. 장민석을 올려야 될만큼 1군에 외야진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라 팬들은 박건우의 빠른 귀환을 바라고 있다. 그렇게 회복 후 퓨처스서 조율을 하다 5월 24일 1군에 등록되었다. 내려간 선수는 김진형. 이후 한번 더 내려갔고 6월 27일에 외야수 보강을 위해 고영민을 대신해 다시 등록되었다.[2][3]

파일:external/lh6.googleusercontent.com/20140812.gif
2014년 8월 12일 한화전에서 공을 잡고 더듬다가 공이 익사이팅존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심판진은 3루타로 인정. 베어스포티비에서 밝히기로는 글러브에 들어간 공을 빼고 공을 던지려는데 공이 관중석에서 떨어져서 팬분이 공을 다시 주워주셨다고 밝혔다. 저날 쓴 글러브가 딱딱했다고 한다.

2.4. 2015 시즌

파일:건우15코시1.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건우/선수 경력/2015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전반기 2군을 폭격하며 1군으로 콜업되었고 이후 슈퍼백업으로 활약하며 두산의 V4 달성에 숨은 공헌을 했다.

2.5. 2016 시즌

파일:2016060501098_0.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건우/선수 경력/2016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이제는 확실한 두산의 리드오프로 각성했고 팀 선배를 잇는 건더레의 탄생을 알렸다. 다만 아쉽게 20-20 클럽을 놓쳤다.

2.6. 2017 시즌

파일:DLB0fDVVwAIy6Yc.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건우/선수 경력/2017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시즌 초 역대급 부진을 털어내고 리그 최고의 외야수로 발돋움하며 베어스 최초 20-20 클럽, 21세기 KBO 리그 중견수 OPS 1위, 2010년대 우타 외야수 WAR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는 부진했고 기자들의 석연치 않은 투표로 골든글러브는 수상하지 못했다.

2.7. 2018 시즌

파일:건우18코시1.jpg
2018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또 한 번 범타로 물러나고 괴로워하는 박건우를 위로해주는 동료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건우/선수 경력/2018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작년에 비하면 많이 아쉽지만 정규시즌 내내 클러치능력이 필요할 때마다 빛을 발했다. 그러나 2018년 한국시리즈를 완전히 말아먹어버리며[4], 자신에게는 최악의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2.8. 2019 시즌

파일:19박건우.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건우/선수 경력/2019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시즌 초엔 3번타자로 시작했지만 후반부터 새로운 베어스의 1번타자로 나섰다.

한국시리즈에서 걱정했던 팬들이 많았으나 2차전의 끝내기 안타, 3차전의 쐐기포 등 나름대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작년의 악몽을 어느 정도 지웠다.

2.9. 2020 시즌

파일:20201013박건우.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건우/선수 경력/2020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주로 리드오프로 출장했다. 시즌 내내 무릎 부상으로 고생하며 타율이 한때 2할 후반대로 내려갔으나, 특유의 몰아치기로 3할 고지에 다시 올라섰다. 5년 연속 3할 타율을 달성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부진하면서 2년 전의 아픔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2.10. 2021 시즌

파일:20211102박건우.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건우/선수 경력/2021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홈런 수가 급감하며 3번 타자로서의 펀치력은 부족했지만, 리그 5위의 타율(0.325)을 기록하며 3번 타자에게 어울리는 컨택 능력을 선보였다.[5]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은 여전히 완벽하게 떨쳐내지 못한 채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감하였다.[6] 또 이 시즌이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2.11. FA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건우/선수 경력/FA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두산에서의 기록

두산에서의 기록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9 두산 5 5 .200 1 0 0 0 0 1 0 0 .200 .200
2010 1군 기록 없음
2011 군복무 (경찰 야구단)
2012
2013 34 48 .271 13 1 0 1 7 12 2 2 .300 .354
2014 47 61 .180 11 4 1 0 3 7 1 4 .231 .279
2015 70 158 .342 54 12 0 5 26 31 2 15 .399 .513
2016 132 484 .335 162 36 4 20 83 95 17 47 .390 .550
2017 131 483 .366
(2위)
177 40
(2위)
2 20 78 91 20
(5위)
51 .424 .582
2018 125 488 .326 159 24 6 12 84 79 7 38 .373 .473
2019 127 458 .319 146 27 5 10 64 83 12 67 .397 .465
2020 129 487 .304 148 40
(4위)
0 14 70 103 8 54 .369 .472
2021 126 458 .325
(5위)
149 31
(5위)
2 6 63 82 13 61 .400 .441
KBO 통산
(10시즌)
926 3130 .326
(3위)
1020 215 20 88 478 584 82 339 .388 .492


[1] 4월 27일 경기 #[2] 그리고 그날 열린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인사이드 파크 모텔을 세웠다.[3] 기록상 2루타+실책이다.[4] 6경기에서 26아웃 0타점을 만들었는데, SK 와이번스의 6경기 8.2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한국시리즈 최고의 불펜투수라는 비아냥을 받았다.[5] 원래 3번이었던 오재일과 최주환이 타팀으로 이적하면서, 1번이었던 박건우가 3번으로 이동하고 허경민과 정수빈이 주로 리드오프를 맡았다.[6] 한국시리즈 4차전이 되어서야 3안타로 맹활약했으나, 이미 늦은 활약이었고 팀은 결국 스윕당하며 또다시 준우승에 그쳤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81
, 2.1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81 (이전 역사)
문서의 r181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