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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베냐민 간츠 בבִּנְיָמִין גַּנץ |Benjamin Gantz | |||
<colbgcolor=#ececec><colcolor=#0038b8> 출생 | 1959년 6월 9일 ([age(1959-06-09)]세) | ||
이스라엘 크파르 아힘 | |||
재임기간 | 초대 교대 총리[1] | ||
2020년 5월 17일 ~ 2021년 6월 13일 | |||
제21대 국방부 장관 | |||
2020년 5월 17일 ~ 2022년 12월 29일 | |||
무임소장관 | |||
2023년 10월 12일 ~ 2024년 6월 9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ececec><colcolor=#0038b8> 배우자 | 레비탈 간츠 | |
자녀 | 슬하 4명 | ||
학력 | 텔아비브 대학교 (역사학 / B.A.) 하이파 대학교 (정치과학 / M.A.) 미국 국방대학교 (국가 자원 관리 / M.A.) | ||
종교 | 유대교 | ||
정당 | |||
지역구 | 비례대표 | ||
군사 경력 | |||
복무 | 이스라엘 육군 | ||
1977년 ~ 2015년 | |||
최종 계급 | 중장 (이스라엘 육군) | ||
소속 | 제35공수여단 (공수부대) | ||
참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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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스라엘의 군인으로 20대 이스라엘군 총참모장[2]으로, 계급은 중장이다.[3]총참모장 임기만료 후에는 정치에 뛰어들어 2년 넘게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했었다.
2. 생애
1959년 6월 9일 크파르 아힘(Kfar Ahim)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아버지는 당시에는 루마니아 땅이었던 소바타 출신으로 역시 헝가리계 유대인이다. 참고로 아버지의 고향은 지금은 우크라이나 땅이다.1977년 이스라엘군 사병으로 징병되었고 공수여단에서 공수부대원으로 근무했다.[4] 1979년에는 사관후보생 과정을 거쳐 육군 장교로 임관하였다.[5] 육군 출신이지만, 공군의 특수부대인 샬다그 부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공수여단장, 북부사령부 예비군사단장, 레바논연락단장, 유다-사마리아사단장을 거쳐 2001년에 이스라엘 육군 북부사령관이 되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총참모차장을 지냈다.
2011년 2월 5일에 국방장관 에후드 바라크(Ehud Barak)가 그가 20대 총참모장이 될 것이라 밝혔고 2월 14일에 취임했다.
2011년 7월에 추도기도에서 신을 언급한 것 때문에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스라엘 국민들이 기억할 것이다(Yizkor 'Am Yisrael)"라고 읽어야 할 부분을 "신이 기억할 것이다(Yizkor Elohim)"라고 읽은 것 때문.[6]
참모차장 시절에 집을 개조하다가 공유지를 침범했다는 부동산 관련 의혹이 있다. 그리고 유다사마리아사단장 시절에 자신의 관할에서 발생한 국경수비대 마닷 유수프(Madhat Yusuf) 상병 저격사건[7] 당시에 책임을 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2011년 5월 18일에 공수여단 장병들과 훈련을 하는 간츠 중장.
총참모장 재임 시절 2012년 11월, 2014년 7월 가자지구 분쟁으로 두 차례나 하마스와 전쟁을 벌였다. 전자는 1주일만에 공습만으로 휴전을 성사시켰지만, 후자는 지상전까지 벌이며 1개월 이상 장기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가자 지구 주민들의 피해도 커져서 국내외의 비판을 받았다.
2015년에 총참모장 임기만료 이후 전역해 민간인이 되었고 정치에 진출하였다.
2.1. 정치인
2018년 12월에 이스라엘 회복당을 창당하고 당대표로 취임한데 이어, 2019년 2월 21일 중도계열 정당들을 모아 정당 연합체인 청백동맹을 구성해 역시 대표 자리에 올랐다.2019년 2월에는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2019년 4월 총선에서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과 같은 35석을 얻었으나 군소정당들이 네타냐후에 붙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집권은 힘들게 됐다. 그러나 신인 정치인으로써는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8] 이후에도 이스라엘 차기 총리로 물망 오르고 있으며, 2019년 9월 총선에서 90% 이상 개표된 상황에서 청백당이 원내 1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돼 총리 후보가 될 확률이 높아졌다! 한편, 1992년 이츠하크 라빈 이후 아랍계 정당 연합이 이스라엘 총리 후보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런 의석을 합쳐도 보수 정당인 이스라엘 베이테이누의 도움 없이는 55석밖에 안되기 때문에[9], 23일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리쿠드당과 청백당의 대연정을 구성해 간츠 대표가 네타냐후 총리와 교대하는 방식으로 총리에 오르는 것을 제안했다.1 하지만 간츠와 청백당은 이런 연정 구상을 거부했고 리블린 대통령은 우파 연합이 현재 확보한 의석 수가 더 많다고 판단, 현임 총리인 네타냐후를 우선 차기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2 하지만 네타냐후가 다시 연정 구성에 실패하여 다시 간츠가 지명받았다.3 하지만 간츠 역시 연정 구성에 실패하여 다시 대통령으로 지명권이 넘겨졌다.#
결국은 정부 구성에 실패해 3차 총선으로 기회를 넘기게 됐다. 3차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요르단계곡을 병합하겠다는 발언을 하면서 청백동맹과 연대를 맺고 있는 좌파 성향 정당들의 비판을 받았다.#
3월 3차 총선에서는 3석 차이로 리쿠드에 패배했지만, 대신 크네세트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4월이 되어서 협상 끝에 리쿠드와 거국 내각을 만들기로 하고 2021년 10월 이후 네타냐후의 뒤를 이어 총리직에 오르기로 했다. 내각 장관 직은 절반을 약속받았는데 위기의 네타냐후를 상대로 국방, 법무, 경제 등 핵심 부처에 대하여 자리를 확보했다.
이에 대한 중도 성향 지지층의 반발이 상당한데, 당장 청백동맹에서 간츠의 결정을 거부하고 예시 아티드(13석)와 텔렘(3석)이 연합에서 이탈해 청백당의 의석수가 32석에서 15석으로 감소했다. 4차 총선 방지 및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이 명목이긴 했지만 간츠의 권력욕이 네타냐후의 범죄 행위를 처벌할 기회를 잃게 만들고, 반 네타냐후 진영의 연대를 붕괴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결국 연정 협의에 반대하는 예쉬 아티드와 텔렘이 청백동맹에서 이탈하면서 의석 수가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2020년 5월 17일. 내각 구성에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연정 구성 이후에도 네타냐후 총리와 자주 충돌했는데 요르단강 서안 지구 합병 문제 등 여러 분쟁 요소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하지만 7개월만에 예산안 통과 문제로 연정이 붕괴되면서 2021년 다시 총선을 맞이하게 됐다. 간츠는 이에 대해 텔아비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세 차례나 네타냐후의 총리직을 끝낼 수 있었다”면서 지난해 연정 참여에 대해 후회하는 뜻을 밝혔다.#
총선 결과 선거 이전 대비 4석을 잃고, 반 네타냐후 연합의 1당 지위도 예쉬 아티드에게 내줘 거국 내각 참여가 결국 간츠에게는 독배가 되고 말았다.
2021년 6월 2일, 극적으로 타결된 반 네타냐후 8당 연정에 참여했는데 국방부 장관에 유임될 것으로 보인다. 13일에 나프탈리 베네트-야이르 라피드 내각이 신임 투표를 통과하면서 새 정권이 출범, 부총리 직을 예쉬 아티드 야이르 라피드 대표에게 넘기고 국방부 장관에 유임되었다.
2021년 11윌. 그의 가사도우미가 스파이 혐의로 기소됐다.#
2022년 1월 21일, 재무부 장관과 외무부 장관에 이어서 PCR 검사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양성 판정을 밭았다.#
2022년 10월에 있었던 제25대 이스라엘 크네세트 선거의 청백동맹이 패하면서 국방부 장관에서 물러났지만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와 함께 야당의 대표주자로 네타냐후의 사법부 무력화 시도에 단결하여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2023년 10월 7일자로 하마스와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네타냐후의 비상 거국내각 제안을 수용해 무임소장관으로 내각에 합류했다. 함께 합류를 제안받았던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네타냐후 내각에서 사법부 무력화 시도를 주도한 극우 성향 의원들을 내칠 것을 요구했으나 네타냐후가 이를 거부하면서 합류하지 않았다.
네타냐후의 전쟁 대비 책임론이 나오자 지지율에서 그의 당과 함께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하마스와의 전쟁의 장기화를 비롯해 자기 창백당원의 아들이 전투 도중 하마스 무장대원이 설치한 지뢰에 사망하는 비극을 당하게 되고, 최근 동예루살렘•요르단 강 서안지구•골란고원•시나이 반도•레바논과 확전 긴장우려가 커지고 있고 이스라엘 사이에서 반아랍감정이 최고조에 도달하면서, 자기 정당 관리에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는 추세라서 마냥 유리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삼두정치 수준으로 이스라엘 정치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2024년 6월 9일, 전쟁 장기화 속에 네타냐후 총리가 휴전 및 인질석방 합의 요구를 무시하자 전시내각 탈퇴를 선언하고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1] Alternate Prime Minister, 국내에서는 통칭 '부총리'로 표기하나 일반적인 부총리와 달리 각료에게 보고를 받을 권리와 각료 해임에 대한 거부권을 가지는 등 총리에 준하는 권리를 보장받는다.[2] 역대 이스라엘군 총참모장은 대부분이 육군이며, 간츠도 마찬가지로 육군 출신이다. 공군은 18대 총참모장이었던 댄 할루츠 중장(2006~2007)을 포함해서 2명 뿐이고, 해군 출신 총참모장은 아직 없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군은 육군의 규모가 가장 크고, 공군이 그 다음으로 크며 해군의 규모가 가장 작기 때문이다.[3] 사실 이스라엘군은 병력 규모가 20만 정도인데다 계급 인플레이션도 없어서 최고 계급이 중장이다.[4] 역대 총참모장 20명 가운데 공수여단을 거친 사람이 7명에 이른다.[5] 이스라엘군은 한국으로 치면 간부사관이 활성화된 탓에 사병 출신 장성이 많은데 이를 두고 아예 사관학교나 학사장교가 없는 걸로 오해하기도 한다. 이는 이스라엘 육군이 사관학교 대신 지원자를 대상으로 병과별 간부 육성 학교를 운영하고, 그 이상의 장교들은 국방대에서 교육시키는 독특한 양성 제도를 운영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대신 직업군인 비중이 육군보다 높은 해/공군은 3년제 사관학교를 운영한다.[6] 이스라엘은 유태교를 믿는 유태인이 인구의 대다수지만, 기본적으로는 국교를 지정하지 않는 세속국가다.[7] 당시 19세로 팔레스타인 스나이퍼에 의해 목 저격을 당해 쓰러졌다. 이름을 보면 이스라엘 아랍인으로 보이는데 아랍계들은 정규군 대신 준군사조직인 국경수비대 등으로 징병 의무를 대체하는 편이다. 당시 국방장관과 총참모장은 직접 구조대를 보내는 대신에 팔레스타인 당국에게 해당 인원을 대피시키라고 지시했다. 구조대는 늦게 도착했고 4시간 동안 과다출혈로 방치된 유수프 상병은 사망했다.[8] 간츠 본인은 정치 신인이지만 야이르 라피드 전 재무장관 등 정치 배테랑도 당 내 일부 있다[9] 내각 구성을 위해서는 연립정당의 의석 합계가 과반인 61석 이상이 되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