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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16:28:47

비밀군사조직

<colcolor=#fff><colbgcolor=#000> 비밀군사조직
Organisation armée secrète (OAS)
파일:비밀군사조직기.svg 파일:비밀군사조직 엠블럼.svg
깃발 엠블럼
HONNEUR, PATRIE
명예, 조국
창설일 1961년 2월 11일
해체일 1962년
규모 3,000명
참전 알제리 전쟁
1961년 프랑스 쿠데타 시도
테러조직 지정
[[프랑스|]][[틀:국기|]][[틀:국기|]]

1. 개요2. 역사3.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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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제리 전쟁 말기에 활동했던 프랑스극우 성향 군내 사조직이자 테러조직, 준군사조직.

2. 역사

1954년부터 진행된 알제리 전쟁이 장기화되던 1958년 프랑스에서는 극우 세력과 군부가 쿠데타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가 알제리 독립 세력 민족해방전선(FLN)과 협상을 시도하려고 하자 이에 분노한 군부가 코르시카를 점령하여 샤를 드골의 복귀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사건이 프랑스 1958년 5월 위기였다.

결국 궁지에 몰린 프랑스 제4공화국샤를 드골에게 정계로 복귀할 것을 요청했다. 정계로 복귀한 드골은 총리로 취임했다가 프랑스 제5공화국이 출범한 뒤인 1959년 1월 8일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권력을 쟁취한 드골은 군부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알제리에 민족자결 원칙을 적용할 것을 천명했고 이로 인해 배신당했다고 격노한 군부와 정면으로 대치하기 시작했다.

1961년, 알제리인들의 자결권을 묻는 국민투표가 통과되자 프랑스의 일부 정치인들과 장교들은 이에 대한 반발로 프랑코 정권이 지배하던 스페인국에서 모여 비밀군사조직을 결성하여 알제리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쿠데타와 테러를 기획했다. 이들의 테러 활동은 1962년 에비앙 협정 체결 이후 장 바스티앵티리 등이 주도한 샤를 드골 암살 시도와 알제리 독립을 지지했던 장폴 사르트르 암살 시도로 절정에 달했다. 특히 샤를 드골 암살 미수 사건은 첩보 소설계의 대명사 자칼의 날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1963년까지 조직의 주요 인물들이 붙잡혀 수감되거나 총살형을 당하면서 조직은 점점 쇠퇴했다. 조직 해체 이후 남은 조직원들은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의 스테파노 델레 키아이에[1], 에르네스토 밀라 로드리게스[2], 귀도 자네티니를 비롯한 네오파시즘 운동가들과 접촉하여 반공주의 명목으로 테러 행위를 계속 이어나가거나 남미로 건너가 당시 더러운 전쟁 중이던 남미 군부독재자들을 도왔다. 이브 게랭세라크의 경우에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등에 참여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아파르트헤이트 독재정부, 포르투갈 이스타두 노부 정권,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 스페인 프랑코 정권, 그리스 군사정권 등 세계 각지의 다양한 반공 극우 독재정권을 지원하러 다니는 위장 언론사이자 실제론 PMC아긴터 프레스를 창립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해외로 도망가지 않은 조직원들은 비밀군사조직 생활을 하며 얻어낸 정보와 연줄을 악용하여 은행강도, 불법 무기상 등 범죄자로 전락하기도 했다.

3. 주요 인물



[1] 폰타나 광장 폭탄테러를 일으킨 이탈리아 극우 조직 신질서 소속 테러리스트. 남미 군부정권들과 유착 관계에 있었다.[2] 스페인 극우 조직 파르티도 에스파뇰 나시오날 소셜리스타(스페인 국가사회주의자당, PENS) 소속의 신파시즘 테러리스트. 파리 시나고그 폭탄 테러를 자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