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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8:44:39

사에라 타르가르옌

<colbgcolor=#000000><colcolor=#fff> 사에라 타르가르옌
Saera Targaryen
파일:saera targaryen.jpg
이름 사에라 타르가르옌 (Saera Targaryen)
가문 파일:타르가르옌 가문.png 타르가르옌 가문
생몰년 AC 67 ~ AC 101 이후?[1]
부모 아버지 재해리스 1세
어머니 알리산느 타르가르옌
형제 아에곤, 대너리스, 아에몬, 바엘론, 알리사, 마에겔, 바에곤, 다엘라, 비세라, 가에몬, 발레리온, 가엘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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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과 피의 등장 인물. 재해리스 1세알리산느 타르가르옌 부부의 6남 7녀 중 5녀였다.

키가 크며 예쁘고 총명했지만 고집불통에 자유분방하며 성적으로 문란해서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못해 문젯거리가 되었다. 결국 방종한 품행으로 대형 사고를 치는 바람에 부모와 사이가 나빠져 결국엔 완전히 의절했고 죽는 순간까지 화해하지 못했다.[2][3]

2. 생애

어릴 때부터 고집불통에 장난기가 심했다고 한다.[4] 사촌인 아에레아 타르가르옌도 장난기가 심했지만 사에라는 그런 아에레아가 애교로 보일 정도였다고. 하지만 부모님이나 오빠들인 아에몬 타르가르옌바엘론 타르가르옌에게는 그럭저럭 귀엽게 넘길 만한(?) 장난들만 쳤고 문제가 될만한 장난은 숨겼기 때문에 그들은 사에라의 장난도 웃으면서 넘겼다. 하지만 셉톤 바스에 의하면 사에라의 자매들은 다들 각각 다른 정도로 그녀를 싫어했다고 한다.

일단 사서에 기록된 '장난'들을 보면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언니 다엘라의 방에 몰래 고양이를 들여놓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양이로도 모자라 다엘라가 벌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의 요강에 을 잔뜩 집어넣은 적도 있다고 한다.아무리 봐도 장난이 아닌데 킹스가드 기사들의 흰 망토를 몰래 훔쳐내 전부 분홍색(...)으로 물들인 적이 있는가 하면, 부엌에서 온갖 종류의 간식부터 술까지 훔쳐먹었으며 성소에 기도를 드리러 갈 때마다 술에 취한 채로 나타나기도 했다. 게다가 살짝 모자란 궁정 어릿광대에게 철왕좌에 오르면 왕이 될 수 있다라고 부추겨 어릿광대의 팔다리가 칼날에 너덜너덜해지도록 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에라의 교육을 맡은 셉타는 그녀를 두고 '사악한 아이'라 평할 정도였다. 또한 14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 알리산느 왕비에게 도르네의 대공이나 장벽 너머의 왕과 결혼하여 왕비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재해리스 1세가 워낙 그녀를 오냐오냐하면서 길렀던지라[5] 공주의 신분으로 행실이 자유롭다 못해 문란하기까지 했다는 것. 아버지인 재해리스와 달리 어머니인 알리산느 왕비는 딸의 행실을 긍정적으로 보지만은 않았다. 특히 사에라가 자신이 총애하는 귀족 영애 둘과 영식 셋을 늘 대동하고 다닐 때 알리산느는 '사에라 본인도 영리하기는 해도 현명하지는 않은데다가 같이 다니는 청년들도 머리가 든 게 없는 건 물론 행실도 난잡하다'라고 말했다.[6] 결국 자신과 함께 어울리던 귀족 영애들[7], 자신이 제일 총애한 3명의 귀족 영식들[8]과 질펀하게 놀다가[9] 우연한 계기로 이를 들키고 만다.[10]

사에라와 어울리던 귀족 영식들이 어릿광대를 창관에 데리고 가서 조롱하는 사고를 쳤는데 그들이 만취 상태라서 심문할 수 없자, 알리산느 왕비가 '함께 놀던 여자애들은 뭔가 알겠지?'란 생각으로 사에라와 어울리던 귀족 영애들을 만나 사건의 자초지종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런데 알리산느 왕비가 자신들을 만나러 온 걸 본 영애들은 그동안 저질러온 난잡한 행실이 들통난 것으로 오해하고, 알리스 턴베리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울면서 고해바치는 걸[11] 시작으로 왕비가 묻지도 않은 그간의 행적들을 죄다 불어버렸다. 이 사실을 들은 재해리스 1세와 알리산느 부부는 당연히 대경실색하여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에라를 불렀는데, 처음에 사에라는 부모님이 자기를 부른게 자기의 명령에 따라 모자란 어릿광대를 창관에 데려간 세 귀족 영식들에 관한 일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어차피 어릿광대는 사람들이 자길 보고 웃어주면 좋아하지 않겠냐'고 변명을 했지만 왕비가 알리스 턴베리의 임신 사실에 대해 언급하자, 당황했다가 바로 눈물을 한 방울 흘리면서 '그 애가 무슨 짓을 한 건가요? 불쌍한 바보 같으니'라고 말했다.
파일:Princess Saera is removed.jpg
끌려가는 사에라
하지만 사건의 전말이 이미 다 들킨 상태에서는 소용 없는 연기였다. 이미 세 귀족 영식이 지하 감옥에 갇혀 있으니 신중히 말하라는 말을 듣자 사에라는 한 시간 동안 울었다가 웃다가 부정했다가 일축했다가 발뺌하다가 뉘우치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을 탓하는 짓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나중가서는 본인이 지쳤는지 질렸는지 재해리스 1세의 '누구에게 네 처녀성을 주었느냐'라는 질문에 '셋 다한테요. 셋 다 자기가 제 첫 남자라고 생각하더라고요'라고 신랄하게 반응해서 부모를 경악케 했다. 어머니 알리산느 왕비도 경악했으나 그다지 당황해하지 않고 '이제 네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니?'라고 묻자 자신이 결혼을 하게 되지 않겠냐고 변명하다가, 부왕 재해리스 1세의 지뢰나 다름 없는 마에고르 1세를 운운해[12] 결국 화가 난 아버지에 의해 자기 방에 감금되고 말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친인 알리산느 왕비가 남편을 잘 구슬려서 용서받을 가능성이 있었으나, 사에라가 감금을 못이기고 드래곤을 탈취해서 도망치려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이에 재해리스는 더욱 화가 나서 '사에라와 드래곤이라, 그 아이도 발레리온을 훔치려 했을까?'라고 말하고는 사에라를 탑에 가둬버린 뒤 알리산느의 호위를 맡았던 종퀼 다크를 그녀의 감시자로 삼았다.

주위에서는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사에라와 같이 어울린 두 영애, 세 영식 중 둘을 서둘러서 짝지워 결혼시키려 했다. 알리스 턴베리는 로이 코닝턴, 페리안느 무어는 조나 무톤으로 상대가 정해졌다. 하지만 로이는 알리스가 임신한 아이가 자신이 아닌 브랙스톤 비스버리의 아이일 거라며 그녀와 결혼하는 걸 끝내 거부했다. 결국 알리스는 로이와 같은 붉은 머리의 사생아 딸을 걸타운에서 출산한 뒤, 베일의 영지 중 하나인 페블의 영주 던스턴 프라이어와 결혼했다. 재해리스 1세는 로이에게 형벌로 밤의 경비대 복무와 10년 동안 국외 추방 중 하나를 제시했다. 그는 후자를 선택해 칠왕국에서 추방되었고 펜토스, 미르를 돌다가 9년 반만에 한 창녀의 칼에 찔려 죽었다. 그래도 페리안느와 조나는 서로 사이가 매우 좋은 부부가 되었다.

이후 사에라의 처녀성을 취한 세 명 중 한 명인 비스버리 가문의 젊은 브랙스톤 비스버리 경은 주모자인데다가 반성도 하지 않아서 처벌로 팔다리를 부수고 거세당하는 대신 결투 재판을 선택하게 됐다. 이때 사에라의 명예를 위한 대전사는 킹스가드가 아니라 다름 아닌 아버지 재해리스 1세. 결투 재판에서 재해리스 1세는 직접 발리리아 강철검 블랙파이어를 들고 브랙스톤 경을 죽였는데[13], 어머니 알리산느의 호위를 하다가 자신의 감시를 맡게 된 종퀼 다크가 사에라가 브랙스톤의 최후를 마지막까지 강제로 보게 만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목숨 걸고 자신의 대전사로 나서는 걸 보고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반성의 목적으로 침묵 수녀회에 보내져서 몇년 동안 강제로 그곳에서 수련하게 된다. 하지만 당연히 사에라는 셉타가 될 생각이 없어서[14] 거기서 도주한 뒤[15] 올드타운으로 가서 배를 타고[16] 리스에 정착하여 창녀가 되었다. 이때 사에라는 부끄러워 하는 교단의 견습 수녀 컨셉을 잡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여기에 타르가르옌 가문 특유의 미모와 공주라는 프리미엄까지 붙어서 당시 엄청난 가치를 가진 고급 창녀였다고. 사에라는 이 시절에 엄청난 부를 모아서 훗날 볼란티스로 간 뒤 창관의 마담으로 대성공하며 많은 돈을 모아 부유하게 살았다.

사에라의 행방을 알게 되자 어머니 알리산느는 "우리 딸이 창녀가 됐다."라며 안타까워했으나, 아버지 재해리스 1세는 "그 애는 애초에 창녀였다"라고 일갈하며 사에라를 포기하고 없는 자식인 셈 취급하기로 했다. 또한 알리산느가 그래도 자식이고 이 정도면 죗값을 충분히 치뤘으니 용서는 해주자고 간청했지만, 재해리스 1세는 거부하고 다시는 그 아이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며 끝까지 사에라를 용서하지 않았다.[17][18]

이로 인해 금슬 좋던 재해리스 1세와 알리산느 부부는 몇년에 걸친 냉전을 치른다. 사에라를 외면하는 재해리스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알리산느는 사에라에게 여러번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을 받지는 못했다. 다만 재해리스 1세도 말년에 이르러 심신이 쇠하자 궁정의 인물들을 죽은 옛 사람들과 착각하곤 했는데, 자신의 간병인인 알리센트 하이타워를 보고 돌아온 사에라라고 생각한 걸 보면 사에라가 부모에게 큰 회한으로 남은 것이 확실하다.

101년 재해리스 1세의 후계 논의를 다룬 대협의회 당시에도 사에라는 살아 있었고 그녀의 사생아 아들들이 후보로 나오기도 했다. 그 중에는 사에라의 아버지 재해리스 1세의 외모를 빼닮은 아들도 있었다. 단순 사생아는 아니고 한명은 볼란티스 삼두 사이에서 낳은 서자였다고 한다. 사에라 본인은 계승 후보로 나서라는 측근의 권유에 거절하며 "나의 왕국은 여기(볼란티스)다" 라고 반응했다고.


[1] 대협의회가 열린 AC 101 때에도 생존해있었다고 확실히 나왔다.[2] 다만 사에라를 존중해주지 않고 지나칠정도로 자신의 의견에만 따를 것을 강요하며 가혹한 처벌을 한 재해리스 1세의 책임도 있다. 특히 재해리스가 사에라에게 내린 처벌은 학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처벌 방식이 너무 지나쳤다. 또한 알리산느가 주선한 화해도 끝까지 거부하며 용서하지 않았으니, 사에라가 도망가서 부모와 의절한 것도 이런 이유가 컸다.[3] 하지만 이 가혹한 처벌이란 게 겨우 왕궁 방에 감금과 수녀원으로 보내지는 것이었다, 그녀가 한 행동들을 보면 이걸 학대라고 볼 수 있을까? 그녀는 어린 나이부터 언니 요강에 벌들을 (당연하지만 알레르기가 없어도 수많은 벌에게 쏘이면 죽을 수도 있다) 집어넣었으며, 거짓말로 어릿광대의 팔다리를 칼에 베여 너덜너덜 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주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으며, 그녀를 가르친 수녀가 사악한 아이라 라고 할 정도로 사이코패스적 성격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죄들 다른 이에게 덥어 씌우려고 에게 거짓을 고한 것과 아버지에 가족을 도륙한 폭군 마에고르를 운운한 것부터 목이 달아나도 아깝지 않은 죄이다. 아버지가 이걸 다 보호하려고 결투재판까지 나섰는데, 한 행동이 죄를 뉘우치는 것을 거부하고 창녀가 되는 것이었니 (벌받기 싫어서 도망치는 과정에서 셉타를 계단 아래로 밀친 것은 덤) 재해리스가 진절머리가 나서 처음부터 창녀였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4] 4살이 넘을 때까지 젖을 떼지 못하였다.[5] 사에라 본인이 이미 아버지로부터 원하는 것을 쉽게 얻어내는 방법에 통달했었다고 한다.[6] 이에 반해 재해리스 1세는 사에라가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 적어도 다엘라 때처럼 힘들게 신랑감을 찾아줘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좋아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사에라가 남자들과 단 둘이서만 있은 일은 없지 않냐며 보는 눈이 많은 와중에 불장난을 할 일은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후술된 스캔들을 보면 그냥 전제부터 글러먹은 안이한 생각이었다(...).[7] 페리안느 무어, 알리스 턴베리[8] 조나 무톤, 로이 코닝턴, 브랙스톤 비스버리[9] 알리스 턴베리가 누가 친부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하고, 사에라가 자신의 처녀성을 세 남자 모두에게 주었다고 고백한 걸 보면 거의 프리섹스 수준이었던 듯. 평민이라면 몰라도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혼전순결을 중요시 여기는 얼불노 세계관 상, 공주가 친한 귀족들과 함께 이런 사고를 쳤으니 괜히 재해리스 1세와 알리산느가 경악한 게 아니었다. 당장 본편의 라이사 아린피터 베일리쉬와 관계를 가져 혼전임신을 했다가 낙태하면서 혼인 시장에서의 가치가 떨어져 아버지보다 나이많은 존 아린와 결혼해야 했고, 왈더 프레이의 손녀인 아메레이 프레이는 평민 3명과 4P를 하다가(...) 들키는 대형사고를 치는 바람에 프레이 가문의 영애와 맺어지기엔 격이 현저히 떨어지는 떠돌이 기사와 결혼해야 했다.[10] 프랑스 역사에서 카페 왕조필리프 4세 시기에 일어난 넬탑 사건이 모티브인 걸로 보인다. 넬탑 사건이란 필리프 4세의 며느리들의 불륜스캔들(...)로 이중 루이 10세(필리프 4세의 장남)의 부인 마르그리트 드 부르고뉴는 불륜 사실이 드러나 그대로 탑에 유폐되어 남편에 의해 교살, 샤를 4세(필리프 4세의 삼남)의 부인 블랑슈 드 부르고뉴도 불륜 사실이 드러나 수도원에 유폐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필리프 5세(필리프 4세의 차남)의 부인 부르고뉴 여백작 잔은 그나마 동서들의 불륜을 방관하기만 해서 죄상이 가장 가볍다고 인정되어 잠깐 유폐되었다가 다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당연히 마르그리트와 블랑슈의 내연남들도 교수척장분지형으로 끔찍하게 처형당했다. 이 사건은 비단 왕가의 위신을 떨어뜨렸을뿐만 아니라 왕위계승의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는데 마르그리트의 딸 잔느는 아버지 루이 10세와 이복동생 장 1세의 연이은 요절로, 루이 10세의 유일한 법적 자녀로 왕위를 물려받을 수도 있었지만 평생을 어머니가 내연남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라는 의혹을 받았기에 숙부들에게 밀려 프랑스의 여왕이 되지못했다. 그나마 숙부들인 필리프 5세샤를 4세가 모두 죽은 뒤 살리카법이 적용되지 않는 나바라 왕국의 여왕 호아나 2세로 즉위했다.[11] 심지어 알리스 본인도 세 영식들 중 누가 아이의 친부인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알리산느 앞에서 거의 멘붕한 채로 울며불며 자신의 옷까지 찢어 임신 사실을 고백했다.[12] 자신의 결혼 상대에 대해 '그런데 왜 꼭 하나를 골라야 하나, 그냥 셋 모두와 결혼해도 되지 않겠나. 정복자(아에곤 1세)도 부인이 둘이었고 마에고르는 여섯인가 여덟인가 그러지 않았냐'라는 폭탄 발언을 던지고 만다. 참고로 재해리스 1세에게 마에고르 1세는 아버지 아에니스 1세가 죽자마자 왕위를 찬탈하고 큰형 아에곤 왕자와 작은형 비세리스 왕자를 죽이고, 자신을 어머니 알리사와 여동생 알리산느와 함께 인질로 잡아 드래곤스톤에 감금시켜 가히 지옥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게 만든 장본인이다. 한마디로 금이야 옥이야 기른 딸이 불구대천의 원수와 닮고 싶다고 말한 것이니 괜히 재해리스가 분노한 게 아니었다.[13] 말이 결투재판이지 실제로는 재해리스 1세가 직접 브랙스톤을 처형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왕을 상대로 한 결투재판에서 이기면 사형 내지 불이익을 당할 게 확실하니,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고 재해리스 1세도 처음부터 이 점을 노리고 딸의 대전사로 나선 것이다. 브랙스톤이 유혹하고 더럽힌 딸의 아비로서 대전사가 되겠다는 완벽한 명분은 덤.[14] 먼저 셉타가 된 언니 마에겔 공주가 동생인 사에라를 셉타로 만들면 인간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직접 교육시켰다. 하지만 사에라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셉타의 생활은 매우 금욕적이었다. 특히 셉타들은 고기가 없는 채식 식사와 차가운 냉수 목욕, 말털로 만든 거친 솔을 세면도구로 써야하고 거친 가운을 입어야하며, 머리까지 단발로 깎아야하니 평생을 궁전에서 호의호식하고 화려하게 살던 사에라에겐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언니 마에겔과 다른 셉타들이 사에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모든 행동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말을 안 듣거나 반항하면 매질까지 했다. 한마디로 감옥 생활이나 다름없던 것.[15] 그녀를 감시하던 셉타를 계단 아래로 밀어버리고 도주했다.[16] 이 때문에 놀란 재해리스가 하이타워 가문의 영주에게 올드타운을 수색해 사에라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내렸고, 영주가 올드타운의 저택들을 모두 수색했지만 이미 사에라는 배를 타고 도망간터라 찾을 수 없었다.[17] 사실 재해리스 1세의 입장에서는 사에라를 용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공주의 신분으로 문란한 행동을 하여 왕실의 이름에 먹칠을 한 걸로도 모자라, 부모의 면전에서 대놓고 바람을 피겠다는 말을 했으니 국왕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부모에게 진심으로 잘못을 빌었다면 용서해줄 수도 있었지만 사에라는 전혀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감금당하는 게 싫다고, 왕실의 가보인 드래곤을 훔쳐 도망치려 했다. 급기야 부모와 언니가 잘못을 반성하라고 보낸 수녀원에서 사는게 싫다며 수녀를 때리고 외국으로 도주하는 더 큰 죄를 저질렀다. 이걸로도 모자라 공주의 신분으로 매춘부가 되어 왕실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수녀 컨셉으로 국교인 칠신교까지 모욕했으니 사태가 더 커졌다. 나중에가면 사생아까지 두었으니 더욱 용서할수 없었다. 당장 병사들을 보내 붙잡아와서 처벌하거나 호적에서 파내어 왕족 신분을 박탈하여, 평민으로 만들 수도 있는데도 사실상 추방으로 결정한 재해리스 1세가 매우 자비로운 처분을 내린 것이다.[18] 이는 동시에 재해리스 1세가 가족이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현명한 처신을 한 것이다. 재해리스 1세의 후임 왕이자 그의 손자인 비세리스 1세가 딸 라에니라와 외손자 루케리스를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잘못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악행을 일삼은 동생 다에몬 타르가르옌을 무작정 용서하기만 하다가 결국 내전과 친족 살해를 초래한 걸 생각하면 재해리스 1세의 판단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