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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8-02 13:13:54

박순석(독립운동가)



1. 구미시 출신 독립운동가, 朴順石2. 무산군 출신 독립운동가, 朴舜錫

1. 구미시 출신 독립운동가, 朴順石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밀양 박씨[1]
출생 1895년 6월 29일
대구부 인동군 읍내면 진평동
(現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2]
사망 1958년 5월 28일[3]
상훈 대통령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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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석(朴順石)은 1895년 6월 29일 대구부 인동군 읍내면(現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2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이상백·이내성 등과 함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한 후 3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고, 2차로 3월 14일에는 약목면 장날에 2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다시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58년 5월 28일 별세했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2. 무산군 출신 독립운동가, 朴舜錫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밀양 박씨
출생 미상
함경도 무산도호부 하동면 일동[4][5]
(현 함경북도 무산군 강선로동자구)
사망 미상
상훈 대통령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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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석(朴舜錫)은 함경도 무산도호부 하동면 일동 출신이라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생년월일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길림성 연길도(延吉道) 화룡현(和龍縣)[6] 부숭(敷崇)에 살았다.

그는 1920년 음력 2월 길림성 화룡현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고, 같은 해 4월 20일경 조선독립단 단원 한창준 등과 함께 무산군 서하면에 거주하는 박제남의 집을 방문하여 서하면 면민들에게 7월 10일까지 군자금 제공을 권유하였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어 일제 관헌에 체포되었다.

1921년 1월 2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언도받고 곧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3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취하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201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2] 인근의 옥계동과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김성윤·박근술·박명언·박명출·박봉술·박삼봉·이내성·이범성·이상백·이영래·이윤약도 이 마을 출신이다.[3] 5월 8일에 별세했다는 기록도 있다.#[4] 구한말 무산군 하동면 일동·이동·삼동·사동·오동·육동·칠동·팔동·구동 → 1914년 무산군 동면 강선동 → 1949년 무산군 동면 강선리 →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무산군 강선리 → 1977년 11월 청진시 무산군 강선리 → 1979년 청진시 무산군 강선로동자구 → 1985년 7월 함경북도 무산군 강선로동자구.[5] 인근의 풍산리·차유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6]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화룡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