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정신 붙들라는 얘기야, 이제 이 세계 따위는 마지막이거든...
매트릭스의 등장인물. 배우는 조 판토리아노(Joe Pantoliano).[1][2] 더빙판 성우는 황윤걸 / 카나오 테츠오(극장판), 히우라 벤(후지TV).
참고로 영어 Cipher로 해석할 수 있다. 원래 뜻은 0, 암호, 열쇠 등의 의미이다. 사람들에게 타락천사로 유명한 Lucifer를 뜻한다고도 한다.
2. 작중 행적
매트릭스에 있을 때의 본명은 '레이건'이다. 느부갓네살(네부카데네자르)의 승무원이지만 기계와 매트릭스 프로그램들에 맞서 싸우는 빈곤하고 위험한 생활에 지쳐 스미스 요원과 접촉해 동료들을 배신하는 대가로 '매트릭스 안에서의 부귀영화'[3]를 약속받는다. 그래서 네오가 오라클을 만나러 대원들이 매트릭스에 들어갔을때 모피어스를 요원들에게 넘기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 뒤 플러그가 없어서 매트릭스에 들어가지 않은 탱크와 도저 형제를 뒷치기하고, 매트릭스에 연결된 에이팍, 스위치를 코드를 강제 분리함으로써 죽인다. 이후 네오까지 죽이려고 했으나,[4] 겨우 살아남은 탱크로부터 "믿든 안 믿든 넌 숯이 될 거다"는 일갈을 들은 뒤 레이저 건에 맞아 사망했다.계획에 따라 네오를 죽이려 들기는 했지만, 말하는 걸 보면 네오에 대해 마냥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었던 거 같다. 오히려 매트릭스가 가상이라는 걸 일깨워준 모피어스를 원망하는 처지로서 모피어스가 과도하리만큼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네오에게 어느 정도는 동정심을 가지고 있던 듯하다. 둘 다 현실세계에 적응 못하고 있던 처지였는지라 말도 잘 통했다.[5] 그래서 결국엔 죽일 생각이었더라도 은근히 네오에게 잘 대해준다.[6] 물론 한편으론 트리니티의 사랑을 받는 네오에게 약간의 질투도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네오와 트리니티에 대한 감정이 있어서 빨리 안 죽이고 계속 얘기하느라 자기 명을 재촉했을 뿐이다.
상당수가 무뚝뚝한 느부갓네살 승무원 중에서 마우스, 탱크와 함께 유난히 입담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마우스, 탱크, 사이퍼가 모두 죽은 2편부터는 주인공 일행이 살짝 심심해보이기도 한다.
진실을 알고 싶다고 저항군에 합류했다가 비참한 현실을 깨달은 뒤 매트릭스로 되돌아가려는 이런 배신자는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인류라는 종족의 생사여탈은 기계 측이 완벽하게 쥐고 있고 인류의 존속도 기계 측의 의지에 달려있기에, 사이퍼 같은 배신자들이 나온다고 해서 인류는 멸망하지 않는다. 참고로 기계측이 시온의 사람들이 모르는 진실만 말해도 시온에서 배신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겠지만 기계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후일담을 다룬 매트릭스 온라인에서는 사이퍼의 신념에 감화된 사람들이 Cypherites라는 조직을 만들었다고 한다. 기계와 인간 사이에서 평화 협정이 체결된 뒤, 시온 측이 매트릭스 안의 사람들을 빨간 약을 먹여 현실로 데려오는 것을 막으려고 하며, 위험한 현실[7]보다는 매트릭스 안에서 머무르는 것이 인류에게 훨씬 이득이라는 주장을 설파하고 있다. 이들은 Blue Dreamer라는 호버크래프트를 기함으로 삼고 있다.[8]
그런데 매트릭스 영화 시리즈에서 저항군이 매트릭스에 들어갈 때 현실 세계에서 오퍼레이터의 보조가 필요한데, 사이퍼가 어떻게 다른 승조원의 도움 없이, 그것도 어떻게 안 들키고 매트릭스를 혼자서 들락거렸는지는 영화에서 명시적으로 설명되진 않았다. 사실 이것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한데, 사이퍼가 무언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던 중에 등 뒤로 네오가 다가와 말을 걸자 사이퍼는 깜짝 놀라며 자신의 앞에 있던 모니터를 황급히 꺼버리는 장면이 있다. 그 때 사이퍼는 매트릭스 안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한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자동 의식 전송 시스템’을 가동시킨 것이다. 매트릭스에 접속할 때 오퍼레이터가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요원의 눈을 피해 하드 라인을 통해 그들을 현실 세계로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이다. 사이퍼의 경우는 스미스 요원과 만나기 위해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간 것이므로 요원의 감시망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는 하드 라인을 통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의식을 다시 현실 세계로 다운 로드 시킬 수 있도록 일종의 ‘타이밍’ 프로그램을 가동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삭제된 장면에서 사이퍼가 배신한 구체적인 이유가 드러나는데 이 장면에서 네오에게 모피어스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그'의 다섯 명의 전임자들이 있었으나 전부 사망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들이 요원에게 살해당하는 광경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고.
즉 이는 다르게 바꿔말한다면 네오와 시온의 진정한 존재 의의를 (직간접적으로나마)이미 진작에 알고 있었던 인물 중 한 명이라는 소리이기도 하다.링크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설정은 한 시대에 선택받은 그는 한 사람 이었다는 것으로 바뀌었기에 삭제된 듯하다.
3. 사이퍼의 철학
"알아요, 이게 가짜라는 거요. 내가 이걸 입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제 뇌에 이게 맛있고 육즙이 많다는 신호를 보내주죠. (저항군 활동을 시작한 지) 내가 9년만에 깨달은게 있는데... 모르는 게 약이다.(Ignorance is Bliss).[9]
영화상으로는 빼도박도 못하는 배신자 악당이지만 그의 살인 행위나 배신 행위를 제외하고, 그가 매트릭스로 돌아가기로 한 선택의 동기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괴로운 현실을 외면하고 가상세계인 매트릭스에 돌아가 현실도피와 환상에 탐닉하는 것은 어리석은 퇴행일 뿐이라는 주장과 그런 가상세계를 본인이 현실로 인식하고 그 세계가 현실보다 더 근사하다면 사이퍼의 선택이 옳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현실에서 느끼고 체험하는 것은 신체의 감각기관이 뇌에 자극을 전달하는 것이며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뇌의 자극을 주는 것이니, '뇌에 가해지는 자극'에 중점을 둔다면 과연 이 둘의 차이점이 있냐는 것과 단순히 뇌에 가해지는 감각 차원이 아닌 '인식과 생각의 문제'라는 논쟁인 것이다. 현실같은 꿈, 꿈같은 현실이라는 영화 매트릭스의 주제, 호접지몽의 주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선택이다. 더구나 우리 세계에서도 가상세계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이퍼의 철학과 관련한 논쟁은 더 이상 가상속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문제는 스미스와 한 거래를 잘 생각해보면 이것은 사이퍼가 완전히 손해보는 거래를 한 것이다. 모피어스를 넘겨 준 다음 지난 기억은 지니고 싶지 않으니 새로운 사람처럼 모두 잊게 해주고 부자에다 유명하게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문제는 그게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게다가 기억을 모두 잊어 버린다면 이 약속까지도 모두 잊게 되니 약속을 깨고 지하철 역의 노숙자 신세로 전락시켜도 사이퍼는 약속이 있었다는 것 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기에 전혀 항의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매트릭스 세계의 기계들은 상대가 싫다고 약속을 뒤집거나 그러지 않는다. 네오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네오와의 약속을 지켰고, 아키텍트 역시 약속을 지킬 거냐는 오라클의 물음에 "내가 인간인 줄 아냐"고 당연하다는 듯 반응했다. 또한 스미스라는 예외를 제외한 다른 요원들은 감정이 없이 지극히 기계적으로 행동하는데, 코드 몇줄이면 현실 조작이 가능한데다 자신들에게 협조적인 사이퍼를 굳이 엿먹일 이유가 없다. 감정이 있는 프로그램도 있고 스미스란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의 요원 프로그램들은 감정이 없는 기계나 다름없다. 즉 "사이퍼가 도와줬으니 은혜에 감사해 잘 살게 해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거래를 했고 그쪽이 자신의 조건을 이행했으니 이쪽도 응당 동의한 조건대로 이행한다"는 논리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계적인 계산으로 생각하면 사이퍼와 같은 배신자를 매트릭스 내에서 우대해주는 전례를 만들면 인간들 중 배신자를 늘려 시온을 통한 매트릭스 리셋 과정을 더욱 쉽게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부탁은 오히려 사이퍼 입장에서 하나의 보험일 가능성이 높다. 본래 매트릭스 바깥의 인간은 매트릭스의 이질감, 어색함을 느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거나, 매트릭스가 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진실을 다 아는 상태로 매트릭스에 다시 돌아간다면 그 안에서 얼마든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즉 "아무 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다시 말해 "매트릭스로 돌아가도 과거의 일을 누설하거나 문제가 될 일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기계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하나의 보장인 셈이다. 지난 9년간의 고난스러운 생활을 모두 잊어버리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은 덤이다.
다만 그가 접촉한 요원이 인간을 감정적으로 혐오하는 스미스라는 특이한 존재였기에 기억 소거 이후 감정에 이끌려 그에게 이런저런 명분을 붙여 나락으로 떨어트릴 가능성은 있다. 모피어스의 심문 씬에서 나오지만 스미스는 매트릭스 세계를 혐오하며 인간들(정확히 말하면 이들의 체취)을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라며 극혐한다. 이에 따라 여기에 영원히 갇힌 자신의 신세로 인한 극심한 분노에 시달리고 있다. 다른 요원들처럼 무감정한 것처럼 보이는 건 어디까지나 연기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금방 격노한다. 아이러니하게 프로그램임에도 작중 등장하는 어떤 인간 캐릭터보다 감정 표현이 강한데, 이런 자라면 "이 새x들이 진작 얘기해줬으면 내가 그 개고생 안 했잖아!"란 유치한 이유를 들어 복수할 당위성이 충분하다.
물론 사이퍼의 거래가 스미스 등 단독 요원 레벨에서 벌인 일이 아니라, 상급 권한 프로그램에서 승인했거나 요원 계층이 합의한 작전이라면, 스미스가 사이퍼의 처우에 개입할 권한이 없었을 수도 있다. 특히 사이퍼가 성공했다면 모피어스라는 굉장히 큰 변수를 확보할 수 있을테니 훨씬 상위 프로그램에서 지휘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레스토랑 장면에서 스미스는 다른 요원과의 통신 연결을 상징하는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었으므로, 스미스와 사이퍼의 협상을 다른 요원들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10]
4. 여담
성경의 유다 가롯과 공통점이 많다. 영화 자체가 메시아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이 두 인물은 한때 예언받은 구원자를 따르다가, 기대했던 이상에 비해 실망스러운 현실을 느껴서 믿음을 저버리고, 결국 높으신 분들과 거래를 하여 선택받은 자와 그의 일행을 배신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영화를 본 우리들은 과연 사이퍼의 배신을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하는 철학적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1] 1951년 9월 12일 생. 대개 비열한 남자, 거짓말쟁이, 배신자, 매국노 캐릭터(...) 전문 배우이다. 워쇼스키 감독의 전작이자 데뷔작인 바운드에서 시저 역으로 출연했으며, 이 작품의 인연 덕분에 매트릭스에도 출연한 듯. 대표 출연작은 구니스, 나쁜 녀석들, 메멘토, 그리고 에미상을 수상한 소프라노스. IMDB[2] 그렇다고 악역만 맡은 건 아니다. 의외로 1994년 개봉한 'Baby's Day Out(국내 제목도 '베이비 데이아웃') 이라는 코미디 영화에서, 주인공인 아기를 납치한 덜떨어진 3인조 도둑 중 1인을 연기했다. 또한 영화 도망자와 속편에서 토미 리 존스가 분한 보안관 샘 제라드의 부하 코스모 렌프로로 나왔는데 51년 생이지만 상당히 젊어 보았던 조 판토리아노와 46년생임에도 상당한 노안이었던 토미 리 존스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똑같이 40대인 둘이 5살 차이가 아니라 적어도 10년 이상은 나이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말았다. 이외에 나쁜 녀석들에서는 주인공 2인방의 상관 역할로 나오기도 한다.[3]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I don't want to remember nothing). 그 어떤 것도요. 알겠어요? 그리고 부자가 되고 싶어요. 중요한 사람 말이죠. 이를테면 영화배우 같은." 이 장면에 대해서는 1986년 이란-콘트라 스캔들 청문회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주구장창 "모릅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란 답변으로 일관했던 일에 대한 조롱이라는 견해도 있다. 참고로 레이건은 배우 출신이었는데 알츠하이머로 인해 'remember nothing' 하게 되었다.[4] 사실 이 때 여유 안 부리고 잽싸게 코드 분리했으면 승리했겠지만...[5] 네오의 한탄에 대한 트리니티의 대답과 사이퍼의 말에 대해 네오가 보이는 반응의 차이를 보면 알 수 있다.[6] 도저가 만든 알코올도 건네주며 히히덕거리고, 농담을 주고받는다.[7] 낮이 없이 어둠이 지속되고 황폐화된데다 기계들이 인간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상황.[8] 매트릭스를 벗어나지 않는 파란 약(Blue Pill)에서 따온 이름이다.[9] 이 장면 바로 뒤에 현실 세계의 마우스가 배식으로 나온 척봐도 매우 맛없어보이는 단백질 보충제의 맛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온다. 암울한 현실과 이에 비교하면 천국같은 가상세계를 보여줘 사이퍼의 배신 동기를 알려주는 부분이다. 한편 이 사이퍼의 스테이크 식사 장면은 작중 내에서 의미와 배우의 맛깔나는 먹방(...) 때문에 영화계에서도 아주 유명한 스테이크 식사 장면으로 꼽힌다.[10] 반대로 스미스가 모피어스 앞에서 본색을 드러내며 광기어린 분노를 표출할 때는 그 전에 이어폰을 빼서 연결을 끊는다. (이 때문에 스미스는 네오가 난리치는 바깥 상황을 전혀 몰랐으며 다른 요원들도 왜 통신이 안 되었느냐고 스미스를 추궁한다.) 즉 사이퍼와 협상은 스미스의 단독 행동은 확실히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