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 步 | 一 | 拜 | |||
석 삼 | 걸음 보 | 한 일 | 절 배 |
1. 설명
세 걸음 걷고 한번 절하는 것.손은 합장을 유지한 채로 세 걸음을 걸으면서 "석가모니불!"을 외치고 절을 하면서 다시 "석가모니불!"을 외치는 모양이다. 선두에는 승려가 직접 목탁을 들고 박자를 맞추면서 앞장서고 뒤에서 절을 하는 동안 자신은 90도 각도로 깊게 허리를 숙인다.
무릎이 남아나기는 할까 싶기도 하겠지만 무릎이 까지는 건 둘째치고 무릎을 굽힐 때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손목에 엄청난 무리가 간다고 한다. 비교적 많은 108배 경험자들의 증언과도 비슷하다.
과거 한식을 다룬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사찰 음식을 소개하면서 어느 단기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1] 여기서 험준한 산길에서 삼보일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울퉁불퉁한 비포장 돌길 위에 무릎을 꿇으려다 망설이는 참가자들에게 승려가 던지는 말이 "돌바닥도 부처님의 품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비슷해 보이지만 별개의 의식으로 오체투지가 있다. 주로 티베트 불교에서 행하는 의식인데 머리를 포함한 온 몸을 땅에 완전히 닿으며 절하는 형태이다. 티베트 불교 신자들은 이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를 동시에 하면서 라싸까지 순례를 행하기도 하는데 당연히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한다.
비폭력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강하며, 시각적으로도 세걸음마다 계속 절을 하는 것이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시위 방법으로 애용된다. 특히 시민불복종 운동과 결합될 경우 시너지가 아주 좋다. 걸어가기도 힘든 거리를 절을 하며 이동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기 때문.
2. 사례
- 2003년 새만금 방조제 간척사업 저지를 위해 4명의 성직자[2] 가 3월 28일부터 5월 31일까지 65일간 전북 부안에서부터 서울 청와대까지 장장 305km를 삼보일배한 사례가 있다. 약 5000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으며, 전국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삼보일배를 처음으로 시민들에게 알린 사건이다. #
-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여당 분열로 야당이 된 새천년민주당의 추미애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의 역풍으로 정당의 존폐가 기로에 놓이자 반성의 의미로 삼보일배를 선보인 바 있다. 당시 4월 3일에서 4월 5일의 2박 3일간, 민주당의 텃밭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 망월동 묘역까지 15㎞에 달하는 삼보일배를 하였다.[3]# 이 일로 무릎과 허리가 상해 한동안 높은 구두도 신지 못하는 등 많이 고생했다는 후문.[4]# 이때 유명해진 별명이 잔 다르크에 빗댄 추다르크인데 사실 이전에 생긴 별명이 이때 유명해졌다고. 하지만 삼보일배로 무색하게 17대 총선은 새천년민주당의 참패(9석)로 끝났다.[5] 삼보일배란 단어를 정치계는 물론, 불교와 거리가 먼 일반인에게도 유명하게 만든 사례로,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준하도 삼보일배를 하여 대중적으로 유명해졌다.
- 레전드는 정관스님이다. 체코에서 한국에서 오신 스님. 3달간 순천 송광사부터 서울 길상사까지 400km를 3보 1배해서 갔다고하는데, 가히 초인의 경지라고 할만하다. 자세한 건 유튜브에서 찾아보자
3. 법적 문제
공도에서 삼보일배 시위를 할 경우 도로교통법[6]에 위반하여 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7]에 처해질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대법원은 시위 방법의 하나로 행한 ‘삼보일배 행진’이 사회상규에 반하지 아니하여 대한민국 형법 제20조 상의 정당행위에 해당,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시하였다. 2009도11395 즉, 삼보일배로 다소간의 도로교통방해가 있더라도 정당한 시위 방법으로 인정되어 처벌되지 않는다.4. 여담
수만휘, 독편사 등의 입시 커뮤니티에는 정말 가고 싶은 대학을 붙여 줬을 때 삼보일배를 해서도 갈 수 있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서유기의 홍해아가 삼보일배를 마치고 불가에 귀의한다.
[1]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사찰 음식 및 템플 스테이를 통해 얼마나 건강이 좋아지는지 의료진이 체크하는 모습도 있다. 실제로 머리까지 깎고 108배도 하면서 정말 빡세게 제대로 할 건 다 했다.[2]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원불교의 성직자), 이희운 목사. 이희운 목사의 경우 내내 십자가를 들고 행했다.[3] 이틀간은 하루 평균 4km였으나 체력의 문제로 갈수록 속도가 느려졌다. 1시간 삼보일배 후 10분 씩 쉬는 방식이었는데 마지막 날 인도가 없는 국도에서만 잠시 휠체어를 이용하는 등 남은 절반 구간을 저녁 6시 40분까지 완주하는데는 일단 성공했다.[4] 당시의 '반성'은 광주 시민들에게 한나라당과 공조한 것에 대해 사과한 것일 뿐 탄핵에 대한 반성은 아니었으나 후일 추미애의 삼보일배 에피소드는 노무현 탄핵에 대한 사과였다고 미화되었다. 추미애가 막판 당론 결정 전까지 탄핵 반대파였다는 점이 결합한 설인 듯. 이 사건으로 인해 지금까지 굽 높은 구두를 못 신는다는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게 에피소드화가 지나친 측면이 있다.[5] 추미애 본인 역시 서울 광진구 을에서 낙선했는데 본인(6선 의원)의 7번 선거 중 유일한 낙선이다. 지역구 유세에 써야 할 시간을 삼보일배에 빼앗긴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6] 제68조 제3항 제2호, 누구든지 도로에서 교통에 방해되는 방법으로 눕거나 앉거나 서있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7] 도로교통법 제151조 제5호에 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