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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8:00:34

방앗간



1. 개요2. 동력과 역할3. 중세 유럽에서4. 매체에서5. 여타 '-' 류 시설6. 여담

1. 개요

방앗간(mill)은 방아를 이용해 곡식을 짓빻아 가루로 내는 시설이다.

2. 동력과 역할

재래식 방아는 인력(디딜방아)·우마력(연자방아)·수력(물레방앗간풍력(풍차) 등을 주로 사용했으나, 오늘날에는 전기로 가동하는 현대식 분쇄기가 많이 쓰인다.

곡식뿐만 아니라 고춧가루를 빻고 각종 기름류를 짜내기도 하며 그 자리에서 떡을 뽑아주기도 한다. 아예 방앗간에서 쌀집, 기름집, 떡집을 겸업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기름만 짜내는 기름집들이 따로 있었지만 요즘은 방앗간과 기름집 모두 수요가 줄어들면서 합쳐진 경우가 많다.

3. 중세 유럽에서

동아시아 같은 문화권에서는 , 참기름, 콩가루 같은 보조 식품을 생산하는 시설이었지만 문화권에서는 매우 핵심적인 시설이었다. 밀은 낱알을 바로 먹기 어렵고 가루를 내어 반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앗간을 거쳐야 했고, 중세 유럽에서 방앗간은 영주 직속 기관으로서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모든 영민들은 의무적으로 방앗간에 이용료를 내고 곡물을 빻아야 했으며, 이 이용료는 고스란히 영주의 수입이 되었다.

그리고 방앗간지기는 별도의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영민들이 맡긴 곡물 중 일부를 적당히 자기 몫으로 떼어먹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관행이었다.[1] 곡물은 특성상 탈곡할 때 한 차례 양이 줄고, 제분을 하면 남은 양이 다시 줄어들기 때문에 따로 빼돌리지 않아도 방앗간에서 들어가는 양과 나오는 양이 크게 차이나게 된다. 이 점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기 딱 좋았던 것.

영민들은 이 이용료에 방앗간지기의 떼어먹기까지 더해지자 손실을 덜기 위해 맷돌 같은 대체재를 이용했지만, 방앗간지기는 이런 불법 기구들을 적발해 영주에게 신고하는 역할도 담당해야 했다.

그래서 중세 유럽에서 방앗간은 지탄의 대상이었으며, 장물에 손을 댄다는 식의 불명예스럽고 사실무근의 소문이 돌았다. 가령 방앗간지기는 손바닥에 여섯 번째 손가락이 달려서, 곡물가루를 훔친다는 등의 풍문이 존재했다. 방앗간지기에 대한 이런 악감정은 고대 로마라고 다를 것이 없어서 로마의 권력자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그의 정적인 옥타비아누스의 조상이 빵집을 운영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추접하고 비열한 사기꾼의 후손이라고 비난하는 악선전을 퍼부었다.[2]

전쟁 중에도 방앗간은 주요한 시설이었다. 군량미밀가루를 가져가기도 했지만 밀을 가져가서 현지에서 빻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 특수부대 작전을 다룬 유발 하라리의 "대담한 작전"에서는 프랑스 측 특수부대가 신성 로마 제국 주둔지에 침투해 방앗간을 파괴하는 일화가 소개된다.[3]

4. 매체에서

5. 여타 '-' 류 시설

한국어에는 '-간'() 류의 시설 명칭이 몇 개 더 있다. 이들 단어는 모두 사잇소리가 들어가 [깐]으로 발음되지만 앞 글자에 받침이 있거나 한자어인 등으로 사이시옷이 표기되지 않을 때가 많다.

6. 여담

토속적인 느낌을 가져오기 위해 이 단어를 상호를 짓는 데 활용하는 음식점도 가끔 볼 수 있다. 특히 떡을 만들어 파는 떡집에서는 '떡방앗간'이란 표현을 상호에 쓰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친다"라는 말이 있다. 곡식이 항시 비축된 곳이므로 참새 같이 곡식 낱알을 주로 먹는 동물로서는 100%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이니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그런 것처럼 엄청 좋아하는 곳은 그냥 지나치고 못 배긴다는 뜻으로 비유되어 쓰인다.
[1] 전근대 한국에서는 푸줏간이 이런 식으로 고기를 빼돌린다는 소문의 대상이 되었다.[2] 출처: 가루전쟁/ 도현신 지음/ 이다북스/ 155쪽[3] 이 역시 방앗간이 그다지 핵심 시설이 아니었던 동아시아에서는 남의 진지에 몰래 진입하기까지 해갖고서는 고작 방앗간만 부수고 돌아간다는 것이 언뜻 보기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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