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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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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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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8.svg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9.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6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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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타자 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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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82 1983 1984 1985 1986
신설 전 양세종
OB 베어스
김용희
롯데 자이언츠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rowcolor=#d0ad67> 1987 1988 1989 1990 1991
유승안
빙그레 이글스
김용철
롯데 자이언츠
박철우
해태 타이거즈
박승호
삼성 라이온즈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rowcolor=#d0ad67> 1992 1993 1994 1995 1996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김형석
OB 베어스
박재용
해태 타이거즈
<rowcolor=#d0ad67> 1997 1998 1999 2000 2001
박재용
해태 타이거즈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로마이어
한화 이글스
우즈
두산 베어스
양준혁
LG 트윈스
<rowcolor=#d0ad67> 2002 2003 2004 2005 2006
마해영
삼성 라이온즈
김동주
두산 베어스
김기태
SK 와이번스
김재현
SK 와이번스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rowcolor=#d0ad67> 2007 2008 2009 2010 2011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홍성흔
두산 베어스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rowcolor=#d0ad67> 2012 2013 2014 2015 2016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이병규
LG 트윈스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김태균
한화 이글스
<rowcolor=#d0ad67> 2017 2018 2019 2020 2021
박용택
LG 트윈스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페르난데스
두산 베어스
최형우
KIA 타이거즈
양의지
NC 다이노스
<rowcolor=#d0ad67> 2022 2023 2024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손아섭
NC 다이노스
최형우
KIA 타이거즈
}}}}}}}}} ||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8번
한대화
(1986~1993)
<colbgcolor=#000> 박재용
(1994~1999.4.15.)
양현석
(2000~2001.5.30.)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27번
오봉옥
(1999~1999.4.15.)
박재용
(1999.4.16.~1999)
팀 해체
SK 와이번스 등번호 27번
팀 창단 박재용
(2000)
오승준
(2001)
KIA 타이거즈 등번호 88번
박철우
(2012~2013)
<colcolor=#fff> 박재용
(2014~2018)
정성훈
(2019~202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89번
김동우
(2018)
박재용
(2019)

(2020~2023)
}}} ||
파일:박재용.png
박재용
朴載容 | Park Jae-Yong
출생 1969년 6월 16일 ([age(1969-06-16)]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용마초 - 신일중 - 신일고 - 단국대[1]
포지션 외야수, 지명타자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92년 2차 2라운드 (전체 17번, 해태)
1994년 2차 3라운드 (전체 25번, 해태)
소속팀 포스콘 야구단 (1992~1993)
해태 타이거즈 (1994~1999)
쌍방울 레이더스 (1999)
SK 와이번스 (2000)
지도자 중앙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05)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07)
광주진흥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09)
한민학교 야구부 코치 (2010~2011)
경찰 야구단 타격코치 (2013)
KIA 타이거즈 3군 타격코치 (2014~2015)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2016~2018)
롯데 자이언츠 잔류군 타격코치 (2019)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9)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경력2.3. 한국시리즈의 사나이
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해태 타이거즈,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 야구선수이자 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코치.

1992년도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았음에도 포스틸 야구단에서 2년을 보냈다. 그런데 박철우가 떠난 해태에서 그토록 좌타자 갈증을 느끼던 김응용에 의해서 다시 94년에 2차 지명을 받았다.[2] 본인 말에 의하면 입단 당시에 좌타자가 자신 빼고 거의 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한 팀에서 2차 지명을 2번 받은 대단한 케이스. 통산기록은 박철우보다 약간 뒤쳐질 정도로 그럭저럭 평범하지만, 박철우와 마찬가지로 해태에서 청량감을 주던 선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사실 프로 선수는커녕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몸이었다. 인터뷰를 할 때면 기자의 입술을 보고서 느릿느릿 억양 없이 말을 할 정도로 중증의 난청을 가지고 있었고,[3][4] 발도 느려서 수비가 불가능한 선수였다.[5] 그러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대신 집중력이 뛰어나 단국대 시절 팀의 붙박이 4번타자로 활약하며 국가대표 상비군에 항상 이름을 올렸다.

2.2. 프로 경력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수상자 (1996, 1997)
파일:attachment/punctum_287885_41601990_1.jpg

좌타자 품귀에 시달리던 해태 타이거즈는 박철우의 후계자로 낙점하고 실업리그에서 뛰던 그를 다시 2차 3라운드에 지명했다. 등번호는 한대화가 LG로 건너간 직후 입단해서 8번을 달았다.

1997년 6월 29일 LG와의 잠실 경기[6]에서 이상훈을 상대로, 9회초에 4:6로 지고 있는 상황에 극적인 역전 만루홈런을 치는 장면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7] 또한 1996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대 2로 맞선 2회말 현대 투수 위재영을 상대로 역전 솔로홈런을 치며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8] 6차전에서 결승 득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쳐 두 차례 우승 반지를 끼고(1996년, 1997년), 두 차례 지명타자 부분 KBO 골든글러브를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지명타자 입후보 기준이 300타석 이상에 2할 5푼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선수였기 때문에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첫 지명타자 부분 수상자였던 그를 두고서 PC통신 상에서는 우승팀 보정이라고 까였다.

골든글러브 수상은 약간의 행운도 따랐다. 1996년에 타율 0.246, 4홈런, 37타점으로 수상했는데, 지금이면 말도 안 되는 성적이지만 양준혁, 김기태 같은 유력 후보들은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했고 그 당시 경쟁 후보였던 윤덕규의 성적이 타율 0.267, 5홈런, 23타점이니까 우승팀 버프 + 타점을 감안하면 못 받을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장타율이나 출루율은 박재용이 더 우위에 있기도 했고.[9] 그리고 1997년도 마찬가지인데, 박재용은 이 해 94경기에 나와 타율 0.245, 7홈런, 33타점을 기록했고, 역시 지금이라면 지명타자의 성적이 아니지만, 경쟁자인 허문회가 81경기에 나와 타율 0.272, 3홈런, 14타점이었고, 이정훈이 92경기에 나와 타율 0.237, 2홈런, 33타점, 윤덕규가 101경기에 나와 타율 0.239, 5홈런, 17타점으로 그 중에서는 그나마 박재용이 가장 나았다.[10]

1998년 개막전에서 우익수로 선발출장하여 4회초 김동주의 홈런 타구를 잡아내는 보기드문 호수비를 보였다. 하지만 수비가 불가능에 가까워 코너 외야수 위주로 올라왔던데다가 타격마저 내리막을 탔다. 이런 상황에서 좌타자인 장성호의 성장과 임창용 트레이드 때 넘어온 양준혁의 영입 이후 완전히 기회를 잃고 만다. 그래서 1999년 오봉옥 + 박계원을 쌍방울에서 받아올 때 송구홍과 같이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되었고[11][12], 2000 시즌 종료 후 SK 와이번스 구단에서 쌍방울 레이더스 출신 선수들을 대거 방출할 때 김성래, 심성보, 박정현, 강병규 등과 같이 방출되며 은퇴하였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얼마만큼 뛰어넘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던 선수였다.

2.3. 한국시리즈의 사나이

표본이 약간 작지만 96~97 한국시리즈에서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번의 한국시리즈에서 3/4/5의 몬스터급 활약을 보여주면서 팀의 2연패에 크게 공헌한 타자이다. 실제로 93~97 누적 한국시리즈 한정 가장 높은 wrc+(174.9)를 기록했다. 96년에는 이강철이 2승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가장 유력한 mvp 후보가 박재용이었고, 95년 단 한해만 기록한 ob의 김민호이명수를 능가한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중앙고, 신일고, 진흥고, 한민학교 등 아마야구계에서 코치로 활동하다 2013년 동봉철의 후임으로 경찰 야구단의 타격코치를 맡았다. 경찰팀은 퓨처스리그에 참가했기 때문에, 이것이 그에게는 사실상의 첫 프로야구팀 코치 경력인 셈이었다.
파일:tigers_co_kr_20171016_135208.jpg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2014 시즌을 앞둔 2013년 10월 17일,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의 3군 타격코치로 임명되었다. 2016 시즌에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을 이동하였고 2년간 2군에서 타격코치를 맡았다. 특별히 유망주가 많지 않았던 팜 특성상 2~3군에서 도드라지게 누굴 키워내지는 못했으나, 그렇다고 특별히 누구를 망쳐놨다거나 하는 단점도 두드러지지 않는 장점도 단점도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코치였다는 평.

2018시즌 이후 재계약에 실패했고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잔류군 타격코치로 임명되며 동의대 감독으로 빠진 정보명의 공백을 채웠다. 5월 말 갑작스레 훌리오 프랑코 코치와 보직을 맞바꾸어 2군으로 갔고 다시 1년만에 롯데를 떠났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94 해태 72 .259 56 10 1 0 27 23 0 7 0 39 .278 .315 .592
1995 83 .284 60 11 3 3 29 18 1 30 3 40 .375 .408 .783
1996 115 .246 80 12 3 4 37 35 2 26 8 61 .316 .338 .654
1997 94 .245 72 15 0 7 33 40 1 25 7 55 .318 .367 .685
1998 81 .220 46 10 0 6 31 19 0 15 4 20 .284 .354 .638
<rowcolor=#000>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99 해태 / 쌍방울 95 .233 69 16 1 3 36 31 8 26 2 57 .298 .324 .622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0 SK 6 .182 2 0 0 0 2 1 0 1 1 4 .308 .182 .490
KBO 통산
(7시즌)
546 .246 385 74 8 23 195 167 12 130 25 276 .312 .348 .660

5. 여담

6. 관련 문서


[1] 1988학번[2]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하여 술회한 바에 따르면 해태에서 경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실업야구팀인 포스틸 야구단으로 갔다고 한다. 그러자 2년 후 다시 해태에서 지명을 받자 해태에서 나를 진심으로 원하나보다 생각하고 해태에 입단하게 되었다고 한다.[3] NPB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투수 이시이 유야도 난청인데,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으며 등판 시 스위치를 끈다.[4] 후술하겠지만 중증 난청이었지만 청각장애까지는 아니었다고 한다. 요즘도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한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한다.[5] 당시 해태는 수비 실책이나 주루 미스를 범했을 때 5만 원씩의 벌금을 냈는데, 그는 매년 200만 원 씩을 김응용 감독에게 기부했다고 한다.[6] 이 경기에서 김응용 감독 참외 사건이 일어났다.[7] 그러나 9회말 김동수의 끝내기 안타로 재역전에 성공한 LG의 9:8 승리로 끝나면서, 박재용의 홈런은 빛이 바랬다. 이 경기는 LG의 팀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명승부들 가운데 하나로 회자된다.[8]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해서 경기 전에 이순철이 위재영의 구질을 알려줬는데 그게 적중이 되었다고 한다.[9] 거꾸로 현대가 96년에 우승했더라면 윤덕규가 받을 수도 있었다.[10] 박재용 본인도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밝히길, 우승 프리미엄 외에도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 했으며, 골든글러브를 받고 핸드폰과 야구용품권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11] 사실 둘 다 모기업이 부도나서 상황이 나빴는데, 그나마 KBO에 의해 위탁운영이 이뤄지던 쌍방울보다 해태 쪽의 사정이 그나마 더 나았다.[12] 해태는 당시 이대진이강철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김상진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투수진이 박살난 상황이었고 결국 오봉옥을 영입하여 공백을 채웠다. 또한 김종국이 부상당하면서 유격수 자리가 비게 되었는데, 그나마 있던 송구홍이 센터라인 수비가 불가능하자 박재용과 묶어 송구홍을 쌍방울로 보내고 수비가 좋던 박계원을 영입했다. 반면 쌍방울은 당시 김기태가 삼성에 트레이드되고 심성보는 당뇨병 투병을 시작한 터라 좌타라인의 공격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었다. 얼추 두 구단의 가려운 곳에 맞았던 것.[13] 박재용과 비슷한 사례로 이상화가 등장하기 전인 1994년까지 대한민국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던 유선희 선수가 있다. 당시 유선희는 이상화 이전에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한민국 여성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으나 동시대에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던 미국의 '보니 블레어'의 그늘에 가려 국제대회에서 우승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올림픽에서도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5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다. 하지만 이 기록은 이상화 이전에 대한민국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이 올림픽에서 남긴 최고 순위였다.[14] 프로 지명을 거부하고 포스코에서 2년을 보내서 프로 입단은 1년이 늦지만 박재용이 88학번으로 89학번인 이종범의 1년 선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