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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데냐 왕국 Regno di Sardegna | ||
국기 | 국장 | |
F.E.R.T.[1] | ||
상징 | ||
국가 | 사르데냐의 노래 (S'hymnu sardu nationale) | |
위치[2] | ||
1720년 8월 8일 ~ 1861년 3월 17일 | ||
역사 | ||
성립 이전 | 이탈리아 통일 이후 | |
사보이아 공국 | 이탈리아 왕국 | |
<colbgcolor=#002da6><colcolor=#fff> 지리 | ||
위치 | 이탈리아 북서부 | |
수도 | 토리노(1720~1798, 1814~1861) 칼리아리(1798~1814) | |
면적 | 약73,000km² (1859년) | |
인문환경 | ||
인구 | 약 7,200,000명 (1859년) | |
언어 | 이탈리아어,[3] 프랑스어[4] | |
종교 | 로마 가톨릭 | |
민족 | 이탈리아인[5] | |
정치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1720~1849) 입헌군주제(1849~1861) | |
국가원수 | 국왕 | |
국성 | 사보이아 가문 | |
주요 국왕 |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1720~1730) 카를로 에마누엘레 3세(1730~1773)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1802~1821)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1849~1861) | |
경제 | ||
통화 | 사르데냐 리라 |
언어별 명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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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르데냐 왕국 또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은 1720년부터[7] 1861년까지 토리노를 수도로 하여 존재했던 이탈리아의 왕국이다.[8]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전신이 되는 국가이다.국명과 달리 사르데냐섬은 변방 취급이었고 나폴레옹 전쟁 시기를 빼면 왕국의 중심지와는 거리가 멀었다.[9] 토리노를 중심으로 하는 피에몬테 지방이나 나폴레옹 전쟁 뒤 획득한 제노바 등 리구리아 지방이 경제력이 높고 산업화가 잘 된 땅이었고, 이후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국력의 밑바탕이 되었다.
2. 역사
사르데냐 왕국의 존재는 14세기로 거슬러가지만, 교황이 사르데냐에 간섭하기 위해 만든 괴뢰왕국이라 아라곤 왕국이 교황의 허락을 받고 사르데냐를 정복한 이래로 사르데냐 국왕은 아라곤 국왕, 나중에는 스페인 국왕이 겸하는 작위에 불과했다.[10]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대동맹 측에 가담한 사보이아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는 1714년, 위트레흐트 조약의 결과 스페인이 지배하던 시칠리아를 얻었으나 1718년, 이탈리아 영토를 탈환하려한 펠리페 5세의 스페인 함대에게 시칠리아를 빼앗겼다. 이로 인해 사국 동맹 전쟁이 발발하였고 결국 오스트리아의 도움으로 시칠리아를 되찾았으나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사르데냐를 다스리기 어려워한 카를 6세의 제안[11]으로 1720년, 시칠리아를 사르데냐와 교환하였다.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가 자신의 대표 작위를 새로 획득한 사르데냐 국왕으로 바꾸면서 사르데냐 왕국은 주권국이 되었으나, 실제 왕국의 중심지는 사보이아 가문이 머무르는 피에몬테였다.[12] 이후 카를로 에마누엘레 3세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서 교묘한 중립 정책을 펼쳐 영토를 점진적으로 넓혀갔다. 1733년에는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랑스 편을, 1740년에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어 참전하였고 1748년, 엑스라샤펠 강화조약으로 밀라노 코앞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사르데냐 왕국을 오스트리아, 스페인과 함께 이탈리아를 3등분해서 세력을 나눠 갖는 국가로까지 발전시켰다.1792년, 프랑스 혁명 전쟁이 발발하자 비토리오 아메데오 3세는 1차 대불동맹에 참여했지만, 1796년에 나폴레옹의 침입을 받아 주요 항구 도시 니차와 왕실의 본관인 사보이아를 빼앗기고 말았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 1799년, 카를로 에마누엘레 4세는 왕국의 중심지였던 피에몬테까지 빼앗겼고 왕실은 사르데냐로 몽진했다. 다만 사르데냐는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함락되지 않았고, 형의 퇴위로 즉위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가 제5차 대불동맹, 제6차 대불동맹에 참가하여 나폴레옹에 계속 저항한 끝에 1814년, 제1차 파리 조약으로 잃었던 영토를 모두 되찾았다. 이듬해 개최된 빈 회의에서 옛 제노바 공화국의 영토였던 리구리아 지방을 얻어냈으며, 왕국의 이름도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Regno di Sardegna-Piemonte)으로 개칭하였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와 카를로 펠리체는 당대 이탈리아 반도의 군주들과 비슷하게 반동 정책을 고수했다.
1847년, 국왕 카를로 알베르토는 연합법(Fusione perfetta del 1847)을 통해 사르데냐 왕국, 사보이아 공국, 피에몬테 영주국, 아오스타 공국, 니차 백국, 몬페라토 공국, 제노바 공국[13] 등 명목상 별개였던[14] 사보이아 왕가의 영토를 통합하여 행정구역을 재편하였으며, 이듬해 1848년 혁명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자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새 헌법인 알베르토 헌법(Statuto Albertino)을 채택하였다. 새 헌법은 군대 지휘권과 행정 최종 결정은 국왕에게, 입법권은 상,하원 의회에 부여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였으며, 이 때를 기점으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은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오스트리아-프로이센의 역학관계를 이용한 능수능란한 외교술로 국익을 극대화 했다.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 당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냈고, 이후 나폴레옹 3세의 변덕으로 적대관계에 놓일 상황에 처했지만, 중요 항구도시 니차와 왕실의 본관 사보이아를 내어주는 조건을 제시하여 토스카나 대공국, 모데나 공국, 파르마 공국, 교황령 중부의 볼로냐, 라벤나 등 중부 이탈리아를 통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로이센 왕국을 지원하여 베네토 지방까지 확보하였다.
이후 이탈리아 통일전쟁의 주축이 되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국왕과 카밀로 카보우르, 주세페 가리발디 등의 활약으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국명을 이탈리아 왕국으로 바꾸었다. 자세한 내막은 이탈리아 통일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통일 이후에도 사르데냐 왕국의 영향력은 남아 있었다. 사르데냐 왕국의 십자가 문장은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문장이 되었으며, 2002년 유로 전환 전까지 이탈리아의 법정 화폐였던 이탈리아 리라도 사르데냐 왕국의 통화였던 사르데냐 리라(Sardinian lira)에서 이어진 것이다.
3. 역대 지도자
3.1. 역대 국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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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 카를로 에마누엘레 3세 | 비토리오 아메데오 3세 | 카를로 에마누엘레 4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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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1720년 ~ 1730년)
- 카를로 에마누엘레 3세 (1730년 ~ 1773년)
- 비토리오 아메데오 3세 (1773년 ~ 1796년)
- 카를로 에마누엘레 4세 (1796년 ~ 1802년)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 (1802년 ~ 1821년)
- 카를로 펠리체 (1821년 ~ 1831년)
- 카를로 알베르토 (1831년 ~ 1849년)[15]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1849년 ~ 1861년)
3.2. 역대 총리
- 체사레 발보 (1848년)
- 가브리오 카사티 (1848년)
- 체사레 알피에리 디 소스테뇨 (1848년)
- 에토레 페로네 디 산 마르티노 (1848년)
- 빈첸초 조베르티 (1848년~1849년)
- 아고스티노 키오도 (1849년)
- 클라우디오 가브리엘레 디 라우나이 (1849년)
- 마시모 다첼리오 (1849년~1852년)
- 카밀로 카보우르 (1852년~1859년)
- 알폰소 페레로 라 마르모라 (1859년~1860년)[16]
- 카밀로 카보우르 (1860년~1861년)[17]
[1] 사르데냐 왕국의 왕가인 사보이아 가문의 표어이다. 여러가지 의미가 있으나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2] 1815년에 빈 회의를 통해 리구리아 지방(구 제노바 공화국영토)을 획득한 뒤의 판도이다.[3] 피에몬테어, 리구리아어, 롬바르드어, 사르데냐어 등의 방언도 사용되었다.[4] 주로 프랑코프로방스어라는 방언이 사용되었다.[5] 피에몬테인, 리구리아인, 사르데냐인 등.[6] 1815년 이후로는 Piemonte-Sardegna로 표기하기도 한다.[7] 원래의 사르데냐 왕국은 14세기 아라곤 왕국의 지배 이후 계속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으나, 1720년 사보이아 공국이 이 지역을 합병한 이후 사보이아 가문의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가 사르데냐 왕국을 선포하였다. 사보이아 공국이 중심이 된 합병이었음에도 사르데냐 왕국이라는 이름을 쓴 이유는 왕국인 사르데냐 왕국이 합병의 주체였던 사보이아 공국보다 격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8] 사르데냐 자체의 수도는 칼리아리인데 어차피 아라곤-스페인 국왕이 사르데냐 왕위도 함께 보유한 터라 실제로 여기를 수도 삼아 통치한 일은 없었고 부왕을 보내 통치했다. 사르데냐가 사보이아 공국으로 넘어간 이후 사보이아 가문 역시 아라곤-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부왕을 보내 통치했으며, 나폴레옹 전쟁중에 본거지인 피에몬테와 사보이아를 뺏기는 바람에 잠시 이곳으로 천도를 한 적이 있다.[9] 사르데냐 왕국을 칭한 이유는 사보이아 가문이 소유한 영토 중 사보이아는 신성 로마 제국의 라인강 상류 관구(Oberrheinischer Reichskreis)에, 피에몬테는 신성 로마 제국의 이탈리아 왕국에 속해 왕을 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 왕국의 중심지는 베를린이 있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이었지만 역시 브란덴부르크는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였기 때문에 왕을 칭할 수 없어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하지 않았던 프로이센 공국을 이용해 칭왕한 것과 비슷했다.[10] 스페인 왕실은 과거에 보유했던 작위를 현재 상태와 무관하게 칭호로 계속 사용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사르데냐를 상실한 지 300여년이 지난 현재도, 스페인 국왕은 명목상의 사르데냐 국왕 칭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11] 제안이라고 하지만 국력차를 앞세운 반협박에 가까웠다.[12] 사보이아 가문은 사르데냐에 관심이 없었고 프랑스 혁명 전쟁 발발 이전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카를로 에마누엘레 3세, 비토리오 아메데오 3세, 카를로 에마누엘레 4세 4명의 국왕이 모두 사르데냐를 방문한 이력이 없었다. 심지어 이탈리아어가 사르데냐의 공용어로 지정된 것도 1760년이 되어서였다.[13] 나폴레옹 전쟁 이후 획득[14] 1815년 빈 회의에서 이 영토들은 사르데냐 국왕의 영토라 칭해졌다. 근대적 국민국가와 국왕 개인의 재산으로서의 중세적 국가관이 아직 병립했음을 보여준다.[15] 여기에서 직계가 단절되고 분파인 사보이아-카리냐노 가문이 계승했다. 이 가문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 준 왕족 대접을 받았고 유럽 여러 왕실과 결혼해도 귀천상혼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참고로 사보이아 가문은 살리카법을 채택하여 13촌 친척 관계로 왕위를 계승했다.[16] 훗날 이탈리아 왕국 제6대 총리를 역임했다.[17] 마지막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총리이자 이탈리아 왕국 초대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