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식민제국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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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제국 Colonies belges(프랑스어) Belgische koloniën(네덜란드어) | |||||
국기 | 국장 | ||||
벨기에 식민제국의 영토 | |||||
1908년 ~ 1962년 | |||||
<rowcolor=#fae042> 성립 이전 | 해체 이후 | ||||
벨기에 | 벨기에 | ||||
콩고 독립국 | 콩고 공화국 | ||||
르완다 | |||||
부룬디 | |||||
위치 |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1] 등 | ||||
면적 | 2,430,270 km² | ||||
수도 | 브뤼셀 | ||||
정치 체제 | 입헌군주제 | ||||
인구 | 21,300,000명 (1939년) | ||||
국가 원수 | 벨기에 국왕 | ||||
언어 | 프랑스어[2], 네덜란드어[3] | ||||
민족 | 벨기에인, 바콩고족, 투치족, 후투족 등 | ||||
종교 | 로마 가톨릭 | ||||
주요 사건 | [ 펼치기 · 접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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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어: Belgische koloniale rijk프랑스어: Empire colonial belge
독일어:Belgische Kolonien
영어: Belgian overseas colonies
벨기에 식민제국은 벨기에와 벨기에의 식민지에 존재했던 식민제국이다.
벨기에는 1830년에 네덜란드 연합 왕국에서 분리되었고 1839년에 국가 형성이 승인되었다. 당시는 강력한 식민제국이었던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의 유럽 열강들이 전세계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던 제국주의의 시대였다. 이처럼 유럽 각국이 이미 해외에 식민지와 세력권을 충분히 확보한 상황에서 벨기에도 식민지 건설에 관심을 두었다. 1843년 초대 국왕 레오폴드 1세는 하와이 왕국을 식민지로 하기 위해서 러드 앤드 컴퍼니와 계약을 맺었으나 러드 앤드 컴퍼니가 재정난에 직면해서 거래는 취소되었다.
다음 국왕 레오폴드 2세도 식민지 획득에 의욕적이었지만, 벨기에 정부는 자원 부족을 이유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결국 레오폴드 2세는 모험가 헨리 스탠리 경을 앞세워 중앙아프리카에 콩고 자유국을 세우고 1884년 베를린 회담에서 중립 지대라는 것을 주장해서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그는 고무 채취를 위해 주민들을 노예화하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신체를 절단하고 매질을 가하는 등 수많은 사람을 학살해 콩고의 학살자라 불리게 되었다. 콩고는 벨기에에 귀속된 영토가 아니라 국왕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사유지였다.
벨기에 제국은 다른 유럽 제국들과는 다르게 식민지 영토의 98%가 콩고에 집중되어 있었다.
2. 식민지
- 벨기에 식민지 콩고(1879~1960년)[4]
- 국제아프리카협회 ~ 국제콩고협회(1876년, 1879~1885년)
- 콩고 독립국(1885~1908년)
- 벨기에령 콩고(1908~1960년)
- 라도 위요지(Lado Enclave)(1894~1910년)[5]
- 루안다-우룬디 (1916~1962년)[6]
- 벨기에령 톈진(1902~1931년)[7]
- 탕헤르 국제지구(1924~1956년) [8]
- 코마치나 섬(1919~1920년)[9]
- 산토 토마스 데 카스티야(Santo Tomás de Castilla)(1843~1854년)[10]
이 식민지들에 대한 벨기에의 영향력은 식민지들의 이탈과 함께 없어졌다. 현대에도 계속 옛 식민지였던 나라들에 영향력을 투사하거나 혹은 식민지 시기에 있었던 학살 등 과거사 사죄를 통해서 외교적 영향력을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등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매우 대조적이다. 이유는 벨기에 자체가 경제력에 비해 해군력이 워낙 빈약해 해외원정으로 대규모 병력을 투사시키는 게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현재의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부룬디 등 아프리카 지역에 있던 식민지에서 벌인 여러 종족 분열 정책과 잔악한 식민지 정책들로 식민지 독립 이후에 이들 각국에서 내전과 혼란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아프리카 국가에서 벨기에에 대한 적개심이 상상을 초월하다보니 토착 세력의 협력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1] 사실상 식민지로 볼 수 없는 크기의 영토지만 중국 청나라의 톈진 조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2] 공식적인 행정언어이자 가장 널리 쓰이던 언어[3] 프랑스어만큼은 아니지만 제국의 영토 곳곳에서 사용되었다.[4] 수도는 보마였다가 레오폴드빌(현 킨샤사)가 되었다. 오늘날 콩고민주공화국의 전신이다.[5] 현 남수단 라도 지역[6] 독일이 지배했던 동아프리카의 일부였으며 1916년에 벨기에군이 점령했다가 나중에 벨기에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현재는 르완다, 부룬디가 되었다.[7]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일본 등 열강과 함께 벨기에가 중국 톈진 조계를 지배하였다.[8]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함께 국제지구(International zone)의 형태로 벨기에가 지배하였다.[9] 이탈리아 북부 코모호에 위치한 섬으로, 1918년 이 섬의 소유주인 아우구스토 카프라니가 1차 대전에서의 벨기에가 받은 피해를 위로하는 의미로 당시 벨기에 국왕 알베르 1세에게 증여했다. 잠시 지배하다가 이탈리아 왕국에 반환되었다.[10] 과테말라에 있었던 벨기에인 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