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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8 23:47:50

상준/작중 행적

《그녀의 세계》 주요 등장인물
상준 (작중 행적)
<colbgcolor=#4b0082> 현아 유리 <colbgcolor=#ff0000> 우비
괴물 (피 묻은 발)

1. 개요2. 작중 행적
2.1. 그녀의 세계
2.1.1. 프롤로그2.1.2. 멸망한 세계2.1.3. 현아의 세계2.1.4. 우비의 세계2.1.5. 유리의 세계2.1.6. 기억의 파편2.1.7. 기억의 저편
2.1.7.1. 첫 번째 현아 루트2.1.7.2. 첫 번째 유리 루트2.1.7.3. 반환점2.1.7.4. 두 번째 현아 루트2.1.7.5. 두 번째 유리 루트
2.1.8. 기억의 허상2.1.9. 사건의 지평
2.1.9.1. 진실을 끄집어내다
2.1.10. 그녀의 세계2.1.11. 에필로그2.1.12. 정리와 복선
2.1.12.1. 스토리 해설2.1.12.2. 복선 총정리
2.1.13. 서브 스토리
2.1.13.1. 서브 스토리: 현아2.1.13.2. 서브 스토리: 유리2.1.13.3. 서브 스토리: 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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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녀의 세계의 주인공 상준의 작중 행적을 정리한 문서. 이 게임은 대부분 상준 시점의 1인칭으로 구성되므로 사실상 그녀의 세계의 전체 줄거리를 포괄한다.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2. 작중 행적

2.1. 그녀의 세계

2.1.1. 프롤로그

누군가, 횡단보도에서 날 밀쳤다.
아지랑이가 타오르는 여름이었다.
아무도 없는 도로가,
정적 너머로 매미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다.
어느 여름날 아무도 없던 도롯가에서 학생이었던 상준은 누군가에게 밀쳐진다. 엎어진 상준은 순간 화가 나 뒤를 돌아보는데, 그곳엔 빨간 비옷을 입은 소녀가 있었다. 한여름 날임에도 물웅덩이가 있는 것과 소녀가 비옷을 입은 것에 의아해하던 찰나, 어떤 새까만 자동차가 신호위반에 과속까지 하며 상준의 바로 코앞을 지나가자 놀라서 넘어진다. 횡단보도를 계속 건너갔거나 조금 더 세게 밀쳐졌으면 부딫혔을 상황인 걸 깨달은 상준은 소녀에게 다가간다.

처음엔 차 쪽으로 밀어버리던 것인 줄 알고 따지려 드나, 소녀의 거북할 정도로 공허한 눈빛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괜찮냐고 묻는다. 소녀는 상준을 겁먹은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상준의 까진 상처를 보고 팔을 뻗으려 한다. 그런데 상준이 소녀도 팔에 상처가 있다는 걸 보자마자, 갑자기 주변 도시가 폭우가 쏟아지는 폐허로 바뀌어버린다. 순간 어리둥절한 상준이 정신을 차리자 다시 현실로 돌아와있었고, 소녀도 물웅덩이도 몸에 젖은 자국도 모두 사라져있었다.

소중한 추억도 아닌 그저 두고두고 생각날 기묘한 일을 겪은 상준은 다시 학교로 향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런 사소한 일을 잊어버렸다고 해서.

식칼에 찔리는 건
좀 아니지 않아?

2.1.2. 멸망한 세계

《멸망한 세계 #1》
그저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
그 세계가 나를 불렀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
결국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그건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나는 그 일을 끝내자마자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프롤로그에서 십수 년이 지나 대학생이 된 상준은, 어떤 사건을 저지르고 도망치듯 숨가쁘게 달리고 있었다. 거리를 달리고, 지하철을 타서 아무 역에 내리고, 몇 시간을 쉼없이 달린 끝에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의 병원까지 당도하게 된다.[1] 그 때 습관처럼 폰을 꺼내 보자 엄청난 수의 부재중 전화와 카톡이 와있었다. 그걸 전부 차단한 뒤 상준은 지금까지 자신이 이 상황을 견뎌왔던 것에 신기해한다.

단순히 좁은 곳에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병원으로 들어간 상준은,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에서 4층 버튼을 누른 상준은 어쩐지 크게 녹슬어 보이는 엘리베이터에 기대 한숨을 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멈춘 뒤 내리자, 폐허가 된 병원 복도가 나온다. 무작정 그 복도를 걷던 상준은 멀리서 검은 생머리의 여자가 자신을 바라보더니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것을 본다. 잠시 의아해하지만 지금은 혼자가 좋다는 생각에 그저 앞으로 간다.

하지만 병원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건 물론 건물 전체가 완전 폐허가 되어 있었고, 혼란스러운 감정에 무작정 헤매던 상준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이상한 공간에 떨어진 걸 자각한다. 누군가를 큰 목소리로 불러봐도 아무도 답하지 않았고, 블라인드를 떼어내고 본 바깥 풍경은 상준에겐 충격이었다. 건물들이 모조리 무너지고 안개와 구름이 가득 낀, 세상이 멸망한 듯한 풍경이었기 때문.

상준은 불안감에 자신도 모르게 폰을 꺼내 메신저를 확인하고, 이내 자신이 연락을 차단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폰을 꺼낸 김에 폐허가 된 동네 풍경을 사진으로 찍는다. 이후 무작정 폐허가 된 병원을 방황하던 상준은 아까 탔던 엘리베이터를 타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유턴한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아까 걸은 길보다 더 많은 거리를 걸었다고 느낄 무렵, 문짝이 떨어져 나온 방 하나를 발견한다. 그 방을 들여다보니
파일:그세계1.png
빨간 글씨가 방의 사방에 도배된 기괴한 풍경이 드러난다. 오랜 시간 누군가 갇혀서 쓴 듯한 글씨들과, 건너편에 있는 문을[2] 누군가가 밖에서 격하게 두드리는 풍경에 겁을 먹은 상준은 순간 뒷걸음질 친다. 공황 상태에 빠져있던 상준은 깨진 전등 조각을 밟고 다시 정신을 다잡는다. 그리고 세상이 멸망한 것이 아닌, 멸망한 세상을 비춰주는 다른 세계에 온 것임을 직감한다.[3]
파일:그세계2.png
그 순간 적갈색의 슬라임이 길을 가로막는다. 슬라임은 거대한 정체불명의 그림자를 뒤로 한 채 천천히 상준 쪽으로 미끄러지며 다가오고 있었다. 상준은 겁을 먹고 천천히 뒷걸음 치다가 문득 쇠파이프 하나를 발견한다. 무기를 든 상준은 자신감이 피어올라 쇠파이프로 슬라임을 내리치려 한다. 그런데 순간 뒤에서 나타난 또 다른 슬라임에게 내동댕이 쳐진다. 슬라임에게 붙잡힌 상준은 쇠파이프를 휘두르지만 낡아빠진 파이프 쪽이 오히려 부러질 뿐이었다.
전신을 옭아맨 슬라임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슬라임과 몸싸움을 벌이던 상준은 누군가의 발소리를 듣는다. 순간 공포를 잊은 상준은 몸을 뒤덮은 촉수를 사람의 팔을 잡아 꺾는 느낌으로 떼어낸 다음, 위험하니 오지 말라고 소리친다.[4][5] 하지만 자신이 도망치라고 소리친 그 사람은 이내 상준의 등 바로 뒤까지 도달하고, 상준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뒤를 돌아본다.
파일:그세계 현아1.png
그곳엔 아까 본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는 섬뜩한 표정으로 슬라임들을 통굽으로 짓밟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자는 이내 나이프를 꺼내들더니, 상준을 죽일듯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상준도 순간 자신이 여자에게 죽는다는 것을 직감하는데, 상준은 습관처럼 벤 사과 멘트를 자신도 모르게 던져버린다. 여자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나 곧바로 나이프로 촉수들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이후 상준의 가슴팍까지 나이프를 들이대는데, 여자는 뭔가를 참는 듯한 갈등을 한 뒤 한숨을 쉬며 나이프를 거둔다. 그리고 여자는 상준을 일으켜 세운 다음, 다짜고짜 달릴 수 있겠냐고 묻는다.
여자는 뒤를 가리키는데, 상준이 뒤를 보자 아까 붉은 글씨가 쓰여있던 방엔 어느새 커다란 촉수가 상준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얼떨결에 여자와 함께 달리게 된 상준은 뒤를 돌아보자, 거대한 촉수가 아까 그 슬라임들을 빨아들이는 걸 목격하게 된다.
《멸망한 세계 #2》
그녀는 자신을 현아라고 했다.
그리고, 나보다 누나라고.
자신을 현아라고 밝힌 여자는 이후 상준이 자기를 찌르는 것으로 오해했다고 말하자 삐진 상태였다. 나이프에 묻은 점액을 상준 옷에 벅벅 닦던 현아는, 상준이 자신을 귀신으로 오해하자 한번 더 삐져 말이 끊긴다. 그리고 진짜 귀신 흉내를 내 상준을 놀래킨 다음, 자긴 평범한 사람인데 어떻게 귀신 취급할 수 있냐고 나무란다. 그리고 어린 것이 버릇이 없다며 혀를 차는데 상준은 대학생인 자기가 어려 보이냐고 어이없어 한다.[6] 그리고 그쪽이 몇 살이냐고 묻는데 현아는 흥미있어 하는 얼굴로 자기가 몇 살 같아 보이냐고 묻는다.
* 10대라고 말하면 현아는 술집에서 신분증 검사받을 외모라는 사실에 크게 좋아한다. 현아가 신분증 검사당한 30대 같은 반응을 보이자 상준은 10대 아니냐고 묻는데, 현아가 호칭을 '오빠'로 바꾸며 애교를 부린다. 상준이 발언을 철회하자 현아는 싸늘한 표정으로 찌그러지라고 말한다. 그걸 듣고 상준은 보기보단 나이가 좀 있는 동안이라고 확신한다.
* 20대 동년배라고 말하면 현아는 어딜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거냐며 상준에게 바싹 다가와 얼굴을 올려본다. 그리고 동기 중에 자기 만큼의 얼굴과 몸매를 가진 사람이 있냐며 자신감 있게 묻는다. 상준이 살짝 당황한 투로 좀 예쁘다고 막 들이대는 거 아니라고 지적하자, 현아는 '좀' 예쁘냐고 살벌하게 말한다. 상준이 '많이' 예쁘다고 정정하자 다시 싸늘하게 웃으며 긍정한다. 그리고 상준은 저런 얼굴로 들이대면 말발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 30대+를 고르면 3까지 말하려다 현아가 썩은 표정으로 질책해버려 끊겨버린다. 현아가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고 말하자 상준은 지지 않고 30대라고 말하려 하는데, 현아는 맞고 싶냐고 말한다. 그리고 한번 쳐보라며 몸에 힘을 빡 주자, 현아는 활짝 웃으며 상준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그리고 상준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겨 다시 똑바로 보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상준이 죄송하다 하자 현아는 일단 너보단 훨씬 많다는 소리와 함께 삐진듯 뒤를 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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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20대다. 에필로그에서 대학생인 상준보다 연하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

이후 현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상준의 안부를 묻는다. 아까 죽을 위기에 처했던 것을 걱정한 것인데 상준은 그 말을 듣고 문득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걸 잊고 있었다는 걸 실감한다. 그리고 현아가 긴장을 풀어주려고 나이 관련 농담을 친 것임을 눈치채고 자신이 오랜만에 배려를 받는 쪽이 되었다는 것에 감격한다. 그리고 현아가 손을 잡아끌어 자기가 있으니 괜찮다며 위로한다. 상준은 꾸벅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현아는 이제야 말을 잘 듣는다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하지만 이성을 되찾은 상준은 아직 현아에 대해 잘 모르고 방금 그 칼날이 자기를 찌르려 한 것인지의 여부는 모른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그리고 상준은 아까 자기를 공격한 그것들은 무엇인지와 여기가 어디인지를 묻는다. 현아는 상준이 여기가 어디냐고 물은 것에 기특한 듯이 웃는다. 그 이유는 대개는 무슨 사고가 터진 줄로만 알지 자기가 다른 세계로 옮겨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미사일이라도 떨어진 줄 안다며 펑하는 제스처를 장난기있게 취한 뒤, 일단 돌아가게 해줄 테니까 따라오라고 말한다.
설명을 하나도 안 해주고 따라오라고 말하자 상준은 이를 지적하는데, 현아는 손가락 끝으로 입을 막는다. 순간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 뒤로 빠지려 하지만 이젠 상관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가만히 있는다. 현아는 상준이 돌아가면 이곳에 돌아올 일이 다신 없으니 굳이 알 필요 없고, 그럴 바엔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는 게 낫다며 웃는다. 상준이 따지려 들자 현아는 생명의 은인한테 대드는 거냐며 생색을 내고, 상준은 구해줬으면 책임을 져보라며 일부러 째째하게 굴어본다.
그 말에 현아는 은근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대는데, 상준이 당황하자 현아는 웃으면서 뒤로 물러난다. 상준은 현아가 미인계를 남발하는 걸 보고 외모에 자신있어 한다는 건 눈치채지만, 실제로 예쁜 사람이었기에 딱히 부정은 하지 못한다. 그 다음 현아가 살벌한 표정으로 이곳에 대한 정보를 알면 못 돌아갈 수 있다고 쏘아붙이는데, 상준은 진짜로 병원의 실험실 같은 거라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순순히 따른다.
이후 상준은 현아를 따라 복도 여기저기를 걷는다. 그리고 현아에게 얼이 빠져있다가 순간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폰을 꺼내보다가, 이후 확인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다시 꺼버린다. 현아는 이 세계에 오게 된 경위를 묻는데, 상준은 자기의 행적을 되짚어보다가 엘리베이터를 탑승한 것이 그 근원임을 깨닫고 말해준다.
현아는 어떤 병실 문을 닫으면서 상준의 경우는 흔한 케이스라고 답해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이상한 곳으로 연결되니 상준이 겪은 방식은 흔하다고 말하는데, 상준은 엘리베이터가 이상한 곳으로 연결되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지적한다. 현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상준의 손을 잡고, 손목을 주물럭거리며 엘리베이터가 탑승자 모르게 조작되었을 수 있다며 웃는다. 그리고 외국의 살인마는 이 수법으로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웃는데, 상준이 여긴 외국이 아니라고 따지자 현아는 웃으면서 돌아선다. 그리고 상준은 현아에게 무서운 이야기 좋아하냐고 묻자 현아는 크게 긍정한다. 오랜 친구인 거마냥 손목을 아직도 조물딱거리면서 웃는 현아를 보고, 상준은 너무 만지는 거 아닌가 싶지만 분위기를 봐서 뿌리치지 않는다.
이후 둘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나, 상준은 묘하게 현아가 같은 곳을 빙빙 도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자신은 길을 몰랐기에 잠자코 따라가는데, 이후 복도를 가로막는 거대한 문을 마주한다. 상준이 현아를 앞서가서 먼저 문을 열자, 현아는 살짝 당황한 투로 뭘 알고 연거냐고 묻는다. 그 말에 상준은 자신의 버릇이 튀어나온 것을 직감하고 얼타는데, 현아는 그런 상준을 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이 따갑게 느껴져 상준은 다시 앞장서려 하나, 어째선지 눈앞에 같은 문이 또 있는 걸 본다. 그리고 두 번째 문은 아래쪽에 알아보기 힘든 빨간 자국이 찍혀있었다.
이런 문이 2연속으로 있다는 것에 의아해하며 두 번째 문을 열려는 순간, 현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상준의 뺨을 붙잡으며 막는다. 뺨을 꼬집는 현아를 보고 상준이 따지려 들자 현아는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방금 열었던 문을 누가 거칠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상준이 살짝 올려다보니
파일:그세계3.png
그곳엔 거대한 머리가 둥둥 떠있었다. 눈코입에서 검은 액체가 줄줄 흐르는 그것은 이마로 문을 들이받으며 상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준을 '자기야'라는 호칭으로 부르는데, 상준은 그 목소리가 두번 다시 듣고 싶지 않아했던 목소리임을 눈치채고 크게 동요한다. 그리고 머리가 빨리 열라고 보채자 상준은 순간 당황하지만, 이후 저것이 자신이 아는 사람과 얼굴이 같아도 그 사람이 아니라는 직감에 안심한다.
이후 머리는 빨리 열지 않으면 헤어질 거라며 협박하고 상준은 다시 동요하기 시작한다. 현아는 그런 상준을 누르며, 자긴 무슨 말이 들리는지 모르나 절대로 대답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머리가 계속 상준을 자극하는 발언들을 쏟아내자 결국 참지 못한 상준은 얼굴을 직시한 다음, 결국 너는 그 사람도 아닌 주제에 따라하면서 시비거는 거냐고 따진다.
현아는 그런 상준의 뺨을 잡아 멈춰세운 다음, 놀란 거 감추려고 화내지 말라고 진정시킨다. 상준이 자기 심리를 눈치챘냐고 묻자 현아는 표정만 봐도 뻔하다는 말과 함께 껴안는다. 그리고 현아는 그 사람은 신경쓰지 말고 전부 자기에게 맡기라며, 상준을 따뜻하게 쓰다듬는다. 그 사이 문을 두드리던 머리는 점점 액체로 녹아버려 형태를 잃고 만다.
현아가 쓰다듬는 감각이 어쩐지 익숙하다고 생각할 무렵, 현아는 상준을 이끌고 두 번째 문으로 향한다. 그런데 아까까지 있었던 두 번째 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고, 상준은 한번 더 당황한다. 이후 복도를 걸으며 현아는 이 세계에서 절대 아무 문이나 함부로 열지 말라며 경고한다. 상준이 그 이유를 물으려 하자 현아는 상준의 손을 꽉 잡으며, 문이 문이 아닌 가짜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짜 문을 열면 어디로 가냐고 묻자, 현아는 섬뜩하게 웃으며 가짜 문이 사라진 곳의 천장을 가리키는데, 그곳엔 뭔가가 잡고 매달린 듯한 커다랗고 새까만 손자국 두 개가 남아있었다.
현아는 이후 아까 문 너머로 누구의 얼굴이 보였냐고 묻는다. 상준은 이제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고 얼버무린다. 현아는 살짝 화가 풀린 듯한 말투로 혹시 머리 괴물의 위쪽은 봤냐고 묻는다. 상준이 못 봤다고 말하자 현아는 머리가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안 봐서 다행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현아는 따뜻하게 웃으면서 무서웠냐고 물으며 다가온다. 그리곤 무서웠으면 달래주겠다고 하는데, 상준이 달래주는 방법을 묻자 현아는 바닥에 있던 작은 빛 덩어리를 줍는다. 그리고 상준의 손에 쥐여준 다음 그 손을 상준의 가슴팍으로 미는데, 그 순간 빛 덩어리가 상준의 몸 속으로 흡수된다. 상준이 놀라면서 빨리 꺼내라고 말하자 현아는 섬찟하게 웃으며 그게 있어야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상준이 빛 덩어리의 정체를 묻자 현아는 답하지 않고 다시 길을 걷는다. 그리고 곧 돌아갈 사람이 알 필요 없다며, 알고 싶으면 여기 남기라도 할 거냐고 말한다. 상준은 자신을 내보내려는 투의 말을 하는 현아의 표정이 어쩐지 자신에게 매달리는 듯한 표정임을 눈치챈다.
《멸망한 세계 #3》
우선, 현아 씨를 믿어보기로 하자.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듯한 그녀를.
빛 덩어리를 주으며 앞으로 가던 상준은 엘리베이터가 두 대나 있는 풍경을 목격한다. 한쪽은 아까 타고 온 것처럼 녹이 슬고 아래에 빨간 손자국이 찍혀 있었고, 한쪽은 주변 풍경이랑 이질감이 들 정도로 새 것 같은 생김새였다.
현아는 둘 중 어느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는지 묻고, 상준은 기억을 되새겨 낡은 쪽을 고른다. 현아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며, 진지한 표정으로 정말 맞냐고 되묻는다. 상준은 현아의 진지한 태도에 다시 한번 기억을 차근차근 되새기고, 이 엘리베이터가 맞음을 확신한다. 현아는 이런 당장이라도 추락할 거 같은 엘리베이터를 왜 탔냐며 웃는데, 상준은 그런 현아가 억지스럽게 웃는다는 것을 눈치챈다.
이후 엘리베이터에 상준이 타려고 하자, 현아는 옷자락을 붙잡는다. 현아는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는데, 이후 고개를 들고 웃어 보이며 이대로 돌아가도 괜찮냐고 묻는다. 상준이 어리둥절해하며 자신이 돌아가면 큰일이 나냐고 묻자 현아는 그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다소 섬뜩한 표정으로 정말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
상준은 그 순간 돌아가면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떠올리고 잠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니, 무심코 폰을 확인해버린다. 그리고 현아는 그런 상준에게 돌아가면 뒷수습을 해야 하지 않냐고 섬뜩하게 묻는다. 그리고 현아는 살벌한 표정으로 오늘 사귀던 사람이랑 헤어졌고, 죄책감에 도망치지 않았냐고 말한다. 상준은 자신의 사정을 꿰뚫어보는 건 둘째치고, 헤어지자고 말한 건 여친 쪽인데 자기가 왜 죄책감을 느끼냐고 따진다.
하지만 현아는 여친이 헤어지자고 말한 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알지 않았냐고 묻는다. 현아 말대로 실제 상준의 여친은 헤어지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연애 주도권을 잡는 스타일이었고, 그런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살아오던 상준은 여친이 화난 이유가 아주 사소해도 항상 자신이 싹싹 빌며 용서를 구했다.[8] 하지만 수도 없이 그 말을 듣고 살아온 상준은 오늘 헤어지자는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폭발해버려 진짜 이별을 통보했고, 그 죄책감에 거리를 방황하다 병원까지 온 것이었다.
현아는 연애라는 건 밀고 당기는 건데 상준이 지나치게 오냐오냐해준 탓에 여친 쪽의 버릇이 나빠졌고, 결국 상준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말한다. 현아가 미묘하게 쌓인 걸 털어내는 듯 화난 표정으로 말하자 상준은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남의 연애사에 왜 참견이냐고 화를 낸다. 그런데 현아는 뭔가 씁슬한 표정으로 네 쪽에서 보면 처음이 맞겠다고 중얼거린다.
화를 내던 상준은 문득 현아가 자신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상준이 추궁하자 현아도 무언가 실수한듯 낭패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상준은 스토킹이라도 당한 심정에 섬뜩함을 느끼고 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현아는 당황한 듯 해명을 시작한다. 바로 폰에 커플 사진이 달려있던 것, 그럼에도 연락을 받을 생각이 없는 거마냥 폰을 꺼놓은 것, 무심코 몇번 폰을 들여다보려 했던 것을 종합해 '애인에 잡혀 살던 사람이 방금 헤어졌다'는 추측을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병원에 온 것은 헤어진 다음 멘탈 깨져서 아무데나 방황하다가 우연히 들어온 것이라 추리했다고 해명한다. 상준에게 접수증이 없었던 것을 보아 본인이 진료받으러 온 것은 아니고, 입원실은 옆 건물이기에 병문안을 온 것일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 그 증거.[9] 여기에 아까 그 머리 괴물은 가장 괴로운 기억을 모방하는 것이기에, 아까 머리가 애인의 얼굴을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하지만 상준은 지지 않고 어떻게 자신의 사정을정확히 알았냐고 묻는다. 마치 추측으로 결론을 뽑아낸 것이 아닌 결론을 가지고 추측을 갖다붙인 듯한 태도에 의아해하던 중, 순간 현아가 준 빛 덩어리로 자신의 사정을 읽힌 것이라 생각한다. 그 때 머리카락을 꼬고 있던 현아는 희미하게 웃더니, 이후 말을 할 때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닌 목적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그 말에 순간 당황한 상준은 이후 현아에게 밀쳐져 반대쪽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버린다. 사실 현아가 상준을 당황시킨 건 이 엘리베이터로 들어가게 만들기 위해서였으며, 일부러 뒷걸음질 치게 만들어 다른 엘리베이터 바로 앞까지 가도록 유인했던 것. 상준이 현아의 의도를 깨닫자마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버린다. 그리고 현아는 밖에서 이곳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자 망각의 저편이고, 도망치고 싶어서 왔겠지만 여긴 낙원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대화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는 말을 하며, 닫히는 문을 잡고 있는 상준을 뒤로 한다.
그 때 다시 현아가 뒤돌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자신이 나쁜 생각을 할 것 같다며 슬프게 웃는다. 상준은 현아의 말과 표정의 의도를 무엇 하나 이해하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걸 막지 못한다. 이후 엘리베이터 불빛이 붉은 색으로 바뀌더니 크게 진동하기 시작한다.
당황한 상준은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붙잡는 감각을 느끼는데, 뒤를 돌아보자 빨간 우비를 쓴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얼굴이 안 보이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소녀는 어째선지 손이 그림자마냥 연기처럼 되어 있었고, 상준은 당황해서 누구냐고 말한다. 그 때 소녀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데, 상준은 어째선지 이 소녀를 예전에 본 거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그 순간 소녀가 녹아내려 아까 그 슬라임의 형태로 바뀌어버린다. 상준은 크게 놀라는데, 그 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다시 사람이 북적거리는 평범한 병원으로 돌아왔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현아도, 슬라임으로 변해버린 소녀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후 홀로 아까의 세계에 남아있던 현아는 홀로 슬프게 독백한다.
그야 알지...
얼마나 바란 일인데...
하지만
...
그렇다고 내가 널 가지러 들면... 안 되는 거겠지?
다시 상준의 시점으로 돌아와, 상준은 자신이 병원 5층에 있음을 본다. 그리고 병원은 4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4층을 생략하는 일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이후 상준은 병원을 왔다갔다 해보지만 어디에도 4층과 낡은 엘리베이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아까 폐허를 찍은 사진을 뒤져보지만 모두 까만 화면만 찍혀있었다.
상준은 꿈이라도 꾼 기분으로 병원을 나가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 때 다시 전 여친에게 전화가 걸려오는데,[10] 전 여친은 이별 통보하고 튀다니 진짜 미쳤냐고 욕을 하고, 헤어지기 싫으면 당장 늘 그랬듯 애걸복걸하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상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완전한 이별을 단언하며 번호를 마저 차단한다. 그리고 어제까지 이별이 싫어 매달렸던 자신이 이 정도로 과감한 성격으로 바뀌자, 마치 하루만에 뭔가가 끊어져 바뀌어버린 듯한 감정을 느낀다.
그래도 전 여친과의 관계는 언젠가 이렇게 끝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기에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창밖의 풍경을 보며 문득 자신이 지금까지 너무 고개를 숙이고 살았다며 감회를 느낀다. 그리고 아까 환각같은 세상과 현아를 만난 것도 모두 이걸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간다.[11]

2.1.3. 현아의 세계

《현아의 세계 #1》
그건 정말로 꿈이었을까?
아니면...
구급차 소리를 듣고 상준은 눈을 뜬다. 눈을 뜨자 어느덧 자신이 아까 병원에서 봤던 붉은 글씨 방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전까지의 기억이 사라져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혼란스러워하던 도중, 자신의 눈앞에 굉장히 작은 체형의 어린애가 있는 걸 본다. 그 애는 미동도 없이 바닥에 붉은 글씨들을 써내려가고 있었고, 상준이 무심코 다가가려 하자 일어난다.
그 애가 상준을 돌아보는데 어째선지 얼굴이 없었다. 얼굴 뿐만 아니라 맨살이 드러나는 부분은 전부 그림자로 채워져있었다. 상준이 얼굴도 없이 낙서를 하면 어떡하냐고 다그치자, 어린 애는 잊어버렸다고 중얼거린 뒤 이번엔 벽에 낙서를 하기 시작한다.
파일:그세계4.png
그런데 상준은 꼬마가 한 낙서의 내용이 '엄마, 문 열어 줘.'인 것임을 보고, 여기서 나가고 싶냐고 묻는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두 개의 문 중 하나를 가리키는데, 그곳엔 녹슨 자물쇠와 나가려고 긁어댄 흔적이 있었다. 상준이 소녀가 갇혀있다는 생각에 문을 발로 차서 열어버리자, 문이 열린 곳에는 안개로 덮인 일그러진 공간이 있었다.
상준은 보자마자 자기와 달리 소녀는 이곳을 넘어갈 수 없다는 걸 직감하고, 어떻게 같이 나갈 수 있는지 묻는다. 소녀는 도와줄 거냐고 묻고 상준이 긍정하자, 옆에 떨어져 있는 빛 덩어리를 주워달라고 부탁한다. 소녀는 자신이 주울 수 있는 건 비 오는 세상의 것들 뿐이라는 말과 함께 부탁하고, 실제로 빛 덩어리를 잡으려 해도 손이 통과해버리는 광경을 보여준다. 상준이 빛 덩어리를 들자 소녀는 먹여달라며 까치발을 들고 입을 벌리고, 빛 덩어리를 먹은 뒤 이제 오빠야가 자신을 옮겨주면 넘어갈 수 있다고 알려준다.
상준은 소녀를 안고 문 밖의 안개를 해쳐나간다. 아픈 듯 고개를 품에 묻는 소녀와 함께 마침내 폐허가 된 병원에 도착한다. 그런데 병원에 오자마자 소녀는 품에서 나와 감사도 안 하고 어디론가 달려가버린다. 상준은 그런 소녀를 보고 화를 내지는 않고, 그저 애답다고 생각한 다음 아까 있던 붉은 글씨 방을 다시 보는데, 누군가가 그 방에 있던 남은 하나의 문을 밖에서 두드린다. 그리고 상준은 문을 두드리는 자의 정체를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소녀를 찾기 시작한다.
어쩐지 진흙탕에 빠져드는 듯한 걸음걸이로 병원 복도를 걷던 상준은, 이후 자신이 진흙탕에 빠진 것이 아니라 다리가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상준은 그럴 수도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형체도 안 남고 녹아버린 하체를 이끌고 미끄러지듯이 나아간다. 그렇게 한참을 해맨 끝에 마침내 소녀를 찾는데, 그 소녀 역시 자신처럼 녹아내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 소녀 옆에는 사람 만한 크기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림자가 입체적으로 서 있는 기묘한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찰나, 그 그림자는 옆에 있는 쇠파이프를 들고 소녀를 내리칠 준비를 한다. 어린 애를 가차없이 폭행하려는 그림자를 막기 위해 상준은 그림자를 붙잡고 넘어진다. 이후 둘은 몸싸움을 벌이는데, 상준은 자신의 몸이 흐물흐물해진 덕에 평소보다 훨씬 유연하게 움직이는 걸 느낀다. 그림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소리치며 발악을 하자 상준은 그림자의 전신을 옭아매며 압박을 하고, 소녀에게는 엘리베이터로 도망가라고 소리친다.
그 때 정신을 차린 상준은 이 모든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뒤늦게 눈치챈다. 자신의 행동, 다시 돌아온 폐허 병원, 얼굴이 없는 소녀, 녹아버린 몸 등 하나같이 기괴한 현상들을 모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을 이상해하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듯 아득한 기분을 느낀다. 이후 곧바로 길고 검은 머리카락의 누군가가 자신의 심장을 나이프로 관통하는 감각을 마지막으로 상준은 꿈에서 깬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이 꿈의 내용은 이전 병원에서 봤던 슬라임의 시점이다. 상준이 상대했던 두 마리의 슬라임이 각각 꿈 속의 상준과 우비를 입은 소녀였다는 것이 반전.
아무튼 꿈에서 일어난 상준은 너무나도 기괴한 내용의 꿈에 얼떨떨해한다. 그리고 그런 기괴한 상황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던 자신을 의아해하더니, 꿈 속에서의 자신은 본래와 전혀 다른 상식과 기억을 가진다는 썰을 접했던 걸 떠올린 뒤 자신이 딱 그랬다고 생각한다.
다시 정신을 차린 상준은 폰을 키자마자 엄청난 수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 있는 걸 본다. 전 여친이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마구잡이로 연락을 한 것인데, 대충 전부 차단한 다음 다시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예전엔 여친의 기분을 배려하기 위해 땀 뻘뻘 흘렸는데 지금은 감정의 동요가 아예 없어진 것이 여전히 신기하다고 느낀다. 헤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버린다는 것을 실감할 무렵, 대학교도 종강한 현 상황에 심심함을 느낀 상준은 무언가 몰두할 일을 탐색하려 한다.
예전에 여친의 반대로 그만둔 체육관을 떠올리며 옷을 입던 상준은, 어제 입은 재킷의 등 부분에 누군가 걷어찬 흔적이 있음을 깨닫는다. 어제 일이 환각이나 꿈이 아니었음이 증명되자 상준은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마침 헤어진 직후라 몰두할 일을 찾던 상준은 이것이 딱 파해치기 좋은 신기한 현상이라 생각하고, 다시 멸망한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엘리베이터를 계속 타봐도 멸망한 세계엔 도착할 수 없었고, 상준은 무언가 조건이 있음을 추리한다. 하지만 그 조건이 무엇인지 몰라 막막해할 무렵[12] 정각을 알리는 병원 종소리가 울린다. 어제도 정각 종소리와 함께 그 세계에 입장했던 걸 떠올리고 혹시나 싶어 인파들과 엘리베이터를 타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사람들에 밀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4층을 누르지도 못한 채 구석에 박혀 그 세계의 실존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그 때 층이 도착하자 그 많은 사람들이 한번에 내린다. 단체 검진이라도 있는 것마냥 사람들이 한번에 내리는 걸 의아해하는 동시에 고개를 들자, 눈앞엔 폐허가 된 병원이 있었다.
《현아의 세계 #2》
후회하긴 늦었지만,
다리는 빠르게.
파일:그세계5.png
정말로 다시 멸망한 세계로 돌아오자 혼란에 빠진 상준은 자신의 눈앞에 검은 물체들이 줄을 서고 있는 걸 확인한다. 단체 진료라도 받는 거마냥 줄지어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그것들을 보며 상준은 순간 이곳에 돌아오려 한 것에 후회한다. 그리고 멸망한 세계로 돌아오는 조건이 하루에 한번, 정각 종소리가 울릴 때 엘리베이터를 탑승하는 것임을 눈치채고, 다른 인파들이 없는 걸로 보아 본인만 넘어올 수 있는 것임을 생각해낸다.
그런데 생각을 이어나갈 틈도 없이 검은 것들이 줄지어 움직이기 시작하고, 상준도 어쩔 수 없이 그것들에 맞춰 줄을 서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상준의 뒤에도 검은 것들이 주르륵 늘어서게 되는데, 어제 슬라임이나 머리 괴물과 달리 공격 의사가 없는 것에 의아해한다. 그 때 줄이 앞으로 이동하고, 뒤의 검은 것이 빨리 가라고 자신의 등을 떠민다. 상준은 검은 것들이 자신이 사람인 걸 눈치 못챈 거라 확신한다. 일단은 들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줄이 어디로 이어지는 것인지 몰라 불안해한다.
파일:그세계6.png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자, 상준은 이 줄의 끝이 어떤 문 내부인 것을 본다. 그런데 검은 것 하나가 그 문으로 들어가자 문이 쾅하고 닫히더니, 끔찍하게 분쇄되는 소리와 함께 문 아래로 뇌 파편이 섞인 피가 흘러나온다. 줄에 계속 서있으면 백프로 죽는다는 생각이 들자 상준은 조심스럽게 줄에서 빠져나오려 하는데, 그 순간 모든 검은 것들이 자신을 쳐다본다. 결국 줄을 벗어나면 사람인 걸 들킬 거란 생각에 다시 복귀하고, 잠시 이성을 잃은 상준은 근처 쇠파이프를 주워 다 죽여버릴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다잡고 자신이 평범한 사람 환자를 괴물로 보는 환각에 빠져있을 수도 있단 생각에 무력 충돌은 단념한다. 그리고 그냥 자신의 차례가 됐을 때 냅다 도망가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렇게 자신의 차례가 되자 상준은 얌전하게 문 옆에 있는 복도를 향해 걷는다. 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지만 일단 생존을 위해 도망가는데, 의외로 검은 것들은 아무 반응도 않고 계속 문 내부로 들어간다.
파일:그세계 유리1.png
이렇게 안심을 하던 순간, 상준은 자신 눈 앞에 있는 전신 거울에 여학생 하나가 비쳐있는 걸 목격한다. 거울에 비친 병원이 아닌 말그대로 거울 속에 존재하는 그녀는, 상준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려버린다. 그 순간 검은 것들이 일제히 상준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하고, 분노한 상준은 거울을 깨뜨리지만 여학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검은 것들을 피해 미친듯이 도망치던 상준은 병원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유리로 된 1층 정문까지 도달한다. 그런데 그 정문 너머엔 그 여학생이 다시 인사를 하고 있었고, 그녀는 상준을 조롱하는 말과 함께 밖으로 못 나가게 정문을 잠궈버린다. 상준이 당황해서 문 열라고 소리치지만 정문 너머에서 여학생은 자긴 열 줄 모른다고 비웃는다.
결국 검은 것들에게 완전히 포위당한 상준은 죽을 땐 죽더라도 자신을 몰아넣은 그 학생도 말려들게 하고 싶단 생각에, 일단 전투테세를 갖춘다. 그리고 검은 것들이 하나씩 덤벼오는데, 사람과 비슷한 체형과 구조를 갖춘 덕에 상준은 뛰어난 격투 실력으로 하나를 처리하는데 성공한다.[13]
이후 거대한 덩치를 가진 다음 타자가 덤벼드는데, 상준이 제압하려 하는 순간 덩치가 작은 슬라임들로 분열되더니 상준을 덮쳐버린다.[14] 그것들에 밀려난 상준은 자신 뒤에 어느새 나타난 문이 있는 걸 보고 그 쪽으로 손을 뻗는다. 하지만 빨간색 손자국이 찍힌 문 안에 손을 넣자, 그 안에서 사람 손 같은 무언가가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고 기겁해하며 팔을 뺀다.
그래도 검은 것들의 주의를 끈 덕에 정문까지의 도약거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상준은 신발 밑창에 돌조각을 넣은 다음 정문을 향해 달려들어 발차기를 한다. 정문은 금이 가더니 완전히 깨져버리고, 여학생은 상준의 괴력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상준이 깨진 정문 너머로 몸을 옮기는데, 갑자기 물살을 거스르는 저항을 느낌과 동시에 어떤 폐허 학교로 순간이동 해버린다.
폐허가 된 학교에 도착한 상준을 보자 그곳에 있던 여학생은 정말 놀라며 뒤로 넘어져버린다. 여학생이 여길 어떻게 넘어왔냐며 놀라자마자 상준은 검은 것들에게 다시 잡아당겨져 병원으로 끌려가버리고, 뒤로 넘어진 상준은 정신을 잃는다.
다시 정신을 차린 상준은 누군가가 자신을 병원 복도에서 질질 끌고 있는 걸 느낀다. 다시 정신을 차리자 자신은 한 병실의 침대에 누워있었고, 옆에는 현아가 상준 몸에 박힌 유리 조각들을 빼내고 있었다. 현아가 유리 조각들을 하나씩 뺄때마다 상준은 따갑다며 소리치자 현아는 엄살이 심하다면서 웃는다. 그 모습에 상준은 유리 조각 박혀본 적 없냐고 묻고 현아는 해맑게 긍정한다.[15]
아무튼 상준은 주변을 둘러보는데, 병실 내부는 물통을 비롯한 이런저런 생활 용품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곳이 현아가 거점으로 쓰는 것임을 직감한 상준은 이후 자신의 스마트폰도 놓여 있는 걸 깨닫고 빠르게 회수한다. 누가 보지 않았을까하며 걱정하는데, 현아는 그런 상준을 보고 시치미를 때듯 휘파람을 분다.
현아의 간호가 계속되자 상준은 자기가 치료 하겠다며 거절하려 한다. 하지만 현아는 아쉬운 표정으로 자기가 해주는 게 싫냐고 살짝 애교를 부리는데, 상준은 결국 현아에게 치료를 맡긴다.
《현아의 세계 #3》
다시 한번 그 사람을 만났다.
그냥 그게 기뻤다.
웃으면서 치료하던 현아는 싸늘한 눈빛으로 바뀌며, 왜 다시 돌아온 거냐고 캐묻는다. 이곳에서 하고 있던 일이 아닌, 이곳에 온 목적부터 묻는 현아의 태도에 의심을 품은 상준은 현아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서 호기심에 돌아왔다고 답한다. 현아는 어이없다는 투로 겁대가리를 상실했냐며 따지는데, 상준은 자신의 호기심이 겁대가리보다 중요하다며 지지 않는다.
현아는 이곳은 일부러 돌아올 만한 장소가 아니라고 진지하게 말한다. 상준은 마음도 심란했겠다 자아 찾는 여행을 하던 김에 왔다고 밝히고, 현재는 후회 중이라며 반성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참에 세계의 정보에 대한 걸 다시 묻는데, 현아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며 고민하다가
막상 진짜로 오니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아... 그냥 확...
이라고 중얼거린다. 이후 현아는 화가 난 표정으로 다가와 상준 앞에 주저앉고 한숨을 쉰다. 상준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냐고 묻는데, 현아는 곧바로 세 가지라고 말한다. 상준이 세 가지나 잘못했냐고 묻자, 현아는 그 뜻이 아니라 세 가지의 질문만 받아주겠다고 답한다. 고민 끝에 알려주기로 한 이유는 호기심 때문에 또 혼자 멋대로 사고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그 대신, 현아도 상준에게 질문을 하겠다고 말한다. 자신이 알려줄 것이 딱히 없던 상준은 의문을 표하지만, 현아는 당당하게 자신이 상준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상준이 당황하자 현아는 이곳에 굳이 다시 들어온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고, 의심스러운 상준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생겨서라고 해명한다. 그 다음 뭘 기대했냐고 웃으면서 주저없이 양손으로 상준의 뺨을 감싸더니 얼굴을 들이댄다. 상준이 여유를 가지고 유혹에 안 넘어갔다는 걸 보여주듯 웃자 현아는 재미없다는 듯이 표정을 구긴다.
그 다음 현아는 왜 이렇게 자신을 경계 안 하냐며 화난 티를 낸다.[16] 상준은 두번이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경계할 수 없다고 말하자 현아는 살짝 부끄러운 티를 내더니 의심 좀 하라고 잔소리를 날린다.

아무튼 첫 번째 질문으로 이곳이 어디인지와 검은 것들의 정체를 묻는데, 현아는 단칼에 둘 다 모른다고 답한다. 상준이 어이없어 하자 현아는 정말로 모르고 있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알 거라 생각한 이유를 묻는다. 상준은 현아가 이전에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굴어서 그랬다고 말하자, 현아는 자길 의심해서 난동부리는 사람들 때문에 일부러 아는 척했다고 밝힌다.[17]
그러면 상준은 엘리베이터에서 헤어지기 직전, 오글거리는 말투로 이곳이 어딘지 설명한 건 왜 했냐고 말한다. 현아가 그 질문을 듣자 부끄러운 듯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그땐 다신 안 볼 줄 알아서 그랬닥느 자그마하게 말한다. 허세를 부렸다는 것이 들통나자 현아는 고개를 돌리고, 허둥거리면서 변명을 시작한다. 자긴 그저 이곳에 오래 있었고 우연히 들어온 타인들을 내보내 주는 봉사를 하고 있을 뿐이지 자세한 정보들은 모른다고.
상준이 하찮다는 투로 그럼 아무것도 모르냐고 묻자 현아는 헛기침을 하며 있다고 소리친다. 그건 바로 이 세계는 우리가 살던 세계와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곳이고 이상한 것들이 돌아다닌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건 상준도 알고 있었고, 현아가 알고 있다고 말한 게 이게 전부였다는 것. 이쯤되자 상준은 그런 현아를 보고 단순히 허둥거리는 건지, 아니면 모른 척하기 위해 일부러 얼버무리는 건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무튼 현아가 말한 미묘하게 다른 세계라는 건, 주변의 거리나 지형은 현실과 거의 일치하되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상태라는 것이다. 즉 한마디로 말하면 이세계라고.[18]
이제 현아가 질문하기 시작한다. 현아가 물어본 것은 이곳으로 돌아오는 방법이었는데, 자긴 많은 사람들을 여기서 탈출시켰지만 다시 돌아온 건 상준이 처음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준에게 멸망한 세계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한번 나가면 다시 못 들어올 거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냐고 묻기도 한다. 상준이 하나도 모른다고 말하자 현아는 어이없다는 투로 모르면 어떡하냐고 말하고, 장갑을 벗은 뒤 상준의 손목을 꾹꾹 주무른다.
상준은 일단 자긴 어제 엘리베이터를 통해 이곳에 도착했다고 말한다. 현아가 그 말을 듣자 자기도 봤다고 말하려다가 급하게 얼버무리는데, 상준은 무언가 잘못 말한 듯 시선을 피하는 현아를 이상하게 여기며 다시 말을 잇는다. 아무튼 자기는 여기 다시 돌아오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들락거리다 정각이 되는 타이밍에 성공했다고 알려준다.
현아는 그 소리에 뒷목을 잡으며 어이없다는 제스처를 취하다가, 들어오는 순간 특이사항이 없었냐고 묻는다. 상준은 어젠 4층 버튼을 눌러서 왔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는 걸 떠올리고, 돌아가는 법이 사라진 거 아니냐며 걱정한다. 현아는 살짝 겁을 주지만, 어제랑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나갈 수 있다고 안심시킨다. 4층 버튼을 눌러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들어와야 4층 버튼이 생기는 거라고.
그 때 현아가 아무튼 질문 세 개 끝났다고 단정짓는다. 모른다고 넘긴 게 두 개나 됐기에 상준은 억울해하는데, 그런 상준을 보고 현아는 재밌어 죽으려 하는 표정을 짓는다. 상준은 속으로 현아의 인성 문제를 거론하지만 별 반항은 못한다. 다행히 현아가 장난이라며 제대로 대답해주겠다고 말하는데, 다소 진지한 얼굴로 그 대신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부탁한다.
현아는 이후 상준의 얼굴을 멍하니 보더니, 상대가 억지 주리는 거 알면서도 다 받아주는 타입 아니냐고 말한다. 여기에 그러니 연애하면 고생한다고 덧붙이다가, 다시 질문을 받기 시작한다.
*왜 지난번에 다른 엘리베이터로 밀쳤던 건지 물어본다: 현아는 의외로 쿨하게 인정하더니 자긴 도와준 건데 말투가 왜 그러냐며 따진다. 그러자 상준은 자신이 엘리베이터에 혼자 남았을 때 빨간 옷을 입은 누군가를 봐서 무서웠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아는 그 말을 듣자마자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교복이 아닌 빨간 옷을 본 것이 맞냐고 재차 묻는다. 현아가 보여준 적 없는 살벌한 분위기를 뿜자 상준은 당황하는데, 현아는 무표정인 채로 천천히 시선을 돌리더니 말이 헛나왔다며 사과한다. 상준은 분명 무언가 사정이 있는 것임을 짐작하나 개인사정인 것 같아 넘어가기로 한다.

아무튼 현아는 자신이 상준을 밀친 이유는 처음 타려고 했던 녹슨 엘리베이터가 가짜 문이었기에 그랬다고 말한다. 원래 가짜 문은 아래 빨간 손자국이 찍혀있어야 하는데, 이전 엘리베이터는 녹이 슨 나머지 자신이 눈치채는데 한발 늦었고, 눈치챘단 걸 들키는 순간 가짜 문 쪽에서 반응하기에 일부러 티 안나게 다른 엘리베이터로 유도한 것이라고. 해명을 듣자 상준은 현아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나중에 같이 나가면 치킨이라도 사줄 생각을 한다.

그 때 아까 검은 것들에게 쫓기던 중 정문으로 고개를 내미니 학교에 잠시 들어왔던 걸 떠올리고, 이를 현아에게 말해준다. 현아는 잠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티를 내다가 상준이 마치 물 속으로 고개를 집어넣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해주자, 현아는 크게 놀란다. 그리고 안 아팠냐며 걱정하더니 아무런 문제 없이 특정한 구역을 넘은 것이 맞냐고 재차 묻는다. 이후 흥분을 가라앉힌 현아는 너라면 가능하겠다며 중얼거린다. 상준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현아는 답하지 않고 얼버무린다.

*날 어떻게 구해낸 건지 물어본다: 현아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냥 검은 것들 사이에 들어가서 거기 기절해있던 상준을 끌고 나왔다고 무덤덤하게 말한다. 상준은 검은 것들이 그렇게 무섭게 덤벼놓고 아무것도 안 한 것에 어이없어 하나, 현아는 검은 것들이 원래 상준을 잡아먹을 수 있는 괴물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상준을 공격한 건 단지 상준이 병원에 온 타이밍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참고로 검은 것들은 가끔 대량으로 나타나서 가짜 문으로 들어가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 현아는 여기서 가짜 문으로만 들어가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말하는데, 상준이 가짜 문 내부에 뭐가 있냐고 묻자 현아는 살벌하게 위험하다고만 말한다. 또한 적어도 한번 들어간 검은 것을 다시 본 적은 없으며, 그럼 가능성은 두 가지라고 말한다. 바로 아예 다른 곳에서 나오거나, 아예 다른 모습으로 나오거나인데, 상준은 오싹한다.

아무튼 현아는 그 검은 것들에 관해서는 완전 꿰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하고, 상준은 그런 현아에게 감사를 표하며 나중에 밥이라도 한 끼 사줄 걸 약속한다. 현아는 그 말을 듣더니 데이트 신청이냐면서 재밌다는 듯이 웃다가, 그게 가능하면 자기도 참 좋겠다면서 씁슬하게 웃는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그렇게 여유로운지 물어본다: 현아는 단순하게 자긴 고였으니까 그렇다고 시큰둥한듯 말한다. 굳이 이런 곳에 오래있는 이유를 묻자 현아는 너도 다시 이곳에 오지 않았냐고 묻는다. 이곳은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피폐한 현실에서 벗어난 일탈 체험이기도 하기 때문인데, 상준도 그건 공감하지만 그래도 막상 돌아오니 후회했다고 말한다.

그 말에 현아는 공포란 건 무서워도 그것이 도파민 때문에 호감으로 바뀌기 쉬운 감정이라고 알려준다. 그 때 상준을 벽으로 밀치더니 옆에 나이프를 꽃아넣고, 갑자기 사귀자는 말을 건넨다. 당황하지만 곧바로 고백을 받는 상준에게 현아는 폰을 뺏어서 커플 사진을 찍고,[19] 이제 헤어지자고 말한다.[20]

영문 모를 염장질에 당황한 상준을 보자 현아는 얼굴 옆에 나이프가 꽃이는 무서운 상황이 설렘으로 바뀐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이것이 아까 말한 공포가 호감으로 바뀌는 과정이라 말하고, 멸망한 세계도 똑같다고 한다. 상준도 자신이 완전히 갖고 놀아졌으나 어쩐지 기분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그 때 현아가 부끄러운 듯한 얼굴로 혹시 자기가 선을 넘었냐고 묻는다. 그 이유는 자신이 장난을 치다가 선을 넘어버리는 행동을 종종 해서라는데, 상준은 오히려 포상이었다고 소리친다.

아무튼 상준은 현아 말대로 자신이 멸망한 세계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 맞다고 확신하고, 다시 나가도 또 들어오기 위해 애쓸 거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상준은 자신의 예상을 단순히 원래 했던 생각을 가지고 낸 것인지, 아니면 현아에게 유도된 것인지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그런 상준을 현아는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정보들을 정리하던 상준은 아직도 멸망한 세계는 영문 모를 것들 투성이지만, 그래도 여기를 완전히 현실과 분리된 별도의 세계라고 인식하게 된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완전히 폐허가 된 풍경인데 수도와 전기가 나오는 것에 의문을 가진다. 현아도 완전히 폐허가 된 세상인데 멀쩡히 나오는 게 신기하고, 그 덕에 살기 좋다고 알려준다. 그뿐만 아니라 매점에는 음식 같은 것이 안 썩고 있다고.[21]
마치 이 세계가 현실을 모방하도록 꾸며진 것처럼 만들어졌다고 현아는 말한다. 그 다음 상준의 손목을 잡다가 수상하게 웃으며, 아예 나가지 말고 여기서 살 것을 제안한다. 상준은 당연히 단칼에 거절하는데, 현아는 당당하게 자기가 있는데도 싫냐고 묻는다. 그 말에 상준은 현아야말로 여기서 숙박까지 하면서 뭘 하는 거냐고 묻는다.
그 때 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잠시 굳는다. 그리고 상준이 오해를 했고, 그렇기에 여태 말이 안 맞았다며 쓸쓸하게 웃는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마디를 건넨다.
나.. 여기 갇혀 있는 거야.

《현아의 세계 #4》
처음으로 보게 되는 이 곳의 풍경.
그 끝에는...
현아와 상준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른다. 하지만 상준 혼자 탈 때와 달리 엘리베이터는 현실 세계로 바래다 주지 않았고, 현아가 현실 세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상준이 엘리베이터로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상준이 특이했던 것이기 때문.
아무튼 둘은 병원 옥상에 도착한다. 병원 옥상은 부서졌지만 테라스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난간으로 시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시내는 여기저기 붕괴하고 찌그러지고 안개를 머금고 있었으며, 현아는 이런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상준을 데려온 것이었다. 상준은 마치 세상이 멸망했다는 절망감보다는 마치 영화를 볼 때처럼 신기한 기분만을 느낀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이 창작물을 보는 것처럼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아니라는 은연 중의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아도 동의하듯, 우리가 살던 세계가 무너진 것이 아니기에 상준 같이 위화감을 느끼기 마련이고, 이것이 여기가 다른 세계라는 증거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준은 이 세계가 영화처럼 이끼같은 식물이 뒤덮은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점은 의아해한다. 마치 인위적으로 누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보존해 놓은 듯한 풍경이었기 때문.
파일:그세계7.png
상준이 현아가 이곳에 갇혔다는 말을 꺼내려 하자, 현아는 난간 밖의 풍경을 보라며 주의를 돌린다. 상준이 본 시내에는 어느새 나타난 어마어마한 크기의 네 발 짐승이 지나가고 있었다. 현아 말로는 저 짐승은 가끔 나타나며, 자세히 보면 눈도 달려있고, 병원 쪽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인식하면 어떻게 될 거 같냐며 살짝 겁을 주더니, 상준도 살짝 겁을 먹고 말없이 난간 뒤로 몸을 숨긴다.
현아는 옆에 쏙 들어와 어깨를 붙이고 있다가, 괜찮다고 다독이며 상준을 일으켜 세운다. 그 다음 상준이 무언가 말하려하자, 현아는 또 말을 자르듯 부서진 난간 쪽을 향해 걸어간다. 현아는 이렇게 장관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지만, 상준에게 보여주려는 듯 시내의 끝자락을 가리킨다. 그리고 시내의 끝자락에는 안개가 벽을 이루듯 부자연스럽게 막혀있는 구간이 있었는데, 단순히 안개가 낀 수준이 아니라 저기부터 세상이 없는 수준으로 짙게 깔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현아는 자신은 저 안개를 넘어갈 수 없다고 알려준다. 들어가려고 하면 벽에 막힌 듯 튕겨나가는데, 그 이유는 저 안개가 세계와 세계를 구분짓는 경계선인 '한계점'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현아는 자신이 들어온 입구가 저 한계점 너머에 있다고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상준은 그런 현아를 가만히 바라보고, 방금 전에 현실로 못 돌아갈 수도 있다고 장난을 쳤던 것이 사실 현아 본인 이야기였던 걸 깨닫는다.
현아가 말하길 자신은 예전에 이곳에 우연히 들어왔고, 풍경에 매료되어 공포감도 잊고 구경을 시작했다고 한다. 굳이 바로 나가지 않은 이유는 한번 나가면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으며, 그러다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말에 상준은 너무 무모한 거 아니냐고 말하려다 자기가 할 말은 아니었기에 그만둔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현아는 출구가 바로 보였기에 안심하고 돌아다녔으나, 어느 순간 안개가 가로막아버려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가지 못한 채 상당히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홀로 보냈다고 슬프게 말한다. 상준은 자신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현아에 감동과 슬픔을 느끼고 그렁그렁해 한다.[22]
하지만 그런 현아는 자긴 익숙하니 걱정하지 말라며 웃어 보이고, 현아는 상준을 안아주려다 이내 자제하는 듯한 표정으로 대신 뺨을 잡는다. 현아 말로는 아직 안 친하니 미루는 거라는데, 상준이 만난 시간 대비로 따지면 엄청 친한 거 아니냐고 묻자 현아도 동의한다. 현아는 이후 상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살짝 웃으면서 올려다본다. 그리고 현아는 이윽고 자신이 부탁하려 한 것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었으며,[23] 상준이 그걸 도울 수 있다고 해맑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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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병실로 돌아와, 현아는 종이와 펜을 들고 와 설명을 시작한다.[24] 검은 사각형 내부는 이쪽 세계, 하얀 점은 입구 겸 출구, 검은 점은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자신과 같은 검은 점, 즉 일반인은 이곳에 들어와봤자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으며 입구를 통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가는 순간 이곳에 있었던 모든 일들은 마치 꿈이라도 꾼 것마냥 잊어버리며, 그 탓에 이 세계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 알려준다.
그리고 빨간 점은 조금 특별한 사람으로, 바로 이 세계 안에 한계점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출구로 가는 길에 한계점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세워버려서 현아가 나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현아가 덧붙이길, 한계점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일반인에 비해 큰 정신적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상처를 반영한 형태로 세계가 변하다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자신만의 세계라 해도 괴물들은 튀어나오고, 심지어 세계를 만든 본인조차 나갈 수 없다고 덧불인다. 현아는 마치 이 세계가 마음에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먹이로 삼는 것 같지 않냐며 살짝 겁준다.
현아는 상준에게 기댄 다음, 자신이 한계점 내부로 들어가려 하자 온몸이 녹아내릴 듯 고통스러웠다고 말한다. 실제로 상처도 생기는 등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그 덕에 알아낸 것도 있다고 말한다. 이후 현아는 윗옷의 맨 위 단추를 하나 풀어 쇄골을 드러낸 다음, 그곳에서 빛 덩어리를 꺼낸다.[25] 그리고 이 빛 덩어리의 정체는 바로 기억이나 정보가 형태를 이룬 것으로, 현아 본인은 파편으로 부른다고 말한다.[26]
그쪽 세계에 들어가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세계 안의 누군가가 파편을 전해주었고 그 덕에 고통이 잠시 가셨다고 한다. 현아는 아마 파편을 모을수록 그쪽 세계의 정보를 인식하게 되고, 더 깊숙히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 결론지었다고 알려준다. 이는 첫만남 때 상준도 겪었는데, 현아가 병원 내부를 돌며 파편을 줍게 시킨 것도, 사실은 병원 세계의 정보를 인식해서 탈출구를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의도였다고 한다. 다만 당시엔 몰랐지만 상준의 경우 특이 체질이라 굳이 필요 없던 과정이었다고.
하지만 현아는 한계점 너머의 세계에서 파편을 주울 수 없다고 말한다. 주우려고 잡는 순간 손이 파편을 통과해버리며, 자신이 주울 수 있는 건 오직 병원 세계의 파편뿐인 걸로 보아 아마 그 세계의 당사자만이 주울 수 있다고 추측한다. 그 때 상준이 이전 꿈에서 누군가가 같은 말을 했던 걸[27] 떠올리나, 꿈이여서인지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파란색 점은 상준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 세계와 현실을 자유롭게 왕복할 수 있고, 아마 한계점 너머로도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타입의 사람인 것. 아까 상준이 학교로 잠깐 넘어갔다고 말한 것이, 무의식 중에 한계점을 넘어갔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그 말에 상준은 아까 그 학생이 정신적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28]
그리고 최종적인 현아의 부탁은, 상준이 한계점 너머의 세계로 넘어가서 파편을 모으고, 그걸 현아에게 전해주는 것이었다. 상준이 자신이 파편을 못 주우면 어떡하냐고 묻자, 현아는 추측의 영역이지만 '파편을 얻은 뒤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처럼, 반대로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은 뒤 파편을 줍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고 추측한다. 아니면 상준 자체가 특이 체질이니 처음부터 주울 수 있을 수도 있다고.
아무튼 상준은 현아도 모르는 건너편 세계를 혼자 탐사하는 것이 괜찮냐고 묻는다. 현아는 미안한 듯 고개를 푹 숙이며 자그마하게 긍정하고, 상준은 패기 넘치게 까짓거 해 보겠다고 큰소리친다. 그런데 현아는 저쪽 세계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고, 아예 한계점 제작자가 덤벼들 수도 있으니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상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생명의 은인이니 무조건 하겠다며 용감하게 웃는다. 그런 상준을 현아는 살짝 질책하더니, 이후 출구 엘리베이터까지 끌고 온다. 그리곤 집에 가라고 명령하는데, 그 이유는 상준이 정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현실로 갔다가 내일 다시 오라고 전한다. 현아는 만약 못 돌아와도 같은 사람이 두 번이나 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워서 이해할 수 있다고 쓸쓸하게 웃는다.
상준이 아련해하자, 현아는 만약 쫄아서 튀어도 단지 복귀에 실패한 거라고 생각하고 지낼 거라며 섬찟하게 웃는다. 그 말에 상준은 결국 죽어도 오라는 뜻이냐고 묻는데 현아는 다시 웃어보인다. 현아는 아무튼 당분간은 하루 쿨타임이 있을 테니 일단 기다려보라고, 동시에 정말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있는지 고민해보라며 당부한다. 하지만 상준은 이미 현아에게 두 번이나 구출 받았기에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고, 보증이나 사이비, 동반자살이 아닌 이상 전부 들어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현아는 상준이 괜히 도와줬다는 말을 하는 게 두려우니 깊게 고민해보라고 서글프게 말한다. 그 말을 듣자 상준은 왠지 이전에 다른 사람이 현아에게 그런 말을 한 적 있는 거 같다고 생각하나, 일단 말을 참고 웃어보인다. 아무튼 솔직하게 현아가 도움을 요청하자, 왠지 기분이 좋아진 상준은 이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다. 현아는 이전보다 얌전한 태도로 조용히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상준은 어제처럼 소녀가 손을 잡을 거 같아 걱정한다. 그 순간 자신이 그 꼬마의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소녀란 사실을 자각한다는 사실에 의아해한다.[29] 여기에 이전에 목소리라도 들어본 듯한 기억이 떠오르려 하자, 엘리베이터 거울 안에서 난데없이 그 학생이 나타난다. 학생은 상준을 보면서
생명의 은인이 부탁을 하는데, 대체 누가 거절하겠어요?
라고 비웃듯이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 생명의 은인이 생기는 게 그리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아까 학생한테 된통 당한 상준은 무시하고, 나중에 안 마주치게 조심하라며 분노에 찬 경고를 하는데, 학생은 조금도 쫄지 않고 상준을 조롱하며 사라진다. 이후 상준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현실의 병원으로 돌아온 것을 본다.
이제부터 서브 스토리가 해금되기 시작한다. 퀘스트를 꾸준히 했다면 열람에 아무 지장이 없으며, 퀘스트를 하나도 안 했어도 기본적으로 주는 파편 덕에 제일 처음에 열리는 하나는 열람할 수 있다.

2.1.4. 우비의 세계

《우비의 세계 #1》
꿈 속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곤 한다.
깨어나면서 모두 잊어버릴 정도로.
꿈 속의 상준 시점으로 전개된다.
상준은 비가 오는 폐허 시가지에서 깨어난다. 마지막 기억은 쇠파이프를 든 누군가와 몸싸움을 벌이다 나이프에 찔린 것으로, 그마저도 거의 기억을 못하는 상황.
다시 일어나 보니 흐물흐물 녹았던 몸은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와 무리 없이 펀치를 날릴 수 있을 정도였다. 비를 피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어째선지 죄다 막혀있었고, 유리창으로 내부를 보려 해도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내를 무작정 해매다가, 갑자기 경계를 넘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다른 공간으로 와버린다. 비는 이슬비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천장이 뚫려있어 추워할 무렵, 지난번에 자신이 꺼내줬던 소녀가 자신 앞으로 걸어온다.
파일:그녀의세계우비.png
소녀는 얼굴이 없어서 말을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뽈뽈뽈 다가와서 까치발을 들고 상준의 멱살을 쭉쭉 잡아당긴다. 상준이 허리를 숙이자 그 속에서 파편을 꺼내고 먹는다. 그러자 소녀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 파편이 마치 예전에 현아와 모은 것과 비슷하다고 떠올리는데, 그 때 현아와의 기억이 흐릿하게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자, 정신이 아득해지더니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잠에 들기 전 자신의 행적을 기억해낸다. 바로 현아와 약속을 한 뒤 집에 돌아가던 도중 친구에게 불려가 치킨집에서 광란의 음주파티를 벌인 다음 곧바로 침대 위에서 뻗은 것. 그 순간 소녀가 매달리는 듯한 표정으로 가지 마라며 붙잡고, 상준은 이전까지 했던 생각들을 전부 잊어버린다.
아무튼 비를 계속 맞을 수 없다는 생각에[30] 소녀에게 우산을 씌워줄 걸 부탁한다. 소녀가 허락하지만 아동용 우산인 탓에 둘이 같이 쓸 수 없었고, 결국 소녀를 업은 채로 걷기 시작한다. 상준에게 업힌 소녀는 높고 찝찝하지만 편하다고 중얼거린다.

골목을 통과하니 눈앞에는 펜션이 즐비한 산속의 풍경이 드러난다. 상준은 몇 가지 종교 상징이 뒤섞인 마크가 있는 걸로 보아 어떤 단체의 기도원인 것으로 추측한다. 가장 큰 건물에 가까이 가자 소녀가 내린다. 상준이 소녀보고 여기 사냐고 묻자 소녀는 살짝 웃어 보이며 긍정하더니, 같이 들어가자고 손짓을 한다. 상준이 대문을 열려 하자 문이 열리지 않는데, 소녀는 그런 상준을 한심하게 바라보더니 천천히 잡아끌고 문을 한번에 열어버린다.
묘하게 꿈이 이전보다 길어진 걸 체감하며 안에 들어가자, 커다란 로비가 드러난다. 2층으로 올라가보니 침대들이 오밀조밀 뭉쳐 있는 숙소 방이 나왔고, 침대 중 일부는 누가 이미 누워있는 것처럼 이불이 튀어나와 있었다. 상준이 침대 위에 앉아 물기를 짜낼 때, 우비는 해맑게 웃으며 놀자고 말한다. 등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어느 손인 거 같냐고 장난을 치는 걸 보고 상준은 조카몬과 달리 얘는 귀엽다고 생각한다.[31]
상준이 약지라고 답하자 소녀는 웃으면서 땡이라고 말하고, 검은 그림자로 변한 손을 보여준다. 상준이 아까까진 진짜 손 아니였냐고 딴죽을 걸자 소녀는 까르르 웃으면서 찰싹 붙어 앉는다. 놀아 달라는 소녀를 본 상준은 역시 애들은 체력이 넘친다고 생각하고, 이름을 묻는다. 소녀는 자신이 이름이 우비라고 알려준다. 상준이 이상한 이름에 의아해하자 우비는 기억에 남은 것이 그것뿐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상준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다.

상준은 애들의 말을 이해하려면 머리만 아프다고 생각해서 그냥 대충 웃어 넘긴다. 그리고 우비에게 부모님의 행방을 묻는데, 우비는 무거운 표정으로 아빠는 멀리 갔고,[32] 엄마는 기도를 하러 갔다고 알려준다. 상준이 엄마가 올 때까지 놀아달라는 거냐고 묻자 우비는 웃으면서 그렇다고 한 뒤, 바퀴가 달린 의자로 기어 올라가 의자를 돌리려 한다. 그런데 녹이 슬어 잘 안 돌아가자, 상준에게 애교를 부리며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상준은 조카와의 경험 때문에 한번 돌려주는 순간 꿈에서 깰 때까지 죽도록 의자만 돌릴 게 뻔하다며 거절하려 한다.
그 때, 이것이 꿈이라는 걸 자각한 상준은 이제 깨어나려 한다. 그러자 우비는 식겁한 표정을 지으며 가지마라고 소리치고, 다시 기억이 리셋된 상준은 놀아달라는 우비를 보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우비는 자신이 우산을 빌려줬으니 가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떼를 쓴다. 우비가 관용어구를 어설프게 인용한 걸 본 상준은 좀 귀엽다고 느낀다. 상준은 조카의 트라우마 때문에 거절하려 하지만, 우비가 울먹거리려 하자 결국 놀아주기 시작한다.
상준은 그렇게 의자를 30분 째 빙빙 돌리게 된다. 우비는 신이 나 방방 뛰다가, 이제서야 어지러운지 침대 위로 엎어진다. 그런데 아직 지친 건 아닌지 보물찾기 하고 놀자고 말한다. 상준은 마침 옆에 있던 파편을 주워서 보물은 이걸로 하면 어떠냐고 묻는데, 우비는 섬뜩한 표정으로 안 된다고 말한다. 상준이 그 이유를 묻자 우비는
모아서 딴 년한테 줄 거자나.
줘 봤자 소용없어.
제일 중요한 게 없는걸.
라고 말한다. 그리고 실수로 모았으면 자기가 버려줄 테니 넘겨주라고 말한다. 그럼 상준이 무엇을 보물로 하냐고 묻자 우비는 인형을 숨겼다고 말하고, 100초 안에 찾으면 오빠가 이기는 걸로 하자고 한다. 우비 말로는 그 인형은 찾으면 무서운 게 오는 인형이라고. 상준이 찾으면 안 되는 걸 찾게 시키면 자기가 못 이기는 거 아니냐고 묻자, 우비는 세상이 다 그런 거라며 비웃듯이 말한다.
어린 애가 벌써 세상의 부조리를 운운하는 것도 어이없어 하던 찰나, 우비가 갑자기 체력이 다 떨어졌는지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버린다. 상준은 젖은 비옷을 입고 자면 감기에 걸릴 거라는 생각에 이불을 덮어주려 하고, 옆 침대의 이불을 걷는다. 그런데 이불 안에는 썩어가는 살점이 붙은 인골이 있었다. 시체를 덮던 걸 쓰기엔 무리라는 생각에 비교적 깨끗한 다른 이불을 가져와 덮어준다. 상준은 잠든 우비를 보다가 이내 같이 잠들어버린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상준은 천둥 소리를 듣고 깨어난다. 어느새 주변은 밤이 되었는지 어두컴컴해졌고, 우비가 있던 자리에는 쪽지 하나만이 있었다. 쪽지에는 붉은 글씨로
어디 갔어?
놀아 준다고 해 놓고.
라고 써있었다. 폭풍우가 치는 험악한 날씨에 우비가 사라지자 걱정이 된 상준은 건물 밖으로 나가 우비를 찾기 시작한다.[33]그러면서 만난지 몇 시간도 안 된 아이를 애절하게 찾는 자신에게도 의문을 가지나, 워낙 걱정이 된 나머지 더이상 자각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그 때 멀리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파일:그세계9.png
그것은 전신이 기름에 뒤덮인 듯한, 사람을 닮은 형체였다. 자신과 비슷한 체격에 사람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그것은 이내 전투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다. 상준도 저 녀석이 지난번 우비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른 그 자식인 걸 직감하고 때려눕힐 생각을 한다. 뭔가 자신도 무기를 쓰면 안 될 거 같은 자존심이 피어오른 상준 역시 자세를 잡는데, 상대는 마치 자신의 포즈를 거울에 비춘 거마냥 왼손 자세를 잡기 시작한다.
상대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한숨을 쉬는 상준은 도발하는 웃음을 날리는데,[34] 예상 외로 상대는 자신과 호각을 겨룰 정도로 평균 이상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준이 전투 도중 팔꿈치를 이용한 엘보 어택을 쓰려는 순간, 상대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로 팔꿈치를 부딫히는 촌극이 벌어진다.
비를 맞으며 싸우다 보니 체력이 빠르게 떨어지는 걸 실감한 상준은 문득 상대에 대한 위화감을 느낀다. 바로 왼손을 주력으로 전투를 했던 것이 상대가 아닌 자신이었다는 건데, 오른손잡이인 자신이 마치 왼쪽과 오른쪽을 반대로 아는 수준의 착각을 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 한다. 그리고 왼손에 있을 흉터도 오른손에 자리한 걸 보고, 거울에 비친 형상이 오히려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다.
상준이 혼란한 심신 탓에 정신을 못차리는 순간, 상대는 업어치기를 한 뒤 목에 조크를 걸기 시작한다. 조크를 걸면서 상준은 상대의 왼팔에 누가 물어뜯은 흔적이 있는 걸 보고, 그 순간 의식이 끊겨버린다.
의식이 끊기자마자 상준은 침대에 떨어져서 꿈에서 깬다. 침대에 떨어진 나머지 이전에 꿨던 꿈을 전부 잊어버린 상준은, 꿈을 꿀 때 상식과 세계관이 바뀌면서 완전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꿈이 참 덧없다고 생각한다. 전날 과음을 했음에도 숙취가 오지 않고 오히려 컨디션이 쌩쌩하자, 상준은 빠르게 병원으로 향한다.
《우비의 세계 #2》
약속 시간에는 늦어서는 안 된다.
연락할 수 없다면 더더욱.
상준이 보란듯이 다시 그 세계에 돌아와 현아를 만나는데 성공하자, 거점 병실에 있던 현아는 할 말을 잊은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현아는 멍한 표정으로 다가와 상준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더니, 정말로 와 줬다며 놀란다. 그러고 갑자기 상준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으며 껴안더니, 어깨를 파르르 떨며 울기 시작한다. 한참을 흐느끼던 현아는 부탁을 했지만 정말로 상준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포기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와 줬다는 사실에 울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쁨보다는 평생 혼자일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야 희망이 보였다는, 마치 서러움에 가까운 목소리를 낸다.
상준은 지금까지 현아가 보여준 자신만만한 모습은 전부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잊기 위한 방어기제였음을 깨닫고, 현아를 안아주며 위로한다. 그러면서 이런 절실한 부탁도 자신이 두 번이나 구해준 사람밖에 하지 못하는 걸로 보아 현아가 생각보다 서툰 사람이란 걸 느낀다. 현아는 조금만 더 안아달라고 울먹거리며 부탁하고, 상준은 현아를 안아주며 오랜만에 따스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면서 마치 오래전부터 이랬어야만 하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애틋함도 느낀다.
시간이 흘러 진정된 현아는 어디선가 꺼내온 검은 마스크를 끼고, 화장이 지워진 건지 아니면 부끄러운지 머리카락을 앞으로 내려 얼굴을 가린 채로 상준에게 종이 가방을 내민다. 현아가 내민 것은 방수성 옷으로, 틀림없이 젖을 것이기에 갈아입을 용도로 준 것이다. 상준은 옷을 받아들고 갈아입기 위해 병실로 향한다.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면서, 상준은 한계점 너머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살짝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전 현아가 감격에 젖은 모습을 본 탓에 발을 빼고 싶지 않아졌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35] 그런데 창문 유리에서 그 학생이 상준을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걸 눈치챈다. 상준은 아직도 악감정이 남았기에 위협하지만, 학생도 지지않고 보기 싫으면 고갤 돌리라며 띠껍게 군다.
상준이 창문을 열어보지만 여전히 아무도 없었고, 학생은 등 뒤에 있던 전신 거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 놀래킨다. 상준이 놀라자 학생은 상준을 비웃기 시작한다. 유리의 계속된 도발에 상준은 열이 받은 나머지 거울을 두드려보지만, 되려 학생이 뿌린 분무기에 놀라 역관광당한다.[36] 상준은 점점 더 열이 뻗치지만 현아의 방을 유리 조각으로 도배할 수 없었고, 다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이전에 방해 공작을 벌인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학생은 여전히 띠꺼운 태도로 그냥 장난이었을 뿐이라고 웃는다. 결국 다시 본래 태도로 돌아간 상준은 그냥 한 대만 때리게 해달라고 위협한다.[37] 학생은 어이없다는 듯 욕을 박으며, 거울 옆으로 숨더니 훔쳐보듯 상반신만 빼꼼하고 나타난다.
그 때 학생의 포즈에 의해 가슴팍에 있던 명찰이 눈에 들어오고, 학생 이름이 유리인 걸 알게 된다.[38] 학생을 유리라고 부르자 자기 이름을 아는 것에 놀란 건지, 살짝 표정이 굳은 유리는 자기 가슴팍의 명찰을 확인한다. 그리고 뭔가 꾸미는 것처럼 상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이름이 유리란 걸 긍정한다.
상준은 빨리 돌려보내기 위해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에게 볼일이 있나고 묻는다. 그러자 유리는 그 언니 도와주기로 한 게 맞냐고 묻는데, 웃음기를 지운 채 얼마나 위험할 줄 알고 냉큼 수락한 거냐며 핀잔한다. 상준이 자긴 힘들 때 빠질 줄 아는 사람이라고 반박하자, 유리는
그 언니한테 그런 소리 듣고도 발 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 언니가 눈물 보이면서 그런 말 한 시점에, 오빠는 이미 길들여진 거예요.
연기 아닐 것 같지? 응?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상준이 현아 씨는 그런 사람 아니라며 들은 채도 안 하자, 유리는 생명의 은인이라고 지나치게 믿는 거 아니냐고 잔소리한다.[39] 계속되는 핀잔에 상준은 자기가 현아 씨를 돕는 게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냐고 묻는다. 이에 대해 유리가 해맑게 긍정하자 상준은 현아랑 원수 진 거 있냐고 묻는다. 그런데 유리는 정확히 3분의 1 정도 원수를 졌다는 애매한 말을 남긴다.
이후 상준은 자기와 현아가 하는 말을 어떻게 들었냐고 묻는다. 유리는 거울 속에 있으면 블랙박스마냥 다 감시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상준은 앞으로 현아와 대화할 때는 거울이나 유리가 없는 곳으로 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자기 앞에 나타난 목적이 뭔지 묻는다. 그러자 유리는 너무 덩치 큰 개처럼 길들여지지 말고 의심 좀 해보라는 충고를 하러 왔다고 말한다. 이에 상준은 대충 알겠다고 대답한 뒤 옷 갈아입어야 하니 꺼지라고 답한다.
그런데 유리가 가지 않자, 상준은 왜 안 가냐고 따진다. 유리가 자기가 보면 부끄러워서 못 갈아입는 거 아니냐고 비웃는데, 상준은 지지않고 눈호강 시키기 싫어서 그런다고 말한다. 유리는 뭔 자신감으로 자뻑하냐면서 경멸하는데, 상준이 웃통을 벗자 유리는 상준이 예상 외의 엄청난 근육질 몸매인 걸 보고 크게 놀란다. 유리는 입이 떡 벌어지고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뚫어져라 보고, 말로는 감흥없다고 말하지만 시선을 때지 않는다. 그 때 유리가 폰으로 찍으려고 하자 상준은 유리에게 가까이 다가가는데, 유리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간다.
이제 옷 갈아입을 환경이 드디어 만들어졌다고 느낀 순간, 마침 준비가 끝난 현아가 병실로 들어온다. 언제 울었냐는 듯 표정을 애써 관리한 현아는 상준을 보자마자 잠시 굳더니, 이후 나가지 않고 웃으면서 다가온다. 상준의 몸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하는데, 상준이 성추행 아니냐고 지적하려 하자 현아는 피지컬을 봐둬야 일을 시킬 신뢰가 생기지 않겠냐고 말한다. 납득한 상준은 가만히 있고, 현아는 상준의 몸을 유심히 보더니 여유롭게 웃음지으며 호평한다.
현아가 운동 얼마나 했냐고 묻자 상준은 의외로 남들 하는 것보다 조금 더 했을 뿐이라며 겸손하게 답한다. 그리고 이번엔 상준이 현아에게 운동 얼마나 했냐고 묻는데, 현아는 아무 말 없이 나이프를 능숙한 솜씨로 빙빙 돌린다. 현아가 이런 것도 운동으로 쳐주냐고 묻자 상준은 홈트라고 답한다. 상준은 속으로 현아가 사회로 나가기 전에, 사람 면전에서 나이프를 꺼내는 습관을 교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후 잠시 현아 서브 스토리인 《02: 압박면접》으로 이어진다.

《우비의 세계 #3》
준비는 철저하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후회하지 않도록.
상준은 현아와 함께 처음으로 병원 밖으로 나가본다. 거리가 폐허가 된 풍경이 신기했는지 상준은 셀카를 여러 번 찍어보지만, 자신을 제외하고는 전부 검은색으로 찍힐 뿐이었다. 현아는 그런 상준을 보고 살짝 웃더니, 오늘 더 이상한 광경들을 보게 될 거라고 알려준다. 예를 들자면 상준의 상식이랑 다른 것들이라고. 상준이 혹시 귀신이라도 나오냐고 묻자 현아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귀신'은' 아니라고 말한다.
상준은 솔직히 귀신인지의 여부는 관심없었고, 일단 때려지는지를 묻는다. 현아가 밝게 긍정하자 상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40] 그리고 그런 상준에게 현아는 헤드셋 하나를 건넨다. 이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은 현아와의 통신용으로, 오른쪽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서 말하면 연결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상준은 이 헤드셋이 폰이랑 연결된 것도 아니고, 휴대폰도 안 터지는 곳인데 연락이 된다는 점에서 이상함을 느낀다. 그리고 현아는 통신 기능으로 상준에게 주의사항 세 가지를 전달한다.
특히 마지막 사항을 말하면서 현아는 걱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상준의 어깨를 세게 움켜쥔다.[42] 현아가 걱정하자 상준은 패기롭게 괜찮다고 웃는다. 현아는 이후 고개를 돌리더니, 무엇을 하게 될지는 들어가서 헤드셋으로 들으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들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여러모로 미심쩍은 부분들이 남은 상준은 이후 현아에게 이것저것을 질문하기 시작한다.
* 상식적이지 않은 부분의 예시를 들어 달라고 한다.: 현아는 예를 들어주겠다며 옆의 편의점으로 데려간다. 현아는 편의점처럼 내부가 보이는 건물은 들어갈 수 있으나, 옆 건물처럼 내부가 시꺼먼 곳은 무슨 짓을 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상준은 옆 건물을 들여다보나 마치 이 세계를 사진 찍은 것처럼 완전 까맣기만 하고, 부서진 틈으로 들어가려 해도 무언가에 막혀버린다. 워낙 상식 밖의 일이기에 얼떨떨해하지만 현아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원인을 아는 것과 그걸 적응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이후 상준이 다른 알아두어야 할 일은 없냐고 묻자 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없다고 말한다. 한계점 너머의 세계는 여기와 또 다른 세상이기에, 이곳의 상식을 믿었다간 오히려 큰코다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상준은 이에 때릴 수 있는 귀신 이외의 존재라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넘긴다.
* 목소리가 현아 씨인지 어떻게 확인하는지 물어본다.: 현아는 나만 알고 있으면서 상준이 정답을 아는 걸 물어보면 된다고 말한다. 이에 상준은 암구호를 생각하지만[43] 현아는 일회용인데다 여러 개 준비하면 헷갈릴 거 같다며 기각한다. 이후 현아는 웃으면서 우린 서로 단둘이 자주 만난 사이니, 자연스럽게 서로 알게 된 걸 묻자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걸로 하자며, 까치발을 들고 얼굴을 가까이 한다. 그것은 상준 몸에밌는 점의 위치와 등에 있는 흉터의 위치인데, 상준이 아까 그런 걸 본 거냐고 말한다. 현아가 당당하게 그렇다고 한 뒤 어쨋든 자신의 기억력이 좋으니 이걸로 하자고 말한다. 상준도 결국 동의하지만, 그 때 딱 한 번 본 자신의 몸 특이 사항을 완벽히 기억한 현아의 능력에 의심한다.* 누구에게 들킬 수 있다는 건지 물어본다.: 상준이 여긴 우리 둘밖에 없는데 누가 듣냐고 묻자, 현아는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상준을 근처 지붕 아래로 데려간다. 무너진 콘크리트 벽에 숨바꼭질 하는 수준으로 숨기고 나서야, 현아는 귓속말로 이야기를 듣는 게 꼭 사람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바깥에서 탈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고 하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상준이 하늘을 보려 하자, 고개를 들지말고 먼 경치를 보듯 하늘을 보라고 명령한다. 이후 현아가 그 사람을 찾았다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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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하늘이 밤이 된듯 어두워지더니, 하늘에 거대한 눈이 나타나버린다. 주변 하늘 전체가 뒤덮일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눈은 상준에게 공포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현아는 자신은 괜찮으니 그저 숨죽이고 있으라고 지시하고, 눈은 당장이라도 상준을 거두어갈 것처럼 세상을 둘러본다. 상준은 이전에 현아가 했던 말들이 저 눈을 가리켰다는 걸 깨닫는다.[44]
이후 눈이 사라지고, 긴장이 풀린 상준은 숨을 헐떡인다.[45] 다리가 풀려버린 상준을 본 현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껴안아주고, 원래는 조금 더 익숙해진 다음 보여주려 했다며 사과한다.[46] 상준은 괜찮다고 말한 뒤, 현아가 멸망한 세계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만 알려주는 이유가 저것 때문인 걸 간파한다.
다시 진정했지만 현아의 품이 좋은 나머지 상준은 계속 가만히 있는데, 현아는 그런 상준이 못마땅하다는 듯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현아도 긴장했는지 머리카락으로 땀을 닦으며, 저 눈은 자신도 몇 번 못 봤다고 알려준다. 혹시 상준이 쟤랑 싸우는 거냐고 겁먹은 듯이 묻자 현아는 쟤보단 작다며 안심시킨다.
이후 한계점까지 도착한다.[47] 현아가 한계점 안개에 손을 대보자 막혀버리는데, 상준이 손을 대보자 무리없이 통과해버린다. 그 광경을 본 현아는 무언가를 참는듯 입술을 깨문 뒤, 상준만이 통과되는 게 맞다고 중얼거린다. 현아는 한동안 상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내리고 양손을 상준의 어깨에 올린다.
현아는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지금 돌아가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이곳을 넘어간 순간부턴 관계자가 되기에 이 일에 빠질 수 없고, 동시에 자기도 놓아주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이를 악문 듯 필사적으로 붙잡는 듯한 목소리에 상준은 이전에 유리가 한 말을 떠올리나,[48] 이미 각오는 되어있음을 보여준다. 현아는 저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지 톡톡히 경고하나, 상준은 헤드셋을 준 것도 그렇고 준비 철저히 해놓고 오래 기다렸으면서 이제 와서 망설일 게 뭐가 있냐며, 일단 들어가서 생각하자고 말한다.
현아는 걱정스러운 잔소리를 날리더니, 상준의 미소를 보고 살짝 삐진 표정으로 이마만 콩 하고 맞댄다. 하지만 애정 표현은 아직 이르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물러나고, 결국 탐사를 시작하자고 말한다. 상준은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 다음 세계로 넘어간다.
상준이 도착한 곳은 비가 오는 산속으로, 건물의 흔적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오지였다. 이미 각오를 다진 상태였기에 상준은 침착하게 헤드셋의 버튼을 누르는데, 상태가 좋지 않은지 잡음만이 날 뿐이었다. 일단 전파를 잡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와중 상준은 누가 왔다간듯 풀이 누운 곳에서 파편을 발견한다. 파편을 주으려는 순간, 인기척이 느껴져 주변을 돌아보는데 멀리서 빨간 색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걸 깨닫는다.
상준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것은 이내 길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어디론가 도망간다. 다행히도 상준은 파편을 주울 수 있었는데, 그 순간 현아의 목소리가 헤드셋 너머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현아가 다급하게 안부를 묻다 이내 안심한 걸 보고 상준은 많이 걱정했냐고 묻는데, 현아는 잠시 당황하더니 진정하고, 상황 보고를 요구한다. 이에 상준은 현아가 자길 걱정해줬다는 점에서 기쁘다고 느낀다.
상준은 현재까지의 상황들을 읊어주다가, 문득 눈앞에 거대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파편을 주웠기에 이전에 못 보던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데, 마침 그 방향은 이전에 그 사람이 사라진 곳이었다. 건물 방향으로 가자 눈앞에는 펜션이 즐비한 산속의 풍경이 드러난다. 상준은 몇 가지 종교 상징이 뒤섞인 마크가 있는 걸로 보아 어떤 단체의 기도원인 것으로 추측한다. 그 때 상준은 이전에 자신이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고 생각해서 잠시 놀라는데[49], 짐작 가는 바가 없었기에 묵묵히 상황 보고를 계속한다.
상황 보고를 듣던 현아는 갑자기 준비한 무기가 있으면 버릴 것을 명령한다.[50] 그 이유는 상대가 똑같은 걸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기에, 기왕 쓸 거면 가능한 그쪽 세계에서 주운 걸 쓰라고 알려준다. 결국 숨겨두었던 아령봉을 꺼내고, 현아는 연장을 막 들고 다니지 말라며 잔소리한다. 상준은 지지않고 그쪽도 나이프 들고 다니지 않냐고 지적하자, 현아는 당황하며 나이프는 다르지 않냐고 반박한다.
상준은 이후 아령봉을 적당한 풀숲에 숨겨두고, 현아의 브리핑을 받으며 건물 쪽으로 마저 전진하기 시작한다.

《우비의 세계 #4》
아이를 돌보는 것은 힘들다.
이런 세상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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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을 모으며 진행하던 상준은 주변에 그림자들이 늘어나는 걸 본다. 그림자들은 기도하거나 절을 올릴 뿐 상준에 관심을 갖진 않지만, 수가 점점 늘어나기에 상준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현아는 더 이상은 위험할 수 있으니 복귀를 권유하고 상준도 받아들인다. 그렇게 그림자들을 피하면서 돌아가려 할 무렵, 멀리서 우비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현실의 상준은 그림자 상준과 달리 우비를 처음 만났기에, 현아 이외의 사람을 처음 본 나머지 당황한다. 멀리서 작은 체구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하는데, 상준은 우비가 식칼을 들고 있는 광경을 보고 경악한다. 곧바로 전투 태세에 들어가려 하지만 우비가 충분히 근접하자, 상준은 우비가 자신의 두 배 이상으로 크다는 걸 깨닫는다. 상준이 놀람에 비명을 지르자 현아도 걱정을 하는데, 상준이 괴물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을 한 뒤 곧바로 헤드셋이 끊겨버린다.
코앞까지 다가온 우비는 얼굴이 없고 그림자로 채워져 있었다. 이후 우비는 놀아 준다고 해놓고 어디 갔었냐며 질책한 뒤, 같이 놀자면서 다가온다. 막다른 길에 몰린 상준은 주변의 각목을 집어 찌를 생각을 하는데, 그 순간 연락이 다시 연결되어 현아가 정신 차리라고 소리친다. 이후 현아는 상준이 보고 있는 것이 괴물이 아니라고 말하며, 상준보다 훨씬 작은 평범한 여자애일 뿐이라고 알려준다.
상준은 식칼을 든 3미터 거인이 그럴 리 없다며 혼란해하는데, 그 때 이전에 현아가 말해준 3원칙 중 하나를 떠올린다. 첫 번째 원칙인 '상식과 다른 게 있다면 빠르게 적응하기'를 떠올린 상준은 왼팔을 깨물어 정신을 다잡는다. 그러자 눈앞에는 정말 아까 거인이 자신보다 훨씬 작은 여자애로 변해 있었다. 다리가 풀린 상준은 각목을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으며, 현아에게 어떻게 해답을 알았는지 묻는다. 그러자 현아는 그 세계는 공포를 확신하면 그대로 인식해버리는 세계라고 알려주는데, 다시 연락이 끊겨버린다. 이후 여자애는 천천히 상준에게 다가오더니
비 맞지 마, 감기 걸려.
라고 말한다. 이후 우비는 커다란 건물의 로비로 데려간다.[51] 헤드셋이 계속 먹통이자 상준은 짝퉁 헤드셋답다며 계속 치는데, 우비가 그 모습을 보자 자신과 있으면 연결이 안 된다고 말한다. 이유를 묻자 우비는 현아가 잊고 있기 때문이라는,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한다.

상준은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우비를 보고 살짝 공포심이 드는데, 그런 상준에게 우비는 해맑게 계속 놀자고 보챈다. 이따금 얼굴이 그림자로 변하는 우비를 상대로 뭐하고 노냐고 물어본다. 우비가 아까 말하지 않았냐고 하지만 꿈 속에서 나눈 대화였기에 상준은 알 턱이 없었고, 우비는 기분이 상한 표정을 짓는다.
이후 상준이 우비의 이름과 부모님 행방을 묻는데, 우비는 상준을 만만한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아까 알려줬다고 말한다. 덧붙여 아이큐 몇이냐고 도발까지 한다. 상준은 살짝 열받지만 최대한 다정한 말투로 다시 알려줄 것을 부탁한다. 우비는 자신의 이름은 우비라고 말하는데, 이상한 이름에 상준이 정말 엄마가 그런 이름을 지어줬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비는 엄마가 지은 건 이름이 아니라 한복이라는, 알아먹지 못할 말을 또 한다. 동시에 엄마 얘기를 하자 우비는 공허하게 웃기 시작하고, 상준은 아까 거인의 모습이 떠올라 무서워한다.
아무튼 상준은 걱정되긴 해도 우비의 비위를 적당히 맞춰주기로 한다. 우비는 인형 찾기 놀이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 조건으로 상준은 건물 안의 문을 전부 열어줄 걸 부탁한다. 우비가 뛰어가면서 문을 우수수 열기 시작하고, 상준은 열린 문 안에서 파편들이 대량으로 떨어져 있는 걸 본다. 인형 찾기 하는 척하며 파편을 주울 생각을 하던 상준은 우비를 무시하고 파편을 줍는다.
그런데 문을 열고 다니던 우비는 섬뜩한 눈으로 상준을 응시한다. 이후 상준에게 다가오더니 손목을 붙잡고, 파편을 갖다주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고 말한다. 이후 우비는 상준의 몸에서 파편을 대량으로 흡수하는데, 파편을 뺏기고 있다는 걸 깨달은 우비의 손을 뿌리친 다음 위협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비도 파편 돌려주기 싫다고 소리치고, 인형 찾기 하는 척 하며 파편을 모으려 하지 않았냐고 따진다.
정곡을 찔린 상준은 변명 없이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데, 우비는 엄마가 어른 쉽게 믿지 말랬다고 한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우비에 지친 상준은 자길 강요해서 놀게 시키면 서로가 재밌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비는 싸늘한 표정으로 엄청 재밌을 거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더 이상 말이 안 통할 거라 생각한 상준은 그냥 우비를 붙잡아 강제로 뺏으려 하는데, 우비가 그렇게 놀기 싫냐며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마음이 약해져 결국 놀아주기로 한다.
우비가 100초를 셀 동안 인형을 찾아야 하는데, 애가 숨겨봤자 허술할 거란 생각에 방심한다. 그런데 우비는 100초를 세면서 숫자를 마구 건너뛰고[52] 결국 상준은 미친듯이 뛰어다닌다. 뛰어다니면서 상준은 이 건물이 종교 시설인 걸 눈치채는데 특이하게도 십자가와 동양풍 제단이 같이 있었고, 신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기에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 때 동양풍 제단 밑에 대량의 파편들이 있는 걸 본 상준은 혹시나 싶어 제단을 뒤엎는다. 그 속에서 여러 종교 지도자를 근본없게 섞은 조각이 튀어나왔고, 제한 시간 안에 찾은 상준은 우비에게 드민다.[53] 그런데 우비는 어째선지 조각을 보자마자 표정이 노골적으로 썩기 시작하고, 너 때문에 자기가 졌다며 왜 찾았냐고 소리친다. 상준은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아무튼 자기가 이겼으니 파편 내놓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데, 우비는 울먹거리더니 상준 옆에 엎드린 다음 비옷 모자를 뒤집어쓴다.
상준이 뭐하냐고 묻자 우비는 콩벌레 하는 중이라고 답한다. 우비 왈 지면 콩벌레를 해야 살 수 있다고.[54] 그런데 우비가 상준도 콩벌레를 하라고 명령하기 시작한다. 상준이 자긴 이겼는데 왜 하냐고 반박하려 하지만 우비가 소리까지 지르며 하라고 명령하고, 결국 우비가 잡아끄는 대로 2층의 숙소 방으로 끌려온다.
이후 상준은 숙소방 구석에서 얼굴을 가리고 콩벌레 자세를 취한다. 이후 우비는 인형 숨기고 올테니 그때까지 콩벌레를 하고 있으라 하고, 계단을 내려간다. 물론 상준은 우비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파편을 찾아 나서려 한다. 숙소방을 둘러보던 중 침대에 책 하나를 발견한다. 책에는 조잡한 신의 이름과[55] 돈을 바칠 것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내용이 적혀있었고, 보자마자 사이비인 걸 직감한다. 그리고 이 건물 역시 사이비 종교의 시설인 걸 쉽게 눈치챈다. 그런데 사이비치곤 제법 규모가 크다는 점은 미심쩍어한다.
그 때 어느새 뒤에 다가온 우비가 썩은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우비는 상준이 고개를 들은 탓에 다시 숨길 거라고 짜증낸 뒤 다시 내려간다. 콩벌레 자세를 하던 상준은 우비가 가자마자 다시 일어나 숙소방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도어락이 걸린 철문을 찾으나 도어락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걸 깨닫는다. 보통 도어락은 바깥쪽에서 못 들어오게 막는 용도지만, 이 문은 안쪽에서 못 나가게 막는 구조였기 때문. 수상함을 느낀 상준은 돌덩어리로 철문 유리를 후려치나, 방탄유리인듯 흠집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둘러보니 창문 쪽에는 쇠창살이 쳐있고, 침대에는 구속 장치에, 이불들은 하나같이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무언가 사람 모양으로 튀어나와 있는 이불을 걷어내려 손을 뻗는 순간, 우비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56]
빠르게 콩벌레 자세를 하고 곧바로 우비가 나타난다. 우비는 콩벌레를 해야 산다고 잔소리를 날린 뒤 곧바로 다시 사라진다. 그런데 가자마자 다시 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리자, 상준은 우비가 콩벌레 자세에 집착하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상준 바로 앞까지 도달한 우비는
숙였어?
라고 묻는다. 상준이 숙였다고 말하자
숙이지 마라.[57]
파일:피묻은발.jpg
안안안안안안안안안안안안안안안안안안안안
의심하지말지어다믿을지어다증거를요구하지말지어다증명을요구하지말지어다그건모두악마의속삭임이니라
어느새 눈 앞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피가 묻은 발이 있었다. 한동안 우비를 만나며 잊고 있었던 이 세계의 위험성과 공포감을 다시 상기하며, 절대 위를 올려다 봐선 안 될 거 같은 본능적인 직감을 한다.[58] 그 때 발 주변으로 기도하는 듯한 그림자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데,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한 상준은 고개를 숙인 채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다.
상준이 뒤에 있는 철문을 향해 갈 동안 그림자들은 피 묻은 발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한다. 내용은 건강 문제, 회사 문제, 단순 하소연 등 다양했지만, 피 묻은 발은 재산을 바치고 종교에 들어오라는 권유만 일관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피 묻은 발이 한마디를 할 때마다 바닥에 떨어져있던 파편들이 하나씩 부서지기 시작한다.
이 때 그림자 한 명은 마치 누군가에 의해 어거지로 끌려온 듯한 태도를 보이더니 사이비 아니냐고 의심한다. 피 묻은 발은 해당 그림자를 나무라며, 해당 그림자의 딸에게 위해가 오고 있으니 어서 종교에 가입하라고 명령한다. 피 묻은 발이 서서히 상준에게 다가오고, 어느새 상준 몸에 흡수된 파편마저도 깨지기 시작한다. 그 사이 상준은 뒷걸음질 끝에 철문까지 도달한다.

그러나 철문에 도어락이 걸려있다는 사실을 까먹은 상준은 낭패에 빠진다. 피 묻은 발은 서서히 다가오고 그림자들은 방을 가득 채울 정도로 늘어난 상황에 상준은 점점 더 조급해한다. 그 순간 헤드셋이 다시 연결되어 현아의 목소리가 들리고, 상준은 간략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한다. 현아는 상황 파악을 완료한 뒤 해결책을 알려주는데, 의외로 피 묻은 발의 얼굴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피 묻은 발이 자신의 얼굴을 보면 안 된다는 암시를 주고, 가만히 움츠리고 있던 상대를 공격하는 괴물이기 때문이라고. 이후 현아는 상준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며 격려하고, 상준은 용기가 솟아오르며 확신을 가진다.
하지만 그 전에, 상준은 현아가 말한 세 가지 원칙 중 두번 째를 떠올린다. 바로 '헤드셋이 끊겼다가 다시 연결되면, 상대방이 진짜 현아라는 사실을 반드시 확인할 것'인데, 상준은 자신 등에 있는 흉터 중 가장 큰 것이 어느 것이었는지 묻는다. 현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안...
안 속네?
안속네?안속네?안속네?안속네?안속네?안속네?안속네?안속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상준은 헤드셋이 연결된 적이 없었고, 피 묻은 발이 촉수를 헤드셋 쪽으로 뻗어 현아 목소리를 흉내냈다는 걸 깨닫고 경악한다.[59] 팔로 피 묻은 발의 얼굴을 가린 다음 주먹과 팔꿈치를 날려 임시로 제압한 뒤,[60] 다시 철문을 붙잡는다. 하지만 비밀번호를 알 리가 없던 상준은 다시 궁지에 몰리나, 그 때 철문 유리에 흰색 운동화가 비친다.
그리고 유리에서 누군가가 표면에 손가락을 문지르기 시작하는데, 손가락은 '1408'이라는 숫자를 쓴다. 그것이 비밀번호란 걸 직감하고 철문을 열자, 뒤에서 피 묻은 발이 포효하기 시작한다. 상준은 곧바로 2층 창문을 통해 뛰어내린 다음 우비를 찾기 시작한다. 그 때 멀리 안개 저편에서 먼저 도망쳐 나온 우비를 발견한다.
우비와 함께 죽기살기로 달린 상준은 어느새 처음 넘어왔던 한계점까지 도달한다. 잠시 숨을 고르던 상준은 이후 자신보다 달리기가 빠른 것도 모자라 숨을 헐떡이지도 않는 우비를 이상해한다. 우비를 향해 속으로 여러 질문들을 떠올리지만, 먼저 상준은 우비에게 너가 한계점의 주인이 맞냐고 묻는다. 우비의 기묘한 능력들과[61] 비 오는 세계의 현황을 보면 아무리 봐도 우비가 한계점의 주인이었기 때문. 질문을 들은 우비는 약간 슬픈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우비가 사라지자마자 헤드셋이 다시 연결되고, 진짜 현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현아는 한동안 연락이 끊겼기에 크게 동요하고 있었는데 상준은 그런 현아를 상대로 아까의 본인 확인용 질문을 다시 묻는다. 이번엔 진짜 현아였기에 질문에 순조롭게 답하고,[62] 상준은 드디어 한시름 놓는다. 이후 더이상 조사를 계속할 여력이 없었기에 복귀하겠다고 말한다.[63] 현아는 무슨 일을 겪었다는 걸 깨닫자 걱정하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순간, 멀리서 자신과 비슷한 체형의 그림자가 달려오기 시작한다. 현아와의 연락을 급하게 끊은 뒤, 뭔가 끌리듯이 전투 태세를 갖춘다. 마치 저 놈과 전투를 한다는 고양감과 흥분, 두근거림을 느끼며 서로 달려든다. 달려들면서 상준은 왠지 이 싸움의 승자가 자신이 될 것 같다고 짐작한다.[64]
피 묻은 발 관련 연출이 잘 뽑혀서인지, 본작에서 가장 호러스러운 에피소드로 꼽힌다.
《우비의 세계 #5》
어떻게든 살아 돌아왔다.
아직 부족하지만.
상준은 피투성이가 된 차림으로 병원 세계에 돌아온다. 상준이 직접적으로 다친 부위는 적었지만 그림자 상준이 죽을 때 피가 터진 탓에 전신이 피범벅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알 리가 없던 현아는 상준을 보자마자 매우 격앙되고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껴안은 다음 치료를 위해 눕힌다. 상준은 굉장히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현아를 보고 잠시 이상하게 여기다가. 자신이 안 다쳤다고 알려준다. 현아가 상준의 몸을 살피고 정말 멀쩡하다는 걸 확인하자, 오버 행동을 한 게 부끄러운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다.
상준이 일어서자 현아는 상준의 등 뒤로 돌아가서 옷자락을 꼭 붙잡는다. 상준이 자길 껴안으면 옷 더러워진다고 말하지만 현아는 아까 껴안을 때 옷 다 버렸다며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 자기 때문에 큰일날 뻔했다며 자책을 하다가 빠르게 돌아가자고 말한다. 상준은 돌아가면서 상황보고를 했지만 현아는 반응없이 아무 말도 않고, 옷자락을 꼭 붙잡은 채 따라오기만 한다.
병원에서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는 도중 현아가 들어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직 바지밖에 안 입었기에 볼멘 소리를 하려 하지만 현아의 풀이 죽은 표정을 보고 말을 멈춘다. 현아는 상준의 등을 보고 상처 있다고 말하는데, 아까랑 달리 다시 웃는 표정으로 바뀐다. 상준이 이미 다 나았다고 말하자 현아도 안심하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후 한 번도 들려준 적 없는 섬뜩한 목소리로 누가 상처를 냈냐고 묻는다. 상준이 깜짝 놀라 돌아보자 현아는 헛기침을 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상준은 아까 그 괴물이 그랬다고 말하고, 현아는 다시 무서운 표정으로 왼팔의 상처도 묻는다. 상준이 자기가 정신 차리려고 물어뜯은 거라 말하자 현아는 아무 말도 않고 고개를 숙인다.
뭔가 말하려는 걸 참는 것 같다고 느낀 상준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파편을 건네주려 한다. 현아는 자신의 쇄골 밑에 상준의 손을 갖다대고 이후 파편이 전해지기 시작한다.[65] 그런 현아를 보면서 상준은 파편의 대부분을 꼬맹이에게 뺏겼으니 내일 재도전해도 되냐고 묻는다. 현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꼬며 상준을 바라보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왜 그런 소리부터 하냐고 묻는다.
현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에게 화내야 하는 게 맞지 않냐고 묻는다. 이유는 비 오는 세계가 현아가 말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했기 때문. 상준은 크게 다치지도 않았으니 괜찮다고 말하지만, 현아는 계속 자기 때문에 큰일날 뻔했다며 자책을 하기 시작한다. 상준이 계속 이 정도는 각오 했었다는 뉘앙스로 답하자 현아는 말문이 막힌듯 이마를 짚는다.
현아는 한숨을 크게 쉬더니 다짜고짜 자기에게 안기라는 소리를 한다. 얼떨결에 현아에게 안긴 상준은 좋냐는 말에 겁나 좋다고 답하고, 현아는 웃는다.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세게 껴안는 현아에게 왜 이러냐고 묻자, 현아는 오늘은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무서운 사건들만 일어난 날이니 자기가 껴안아 주겠다고 말한다. 상준이 현아의 품을 편안하다고 느낄 무렵 현아는 정말 괜찮냐고 묻는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서, 힘들어도 괜찮은 척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사람이 있었냐고 묻는다.

상준은 전 여친의 비위를 어거지로 맞춰주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정곡이 찔리고, 현아에게 속내를 감추는 건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현아는 이제 다 괜찮으니 다 털어내라고 위로하고, 살짝 강제하는 뉘앙스지만 이렇게 해야 다 털어낼 것 같다며 미소짓는다. 그런 현아를 보며 상준은 정말 간만에 자신이 위로받았음을 느끼고, 감정이 복받쳐오른다. 하지만 더 이상 가면 자신이 자제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잠시 진정하고, 연약한 표정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그런 상준에게 현아는 목덜미에 키스를 하더니, 그동안 묵혀뒀던 힘든 일들을 전부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이후 시간이 지나 날이 어두워질 무렵, 상준은 연애 진도를 지나치게 나가면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일 지도 모르니, 앞으로는 왠만해선 진한 애정표현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66] 하지만 현아는 장난스럽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까치발을 드며 상준을 바라보는데, 상준은 자신이 얕보였다고 생각해 현아의 어깨를 잡고 살짝 벽으로 민다.
그리고 자신이 폭주하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말하나, 현아는 상준의 어깨를 확 잡아당기더니 역으로 상준을 벽으로 밀어붙인다.[67] 그리곤 현아는 웃으면서 요즘 애들은 이런 거 못참냐며 유혹하는 자세를 마구 취한다. 유혹이 점점 심해지자 상준은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말한다.
현아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여친도 있던 사람이 왜 이렇게 자극에 약하냐고 묻는다. 상준은 그게 아니라 여친도 아닌 현아 씨가 유혹을 하니 그렇다고 말하고, 이러다 자기가 사귀자고 하면 어쩔 거냐고 말한다. 현아는 잠시 고민 하는 듯하더니 웃으면서 상준 정도면 굉장히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아는 상준에게 자신의 어느 점이 좋냐고 묻는다. 상준이 악력이라고 답하자 현아의 눈꼬리가 확 올라가고, 얼굴로 정정하자 다시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는다. 반대로 상준이 자기의 어디가 괜찮냐고 물어보자 현아는 '내면세계'라는 엉뚱한 답변을 한다. 상준이 약 팔지 말라고 말하자 현아는 몸이라고 정정하고, 상준은 현아마냥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는다.
현아는 이후 상준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서로 차차 알려주기로 하자고 말한다.[68] 상준도 과거 성격이 안 맞는 여친과 만났다가 고통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속으로 받아들이고, 현아는 사귀면서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아는 지금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내일 우비를 꼬셔야 하기 때문이라고. 능글맞은 태도의 현아가 내뱉은 황당한 소리에 상준은 당황하지만,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버린다.

2.1.5. 유리의 세계

《유리의 세계 #1》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면
더 많은걸 들고 가면 되지 않을까?
그림자 상준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본체에게 패배해 핏물이 되어 터져나간 그림자 상준은 빗물에 섞여 흐르기 시작한다. 자신이 상준이었다는 자각도 거의 사라져 하염없이 흐를 무렵 멀리서 피 묻은 발이 소리치고 있는 걸 본다. 그리고 여기서 피 묻은 발의 전신을 보는데, 성인 남성의 하체와 대량의 보라색 촉수가 달린 상체를 가진 형태였다. 그런 피 묻은 발을 옆에서 대량의 그림자들이 찬양하고 있었고, 상준의 옆에는 우비가 귀를 틀어막고 숨어있었다. 우비는 겁을 먹은 듯 보였지만 도망가지 않았는데, 우비의 시선을 따라 가보니 그림자들 중 하나에 꽃혔다. 우비가 바라보는 그 그림자는 수척하고 나이 든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 때 우비의 뒤쪽 공간에서 날카로운 칼끝이 허공에 생겨버린다. 우비는 허공이 갈라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빗물에 고여있던 상준은 무언가 이곳에 들어오면 안 될 존재가 들어오려 함을 직감한다.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사람은 현아로, 전신에서 근육이 끊어지고 뼈가 부서짐에도 악에 받친 표정으로 들어오려 한다. 우비는 그런 현아를 보며, 예전에 버려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온 거냐며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인다.
전신에서 핏물을 흘리며 진입하던 현아는 잠시 빼더니, 힘을 쥐어짜내 피 묻은 발의 등에 나이프를 찔러넣는다. 그림자 상준은 나이프를 찔러넣은 자리가 아까 자신이 피 묻은 발 때문에 다쳤던 자리인 걸 깨달으나, 본체의 기억이 흐릿한 탓에 더이상 생각을 이어나가지 못한다. 이후 힘을 다 쏟은 탓에 현아는 빨려 들어가듯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우비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기만 한다.[69]
우비가 그림자 상준 쪽으로 다가오더니 파편을 그림자 상준에게 전달해준다. 파편을 받고 의심이 점점 또렷해진 상준은 이후 우비에게 들린다. 우비는 물이 되어버린 상준을 약간 한심한 듯 쳐다보더니, 현아가 오빠가 다쳤으니 복수하러 온 것이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자기에겐 신경도 안 썼다면서 우울해하더니, 그림자 상준을 계속해서 부른다. 우비에게 계속 불려진 덕에 그림자 상준은 의식을 더 빨리 회복한다.
이후 우비의 서브 스토리인 《02: 나만의 보물》로 이어진다.
다시 본체 시점으로 돌아온다. 그림자 상준이 눈을 떴던 이유는 사실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던 중 상준이 졸았기 때문이었는데, 상준은 어느덧 세 정거장이나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아를 위해 이것저것이 담긴 가방을 매며, 상준은 어제 현아가 우비를 꼬셔야 한다고 말한 것의 의미를 곱씹는다. 현아와 연락을 할 수가 없어 답답해하며 병원으로 걷던 도중, 학교 하나를 발견한다.
그런데 상준은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학생들의 교복이 마치 유리의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교문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상준은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의 교복이 두 종류인 걸 확인한다. 다른 학교 애들 교복이 섞였다고 생각하며, 상준은 자신이 착각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니, 유리가 현실의 학교에 있을 리가 없기 때문.
그 때 상준은 순식간에 멸망한 학교 세계로 진입한다.[70] 상준이 다시 운동장을 보자 아까 많던 아이들은 전부 사라져있었고, 대신 유리가 눈앞에 있었다. 상준은 손을 붕붕 흔들며 유리에게 인사를 하고, 그 당사자는 표정이 굳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 안으로 튀어버린다. 상준은 배낭을 편하게 맨 다음 성큼성큼 뒤쫓아 가기 시작한다.
《유리의 세계 #2》
잡지 못했을 땐.
얼굴이라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상준과 유리는 그렇게 학교에서 추격전을 벌인다. 어차피 상준은 유리를 능히 따라잡을 수 있는 데다가 잡자마자 패버릴 생각도 아니었기에,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쫓아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패버리면 바로 고소를 먹는 세상이기에, 상대를 지치게 만든 뒤 평화적인 대화를 유도하는 것이 작전이었다. 유리는 숨을 헐떡이더니 촉법이랑 싸우면 손해인 거 아냐고 역으로 협박을 한다. 하지만 상준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도망갈 수 있게 길을 비켜주며 놀리기까지 한다.
이후 상준은 검은 것들 사이에서 플래시를 왜 터트렸는지 묻는다. 유리가 사과하지 않았냐며 잡아떼자 상준은 사과가 아니라 그 행동을 했던 이유를 묻고, 아까와 달리 겁을 주기 시작한다. 그러자 겁먹은 유리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더니 비굴하게 울먹이기 시작하는데, 상준은 유리가 인공 눈물로 연기를 하는 걸 눈치채고 속지 않는다. 연기가 들켜 버리자 유리도 태도가 싹 바뀌어, 안약통을 던져버린 다음 아까의 비굴한 톤이 다시 건방진 톤으로 바뀐다.
유리가 툭툭 털면서 일어나는데 상준은 유리의 왼손이 움직이는 걸 간파한다. 유리는 상준을 사납게 바라보더니 신발장에서 뭔가를 꺼내는데, 상준은 저번에 뿌린 분무기인 걸 간파하고 유리의 왼손을 쳐서 떨어뜨린다. 유리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후 바로 옆에 있는 교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가버린다. 그리고 다급한 어투로 좋은 말로 할 때 꺼지라는 식의 온갖 욕을 한다. 하지만 상준은 듣지도 않고 문을 걷어차 부서버린 뒤 교실로 진입한다.
그런 상준을 보고 유리는 더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는 듯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친다. 상준은 유리를 전신거울 쪽으로 몰아붙이며 다시 플래시를 터트린 이유를 묻는데, 유리는 진짜로 겁에 질려 울기 시작한다. 유리가 울자 상준은 살짝 당황한다. 그리고 유리는 현아와 상준이 한패인 줄 알고 경고 차원에서 그랬다고 해명한다. 상준이 뒤질 뻔했는데 경고가 맞냐고 쏘아붙이자 유리는 더더욱 겁을 먹으며 뒷걸음질 치고, 마침내 교실 내에 있는 전신거울에 등이 닿는다.
거울에 등이 닫자 유리는 기겁하며 어서 비키라고 말한다. 상준은 비키지 않고 뻐기다가, 문득 거울에 비친 유리의 이름표가 좌우반전 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그 때 거울 속의 유리가 진짜 유리의 팔을 잡고 거울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 한다. 뭔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상준은 유리의 팔을 간신히 붙잡지만, 당겨지는 힘이 너무 센 나머지 유리는 점점 끌려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리의 전신이 들어갈 무렵, 이젠 상준도 같이 끌려들어 가기 시작한다.[71]
거울 속에 신체가 먹히기 시작하자 상준은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다시 거울에 머리를 박아 정신을 차린다. 이후 유리가 빨리 팔을 당기라고 소리치자 상준은 유리의 팔이 부러질 각오를 하고 전력을 다해 당긴다. 이후 유리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와 상준은 바닥에서 나뒹굴고, 유리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다시 들여다 본 거울 속에는 아까 그 그림자 학생들이 불어나고 있었다.
파일:그세계13.png
상준은 유리의 왼쪽 어깨가 빠진 걸 깨닫고 안아올린다. 이후 유리는 호흡곤란을 겪다 핏덩이를 토해내더니, 상준을 원망스런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유리는 상준이 이미 멸망한 세계로 들어온지 오래인데, 아직도 괴물들의 기습을 눈치 못 챘냐고 말한다. 상준도 자신이 요즘 이 세계에 무감각해져서 눈치를 못 챈 걸 깨닫고, 언제부터 괴물들이 들어온 건지 묻지만 유리도 몰라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어느덧 모든 유리와 거울에 학생들이 들러붙더니 유리와 상준을 보고 깔깔깔 웃기 시작한다. 전신이 기괴하게 꺾이면서 울음소리가 섞인 웃음소리를 내는 학생들을 보고 겁을 먹는다. 하지만 유리가 절대 뛰거나 소리지르지 말라고 했기에 정신을 가까스로 유지한다. 유리의 조언대로 거울 비슷한 것들을 최대한 피하면서 걷던 도중, 유리가 팔을 부러뜨릴 것까진 없지 않았냐며 소리를 지른다. 상준은 극도로 긴장한 탓에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 것도 눈치 못 채고 그저 사과만 반복하는데, 그 순간 밑에 고여있던 물웅덩이에서 학생의 손이 뻗어나온다.[72]
순간 상준은 놀라 소리를 지르는데 유리가 뭔 그리 겁이 많냐고 잔소리한다. 그러자 상준은 학생들처럼 때리지 못하는 놈을 어떻게 상대하냐고 묻자, 할 말이 없던 유리는 팔을 부여잡고 과장된 아파하는 연기를 하며 얼버무린다. 상준도 유리가 과장된 연기를 하는 건 눈치채지만, 유리가 이를 악물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그래도 이정도까지 참아주는 건 감지덕지라고 생각한다.
그 때 눈 앞에 전신거울 하나가 나타나는데, 어째선지 자신과 유리의 모습이 비치지 않고 학교가 아닌 다른 장소를 비추고 있었다. 유리는 주변을 비추지 않는 거울은 괜찮다며 안심하라고 말하지만 상준은 괜히 헷갈리니 그냥 다 피할 생각을 한다. 상준은 복도를 걸으면서 어떻게 이딴 데에서 사냐고 묻는다.[73] 그러자 유리는 이렇게 학생들이 나타나는 거 빼면 괜찮은 공간이라고 말한다.[74]
상준은 그 말을 듣자 전 여친으로 생긴 습관 때문에 조건반사적 사과를 하는데, 유리는 방금 사과한 거냐면서 놀린다. 상준은 처음엔 부정하지만 이후 나중에 얘기하자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 사이 학생들은 거울에서 하나둘 빠져나와, 서로를 겹쳐 쌓으며 미끄러지듯 다가오고 있었다. 상준은 졸도할 풍경이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매우 느린 탓에 안심한다.
이후 유리의 안내에 따라 상준은 계단까지 온다. 유리 말로는 학생들이 이쪽까진 못 오니 안심해도 된다고. 그런데 어째선지 상준은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버리고, 파편이 부족해서 못 들어간다고 생각해 다른 계단으로 안내할 걸 요구한다.

《유리의 세계 #3》
여기가 좋아서?
아니면, 바깥이 두러워서?
파편을 모으자 마침내 상준은 계단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아래에서 학생들이 투명벽에 가로막혀 계단을 못 넘어오는 걸 확인한 뒤 그제서야 계단에 걸터앉아 쉰다. 학생들이 투명벽을 짓눌러가며 넘어오려는 걸 보고 상준은 살짝 걱정하고, 유리도 본인이 안전하다고 말했으나 같이 불안해한다. 참고로 유리는 상준 오빠한테 계단 구역이 안전지대인 걸 가르쳐주기 싫어서 여기로 도망 안 왔다고 말하는데, 상준이 짜증내려 하자 다시 어깨를 부여잡고 연기톤으로 아프다고 외친다.
파일:그녀의세계_유리.png
상준이 유리의 팔을 진지하게 걱정하자, 유리는 창틀에 걸터앉아 괜찮다고 말한다. 팔이 아프긴 해도 거울 속으로 끌려가는 것보단 낫다고. 상준이 유리가 아파하는 걸 보고 병원 갈 것을 권유하지만, 유리는 나가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한다. 상준이 혹시 너도 갇혔냐고 묻자 유리는 그 언니랑 같은 취급하지 말라고 따진다. 그 이유는 자기는 현아랑 달리 일부러 안 나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사이 투명벽에는 학생들이 짓뭉게져 당장이라도 쏟아져 나올 듯한 풍경이 자리한다. 유리는 저렇게 많이 나오는 건 처음이지만 그래도 30분 지나면 다 사라진다며 여유로워한다. 상준은 그래도 걱정이 된 건지 자신의 몸으로 유리를 가리는 위치로 가 앉는데, 유리는 그런 상준을 보고 살짝 얼굴이 빨개진다.
아무튼 30분 동안 상준은 유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려 한다. 상준은 일단 자신은 현아와 한패가 맞으니 서로 적대 관계가 아니냐고 묻는다. 유리는 그 말에 당황하고, 상준은 괜히 구했다며 너스레 떤다. 하지만 유리는 웃으면서 오빠는 자신을 비롯한 남이 위기에 처한 상황을 내버려 두지 않는 사람 아니냐고 물은 뒤 호구라며 놀린다. 상준은 나대는 유리를 보고, 혹시 현아랑 무슨 일이 있었기에 원수를 진 거냐고 묻는다. 유리는 말하지 않으려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현아를 그냥 두면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려 할 테니까 거리를 두는 거라고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파일:그세계14.png
유리는 자세한 설명을 위해 종이와 펜으로 대략 그림을 그린다.[75] 유리 말로는 자신도 한계점을 만드는 인물이고, 한계점을 없애기 위해서 현아가 자신을 내보낼 거라고 한다. 상준은 굳이 그럴 필요 없이 그냥 지나가게만 해주면 자기가 파편을 모아서 전달할 테니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리는 눈을 치켜뜨며 그 말을 믿냐고 묻는다. 현아가 다른 사람들로 시험을 해봤다곤 하지만 상준은 그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 상준은 이전처럼 현아 씨는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라고 답하지만, 유리는 거짓말이 아니라 현아가 잘못 안 것일 가능성도 있지 않냐고 반박한다.
상준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고 묻자 유리는 바깥 풍경을 가리킨다. 바깥은 병원 세계와 마찬가지로 폐허로 변해 있었고, 유리는 멸망한 세계를 보며 애초에 이 세계는 알려진 것이 너무 없으니 현아의 추측이 틀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 상준은 넌 알고 있는 게 있냐고 물어보는데, 유리는 자기는 멸망한 세계가 마치 꿈 같다는 의견을 낸다. 왜냐하면 이상한 게 나오고, 아는 장소만 갈 수 있고, 다른 사람이 꾸는 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한계점으로 서로 막혀있다는 점이 유사해서라고.
멸망한 세계를 꿈에 비유하면, 결국 현아가 상준에게 시킨 일은 결국 자기와 우비의 내면세계를 알아오라 한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현아가 한계점을 넘을 수 있게 되면, 한계점을 넘고도 탈출에 실패했을 때 현아는 자신을 쫓아낼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자신을 쫓아내려 할 시점이면 한계점을 넘을 수 있게 됐으니 못할 것도 없다고. 하지만 자신은 끝까지 안 나가고 버틸 건데, 그 지경까지 가면 현아는 최종적으로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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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없는 유리의 섬뜩한 말투와 발언에 상준이 당황할 무렵,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학생들이 계단으로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한다. 상준은 위로 올라오는 학생들을 모조리 걷어차버리지만 수가 너무 많았고, 아예 위에서도 올라오고 있는 걸 깨닫는다. 학생들 사이에 위아래로 갇혀버린 상준은 이후 유리가 바깥 창문을 열려는 걸 목격한다.
순간 묘책이 떠오른 상준은 유리가 보고 있는 창문으로 향한다. 그리고 창문에 비친 유리가 다름아닌 현아가 있는 병원을 비추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전에 병원에서 유리를 만났을 때 유리가 거울 속에만 있었던 걸 떠올리고, 이후 병원 세계의 거울과 학교 세계의 비치지 않는 유리가 전부 서로를 잇는 한계점인 걸 간파한다.
상준은 같이 병원으로 넘어갈 것을 권유하지만 유리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자신은 한계점을 못 넘어간다고 소리친다. 상준이 이전에 병원에서 문 잠그지 않았냐고 따지자, 유리는 답답해한다. 그 때 상준이 이전에 병원에서 유리가 자긴 문을 열 줄 모른다는 말과 함께 비웃던 것이 떠오른다. 상준은 그 말이 순수 조롱을 위해서 한 말이 아닌 진심이었다는 것과, 유리가 문을 잠근 것이 아니라 문을 열어주려다 실패해서 잠근 척을 한 것임을 눈치챈다.
유리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일어서려다 팔이 빠진 고통 때문에 주저앉는데, 그 때 상준은 유리의 운동화를 본다. 그리고 그 운동화가 이전에 피 묻은 발로부터 도망가게 해준 그 사람이 신고 있던 것임을 깨닫고, 유리가 아까 사과했다고 말한 것이 구해줬던 걸로 퉁친다는 뜻이었음을 깨닫는다. 즉, 유리는 건방진 태도를 보였어도 상준을 구하려 했고, 실제로 구해주기도 한 은인이었던 것. 상준은 유리가 자신이 목숨을 구해줬다고 말해봤자 상준이 안 믿을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띠껍게 굴었다는 걸 깨닫고 머리아파한다.
유리는 그 사이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상준은 성큼성큼 다가가 계단에 쌓인 학생들을 걷어차 무너뜨린 다음, 유리에게 팔 꽉 잡으라고 말한다. 영문도 모른 채 유리는 팔을 붙잡고, 이후 상준은 유리를 공주님 안기한다. 유리는 격통에 비명을 지르지만, 상준이 소리 지르지 말라 하지 않았냐고 묻자 고분고분해져서 조용해진다.
이후 상준은 유리에게 병원 세계의 파편을 건네준다. 파편을 통해 세계를 건너갈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이 파편을 건네주면 상대도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 마지막 수단이라 안 되면 죽으려는 심정으로 파편을 건네준 뒤 창문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유리를 안아들어서인지 이전보다 저항이 더욱 강하지만[76] 상준은 묵묵히 나아간다. 이후 잠시 비 오는 세계에서 상준을 지켜보고 있는 우비의 대사가 삼입된다.
거봐.
저러면 되는 걸.
-우비
상준은 이후 기가 팍 죽어 얌전해진 유리를 데리고 병실로 간다.[77] 유리에게 병원에 안 갈 거냐고 재차 묻고, 유리가 단호하게 안 나간다고 하자 상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유리를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놓는다. 그리고 최대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탈골 치료를 위해 스팀슨 기법을 실시한다.[78] 유리가 아파 죽으려 하며 뭐 하는 거냐고 소리지르자 상준은 대략 치료하는 거라고 알려준다. 그러자 유리는 영화처럼 한 번에 우드득 고치는 건 안 되냐며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지만, 상준이 해주냐고 묻자 식겁해하며 거부한다.[79]
그런데 탈골된 쪽의 팔을 보니 이상하게 무언가가 깨문 상처가 있는 걸 본다. 그리고 거울 안쪽에 뭐가 있는지 봤냐고 묻고, 상준이 못 봤다고 말하는 걸 듣자 못 봐서 다행이라는 다소 섬뜩한 말을 한다. 이후 유리는 스마트폰을 하기 시작하는데, 상준은 인터넷이고 뭐고 없는 세계에서 뭘 하나 싶어 몰래 들여다본다. 그리고 상준은 유리가 메모장으로 일기를 쓰는 걸 보는데, 일기를 쓴다는 것이 들켜버린 유리는 부끄러워 하는 듯 폰을 가린다.
이후 대화를 나누던 중 유리가 계속 띠꺼운 말투를 구사하자, 상준은 그 말투 어떻게 못 고치냐고 말한다. 그러자 유리는 고칠 수 있는데 오빠를 상대로 굳이 고칠 필요 없다며 비웃고, 상준은 복수 겸 얼굴에 낙서를 하기 위해 유성 매직을 찾는다. 찾으면서 거울 하나가 유리 시선에 들어오는데, 유리는 자신의 곱슬머리가 헝클어진 걸 보고 당황한다. 그리고 한 손으로 앞머리를 손질하기 시작하는데 머리가 잘 다듬어지지 않자 울상을 짓는다.
매직이 보이지 않자 잠깐 나가있을 생각에 문을 나서려는데, 유리가 헝클어진 머리가 부끄러운 듯 고개 돌리지 말라며 옷자락을 잡는다. 하지만 상준은 머리 망가져서 그렇냐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유리는 그냥 좀 모른 척 해주면 안 되냐고 따진다. 그러자 상준은 전 여친과 사귀던 과거에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데, 아무리 봐도 자기 성격이 아닌 거 같아 마음을 바꿨다고 말한 뒤 피식 웃는다.
그리고 상준은 자신의 과거와 유리가 자신을 구해줬으나 아닌 척 하는 걸 종합해서, 무엇이든 쌓아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대놓고 말하고 다닐 것을 충고한다. 유리는 자신이 구해줬다는 걸 다 알고 있었냐며 따지는데, 상준은 역으로 자기가 그걸 눈치 못 챘으면 유리를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유리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아무튼 눈치를 못 챘으면 오빠만 쓰레기 되는 거라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하지만 상준의 옷자락은 꼭 잡고 놔주지 않는다.
이후 상준은 팔에 걸린 모래주머니를 제거하고, 유리는 팔이 붙은 것에 신기해하며 팔을 붕붕 돌린다. 하지만 빠진 자리에 염증이 생긴 나머지 고통은 가시지 않았고, 상준은 그런 유리의 팔에 붕대를 감아준다. 유리는 얌전히 붕대를 감기며 상준을 미묘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이런 치료는 어디서 배웠냐고 묻는데, 상준 왈 텃세 부리는 주짓수 아재들한테 시달리면 다 알게 된다고. 상준이 전문 의료인이 아니라는 말에 유리는 다시 띠꺼운 눈빛으로 마치 평가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치료가 끝나자 상준은 유리를 학교로 다시 데려다준다. 학교는 학생들이 모두 사라져 다시 한적해졌고, 유리는 학생 웨이브도 지나갔고 자기도 생활 공간이 따로 있으니 괜찮다고 말한다. 상준이 병원에서 지낼 걸 권유하지만 유리는 여전히 현아를 거부한다. 자기가 따로 현아를 면대면으로 마주하지 않았고 그저 거울 속에서 보고 듣기만 했으나, 대충 현아의 생각은 알겠다고 말한다.
상준은 현아가 적대적으로 굴어도 자기가 중재할 테니 대화를 해보는 걸 권유하지만, 유리는 피식 웃으면서 현아가 자길 죽이려 들면 현아를 팰 수 있냐고 묻는다.
* 때릴 수 있다고 말하면 유리는 쓰레기라면서 질책한다. 상준은 솔직히 유리가 살기 위해서 막는다기보단 현아가 살인자가 되는 걸 막기 위해 그러는 거라 생각하지만, 유리는 그저 웃기만 한다.
* 때릴 수 없다고 말하면 유리는 호구라며 놀린다. 그리고 싸움질 잘 해봤자 호구라고 말하는데, 상준이 격투기 종사자한테 싸움질이라는 말 쓰면 안 되니 조심하라고 일침한다. 물론 유리는 들은 채도 안 하고 놀리는데, 상준이 달려들려 하자 다시 팔이 아픈 척 연기를 한다.
뭐 어쨌든.
우리 이제 친해진 거죠?
말 안 하고 쌓아둔 거 없기예요.
갑자기 유리가 이런 말을 하자 상준은 당황해한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받아들이자 유리는 띠꺼운 미소를 짓는데, 상준은 저 미소가 이전보다는 좀 더 온화하게 바뀐 걸 깨닫는다. 그리고 유리는 자신은 현아가 나가려는 것에 협조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현아가 나가는 순간 자기는 우비랑 같이 세계 밖으로 튕겨져 나갈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상준은 아까 현아가 유리를 죽이고 뭐고 했던 건 다 거짓말 및 과대망상이고, 진짜 우려했던 게 그거였냐고 묻는다.
유리도 틀린 말은 아닌지 받아들이고, 그 근거를 질문받자 오로지 감이라고 말한다. 상준이 환장할 표정을 짓자, 유리는 현아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상준이 살짝 놀라자 유리는 현아와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생각해보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첫날 했던 대화 중에는 자신의 말이 맞거나 틀렸다고 증명할 만한 중요한 증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뒤, 손을 흔들며 학교로 유유히 사라진다.

《유리의 세계 #4》
유리와 친해졌다.
달갑지 않게 여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상준은 병원을 걸어다니며 현아와의 첫째 날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리고 현아가 "도망치고 싶어서 왔겠지만 여긴 낙원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에 이상함을 느낀다. 마치 자신이 여기 오는 걸 바라서 들어왔다는 투기 때문.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문득 자신이 병원을 너무 태연하게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깨닫고, 안전불감증에 빠진 거 같다는 생각에 현아의 병실로 가려 한다.
그런데 모퉁이를 도는 순간 현아가 나이프로 기습을 한다. 어쩐지 평소의 청초한 이전과 달리 과감한 복장을 한 현아는 죽일 듯한 눈빛으로 상준을 바라본다. 그 이유는 상준이 평소 쓰던 엘리베이터로 들어오지 않아 가짜로 착각한 것인데, 현아는 상준을 상대로 나이프는 물론 브라질리언 킥까지 써가며 상준을 시종일관 압박한다.[80]
상준이 해명을 하려 해도 현아는 가짜가 연기를 많이 잘 한다며 믿지 않는데, 그 순간 현아는 상준이 맨 가방을 본다. 그리고 상준의 복장이 이전과 달라진 걸 보고, 비틀거리면서 다가와 상준의 뺨을 쭉 잡아당긴다. 그리고 진짜 상준이 맞다는 걸 확인하자 얼굴이 새빨게지더니, 심하게 당황하며 상준에게 거듭 사과를 한다. 상준은 진짜 위험했으나 현아가 솔직하게 미안해하는 걸 보고 괜히 기뻐한다. 왜냐하면 적반하장 식의 태도를 보이는 인간이 널린 세상에서 사과를 하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이후 현아는 왜 평소처럼 엘리베이터로 안 왔냐고 걱정하듯이 소리지르고, 상준은 어쩌다 보니 그리 됐다고 말한다. 이후 현아는 안심하는 표정으로 나이프를 집어넣고, 상준을 마치 보고 싶었다는 듯 그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상준이 많이 보고 싶었냐고 묻자, 현아는 오늘 안 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와줘서 그렇다고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그 때 현아는 거울을 보더니 자신이 생얼인 것도 모자라 치렁치렁한 복장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부끄러운 나머지 상준을 뒤로 돌린 다음 껴안는다. 상준이 되게 멋있는 복장이라고 칭찬하자 현아는 그저 보지 말라는 경고만 한다. 그리고 상준은 어차피 생얼은 나중에 깔 거 아니냐고 묻자, 현아는 혼자 연애 진도 빼지 말라고 잔소리한다. 상준은 더 장난치고 싶어하지만 진짜로 삐질 거 같아 관둔다.
이후 시간이 지나 복장도 갈아입고 정신을 되잡은 현아는 상준에게 유리와 있었던 일을 듣는다.[81] 현아는 유리를 헌팅한 것과 팔을 뽑은 것에 대해 살짝 질책하더니, 위험한 짓 하고 다니지 말라며 걱정 섞인 잔소리를 한다. 반성을 한 상준은 일단 거울도 학교 세계를 잇는 한계점이라는 걸 알려준다. 현아는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한 뒤 유리를 믿을 수 있냐고 묻는다. 이에 상준은 건방지고 흉계를 꾸미나 허접해서 괜찮다고 답한다. 현아는 허접하다는 말에 이마를 꼭 쥐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아는 비 오는 세계처럼 학교 세계도 파편을 모으면 자기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상준은 파편을 현아에게 건네주며 두 세계의 장단점을 분석하기 시작한다.[82] (장점/단점)
* 비 오는 세계
* 한 번 반쯤 공략해 봤다.
* 현아 씨에게 브리핑을 받을 수 있다.
* 우비가 귀엽다
* 비가 온다.
* 적들이 너무 무섭다.
* 우비를 만나면 브리핑이 끊긴다.
* 학교 세계
* 비가 안 온다.
* 실내다.
* 적들이 특정 시간대만 제외하면 비교적 만만한 것 같다.
* 거울에 끌려 들어가는 건 즉사 패턴.
* 적이 물량 공세를 한다.
* 유리가 띠껍다.
하지만 둘 다 장단점이 서로 교차하면서 맞물리기에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현아는 다치면 결국 자신 때문이기에 신중하게 결정하라며 걱정한다. 그리고 유리가 스토킹했다는 사실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데, 그냥 자기가 이뻐서 그런 짓을 한 것일 거라며 좋아한다. 이후 상준에게 팔짱을 끼고 머리를 어깨에 기대는, 노골적인 연인 포즈를 잡는다. 그리고 다소 가늘어진 눈으로 옆의 거울을 직시한다.[83]
이후 상준은 현아가 학교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팔짱을 끼고 거울을 만진다. 하지만 거울이 그 순간 막혀버리자 현아를 데려가기엔 아직 역부족이라는 걸 깨닫는다. 현아는 갑자기 상준이 팔짱을 껴서 살짝 당황하는데, 상준은 부끄러워하는 현아를 보고 그동안 당한 걸 복수하고 싶은 까닭에 한번 유혹하는 시늉을 해본다. 하지만 현아는 방긋 웃더니 오히려 눈을 감고 키스를 하라는 듯 까치발을 든다.
상준은 당황하지만 분위기를 해치면 안 될 거 같아 응하기로 한다. 그렇게 서로 첫키스를 하려는 순간, 현아가 꼴리냐고 물으며 분위기를 깨자 상준은 웃음이 터져버린다. 그리고 현아는 70점을 매기며, 사인을 주자마자 반사적으로 키스를 갈기려 한 것에 감점이 들어갔다고 말한다.[84] 그리고 현아는 연상을 쓰러뜨리기엔 아직 멀었다고 말한 뒤 상준을 잔뜩 귀여워해준다. 상준은 그런 현아를 언젠간 이겨보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현아가 거울 저편을 향해 살짝 무서운 시선을 보내며 잘 알겠냐고 묻는다. 그리고 거울에 살짝 비친 유리는 황급히 자리를 뜬다.
상준은 비 오는 세계에 다시 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현아는 어쩐지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시간도 늦었으니 돌아갈 걸 부탁한다. 상준이 자긴 밤눈이 밝다며 괜찮다고 하지만, 현아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상준이 밤에 위험한 게 나오냐고 눈치챈 듯 묻자 현아는 12시 지나면 아주 위험해진다며 웃는다. 상준이 그쪽은 어떻게 버텼냐고 묻자 현아는 밤마다 병실에서 꼭 문을 닫는 식으로 버텨왔다고 답하며, 아직까진 문을 여는 녀석을 못 봤다고 한다. 그리고 마치 문이 이곳에선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아가 은근한 표정으로 다가와 문을 열어달라고 말하는 귀신 흉내를 낸다. 상준은 당연히 안 먹힌다며 대꾸를 하지 않고 현아는 장난스럽게 웃는다. 그리고 현아 말대로 이미 학교 세계에서 한바탕을 치르기도 했고, 비 오는 세계는 낮에도 충분히 무서웠기에 돌아갈 생각을 한다.
그 때 현아가 밤이 되면 위험한 것도 있지만, 상준이 한계점을 넘나들 수 있는 능력에도 영향을 끼칠 거 같아 만류하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결국 상준은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현아도 이해한다는 듯 웃는다. 하지만 상준은 이런 위험한 세계에 있는 현아를 걱정하고, 너무 즐거운 태도로 말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자 현아는 밝은 척 한 게 티 났냐고 물은 뒤, 자신이 즐거워 한 이유로 '밤에 잘 수 있는 것'을 든다.
현아는 옛날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의 병원 침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낮에는 어떻게든 자려 했으나 한계가 왔으며, 결국 밤에 푹 몰아 자는 걸 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상준은 현아가 자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 것에 이해를 하지 못하고, 우비마냥 서로 사고방식의 차이를 느낀 건 처음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돌아가려 하던 상준은 자신이 늦게 왔다는 사실에 사과한다. 현아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상준이 발길을 끊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85] 이후 상준은 유리가 했던 의미심장한 말 때문에[86] 혼자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다고 느껴 돌아간다.
돌아가면서 상준은 현아가 잠을 좋아하는 이유도 생각해본다. 그리고 항상 자신이 떠날 때마다 옷자락을 잡는 걸 떠올리고, 현아가 외롭게 혼자 남은 시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 밤에 자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 걸 깨닫는다. 그리고 현아에게 자신이 돌아간 뒤의 스케줄을 묻는데, 현아가 저녁 식사라고 답한다. 그런데 현아의 평상시 저녁 메뉴가 매점에서 파는 빵이나 과자뿐인 걸 듣고 다음엔 자신이 요리를 해주기로 마음먹는다.

《유리의 세계 #5》
그건 세상을 구한다.
분명히.
결국 상준은 돌아가지 않고 현아를 위해 배낭에 넣어둔 냉동 닭다리를 요리하기 시작한다. 일찍 돌아가지 않기 위한 핑계 삼아 만들기 시작한 건데, 현아는 옆에서 매우 쭈뼛거리며 닭다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후 현아는 맥주를 따는데 거품이 흘러넘치자 당황하더니 그대로 홀짝 마셔버린다. 마치 맥주를 처음 마시는 듯한 반응을 보인 현아는 쓴맛을 미묘한 표정으로 참는다.
그 다음 닭다리를 한입 먹는데, 한동안 말이 없다가 왜 이제서야 자기 눈 앞에 나타난 거냐며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이미지가 망가질 정도로 입에 닭다리를 쑤셔넣기 시작하고, 자기가 지금까지 먹고 산 거랑 차원이 다르다며 한탄하고 있었다. 현아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로 감격하며 폭식을 하다 문득 자신의 모습을 자각했는지, 양손을 얼굴로 가리고 고개를 돌린다. 상준은 부끄러워하는 현아를 보고 어른스러운 척 하는 애 같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상준이 도시락을 싸오겠다고 제안하자 현아는 감동한 듯 상준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더니, 자신에게 시집 오지 않겠냐고 묻는다. 상준이 즉발로 그렇다고 대답하자 현아는 허둥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그러면서 빨개진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고, 상준은 오늘따라 현아가 빈틈투성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간만에 닭다리를 맛본 충격에 맥주 한 캔으로 취해버린 것 같다고 느낀다.
현아는 상준에게 요리 어디서 배웠냐고 묻는데, 상준은 딱히 배운 적 없고 급식실에서 알바를 한 게 전부라고 답한다. 현아는 그럼 배운 거 아니냐며 어깨동무를 하고 크게 웃는다. 평소보다 과장된 감정표현을 보여주던 현아는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짝 때리더니 오늘 망가지는 모습만 보였다며 부끄러워한다. 상준은 그런 모습도 귀엽다고 말한 뒤,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로 한 거니 괜찮다고 말한다. 현아는 그 말에 조금 쑥스러워하고, 상준이 안기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누나가 만만하냐며 웃는다.
현아는 뺨을 당기려고 하다가, 상준의 품에 그대로 안긴다. 마치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애틋하게 안겨있던 현아는 이래도 만만하냐며 웃는다. 상준이 결국 졌다고 하자 현아는 활짝 웃으며 더욱 세게 안겨온다. 그리고 상준이 현아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분위기를 타서 현아를 침대에 눕힌다.
파일:그세계 현아2.png
현아는 당황하지만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맡긴다. 상준이 이 이상으로 괜찮냐고 묻자 현아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침묵하더니, 괜찮다고 조그맣게 말한다. 상준은 현아에게 진짜 키스를 하려다, 현아가 살짝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현아가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처음으로 타인에게 몸이 맡겨진다는 경험을 한 탓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자신이 전 여친과 사귀면서 겪은 탓에, 현아를 배려해서 이 이상의 연애 진도는 탈출 뒤로 미뤄둔다.
그리고 현아 옆에 돌아누워 팔배개를 해준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현아의 얼굴을 안아주며, 잠을 자는 것이 좋다고 말한 까닭이 꿈을 꿀 수 있어서냐고 묻는다. 그러자 현아는
혼자가 아니니까. 꿈을 꾸면 누군가가 나오잖아. 그러면 대화도 할 수 있고, 안아볼 수도 있어.
그런데... 눈을 뜨면 그게 전부 다 꿈이고. 이쪽이 현실이더라고. 알아. 그저 도망칠 뿐이라는 걸.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
여기선 누군가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조금이라도 의지하려 들었다간... 그런 걸로 속이려 드는 괴물들만 가득해서....
라고 말한다. 그 말에 상준은 현아를 더욱 세게 껴안고, 현아와 상준은 서로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서로 한참을 껴안는다.
이후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한 상준은 자고 가겠다는 말을 하지만, 현아는 변치 않고 완강히 거절한다. 그 이유는 안그래도 오늘 많이 망가졌는데 같이 자기까지 하면 밤새도록 안겨서 푸념할 거 같다고. 상준이 괜찮다고 하자 현아는 자신이 안 괜찮다며, 그러면 진짜 상준을 안 놔줄 거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침묵하고 상준을 엘리베이터로 민다.
현아는 그 대신 내일부턴 일찍 오라고 말하며, 깨어나도 안 없어질 거라고 말한 것에 책임을 지라며 웃는다. 그런 말을 하는 현아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상준을 놓지 않고 있었다. 상준도 좀 아쉽다고 생각하지만 현아가 좋아했으니 다 잘 된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서로 탈출하기 전까진 브레이크를 잡자고 합의했지만 둘 다 안 잡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상준은 이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일단 유리는 갑자기 서로 친해진 거 아니냐며 들러붙는 걸 보면 꿍꿍이가 있어보이나 만만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우비. 마치 거인화한 모습일 때 자신을 아는 듯한 발언들을 한데다 대화조차 많이 못해 신비로운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

그 때 옆의 거울에서 유리가 바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다. 농담을 던지려다 유리에게 눈물자국이 있는 걸 눈치챈다. 유리 본인은 안 울었다며 고개를 돌리고 시치미를 때지만, 상준은 이제 마음 묵혀두지 말라고 충고하지 않았냐고 말한다. 그러자 유리는 한숨을 쉬더니 왜 현아랑 사귀는 것처럼 구냐고 화를 낸다. 그리고 애매하게 침 발라 놓지 말고 그냥 팍팍 연애 진도 빼라며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상준은 현아가 자신이 안 도와줄까봐 매달리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거부한다. 전 여친과 그런 식으로 이어져 둘 다 파국을 맞은 경험을 해봤기에 더더욱 막고 싶었다고.
그리고 상준은 막상 나갔다가 서로 별로일 수도 있으니 시간을 둬야 한다고 말한다. 유리가 쫄보라며 놀리지만 상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리는 오그라든다며 띠껍게 군다. 그러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직전이 되자, 자기도 이런 이상한 세상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사라진다.[87]

2.1.6. 기억의 파편

《기억의 파편 #1》
이젠 매일 밤 꿈을 꾼다.
절대로 기억할 리 없는 꿈을.
한편 핏물이 되어 터져나갔던 그림자 상준은 우비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다. 우비는 바늘과 실로 팔다리를 꿰메고 있었으며, 방금 막 일어난 상준은 상황파악이 덜 된 나머지 우비가 자신을 바늘로 찌르려 하는 상황으로 오해하고, 우비를 혼내려 한다. 하지만 우비는 엄마가 실과 바늘로 꼬매는 것이 낫다고 가르쳐줬다 하며, 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기에 상준은 더 이상의 지적은 하지 않기로 한다.
이후 상준은 치료가 끝나자 일어나고, 우비에게 괜찮은 기세를 보인다.[88] 우비도 안심했는지 상준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하고, 상준은 그런 우비에게 잔소리를 하려다 우비의 꺼림칙한 말을 듣곤 포기한다.[89]
상준은 계단을 내려가며 상황 정리를 한다. 일단 본체와의 싸움을 겪으며 자신이 꿈 속 상준이라는 건 자각한 상태인데, 우비는 꿈에서 깨지 말라고 옆에서 화를 내고 있었다.[90]
그렇게 로비로 내려오자, 수많은 그림자들이 피 묻은 발 앞에 모여있었다.[91] 피 묻은 발이 이전보다 더 사람에 가까운 목소리로 무언가를 연설하기 시작하는데, 우비는 끔찍한 걸 보는 듯한 표정으로 후드를 쓰고 귀를 막는다. 그럼에도 물러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림자 중 한 명인 수척한 여인 때문이었다.
상준은 이후 저 수척한 여인이 우비의 어머니인 걸 직감하고 묻는다. 그리고 우비가 긍정하자, 상준은 부모가 사이비에 빠진 것 때문에 우비가 잘못된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 걱정한다. 우비는 엄마는 사이비에 빠진 뒤로 한번도 옷을 안 만들어줬다며 서운해하고, 예전엔 엄마가 만들어주는 한복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다고 말한다. 우비가 딱한 상준은 엄마를 데리고 나오겠다고 말하고, 우비를 옆구리에 낀 채 그림자 사이를 가로지른다.
그림자는 예전처럼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며, 단지 과거의 발언들을 재생하는 듯한 무의미한 말들을 하고 있었다. 즉 비 오는 세계는 과거에 있었던 사이비 사건을 동영상을 튼 것처럼 재현 중인 세계였던 것이다.[92] 어느새 피 묻은 발은 혼자 방으로 들어가고, 그 방 앞으로 새로 온 듯한 몇십 명의 그림자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수척한 여인도 그 중 한 명이었는데, 자발적으로 선게 아닌 친척의 권유로 강제로 줄을 서게 된 모습을 보인다.[93]
지부장은 한 사람 씩 대면을 해주며 능숙하게 포교를 한다.[94] 그 모습에 열이 받은 그림자 상준은 그냥 가서 패버릴 생각을 하나 우비가 만류한다.[95] 물론 그림자 상준은 변명하지만 우비는 얼굴을 없애고 표정을 감춘다. 그 이유는 수척한 여인이 방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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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비의 어머니는 지부장 입장에선 제법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 이유는 연결 고리인 친척과 연락을 잘 하지 않았던 탓에 사전에 정보를 수집하지 못했으며,[96] 본인의 능력이 함축된 포교용 질문들을 던져봐도 모조리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궁지에 몰린 피 묻은 발은 딸이 귀신 때문에 죽어 간다는 거짓말로 호통을 친다. 하지만 어머니는 포교가 먹히지 않는 일반인이었기에 오히려 화를 내며 빠져나가 버린다. 그 순간, 모든 그림자들이 물처럼 녹아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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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상준은 포교에 넘어가지 않은 우비의 어머니를 칭찬한다. 하지만 우비는 상준의 품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있다가, 며칠 뒤 자신이 차에 치었다고 말한다.[97] 우비 말로는 크게 다친 건 아니었으나 엄마가 크게 동요했으며, 상준은 결국 엄마가 포교당한 것임을 직감한다.
우비는 자신이 여러 번 필사적으로 말렸으나 결국 포교 당했고, 말리는 과정에서 폭언을 여러 번 들었다고 한다.[98] 그리고 우비가 가진 마음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데[99], 우비가 이제 다 괜찮다는 듯 감정을 삭히는 표정을 짓는 걸 본다. 하지만 상준은 절대 애들이 지어선 안 될 태도와 표정을 보이는 우비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고, 피 묻은 발을 패버리면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 우비는 엄마의 말에 따르면 지나간 건 바꿀 수 없지만, 그래도 시원할 것 같다며 웃는다.
상준은 지나간 과거를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가 우비를 꼭 안아준다. 우비는 처음엔 차분하게 안기지만 상준의 위로를 듣고 눈물이 고이더니 얼굴을 품에 파묻는다. 그리고 우비는 마치 엄마의 품 같다며 미소를 짓고, 힘이 빠지며 잠에 든다. 그리고 상준도 잠에 들기 시작하며, 꿈에서 깬 뒤 홀로 남게 될 우비를 걱정한다.
사실은 전부 보고 있었어.
이후 우비는 《기억의 허상》에서 병원 세계로 향하기 전까지 그림자 상준과 시간을 보낸다. 이 시점을 배경으로 하는 우비의 서브 스토리는 《01: 등 뒤에 있어.》, '''《03: 안전교육》, [[상준/작중 행적#서브 스토리: 우비|《04: 점프 스퀘어》''']]가 있다.
《기억의 파편 #2》
대부분의 사람은 밥을 주면 친해질 수 있다.
정말로.
잠에서 깨어난 상준은 이전처럼 꿈의 내용을 모조리 잊어버린 상태지만, 그래도 꿈에서 느꼈던 서글픔을 조금이나마 간직한 상태였다. 그리고 미리 산 재료들로 현아를 위해 요리를 한다.
그렇게 평소보다 일찍 병원 세계로 도착한다. 이곳에 대한 공포심도 옅어지고 슬슬 진입 실패율도 낮아진다고 생각하며 병원을 걷는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현아가 보이지 않았고, 병원을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 순간 병원 로비에서 현아를 발견하는데, 현아는 멀리서 뭔가를 경계하는 것처럼 뒷모습만을 보이고 있었다.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자 상준은 다가가서 옆모습을 본다. 그런데 어째선지 얼굴이 그림자가 된 것처럼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았다.
상준은 미동도 하지 않는 현아를 보며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으나, 자신도 모르게 현아의 어깨에 손을 뻗으려 한다.[100] 그 순간 옆의 전신거울에서 유리가 깜짝 놀래키고, 상준은 놀란 나머지 반사적으로 유리의 거울 쪽으로 펀치를 날린다. 펀치가 거울 앞에서 멈추나 유리는 상준보다 더 크게 놀라 아예 엉덩방아를 찧는다. 유리가 눈물까지 글썽인 걸 보고 상준은 유리는 시건방진 것에 비해 참 허접하다고 생각한다.
상준은 유리를 일으켜주며 왜 경계하는 사람을 놀래키냐고 다그친다. 유리는 상준이 생각보다 많이 놀란 거 같아 살짝 미안해하는 티를 내는데, 상준이 유리의 심정을 귀신같이 눈치채자 유리는 쌤쌤이라고 말한다. 상준은 혀를 차며 다시 뒤를 돌아보는데 늘어선 복도와 현아로 위장한 것이 있던 자리에는 가짜 문이 있었다. 즉 현아의 환영은 가짜 문이 만든 낚시였던 것.
유리가 또 자신을 구해줬으나 시치미 때려는 것을 보고, 또 마음 속에 묵혀두는 거냐며 잔소리한다. 유리는 웃으면서 자기가 이러는 이유를 맞춰보라며 거만하게 군다. 그런데 상준이 자기 좋아하냐고 말하자 경멸을 한다. 상준이 피식 웃자 유리는 뒷걸음질 치면서, 어제 현아랑 침대에 같이 누워놓고 그런 소리가 나오냐며 따진다. 상준은 관음하다가 연애질에 부끄러워서 튀었냐고 농담을 날린다. 물론 유리의 반응은 재채기.
유리의 반응에 재미들린 상준은 이후 한번 더 유리를 놀래키고, 유리는 불상해 보일 정도로 쫄아버린다. 유리는 독이 빠짝 올라서
오빤 씹새끼예요...
라고 말한다. 물론 상준은 자기한테 이런 건 네가 처음이라며 웃는 반응. 유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한숨을 쉬는데 상준은 그런 유리가 슬슬 불쌍하다고 생각하는지 미리 준비해둔 도시락을 보여준다. 유리는 상준이 혼자 만들었다는 사실에 의심을 한가득 하다가[101] 결국 속으로 좋아하는 티를 내면서 받는다. 유리가 현아 주려고 만든 거 아니냐고 묻자, 상준 왈 음식이 좀 남아서 몇 개 더 만들었다고.[102]
이후 유리는 상준에게 콜라까지 받자 속으로 매우 기뻐한다. 본인은 최대한 티를 안 낼려고 하지만 상준은 진작에 유리가 좋아한다는 걸 눈치챈 상태. 유리의 반응을 본 상준은 바깥 문물을 좋아하면서 이곳에서 나가지 않는 이유를 묻는데, 유리는 썩은 표정으로 말하기 싫다고 대놓고 말한다. 계속 캐물어보지만 유리가 이전과 달리 띠꺼운 말투도 안 쓰고 정중하게 거절하자 상준은 단념한다.
신경 써 준 건 고맙다는 유리의 말을 들으며 상준은 유리가 가진 마음의 상처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러면서 돌아가려는 순간, 유리가 쭈뼛거리며 갑자기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유를 묻는다. 상준은 덤덤하게 서로 친해진 거 아니냐고 말하는데, 유리는 쑥스러운지 말을 흐리기 시작한다. 상준이 혹시 친한 척 속인 거면 도시락 내놓으라고 말하자 유리는 과장된 반응으로 속인 게 아니라고 소리친다.
유리는 또한 현아가 현재 다른 데로 가 있다고 알려준다. 그 이유는 지난번처럼 검은 것들이 대량으로 나타난 시기여서인데, 유리는 정확한 위치까지는 알려주지 않아 혼자 추측해보라고 거만한 포즈로 말한다. 상준은 어째선지 병원 옥상에 있을 거라고 직감한다.

《기억의 파편 #3》
그녀와 만나기 전까진
무엇 하나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검은 것들을 피해가며 옥상으로 올라가자 예상대로 현아가 보였다. 상준이 팔을 벌리고 해맑게 달려가자 현아도 안길 듯 달려오더니, 갑자기 양손으로 붙잡아 상준의 상체를 낮춘다. 현아는 이후 옥상에 있다고 안전한 게 아니라고 다그친다. 그리고 자기한테 안기니까 좋냐고 묻는다. 상준이 해맑게 긍정하자 현아는 머리를 감싸안아주고, 상준은 행복해한다.
이후 현아는 상준의 뺨을 쭉 당기면서 소리 내는 건 괜찮으나 절대 지붕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왜 위험한 시기에 왔냐고 잔소리하는데, 상준이 그쪽이 일찍 오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묻자, 현아는 실수라도 한듯 이마를 짚는다. 그리고 현아가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본 상준은, 자기를 빨리 보고 싶어서 실수한 거냐고 묻는다. 현아는 정곡을 찔려 부끄러운 나머지 팔을 꼬집는 장난을 친다.
아무튼 둘이 서로 꽁냥대며 장난을 치다가, 갑자기 건물이 살짝 흔들린다. 현아는 양손으로 상준의 뒷목을 잡고 상체를 낮추게 한 다음, 절대 고개 돌리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점점 건물 뿐 아니라 지반 전체가 흔들리는 듯 하더니, 건물 옥상 전체에 그늘이 생긴다. 현아는 저번에 본 눈이 근처까지 왔다고 말하며 절대 눈이랑 마주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한다.
눈이 사라지자 현아는 긴장을 풀며 한숨을 쉰다. 상준은 식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현아에게 안부를 묻는데, 현아는 그냥 안아 달라고 말한다. 현아는 완전히 탈진한 목소리로 상준의 품이 정말 기분 좋다고 말하며 안긴다. 상준은 혹시 검은 것들이 대량으로 발생해 난폭해지는 시간대가 눈과 관련 있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현아는 눈이 근처에 오면 검은 것들이 이상해진다고 답하며, 눈은 오직 자신을 봐야 돌아가기에 감시가 목적인 것으로 추측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알려준다.
상준은 혹시 현아를 가두고 있는 게 눈이냐고 묻는다. 현아가 만약 그렇다면 같이 싸워줄 거냐고 반농담으로 물어보자 상준은 까짓것 싸워보자고 답한다. 현아는 순간 상준의 용기에 흥미를 가지지만 상준도 저런 괴물을 상대로는 순삭당할 거 같다고 말한다. 상준도 눈은 스케일이 다르다고 여기기에, 군대를 끌고 와도 상대할 수 없을 존재라고 생각한다.
현아는 계속 지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상준은 도시락을 꺼내 보이는데, 현아는 유리 못지않게 매우 기뻐한다. 어린 애 같은 톤까지 써 가며 행복해 하는 현아를 보고 상준은 참 귀엽다고 느낀다.
이후 현아 서브 스토리인 《03: 관계》로 잠시 이어진다.
식사 후, 상준은 비 오는 세계로 항하면서 우비를 꼬시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현아가 있는 그대로 꼬시는 게 맞다고 하자, 상준은 친해지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냐고 묻는다. 현아도 꼬신다는 어휘를 쓴 것에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긍정한다. 상준은 계속 되는 현아의 허당스러운 면모에 이미 초반의 완전무결한 이미지는 사라진 지 오래라고 여긴다.
현아의 전략은 바로 우비와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우비는 결과적으로 상준을 방해했으며, 자신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도 자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애를 팰 수 없으니 대화로 해결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103] 이후 상준은 우비가 길을 열어주는 조건으로 한계점을 만들게 된 마음의 상처를 해결해주는 걸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전에 유리가 현아가 탈출하면서 자기를 여기서 내쫓는 걸 경계했고, 우비도 비슷한 상황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현아는 그러면 서로 합의가 힘들어질 거라 생각하며,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 순간 상준은 유리가 이전에 현아가 살인을 의뢰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떠오르고, 현아의 반응을 테스트하기 위해 뜸을 들인다. 하지만 이후 자신이 현아를 시험해려 했다는 사실에 자책을 하고, 현아의 양어깨를 잡으며 다른 계획이 있다고 소리친다.
현아는 깜짝 놀라며 당황해하다가, 흥미로워하는 미소를 지으며 듣기로 한다. 상준이 생각을 정리한 결과 최선의 선택은 바로 유리나 우비의 사정을 신경쓰지 않고 현아의 탈출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유리와 우비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런 곳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해결이 안 될 거라 여겼기 때문. 현아는 그 말을 듣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리고 두 번째 근거는 자신의 개입으로 이 세계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 세계에 적응한 유리도 순간의 방심으로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가 죽을 뻔했기 때문. 자기가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들은 현아는 머리카락으로 빨개진 얼굴을 가린다.
현아가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상준은 이전에 유리에게 파편을 조금 건네주는 것만으로 한계점을 돌파시킬 수 있었던 경험을 말해준다. 그래서 현아도 똑같이 비 오는 세계로 일단 들어간 뒤, 파편을 모으면서 전진하면 탈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파편은 가장 큰 건물에 제일 많았지만 어차피 현아의 목적은 탈출로를 확보하는 것이기에 큰 상관이 없었다.
그 제안을 듣고 한참을 심사숙고하던 현아는 한숨을 쉬더니, 서두루는 감이 있긴 해도 괜찮은 시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제안이 탈락된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하려 하는데, 막상 말하기 부끄러운지 말하지 않고 얼버무린다. 상준은 부담스럽게 캐묻기 위해 현아에게 다가가, 현아의 탈출은 이제 현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니[104] 정보 같은 거라면 최대한 알려 줄 것을 요구한다.
현아는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로 자신이 요구하려던 걸 알려주는데, 바로 도시락을 하나 더 달라는 것이었다. 부끄러웠는지 자기가 많이 먹는 인상 같냐고 묻지만 도시락을 받자마자 행복해한다.
그렇게 상준은 현아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올려 한계점을 넘는다.[105] 어쩐지 안개가 더욱 심해진 비 오는 세계에 도달한 현아는, 감격한 표정으로 흙을 움켜쥔다. 그 이유는 병원 세계에서 오래 산 탓에 자연 환경을 보는 것이 아주 오랜만이였기 때문.
이런 풍경이 그립다는 말을 한 뒤, 현아는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상준에게 비비적댄다. 그 순간 헤드셋에서 잡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현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그래. 기억나. 여기...
겨우 잊어버렸었는데...
라고 중얼거린 현아는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다,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상준에게 몸이 아파 아직은 무리라며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상준이 혼자서 파편을 모으겠다고 답하지만 현아는 그런 상준도 막아세우며 같이 돌아가자고 애교를 부린다. 상준은 그렇게나 탈출하고 싶어했던 현아가 갑자기 핑계를 대며 빼는 모습을 이상하다고 여기는데,[106] 그 순간 현아 바로 뒤에 우비가 나타난다.
우비는 이번에도 도망치는 거냐며 현아를 노려보는데, 안개가 심해 우비인 것을 알아보지 못한 상준이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우비는 비옷을 벗어던지며 주먹을 피하고 현아의 다리에 들러붙는다. 그리고 우비는 파편을 옮기는 듯 빛을 내기 시작하는데, 상준은 현아가 파편을 뺏기면 즉시 격통에 시달릴 거라 생각해 우비 옷을 집어던져 우비를 때어낸다.[107]

그런데 어째선지 파편이 옮겨졌음에도 현아는 멀쩡했다. 그리고 우비는 자신이 파편을 빼앗은 게 아니라 잔뜩 줬다고 말한다. 그리고 얼굴을 그림자로 감추며 현아에게 이젠 어떡할 거냐고 묻는다. 현아는 자긴 그럴 생각이 없다며 소리치지만, 우비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한 뒤 무덤덤하게 숲으로 사라진다.
우비에게 파편을 받은 현아는 아까까지의 태도에서 다시 바뀌어 비 오는 세계로 나아가겠다고 말한다. 상준은 현아의 상태가 좋지 않은 듯해 걱정하지만, 현아는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언젠가는 부딫혀야 할 일이었다며 의지를 보인다. 상준은 우비에게 도움을 받은 듯하나 어쩐지 꺼림칙하다고 느낀다.

《기억의 파편 #4》
우비는 현아 씨를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다.
대체 왜?
비 오는 세계를 걸으며 상준은 노골적으로 파편들이 가장 큰 건물을 향해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는 걸 확인한다. 그리고 우비는 먼 곳에서 자신과 현아를 감시하는 것처럼 쏘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상준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현아는 탈출구를 찾지 않고 우비에게 응해 주듯이 파편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탈출이 목적인 현아는 굳이 우비를 따라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
그리고 상준은 현아에게 파편을 따라가는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현아는 우비가 자신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는 것 같다고 답한다. 다만 자신과 우비는 이전에 만난 적이 없다고 덧붙이는데, 상준은 그 말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낸다. 바로 이전에 현아가 비 오는 세계에 모르고 들어왔다가 고통에 시달릴 때, 우비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 것과 모순되기 때문. 그리고 우비가 아까 '또' 도망칠 거냐고 물은 것과 결부지어서, 현아가 과거 비 오는 세계에 진입한 뒤 우비에게 목숨을 구해졌으나, 어떠한 이유로 도망쳐 나왔다는 결론을 낸다.
그 때 현아는 우비가 준비한 걸 보지 않으면 출구가 열리지 않을 거라 말한다. 상준은 그 말을 듣고 혹시 이전에 겪어봐서 아는 거냐고 물으려 하지만 참는다. 현아는 같이 가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고, 상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수락한다. 현아는 상준의 이타적인 마음을 이용해서 부탁한 것에 사과한다. 상준은 현아가 상준이 기분 상하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여러모로 서툰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현아는 진지한 태도로 팔을 잡아당기며 절대 다치지 말고 객기 부리지도 말라며 주의를 준다. 평소와 달리 유독 많이 걱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현아는 자신이 앞서나가는데, 그 순간 수척한 여인의 그림자와 과거의 우비가 눈앞에 나타난다. 다시 비 오는 세계에 우비의 과거가 재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수척한 여인은 사이비를 거부하며 무서워하는 우비에게 다시 사고를 당하지 않으려면 이곳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끌고간다.
상준은 그림자를 통해 우비의 과거사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방금 보게 된 과거의 형상에도 기시감을 느낀다. 하지만 형상을 지켜보다 현아를 앞질러 갔기에, 현아는 위험하게 왜 멋대로 나서냐며 화를 낸다. 상준도 지지않고 누가 누굴 지키냐며 소리치고, 둘은 잠시 말다툼을 벌인다. 상준은 처음으로 벌이는 현아와의 말다툼을 마냥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길을 걸으면서 상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건물 방향으로 절을 올리다 사라지는 걸 목격한다. 현아 말로는 과거에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며, 자신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걸 다짐하며 계속 나아간다. 하지만 상준 눈에는 아무리 봐도 안색이 좋지 않은 현아가 무리를 하고 있었기에, 위험해지면 자신이 현아를 곧바로 들고 튀겠다고 선언한다. 현아는 살짝 부끄러워하더니 받아들인다.
중심 건물로 들어서자 그림자들이 일제히 서 있었고, 그 중앙에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며 떼를 쓰는 과거의 우비와, 그런 우비를 무시하고 설교를 하는 수척한 여인이 있었다.[108] 현아는 그 광경을 보면서 괴로워하고 있었고, 멀리 서 있는 우비에게 대체 현아에게 이걸 보여주는 목적이 뭐냐고 소리친다. 하지만 우비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사라진다.
어느덧 피 묻은 발을 만났던 숙소 방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우비는 아파하고 있었는데, 피 묻은 발과 수척한 여인은 병원보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며 설교하고 있었다. 과거를 계속 지켜보던 현아는 급속도로 체력이 소비되는지 안색이 매우 나빠지나, 계속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며 전진한다.
그 때 수척한 여인이 종교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해주고 있다고 말하자, 우비는 구원이 아니라 사고를 일으킨 다음 구원한 척 한 게 아니냐고 반박한다. 그러자 그림자들이 일제히 검어지더니 현아는 다리가 풀려 쓰러진다. 상준은 현아가 걱정된 나머지 돌아갈 것을 요청하지만, 현아가 각오를 다진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고 계속 나아가기로 한다. 현아는 상준이 있어줘서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상준에게 업힌 뒤 나아간다.
최종적으로 어떤 방에 도달하자, 과거의 우비가 수척한 여인에게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 이유는 자신을 치었던 차와 같은 기종을 이 종교 시설에서 목격했기 때문이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수척한 여인은 우비에게 손찌검을 날린다. 그리고 곧바로 수많은 그림자들이 우비에게 몰려들어 엄청난 폭언을 퍼붓기 시작한다. 하지만 피 묻은 발은 우비를 상대로 구원의 의식을 치를 거라 담담히 말한다.
현재 시점의 우비는 그림자로 변해 얼굴이 없는 상태로 현아를 바라보고, 현아는 허공을 보며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덧 과거의 방 안에는 우비와 여인, 피 묻은 발만이 남았고 우비는 한 때 자상한 어머니였던 수척한 여인을 슬픈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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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피 묻은 발은 우비에게 엄청난 폭행을 가하기 시작한다. 피가 사방에 튈 정도로 잔혹한 폭력을 계속 휘두르고, 엄마란 인간은 옆에서 기도를 올리며 방관한다. 상준은 말리기 위해 달려드는데 그 순간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버린다. 현아가 말하길 과거에 이미 벌어진 사건이라 현재에선 개입할 수 없다고. 우비는 무력하게 짓밟히면서도 무표정으로 있다가, 기도를 하는 엄마를 보고 나서야 울기 시작한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우비에게 수척한 여인은 투명한 비옷을 입혀준다. 그리고 우비가 흘린 피에 의해 비옷은 순식간에 빨갛게 변해버리고 만다.[109] 비옷에 감긴 우비는 피 묻은 발에게 건네지고, 그 자는 이제 죽기 직전인 이 아이를 부활시키겠다고 말한다. 그 순간 밖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고, 현아가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가 된다. 상준은 더 이상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현아를 감싸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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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눈앞의 모든 환영들이 먹물이 되어 터져나가고, 순식간에 컴컴한 밤으로 풍경이 바뀐다. 그리고 근처에는 바닥에 앉은 현재의 우비가 현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준은 혹시 현아가 아까 형상에서 본 우비의 엄마냐고 묻지만, 우비는 엄마는 커녕 이전에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110]
현아를 안고 돌아가려던 순간 눈앞에 피 묻은 발이 나타나 상준을 가로막는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피 묻은 발의 얼굴을 보고야 마는데, 그 순간 상준은 최면에 빠져 피 묻은 발의 설교가 머릿속에 울려퍼지게 된다. 상준은 순간 저 괴물의 설교를 따르지 않으면 큰일날 거라는 생각에 잠식되는데, 이후 신도들이 멍청해서 포교당한 것이 아닌,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던 상태에서 설교당해 당한 것이란 걸 깨닫는다.
그리고 최면에서 깨기 위해 나이프로 상처를 내기로 한다. 하지만 최면은 풀리지 않았고 상준은 자신도 모르게 목에 나이프를 갖다댄다. 그 때 현아가 엄청난 악력으로 상준의 손을 막은 뒤, 상준을 넘어뜨린 다음 키스를 날린다. 매우 서툰 키스였지만 상준은 그 덕에 정신을 차린다.
최면이 풀린 걸 눈치챈 피 묻은 발이 쫓아오자, 상준은 현아를 안고 달리기 시작한다. 우비는 현아에게 도망칠 자격 따위 없으니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현아는 그런 우비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뇐다. 끔찍한 과거사를 본 상준은 너무 슬픈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전력질주 하고, 건물에 혼자 남은 우비는
눈 감지 마.
고개 돌리지 마.
날...
잊어버리지 마...
홀로 슬프게 중얼거린다.
파일:그세계18.png
이후 상준은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앞도 잘 안 보이는 산속을 전력질주한다. 그러다 주변의 풍경과 이질적인 한 장소에 도달하는데, 상준은 벽에 손을 대자 이곳이 한계점인 걸 간파한다. 그리고 이곳으로 넘어가면 마침내 현아를 탈출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현아를 눕힌다. 하지만 현아는 눈조차 뜨지 못한 채 다시 기절하고 마는데, 그 순간 멀리서 그림자 상준이 나타나 걸어온다.
상준도 그림자가 찾아 올 거라는 걸 대략적으로 짐작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산을 달리면서 생긴 상처들로 만신창이가 된 탓에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 반면 그림자는 완전 멀쩡한 상태였으며, 멀리서는 피 묻은 발이 포효를 하는 상황. 밑도 끝도 없이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현재 상준은 경사로 위에서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있었기에, 경사로를 단숨에 내려가 니킥을 날리면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자신의 복제였기에, 그걸 맞아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현아는 무기력하게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어 협공을 기대할 수 없었으며, 그림자는 이대로 시간을 끌면 본체의 패배니 어디 덤벼보라는 듯 도발을 가한다. 이후 상준은 허공을 보며 도와달라는 말을 되뇌다가, 단숨에 경사로를 달려나가고 니킥을 날릴 준비를 한다. 그림자 상준이 여유롭게 니킥을 카운터 칠 준비를 하는 순간,
도와달라니까!!
우리 친해졌다며!!!
파일:그세계 유리2.png
그림자 발밑의 물웅덩이에서 유리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나온다. 순간적인 빛에 그림자는 잠시 균형을 잃는다. 상준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얼굴에 니킥을 꽃는다. 그림자는 멀리 날아가고 상준도 낙법도 못한 채 나동그라진다. 물웅덩이에 비친 유리는 비싸게 받을 거라며 틱틱댄 뒤 사라진다.
하지만 그림자 상준은 비틀거리면서 다시 일어나는데 성공하고, 죽을 거라면 한 대는 치고 죽겠다는 심정으로 다가온다. 상준도 한 대만 버티면 된다는 마인드로 힘을 쥐어짜내 다시 태세를 갖추는데, 그 순간 그림자가 예전에 본체가 놓고 간 덤벨 봉을 들고 휘두른다. 결국 상준은 급하게 팔을 내주어 치명상만을 피한 채 부상을 입고, 그림자는 다시 핏물이 되어 터져버린다.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데다 팔에 부상까지 당한 상준은 이후 어느새 일어난 현아에게 부축을 받는다. 현아는 상준의 몰꼴을 보고 사색이 되며, 마치 죄책감에 찬 듯한 표정으로 몸을 떤다. 그리고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처음부터... 상관없었단 말이야...
딱히 탈출 같은 거 안 해도...
그냥...
그... 그냥...
계속 와 주길 바랐어.
이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이어졌으면 했어.
그뿐이었는데...
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자신이 억지로 이곳에 끌고온 탓에 상준이 다쳤다며 자책하자, 상준은 한팔로 현아를 꽉 껴안아 진정시킨다. 그리고 일단 나가서 생각해보자고 말하지만 현아는 출구에는 관심없다는 듯 상준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마치 놓치고 싶지 않은 듯 꼭 껴안아 울기만 한다.
이후 상준이 한계점 앞까지 다가가자 현아도 진정을 한다. 현아는 일단 들어가서 치료부터 하자고 말하며, 아직도 상준이 다친 것을 신경 쓰고 있었다. 상준은 비록 우비와 유리에 대한 수많은 의문점들이 남아있지만, 일단 현아의 탈출이 최우선이었기에 나가기로 한다. 그 때 현아가 의연한 목소리로 혹시 밖으로 나가면 어떡할 거냐고 묻는다. 살짝 뜬금없는 질문에 상준은 일단 나가서 서로 만나자고 말하는데, 현아는 혹시 여기에 돌아올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 상준은 지금보단 빈도는 줄겠으나 유리와 우비를 도와주기 위해 다시 올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현아는 만약 밖에서 자신을 못 만나거나 잊으면 어떡할 거냐고 묻는다. 마치 노골적으로 시간을 끄는 듯한 현아의 질문공세에 상준은 더욱 이상해하나, 일단 현아와의 재회에 실패하면 이유가 어찌 됐든 이곳으로 돌아올 일은 더더욱 없어지겠다고 답한다. 현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라고 중얼거린다. 상준은 일단 돌아가서 생각해보자며 이끌고, 현아는 고맙다는 말을 읊조린다. 현아는 그렇게 같이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렇게 둘은 한계점을 넘는데, 넘으면서 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병원 세계였으며, 그 중에서도 붉은 글씨가 한가득 적힌 방이었다. 현아는 동요하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침착한 표정을 지었는데, 붉은 방을 나오자마자 붉은 방의 문이 스스로 쾅 닫혀버린다.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듯한 그 순간 문고리를 돌려보는데, 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현아는 결국 우비가 비 오는 세계를 완전히 막아버렸다고 알려준다.
상준은 우비에게 사과를 하며 문을 두드리지만, 현아는 상준을 등 뒤에서 껴안으며 흐느낀다. 그리고 일단 상준이 무사했으니 그거면 충분하고, 아직 시간은 많으니 다른 방법을 충분히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상준도 잠깐 진정한 뒤 유리가 있는 거울 속 학교 세계에도 길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현아는 분명 그럴 거라고 말하며 뒷목에 입을 맞춘다. 상준은 현아가 위로하는 듯, 자신을 조금도 탓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리고 현아는,
역시... 그렇게 쉽게 나갈 순 없나 봐.
그러니까, 당분간은 계속 함께해야겠지?
계속.
라고, 마치 이 세계에서 못 나가는 것이 기쁜 듯이 말한다.

《기억의 파편 #5》
실패했지만, 현아 씨는 화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병실에 도착한 현아는 상준에게 바보란 말을 연신 써가며 오열한다. 그리고 씻고 나온 상준을 침대에 눕힌 뒤 과도할 정도의 치료를 해준다. 상준은 온몸이 연고와 반창고로 도배가 되었으며, 부러지지도 않은 팔엔 미라 수준의 붕대가 감겼다고. 참고로 부상의 정도로 보아 묘하게 그림자 상준이 세기를 조절해준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비 오는 세계의 진입로는 전부 막혀버린 상황. 상황도 나빠졌지만 우비의 동기를 아직도 알 수 없었기에 상준의 의구심은 더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현아는 어쩌면 우비가 자기 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회상 재생을 통제했고, 그 탓에 우리가 사건을 잘못 파악했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낸다. 우비가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에 상준은 마치 멸망한 세계가 꿈 같다는 얘기를 하고, 현아는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우비가 비 오는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현아에게 회상을 보여줬으나 전부 보여주지도 않았고, 아예 비 오는 세계를 막기까지 한 것은 여전히 상준에겐 의문으로 남았다. 상준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한동안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현아는, 자기가 예뻐서 친해지러 한 것 아니냐며 농담을 날린다. 상준은 간만에 현아가 어른스럽게 분위기를 풀어준다고 느낀다.
상준은 혹시 과거에 우비를 만난 적이 있는지 묻는데, 현아는 물론 상준마저도 우비와의 인연은 이전에 전혀 없었다. 이렇게 우비의 진상에 대해 의문만이 가득한 채, 상준은 결국 파편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현아가 탈출할 수 없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혹시 우비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 조건 아니냐고 묻자, 현아는 그래서야 귀신 성불시키는 거랑 같지 않냐는 말을 던진다. 물론 상준의 반응은 갸우뚱.
아무튼 상준은 비 오는 세계에 재진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런저런 문제들로 실현이 어렵자 상준은 학교 세계 루트를 고민해본다. 하지만 현아는 고의적으로 유리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것 같다며 상준 혼자 다녀올 걸 부탁한다.[111] 상준은 내일 올테니 일단 돌아간다고 말한다.[112] 현아는 내일 올 거냐고 재차 물은 다음 안심한다.
그런데 현아는 상준의 상처를 보고 동공이 흔들릴 정도로 여전히 걱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상준은 괜찮다고 말한 뒤, 오히려 회상을 보다 쓰러진 현아 쪽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현아는 마치 술에 취한 기분이었으니 큰 타격은 없었고, 오히려 너무 쉽게 탈출하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며 웃는다. 그리고 오히려 상준과 한동안 쉬면서 놀 수 있게 되었기에 잘 된 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상준이 왜 그렇게 자신을 걱정하냐고 묻자, 현아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상처는 쌓이니, 상준이 객기 부려서 괜찮은 척하는 걸 두려워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현아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이젠 자기가 있으니 아픈 건 다 풀어도 된다고 말한다. 상준도 살짝 부끄러워하나 목숨을 구해준 게 여러 번인데 어떻게 그러냐며 농담을 날린다. 현아는 그 말에 흥분해서 까놓고 말하면 자기한테만 보여 주는 약한 모습 같은 거 보고 싶다고 소리친다.[113] 상준이 취향이 그 쪽이냐고 묻자 현아 왈 망가지는 모습을 자기만 왕창 보여줬으니 억울하다고.[114]
이후 현아는 상준 치료가 끝나다며 활짝 웃는다. 상준은 거울로 자신 몸에 붙여진 반창고들을 보다가 유리가 슬쩍 지나가는 걸 확인한다.
시간이 늦자 상준은 돌아간다. 현아는 노골적으로 아쉬운 티를 내며 옷자락을 꼭 잡고 있었다. 상준은 자고 갈 생각도 하지만 옆에서 유리가 감시하고 있었기에 단념하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그 때 현아가 살짝 망설이더니 과감하게 멱살을 잡고 끌어당겨 상준과 키스를 한다. 그러면서 현아는 오늘 힘든 일도 많았지만 오늘 하루는 자신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상준은 아까보단 훨씬 얕지만 깊은 키스라고 느끼며 귀가한다.

2.1.7. 기억의 저편

《기억의 저편 #1》[115]
우선,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도 있었으니.
그림자 상준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본체에게 패배해 머리만 남은 그림자 상준은 우비에게 안겨있었다. 그림자는 자신이 본체에게 싸움을 건 목적이 단순 시간 벌기였으니 어쨋든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우비는 다시 복구하기 힘드니 몸을 낭비하지 말라고 걱정한다. 우비는 그리고 상준에게 자신이 많이 잘못했냐고 묻는데 상준은 그런 상황에서 애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며 위로한다. 우비는 순진하면서도 섬뜩하게 웃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도로에서 누군가를 밀친 사람도, 안 혼나도 돼?
본체의 시점으로 바뀌어, 상준은 유리를 따라서 팔이 아픈 척 연기를 한다. 골절이라고 거짓말 친 다음 연극톤으로 아프다고 외치는데, 현아는 진지하게 자책하는 표정을 짓는다. 결국 상준은 염좌에 타박상이라고 거짓말한 걸 밝히는데, 현아는 믿지 않고 상준을 강제로 침대에 눕힌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아픈데 아프지 않은 척 연기할 필요 없으니 자신에게 전부 털어놓으라고 걱정한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부러진 왼팔을 대신하겠다면서 상준의 입에 과자와 생수를 쑤셔넣기 시작한다. 상준이 이미 거짓말 친 거 다 눈치챈 거 아니냐고 따지지만, 현아는 상준이 이렇게 걱정하는 자신을 속였을 리가 없다며 살벌하게 웃는다. 이후 아예 얀데레 톤으로 바뀌며 아무데도 못가게 다리까지 부러뜨리려 하다가, 결국 웃참에 실패한다.
이후 상준은 자신 옆에 눕는 현아에게 걱정끼쳐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현아는 착하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혹시 자신의 얀데레 연기가 그렇게 무서웠냐고 묻는다. 그러자 상준이 마치 진심인 것처럼 연기가 장난 아니여서 쫄았다고 말하는데, 현아는 묘한 표정을 짓다가 누나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 섬뜩한 표정으로 반쯤은 진심이었다고 덧붙인다.
그래도 골절이라고 말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며 현아는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 그 다음 상준을 눕힌 뒤 어쨋든 당분간은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건 그대로라며 쉴 것을 제안한다. 다행인지는 모르나 우비가 비 오는 세계를 막은 뒤로 병원 세계에서 괴물 출현 빈도가 현저히 낮아졌다고. 이후 현아는 아까 했던 얀데레 꽁트를 이어간다.
이후 둘은 비 오는 세계의 한계점으로 찾아가나 여전히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상준은 우비가 중간에 도망치지 말라고 소리 쳐놓고 문을 닫은 것에 이상함을 느낀다. 현아는 일단 가서 쉴 걸 제안하지만, 상준은 그렇다고 앉아만 있는 건 찜찜하다고 말한다. 이에 현아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상준은 학교 세계의 입구가 굉장히 많은 것처럼 비 오는 세계의 다른 입구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병원 세계의 파편을 모으는 걸 제안한다. 파편을 모으면 지금까지 못 본 비 오는 세계의 또 다른 한계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현아는 자신이 찾았을 땐 없었으나, 그래도 상준이 찾으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동의한다. 그리고 학교 세계에서도 비 오는 세계로 연결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하는데, 상준은 그림자 상준과 싸우면서 비 오는 세계에서도 유리를 볼 수 있었기에 납득한다.
그런데 현아는 우비의 선례처럼 파편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탈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유리와 호의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유리는 아직도 자신을 피한다며 걱정한다. 그래도 상준은 일단 설득해 보겠다고 한 뒤, 마침 지난번에 구해준 것도 있으니 다녀오겠다고 말한다. 현아는 유리가 구해줬다는 말에 살짝 언짢은 표정을 짓더니,[116] 이후 자긴 신경 안 쓴다면서 상준에게 팔짱을 낀다. 그 이유는 상준이 자길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이 구해준 거 하나만이 아니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상준은 그런데 현아가 팔짱을 끼는 행위가 초조할 때 나오는 버릇인 걸 진작에 간파한 상태였다.
아무튼 결론은 상준이 병원 혹은 학교 세계를 수색해서 다른 입구를 찾는 것으로 내려진다. 현아는 상준에게 꽉 안기더니 목 뒤에 몰래 키스 마크를 박는다. 그런데 상준이 곧바로 눈치채자 현아는 어떻게 알았냐며 놀란다. 상준은 이걸 눈치 못 챌 줄 알았냐며 황당해한 다음 그냥 꼭 끌어안는다. 그리고 현아가 유리를 도발한 탓에, 유리가 현아를 괜히 더 무서워하는 거라고 말하자 현아는 사과한다. 그리고 상준은 자기에겐 현아밖에 없다는 낯간지러운 멘트를 날리고, 현아는 순수하게 웃는다.
그렇게 유리를 만나러 간 상준은 자신이 늦은 탓에 썩은 표정을 짓는 유리를 만난다. 유리는 상준을 보자마자 도발부터 난사하는데, 상준은 혹시 구해준 것으로 칭찬받는게 쑥스러워서 일부러 도발하는 거냐고 말한다. 물론 정곡을 찔린 유리는 재채기를 한다. 상준이 그거 손해만 보는 짓이라며 충고하자 유리는 또 꼰대질 한다며 들은 채도 안 한다.
이후 상준은 유리에게 도시락을 건넨다. 유리는 이전처럼 크게 좋아하는 티를 억지로 숨기며 받아든다. 상준이 혹시 싫어하는 음식 있으면 빼겠다며 뚜껑을 미리 열어보라 하는데, 유리는 전부 좋아하는 음식인 건 둘째치고 비싼 음식들이 들어간 것에 놀란다.[117] 유리는 복잡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도시락을 바라보다가, 혹시 자기에게 잘해주는 이유가 있냐고 묻는다. 상준은 그냥 학교 세계에 자주 들락거릴 일 있으니 이웃인 셈 치자고 말한다.
이후 상준이 어제 자신을 도와준 이유를 물어본다. 만약 현아가 탈출에 성공했으면 유리 본인도 튕겨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기에 납득이 잘 안 갔던 것. 유리는 한동안 당황하며 어버버대다가 서로 친해졌으니까 구해줬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상준은 유리가 드디어 솔직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흡족해한다. 그리고 상준이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자 유리는 부끄러워하며 받아들인다.
친구가 없는 수준으로 칭찬에 매우 인색해하는 태도를 보며 상준은 유리가 가진 마음의 상처를 추리해 본다. 물론 대놓고 마음의 상처가 무엇인지 물어볼 수 없으니, 일단 소원을 말해보라며 돌려 말한다. 그리고 비 오는 세계가 막혀버렸으니 오늘 학교 세계를 둘러보며 다른 입구를 찾아보겠다고 말하는데, 유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크게 놀란 듯 도시락 통을 떨어뜨린다. 유리는 역시나라며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튼 유리는 다시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고, 상준은 말을 잇는다. 학교 세계를 뒤질 거니 허락 맡겠다고 온 것이고 혹시 드러내기 껄끄러운 개인 물품 있으면 숨기라고 알려준다. 유리는 퍽이나 고맙다며 다시 띠꺼운 태도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긴 밥 먹어야 하니 볼일 다 봤으면 꺼지라고 손을 휘젓는다. 상준은 띠껍긴 해도 저 나이 땐 그럴 수 있다며 그냥 넘어간다.
돌아가기 위해 병원 세계에 입장한 순간, 상준은 자고 갈 생각도 하지만 현아가 거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도 현생을 살아야 하니 관둔다. 현생 생각을 하다 떠올린 건데, 만약 자신이 현생이 바빠져 더 이상 현아를 만나지 못하게 되는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본인이 조급하게 현아의 탈출을 강행하는 것도 사실 이런 이유였다고.
마지막으로 현아의 얼굴을 보고 가기 위해 병실로 향하다가 멀리서 우비를 목격한다. 우비는 상준을 보고 그림자 뿐인 얼굴로 씨익 웃은 뒤 도망간다. 상준은 따라가려 하지만 엄청난 우비의 속도를 이기지 못한다. 간신히 우비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을 정도로 쫓아가다가 우비가 막다른 곳에서 사라지고 만다. 막다른 공간에는 이질적인 도어락 문이 있었고, 밑에는 뭔가 녹아버린 듯한 검은 액체만이 들러붙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신의 방이 나오는데, 그 순간 우비가 뒤에서 몰래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이 지킬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식칼로 찌르려 하지만 상준에게 팔목을 낚아채져 실패한다. 상준은 곧바로 식칼을 뺏은 뒤 뭐하는 거냐고 캐묻고, 우비는 처음으로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진정한 뒤 이래도 똑같겠다는 말을 함과 동시에, 상준이 쥐고 있던 식칼이 파편으로 변하더니 그대로 손에 흡수된다.
널 내 마음속에 가둬서.
그 무서운 눈이 찾지 못하게 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마음속에 내가 숨을 자리를 줘.

《기억의 저편 #2》
대체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눈치 채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상준은 식칼이 손에 들어오는 감각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난다. 아까 겪은 일이 꿈이라는 것에 안심하지만, 창밖의 풍경을 보고 이변을 눈치챈다. 자신의 방 밖엔 병원 세계마냥 세상이 멸망한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 다급하게 도어락 문을 열려 해보지만 그마저도 열리지 않아 당황하다가, 문득 자신의 방에 없던 깨진 전신거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혹시나 싶어 들어가보자 학교 세계와 유리를 마주하는데, 유리는 웃통을 벗고 있는 상준을 보고 얼떨떨해한다.[118] 상준은 자신의 차림을 깨닫고 쪽팔린 듯 모른 척 하지만, 유리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려 하자 다시 방으로 도망간다. 그 때 뭔가에 떠밀리는 것처럼 거울 쪽으로 넘어지고, 어느새 현실 세계의 방으로 돌아온다.
이후 몇 번을 더 실험해본 결과 상준은 자신의 방이 현실 세계는 물론 저쪽 세계에서도 생겼다는 것을 알아낸다. 별도의 절차 없이 한계점을 넘는 감각만 의식하면 두 방을 오갈 수 있으며, 저쪽 세계의 방은 대부분 현실과 동일하지만 몇 가지는 이용이 불가능해진다. 전기를 쓰는 건 불가능하고 장롱과 서랍도 텅 비어있었다고. 단 수도 만큼은 나온다고 한다.[119]
또한 현관문은 병원 세계, 전신 거울은 학교 세계로 이어질 수 있어 효율적인 지름길이 생긴 것이나 다름 없어졌다. 다만 저쪽 세계의 물건을 하나라도 가지고 들어오면 현실로 절대 전환되지 않는다는 점은 동일했다. 상준은 하루에 한 번 밖에 올 수 없었던 과거와 달리 이젠 제집처럼 들락날락거릴 수 있게 된 것에 의아해한다. 그러다 운동처럼 이것도 하다 느는 것일 거라고 결론짓는다.
이후 현아 및 유리 루트로 이어진다. 어차피 두 사람 모두 에피소드를 전부 열람해야 하기에 순서는 딱히 상관없다. 참고로 이 분기점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파편 하나를 보상으로 준다.
이 에피소드들 외에도 다수의 서브 스토리들이 해당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아 서브 스토리는 《04: 교감》, '《06: 이건 전투복이야.》, '《07: 이런 이벤트는 아직 이른 관계.》가 해당된다.
유리 서브 스토리는 《01: 내 오른팔의》, 《02: 데미지》, 《03: 부스스》, 《04: 용서할 수 없는》이 해당된다.
2.1.7.1. 첫 번째 현아 루트
《기억의 저편 #3 현아》
이런 일이 생겼으니,
우선 현아 씨에게 먼저 보고 드리자.
방에 한계점이 생긴 만큼 상준은 평소보다 훨씬 일찍 병원 세계에 도달한다. 물론 현아는 너무 일찍 온 상준을 가짜로 의심해 이전처럼 나이프를 들이대고, 본체라는 걸 증명할 수단을 빨리 보여달라고 명령한다. 현아가 서로 알만한 신체적 특징을 보여주기로 하지 않았냐고 묻자, 상준은 자기만 일방적으로 보여줬다며 따진다. 상준의 팩트에 현아는 멋쩍은 듯 시선을 피하고 상준은 현아가 참 얼빵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현아는 진짜를 증명할 방법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외칠 것을 요구한다. 굉장히 수줍게 요구하는 현아에게 상준은 왜 사심을 채우려 드냐고 묻는데, 현아 왈 사랑한다는 말은 좋아한다는 말에 비해 거의 안 해줘서 불만이었다고. 상준이 사귀는 건 나가서 하기로 했다며 해명하지만, 현아가 그럼 사랑 안 하냐고 말하자마자 곧바로 사랑한다고 답한다.
그런데 현아는 다시 나이프를 꺼내며 50점을 준다. 그 이유는 너무 반사적으로 답해서 그렇다고. 그래서 이전에 침대에 눕혔을 때의 목소리 톤으로 해줄 것을 부탁한다. 결국 상준은 유리가 보고 있지 않은 걸 체크한 뒤, 그윽한 눈빛으로 다가간다. 웃참을 필사적으로 하는 현아의 허리를 감싼 다음, "사랑해. 현아야."라는 말과 함께 키스를 한다. 그런데 이번엔 70점 밖에 안 주는데, 그 이유는 반말을 해서라고..
현아는 상준의 방에 한계점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상준이 손에 식칼이 흡수되는 꿈을 꿨다고 말하자 상준의 왼손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나른한 표정으로 살짝 깨문다. 이후 놀랐냐는 말과 함께 상준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말 한계점이 된 거냐고 묻는다. 상준은 그건 잘 모르겠으나 어쨋든 엘리베이터처럼 현아의 탈출구로 쓸 수는 없다고 말한다. 현아가 예상했다는 듯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자, 상준은 현아가 자신과 똑같은 추리를 했다는 사실에 속으로 살짝 기뻐한다.

상준은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현아는 한밤중의 멸망한 세계와 연결될 수 있으니 위험하다고 진지하게 말한다. 물론 자기처럼 문을 굳게 닫으면 되지만 그걸 못할까봐 걱정이라고.[120] 그리고 밤에는 혹시 모르니 창문도 적당히 가려 버리라고 충고한다. 상준이 과보호 아니냐고 묻자 현아는 이러다 상준까지 못 돌아가게 되면 어떡하냐며 걱정한다. 이런 현아의 태도에 상준은 이 사태를 가볍게 생각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현아는 혹시 무슨 일이 또 생기면 바로 말하라며 걱정하고, 상준의 손을 주물거리며 한참을 뭔가 생각한다. 그러다 뭔가 떠올렸는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는데, 상준이 왜 그러냐고 묻자 현아는 말해도 안 무서워할 거냐는 요상한 말을 한다. 현아가 말하길 자기가 이대로 상준과 영원히 갇혀 버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무심코 해버려서 그런 거였다는데, 상준은 현아가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즐겁긴 하나, 현실 세계에서 데려가려고 정해놓은 코스들이 워낙 많아서 곤란하다고 답한다.
현아도 납득하다가 갑자기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생각이었다며 수긍한다. 그 이유는 둘 중 한 명이 죽어버리면 남은 사람은 계속 혼자기 때문이라고. 상준은 그 말에 씨익 웃으며 팔을 벌리고, 현아는 불만스럽게 바라보다가 상준에게 안긴다. 그리고 상준은 자긴 어디 가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현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아이처럼 응석부리는 현아를 안아준 뒤, 상준은 현아와 함께 병원을 탐색한다. 하지만 어쩐지 현아는 멀리 가려 하지 않았고 결국 상준은 그냥 데이트나 다를 게 없는 무의미한 탐색을 하고 만다.

《기억의 저편 #4 현아》
너무 피곤하면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평소에 똑똑했다면 더더욱.
상준은 이번에도 자신의 방을 통해 병원 세계로 진입한다. 엘리베이터와 달리 자신이 왔다는 걸 알릴 수단이 없어 현아가 미리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안 쓰기엔 지나치게 편리한 데다 일찍 오면 현아가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계속 쓰는 상황. 굉장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검은 것들과 가짜 문도 자는듯 보이지 않았다.
병실로 들어간 상준은 이윽고 현아가 침대에서 자는 광경을 본다. 의자 하나를 끌어와 현아 옆에 놓은 뒤 현아를 쓰다듬어준다. 불러도 현아가 일어나지 않자 상준은 얼굴을 가까이하는데, 그 순간 현아가 깜짝 놀래킨다. 그런데 상준이 하나도 안 놀라자 현아는 살짝 시무룩해한다. 상준 왈 진짜로 놀라면 리액션 없이 경계하는 타입이라 반응이 없었다고.
그런데 현아는 곧바로 다시 졸아버린다.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상준의 목에 팔을 감고, 상준은 현아가 정말로 잠든 거 같아 침대에 눕힌다. 현아는 무의식적으로 상준의 손을 꼭 잡는데, 상준은 여전히 이상할 정도로 낮은 손의 체온에 놀란다. 그리고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아 살짝 불안해한다. 참고로 상준이 현아의 탈출에 서두르는 이유는 병원만이 아니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인데 연락을 할 수 없어 상시 초조해지기 때문이라고.
현아는 이후 비몽사몽한 상태로 상준을 다시 놀래킨 다음 침대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상준은 저항도 않고 같이 눕는데, 현아는 상준이 나오는 꿈이 길어서 무지 좋다며 헤실거린다. 상준은 아까부터 귀여운 톤으로 아무 말을 내키는 대로 뱉는 현아를 보고, 잠이 부족하면 정신연령이 낮아지는 타입이란 걸 깨닫는다.
이후 현아는 다리로 상준의 허리를 감싼 다음 이불을 크게 덮는다.[121] 상준은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가만히 있다가, 현아가 슬프게 우는 걸 목격한다. 현아는 상준에게 제발 떠나지 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그 모습에 상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현아는 깨어나면 상준이 사라지니, 깨어나고 싶지 않다며 슬프게 말한다.
상준이 자긴 현아가 나갈 때까지 계속 오겠다고 말하자 현아는 말없이 미소만 짓는다. 상준은 현아가 확실히 피로한 상태란 걸 직감하는데, 여기에 현아가 자주 잔다고 말한 것도 그저 깨어나는 빈도가 높았을 뿐이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한 게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간신히 깊게 잠든 현아를 깨울 수 없었기에 숙면에 도움이 될 만한 걸 배낭에서 꺼내려 하자, 현아는 가지 말라며 상준의 손목을 꼭 잡는다.
다시 몽롱한 상태로 돌아온 현아가 이불을 꼭 껴안은 채 노려보고 있자, 상준은 현아를 재우기 위해 최면을 걸려 한다. 하지만 현아는 옆에 있어주겠다고 해놓고 버리는 거냐며 오히려 손목을 더 꽈아아악 잡아당긴다. 상준은 괜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한 뒤 다시 재우려 하는데, 현아는 계속 상준을 껴안으며 지금 자버리면 오늘은 상준을 오래 못 보게 된다고 중얼거린다.
상준은 할 말을 생각하다가 현아가 갑자기 다시 헤실거리기 시작하는 걸 보고 황당해한다. 현아는 오늘 몇 시간이고 계속 뒹굴거리자고 애교를 부리는데, 상준은 현아의 건강을 생각해서 욕구도 참고 애써 재우려한다. 그리고 상준은 혹시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냐고 물어보고, 현아는 긍정한다. 현아가 말하길 상준이 발길을 끊어버리는 악몽을 꾼 나머지 밤을 샜다고. 하지만 그러면서 상준이 병원 세계에서 자고 가는 건 한사코 거부한다.
상준은 지난번에 자기보고 다치지 말라 했으면서, 본인은 속으로 충격을 많이 받은 거냐고 물어본다. 현아가 그렇다는 듯 사과를 하자, 상준은 그 벌로 현아의 이마에 키스를 한다. 그런데 현아가 계속 키스를 요구하자 몇 번 더 해주는데, 상준은 지능이 떨어진 상태의 현아에게 이러니 나쁜 짓 하는 것 같다며 자제심을 발휘한다.
진짜 상준이 재우려 하자 현아는 여전히 잠들면 상준이 사라질 거라며 거부한다. 상준은 어디 사라지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동시에 현아에게도 깨어난 뒤 부끄럽다고 나이프 휘두르지 말 것을 부탁한다. 현아는 자기가 언제 그랬냐며 헤실거린 뒤, 상준을 안 놓치려는 듯 꽉 껴안는다. 상준도 살짝 무겁지만 현아가 있다는 안심감에 눈이 감기는 걸 느낀다.
이후 푹 자고 난 현아는 자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저지른 짓들 때문에 크게 쪽팔려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아까 한 약속은 기억했는지 무력을 행사하진 않았고, 그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 앞으로도 누나 대접 받을 수 있냐고 조심스레 묻는데, 상준이 겁나게 귀여웠다고 말하자 다시 부끄러워한다.
상준이 계속 놀리자 현아는 뺨 클린치를 건 다음, 이전에 상준이 귀여워해준 만큼 귀여워 해줬다고 한다. 상준은 이런 단순하고 어린 애같은 면모 때문에 정말로 연상이 맞는지조차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아와 알콩달콩 시간을 보낸 건 좋으나, 문제는 이번에도 병원 세계를 탐색하는 데에는 실패해버렸다는 것이다. 현아가 미묘한 표정으로 웃는 걸 보고, 상준은 정말 우연이 맞는지 의심한다.

《기억의 저편 #5 현아》
혼자 아프고 힘들었던 밤.
누군가, 내 손을 붙잡았다.
상준의 과거 회상으로 시작된다. 독감에 걸려 끙끙 앓면서 자고 있을 때 누군가 상준의 손을 잡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꿈이었지만 그 손의 감촉만은 생생했으며, 이후 혼자 아픈 날 새벽에는 항상 그 꿈이 떠오른다고 한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상준은 독감은 아니지만 큰 감기에 걸려 새벽 3시에 기상한다. 전신이 쑤셔 고통 받던 순간[122]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벨을 안 쓰는 건 물론 새벽 3시에 왔기에 여러모로 의심가는 상황인데, 상준은 하필 병에 걸려 컨디션이 매우 나쁜 상황.[123] 쫄보가 된 상준은 문을 쾅쾅 두드리는 걸 한동안 구경하다, 짜증이 난 나머지 안전 고리를 걸고 문을 열어본다.
밖은 어느새 병원 세계로 전환되어 있었고, 문을 두드린 건 다름아닌 현아였다. 상준과 현아는 서로 잔소리를 주고 받은 뒤[124], 상준은 현아를 집에 들여보낸다. 현관문을 닫으면서 상준은 병원 세계에서 거대한 손 그림자가 스쳐지나간 듯한 풍경을 잠시 확인한다.
집에 들어온 현아는 상준이 땀범벅으로 떡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쓴 모자를 벗기고,[125] 환자용 이불과 옷을 꺼낸다. 그리고 가방에서 약을 뒤지기 시작하는데, 상준은 어떻게 자신이 아픈 걸 알고 간호하러 온 거냐고 묻는다. 현아는 저번에 헤어질 때 표정이 이상했다고 답하지만 상준은 고작 그런 걸로 알아맞춘 거냐며 이상해한다. 하지만 현아는 약을 입에 쑤셔넣으며 얼버무린다. 상준은 자긴 괜찮으니 진정하라고 말하지만, 현아는 그렁그렁하며 어떻게 진정하냐고 말한다. 이에 상준은 사과를 하고, 자신도 제정신이 아니란 걸 상기한다.
현아는 물수건을 적시면서 솔직히 확신은 없었다고 말한다. 아픈 것도 확실하지 않았고, 설령 아프다 해도 문을 열어줄 가능성은 낮았기 때문.[126] 상준은 얕은 추측만으로 위험을 감수해서까지 온 이유를 물어본다. 그러자 현아는 만약 자신의 추측이 맞았고, 상준이 병에 걸려 상황이 나빠진 탓에 발길을 끊어버리면 이때 찾아가지 않은 걸 평생 후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왔다고 말한다. 이후 상준의 얼굴을 끌어당겨 이마에 키스를 한다. 상준은 나른하게 현아의 간호를 받으며, 현아에게 완전 반했다고 느낀다.
또한 현아는 상준이 아플 땐 한마디도 안 하고 사라졌다가 다 낫고 나서야 해맑게 나타나는 타입인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고 알려준다. 상준은 납득하지만, 저 모습은 전 여친에게만 보여줬던 모습이기에 현아가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의심한다. 현아는 유자차와 키스로 어떻게든 얼버무리려 하나, 상준이 계속 추궁하자 결국 폰을 몰래 훔쳐 봤음을 고백한다. 정확히는 두 번째로 만났던 날, 상준을 아직 경계하던 시절이기에 기절한 틈을 타 몰래 확인했다고.
상준은 납득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폰을 보고 기분이 어땠었는지 궁금해한다. 현아는 능글맞은 말투로 자신이 그날 어떻게 행동했었는지 떠올리면 깨달을 거라고 웃는다. 상준은 그 때 현아가 자신에게 탈출을 부탁했음을 상기하고, 쑥스럽다고 말한다. 현아는 귀엽다며 허그를 한 뒤 같이 이불 속에 눕는다. 그리고 현아는 자장가를 불러주며 상준을 재운다.[127] 상준은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잠드는 걸 느끼고, 너무 따뜻해서 어째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느낀다.
괜찮아...
내가 있으면.
절대로... 뺏길 생각 없으니까.
다음 날, 당연하게도 현아는 옳았다. 상준은 그런 현아를 간호해주며 하루를 보내고, 결국 이번에도 병원 세계를 탐색하지 못한다.
오늘도... 이쪽 세계의 탐색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게 전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좀 더 일찍 깨달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2.1.7.2. 첫 번째 유리 루트
《기억의 저편 #3 유리》
이런 일을 당했으니,
유리를 먼저 추궁하자.
상준은 유리에게 초상권 침해에 대해 훈계를 한다. 물론 유리는 짜피 안 나갈 건데 법이 뭔 상관이냐며 무신경한 태도. 이에 상준은 상담이라도 해주겠다며, 혹시 마음의 상처가 학교폭력 피해라면 말하라고 한다. 유리는 그런 거 안 당했다며 소리치지만 상준은 서로 몇 번이나 구해준 사이니 말할 것을 요구한다. 유리는 이에 자기도 현아마냥 생명의 은인으로 쳐주냐고 묻는다.
상준이 삐진 유리를 위해 도시락을 꺼내는데, 유리는 곧바로 눈이 빛나기 시작한다. 유리가 얼떨떨해 하며 매번 들고 올 거냐고 묻자 상준은 긍정한다. 유리는 이후 크게 좋아하며 도시락을 낚아채고, 상준은 아까 삐져놓곤 배알도 없이 돌변하냐고 생각한다.[128] 기쁜 듯이 감사를 남기며 도시락 통을 열려던 유리는, 뭔가 잠시 떠오른 듯 미안한 표정이 되더니 시선을 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책상 하나를 끌고 와 걸터앉는데, 상준은 책걸상이 예전에나 쓰던 오래된 양식인 것을 보고 시설 교체가 참 늦는 학교라고 생각한다.
유리가 어색해하며 도시락을 지금 먹지 않을 거 같은 티를 내자 상준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바로 유리가 현실에서 당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 만약 유리도 우비 수준으로 끔찍한 과거를 겪었으면 마음 속에 묵혀둔다고 될 일이 아니었기에 물은 건데, 유리는 말할까 말까 낑낑대며 한참을 고민한다. 정확히는 혼자 고민하기보단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느낌이라고.
유리는 이후 그걸 묻는 이유가 현아를 돕는 건지, 아니면 순수하게 자기를 돕기 위한 것인지 묻는다. 상준은 반반이라고 답하나 유리는 하나만 정하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상준은 요즘 애들 무섭다는 생각에 잠시 침묵한다. 유리는 긴장하며 치맛자락을 꼭 움켜쥐고, 상준은 전자를 고른다. 유리가 그럴 줄 알았다며 실망하는 티를 내자. 상준은 상식적으로 나가기 싫다는 사람나가고 싶어하는 사람 중 누구를 우선해야겠냐고 묻는다.
그 말에 말문이 막힌 듯 유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본다. 상준이 유리는 만날 때마다 호감도가 초기화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무렵, 유리는 그럼 자기랑 친해지려고 접근한 것도 현아를 위해서냐고 짜증낸다. 상준은 표현을 뭐 그렇게 하냐며 따지지만 유리는 퉁명스럽게 칠판을 향해 걸어간다. 자신을 등진 상태의 유리에게 상준은 그럼 이대로 자신을 방치할 거냐고 묻는다.
유리는 침울하게 해결하고 싶다고 중얼거리고, 상준이 그럼 이해관계가 일치하니 서로 윈윈하자고 말한다. 그 때 유리가 그게 안 되니까 어쩔 수 없다며 소리를 지르는데, 상준은 유리가 반쯤 울고 있는 표정을 짓는 걸 직시한다. 유리는 급하게 표정을 감추며 말 걸지 말라고 전하는데, 상준은 혹시 여기서도 비 오는 세계가 막힌 거냐고 묻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유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닥을 쾅쾅 구르면서 다가온다. 그러고는 이럴 때만 눈치가 뭐 같이 빠르다며 소리친 다음, 이제 학교 세계는 굳이 올 필요가 없어졌으니 자기한테 친한 척 굴 필요 없다고 한다. 상준은 어제 갑자기 자기보고 꺼지라 한 것도, 비 오는 세계가 막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런 거냐고 캐묻고, 유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침묵의 긍정을 한다.
이후 유리는 이제 자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잘해 줄 필요 없다고 소리지른다. 상준은 그래서 결과적으로 자신을 속인 것처럼 된 것이 미안해서 얼굴 볼 낯짝이 없었고, 그래서 도시락 받기도 부담스러운 건 물론, 들키면 아예 안 올 거라 생각해 쳐 내려고 한 거냐고 말한다. 정곡을 찔린 탓에 유리는 재채기를 한 뒤 말문이 막힌 채로 있었다.
상준이 그러고 있으면 서로에게 상처만 된다고 충고하자, 유리는 화 안 났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그리고 자신이 비 오는 세계를 막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하냐고 물어본다. 이에 상준은 그렇게 자신이 오해할까 봐 거리를 두려 했냐고 말하고, 유리는 다시 침묵한다.
그리고 상준은 그런 생각은 커녕 단지 다른 입구를 찾아보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한 뒤,
친한 척한 게 아니라 친한 거다.
도시락 통 꼭 씻어서 도로 가져와.
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리의 사정은 나중에 듣기로 하나 일단 자신이 최대한 돕겠다고 덧붙인다. 그 다음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는데, 유리가 살짝 떨면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걸 보고, 혹시 스킨십은 기분 나쁘냐고 묻는다. 유리가 그렇게 묻는 게 더 극혐이라고 말하자 상준은 머리에 손을 올린다. 그런데 손을 움직이지 않자 유리는 지금 키 재는 거냐고 묻는데, 상준은 쓰다듬으면 헝클어질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상준은 유리의 곱슬이 자연산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말하는데, 유리는 그걸 대놓고 말하냐며 띠껍게 대한다. 하지만 심적 부담이 줄어든 유리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부드러워져 있었다.

《기억의 저편 #4 유리》
이쪽 세계도 어느 정도 안전해 진 것 같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상준은 아침 유산소를 학교 세계에서 하기로 결정한다. 비 오는 세계가 막힌 뒤로 이쪽이 안전해진 것도 있고, 학생들은 아침에 나오지 않으며 운동하면서 파편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가장 높은 층까지 올라가서 유산소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쭈그려 앉아 바닥을 더듬거리는 유리를 발견한다. 상준을 본 유리는 당황하더니 황급히 물러나는데,[129] 어째선지 안경을 찾는 사람인 것 마냥 눈을 감고 바닥을 더듬거린다.
상준은 혹시 렌즈 떨군 거냐고 묻는데 유리가 침울해하며 긍정한다. 그런데 유리는 시력이 양쪽 1.5로 매우 양호해서 상준이 의아해하는데, 알고 보니 유리가 떨군 건 컬러 렌즈였다고. 상준이 보니 원래 노란색이었던 눈동자 중 하나가 보라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상준은 이전에 유리가 인공 눈물을 들고 있던 걸 떠올리고 납득하지만, 동시에 거울도 함부로 못 보는 세계에서 굳이 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같이 렌즈를 더듬거리며 찾아주던 상준은[130] 렌즈는 안경과 달리 섬세한 관리가 필요한 것을 떠올린다.[131] 그래서 유리에게 혹시 가끔 현실로 돌아가서 관리 물품 사는 거 아니냐고 묻는데, 유리는 신나게 오답 선언을 한다. 상준이 끼던 걸 계속 끼던 거냐고 기겁해하자 유리는 드러운 소리 말고 이 세계의 특성을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바로 이 세계의 특징이란 건 현상 유지였다. 현아가 매점에서 생필품을 무한 리필하는 것처럼, 굳이 생필품이 아닌 사소한 물건들도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고. 다만 원래 여기 있거나 처음 들어올 때 몸에 붙어있던 것만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상준은 혹시 돈 복사도 가능하냐고 솔깃해하나, 유리는 꿈 같은 이 세계에서 뭘 가져나갈 수 있겠냐고 지적한다. 그런데 상준은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왜 가능한 건지 이상해한다.
상준은 꿈 같은 세계라면 유리에게 자신의 본체가 중환자실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냐고 묻는다. 유리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의 내면을 반영해서 만들어진 세계라는 건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고 밝힌다. 상준은 내면세계가 뭐 어떻길래 작살 난 학교가 나오냐고 묻는다. 유리가 자신의 과거를 말하려 하지만, 상준이 자신의 과거를 발설하게 만들려고 유도한 걸 눈치채고 관둔다.
상준이 다시 추궁하려 하지만 유리가 렌즈 밟았다고 소리친 것 때문에 끊겨버린다. 그런데 상준이 밟은 것이 아니라, 알고 보니 상준 발 밑 나무 틈새에 렌즈가 쏙 들어간 것이었다. 함부로 손가락을 넣었다간 렌즈가 뽀개질 거 같아 상준은 쩔쩔맨다. 그런데 유리가 앞장서더니 틈 쪽으로 손을 뻗는다. 그 때 틈 사이의 어두운 부분에서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렌즈가 툭 튀어나온다. 상준이 마술사냐고 신기해하자, 유리는 지랄 말고 그저 우비마냥 자기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거라며 우쭐해한다. 정확히는 상준의 방에 한계점이 생긴 뒤부터 가능하게 되었다고.[132]
상준은 요즘 학생들이 못 넘어오는 것도 유리 덕인 것으로 여긴다. 유리는 우쭐해하며 렌즈를 병에 담지만, 상준은 유리도 우비마냥 자신의 세계를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에 걱정한다.
결국 오늘도 유리의 사정을 알아내는 데에 실패한다. 유리가 해결과 도움을 원하지만 그걸 말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해한다. 상준이 생각하길 유리는 자존심 때문에 주변을 실망시키기 싫어하는 케이스거나, 아니면 어른에 대한 신뢰를 잃어서 말해봤자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라고 여기는 것 둘 중 하나라고.
상준이 생각을 하는 동안, 유리는 꼭대기 층 세면장 바로 앞에 있는 교실은 건들지 말라고 경고한다. 자신의 개인 물품들을 감춰둔 공간이니 건들면 아무리 오빠라도 절대 용서 안 할 거라고. 유리의 단호한 태도에 상준은 혹시 눈치채주길 바라고 떡밥 뿌리는 거냐고 묻는다. 유리는 썩은 표정으로 절대 부인하고, 상준은 딴소리 없기라고 재차 확인한다. 유리는 뭘 그리 꼬였냐고 어이없어 하는데 상준 왈 가끔 이렇게 구는 애들이 있어서라고.
이에 유리는 얼굴이 빨개지며 자긴 다르니 걱정말라고 전한다. 유리가 '아무리 오빠라도'같은 말을 쓰는 걸 본 상준은 확실히 서로의 사이가 가까워진 걸 체감한다. 상준이 집으로 향하기 위해 거울로 가자, 유리는 쫄쫄쫄 따라온다. 그리고 부끄러운 듯 폰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혹시 정말로 자기를 돕고 싶어하는 거냐며 조심스레 묻는다. 상준이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하자, 갑자기 유리는 뜬금없이 자기한테 현아마냥 키스할 수 있냐고 묻는다.[133]
상준이 키스하면 봉인이라도 풀리냐고 농담하자, 유리는 쭈뼛쭈뼛하며 혹시 키스하면 사정을 말하고 싶어질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한다. 상준이 애송이 취급하며 거절하나 유리가 도발을 한다. 결국 상준은 키스를 하겠다는 듯 양어깨를 붙잡는데, 유리는 실눈을 뜨며 몸을 바들바들 떤다. 하지만 상준이 한 건 키스가 아닌 어깨를 마구 흔들면서 한 훈계였다. 훈계의 내용은 미성년자 주제에 함부로 유혹하지 말라는 것.
키스를 거절당하자 유리는 어깨를 떨 정도로 화를 낸다. 그리고 상준이 연애는 어른이 되면 시작하라고 전하자, 유리는 그러다 좋아하는 사람을 뺏기면 어떡하냐고 되묻는다. 상준은 그럼 좋아하던 사람이 자신을 보험으로 쓰려다 버릴 생각한 것이니 버리라고 답한다.
여기에 애초에 미성년자에게 손대는 사람은 아무리 착해도 쓰레기니, 너도 애먼 사람 쓰레기 만들지 말라며 충고한다. 물론 유리는 자존심 때문에 어떻게든 트집을 잡는다.
결국 상준은 이번에도 유리의 과거사를 캐내는데 실패한다. 솔직히 상준은 말해줘도 자신이 해결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해 일부러 감추는, 서로에게 상처만 되는 미숙한 배려로 확신하고는 있다. 참고로 유리 말로는 상준이 정말로 키스하려 했으면, 바로 뒤로 뺀 뒤 촬영해서 현아에게 보여줬을 거라 한다. 물론 이는 상준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어떻게 생각한 거랑 똑같냐고 말한다. 하지만 유리는
어차피 손대면 쓰레기가 된다면서요?
난, 그냥 포기할 바에는
같이 쓰레기로 떨어지는 걸 택할래요.
라고 말한 뒤 사라진다. 상준은 뜬금없이 튀어나온 진지한 말에 당황하나 유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언제 올 거야? 언제 올 거야? 언제 올 거야? 언제 올 거야? 언제 올 거야? 언제 올 거야?
유리 혼자 남은 학교 세계에는 학생들이 유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언제 올 거냐는 말만 조롱하듯 반복하는 학생에게 유리는
당연하잖아.
나한텐, 기다릴 시간 같은 거 없는 걸.
라고 말한다.

《기억의 저편 #5 유리》
유리가 자꾸 찾아온다.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니.
최근 상준은 아침에 기상할 때 자신의 방이 멸망한 세계로 자동으로 바뀌어있는 경험을 자주 겪는다. 바뀌기만 한 경우기에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불안한 상황.[134]
상준은 방에서 비 오는 바깥 풍경을 창문으로 관전하다가 눈을 맞딱드린다. 눈은 상준을 찾는듯 세상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는데, 상준은 눈이 자신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안개, 창문에 낀 떼는 아닐 거 같다고 여기다가, 문득 식칼이 들어왔던 왼팔에 위화감을 느낀다.
그 때 무언가 거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상준은 덤벨 봉을 들고 거울로 가보지만, 그곳엔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의 유리가 서 있었다. 평소보다 3배는 부스스한 곱슬의 유리는 상준의 방이 운동 기구들로 도배된 것을 보고 헬창스럽다며 디스를 한다. 거기에 운동 기구에 옷들이 걸려있지 않은 걸로 보아 최근까지도 운동을 했다는 사실에 더욱 경악해한다. 이에 상준은 팔 때문에 벤치를 쉬고 있다고 반박하는데, 실컷 디스하던 유리는 갑자기 걱정하는 티를 낸다.
상준이 혹시 미안하냐고 묻지만 유리는 튕기며 츄리닝을 벗어던진다. 상준은 그런 유리를 보고 자기 방에 왜 찾아왔냐고 말하나, 유리 왈 그쪽도 자기 개인 공간 뒤지고 다니니 쌤쌤이라고. 유리가 학교 세계는 땅 주인 없으니 자기 거라고 말하자 상준은 어째 현아와 비슷한 말을 한다고 느낀다.
유리는 방 위쪽을 살피며 뭔가를 찾는 듯하다가, 에어컨을 찾고 눈을 반짝인다. 그리고 제습으로 틀어도 되냐고 묻는데 상준은 어차피 작동 안 된다고 알려준다. 이에 유리는 실망한 채 에어컨 밑으로 가 앉고, 상준은 혹시 자기 방에 찾아온 이유가 에어컨 때문이냐고 묻는다. 유리는 곧바로 긍정한 뒤[135] 바닥에 편하게 엎드린다.[136]
유리가 말하길 학교 세계에 처음으로 비가 와서 완전 찝찝하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머리가 잔뜩 떠버렸다며 부스스한 단발 곱슬을 내밀어 보인다. 상준은 예전 간호할 때는 머리가 좀 뒤집힌 정도여도 감췄지만, 현재는 잔뜩 뻗친 머리를 대놓고 보여주기에 서로 사이가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상준은 관리도 힘든 거 왜 굳이 반곱슬을 했냐고 묻는다. 이에 유리는 오빠는 긴 생머리 좋아하지 않냐고 되묻고 상준은 긍정한다. 유리가 그 언니 만나고 나서 바뀐 거냐고 물어보나 상준은 도시락을 건네며 대답을 회피한다. 유리는 도시락을 받으며 크게 좋아하지만 현아마냥 즉석 요리도 부탁해본다. 하지만 상준 왈 가방에 넣어서 온 게 아니면 모든 조리 도구들이 먹통이 되기에 불가능하다고.[137]
유리는 도시락에 든 연어를 신나게 먹는데, 상준은 자신이 방에 있으면 현실 세계와 이쪽 세계를 전환시킬 수 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유리도 바로 현실로 보낼 수 있다고 알려주자 유리는 기겁을 한다. 물론 유리가 있는 이상 전환은 불가능했고 단순 농담이라 밝힌다. 물론 시험삼아 방금 몰래 시도해봤다고 말하자 유리는 십새끼라고 욕을 하려다, 연어가 너무 맛있어서 관둔다. 상준은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현아를 걱정하기 시작하는데, 유리는 그런 상준을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비가 그치자 젖어 있던 세계는 한순간에 말라 다시 원상복구된다. 그리고 유리도 슬슬 갈 준비를 하고 상준도 현아를 만나러 간다. 유리가 자기 때문에 늦은 거 아니냐고 물으며 살짝 미안해한 뒤, 자길 안아서 거울로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학교 세계로 들어간 유리에게 상준은 진짜 밥만 먹으러 왔냐고 묻는데, 유리가 다른 거 기대했냐며 웃는다. 그런데 상준이 긍정하자 유리는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학교 세계로 사라지려던 유리는 문득, 오늘은 자신이 나가지 않는 이유를 묻지 않은 까닭을 궁금해한다. 상준은 이젠 너가 말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하자 유리는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다. 고개를 푹 숙이던 유리는 표정이 보이지 않도록 뒤돌아선 채, 오늘 오빠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서 온 것이라 말하면 믿을 거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상준이 받아들이지만 유리는 거짓말이라며 뛰어간다.[138]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쪽 세계에 축축하게 비가 왔던 날.
왠지 내 방에 처들아와 나눴던
아무 내용도 없는 대화.
그게...
내가 '유리'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친근한 대화가 되었다.
유리와 상준간의 재밌는 만담, 그리고 상준에 대한 유리의 호감이 표현된 훈훈한 에피소드지만, 마지막에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나레이션이 첨가되며 끝이 난다.
2.1.7.3. 반환점
《기억의 저편 #6》[139]
그런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다시 그 꿈을 꾸기 전까지.
비가 그친 건 학교 및 병원 세계만이 아니었다. 비가 그친 비 오는 세계를 걷던 그림자 상준은 이래도 '비 오는' 세계라 불러도 되는 건지 이상해한다. 우비는 그림자 상준을 복구하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며 사과를 하지만, 상준은 어차피 자신은 가짜니 상관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비는 기억을 모두 잊기 전에 빨리 복구해야한다고 말한다. 상준이 그렇냐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우비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웃는다.
그러다 우비는 양손을 들어 상준의 손을 잡는다. 손길이 유독 차갑다고 느낀 상준은 이후 우비가 섬뜩한 표정으로
지난번이랑 똑같아...
더 이상 망설이지 못하게.
뒤에서 밀쳐 버릴 거야.
...좀 거칠게.
라고 말하는 걸 본다. 그리고 우비는 손에서 식칼 하나를 꺼내는데, 상준은 왠지 그걸 손으로 잡으면 흡수될 거 같다고 여긴다.
이후 다시 현아 및 유리 루트로 이어지지만 두 루트 모두 우비가 개입하며, 상황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심각해지기 시작한다.
또한 첫 번째 루트에선 열람 순서에 상관이 없었지만, 이번엔 먼저 유리 루트를 전부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현아 루트를 먼저 봤다가는 유리 루트를 스포일러 당할 수 있기 때문.
2.1.7.4. 두 번째 현아 루트
《기억의 저편 #7 현아》
현아 씨의 행동이 조금 수상하다.
항상 그랬지만.
상준은 최근 일이 꼬여버려 답답한 심정을 느끼고 있다. 그 이유는 병원 쪽 탐색이 전혀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아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운 나머지 탐색 기회도 자주 잡지 않은 것도 있지만, 현아가 상준의 부상과 독감을 핑계로 탐색을 전부 금지했기 때문. 언제는 상준이 부상을 입고도 계속 탐색을 시도하려 한 적이 있었는데, 계속된 만류에도 상준이 멈추지 않자 결국 감정이 폭발해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물론 본인도 의도치 않은 호통이라 곧바로 사과를 하고 풀이 죽어버린다.
현아는 말을 더듬거리며 이전에 서로 싸웠을 때 하기로 한 것이 있지 않았냐고 묻는다. 상준은 그 말을 듣자 바로 껴안아주고, 분위기가 묘해지자 이 때를 노려 한 번 더 탐색 허락을 받아본다. 하지만 현아는 위급 상황에서 자기를 버리고 도망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허락 못 한다며 철벽을 친다. 그래도 상준이 탐색의 의지를 조금씩 드러내자 현아는 왜 자기 마음을 몰라주냐고 슬프게 중얼거린다. 상준은 현아의 팔 마사지를 받으며, 현아가 자신의 부상이 아닌 다른 이유로 시간을 끈다는 것을 확신한다.

집에 돌아가기 전 상준은, 현아가 탈출을 처음 부탁했던 장소인 옥상에 들른다. 자신을 만난 뒤로 현아가 이전과 변한 점들을 떠올려 보며, 비 오는 세계가 닫힌 뒤로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고 확신한다. 여기에 비 오는 세계에서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현아가 봤고, 그것 때문에 탈출을 보류한 것까지 추리한다.
그 때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우비가 추리가 맞다고 긍정하다가 상준을 놀래킨다. 상준 역시 갑작스러운 등장에 크게 놀라고, 우비는 그런 상준에게 손을 붕붕 들어 반가워한다. 상준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자기 세계를 닫은 것치곤 지나치게 해맑아 보이는 것에 이상해하지만, 우비를 잡으면 비 오는 세계의 봉인이 풀릴 거란 생각을 가진다. 그리고 다정한 말투로 바뀌며 우비를 안으려 걸어가는데, 우비는 처음엔 해맑게 안기려 달려들지만 상준의 속셈을 눈치채고 옆으로 돌아 빠져나간다. 우비가 말하길 엄마가 웃을 때 실눈 되는 남자는 수상하다고 주의를 준 덕에 눈치챌 수 있었다고 한다.[140][141]
상준은 우비를 잡으러 쫓아가면서, 아까 자신의 추리에 긍정한 이유를 질문한다. 우비는 현아가 특별한 걸 본 게 아니라 자신이 나가지 못하는 이유를 떠올려 버린 것이라 알려준다. 우비는 상준에게 잡히나 얼굴을 그림자로 바꿔 놀래킨 뒤 빠져나오고,[142] 상준은 비 오는 세계가 막혔는데 어떻게 여기있는 건지 묻는다. 그런데 우비는 자신은 아직도 비 오는 세계에 있으며, 지금의 자신은 상준에게만 보이는 환상이라 말한다. 물론 상준은 우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얼떨떨해 한다.
상준은 슬픈 마음에 현아가 나가지 못하는 이유를 질문한다. 그런데 우비는 지금 상준이 알아냈다는 걸 눈치챌 테니, 곧 본인이 직접 말해 줄 거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싸늘한 표정으로 현아가 거짓말은 안 할 것이나, 전부 다 말하지 않을 거라고 덧붙인다. 우비는 이후 의문에 휩싸인 상준을 뒤로 한 채, 소름돋는 웃음을 난사하며 엘리베이터로 달려간다. 상준이 뒤쫓아가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강풍이 불고, 우비는 완전히 사라진다.
도저히 현아를 다시 만날 기분이 나지 않았던 상준은 집에 돌아온다. 잠자리에 들기 전 수많은 고민들로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고민은 현아가 굳이 말하지 않은 사실이 무엇인가였다. 현아가 밝히기 싫어하는 걸 캐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현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위험했기 때문.
그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현관문 너머에는 소나기라도 맞은 듯 전신이 축축해진 현아가 있었고, 현아는 꼭 해야 할 말이 있다고 하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어쩐지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침묵하던 현아는 한숨을 푹 내쉬고 표정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샤워실을 빌려 쓰는 걸 부탁한다.

《기억의 저편 #8 현아》
나는 오늘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틀림없이.
상준은 현아의 샤워 소리를 들으며 굉장히 심란해한다. 일반적인 연인 사이여도 한 명이 다른 쪽 집에 와서 샤워를 하는 건 작정한 상황인데, 현아는 평소보다 훨씬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 여기에 현아는 갈아입을 만한 옷으로 상준의 옷을 요구한다.[143] 이후 현아는 샤워를 끝마치고 상준의 방 침대에 걸터앉는다.
[후방 주의]
파일:그세계 현아3.png
그런데 현아는 알몸에 와이셔츠 한 장만 걸친 상태였다. 상준이 상하의 전부 빌려줬음에도 와이셔츠만 걸친 현아는, 덤덤하게 상준에게 머리를 말려줄 것을 부탁한다. 상준도 예상은 어느정도 한 상태였기에 당황하지 않고, 가방에서 드라이기를 꺼낸다.[144] 현아는 드라이기를 꺼내는 상준을 굉장히 슬픈, 하지만 각오를 굳힌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상준은 엄청 긴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주면서 관리가 힘들겠다는 말을 한다. 현아는 혹시 싫어한다면 자르겠다고 답하지만 상준은 이대로가 좋다며 거절한다. 참고로 현아는 머리를 능숙하게 말리는 상준에게 전 여친에게 해준 적 있냐며 살짝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처음엔 상준이 장발을 했었다는 식으로 속이려 하지만 현아는 거짓말인 걸 간파한 뒤, 상준의 머리를 쥐며 10년 전에도 같은 헤어스타일이었을 거 같다며 웃는다.
현아는 각종 발언과 포즈로 상준을 유혹하려 한다.[145] 상준은 자제심을 최대로 발휘해 철벽을 치고, 아예 현아가 유혹을 못하게 껴안고 침대에 눕힌다. 현아는 조금 두렵긴 하지만 상준과의 키스를 부담없이 받아들이고, 둘은 한동안 키스를 계속한다. 하지만 현아가 겁먹은 눈을 감자 상준은 더 이상의 진도를 멈춘다. 상준은 탈출하면 3일은 안 재울 테니 연애를 미루자고 단언하고, 현아는 아쉬워하며 왜 그렇게 탈출시키는 데에 집착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상준은
울고 있는 사람이랑 어떻게 합니까?
라고 말한다. 그러자 현아는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고 안겨든다. 현아가 어느정도 진정되자 삳준은 무슨 일이 있어서 슬픈 표정으로 온 것인지 묻는다.[146] 현아는 안도감과 아쉬움이 반반 섞인 한숨으로, 자신이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 거냐고 말한다. 상준은 비 오는 세계의 입구가 하나라도 막히면, 다른 모든 입구들도 막혀버려 우비가 열어주길 기약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건 진작 알았다고 알려준다.[147] 현아는 살짝 놀란 눈으로 긍정한다.
하지만 상준은 이 사실을 현아가 숨긴 것과, 자신이 당연하다는듯 떠올리지 못한 것에 이상해한다. 그 때 현아는 비 오는 세계가 막혀버렸을 때, 상준이 곁에 있으니 생각보다 아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148] 하지만 새로운 두려움도 생겼는데, 바로 상준이 발길을 끊는 것이었다.
상준은 자신은 그럴 일 없다며 호언장담하나, 현아는 상준이 떠나지 않도록 지금까지 상준을 구속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썼다는 걸 고백한다. 상준은 살짝 놀라지만 현아가 자긴 원래 이런 끼가 있는 걸 알지 않냐는 말을 하자 부정하지 못한다. 아무튼 상준을 통제하는 방법이란 바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상준의 이타적인 성격상 어떤 고난을 겪어도 다시 현아를 찾아올 것이었기 때문. 그런데 상준은 자신이 현아를 돕고 찾아와준 건 순수하게 현아가 좋아서 그랬다고 답하고, 현아는 부끄러운 듯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다.
현아는 비 오는 세계가 막힌 직후, 우비가 열어주는 걸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지쳐 상준이 떠날 것을 두려워했다. 때마침 상준의 부상이라는 적당한 핑계거리도 있었고, 시간을 벌기 위해 병원 세계를 탐색하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부상이 나았음에도 탐색을 금지했던 건, 상준이 탐색을 하면 비 오는 세계의 입구가 전부 막힌 걸 금방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었다.[149]
상준은 현아의 고백을 듣자 별 것도 아닌 일이라고 말한다. 뒤돌아있던 현아가 놀라며 몸을 빙글 하고 돌리는데, 그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한다. 상준은 그런 현아를 안아주며 방금 안기고 싶어서 일부러 넘어진 거냐고 묻는다. 현아는 웃으며 긍정하는데, 상준은 자기도 안고 싶어서 일부러 부축한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거랑 마찬가지로, 자신도 비 오는 세계가 전부 막혔다는 건 진작 알았으나, 현아가 보고 싶어 탐색 제안에 적당히 편승하는 척 했다고 밝힌다. 현아는 안도감이 섞인 폭소를 터트린다.
상준은 완전 무게 잡고 말하길래 무시무시한 흉계라도 꾸미는 줄 알았다고 농담을 던진다. 현아는 잠깐 슬픈 표정을 짓더니, 그래도 속인 것에 사과한다. 상준은 그대로 먼저 말해준 것에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오해가 쌓이지 않으려면 서로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재차 상기한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떠나지 않는데, 현아가 이런 이유만으로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방문을 두드렸다고는 납득이 잘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아의 상태를 봐서 오늘은 추궁하지 않기로 한다.[150]

잠시 진정한 현아는 그래도 비 오는 세계가 막힌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며 침울해한다. 그래도 상준은 자신은 계속 올 것이며, 설령 현아가 영원히 탈출에 실패한다고 해도 계속 찾아올 것을 맹세한다. 현아는 무리하지 말라고 걱정하나, 상준은 솔직히 탐색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 탐색을 하다 생각치 못한 힌트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현아가 탈출구 얘기를 하던 중 학교 세계를 잠시 언급하는데, 상준은 그 말을 듣자 현아에게 자신의 방에 있는 전신거울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신거울에는 반대쪽에서 일부러 막은 듯한, 나무판자가 가득 붙어 있었다.
영원히 찾아오겠다고 맹세해도.
결국 변하지 않는 건 없어.
2.1.7.5. 두 번째 유리 루트
《기억의 저편 #7 유리》
많은 일이 그렇듯
그건 단순한 변덕이었다.
학교 세계로 향하던 어느 날, 상준은 단순한 변덕이 들어 자신의 방이 아닌 학교 정문 루트로 향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특정 행동이 새로운 입구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문으로 향한 것. 학교를 자세히 관찰해보니 학교 세계와 다르게 굉장히 신식 건물이었으며, 커다란 두 개의 건물이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학교였다. 그리고 뭔가 구분이 있는 것처럼 두 건물의 색깔이나 형태에 차이가 있었다.
상준은 벤치에 걸터앉아 학교 세계가 어째서 학교의 과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 이유가 유리가 가진 마음의 상처와 연관되어 있을 거라 생각해, 폰으로 학교와 관련된 사건사고들을 검색한다. 오래된 학교답게 자잘한 사건사고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동급생 간 살인 사건이었다. 다만 언론 통제인지 화제성이 없었던 건지 원본 기사는 전부 삭제되고 없었으며, 누가 기사를 캡처한 것이 정보의 전부였고, 내용도 그저 재학생끼리의 칼부림이라고만 나와있었다.
학교의 외형을 서로 비교하기 위해 상준은 멸망한 세계로 진입한다. 학교에 들어가 유리를 불러보지만 어째선지 유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적막한 학교에 살짝 오싹해할 무렵, 아무도 없는 복도에 신문지 한 장이 떨어진다. 신문에는 자신이 찾고 있었던, 어떤 중학교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상준은 실마리를 찾았다는 기쁨보다, 이게 왜 자신이 나타나는 타이밍에 맞춰서 떨어진 거냐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 때 우비가 나타나 상준의 팔에 달라붙는다. 상준은 순간 크게 놀라지만 우비가 해맑게 달라붙어 있는 걸 보고 진정한다. 그리고 팔에 매달려 있던 우비를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상준은 우비를 귀엽게 여기는 건 변함 없었으나, 우비가 구타를 당하며 전신이 피로 물드는 그 광경이 계속 오버랩되어 심란해한다. 우비는 상준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갸우뚱거리는데, 상준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우비는 눈을 지그시 감고 배시시 하며 좋아한다. 그리고 상준은 우비의 과거를 순간 끔찍하다고 생각해 사과를 하는데, 우비는 그런 상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깜짝 놀래킨다.[151] 상준은 다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비에게 여기서 뭐 하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우비는 순간 싸늘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진짜 상준의 등을 떠밀어주러 왔다고 답한다. 상준은 순간 우비의 표정을 보고 오싹해지지만 우비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갸우뚱거린다. 그리고 우비는 그림자 상준을 다시 만들기 힘들어졌으니, 본체를 다시 보러 왔다고 말하지만 상준은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상준은 일단 중요한 용건인 비 오는 세계를 막은 이유를 묻는다. 그런데 우비는 자신이 막은 적 없다며 어리둥절한다. 우비가 말하길 현아는 소용없다는 걸 떠올렸기에 일부러 안 오는 것이라고. 이번에도 상준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우비를 붕붕 들어 놀아주다가,[152] 바닥에 내려와 신문지를 줍는다. 상준이 그 신문지의 출처를 묻는데, 우비는 거울 속에 들어있었다는 답을 한다. 물론 상준은 또다시 이해를 못하고 대화를 이어나갈 용기가 꺾여버릴 위기에 처한다.
어떻게든 용기를 다잡고 그걸 자기에게 가져온 이유를 묻는다. 그런데 우비는 신문지로 상준을 유인해 외형을 관찰하려고 했다는 걸 밝힌다.[153] 상준은 잠시 의아해하더니 신문지를 보려 하는데, 우비가 신문지를 잡고 주지 않으려 한다. 상준은 말투까지 맞춰주며 보려 하지만 우비는 싫다면서 빙빙 돌며 간격을 벌린다.[154] 상준이 덮쳐보지만 우비는 비옷에서 빠져나와 회피한다. 비옷을 손에 쥔 상준은 순간 섬뜩해서 만져보나, 다행히 피로 물든 게 아닌 처음부터 빨간 비옷이었다.
이후 상준은 우비에게 비옷을 입혀주는 척하며 놀래키고, 우비는 놀라면서 신문지를 놓친다. 신문지를 뺏긴 우비는 화를 내며 돌려달라고 소리치지만 상준은 잽싸게 신문을 읽는다. 신문에는 인터넷에선 찾을 수 없던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학교가 비어 있는 시간대에 두 학생 간의 칼부림이 일어나 한 명이 사망했으며, 한동안 실종으로 처리되었다가 시신이 뒤늦게 발견되고 살인 사건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신은 교내 3학년 3반 교실 앞 세면장에서 나왔다고. 그리고 이 뒤로는 찢겨 있어서 읽을 수 없었다.[155]
그리고 상준은 이 사건의 범인이 유리라고 가정하면, 유리가 사정을 말하지 않은 것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것도, 촉법소년을 운운한 것도 모조리 설명이 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거울 속 학생들이 피해자였다고 생각하면 또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으나, 상준은 유리가 띠껍게 굴긴 해도 사람을 죽일 정도의 악마는 아니라고 생각해 혼란스러워 한다.
그 때 우비가 사라진 걸 뒤늦게 확인한 상준은 주위를 둘러본다. 우비는 멀리서 신문지의 나머지 조각을 들어 올려 보여준 다음, 이제는 안 주겠다며 멀리 도망쳐버린다. 이후 우비의 환영은 사라지고, 비 오는 세계의 본체 우비는 그림자 상준과 시간을 보낸다. 해당 시점을 다루는 우비의 서브 스토리는 《06: 오리는 삐약삐약.》《07: 뭘 해도 용서받는.》이 있다.
상준은 솔직히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으나 3학년 층에 들러야 했기에 우비를 쫓아간다. 3학년 층으로 올라간 상준은 우비를 놓쳐버리나, 신문에 나온 세면장을 발견한다. 그리고 만약 유리가 가진 마음의 상처가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으면, 우비처럼 이 세계도 유리가 겪었던 사건을 기초로 구현되어 있다는 것에 확신한다. 그리고 우비도 그렇고 유리도 그렇고 이곳은 단순한 꿈이 아닌 악몽을 구현한 세계라는 걸 짐작한다.
세면장을 들어서면서 상준은 세면장 옆 교실을 힐끗 쳐다본다. 이전에 유리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그 곳엔 거울이 유난히 적었는데, 상준은 그런 이유로 저곳을 생활공간으로 택한 것인가 하고 여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상준은 자신도 모르게 세면장으로 걸어 들어간다.[156] 상준은 세면장을 샅샅이 뒤져보고, 천장까지 열어보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상준은 생각을 바꿔서, 실종으로 처리되었다 살인으로 바뀐 것이면 시체가 썩는 냄새로 인해 뒤늦게 발견된 것을 확신한다. 학생들이 몰래 들어와 담배를 피우는 세면장에서 썩기 전까지 아무도 모를 장소는 단 하나, 세면대 거울 뒷면의 공간이었다. 우비가 이전에 신문이 거울 속에 있었다고 말한 걸 떠올리며, 거울로 천천히 다가가 관찰한다.
그 거울은 다른 거울들과 달리 학생들에게 끌려가지 않을, 평범한 거울인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거울을 붙인 실리콘은 묘하게 새것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그마저도 급하게 마감한 것처럼 공간이 살짝 떨어져 있었다. 사용한 실리콘도 시공용이 아닌 가정용이었다고. 상준은 거울을 해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그냥 거울을 깨버린다. 그리고 그곳엔, 갈색 핏자국이 가득한 옷으로 덮어 놓은 사람의 뼈가 있었다. 그리고 깨진 거울에 당황한 표정의 유리가 비쳤다.

《기억의 저편 #8 유리》
그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거울 속 시체를 확인한 유리는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으로 크게 당황하더니, 상준이 손에 든 신문지를 보고 표정이 험악해진다. 그리고 그 신문지는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아 숨겨놓았던 것이며, 자길 도와준다고 해놓고 뒷조사한 거냐고 캐묻는다. 상준은 무슨 변명도 소용없을 거 같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유리가 살인을 저지른 건 불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이 돕겠다는 의사를 내비친다.
그 제안을 들은 유리는 표정이 한결 풀어지더니, 일단 시체에서 떨어질 것을 필사적으로 요구한다. 상준은 유리가 살인을 들켰음에도 그 자체에 당황하기보단, 아직 들키지 않은 무언가를 감추려 하는 걸 느낀다. 상준은 거울 속의 인골을 유심히 본다. 어색한 부분도 몇 있었지만, 유난히 낯익은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시체의 차림으로, 시체는 교복이 아닌 애들이 멋대로 사입는 추리닝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추리닝을 걷어내려 하자, 유리는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말린다. 하지만 유리가 달려오는 속도보다 상준이 추리닝을 걷는 속도가 더 빨랐고, 이후 시체에 '유리'라는 이름이 써진 명찰이 떨어져 내렸다. 즉, 유리는 가해자가 아닌 사망한 피해자 쪽이었던 것이다.[157]
창문에는 어느새 피투성이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손을 뻗어 유리에게 내밀더니
언제 올 거야?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야?
라고 단체로 말한다. 유리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다가,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그 어느 때보다도 상준을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다. 상준은 저 학생들이 유리와 참 닮았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아...
걸렸네.
오빠가 생각하는 대로예요.
내 뼈야. 그거.
유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뒷조사해서 알아내니 좋냐느니, 이제 자신을 도울 수 있으면 도와보라느니 등 차갑게 쏘아붙인다. 그리고 진실을 알았으면 좀 도와보라며 소리지르는데, 그 순간 학교 건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와 상준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당겨 내려 시선을 맞춘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죽었다며, 그래서 못 구하니 이제 어쩔 거냐고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소리친다. 그렇게 한동안 마음을 쏟아내는 유리를 보며 상준은 슬픈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유리도 왜 그렇게 슬프게 바라보냐고 외치다가, 울음이 분노도 잠식해버리고 그저 하염없이 울면서 상준의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달라는 말과 함께 까치발을 들며,
파일:그세계 유리3.png
잊게 해 줘요.
그 언니도 잊고.
방금 본 것도 잊고.
지금은...
지금 한 번만이라도...
오빠라면 괜찮으니까!!
라고 외친다. 상준은 이전에 유리가 한, 같이 쓰레기로 떨어지는 걸 택하겠다는 말이 진심이었음을 깨닫는다.[158] 하지만 상준은 그런 유리를 밀쳐내고, 애정표현에 응하는 순간 둘 다 망가져버린다고 거절의 의사를 내비친다. 유리는 분노가 섞인 울음을 지으며 상준을 강하게 밀쳐낸다. 그리고
오빤... 진짜로 십새끼예요.
라며 독기어리게 쏘아붙인다. 그 순간 학생들이 거울을 깨고 나와 상준을 제압하고, 상준은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거울을 향해 질질 끌려간다.[159] 간신히 이성을 되찾은 상준은 유리를 향해 필사적으로 소리친다. 슬프고 힘든 건 알지만 자신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상준은 학교 세계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유리는
이제 오빠가 무슨 말 해도 안 들어요.
꺼져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라며 절교를 선언한다.

2.1.8. 기억의 허상

《기억의 허상 #1》
혼자 몰래 저지르지 말고.
터놓고 말해서 이해를 구하면.
잘 안 만들어지네...
이제, 한계인 걸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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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비
상준은 현아에게 양해를 구해 혼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탐색을 한 뒤, 늦은 오후가 되서야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병원 세계로 들어간다. 유리와의 사정을 들은 현아는[160] 상준의 잘못이 맞지만, 유리도 너무하다는 평을 남긴다. 그 이유는 모든 거울들을 전부 나무 판자로 막아버렸기 때문.[161] 현아는 스토킹이 사라진 건 맞으나 악화된 상황에 한숨을 쉰다. 그런데 상준에게 다가와 키스를 하며, 유리에게 넘어가지 않은 건 칭찬해주겠다고 말한다.
참고로 상준은 평소보다 말투가 딱딱해진 상황이다. 현아가 묻자 상준은 학생들한테 당한 것이 워낙 분해서 야성 비슷한 폼을 끌어올리는 중이라고 알려준다.[162] 아무튼 상준은 이 상황을 해결할 계획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걸 실행하기 위해선 현아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며 진지하게 말한다.
하지만 계획을 들은 현아는 상준을 미친 사람 취급하면서 나무란다. 왜냐하면 계획이란 게 가짜 문을 열고 왼팔을 넣었다 빼보는 것이기 때문. 그런데 상준은 열린 가짜 문을 지나쳐도 안전했으며, 어차피 위험해지면 현아가 구해줄 거라며 지지 않는다. 그리고 가짜 문의 정체를 이 방법으로 알 수 있기에 반드시 해야 한다며 설득한다. 현아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웃음과 함께 승낙한다. 그 이유는 상준의 목숨이 재차 위험해지는 순간이 오면 자신이 구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상준은 가장 대응하기 편한 복도의 문을 고르고,[163] 현아가 자신을 안은 건 물론 줄까지 묶은 상태로 문 앞에 선다. 현아는 자신이 놓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냐고 마지막으로 묻는데, 상준은 이전에 자길 통제하는 스타일 아니였냐며 농담을 날린다. 그리고 가짜 문을 열자, 그곳엔 거울처럼 비치고 일렁이는 광경이 펼쳐졌다.
거기서 나온 무언가가 상준의 왼팔을 당기고, 상준은 거울 속으로 팔을 집어넣는다. 차가운 젤리와 같은 감각을 느끼며 상준은 순간 정신을 잃을 뻔하나, 현아가 뺨을 때려준 덕에 다시 다잡는다. 어깨까지 팔을 넣자 팔에는 수많은 손들이 쓰다듬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고, 그 순간 거대한 어금니가 팔에 닿는다. 닿자마자 상준은 빼내 줄 걸 요청하고, 현아는 있는 힘껏 당겨 상준을 빼낸다. 그리고 빼냄과 동시에 문이 닫힌다. 그리고 상준의 팔에는, 지난번 유리와 마찬가지로 이빨에 씹힌 듯한 상처가 나있었다.
파일:그세계19.png
이 실험으로 상준이 내린 결론은 바로 학교 세계엔 탈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유리의 학교 세계도 우비처럼 탈출구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병원 세계를 감싸안은 형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병원 세계의 가짜 문 너머와 학교 세계의 거울 너머는 같은 공간이며, 학교 세계는 거울 면이었다. 즉, 어금니가 존재하는 거울 저편과 병원 세계가 있는 거울 이쪽 편, 그 사이에 있는 얇은 거울 면이 학교 세계의 정체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복선은 3가지가 있었다.

* 유리는 병원 세계의 모든 구역을 스토킹할 수 있었다. 비 오는 세계처럼 병원 세계 한 쪽에서 탈출구를 막고 있는 형태였다면, 한계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스토킹이 힘들어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유리는 상준이 어디에 있어도 무리없이 따라다닐 수 있었다.
* 학교 세계는 다른 세계보다 면적이 좁다. 시내 전체인 병원 세계, 사이비 마을과 산이 통째로 들어간 비 오는 세계와 달리 학교 세계는 학교와 운동장이 전부였다. 이는 학교 세계가 두 세계와 본질이 다르다는 걸 암시한다.
* 지금까지 학교 세계는 거울 속 세계로 인식되었지만, 이상하게 학교 세계에도 거울이 존재한다. 그것도 모습이 비치는 거울과 안 비치는 거울로 나뉘는데, 안 비치는 거울은 병원 세계로, 비치는 거울은 가짜 문과 동일한 거울 저편으로 향한다. 이는 학교 세계가 두 세계를 가르는 공간이라는 증거다.
그리고 학생들은 유리의 심상을 반영해 학생의 모습으로 변한 검은 것들이라고 확신한다. 한계점 내부의 세계가 유리의 심상으로 인해 학교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으니, 비슷한 성질을 지닌 학생들도 검은 것이 학교의 분위기에 맞춰 형상이 바뀐 것이라는 게 결론이다. 다만 유리를 끌고 가려 했던 건 납득을 쉽사리 못하는데, 자신도 검은 것들에게 끌려갈 뻔한 적이 있으니 어찌어찌 받아들인다.[164]
현아는 약간 슬픈 목소리로, 이렇게까지 해서 그 사실을 알아낸 목적을 묻는다. 상준은 이 사실로 학교 세계는 탈출구가 없으며, 유리를 도와줘도 우리에겐 이득이 하나도 안 된다는 걸 알려주려 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말없이 바라보는 현아에게, 상준은 한 번 더 유리를 만나고 돕는 것을 허락해주길 부탁한다.
현아는 그럼 자길 돕는 걸 중단하고, 자신과 상관도 없는 애를 구하기 위해 다치러 가는 걸 허락해달라는 거냐고 정리한다. 상준은 어떠한 거짓이나 포장도 없이 그렇다고 답한다. 현아는 한동안 상준을 말없이 바라보더니, 상준의 눈에 집중한다. 그리곤
너... 가끔씩 그렇게 미친 것 같은 눈을 할 때가 있어.[165]
사람에 따라선, 무섭다고 느낄지도 몰라.

"현아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상당히 내 취향."
이렇게 말한다. 만약 유리를 방치하거나, 허락도 안 받고 구하러 갔으면 진짜 화냈을 거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크게 도움 받은 사이를 버릴 수 없으니, 방황한 애를 구하는 건 어른이 몫이라는 말과 함께 웃으면서 허락해준다. 마지막으로 속이지 않고 진실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상준은 역시 서로의 성격이 비슷함을 느낀다.
상준은 학교 세계로 향하기 위해 벌떡 일어나는데, 갑자기 현아가 잡아끌고 침대에 눕힌다. 현아는 사정은 이해하나 그래도 유리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에 질투심이 난다고 말한 뒤, 상준에 키스를 하고 온갖 얀데레스러운 말들을 내뱉는다. 그렇게 분위기에 심취하다 결국 장난이 심했다면서 사과한다. 하지만 상준은 그런 과격한 플레이가 오히려 좋으니 사랑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현아는 부끄러워한다.

《기억의 허상 #2》거울이 모조리 막혀버린 관계로 상준은 학교 정문 루트로 학교 세계에 입장한다. 복도에서 다시 마주한 유리는 싸늘하게 상준을 무시하고 돌아서 버린다. 상준이 다가서려 하자 유리는 학생 세 마리를 소환하고,[166] 다치면 그 언니가 싫어할 거라며 경멸을 담아 비웃는다. 상준은 그렇게 말하는 유리에게 손을 들어 붕붕 흔들고 돌진하기 시작하며, 학생들과 전투를 벌인다.[167]
한편, 상준을 보내고 혼자 남은 현아는 어느새 나타난 우비와 조우한다. 현아는 상준도 갔고, 거울도 봉쇄되어 소리도 차단됐으니 온 거냐고 묻고, 얼굴이 그림자가 된 우비는 긍정한다. 그리고 이제야 자신의 말이 들리냐는 의미심장한 말도 남긴다.
상준은 일단 학생들을 계단 쪽으로 유인한다.[168] 그리고 한 놈을 순식간에 계단 쪽으로 집어 던지고, 남은 한 놈은 바디 블로우로 제압시킨 다음[169] 다시 계단으로 던져버린다.
순식간에 두 마리를 제압하고 남은 한 마리는 덩치가 훨씬 컸으며, 상준의 격투 기술을 일부 사용했다. 상준은 위에서 지켜보는 유리에게, 유리가 본 자신의 기술을 사용하게 만들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 그리고 경험이 실시간으로 반영되는게 진짜 꿈 속 같지 않냐는 말까지 하자, 유리는 할 말 없으니 돌아가라고 신경질적으로 군다.
하지만 덩치 학생은 상준의 기술을 일부만 카피했고, 디테일과 연계는 하나도 없었기에 상준에게 간단히 제압된다. 유리는 바로 붙잡힐 거라 생각한 건지 뒷걸음질 치며 물러난다. 하지만 상준은 천천히 걸어서 따라가기만 하고, 유리는 자길 붙잡지 않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유리가 상준의 대화 요청을 거절하자, 상준은 그럼 일단 준비한 함정들 전부 꺼내보라고 전한다. 자신이 함정으로 유인하고 있다는 걸 들킨 유리는 곧바로 학생 하나를 꺼내는데, 상준은 매우 간단히 제압해버린다.[170]
이후 유리는 몇 개의 함정들을 더 선보이며 도망치지만 상준은 전부 간파해버린다. 상준은 진짜 치명적인 건 왜 꺼내지 않냐고 물어보고, 이러니까 마치 일부러 잡혀서 다시 대화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유리는 자기가 못할 거 같냐고 소리친 뒤, 간격을 벌리고 흉기라도 잡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상준은 유리가 진심으로 겁에 질린, 정확히는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본다.
유리는 자긴 이미 죽었는데 오빠가 뭘 할 수 있냐고 소리지른다. 상준이 방법이 있다고 하지만 유리는 멋대로 뒷조사나 하는 주제에 허세 부리지 말라고 따지고, 상준은 사과할 기회를 달라며 다가선다. 유리는 어차피 오빠는 자길 버리고 현아만 바라보니 진심이 아니지 않냐고 말한다. 그런데 상준이 학교 세계가 탈출구 없는 세계란 걸 눈치챈 지 오래라고 반박하자, 유리는 눈에 초점이 사라진다.
상준은 결국 유리가 자신의 진실을 감춘 건, 오빠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행한 것이지만, 그래도 자신은 이렇게 다시 왔다고 말한다. 현아는 1도 상관하지 않고, 순전히 유리와 대화를 하기 위해 왔다고 전하자 유리는 부정의 비명을 지르다가, 욱 하는 심정으로 동전들을 던진다.
상준은 순간적으로 가드하지만 하나를 무릎뼈에 잘못 맞아버리고 엄청난 격통을 느낀다. 유리는 자신이 상해를 입혔다는 사실에 패닉이 오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171] 상준은 최대한 고통을 참는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가 떨고 있는 유리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러게 대화로 하자니까.
잡았다.
유리와의 술래잡기라는 점에서 처음으로 직접 대면한 에피소드인 《유리의 세계 #2》와 유사하다. 유리가 여럿 함정들을 구사하나 상준이 모조리 간파하고 유리를 잡는 구성까지 동일. 다만 두 가지 대조적인 점이 있다. 이전에 분노한 사람은 유리의 방해공작에 당한 상준이었지만, 이번엔 자신의 비밀이 들킨 것도 모자라 상준에게 애정 표현을 거절당한 유리라는 점. 그리고 술래잡기의 마무리도 이전엔 학생들이 유리를 끌고 가려 하는 섬뜩한 연출로 맺었지만, 이번엔 서로가 화해를 하는 훈훈한 연출로 끝났다는 차이가 있다.

참고로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을 인용한 인트로 설명과 달리, 정작 상준은 최후반부 유리가 던진 동전으로 맞기 전까지 유의미한 타격을 입지 않았다. 여기서 칭하는 대상은 아마 유리로 추정된다. 상준을 쫓아내기 위해 흉기까지 준비했으나, 상준에게 상해를 입히자마자 곧바로 후회했기 때문.

《기억의 허상 #3》
상대에게 양심이 있을 때만 통하는
화해의 기술
유리와 상준은 이후 교실에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유리는 기껏 하는 게 자해냐고 화내지만, 상준이 연극톤으로 아픈 척을 하자 급격히 미안해졌는지 주눅이 든다.[172] 상준은 농담이었다고 한 뒤, 화해를 쉽게 하는 법은 바로 다툰 상대를 미안하게 만드는 것이라 알려준다. 물론 상대에게 양심이 있을 때의 얘기라곤 하나, 유리는 상준이 사과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화를 낸다.
그 말을 듣자마자 상준은 절을 하며 사과를 한다. 유리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행동을 멋대로 주도한 것을 사과한 뒤, 한 번만 더 자신을 믿어달라고 부탁한다. 유리는 그렇게까지 하면 어떻게 사과를 안 받아주냐며 화를 내지만, 손으로 가린 얼굴은 울고 있었다. 그리고 화해한 걸로 쳐 주겠다고 말하고, 상준은 울고 있는 유리에게 손수건을 건넨다. 물론 미성년자인 유리와 사귀는 건 엄금이기에, 지금의 위로는 어디까지나 어른이자 친한 오빠로서 한 것이라고 못박는다.
상준은 유리의 성격은 상대와 싸웠을 때 자신이 먼저 사과하지 않는, 하지만 상대가 사과하면 무조건 받아주는 타입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상대가 사과를 안 하는 게 두려우니 먼저 쳐내버리고, 그걸 배려라고 착각한 미숙한 아이란 걸 느낀다.
하지만 유리는 이미 죽어버린 자신을 도울 수 있다는 상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상준은 도시락을 먹는 것도, 피부가 꼬집어지는 것도,[173] 어깨가 빠지는 것도, 모두 육체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유리가 이해하지 못하자 상준은 인골이 있었던 3층 세면장으로 데려간다.[174]
유리가 자신의 사망 경위를 알아냈냐는 질문을 하는데, 상준은 그것보다 더 가혹한 것일 수 있다며 시체를 덮고 있던 추리닝을 걷어 낸다. 상준은 시체의 대퇴골 하나를 집어들고,[175] 갑자기 유리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상준이 한 질문은 '몇 학년 몇 반이었는지'와 '담임 선생님 얼굴은 어땠는지'였다. 유리가 기사에 나온 것과 동일한 내용으로 술술 대답하자, 상준은 이번엔 다른 질문들을 추가로 한다. '등교할 때 몇 번 버스를 탔는지', '반에 몇 명이 있었는지', '사용했던 교과서는 몇 년도 교육 과정이었는지', '학교에서 고데기를 허가해 줬는지' 등, 모두 기사에 없는 내용들로 이루어진 질문들이었다.
그런데 유리는 어째선지 두 번째 질문들은 하나도 답하지 못한다. 유리는 죽었으니 기억 못 할 수도 있지 않냐며 당황하는데, 상준은 여기서 학교의 진실을 알려준다. 바로 서로 다른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운동장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자는 사진발이 더 잘 나오는 중학교에 포커스를 맞춰 사진을 찍었고, 이는 상준이 칼부림 사건이 일어난 곳을 중학교로 오인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즉, 칼부림 사건은 실제론 유리의 중학교가 아닌 맞은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상준은 스캔된 종이 신문을 찾아볼 수 있는 사이트를 통해 해당 사건의 진실을 알았다며 설명을 이어간다. 애초에 고등학교는 유리의 교복과 다른 것을 쓰고 있었고,[176] 시체도 백골이 되기 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유는 당연히 가해자가 어설프게 붙인 거울 틈새로 악취와 액체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라고.[177]
그리고 상준은 이제부터 굉장히 가혹한 질문을 할 것이지만 들어달라고 부탁한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몸을 떠는 유리에게, 상준은 아까 꺼낸 대퇴골을 부러뜨린다. 그리고 부러뜨린 대퇴골 단면에는, 플라스틱처럼 빈 구멍만이 있었다. 할 말을 잃어버린 유리에게 상준은 말한다.
너 누구야?
말을 마치자마자 유리 몸은 거울이 깨지는 것처럼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유리는 울음을 터뜨리는 듯 얼굴을 감싸 쥔다. 그리고 완전히 깨지고 남은 자리엔, 붕대투성이에 환자복 차림인 유리만이 남아있었다.
유리는 사실 죽은 사람이 아니었으며, 유리라는 이름과 중학교 학생이라는 것도 모두 누군가가 조작한 거짓 신상이었던 것이다.[178]

《기억의 허상 #4》
우는 사람을 달래는 건
역시 쉽지 않다.
꿈속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본 적 있어?
왠지 모르게 과거사까지 어느 정도는 있을 때도 있잖아.
명백하게 현실과는 다른 친구나 선생님이 있기도 해.
깨어나는 순간, 대체 걔들은 누구였는지 의문을 품게 되지만.
유리는 한참 동안 기절할 정도로 울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다. 상준은 힘들면 한숨 자라고 했지만 유리는 자신이 울면서 상준을 할퀸 게 미안한 나머지 고개를 든다.[179] 유리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상준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드러눕는다. 살짝 눈치를 보긴 하나 상준이 괜찮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대화를 이어간다.
유리는 현재 가진 가장 오래된 기억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이 없는 상태로 학교 세계에서 정신을 차린 것이라 말한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탈출을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몇 번의 기절이 있었고, 어느 순간 옆에 상준이 발견했던 신문 기사가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사의 내용대로 세면대에서 뼈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대로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 믿게 되었다고. 상준은 역시 멸망한 세계가 꿈 속과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어도 자신과 주변에 어떠한 의문점도 가지지 않은 채 그대로 받아들이는 양상이 동일했기 때문.
유리는 이제 보니 학교 세계도 요즘과 다른 굉장히 구식 건물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오래된 나무 바닥, 약한 나무 미닫이문, CRT 모니터 등은 요즘엔 사장된 모습이기 때문.[180] 유리는 결국 자신의 추억이라곤 현아를 훔쳐본 것과 상준과 논 것 뿐이라고 말한다. 상준이 퍽이나 재밌었다고 맞장구쳐주자 유리는 웃음짓는다.
상준은 유리가 아직 눈물이 고여있는 걸 보고 좀 더 울어도 된다고 말하지만, 유리는 오히려 후련해진 기분이라고 답한다. 왜냐하면 진짜 자신을 찾았기 때문이었다는데, 상준은 유리가 생각보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것에 놀란다. 아무튼 유리는 자신이 어딘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일 수 있으니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다짐한다. 상준이 멸망한 세계에서의 외모는 현실과 동일하다고 알려주자, 유리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상준에게 손을 내밀라 한 다음 그곳에 자신의 머리를 얹는다.
상준은 스킨십이긴 하나 이것까지 거절할 수 없다는 죄책감에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 유리는 자기 정도면 예쁘지 않냐고 웃는데, 상준은 한 5년 쯤 지나면 예뻐질 거라 답한다. 유리가 짜증 나는 건 안 변한다고 말하자 상준은 너도 띠껍게 구는 건 그대로라고 받아치고, 유리는 이게 원래 본인 성격인 것 같다며 활짝 웃는다. 그리고 인터넷도 안 되는 세계니 폰에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당분간 이것에 전념하겠다고 밝힌다.
일기장에 상준의 도시락 리뷰라도 쓰겠다고 하자, 상준은 계속 잘해 주니까 당연한 줄 아냐고 농담으로 따진다. 그러자 유리는 오빠가 자길 울린 게 얼만데 책임 좀 지라고 반박한다. 울린 빈도로 따지면 친오빠 수준이라고 말하자 상준은 유리의 뺨을 잡는다. 그리고 자긴 이제부터 유리를 친동생처럼 생각할 것이니 기어오르지 말라고 당부한다. 상준은 아마 유리가 현재 원하는 애정은 연인이 아닌 친한 오빠로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리는 밖에 나가면 상준보다 훨씬 뛰어난 남친 만날 것이니, 현아에게 차이면 자기한테 오라고 권유한다. 왜냐하면 자기도 좋은 사람 만났다며 차버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유리는 농담을 하면서 귀엽게 웃는데, 상준은 그 모습이 현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자정까지 시간이 남아서 상준은 병원 세계로 돌아가려 한다. 그런데 거울의 나무 판자들이 아직 남아 있자 상준은 정문 루트로 향한다. 유리 말로는 자신의 복장처럼 상처입은 자기 심상이 반영된 것이니, 오늘 만큼은 나무 판자가 유지될 거라 알려준다. 그리고 오늘은 왜 판자가 사라지지 않는지 밤새 생각해보라며 사연있는 표정을 짓는데, 상준은 유리의 표정이 연습해 온 티가 팍팍 나는 걸 눈치채고, 의도를 알 것 같으니까 그냥 피식 웃어준다. 유리는 속셈이 들키자 아까 달래주던 그 상냥한 오빠는 어디갔냐고 중얼거리는데, 상준은 한 번뿐인 서비스였다고 말한다.
유리는 복잡한 표정으로 뒷짐을 지더니 자신도 서비스 하나를 주겠다고 말한다. 바로 상준이 눈치챌 때까지 말 안하고 있던 사실 하나를 알려주는 것이었는데, 상준은 자신이 눈치 못 챈 게 있을 리 없다는 생각에 의아해한다. 유리는 상준의 손을 잡고 학교 담을 넘어 도로로 향하고, 상준도 같이 따라간다.
유리를 따라가자 상준은 어느덧 병원까지 도달한 것을 목격한다. 한계점을 넘지도 않고 병원에 도착한 것에 놀라자, 유리는 이곳은 병원 세계가 아닌, 학교 세계에서 병원과 똑같이 생긴 구역이라고 알려준다. 상준은 각자의 꿈처럼 완전히 분리된 세계인 줄 알았으나 똑같은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에, 어쩌면 한계점으로 갈라져도 다른 동일한 장소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심지어 유리는 이곳에 거울을 놓고 보면 병원 세계의 동일한 구역이 보인다고 알려준다. 즉, 이곳은 단순 외형만 같은 게 아니라, 병원 세계의 똑같은 장소와 좌표까지 같은 것이었다.[181] 그 다음 유리는 물뿌리개로 횡단보도에 물을 뿌리는데, 묘하게 사람이 엎어진 모양으로 물웅덩이가 고이더니, 머지않아 웅덩이에 비 오는 세계가 비치게 된다.
비 오는 세계가 막힌 뒤로 다른 한계점은 전부 막혔지만 이곳 만큼은 살아남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횡단보도는 한계점이 아닌, 다른 모든 세계들과 직접적으로 맞닿은 곳이었기 때문. 결론은 병원 세계 -> 학교 세계 -> 비 오는 세계 순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물뿌리개 하나만 있으면 모든 세계를 왕복할 수 있는 것이다. 상준은 생각치 못한 방법을 찾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데, 유리는 안아달라는 것처럼 양팔을 벌리고 눈을 감는다.
그런데 상준은 안아주지 않고 이곳의 장소가 겹치는 이유를 묻는다. 유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걸 어떻게 아냐고 답한다. 그래도 상준은 길이 생겼다는 사실에 고마워하며 정문으로 다시 향한다. 그 때 유리가 아쉬운 듯이 뒤에서 붙잡자, 상준은 시간도 남았으니 지금 의문점들을 몇 가지 해소하기로 한다. 이번 일로 유리가 생각보다 똑똑하다고 느껴진 덕에 현아와는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
일단 유리는 간단하게 상준이 말한 의문점들을 정리한다.[182] 바로 자신을 죽은 사람이라 착각하게 만든 게 누구인지, 횡단보도가 모든 장소와 겹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신이 멸망한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 검은 것/학생들은 대체 무엇인지였다. 상준은 일단 유리가 탈출할 수 있는지 정문 루트로 시험해보지만 유리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버린다.
탈출에 실패해도 유리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당분간은 여기에 남는 게 맞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어쨋든 상준은 유리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을 하고, 유리는 그런 상준에게 농담 섞인 저주를 퍼부으며 보낸다.[183] 상준은 이전보다 훨씬 진심으로 웃는 유리를 보고 피식 웃는다.

《기억의 허상 #5》
내가 유리에게 가 있는 동안.
현아 씨는...
우비의 서브 스토리인 《05: 영원할 순 없어》가 해당 에피소드의 프리퀄이다.
상준이 유리를 막 만나러 갔던 시점, 우비는 비 오는 세계를 달리고 있었다. 머리밖에 안 남은 그림자 상준을 들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린다. 우비는 상준에게 자신이 사라지는 중이라 다리를 못 만들어줘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그래도 그림자 상준이 남아있으면 괜찮다는 말을 하는 우비에게, 상준은 네가 왜 사라지냐고 묻는다. 이에 우비는 잊힐 땐 과거부터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는다.
우비가 병원 세계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벽에 도달해 손을 얹자, 뒤에서 피 묻은 발이 마구 쫓아오기 시작한다. 우비는 잽싸게 문을 열고 들어가 닫아버리고, 피 묻은 발은 닫힌 문을 마구 두드린다. 우비는 당황하는 상준에게 자신이 없어지면 피 묻은 발도 없어지기에 저렇게 발광하는 거라고 설명해준다.
우비가 문을 닫고 들어간 곳은 붉은 글씨가 한가득 써진 방이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낸 다음 글씨를 쓰는데, 상준은 우비에게 언제 이런 글씨들을 쓴 거냐고 묻는다. 우비가 말하길 상준이 없던 시절엔 이 방을 넘어갈 수 없었기에 글씨만 한가득 썼다고 답한다. 상준은 못 넘어갔으면 매번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고, 점점 심해지는 피 묻은 발의 발광에 걱정을 한다. 그리고 지난번에도 분명 이런 적이 있었다는 걸 떠올린다.[184]
이후 우비가 상준의 머리를 손에 끼고 문고리를 돌려 탈출한다. 한계점을 넘자 그림자 상준의 머리는 녹아버리기 시작하고, 우비는 겁먹은 표정으로 실과 바늘을 꺼낸다. 상준은 지난번 때와 달리 우비가 녹지 않는 이유를 물어본다. 그러자 우비는 현아가 비 오는 세계에서 사건들을 봤기에 잊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 덕에 자신도 마지막이지만 넘어올 수 있게 되었다고 알려준다. 그리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는 상준에게 고마워한다.
그 때 피 묻은 발이 문을 부숴버린다. 상준은 지난번처럼 우비와 자신을 비 오는 세계로 다시 끌고 가려는 걸 눈치채고, 이번엔 자신을 그냥 버릴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우비는 싫다는 말과 함께 필사적으로 안고 달린다. 피 묻은 발도 다행인지 상준처럼 주르륵 녹아내리기 시작해 느려졌고, 상준은 우비가 이렇게까지 해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우비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도 이상해한다.
우비가 도착한 곳은 바로 현아가 있는 곳이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기억의 허상 #2》에서 우비가 현아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이였던 것이었다. 현아는 상준도 갔고, 거울도 봉쇄됐으니 소리까지 차단되자 온 거냐고 묻고, 얼굴이 그림자가 된 우비는 긍정한다. 그리고 이제야 자신의 말이 들리냐는 의미심장한 말도 남긴다.
현아는 이제 와서 뭘 하고 싶은 거냐고 물어본다. 우비는 뜸을 들이다 그냥 마지막이니 보고 싶어서 왔다고 전한다. 현아가 마지막이라는 말에 당황하자 우비는 자신의 비옷을 들춰 보이는데, 그곳엔 새까만 어둠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비는 누구나 그렇듯이 자기가 제일 처음이라며 웃는데,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우비 쪽으로 손을 뻗다가 이내 힘없이 떨군다.
우비는 심적으로 충격을 받은 현아에게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현아는 이젠 상관없다고 중얼거리는데, 우비는 정말 자신이 필요 없어졌다고 여길 만큼 싫어졌냐고 물어본다. 결국 현아는 참지 못하고 비옷만 남은 우비의 몸을 껴안고 운다.
미안해.
심술부렸어.

알아.
그야 우린...
무섭냐고 묻는 우비에게 현아는, 어차피 영원한 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니라고 답한다. 현아는 우비를 놓아준 다음 정말 작별 인사만 하러 온 거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우비는 무언가를 가르쳐 주러 왔다고 답하는데, 곧바로 상준을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고 묻는다. 그리고 비 오는 세계 어디에도 현아가 찾는 건 없으니 이대로 모두 사라져 갈 수밖에 없다는 걸, 지난번에 깨달은 거냐고 말한다. 여기에 자신이 먼저지만 결국 모두가 사라지며, 시간을 끌어도 상준과는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고 단정짓는다.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다는 심정은 알겠지만 이대로 가면 무조건 후회한다고.
현아가 당황해하자 우비는 바깥 풍경에 있는 눈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세상이 유지되려면 구조를 떠올릴 인간이 필요한데, 현아가 사라지면 다음 타깃은 상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현아가 최대한 숨겼어도 이미 눈은 상준을 봤으며, 현아가 사라지자마자 상준의 의사와 위치에 관계없이 이곳에 가둘 거라며 소리친다.[185] 현아는 애써 부정하려 하지만 우비는 어차피 자기가 사라지면 알게 될 거라고 전한다. 그리고 곧바로 진흙 비슷한 것으로 녹아버린 다음 피 묻은 발의 촉수에게 빨려버린다.
현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떨고만 있었고, 붉은 글씨 방의 문은 다시 닫혀버린다. 희미해져 가는 비 오는 세계에는 그림자 상준의 머리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림자 상준은 어떻게든 해 보기 위해 달팽이처럼 굴러가기 시작한다.
자.
그러니까 너도 와라.
어딘지는 알 거야.
너도 나니까.

2.1.9. 사건의 지평

《사건의 지평 #1》
마침내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저.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마저도 이룰 수 없다면.
상준은 출구를 열기 위해선 현아가 비 오는 세계에 재진입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이번에야말로 큰 성과를 얻었기에 현아에게 곧장 달려간다. 유리에게 맞은 상처는 현아에게 들키면 그 즉시 유리와 적대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걱정하고 있었다. 병원에 다녀온 결과 큰 이상도 없었고, 상준도 긴 옷으로 상처를 가렸으나, 현아에게 도착하자마자 현아의 눈썰미로 들켜버린다.
상준은 곧바로 해명을 해보려 하지만 현아의 눈이 부은 것을 보고, 현아가 울었음을 확신한다. 현아는 그저 걱정돼서 울었다는 말만 남기고, 상처 감싸 놓으면 안 좋다며 옷을 벗을 걸 요구한다. 그런데 상준은 현아가 불안하면서도 뭔가 결심한 듯한, 이전보다 훨씬 무게감 있는 분위기를 잡은 것에 의문을 가진다. 이후 현아는 뒤에서 꼭 껴안아주고, 덤덤히 상처를 보여달라고 부탁한다. 상준은 장난기도 없이 진지한 현아에 이상함을 느낀다.
현아는 상준이 다쳤으니 한동안 쉴 것을 요구한다. 현아는 이전에 합의를 했어도, 그 때 자신은 상준이 다친 상황에선 탐색을 불허할 거라고 분명 말했다는 걸 강조한다. 그 다음 상준을 침대에 눕힌 뒤 유리를 위해 다친 것이 살짝 심술났으니, 오늘은 하루종일 달래줄 것을 부탁한다. 현아가 이전의 진지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해맑게 놀 것을 요구하자 결국 상준은 들어준다.
상준은 영화를 보기 위해 노트북을 꺼낸다. 상준이 시도해 본 결과 멸망한 세계에선 구형 노트북만이 작동되고, 재생할 수 있는 영화도 한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아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상준의 뺨을 쭉쭉 잡아당기며 칭찬해주는데, 뜻밖에도 현아가 원한 건 '가장 긴 영화'였다. 상준은 동영상을 오랜만에 봐서 신기한 나머지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한 뒤, 장편 판타지 영화를 시청하기 시작한다.
영화를 틀기 전 현아는 상준에게 딱 붙더니, 이런 영화를 잘 모르니 가급적 옆에서 많이 설명해 줄 것을 부탁한다. 상준은 의도를 알 수 없는 요구들을 계속 하는 현아에게 의문을 가지지만, 현아가 행복해보이니 받아들여준다. 그렇게 상준은 영화를 시청하며 설명을 이어나가는데, 현아는 영화보다 설명하는 상준의 얼굴을 주로 보고 있었다.
이후 현아 서브 스토리인 《05: 영화》로 이어진다. 그 외에도 유리 서브 스토리인 《06: 반드시 기억해라.》, 《07: 혼자 두면 죽는.》이 해당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상준에겐 굉장히 즐거운 날이었지만, 이후로 현아가 또 다시 고의적으로 시간을 끌기 시작하고야 만다.

《사건의 지평 #2》
그런 나날이 계속되었다.
정말로, 조금만 더.
현아는 그날을 시작으로 시간을 노골적으로 끌기 시작한다. 갑자기 상준에게 요리를 가르쳐 달라느니[186], 방 탈출 카페 체험하는 느낌을 경험해보자며 병원 세계를 데이트하거나, 그냥 피곤하니 하루종일 뒹굴자거나, 심지어는 스파링 연습을 하자며 상준에게 결투를 신청하기도 했다. 현아는 명백하게 투기 종목 경험이 있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의도적으로 상준에게 실수를 하여 잔부상을 입힌다. 그리고 이걸 핑계로 또 다시 재활을 빙자한 휴식을 요구한다.
상준은 지난번과 달리 출구가 명확히 뚫려있는 상황에서도 시간을 끄는 현아에게 큰 의문을 가진다. 몇 번이고 그 이유를 다시 물어보려 했으나, 그 때마다 현아는 굉장히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했기에 상준도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상준은 도시락을 갖다주면서 유리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유리는 염장질 하러 왔냐며 노골적으로 표정이 썩다가, 아무리 형제의 연을 맺었어도 이런 상담은 아니지 않냐며 핀잔을 준다.[187] 이 때 유리는 상준이 자신을 찬 것에 뒤끝이 남은 건지 상준을 형이라고 부르는데,[188] 상준이 오이 + 민초 + 고수로 범벅된 도시락 보고 싶냐고 협박하자 바로 꼬리를 내린다.
아무튼 유리는 현아가 상준을 먹튀 하려는 여우가 아니라고 가정하면, 그냥 현아가 탈출하기 싫어하는 것으로 결론짓는다. 유리는 자신이 바깥 세상의 기억이 없어서 오히려 학교 세계가 집처럼 편안한 것처럼, 현아도 자기처럼 병원 세계가 편안해진 거로 추측한다.[189]
너무 단순해서 납득이 힘든 추측이라 그런지, 유리는 이제 와서 현아가 우비의 사건을 봐도 소용이 없거나, 다 보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낸다. 비유하면 내키지 않는 유학이나 이민 갈 때 신변 정리한다는 핑계로 고의적으로 시간을 끄는 것으로, 해야 할 일을 인지한 상태에서 최대한 미루는 상황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유리는 지난번처럼[190] 상준이 뭘 해주는 것이 아닌 이대로 있길 바라는 것 같다며, 적당한 타이밍이 오면 현아 쪽에서 신호를 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거 캐치 잘 하지 않냐며 능글맞게 바라본다. 그 말을 듣자 상준은 유리가 요즘도 스토킹 하는지를 의심한다.
마지막으로 유리는 현아와 지내는 게 좋다면, 그냥 힘 빼고 예쁜 사랑하라며 조언한다. 상준은 유리 말이 지당하다고 느꼈기에, 굳이 현아의 행동을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단순히 이대로 가면 선을 넘어버릴 거 같다는 걱정만이 남아있었다.
더 이상 함께 있으면
후회하는 건 야.
그러니까...

《사건의 지평 #3》
그리고.
마침내.
평소보다 상준이 늦게 찾아와 뒹굴거리던 하루, 현아는 잠이 오지 않는 것처럼 한참을 뒤척이다가 살짝 눈물을 닦는다. 그리고 이제 비 오는 세계로 출발하자고 말한다. 현아는 나른하고 힘이 없어 보이는 상태로 상준의 팔을 꼭 붙잡는다. 상준은 무슨 결론에 이르렀냐고 묻는데, 현아는 좀 더 아슬아슬할 때까지 미루고 싶었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정말 나쁜 생각을 할 거 같다고 답한다.
현아가 쓸쓸한 표정으로 말하자 상준은 그 나쁜 생각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러자 현아는 순식간에 나이프를 꺼내 상준의 목에 갖다대며,[191] 대충 이런 거라고 알려준다. 현아는 이후 나이프가 닿았던 자리에 키스를 하고, 이젠 후회없이 나아갈 수 있을 거 같다며 망설임이 사라진 어투로 말한다. 상준은 갑자기 바뀐 현아의 태도에 의문을 느끼며, 키스한 자리가 평소보다 더 뜨거움을 느낀다.
이후 잠시 유리 서브 스토리인 《05: 함께 가는 사람이 나였다면》이 삼입된다.
상술된 서브 스토리 이후, 상준은 유리에게 찾아가 물뿌리개를 뿌려줄 걸 요청한다. 유리는 늑장을 부렸다며 투덜댄 다음[192] 만약 현아가 탈출하면 이곳에 자주 안 올 거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상준은 그건 때가 되야 알 수 있다고 답한 뒤, 혹시 아쉽냐고 물어본다. 유리는 왠지 자기도 나가게 해달라고 징징대면 도와줄 거 같아서 물어본 거라 말한다. 물론 지금은 바깥 세상의 기억이 없기에 굳이 나갈 생각이 없다고. 상준은 언제까지나 돌봐줄 수 없으니 사회로 나올 생각을 하라고 충고한다.
아무튼 상준은 활짝 웃는 유리를 뒤로 하고 현아를 데리러 가기 위해 거울로 향한다. 병원 세계로 향하는 상준의 뒷모습을 보며, 유리는 웃음을 가라앉히고 혼잣말을 한다.
탈출하고 싶다고 하면.
도울 수 있는 게 오빠밖에 없다고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도와주러 오겠죠.
몇 번을 실패해도, 성공할 때까지 계속 오겠죠.
그러면 기회가 생기잖아요.
...인정하긴 싫지만.
병원 세계의 횡단보도에 도달한 상준은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고, 그곳엔 학교 세계가 드러난다. 그리고 유리가 이어서 물을 뿌리자, 마침내 비 오는 세계로 연결된다.[193] 상준은 결국 현아와 유리가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음을 떠올리다가, 일단 현아도 유리도 자기가 언젠간 탈출시킬 것이니 생각을 미루기로 한다.
현아는 힘이 빠진 듯한 상태를 보이다, 상준이 손 잡아주면 괜찮다며 활짝 웃는다. 그리고 상준의 손을 그대로 들어 소중하게 가슴팍에 안는다.[194] 그리고 이대로 한계점에 돌입하고 현아는 홀로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이렇게 붙잡고 싶었어.
오랜만에 도착한 비 오는 세계에는 경찰들의 차가 가득했다.[195] 경찰들은 사이비 종교를 포위하고 있었고, 신도들은 경찰에 맞서 시위를 한다. 상준은 신도들 사이에서 우비를 목격하는데, 어째선지 우비는 비옷 아래로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전과 달리 사람이라는 느낌마저 들지 않았는데, 현아는
물러나.
...시체랑은 대화하는 거 아니야.
라고 말한다. 그 때 우비가 상준과 현아를 보고 입이 찢어게 미소짓더니, 이젠 현아 차례라며 섬뜩하게 웃는다.[196] 현아는 이제와서 시간을 끌 생각은 없다며 빠르게 나아가고, 결의에 찬 듯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상준은 그런 현아의 표정이 왠지 슬프다고 느낀다.

《사건의 지평 #4》
변해버린 세상에서.
빗속을 뚫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만큼은 그래서는 안 됐잖아.
상준과 현아는 종교 건물의 담을 타고 진입한다. 내부에는 그림자들이 분주하게 현금 등을 숨기고 있었고, 개중에는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그림자가 비밀 통로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현아는 빠르게 그림자들을 가로지르는데, 그 순간 비교적 형체가 있는 그림자 하나가 현아를 가로막는다. 상준은 형체가 있는 그림자는 이 사건의 주요 인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현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즉시 나이프로 그림자를 도륙해버린다. 상준이 나서겠다고 하지만 현아는 이건 자신의 일이며, 과거의 사건이라 현실에는 영향이 없을지 몰라도 기분은 시원해질 것이라며 거절한다. 이후로도 현아는 사건의 주요 인물로 추정되는 그림자들을 차례차례 죽여나간다. 상준은 현아가 복수라기엔 감흥 없는 표정을 짓는 것에 이상해한다.
다섯 번째 그림자를 도륙하자 상준이 힘들면 안아주겠다고 제안하는데, 현아는 말이 끝나게 무섭게 꼭 안긴다. 안긴 상태에서 살짝 떨더니 다시 냉정한 상태로 돌아와 앞서가기 시작한다. 상준은 우비와 현아 사이에 있었던 일을 궁금해하나, 과거의 사건과 관련이 없었던 자신은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물어보지 못하고, 현아를 뒤따라가며 홀로 슬퍼한다.
가장 큰 건물로 진입하자 수많은 그림자들이 모여있었다. 처음에는 그림자들은 광신도답게 경찰에 저항했으나, 경찰이 이곳에서 벌어진 죄목들을 나열하기 시작하고, 그 중에서 임금 체불이 언급되자 그림자들이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 때 피 묻은 발이 수척한 여인을 비롯한 몇 명의 신도들과 함께 자그마한 관 하나를 들고 나타난다. 그 모습을 본 현아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나 상준에게 저지당하고, 피 묻은 발은 동요하는 신도들에게 기적을 보여주겠다며 퍼포먼스를 벌이기 시작한다.
관 뚜껑이 열리고 그 안에서 피투성이 비옷을 입은 우비가 나오자[197], 현아는 지난번처럼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해 고통스러워 한다. 피 묻은 발은 우비를 흔들기 시작하고, 여러 번 흔들자 기절해 있던 우비가 기침을 하며 깨어난다. 그리고 신도들은 우비를 보고 죽은 사람이 부활했다며 환호한다.
상준은 기절했다 깨어난 걸 부활로 받아들이는 신도에 어이없어 하는데, 현아는 신도들도 가짜라는 걸 인지하고 있으나, 저기 편승해서 돈을 벌 생각에 모른 척 하는 거라고 경멸을 담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현아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냐는 상준의 질문에 긍정하며, 떨리는 손으로 헤드셋을 주며 이제 시작이니 준비하라고 충고한다.
그 순간 문이 부서지고 경찰들이 들이닥친 뒤 경찰들이 신도들을 마구 체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피 묻은 발이 촉수를 마구 휘둘러 그림자들을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현아가 말하길 원래 여기서 전원이 체포되고 우비가 병원으로 옮겨지는 게 정사나, 피 묻은 발이라는 강력한 트라우마가 이후 기억으로 진행하는 걸 틀어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상준은 자신이 모르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해주는 현아에 의문을 가진다.
이제 상준이 해야 할 일은 피 묻은 발에게서 우비를 빼오는 것이다. 피 묻은 발의 얼굴을 보면 무력화되는 건 여전했기에, 현아는 흔들리지 않게 개조된 헤드셋을 걸어준다. 출발하기 전, 현아는 아까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상준은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본 현아에 놀라고, 현아는 자신의 심정을 고백한다.
난 네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어.
행복해. 널 만난 이후로... 매일매일이 더더욱.
마지막까지, 함께해 줄 거지?

(상준: 예!!)

...아, 진짜 사랑해.
현아가 등을 떠밀자 상준은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한다. 피 묻은 발에 근접할 때 쯤 눈을 감고, 현아가 헤드셋으로 내리는 지시에 따라 촉수 공격들을 피해나간다. 그리고 피 묻은 발의 양다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내쳐버린다.
파일:그세계20.png
위협적인 촉수가 많다 한들 하체는 평범한 사람의 다리였으며, 완력도 일반인보다 한참 이하였기에 그대로 상준에 의해 엎어져버린다. 이후 상준의 감정실린 파운딩이 이어지고, 피 묻은 발은 저항 하나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소멸하고 만다. 그리고 현아는 피 묻은 발의 두 번째 최후를 눈을 돌리지 않고, 이젠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지켜본다.
피 묻은 발이 완전히 짓뭉개지자 상준은 수척한 여인에게 안긴 우비에게 다가가, 돌아가자며 손을 내민다. 우비는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활짝 웃으며 손을 맞잡는다. 우비의 마음의 상처인 피 묻은 발이 사라졌기에 기억 재생이 완료되았고, 우비를 비롯한 비 오는 세계의 모든 그림자가 사라진다. 그리고 마침내 한계점으로 추정되는 밝은 빛이 쏟아져나오고, 현아와 손을 잡고 빛 너머로 걷는다.

《사건의 지평 #5》
그녀에게 있어서는 더 나은 선택.
나에게 있어서는...
한계점을 넘은 상준과 현아는 병원 옥상에 도달한다. 구름은 여전히 끼어있지만 상준은 어쩐지 맑아진 분위기를 느끼며, 현아에게 키스와 포옹을 한다. 처음엔 현아가 먼저 달려들지만 상준이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하자 현아는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워 할 거면서 왜 먼저 들이댔냐는 질문에 현아는 너무 슬픈 과거를 봐서 외로워졌다고 고백한다. 상준도 현아의 말에 공감하며, 분위기는 잠시 어색해진다.
상준은 얼버무리기 위해 부끄러워하며 생수 한 병을 건네고, 현아는 한 모금만 마시고 생수병을 돌려준다. 이후 상준은 우비가 원하는 것이 현실을 바꾸지 못해도 그저 후련해지는 것이었다는 게 납득이 안 간다고 말한다. 그래도 현아의 탈출은 성공한 것 같으니 천천히 알아보자며, 현아가 들어온 입구로 추정되는 빛나는 엘리베이터로 시선을 돌린다.
엘리베이터로 가면서, 현아는 상준의 팔을 꼭 껴안고 있었다. 유혹이라기보단 어쩐지 놓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를 보이는 현아를 보며 상준은 살짝 웃음짓는다. 이후 상준은 이곳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이곳이랑 작별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현아는 자신은 그렇지만 상준은 유리를 위해 다시 올 것 같다고, 아쉬운 듯이 말한다. 이에 상준은 멋쩍게 웃는다. 그래도 현아는 지금 상준이 나가는 것이 제일 행복한 결말일 것 같다고 말한다. 상준도 모든 진실을 아는 것이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출구로 나가기 직전, 상준은 현아가 나가면 버려지는 면 하나 없이 온전히 나갈 수 있게 되는 거냐고 묻는다. 현아는 이상한 표현을 쓴다며 천연덕스럽게 웃고, 팔짱을 끼며 엘리베이터로 잡아당긴다. 빛 너머에는 낯익은 도심의 공기가 퍼지고 있었으며, 이대로 통과하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란 확신을 가진다.
현아 씨의 저 말만큼은 분명히 진심이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나만은 가장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
적어도 현아 씨는 그렇게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그건 현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결말과는 천만 광년 떨어져 있었지만.
지금 선택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그래도 더 나은 결말.
도움을 청하는데 서툴고
그저 걱정투성이인 그녀의
마지막 거짓말.
그리고 상준은, 모든 것의 진실을 억지로 끄집어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준의 방처럼, 본인이 돌아가기를 거부하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아를 옥상 저편으로 강제로 질질 끌고 간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현아는 손을 뿌리치고 화를 내려다, 상준의 눈을 보고 표정이 굳어진다. 그리고 현아가 천천히 뭔가를 체념한 표정으로 바뀌자, 상준은 마침내 입을 땐다. 그리고 세상과 현아를 둘러싼 수많은 진실들이 마침내 공개된다.
현아 씨.
저, 지금부터 현아 씨한테 질문을 할 겁니다.
2.1.9.1. 진실을 끄집어내다
상준은 진실을 말하기에 앞서, 자신의 추리가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퉁쳐도 내보내도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이며 거절한다. 상준은 괜히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임을 알면서도, 망설이지 않고 진실을 이야기한다.
상준이 밝혀낸 현아의 속내는, 상준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가며 홀로 탈출시키려 한 것이다. 탈출한 상준은 두 번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 없으며, 상준이 사라지는 순간 현아는 영원히 탈출이 불가능함에도 말이다.
현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긴 숨을 들이쉰 다음, 모든 걸 포기한 분위기를 풍기며 지금이 마지막 기회니, 추리한 걸 전부 말해 보라고 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상준은 포기하고 혼자 탈출하는 것과, 그냥 평화롭게 둘이 탈출해서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현실에 한탄한다. 그리고 자신의 추리를 이어간다.
상준은 멸망한 세계는 잊히는 기억들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꿈과 같은 세계며, 기억들은 병원 세계로 진입해 학교 세계를 거쳐, 거울 저편으로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이 사실을 현아는 전부 알고 있었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우비와 유리의 정체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는데,
그리고, 우비유리는...
...
현아 씨. 당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 잊어버린 과거의 자신이에요.
셋 다 같은 사람입니다.
즉, 우비와 유리, 현아는 모두 동일인물이었으며, 모두 현아의 과거 모습이었다.
어느새 상준의 코앞까지 다가온 현아는 상준의 얼굴을 끌어내리더니, 한참 동안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본다. 그리고 상준이 지금 이전에 말한 미친 눈을 하고 있고,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그런 눈에 줄곧 반해 있었다며 웃는다. 상준은 그 말에 생수병을 꽉 쥔다.

《사건의 지평 #6》
진실의 끝.
끝의 시작.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 있어?
어렸을 적의 자기 행동이 지금의 가치관에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거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라는 기분.
현아는 상준의 추리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래서 무슨 결론을 내렸는지를 물어본다. 채점이라도 할 거냐는 상준의 질문에 현아는 그것도 괜찮겠지만, 지금은 그저 상준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말한다.
우선 상준은 우비가 현아와 동인인물인 것을 알아차린 계기는 전체적인 인물상이 같은 것이 첫 번째였다. 우비의 말버릇인 "시러"를 현아도 사용했던 것,[198] 뺨을 잡아당기는 버릇이 같았던 것, 눈 색을 비롯한 외모가 전체적으로 비슷한 것 등. 결정적으로 상준이 비 오는 세계에 처음 진입했을 때 거인화한 우비를 만난 순간, 상준은 괴물을 만났다고 무전을 했으나 현아는 그 괴물이 피 묻은 발이 아닌 우비란 걸 간파하고 대응법을 알려줬다. 즉, 우비가 상준을 마중 나올 거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현아는 그 애도 자신인데 얼마나 외로웠겠냐며 쓸쓸하게 말한다.
유리의 경우 외모가 많이 차이나지만 둘의 눈 색 역시 같았다. 유리는 컬러 렌즈를 끼고 있었기 때문. 또한 현아는 자신이 말해주기 전까지 유리의 존재를 모른다고 말했으나, 정작 이전의 대화를 곱씹어보면 유리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게 드러난다. 상준이 우비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고 말하자, 현아가 교복 입은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니었냐고 되물었기 때문. 현아는 자신의 발언들을 전부 기억해 줘서 기쁘다며 따뜻하게 웃고, 그 어느 때보다도 상준의 몸짓과 얼굴을 하나하나 새겨본다.
상준은 이 모든 건 사소한 결론이나 이곳에서 모험을 반복하고 세계의 구조가 파악되면서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우선 현아가 이 세계에 여러 사람이 들어왔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었으며, 이곳에 올 수 있는 건 오로지 상준과 현아 둘 뿐이었다. 현아가 거짓말을 한 이유는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 알고 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였으며,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고개 숙여 사과한다.
상준은 현아가 이곳에 오게 된 경위와, 자신이 왜 들어올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말한다. 현아가 이전에 돌아가면 다시 올 수 없을 것처럼 느꼈으며, 돌아간 다른 사람들은 이곳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잊는다고 말했는데, 이는 막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바로 빛나는 엘리베이터처럼, 현아가 상준을 그런 방식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기에 무심코 한 말이었던 것이다.
상준은 이어서 멸망한 세계의 정체를 설명한다. 이곳은 세상에서 잊힌 정보가 파기되는 곳이며, 검은 것들은 완전히 잊히고 파괴되는 사람들의 기억이었던 것이다.[199] 검은 것들은 더 많이 잊힐 수록 점점 녹아내리다 최종적으로 거울 저편의 세계로 사라진다. 즉 우비와 유리는 현아의 잊힌 기억들이며, 시간이 지나 그 시절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의 차이가 있는 과거의 현아였다. 현아는 우비와 유리를 전부 좋아해줘서 정말 기뻤다고 꿈꾸듯이 말한다.
일단 우비는, 끔찍한 과거를 잊고 싶다고 생각한 끝에 만들어진 기억이다. 물론 우비의 생성은 전혀 의도치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이 세상의 시스템을 파악하고 나자, 현아는 의도적으로 다른 기억을 잘라내 또 다른 자신을 만들었고, 그것이 유리의 탄생 배경이었다. 굳이 다른 기억을 잘라 유리를 만든 이유는 세계에 갇힌 건 자신이니, 다른 사람으로 분리해 낸 유리라면 탈출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아는 유리가 탈출을 시도할 때마다 소멸될 뻔했다고 알려준다. 애초에 꿈에서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한들 깨어나는 순간 사라지는 건 매한가지기에, 유리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따라서 현아는 바깥에서 잊혀 들어온 사건 하나를 적당히 도용해서, 유리가 자신을 죽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탈출 시도 자체를 안 하게 만들었었다. 이 사실들을 현아는 슬프다는 듯이 머리카락을 쓸며 말한다.
그런데 상준은 한 가지 의문점을 물어본다. 바로 유리가 만약 나갈 수 있다고 해도 현아가 갇히는 건 그대로인데, 유리를 굳이 만든 이유였다. 현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애만 내보내고 싶었다며 반쯤 울상을 짓다가, 빠르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현아는 그럼 자신이 나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본다. 이에 상준은 예전에 홀딱 젖은 채로 상준을 찾아왔을 때 하려던 말은, 자신이 영원히 탈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사실을 밝혔으나, 당시 상준은 이 발언을 '비 오는 세계의 입구가 전부 막혀버렸다.'로 오해했고, 현아는 이 오해에 편승했던 것이었다.
현아가 탈출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비 오는 세계에서 얻어야 하는 파편 중 가장 중요한 기억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현아는 상준의 말이 맞다는 듯 멋지다며 박수를 치고, 상준은 설명을 이어간다. 이전에 현아가 우비의 과거를 보고 절망한 이유는, 단순히 끔찍한 과거를 떠올려서가 아니었다. 바로 탈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억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아는 이전에도 이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는데, 비 오는 세계에 과거 홀로 진입했다가 이를 깨닫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확신까지는 하지 못했으며, 결국 상준과 함께 재진입했던 것이었다.
그럼 상준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왜 자신에게 필사적으로 탈출을 부탁했는지 묻는다. 그러자 현아는 그렇게 하면 의무감을 가진 상준이 또 찾아올 거라 생각해서 그랬다고 답한다. 하지만 이전과 뉘앙스는 좀 다르다고 덧붙인다.
현아는 자신은 사실 현실 세계가 그립지 않다고 밝힌다. 지금 상황에 나와봤자 적응할 수도 없기 때문. 하지만 그럼에도 탈출을 갈망한 건 순전히 상준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상준이 자신이 이곳에 도달하고 함께 있다보니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 거냐고 묻는데, 현아는 부정한다. 왜냐하면 현아는 상준이 멸망한 세계에 진입하기 한참 전부터, 상준을 알았고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사건의 지평 #7》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현아 씨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노을이 지고 어둠이 깔린 배경에서, 현아는 50점 정도만 맞았다고 덤덤히 말한다. 그 이유는 상준이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현아는 당황해하는 상준에게 부끄러운 듯이 사실 하나를 알려준다. 바로 멸망한 세계에 우비나 유리뿐만 아니라 상준의 내면을 반영한 세계도 생겨났었다는 것. 단, 상준이 잠들었을 때만 나타났기에 현아만이 확인할 수 있었다.
현아는 꿈 같은 이 세계에 육체를 가지고 들어올 수 있는 건, 자기나 상준이나 모종의 혼선이 생겨서라고 알려준다. 멸망한 세계에서는 기억이라는 정보가, 현실 세계에서는 육체가 자리잡는데, 상준과 현아는 어째선지 이 둘이 섞여버려 멸망한 세계에서 육체를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상준이 섞여버리게 된 계기를 묻자, 현아는 아마 없어져서 문제가 된 기억이 그것이라고 말한다. 상준은 이에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해 자책한다.
현아는 이 세상의 진실을 정확히 알려준다. 이곳은 본래 세상도 아니었으며, 기억이 파쇄되는 건 하나의 현상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다 현아의 기억을 토대로 구체화되면서 멸망한 세계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세상이 구체화되는 순간, 당시 현아 옆에 있었던 상준도 그녀처럼 멸망한 세계에서 기억이 구체화되었다. 단, 세상에서 잊히고 싶다는 마음의 상처가 있어야 들어올 수 있었기에 상준은 오랫동안 들어올 수 없었다.
아무튼 현아는 이곳에 상준의 내면을 반영한 세계도 생겼고, 혹시 이곳으로 오는 꿈을 꿨냐고 묻는다. 이에 상준은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현아는 아쉬워한다. 그리고 현아는 한숨을 쉰 다음, 상준의 내면세계는 모든 면에서 좋았다고 밝힌다.[200] 이에 상준은 자긴 평범한 대학생인데 그렇게까지 자신을 고평가하는 이유를 묻는다.
본래 사람의 내면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완벽하게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멸망한 세계에 내면이 구현된 상준을 현아는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현아는 10년 가까이 상준의 내면세계들을 관찰하여 바깥 세상에 대한 지식들을 쌓아갔으며, 점점 상준에게 흠뻑 빠지게 되었다고 밝힌다. 단순히 취향 정도가 아니라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신념이 박힐 정도로. 여기에 현아는 만약 상준이 취향이 아니었다면 서로의 세계가 얽히지도 않았을 거라고 덧붙인다.
현아는 순수하게 서로가 잘 맞는다고 이야기하다, 갑자기 표정이 뚝 끊어진다. 그리고 상준만을 바라보던 어느 날,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겨버렸을 때의 이야기를 해준다. 현아는 그 당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나 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간절한 심정을 유지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섬뜩하게 웃는 표정으로 바뀌더니, 최근에 멸망한 세계에서 그 여친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곳은 잊힌 기억들이 오는 세계기에, 전 여친이 나타났다는 것은 곧 그 사람에 대한 상준의 사랑이 식어간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상준의 내면을 잘 파악하고 있던 현아는, 상준의 성격상 억지로 연애를 이어갈 거라 예측했고, 상준이 헤어지도록 살짝 조작했다. 그렇게 상준은 전 여친에게 이별을 통보하게 되었고, 멸망한 세계로 마침내 진입해 현아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는 엄마 때와 달리 이번에는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행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전에 오랬동안 늑장을 부렸던 건 별도의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상준과 있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상준은 홀로 나가서 자신을 잊을 예정이었다고 말하는데, 상준은 현아가 탈출을 못해도 계속 찾아올 것이었다고 외친다. 그런데 현아는 냉정하게, 긴 시간이 지나 상준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등 현생이 바빠져도 올 수 있겠냐고 묻는다. 상준이 반박하려 하지만 현아는 말을 끊은 뒤 슬프게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네가 떠나 버리는 게 아니야.
더 이상 여기 오고 싶지 않게 되어 버린 네가,
의무적으로, 참아 내면서, 그러고도 나한테 계속 오는 거였어.
상준도 이전에 자신의 방문으로 현아를 압박하고 싶지 않았기에, 연애 진도를 탈출 후로 미뤄두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 10년, 20년이 지나도 감정이 바뀌지 않을 거라곤 상준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현아는 상준을 가장 사랑했던 모습을 그대로 기억할 수 있는 지금, 가장 행복한 결말인 것처럼 말해주면서 탈출시키려 했다고 밝힌다. 이것의 현아의 최종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제 시간이 다 지났으니, 현아는 이제 탈출하라고 필사적으로 외친다. 하지만 상준은 같이 탈출하기 전까진 못 나간다고 소리치고, 현아는 상준을 말리다가 자신의 심정을 밝힌다. 바로 상준을 영원히 못 보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니, 상준의 신체 일부를 잘라 평생 간직하기 위해 나이프를 휘두르는 걸 참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생각은 상준이 재차 방문할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던, 첫만남 시절부터 가졌다고 추가로 알려준다. 상준은 그날 필사적으로 빠르게 자신을 내보내려 한 현아를 떠올린다.
그런데 상준은 오히려 자를 테면 잘라 보라며, 현아에게 당당하게 다가선다. 현아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치고, 상준은 자신이 조금만 다쳐도 걱정투성이가 되는 겁쟁이면서 허세 부리지 말라는 뉘앙스로 소리친다. 그리고 자신은 계속 이곳에 방문할 것을 재차 강조한다. 현아는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상준은 오늘은 병실로 내려가서 쉴 것을 권유한다.
그 때 현아가 나른한 표정으로 상준의 소매를 잡는다. 그리고 어깨를 떨면서, 자신이 마지막 기회를 줬는데도 거절했으니 이젠 자신이 붙잡겠다고 말한다. 이제부터 현아는 연극이라도 하는 거마냥 완전 달라진 목소리 톤으로 섬뜩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현아는 얀데레 포스를 풍기며 매우 노골적인 발언들로 상준을 유혹하기 시작한다.[201]
상준이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지만, 현아는 부서질 거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런 자신도 정말 사랑하냐고 묻는데, 상준은 상당히 본인 취향이지만 지금은 정신차리라고 압박한다. 그 때 현아는
아.
자정이네.
라고 무덤덤하게 말한다. 그 순간 모든 구름이 걷히고 눈이 강림한다. 눈은 상준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이후 하늘에서 거대한 손이 내려와 병원 건물을 움켜쥔다.[202] 상준이 눈의 정체를 물어보자, 현아는 바로 알려준다. 눈은 본래 모든 것을 망각시키는 존재였으나, 현아의 심상으로 멸망한 세계가 세워진 뒤로는 이 세계를 그대로 유지시키려 한다고 말한다. 상준은 자정 때마다 현아가 돌려보낸 이유도, 자정이 되면 눈이 세상을 유지시키기 위해 강림하기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현아는 무너지려는 병원을 보며, 아직도 자신이 좋냐고 묻는다. 상준은 이대로 잡혀도 괜찮을 거라 생각할 정도로 좋다고 답하고, 현아는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상준은 웃으면서 안 잡히겠다고 재차 답한 뒤, 생수병을 집어든다. 상준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잡혀도 괜찮을 거라 말한 건, 순전히 현아의 서툰 연기가 너무 귀엽다고 여겨서였다.
한편, 그림자 상준은 거의 녹아버린 몸으로 필사적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와라.
제발.
라면 어딘지 알 거 아냐.

2.1.10. 그녀의 세계

《그녀의 세계 #1》
자정.
자정이 되자 하늘 전체에서 어둠이 내려온다. 어둠에 닿은 건물은 산산히 부서져버리고, 상준은 곧바로 옥상에서 아래로 뛰어내려가기 시작한다. 그 때 하늘에 있던 눈이 순간적으로 타오르더니 현아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거대한 손에 올라탄 현아는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 얌전히 잡힐 것을 요구한다. 그 때 주변에서 대량의 검은 것들이 몰려오고, 상준은 검은 것들을 밀쳐 무너뜨린 다음 다시 아래로 나아간다.
상준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제일 먼저 부서졌던 병원의 옥상이 다시 복구되는 걸 확인한다. 그리고 현아가 보여주고 싶지 않아했던 자정의 경치는, 바로 눈이 세계를 한 번 부수고 재국축하는 것이었던 걸 깨닫는다.
한참 달리던 상준은 이후 정면 길이 가짜 문으로 막혀버린 걸 본다. 오른쪽에 유일하게 부서진 구멍은 5~6 층 높이의 낭떠러지였고, 뒤에선 검은 것들이 쫓아오는 진퇴양난의 상황. 그 때 현아를 태운 거대한 손이 뚫린 천장과 하늘의 눈을 가리며 나타난다. 현아는 도망가지 못할 정도로만 소중하게 잡을 거라며 섬뜩하게 웃는다. 그러니 그만 포기할 것을 재차 요구하는데, 상준은 평소의 현아와 완전히 다른 말투가 마치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 같다고 느낀다.
그 때 어둠이 내뻗어지더니, 상준 뒤에 있던 벽에 구멍이 나면서 길이 생긴다. 누가봐도 그쪽으로 도망가라고 티를 팍팍 내는 통로였기에, 상준은 현아의 의도를 테스트해 볼 겸 통로를 무시하고 낭떠러지로 몸을 날린다. 크게 당황하는 현아를 무시하고 몸을 날린 상준은 가스 배관에 매달린다. 거의 떨어지다시피 배관을 타고 내려가다 눈이 상준을 응시하고, 건물 윗부분이 무너져 배관이 떨어져 나온다. 배관이 크게 기울지만 다행히 반대편 벽이 걸려 멈추고, 상준은 옆 건물 창문으로 몸을 날려 구사일생한다.
파일:그세계21.png
겨우 살아난 상준은 1층으로 빠져나오자마자 건물 파편들이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지다가, 위에서 자신을 덮치려는 현아의 거대한 손이 파편들을 모두 막아주는 걸 확인한다. 상준은 현아가 자신이 건 테스트에 전부 반응해주는 걸 보고, 여유가 없거나 아니면 필사적인 상태라고 짐작한다. 손에 잡히지 않게 골목길로 진입한 상준은 덜 무너진 건물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려는 순간, 눈이 이미 열어 버린 문을 가짜 문으로 바꿔버린다.
순식간에 가짜 문에 빨려들어갈 위기에 처한 상준은, 이후 거대한 손이 건물을 후려친 덕에 목숨을 건진다. 현아의 얼굴은 머리카락에 거리가 멀어서 보이지 않았으나, 상준은 의도치 않은 세 번째 테스트까지 현아가 반응한 걸 보고, 현아가 자신이 생각한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확신한다. 현아는 겉보기에만 상준을 잡아 가두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준을 도와주면서 어디론가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상준은 첫만남부터 현아가 연기하는 걸 꾸준히 봤기에 현아가 거짓말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계속 달리던 상준은 수많은 잔해로 이어진 틈으로 진입하고, 그 끝에 출구 엘리베이터가 있는 걸 확인한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로 향해가는 상준을 보는 현아는, 슬픔과 아쉬움, 상실감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침묵하기만 한다. 상준은 자신이 탈출구를 쓰려면 명백하게 나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기에, 현아가 실수로 자신을 놓쳐버리는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몰아붙이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스케일이 지나치게 큰 점은 처음부터 의문이었고, 상준은 그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또 다시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상준이 향한 곳은 막다른 골목이었으며, 도달하자마자 달리는 걸 멈추고 하늘의 눈을 마주본다. 그 순간 눈이 빛나더니 바로 옆에 있던 건물 하나를 부숴 상준 쪽으로 무너뜨린다. 상준은 확신을 가지고 건물을 피하지 않았고, 그저 웃어보였다. 현아는 상준을 보며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바보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파일:그세계22.png
무너지는 건물을 손으로 막아낸다. 상준은 현아에게 이렇게 쉽게 들킬 거였으면 서툰 연기를 왜 하냐고 말한 뒤, 손과 달리 눈은 현아의 의사대로 움직이지 않는 존재 맞냐고 묻는다. 현아는 침묵하다가 더 이상 말하는 걸 관두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상준은 자신의 결론을 이어나간다. 우비는 사라졌고, 유리도 나가려 하면 사라지고, 이 둘은 현아와 동일인물이니, 현아도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늘의 눈은 이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이며, 현재 눈은 현아가 사라진 뒤에도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붙잡아두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즘 상준은 자고 일어나면 멋대로 멸망한 세계로 진입하니, 이미 현실 세계에 있어도 강제로 눈에게 끌려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현아는 더 늦기 전에 상준의 기억을 지워서 돌려보내고, 눈이 직접 나서기 전에 본인이 집착하다 놓치는 척을 하며 다시는 못 돌아오게 하려 했던 것이다.
현아는 상준의 결론을 듣자 그걸 알면서도 왜 도망치지 않냐고 크게 소리 지른다. 그 순간 눈은 가짜 문과 각종 괴물들로 상준을 포위하는데, 현아는 이들을 모두 막아준다.[203] 그리고 현아는 자신이 다쳤다간 세상이 무너질 수 있기에, 눈이 자신은 건드릴 수 없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상준은 자신이 지키기엔 한계가 있다고 소리치는데, 상준은 붙잡혀서 교체용 배터리가 된들 영원히 같이 살면 어떻냐고 묻는다.
현아는 결국 자신은 사라질 운명인데 영원히 혼자가 되는 소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 때는 놓아주지 못 했으나, 지금은 다 끝났으니 상준이라도 도망치게 하고 싶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상준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반박하고, 그게 정말 원한 게 맞냐고 말한다. 이어서 도움을 청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말과 함께, 진짜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 이에 현아는
...
......원래 세게로 돌아가고 싶어.
너랑 같이.
돌아가서, 평범하게 손잡고, 평범하게 안고, 평범하게 속삭이고,
데이트하고, 여행가고, 언제까지나 함께하면서 같이 웃고 싶었어.
하지만......
어떻게......?
라고 체념한 듯이 웃으면서 말한다. 상준은 까짓것 해보자는 말과 함께, 그 난리를 겪으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생수병을 꺼낸다. 그리고 거기서 물을 흩뿌린 뒤 학교 세계로 향하는 길을 연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하며, 상준은 스마트폰 라이트가 비치는 수면 너머로 뛰어든다. 그런 상준에게 현아는 마지막까지 다치지 말라며 걱정만 한다.

《그녀의 세계 #2》
유리 덕분에 일단은 살았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이 없다.
한편 아무도 남지 않은 비 오는 세계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우비도, 그림자도, 피 묻은 발도 없는 황량한 세계에서 오로지 그림자 상준의 머리만이 홀로 남아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오래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증이 들 무렵, 자신을 필사적으로 붙잡던 우비가 사라졌으니, 검은 것들처럼 거울 저편에서 사라질 운명인 걸 직감한다. 그 때, 누군가가 그림자 상준에게 비옷을 씌워 준다.
상준은 유리가 있는 학교 세계로 진입한다. 뭔가 거대한 것이 뚫고 들어오려는 듯 학교 전체가 진동하다가, 유리가 고여 있던 물을 없애자 마침내 잠잠해진다. 당분간은 못 넘어 올 거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유리는, 살짝 비틀거리며 상준에게 다가가더니, 멱살을 잡는다. 그리고 정말 뒤지고 싶어서 그런 짓을 하냐고 소리치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낀다. 그리고 상준의 추격전을 거울 속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걱정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며 어깨를 떤다. 상준은 자신을 걱정한 유리를 위로한다.
유리를 토닥이던 상준은 잔상처에서 나온 피가 유리의 교복을 적신 걸 확인한다. 조금 울음이 그친 유리는 옷에 묻은 피를 보고 경멸하며 뒤로 물러나지만, 한 손은 걱정하는 듯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상준은 말과 행동이 다른 게 현아와 판박이라고 여긴다.
이후 말없이 벽에 기대 앉고, 유리도 상준 옆에 딱 붙어 앉는다. 그리고 상준 팔을 가져가더니 매우 걱정하며 붕대로 상처를 감아준다. 붕대를 다 감아도 손을 꼭 잡고 돌려주지 않자, 상준은 유리와 겪어보지 않은 미묘한 분위기에 약간 말을 잇지 못한다. 유리는 상준이 쳐다보는 게 부끄러웠는지 갑자기 치료해줘서 이쁘게 보이냐고 띠껍게 군다.
상준은 그런 유리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데 괜찮냐며 걱정한다. 유리는 상준이 아파할 정도로 팔을 세게 껴안더니, 표정을 보여 주지 않은 채로 그런 거나 생각하고 있었냐며 쏘아붙인다. 그리고 자신이 현아와 동인인물이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사실이라 그런지 별 생각이 안 들었다고 한다.[204]
이후 유리는 상준의 계획을 묻는다. 상준은 현아가 잡혀 있다는 생각에 미칠 거 같아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고, 빠르게 상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현아가 이쪽 세계로 온 원인이 된 기억이 뭔지 짐작가냐고 묻는다. 유리는 그 기억이 본래 우비에게 있었으나 사라진 그 기억이 맞냐고 확인하고, 자신이 그 기억은 아니라고 밝힌다. 그 이유로 자긴 현아에게 있어 별로 중요한 기억이 아니여서라고 하는데, 유리는 이를 말하며 축 늘어져 우울해한다.[205]
아무튼 상준은 좀 이동하면서 얘기하자고 권유하며 일어선다. 상준이 일어서자 유리는 한동안 쉬어도 된다며 당황해한다. 그래도 상준이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떠나려 하자, 유리는 잠시 학생들을 소환하려 한다. 하지만 곧바로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이자 창문에 비친 학생들은 사라져버린다. 상준은 자신을 붙잡아두려는 모습이 현아와 똑같다고 느낀다.
상준은 유리와 함께 복도를 걸으며, 애초에 세계의 중심이 병원이라는 것부터 이상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가장 오래된 기억이었기 때문.[206] 이에 유리는 어린 현아가 병원으로 이송된 뒤 정신이 회까닥해서 병원 세계로 진입했고, 이러면 중심지가 병원인 게 설명된다고 야매결론을 내린다.[207]
상준은 현아가 잃어버렸으며 현재 찾아야 하는 기억이 만족하는 조건을 나열한다. 바로 이 병원으로 이송된 뒤의 기억이며[208], 사이비에게 겪은 학대보다 더더욱 잊고 싶은 기억이고[209], 마지막으로 상준이 연관된 기억이라고[210] 결론짓는다. 상준의 과거 통학로에 병원이 있었기에, 둘이 예전에 만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유리는 과거 자신과 만난 거 아니냐고 소리치다가, 얼굴을 붉히며 자신이 아닌 현아로 정정한다.
이후 유리는 상준의 말대로라면 현재 현아의 탈출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왜냐하면 이전에 현아도 비 오는 세계를 관찰하면서 기억을 떠올렸기에, 그 순간 곁에 있었던 자신이 기억을 현아에게 상기시켜주면 되기 때문. 그런데 상준은 워낙 예전 일이라 기억을 못한다며 당당하게 말하고, 유리는 어이없어하다가 씹새끼라며 욕을 한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상준의 손을 잡더니, 당장은 대책이 없지 않냐고 묻는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면서 몸을 까딱거리더니, 당분간 여기 머무를 수 있게 해주겠다고 수줍게 말한다. 상준이 거부하려 하자 유리는 기껏 불편한 거 감수해서 도와주려는데 자꾸 뺄 거냐면서 화를 낸다.[211] 이에 상준은 자길 좋아하냐고 대뜸 묻는데, 유리는 미쳤냐고 경멸하려다 순식간에 얼굴이 수줍어진다.
상준은 마음은 고맙지만 지금은 서둘러야 한다고 밝힌다. 왜냐하면 자신이 잊어버린 그 기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유리는 너무 오래 전 기억이니 다른 검은 것들마냥 진작에 소멸됐을 거라며 반박하지만, 상준은 그 기억을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가 붙잡아두고 있고, 다른 자신의 기억들과 융합되어 괴물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 정체는 바로 그림자 상준으로, 상준은 다시 그 횡단보도가 있는 교차로로 안내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녀의 세계 #3》
모든 것의 교차점.
그리고, 그런 면까지 똑같은.
상준은 교차로로 나가 횡단보도에 물을 뿌린다. 모두가 사라진 비 오는 세계였지만, 그림자 상준이 아직 남은 덕에 아직 소멸되지 않은 상태였다. 유리는 물을 뿌리는 상준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뒤돌아 서 있었고, 상준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상준이 호칭을 유리에서 현아로 바꾸자, 유리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며 부끄럽다는 듯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상준은 무언가를 부탁하기 위해 유리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부탁을 하기 전, 자신에게 할 말 있지 않냐고 묻는다. 유리는 손을 쳐낸 뒤 시치미를 때며, 중요한 일 하러 갈 것인데 자신에게 신경 쓸 시간 있냐고 말한다. 상준은 울기 직전의 상태인 유리에게 이제 와서 또 속이려 드는 거냐고 답하고, 유리는 처음엔 대답을 거부하다 상준이 계속 부탁하자 그렁그렁한 눈으로 대답한다.
오빠.
나, 오빠 좋아해요.
상준은 미리 알고 있었다고 답한다. 유리는 현아를 좋아하지 않냐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데, 상준은 어차피 동일인물이니 딱히 상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유리는 쓸쓸한 표정으로 정말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오빠는... 내 정체가 뭐라고 생각해요?

(우비와 똑같은, 현아 씨 기억의 일부.)

맞아요.
그런데...
대체 무슨 기억?
유리는 상준에게 점차 다가온다. 그리고 자신은 우비와 달리, 현아는 한번도 자신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즉, 현아는 유리 나이대에 학교를 다닌적이 없었으며, 유리는 완전한 상상 속 기억을 잘라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덧붙여 유리가 현아를 잘라 냈을 때 당시 이후로 마주하지 못한 것도, 현아에게 유리는 순수 상상 속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현아 입장에선 정말로 유리가 보이지 않았던 것.
이전에 현아가 자신을 잘라내서 탈출을 테스트해보려 한 것도, 자신이 제일 필요없는 기억이라 그런 거였다며 울부짖는다. 그리고 공허한 눈으로 상준을 올려다보더니, 아까 자신에게 하려던 부탁이 같이 나가는 거였냐고 묻는다. 상준이 긍정하자 유리는 자신은 현아의 기억 속에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 정말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는다. 그래서 이번이 정말 마지막 만남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추억을 만들고 싶어 붙잡아 두려 했던 거라고 밝힌다.
하지만 자신의 사심을 위해 본체를 방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서글픈 표정으로 상준 뺨에 키스를 한 다음, 현아와 탈출하면 행복하게 살고, 가끔 자신을 떠올려 줄 것을 부탁한다. 상준은 울음으로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유리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린다. 유리가 이 상황에서 분위기 깨냐며 화를 내자 상준은 유리를 껴안는다.
그리고 유리의 오해와 달리, 현아는 정말로 유리를 탈출시키고 싶어했다고 말한다. 그 증거로 유리가 자신을 죽은 사람이라 믿게 만든 것을 든다. 정말로 필요 없는 존재였으면 굳이 현실의 사건까지 도용하는 노력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 이에 유리는 혼란에 빠져 허둥대다가, 현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넌, 현아 씨의 망상이 아니라
이상이니까.
그 무엇보다도 바라고, 동경하고, 꿈꿨던 모습이니까!
상준은 유리가 현아의 상상이 아닌 이상이라고 알려준다. 유리는 자신은 평범한 사춘기 애새끼인데 뭐가 부족해서 자신을 동경하냐며 황당해한다. 하지만 현아가 부러워한 점은 바로 그 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도 않고, 엄마가 사이비에 빠지지도 않고, 거기서 학대를 당하지도 않고, 혼자 멸망한 세계에 갇히지도 않은, 그저 평범하게 자라 사춘기를 보내는 '동네 학생 현아 양'의 모습을 바란 것이었다. 그리고 현아는 유리 만큼은 자신의 트라우마들로부터 더럽혀지지 않게 지키고 싶어했다.
유리는 자신은 현아와 하나도 안 닮았다고 소리친다. 이에 상준은 현아가 바깥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무작위로 접했기에, 유리에겐 학생의 특징이라 할 만한 것들이 일관성 없게 갖다 붙은 거라고 설명한다. 근처 학교의 교복, 컬러 렌즈, 고데기, 탈색 등으로 현아와 최대한 다른 외모를 가졌지만, 성격 면에선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212]
유리는 컬러 렌즈를 빼고, 현아와 상당히 비슷한 눈으로 상준을 바라본다. 상준은 유리를 현아라고 부르며, 서로 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어땠을 거 같냐고 묻는다. 유리는 뭔가 결심한 듯 까치발을 드는데, 그 순간 눈이 거의 진입에 성공한 건지 세상이 진동한다. 상준은 저 멀리서 눈이 비집고 들어오려는 걸 보고, 이런 상황에서 자길 잡아두려 했던 거냐고 묻는다. 그런데 유리는 상준 때문에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거라며,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듯 부끄럽게 웃는다.
왜냐하면 학교 세계가 붕괴한 건 지금 유리가 현아에게 다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 학교 세계는 제 역할을 다 했으며, 더 이상 한계점이 아니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물이 뿌려진 바닥을 제외한 모든 세상이 사라지고, 어느새 유리와 상준은 교실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파일:그세계 유리4.png
상준은 현아가 유리를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본체에게 돌아갈 수 있냐고 묻는다. 이에 유리는 기존에 상준이 현아에게 파편을 건네줬던 걸 언급한다. 이후 자신이 파편이 되겠다는 듯 몸이 수많은 파편들로 변해가고, 진짜 자신에게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한다. 유리는 처음으로 자신 앞에서 글썽이는 상준에게 사라지는 게 아니니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이미 상준 몸에는 현아가 남아있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한다. 너무 작은 기억이라 숨어있지만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순수하게 웃는다.
상준은 거의 사라진 유리를 껴안는다. 그리고 유리는
이 모습인 채로... 오빠랑 더 놀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정말로 나가게 되면
현아랑 진짜 사랑을 해 줄래요?
그럼 나도 거기 있을 테니까.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라고 말한다. 동시에 유리 머리에 있던 붕대가 사라진다. 이번에야 말로 다시 감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며[213], 유리는 상준에게 완전히 흡수된다. 상준은 자신을 노려보는 눈을 향해 중지를 날리면서 다시 한번 한계점을 넘는다.

《그녀의 세계 #4》
빗속에서 사라져 가는 나에게
비옷을 씌워준 것은...
상준은 모두가 사라진 채 조금씩 녹아내리는 비 오는 세계에 도달한다. 하염없이 세계를 걷다가 상준은 마침내 끝에 도달한다. 거기엔 비옷으로 감싸진 그림자 상준의 머리, 그리고
파일:그세계 우비2.png
한복 차림의 우비가 있었다. 다시 부활한 우비는 신기하다는 듯 양손을 들어 손가락을 움직이고, 한복 치마를 들어 재질을 확인하고, 빙그르르 돈다. 그리고 상준을 보고 어른스러운 어조로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냐고 묻는다. 우비는 한동안 알쏭달쏭한 말을 하다가, 과거 자신에게 식칼로 찔리지 않았냐고 묻는다. 상준이 찌른 사람이 너였냐고 묻자, 우비는 정확히 말하면 그 식칼이 자신이었다고 답한다. 그 식칼은 사라지기 전에 남긴 미약한 기억 조각이었다고.
즉, 식칼의 정체는 현아가 잊어버린 기억이었다. 우비는 사라지기 직전 이를 상준에게 찔러넣었고, 이 기억은 유리의 기억을 빌려 한복을 입은 우비의 모습으로 현현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 오는 세계에 그림자 상준을 만나러 온 상준을 만나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도와준다. 유리는 전혀 다른 기억인데 가능했던 이유는, 유리는 과거가 확정된 우비와 달리 상상 속 이상이었기에 뭐든지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결론을 말하면 현재 상준의 눈 앞에 있는 우비는 기존처럼 사이비 입단 시절의 현아가 아닌, 사라진 기억의 시점의 현아, 즉 멸망한 세계에 막 들어온 시점의 현아인 것이다.[214]
상준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면 진작 현아에게 나타나지 그랬냐고 말하나, 우비는 이미 다 사라지고 남은 메아리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215] 그리고 자신에게 나타난 이유를 묻는 상준에게, 우비는 머리만 남은 그림자 상준을 건네준다.[216] 상준은 예전과 달리 허약해진 그림자를 보고 의아해하는데, 우비는 떠올려 주던 사람이 없어졌기에 자기처럼 녹아버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를 혼자 기억하려 해서는 없어지고 말아.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해야만 추억이 될 수 있으니까.
라고 말한다.
상준은 자신이 잊은 건 우비가 지키고 있었고, 현아가 잊은 건 사라지기 전에 자신에게 숨은 걸 종합해서, 역시 둘의 기억이 합해져야 사라졌던 기억이 완성될 수 있었던 거냐고 묻는다. 우비는 당시 상준이 모든 걸 목격한 게 아니었기에 상준의 기억만으로는 모자랐다고 알려준다. 이에 상준은 현아의 기억과 연결될 수 있게 만들어준 유리에게 고마워한다.
이제 상준은 기억을 흡수하려면 이 그림자 상준을 먹어야 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우비는 몸에 안 좋으니 좋은 것만 먹으라고 훈계하고, 상준은 이런 면에서 원본 현아랑 많이 닮았다고 느낀다. 그 때 그림자 상준이 식칼 모양으로 변하고, 상준은 그걸로 찔러야 하냐고 묻는다.[217] 우비는 긍정하고, 서로가 잊어버린 부분을 서로가 떠올려보라고 말한다.[218]
식칼이 흡수된 상준은 이후 그림자 상준과 잠시 만담을 나눈다.[219] 그리고 자신의 기억과 현아의 기억이 뒤섞여 합쳐지는 감각을 느끼며, 마침내 현아가 잊어버렸던 기억을 재생한다.
상준은 이후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붉은 글씨가 써진 방에서 눈을 뜬다. 상준은 앞뒤로 달린 문, 주변에 널부러진 각종 기계들을 보고 이곳의 정체를 알아낸다. 바로 사이비에게 구출되고 병원에 실려가던 시점, 구급차 내부에서의 기억인 것이다. 옆에 있던 우비는 무덤덤하게 긍정한다. 그리고 당시엔 눈이 안 떠져서 구급차 내부를 몰랐으며, 그저 아프고 시끄러워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기에, 이런 붉은 글씨 방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설명을 들은 상준은 우비를 꼭 안아주고, 우비는 감사를 표한 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우비를 안아 든 채 상준은 복도를 걷는다.[220] 우비는 상준의 기억에 닿기 전까진 자신이 보여주겠다며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상준은 지금 펼쳐지는 기억은 현아가 멸망한 세계로 들어온 원인이 되었고, 상준이 관련되어 있으며, 현아가 무엇보다도 잊고 싶어했던 걸 알았기에 각오를 다진다.
복도를 걷던 상준은 하나의 병실이 열려있는 걸 확인한다. 그 병실이 지금까지 현아가 아지트로 쓰던 곳인 걸 직감하며, 그곳에 누워있는 과거의 현아를 본다.[221] 현아는 상당한 중상이었지만 사건이 커진 데다 선거 이슈와 섞이는 바람에 상대 후보가 치료비를 지불했고, 그 덕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 현아는 건강을 회복했고, 병원에서의 보살핌도 따뜻하게 받았다.[222] 하지만 엄마가 사라졌기에 현아는 홀로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 병원 밖에 검은 차 하나가 불법 주차되면서 이변이 벌어진다. 그 차에선 우비의 엄마가 내리고 빠른 걸음걸이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탄다. 마침 사과를 깎아주던 간호사가 호출을 받고 병실 밖으로 나가고, 처음부터 몇 호실인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엄마가 들어온다.
누워있던 현아는 엄마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아픈 몸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너무 좋아하는 현아에게 엄마는 도주를 위해 각종 정보들을 묻는다. 현아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갸우뚱거리자 엄마는 혀를 차더니, 종이 가방을 열어서 한복 한 벌을 꺼낸다. 그리고 더 좋은 곳으로 가자는 말에 현아는 굉장히 행복해하며 따라나가려 한다.
파일:그세계23.png
엄마는 현아 팔에 꼽힌 링거를 거칠게 뽑은 뒤[223], 빨간 비옷을 입힌다. 현아는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는지 비옷을 입는 걸 거부하는데, 처음에는 현아를 구슬려서 입히려던 엄마였지만 창밖에서 경적으로 신도들이 재촉하자, 마음이 급해졌는지 강제로 입혀버린다. 현아 역시 비옷을 입지 않기 위해 거칠게 저항하고, 그 과정에서 깎다만 사과 접시와 현아가 좋아하는 한복이 바닥에 널브러진다.
현아는 한복을 구기지 말라고 애원하지만, 엄마는 어차피 태울 것이었다며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나오라며 재촉한다.[224] 엄마가 그 말을 한 순간 이명이 찌잉하고 울리더니, 세상이 한 순간 멸망한 세계로 바뀌었다가 돌아온다. 바닥에 떨어진 한복을 챙기던 현아는,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린다.[225]
파일:그세계24.png
현아가 늑장 부린다고 생각한 엄마는 현아의 뺨을 때리고, 현아는 거칠게 나동그라진다. 엄마는 그런 현아에게 한복을 짓밟으며 다가가 머리채를 잡아당겨 끌어안는다. 억지로 힘으로 끌고 가기 위해 들어 올린 순간, 현아는 간호사가 쓰던 식칼을 들어 엄마를 찌른다. 엄마는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지고, 얼굴에 눈이 하나 더 생긴 듯한 흉터가 난다.[226]
너 같은 건...
우리 엄마가 아니야...
엄마... 어디 갔어...?
돌려줘.
지금 당장 돌려줘!!!!
현아의 비명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엄마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두 번 다시 현아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현아는 엄마가 떠난 것에 충격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걸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 현아는 이후 비옷을 입은 그대로 병실로 나가고, 천천히 병원 복도를 걷는다. 그런 현아에겐 현실 세계와 멸망한 세계가 끊임없이 겹처 보이고 있었다. 도로로 나간 현아는 두 세계가 교차하는 풍경이 보였고, 지나가는 행인들도 현아를 인식하지 못했다.
아지랑이가 타오르는 여름이었다.
아무도 없는 도로가,
정적 너머로 매미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다.
그 때 멀리서 엄마가 타고 온 차를 목격한다. 차 안의 신도들은 경찰에게 들켰다는 말을 하며 다급하게 시동을 걸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완전히 홀로 남은 현아는, 그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정처없이 걷는다. 그 순간 멸망한 세계에 단 한 사람의 뒷모습이 있는 걸 본다.[227]
저 애가 사라지지 않는 것에 이상해 하던 현아는, 신도들이 탄 차가 신호위반까지 하며 과속하는 걸 본다. 그리고 머지 않아 저 아이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자신처럼 마음의 상처를 겪을 거라 확신한 현아는 남자아이를 밀친다.[228] 그 아이가 치이길 바랐는지 안 치이길 바랐는지는 현아 자신도 몰랐다.
넘어진 남자아이는 잠시 짜증을 내는 듯하다, 현아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묻는다. 현아는 잠시 침묵하고[229], 이후 멸망한 세계에 완전히 들어오게 된다.

《그녀의 세계 #5》
기억 나는 것은 그저
구름 너머의 하늘.
다시 비 오는 세계로 돌아와, 상준은 자신의 품에 한복을 입은 우비가 안겨있는 걸 본다. 기억났냐는 우비의 질문에 상준은 긍정하고, 상준은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우비는 그래도 온 게 어디냐며 웃고, 상준은 어른스럽다며 칭찬해준다. 그러자 우비는 다시 정신연령이 어려진듯 자주 듣는 말이라며 폴짝거리기 시작한다.
상준은 무심코 한복이 예쁘다고 말하는데, 우비는 엄마가 만들어준 거라며 자랑한다. 엄마 칭찬에 우비가 기분 좋아하자 상준은 한동안 고민을 하고, 엄마를 아직도 좋아하냐는 질문을 하고만다. 우비는 주저없이 긍정하며, 상준은 그런 일을 겪고도 마음이 안 변한 거냐고 묻는다. 이에 우비는 자신을 학대한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며 섬뜩하게 말한다.
나한테 옷을 만들어 주던 엄마랑,
날 때리고 끌고 가던 엄마는,
역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래도 옷을 만들어 줄 땐 정말로 기뻤는걸.
엄마가 거길 다니기 전까진
나, 정말로 행복했는걸!!

나중에 그렇게 됐다고 해서
그게 전부 거짓말이 될 순 없잖아.
그치만 나중에 그렇게 된 건 용서 안 해.
그거 엄마도 아냐.[230]
우비는 엄마에 대한 생각을 말해준 뒤, 이번엔 상준의 생각을 묻는다. 바로 우비와 유리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냐는 것. 어느새 비 오는 세계와 우비는 사라지고, 눈앞엔 학교 세계와 유리가 나타난다. 상준은 그 순수한 아이가 이렇게 클 리 없다며 농담을 날리고, 유리는 결국 잘 자랐으면 된 거 아니냐고 답한다.
유리가 상준에게 꼭 안기고, 상준은 많이 외로웠냐고 묻는다. 유리가 혼자서도 잘 논다고 답하자 상준은 그게 외로운 거라고 반박한 뒤, 그래도 우여곡절을 겪었어도 멋지게 자라줬다며 칭찬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생활 스토킹한 게 도움 됐냐고 묻는데, 유리는 자긴 잘 모르나 본체도 자기 나이 땐 많이 좋아했을 거라며 수줍게 활짝 웃는다.
유리가 상준의 얼굴을 붙잡고 가까이하자, 어느새 병원 세계의 교차로로 와 있었다. 상준 앞에는 우비와 유리가 있었고, 이 둘은 본체가 잊어버린 기억인 자신들은 이제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그러자 상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둘의 어깨를 붙잡고 해답을 말한다. 바로 현아에게 소중한 사람인 자신이 기억해줬다가 말해주는 것.
이후 한복을 입은 우비는 쪼르르 달려와, 현아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묻는다. 상준은 엄마가 만든 옷을 순수하게 좋아하며, 장난끼 있지만 어른스러운 아이라고 답한다.
유리도 부끄러운 듯이 다가와, 현아의 학창 시절은 어땠는지 묻는다. 상준은 겁쟁이에 솔직하지 못하고 띠껍지만, 뒤에선 몰래 도와주는 상냥한 아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유리와 우비는 동시에, 상준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해주겠다고 한다. 그러자 상준은 이미 말해주지 않았냐고 묻고, 어느새 상준은 병원 옥상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상준의 꿈의 한계선이 부서지고, 유리와 우비가 잊힌 기억에서 추억이 되었고, 그 모든 걸 받아들인 현아는 상준 앞에 있었다.
현아는 울음을 터뜨리며 정말로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주는 거냐고 묻는다. 상준이 해맑게 긍정하자 현아는 어리광부리는 듯한 포옹을 한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트라우마들로 너무 무서웠다며 심정을 고백한다. 상준이 모두 잊어도 괜찮다며 위로하자 현아는 없었던 걸로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상준은 품고 나아가자고 말한 뒤, 하늘에서 노려보는 눈을 응시한다.[231]
눈은 현아가 탈출할 수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본인이 직접 하늘에서 내려오기 시작한다. 현아는 이후 자신의 능력인 거대한 손을 꺼내 하늘 위로 쏘아올린다.
오빠야.

오빠.

자기야.
날 사랑해?

네.

얼마만큼?

이 세상으로는 못 담을 만큼.
현아는 장갑을 벗어던진 손으로 거대한 무언가를 잡는다.[232] 그리고 눈이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마침내 깨닫는다. 왜냐하면 이곳은 현아 혼자가 아닌 상준과 같이 꾸는 꿈이었으며, 기억이 갈라지지 않은 두 사람이 동시에 나가려 하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233] 그렇게 휘둘러진 쇠 파이프로 세상이 반으로 갈라지고, 병원과 학교, 산속은 모조리 소멸되어 흩어져나간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감각을 느낀 상준은 어느새 자신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중심을 잃고 떨어지던 도중 현아가 상준의 손을 붙잡는다. 상준은 현아가 잡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안심한다.
파일:그세계 현아4.png
현아는 파란 하늘을 보며 그 어떤 하늘보다도 예쁘다는 소감을 남긴다. 그 이유는 단순히 파래서가 아닌, 현실에서 같이 보는 첫 번째 하늘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 안 믿기다는 듯 현아는 정말 우리 모두 현실로 돌아가는 거냐고 묻는다. 상준이 긍정하고, 현아는 이후 아직 무서워서 얘기 못 한 게 있다고 밝힌다.
바로 꿈과 같은 세계에서 만난 인연이기에, 현실로 돌아가는 순간 서로를 잊고 이별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상준은 현아의 손을 꼭 붙잡고 같은 세상으로 향하는 것이니, 분명 가까운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만약 기억을 잃게 되면, 상준은 이번엔 현아가 자신을 찾아줄 것을 부탁한다. 여기에 상준이 자신도 같이 찾겠다는 말을 덧붙이자, 현아는 활짝 웃으며 상준의 모든 걸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어디에 있더라도 이번엔 반드시 찾아갈 것을 약속한다.
그렇게 서로 조금이라도 기억하기 위해 애쓰던 중, 마침내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상준은 현실 세계의 병원 옥상에서 눈을 뜨는데, 주변에 현아는 없었다. 상준은 아직 현아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나, 점점 현아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소멸되어간다. 그렇게 우려하던 대로 망각의 순간을 맞으려 하는 순간, 옥상을 박차고 현아가 등장한다.
다시 현아를 기억해 낸 상준은 가깝다고 한 자신의 말이 맞았다며 웃고, 현아는 자긴 상준을 찾는데 아주 오래 걸렸다고 답한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상준의 품으로 뛰어든다.

2.1.11. 에필로그

《에필로그》
추억이 되도록
현아가 탈출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시점, 상준은 떨리는 마음으로 카페에서 현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하게 메신저를 기다리지만 현아의 폰은 오늘 개통되는 상황이라 연락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이후 도착한 현아는 진지하게 상준 앞으로 다가와서, 마침내 주민등록증이 나왔다며 좋아한다. 둘은 얼싸안고 환호성을 지르나 주변의 눈치에 도로 앉았다.
잠시 탈출 직후와 에필로그 사이에 있었던 일이 설명된다. 탈출하자마자 마침내 돌아왔다는 기쁨과 방금 전 주고받은 따뜻한 감정 때문에, 현아는 옥상에서 재회하자마자 수위 높은 애정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물론 경비에게 끌려가서 혼나게 되고, 상준은 부끄러워하는 현아에게 여긴 현실이라는 걸 강조한다.
그런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현아의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기 때문이다. 실종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국가 행정 서비스를 받은 적이 없다면, 거주 불명 등록을 거쳐 주민등록 말소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상준도 현아도 몰랐다. 결국 둘은 현아가 10년 전 병원에서 실종된 현아 양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사방을 뛰어다녔고, 결국 탈출이라는 업적이 무색하게 다시 대모험을 했었다.
국가 기관, 현아가 다녔던 병원, 법조인을 찾아다녔으며, 하필 담당 공무원으로 미심쩍은 사람을 배정받아 더욱 뺑뺑이를 돌았다고 한다.[234] 그리고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현아의 10년 간 행방을 설명하기'는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았고 여기에 약간의 편법까지 써 가면서, 마침내 현아의 주민 등록을 복원했다고.
현아는 자신도 이제 폰도 개통되고 계좌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한다.[235] 그리고 앞으로의 데이트 계획을 신나게 짜다가, 현아는 번호 공유를 위해 폰을 건네준다.
상준은 현아가 비밀번호를 푼 폰을 아무런 경계 없이 건네주고, 개통된지 얼마 안 된 폰에 대량에 스팸 문자가 뜬 걸 본다. 이후 자신을 멸망한 세계에서 구해 준 것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현아에게 사회성을 키워줄 생각을 한다. 이후 서로 전화가 연결되자 현아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상준이 현아의 옆자리로 이동하자 가슴팍에 기댄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온 뒤로 감정 표현이 격해져서 누나로서의 위엄이 흔들린다고 토로한다. 이에 상준은 있는 걸로 해 드릴 테니 걱정 말라고 답한다.
상준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왜냐하면 엄청난 반전이 하나 있었기 때문인데, 바로 현아는 상준보다 연하였던 것이다.[236] 이에 현아는 멸망한 세계는 시간의 흐름이 달라서 실제 먹은 나이는 누나가 맞다고 필사적으로 얘기했고, 상준은 하는 수 없이 누나 대접해주고 있는 상황.

현아는 어린 애들이 섞여서 그런 거라고 변명하고, 상준은 그런 점까지 모두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그 순간 상준은 장식용 창문에 우비와 유리가 있는 걸 확인하고, 그 두 사람은 상준에게 들켰다는 걸 알자마자 바로 도망가버린다. 상준이 설명을 요구하자 현아는 어차피 우리 둘에게만 보인다고 허둥대며 말한다. 그리고 곧바로 키스를 한 뒤 지금 유리랑 우비 생각이 나냐며 얼버무린다.
이후 현아와 상준은 카페를 나서 데이트를 하기로 결정한 뒤, [237] 현아의 옷을 맞춰주기 위해 거리로 나간다. 이후 상준이 이런저런 소회를 남기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이제 눈앞에는 현실이 펼쳐져 있었다.
잊고 싶었던 슬픈 과거도 아니고,
지켜내고 싶었던 꿈과 이상도 아니다.
잘되지 않을 거라고도, 잘될 거라고도 확신할 수 없지만,
그저 품고 나아갈 뿐.
하지만...
별로 상관없다.

자.
가자.
손잡고.

계속 함께할 수만 있다면,
잊지 않고 언제까지나 서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네 현아 씨.)

어느 쪽이건
그건 추억이 될 테니까.

2.1.12. 정리와 복선

사건의 지평 ~ 그녀의 세계 파트에서 밝혀지는 정보의 밀도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한 번 흐름을 놓치면 스토리 이해가 힘들 수 있다. 따로 복선들과 종합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특히 초반부에 크고 작은 복선들이 상당히 많았다.
2.1.12.1. 스토리 해설
멸망한 세계의 정체
멸망한 세계는 세상에서 잊힌 기억들이 파쇄되는 장소다. 검은 것들은 현실에서 잊힌 사람들의 기억이고, 점점 더 많이 잊힐수록 검은 것들은 녹아내린다. 최종적으로 검은 것이 가짜 문으로 들어가서 죽는 현상도 기억이 파쇄되는 과정이다. 기억이 파쇄되는 장소라 그런지, 이곳에 존재하는 것들의 형상은 철저히 사람들의 내면을 반영한다. 검은 것들이 사람 형상을 띈 것도, 사람들이 잊은 기억이기 때문.
본래는 기억이 파쇄되는 것엔 별도의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나, 현아가 이곳으로 진입하기 직전 그녀의 내면이 반영되어, 폐허가 된 시내 형상을 갖추게 되어 멸망한 세계가 탄생했다. 그리고 학교 세계가 학교 형상인 이유도 학생인 유리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며, 비 오는 세계 역시 우비의 과거를 반영한 것이다.
멸망한 세계는 기본적으로 상준과 현아만이 들어올 수 있다. 애초에 기억들만이 방문하는 공간이라 육체를 가진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데, 이 둘은 특정 조건을 만족했기에 육체와 기억 간의 모종의 혼선이 생겨 가능했던 것. 그 조건이란 마치 기억처럼, 세상에서 잊히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발휘되는 것이다. 작중에서 현아는 엄마를 찌르고 도피하다가, 상준은 전 여친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도망치다가 해당 욕구를 크게 갖게 되었으며, 그대로 멸망한 세계에 진입한다.
이 조건을 상준과 현아만이 쓸 수 있던 이유는, 멸망한 세계가 생성될 때 현아 뿐만 아니라 상준의 내면 역시 반영했기 때문이다. 상술되었듯 멸망한 세계는 현아에 의해 생겨난 세계다. 현아가 멸망한 세계에 진입하기 직전 근처에 마침 상준이 있었고, 상준 역시 세상에서 잊히고 싶다는 욕구를 갖기 직전의 상태였기에, 둘의 내면이 세계의 생성에 먼저 반영되었다. 왜냐하면 상준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세상에서 잊히고 싶다는 욕구를 가질 예정이었기 때문. 하지만 현아가 상준을 밀쳐 그 미래를 막아내자, 상준은 해당 욕구를 갖는 미래에서 벗어나 현아만이 멸망한 세계로 먼저 진입한다.
작중에서 멸망한 세계는 꿈에 자주 비유된다. 이는 꿈이 기억을 정리하고 처리하는 기능이 있어서인데, 멸망한 세계 역시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 상준은 마냥 세상에도 뇌와 같은 메인터넌스가 있다면, 멸망한 세계는 세상이 꾸는 꿈일 수 있겠다고 여긴다.
실제로 꿈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것인지,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어도 눈치채기까지 오래 걸리거나, 탈출하면 이곳의 기억을 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곳이 꿈 자체인 것은 아니고, 단순히 꿈과 비슷한 특성이 있을 뿐이다.
또한 멸망한 세계와 내부 구역들의 출입구는 대상의 의지에 따라 열리고 닫힌다. 탈출 조건을 갖춘 대상이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출구가 열리지만, 반대로 의지가 없으면 굳게 닫힌다. 전자의 예시로는 최종장에서의 유리가, 후자의 예시로는 비 오는 세계로의 출입을 거부한 현아 등을 들 수 있다.

현아의 과거
현아는 아빠와 사별한 엄마 밑에서 홀로 길러졌다. 한복을 손수 만들어주는 자상한 엄마 밑에서 자라 행복했으나, 어느 날 엄마는 친척의 권유로 사이비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 피 묻은 발에게 설교를 당하지만 정상인이었던 엄마는 오히려 설교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빠져나온다.
이 일로 피 묻은 발에게 원한을 사게 되고, 피 묻은 발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신뢰가 깎일 거라 생각한 것인지 그녀의 딸을 차로 치어버린다. 현아는 크게 다치진 않았으나 엄마는 이 과정에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타격을 입고, 결국 그의 의도대로 광신도로 타락해버린다. 현아를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게 하고 강제로 산 속의 사이비 시설로 끌고 와서 학대를 하기 시작한다.
현아는 그 과정에서 피 묻은 발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다. 피 묻은 발은 구타로 기절한 현아에게 투명한 비옷을 씌워주는데, 투명했던 비옷은 현아의 피로 물들어 붉은색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직후 경찰이 사이비 본거지를 처들어오고, 피 묻은 발을 포함한 신도 대부분이 체포된다. 현아도 이 과정에서 구출된다.
사이비가 발각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신도 중에 정치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선거철이었고, 신도 정치인의 상대 후보가 해당 정치인을 조사하던 중 사이비를 알아낸 것. 상대 후보는 민심을 위해 중상을 입은 현아에게 치료비를 전액 지불했고, 이 덕에 현아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현아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건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복했으나, 여전히 엄마를 그리워했다.
사실 엄마는 경찰이 사이비를 침공할 때 먼저 도주한 상태였으며, 현아를 데려가기 위해 병원으로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현아를 강제로 끌고 가는 과정에서 폭행과 폭언이 있었고, 다급한 나머지 현아가 좋아하는 한복을 짓밟는 건 물론 아예 태워버릴 예정이었다는 말까지 한다. 여기서 현아는 믿었던 엄마가 완전히 타락했다고 생각해 정신이 붕괴해버린다. 그리고 처음으로 세상에서 잊히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다.
그리고 엄마의 학대를 참다 못해 옆에 있던 식칼을 주워[238] 엄마의 얼굴을 찌른다. 부상을 입은 엄마는 그대로 도주했으며,[239] 현아는 잊히고 싶다는 욕구가 극에 달한다. 여기서 사람들의 기억이 파쇄되는 '현상'이 현아의 내면을 반영해 '세계'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 멸망한 세계가 구축되기 시작한다.
정처없이 병원 밖을 걷던 현아는, 멸망한 세계에 자신만이 아니라 상준도 있음을 확인한다. 멸망한 세계가 반영한 내면은 현아 뿐만 아니라 상준의 것도 있었는데, 왜냐하면 상준 역시 자신처럼 멸망한 세계에 진입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상준은 머지 않아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240], 자신처럼 세상에서 잊히고 싶다는 욕구를 가질 미래가 있었던 것이 원인이다.
이 미래는 예정대로 일어날 것이었고, 멸망한 세계도 구축되면서 상준과 현아 둘의 내면을 모두 고려해서 만들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현아가 상준을 밀쳐 교통사고를 당하는 미래를 막아내자, 결국 현아 혼자 멸망한 세계로 먼저 진입하게 된다.
현아는 멸망한 세계에 갇혔으나, 세상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기억들과, 멸망한 세계에 반영된 상준의 내면을 보고 자란 덕에 사회성을 갖출 수 있었다. 이 중에서 집중적으로 관찰한 건 상준의 내면이었으며, 그의 성격이 너무나도 취향이었던 탓에 상준에게 흠뻑 빠지게 된다.
또한 멸망한 세계에 진입한 현아는 자신이 사이비에서 겪었던 끔찍한 과거를 잊고 싶어했고, 실제로 잊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멸망한 세계는 잊힌 기억들이 구현되는 장소기에, 자신이 잊은 과거 기억이 우비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우비는 과거 사이비 시절의 기억을 반영해 멸망한 세계에 비 오는 세계를 구축한다.
여기서 비 오는 세계에 피 묻은 발도 같이 생성된다. 이 인물은 우비 입장에선 강한 트라우마로 남았기에, 끔찍한 괴물의 형상과 강력한 힘을 갖춘 건 물론, 아예 자아를 가지고 이 세계가 유지되도록 우비를 가두게 된다. 본래 비 오는 세계는 현아가 가진 사이비에서의 기억이 재생되는 세계지만, 피 묻은 발이 기억 재생이 완료되기 직전마다 재생 분량을 강제로 리셋시켰기 때문. 결과적으로 우비는 현아를 만날 수 없었고, 비 오는 세계에 갇혀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떠올려주지 않고 잊어버린 현아를 적대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 기억을 우비로 잘라내는 과정에서, 자신이 멸망한 세계로 진입하기 직전의 기억도 같이 잘라낸다. 그 기억엔 자신이 엄마를 찌르고 도주하던 순간이 담겨있었다. 엄마를 찌른 기억은 현아가 가장 잊고 싶어했던 기억이나, 동시에 멸망한 세계에 진입하던 순간이 담긴 기억이기에, 현아가 멸망한 세계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기억이었다.
그런데 멸망한 세계에서 기억은 당사자가 많이 잊을수록 더 빨리 소멸되는 특성이 있었고, 하필 이 특성을 몰랐던 당시 현아는 이 기억을 가장 빨리 잊고 싶어했기에, 결국 해당 기억은 가장 먼저 소멸되어버린다. 결국 현아는 탈출에 필요한 기억이 소멸되어 멸망한 세계에 갇히게 된다.
현아는 처음에는 현실 세계에서 지독한 고통을 겪은 트라우마 탓인지, 탈출할 의지가 없었다. 하지만 상준에게 흠뻑 빠지게 된 뒤로 처음으로 탈출 욕구를 갖게 되고, 뒤늦게 그 기억을 찾아 비 오는 세계로 진입한다. 그러나 자신이 탈출에 필요한 기억이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이렇게 현아는 해당 기억이 사라진 줄 알았으나, 사실 완전히 소멸된 건 아니었다. 우선 해당 기억엔 현아와 상준이 있었기에, 현아 시점에서 본 기억과 상준 시점에서 본 기억 둘 다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두 개는 우비가 현아를 위해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아 시점에서 본 기억은 정말로 소멸되어 메아리만이 남았고, 식칼의 형상을 띄었다. 상준 시점의 기억은 다행히 소멸하진 않았으나, 본체 상준이 그 기억을 잊어버린 탓에 매번 소멸될 위기에 처했고, 우비는 그럴 때마다 상준의 기억을 바느질로 복구해 연명하게 해준다. 참고로 상준 시점의 기억은 본체의 내면을 반영해, 그림자 상준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현아가 탈출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일단 현아 시점의 기억은 메아리만이 남았기에, 만약 현아가 식칼을 흡수한다고 해도 탈출할 수 없었다. 상준 시점의 기억을 활용하려고 해도, 두 사람이 엮인 기억은 서로 떠올려줘야 했기에 결국 현아 시점의 기억이 필요했다.
현아가 이곳에 오래 머물면서, 멸망한 세계에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우선 멸망한 세계가 오래 유지되자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생겨나, 눈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눈은 세상을 유지시키기 위해 자정마다 세상을 부수고 재구축했으며, 현아가 탈출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왜냐하면 세계를 유지할 관측자 인간이 필요했기 때문. 다만 눈이 세상을 리셋해준 덕에, 멸망한 세계에 있던 생필품들도 같이 리셋되어 현아가 생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아도 세상에 적응한 나머지 이곳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후 세계의 작동방식을 깨달은 현아는 일부러 인격 일부를 분리해낸다.[241] 현아는 그 주변에 학교라는 심상을 구현해내고, 컬러 렌즈, 고데기 펌 등을 조합하여 자신이 아는 스테레오티피컬한 사춘기 학생의 인격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유리가 탄생한다.
유리를 탄생시킨 이유는 자신이 나가지 못할 거라면 이상적인 자신, 즉 그 끔찍한 고통을 겪지 않았던 평범한 자신만이라도 현실로 탈출시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 하지만 실존인물이 아닌 유리는 당연하게도 멸망한 세계에서 탈출할 수 없었고, 오히려 탈출을 시도할 때마다 끔찍한 고통을 겪고 기절만 하고 만다. 뒤늦게 이걸 깨달은 현아는 유리가 고통받지 않도록, 현실에서 잊히며 이 세계로 흘러들어온 사건을 적당히 써먹어서, 유리가 자신이 현실에서 살해당한 학생이라고 믿어 탈출 시도 자체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참고로 우비와 달리, 현아는 유리를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비처럼 직접적으로 겪은 과거 기억이 아닌, 상상 속의 기억을 토대로 만든 인물이기 때문.
그렇게 긴 시간이 흘러, 현아는 상준에게 여자친구가 생겼음을 깨닫는다. 현아는 누구에게도 상준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에 체념한다. 하지만 어느 날 상준의 여친 형상을 한 검은 것을 목격하는데, 이는 상준이 그 여친을 잊었다는 걸 의미했고, 현아는 곧 상준이 여친에 대한 애정이 식었음을 깨닫는다.
현아는 상준의 내면을 보고 자라 그의 성격을 매우 잘 알고 있었으며, 상준은 마음이 식어도 억지로 연애를 이어나갈 것이라 예측했다. 그리고 그 예측이 어느정도 들어맞자, 현아는 상준을 구원하는 건 물론, 이쪽 세계로 불러들여 얼굴만이라도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눈앞에 구현된 상준의 내면세계를 살짝 조작한다.
결과적으로 상준은 급발적으로 여친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도주한다. 여친에게 먼저 이별을 통보했다는 사실에, 상준은 특유의 성격상 죄책감을 크게 갖는다. 그리고 후폭풍이 두려워 세상에서 잊히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갖게 되고, 현아에 이어 멸망한 세계에 진입하게 되며 본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본편 해설
현아는 처음 상준이 멸망한 세계로 들어왔을 때 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물론 머지않아 그는 이곳을 떠나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게 뻔했고, 현아는 어떻게든 상준과 더 있고 싶어서 일부러 상준의 탈출에 시간을 끈다. 하지만 상준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이 점점 커지고, 결국 자제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이 상준을 이곳에 가둬버릴 거 같아 빠르게 돌려보낸다. 아예 상준의 신체 일부를 나이프로 잘라 간직할 생각도 했다고.
하지만 예상을 깨고 상준은 다시 돌아오고, 크게 놀란 현아는 계획을 바꾼다. 그리고 상준에게 "자신은 여기서 나갈 수 없으니 도와달라"며 부탁을 한다. 이러면 자기가 알고 있는 상준의 이타적인 성격상, 자신을 구하기 위해 꾸준히 이쪽으로 넘어올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242] 물론 이 의도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탈출에 필요한 기억이 정말로 소멸되었는지 확신을 못했기에 다시 찾아보려는 의도도 있었다.
상준이 비 오는 세계에 홀로 진입해보나 그곳에 자리한 피 묻은 발에 의해 실패한다. 하지만 이후 유리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이 타인에게 기억의 파편을 전해주면 그 인물은 한계점을 넘어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상준은 비 오는 세계의 파편을 주워 현아에게 전해주는데, 현아는 그동안 잊었던 사이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굉장히 고통스러운 기억인 것도 있고 해서 현아는 도망가려 하나, 자신을 떠올려 달라는 우비의 강요에 결국 맞서기로 한다. 이후 우비가 재생하는 과거 기억을 통해 점차 과거를 떠올리나, 과거는 떠올릴수록 괴로웠으며, 무엇보다 우비가 재생한 과거 기억엔 자신이 멸망한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이 담겨있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탈출에 필요한 기억이 완전히 소멸되었음을 확신한 현아는 크게 절망한다. 그리고 더 이상 비 오는 세계에 방문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탓에, 비 오는 세계는 막혀버린다. 현아와 우비는 동일인물이니 비 오는 세계에 현아의 내면도 반영될 수 있었기 때문.
현아는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으나, 상준이 발길을 끊는 걸 원치 않았기에 계속 같은 요구를 하며 현상 유지를 한다. 하지만 탈출은 어차피 불가능했기에, 현아는 상준과 순수하게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으로 고의적으로 늑장을 부린다.
하지만 탈출에 필요한 기억들을 보관하고 있는 우비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왜냐하면 현아의 가장 오래된 기억인 만큼 현아에게 잊히기 직전이었기 때문. 따라서 현아 시점에서 본 기억의 메아리를 식칼 형상으로 바꿔, 상준에게 찔러넣어 흡수시킨다. 그리고 수를 써서 눈이 상준을 당분간 찾지 못하도록 만든다. 참고로 상준 시점에서 본 기억도 계속 복구시키려 하나, 수명이 다 돼가는 탓에 머리만을 복구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마음을 굳힌 현아는 자신이 탈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려 상준의 집에 찾아오고, 아예 이것이 상준과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상준을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하지만 상준은 현아의 고백을 엉뚱하게 오해해버리고[243], 현아는 상준이 발길을 끊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그 오해해 편승해, 다시 현상 유지를 한다.
다만 현아는 처음부터 상준과의 만남이 영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상준이 자신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방문하지만, 몇 년 뒤 상준의 현생이 바빠지게 되면 그 애정이 식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 그리고 마치 전 여친한테 그랬던 것처럼, 애정이 식어버린 상준이 의무적으로 자신에게 찾아와 고통받는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상준과의 추억이 행복으로만 기록된 지금, 상준이 가진 현아와 멸망한 세계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게 한 다음, 홀로 탈출시키는 것을 결말로 생각해둔다.
결국 참다못한 우비는 상준이 유리와의 트러블을 해결하러 간 사이, 현아 앞에 직접 나타난다. 원래 우비는 병원 세계에 진입할 수 없었으나, 그림자 상준이 도운 것은 물론, 현아가 자신을 어느정도 떠올려준 덕에 가능했다. 우비는 현아가 더이상 농땡이 피울 시간이 없을 재차 강조한다.
우비가 나타난 목적은 두 가지였다. 일단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 첫 번째였다. 그리고 현아에게 굳이 탈출에 필요없는 과거를 떠올리게 해 고통받게 한 건, 단순히 심술부린 것이었다며 사과한다.
두 번째 목적은 세계의 눈이 상준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한 것이었다. 현아 역시 기억과 육체가 섞인 몸이기에 언젠간 우비처럼 사라질 예정이었고, 눈은 그런 현아를 대체할 관측자로 상준을 점찍은 상태였다. 다만 눈은 두 사람 이상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일단은 현아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중인데, 마냥 손놓고 있었던 건 아니고 상준이 현실 세계에 있어도 강제로 불러올 수 있도록 작업 해놓은 상태였다.
상준은 유리와의 트러블을 해결하면서 비 오는 세계의 진입로를 발견한다. 세계를 잇는 한계점은 모두 막혔으나, 모든 세계가 맞닿은 단 하나의 공간으로는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244] 하지만 현아는 다시 늑장을 부리는데, 상준을 더 불렀다간 자신이 나쁜 생각을 할 거 같아 비 오는 세계로 진입하기로 한다.
그곳에서 상준은 피 묻은 발을 해치우고, 비 오는 세계에서의 모든 기억 재생이 완료되어 우비는 사망한다. 상준과의 마지막 모험을 마쳤다고 생각한 현아는 이대로 상준을 홀로 돌려보내려 하나, 자신의 계획을 대부분 간파해버린 상준에게 의도를 들키고 만다. 현아는 심정과 계획을 전부 고백한 뒤 그만 가라고 소리치나, 상준은 끝까지 거부한다.
하지만 눈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상준을 잡으려 들기 시작하고, 현아는 상준을 어서 내보내기 위해 연기를 시작한다. 왜냐하면 탈출구 역시 상준이 나가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작동되었기 때문. 현아는 상준을 붙잡아두려는 얀데레를 연기하나 이마저도 간파당하고 만다. 결국 상준의 강요에 의해 현실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심정을 고백하고, 상준은 그런 현아를 돕겠다며 학교 세계로 향한다.
한편 유리는 자신이 현아의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잘라 만든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우비와 달리 상상 속의 기억이므로, 현아에게 필요없는 기억이라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유리에게 찾아간 상준이, 유리는 현아의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따라서 유리는 현아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덕에 학교 세계가 붕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아가 유리를 볼 수 없는 건 매한가지였기에, 상준이 자신에게 파편을 전해줬던 것처럼, 자신이 파편으로 변해 상준에게 흡수될 테니 현아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유리가 상준에게 흡수된 덕에, 우비가 찔러넣었던 현아 시점의 메아리는 유리의 기억을 빌려, 다시 기억의 형태로 현현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정해진 과거인 우비와 달리, 유리는 상상 속 이상이므로 뭐든지 될 수 있었기 때문. 그리고 상준 시점의 기억인 그림자 상준도 성공적으로 유지했기에, 드디어 탈출에 필요한 기억 조각들이 모두 맞춰진다. 상준은 이를 가지고 해당 기억 내용을 확인한 다음, 현아에게 전해준다. 마침내 탈출 조건을 갖추게 된 현아는 그렇게 탈출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에서 유리와 우비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본편에서 밝혀지지 않으나,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되었다. 일단 우비와 유리는 현아에게서 나온 기억이지만, 둘 다 멸망한 세계에서 유리로서, 우비로서 존재했던 경험과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들도 자아를 가지고 저 너머에서 상준과 현아를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2.1.12.2. 복선 총정리
1.현아는 상준의 첫 방문에서, 상준의 신체 일부를 잘라 간직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제력을 발휘해 최대한 빨리 돌려보낸다.

* 《멸망한 세계 #1》: 슬라임을 처치하던 현아가 상준 가슴팍에 나이프를 들이댄 것도 해당 욕구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 《멸망한 세계 #2》: 상준이 방금 현아가 자기를 찌르려 한 것인지의 여부는 모른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데, 결과적으로는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 《멸망한 세계 #2》: 현아는 어떤 병실 문을 아무렇지 않게 닫았다. 아마 이는 현아가 아지트로 쓰는 병실인데, 상준을 빨리 내보낼 생각이라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
* 《멸망한 세계 #2》: 현아는 상준의 손목을 노골적으로 주물거린다. 이는 현아가 상준의 손목을 잘라 간직하고 싶어했기 때문.
* 《멸망한 세계 #2》: 상준이 빛 덩어리의 정체를 묻자, 현아는 그럼 여기 남기라도 할 거냐고, 마치 매달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 《멸망한 세계 #3》: 엘리베이터에 상준이 타려고 하자 현아는 옷자락을 붙잡았다. 상준을 떠나보내는 것에 미련이 남았던 것.
* 《멸망한 세계 #3》: 현아는 상준을 돌려보내기 직전,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자신이 나쁜 생각을 할 것 같다며 슬프게 웃었다.

2.현아는 상준이 멸망한 세계에 방문하기 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 《멸망한 세계 #2》: 머리 괴물을 만나기 직전, 상준이 먼저 앞서가서 자기 대신 문을 열어준 것을 보고 탁한 표정을 지은 것도, 전 여친을 지나치게 우대해주던 버릇이 나온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 《멸망한 세계 #2》: 상준이 전 여친으로 둔갑한 머리를 보고 동요하고 있을 때, 현아가 진정시키자 상준은 자기 심리가 티났냐고 묻는다. 그러자 현아는 넌 얼굴만 봐도 뻔하다고 답했다. 상준의 성격을 미리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증거.
* 《멸망한 세계 #3》: 현아가 상준의 전 여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상준은 처음 본 사이인데 남의 연애사에 왜 참견이냐고 화를 냈다. 그런데 여기서 현아는 뭔가 씁슬한 표정으로 '네 쪽에서 보면' 처음 본 사이가 맞겠다고 중얼거렸다.
* 《우비의 세계 #3》: 상준은 자신의 흉터를 한 번만 보고도 모양과 위치를 정확히 기억해 낸 현아에 의문을 가진다. 이는 현아가 상준의 내면세계로 흉터 정보를 진작에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 《유리의 세계 #5》: 현아는 닭다리를 먹고 감동하며, 상준에게 왜 이제서야 자기 눈 앞에 나타난 거냐며 매우 좋아한다. 밝은 분위기 상 그냥 흘러넘길 수 있는 대사지만, 곱씹어 보면 상준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뉘앙스가 담긴 말이다.

3.현아의 행적과 심리
* 《멸망한 세계 #3》: 상준이 전 여친에게 아무렇지 않게 이별을 통보한 것도, 현아가 상준의 내면세계를 조작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상준이 마치 자신의 등을 누군가가 떠민 것 같았다고 독백했기에 확인사살.
* 《현아의 세계 #2》: 상준이 유리 조각에 찔려 피가 나는 걸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이는 현아의 얀데레 성격을 암시한다.
* 《현아의 세계 #3》: 현아는 상준이 멸망한 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도파민에 중독됐으며,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게 뻔하다고 말한다. 상준도 이에 동의하고 자신이 계속 찾아올 거라는 결론을 내는데, 여기서 이 결론을 단순히 원래 했던 생각을 가지고 낸 것인지, 아니면 현아에게 유도되어 낸 것인지 의문을 가진다. 결과적으로 보면 현아가 계속 여기로 찾아오도록 유도한 것이었다.[245]
* 《우비의 세계 #2》: 유리는 현아를 돕겠다는 약속을 한 상준에게, 상준이 현아의 부탁으로 인해 길들여졌다고 말한다. 현아도 상준을 붙잡아두기 위해 탈출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도 부탁한 것이니, 유리의 말은 정확했다.
* 《기억의 파편 #5》: 비 오는 세계가 닫히고 난 직후, 상준은 내일 올 테니 일단 기다리라고 현아에게 말한다. 여기서 현아는 내일 정말 올 거냐고 재차 물은 뒤 안심하는데, 이는 현아가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 상준이 발길을 끊을까봐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 《기억의 저편 #1》: 현아는 상준을 이곳에 가두려는 얀데레 연기를 선보이는데, 반쯤은 진심이었다고 덧붙인다. 현아의 심리를 알고 다시 보면 납득되는 부분.
* 《기억의 저편 #8 현아》: 상준이 현아의 고백을 듣고 받아들이자 걱정스러워 하던 현아는 안심하며 폭소한다. 여기서 상준은 무게잡고 말하길래 무시무시한 흉계라도 꾸미는 줄 알았다며 농담을 던진다. 하지만 현아는 이 농담을 듣고 슬픈 표정을 짓는데, 이는 현아의 고백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암시한다.
* 현아는 상준과의 결말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두 가지 했다. 이곳에서 한 번 나가면 다시는 못 돌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밝힌 것과, 멸망한 세계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이곳을 나간 사람들은 여기서의 기억을 전부 잊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 발언들이다. 현아는 상준이 두 번 다시 못 돌아오도록 기억을 소멸시킨 뒤 내보낼 계획이었기에, 은연 중에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이는 본편에서 상준도 언급했다.

4.현아의 과거
* 《멸망한 세계 #3》: 현아는 VIP 입원실이 이 건물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현아 본인이 과거 묵었던 병실이기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유리의 세계 #4》: 현아는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그냥 노래도 아니고 옛날 노래라고 나온다. 이는 현아가 어린 시절부터 멸망한 세계에 갇혀 사회랑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 《유리의 세계 #5》: 상준은 현아가 맥주를 처음 마시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는데, 이 역시 사실이었다.
* 붉은 글씨가 써진 방은 앞뒤로 문이 하나씩, 총 두 개가 마주본 형태다. 이 문 구조는 구급차와 동일하다.
* * 《05: 영화》: 현아는 4DX를 몰랐다. 4DX의 상용화 시기는 2009년이니, 현아가 그 전부터 이곳에 갇혀 사회와 격리되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단순히 "4DX를 사용하지 않았다"도 아니고 그 존재 자체를 아예 몰랐으니.

5.멸망한 세계의 정체
* 본작의 제목인 그녀의 세계는 '현아가 존재하는 세계'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현아가 주인인 세계'로도 해석할 수 있다.
6.다른 등장인물들의 정체

* 본작의 캐치프레이즈부터가 큰 떡밥을 품고 있다. "현실의 반대편 비틀린 세계엔 그녀이 있었다."인데, 결국 멸망한 세계에 존재하는 히로인은 현아 한 명 뿐이라는 소리가 된다.
* 히로인 중 이름이 밝혀진 건 현아뿐이었다. 우비는 자신이 이름이 우비라고 말했으나, 이게 진짜 이름이 맞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리 역시 현실 세계 사건의 피해자 이름을 도용한 것이라 결국 본명이 아닌 것이 드러난다.
* 《우비의 세계 #3》: 상준이 비 오는 세계로 진입하기 직전, 혹시 눈이랑 싸우는 거냐고 겁먹은 듯이 물었는데, 현아는 눈보단 작다며 안심시켰다. 이는 비 오는 세계에서 상준이 우비를 만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 우비는 종종 현아가 자신을 버렸고, 더이상 자기를 잊지 말아달라는 식의 말을 한다. 우비가 현아의 과거 기억인 걸 알고 다시보면 납득가는 부분.
* 《유리의 세계 #4》: 상준은 유리가 허접하다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듣자 현아는 이마를 꼭 쥐고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아마 자신이 만든 인물이 허접하다는 평가를 받자 기분이 이상해진 듯.
7.기타
* 《우비의 세계 #4》: 피 묻은 발은 현아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상준이 고개를 들어 자신의 얼굴을 보도록 유도한다. 여기서 피 묻은 발은 상준이 고개를 드는 것을 유도하기 위해, 싸우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거짓 격려를 하는데, 정말 후반부에 상준이 피 묻은 발과 싸워 쉽게 제압한다. 피 묻은 발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최후를 예언한 셈.
* 《기억의 저편 #1》: 마지막에 잠깐 삼입되는 대사는, 상준에게 현아의 탈출에 필요한 기억을 찔러 넣은 우비의 독백이다. 《기억의 저편 #5 유리》에서도 해당 식칼이 부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식의 뉘앙스가 나온다.
* 《기억의 저편 #4 현아》:상준은 현아의 단순하고 어린 애같은 면모 때문에 연상이 맞는지 의심하는데, 에필로그에서 정말로 연하가 맞았음이 밝혀진다.
* 《02: 압박면접》: 현아는 원하는 게 있거나 자신과 다른 의견이 생겼을 때도, 속으로 묵히지 말고 편하게 말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최종장에서 상준만을 홀로 내보내려는 현아에 상준은 반대하고, 필사적으로 현아를 도운 상준은 같이 탈출에 성공하며, 현아의 부탁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지켜졌다.
* 《03: 안전교육》: 우비는 자신의 식칼이 식칼이 아니라고 했다. 이는 해당 식칼의 정체를 암시하는 발언이다.

2.1.13. 서브 스토리

본편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서브 스토리가 하나씩 해금되며, 히로인 별로 총 7개의 서브 스토리를 가진다.
서브 스토리는 본편 내용 도중에 벌어지는 만담을 다룬다.[247]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인 본편에 비해선 상당히 가벼운 이야기들이니 머리 식힐 겸 중간중간 들어와 확인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짜투리 스토리는 아니고, 중간중간 떡밥 및 복선들이 첨가되어있으니 가능하면 해금될 때마다 보는 걸 추천한다. 참고로 해금 시기와 시간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시점에 대해 살짝 혼동할 수 있다.[248]
참고로 서브 스토리에만 나오는 전용 CG들이 존재한다. 히로인 모두 SD CG를 부여받으며, 본편의 스탠딩 및 일반 CG에 코스프레용 복장을 덧입은 CG를 각각 하나씩 가진다.
서브 스토리를 해금하려면 파편을 모아야 하는데, 모든 서브 스토리를 보려면 스킨 구매까지 포함해서 총 90개의 파편을 모아야 한다. 본편의 스토리를 진행하기만 해도 충분한 파편을 모을 수 있기에[249] 세이브 신공을 쓰면 퀘스트를 하나도 깨지 않고도 모두 해금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우비의 서브 스토리는 전부 그림자 상준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아무래도 본체 상준은 최종장인 《그녀의 세계》가 되고 나서야 우비와 마음을 터놓게 되기 때문인 듯.
참고로 히로인 공통으로 서브 스토리 6~7은 엔딩을 본 상태에서 특수 스킨을 사야 해금할 수 있다.[250] 엔딩 이후 열리는 일종의 최종 스토리나 다름없는데, 별 내용은 없고 그냥 팬 서비스 차원에서 코스프레 복장을 입힌 게 전부다. 작가의 전작들마냥 지나가던개 본인이 튀어나온다거나, 스토리를 마무리 짓는 후일담이 나오지 않는다.
특히 엔딩 이후에 해금됨에도 시점이 멸망한 세계 탈출 전인데다가, 에필로그에서 뿌린 떡밥이[251] 해소되지 않기에 유저에 따라선 실망할 수 있다. 하필 본작은 스토리 분량에 비해 에필로그가 매우 짧고 별도의 DLC도 나오지 않은 데다가, 작가의 전작에선 에필로그의 분량이 넉넉했기에 더 아쉬운 부분.
2.1.13.1. 서브 스토리: 현아
《01: 너도?》
파일:그세계8.png
상준은 현아가 하단에 마치 커다란 씨앗을 등에 진 개구리같은 낙서를 한 것을 본다. 상준이 이거 이상해씨 아니냐고 묻자, 현아는 의도치 않게 무의식적으로 한 낙서였는지 당황한다. 그리고 빠르게 평정을 되찾은 다음 덤덤히 어렸을 때 포켓몬스터를 봤다고 밝힌다. 그런데 다 큰 어른이 되서도 좋아하는게 아니고, 단지 어린 시절의 추억일 뿐이라며 변명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상준이 말이 길다며 지적하자 현아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시선을 피한다.
상준은 자신도 포켓몬을 좋아했으며, 아예 다 큰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고 밝힌다. 현아는 안심한 듯 활짝 웃으며, 동심을 지키는 면이 있다며 귀여워한다. 상준이 이상해씨가 제일 좋냐고 묻자 현아는 눈매랑 목소리가 귀엽다며 긍정한다.[252] 그리고 이번엔 상준이 좋아하는 포켓몬을 묻는데, 현아는 상준이 말한 포켓몬이[253] 최근에 나온 나머지 몰랐다.[254]
현아는 이후 상준이 자신이 본 만화들의 뒷내용을 알고 있는 거냐며 흥분한다. 현아는 물어보고 싶은 게 정말 많다며 어린아이처럼 흥분하다가,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애써 이미지 관리를 한다.[255] 그에 상준은 약간 어렵게 느꼈던 현아가 친근하게 느껴져 씩 웃는다.
이후 상준은 현아의 질문에 대답을 하나하나 해준다. 그런데 아직도 주인공은 포켓몬 마스터가 되지 못했으며[256], 해적 만화의 주인공은 아직도 해적왕이 되지 못했고, 탐정만화 주인공은 여전히 어린애 상태로 지낸다는 얘기를 듣자 현아는 살짝 실망한다.
참고로 전작블리치 드립과 마찬가지로 포켓몬 관련 발언들은 검열 처리 되어있다.

《02: 압박면접》
* 해금 시기: 《우비의 세계 #2》
* 시점: 《우비의 세계 #2》에서 상준이 현아를 만나고, 비 오는 세계로 향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현아는 상준에게 서로 간의 관계에 대해 이것저것 정해볼 것을 제안한다.[257] 왜냐하면 위험한 일을 같이 하는 것이고, 서로 연락도 할 수 없기 때문. 상준이 동의하자 현아는 손을 잡아끌어 상준을 병원 책상에 앉힌다. 그리고 커피가 든 컵을 내민 뒤 반대편으로 가서 양손을 깍지 낀다.
이후 현아는 질문들을 꺼내보인다. 방문 시기같이 중요한 걸 물으나, 현아의 진지한 태도에 상준은 무슨 면접이라도 보는 거냐고 말한다. 이에 현아는 자신을 구하려고 지원한 동기가 뭐냐며 장난스럽게 물으나, 이후 부끄러워졌는지 시선을 피한다. 상준은 현아가 일부러 자신을 위해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준다고 여긴다.
현아는 그 다음 상준의 신체 수치들을 묻는다. 그런데 점점 장기의 기능 상태들이 양호한지를 묻기 시작하는데, 상준은 주변 풍경도 그렇고 마치 예전에 본 장기 밀매 소재의 공포 영화 같아서 오싹해한다. 초조해진 상준은 무심코 현아가 준 커피를 홀짝거렸고, 이후 반응이 왔는지 기침을 한다.
현아는 섬뜩하게 안에 뭐가 들어갔는지도 모르고 마셨냐며 웃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상준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상준이 먹은 건 수면제 탄 커피가 아닌 민트초코라떼였으며, 상준의 지적에 콩트가 깨지자 현아는 폭소를 한다. 본인 말로는 병원이니까 일부러 장르를 공포로 택했다고.
그렇게 신나게 웃던 현아는 상준이 자리에 그대로 앉은 상태로 침묵하자, 살짝 얼굴을 붉힌다. 그리고 자신이 장난을 좋아하나 심취하면 선을 종종 넘으니, 앞으론 지적해 줄 것을 부탁한다. 이에 상준은 방금 그것보다는 수위를 좀 내릴 걸 요구하고, 현아는 멋쩍은 사과를 한다. 이후 현아는 서로가 기분이 안 좋아도, 아니면 원하는 게 있거나 자신과 다른 의견이 생겼을 때도, 속으로 묵히지 말고 편하게 말해줄 것을 부탁한다. 이에 상준은 혹시 그 말을 전달하기 위해 장난을 친 거냐고 묻는데, 정작 현아 왈 장난은 그냥 친 거라고.
그래도 현아가 자신을 위해 이런 말까지 해준 것에 상준은 어른스러움을 느낀다. 현아는 상준이 칭찬하자 누난데 당연하다며 가슴을 편다. 그런데 현아가 민트초코라떼가 그렇게 싫었냐면서 살짝 서운해하고[258], 상준은 이 부분은 좀 더 대화가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03: 관계》
* 해금 시기: 《유리의 세계 #5》
* 시점: 이 에피소드는 《유리의 세계 #5》에서 해금되지만, 대화 내용과 풍경을 보아 《기억의 파편 #3》에서 눈이 옥상을 지나쳐간 직후의 시점으로 보인다.
상준은 모처럼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동안 묵혀뒀던 생각을 말하기로 결심한다. 바로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인데, 현아는 깜짝 놀란 뒤 숨을 고른다. 그리고 어제 일도 있으니[259] 확실히 해두는 게 낫겠다며 동의한다.[260]
그 다음 상준은 서로가 호감을 가진 것이 맞다는 걸 검토하는데, 현아는 갑자기 상준이 적극적이라며 당황해한다. 그리곤 누나가 만만해졌냐며 웃는데, 상준은 친근해졌다고 정정한다. 이후 현아는 상준을 똑바로 보더니, 결국 나가기 전까지 사귀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냐고 재차 확인한다. 상준이 긍정하자 현아는 부끄러워서 빼는 거냐고 농담을 날리고, 상준은 부끄러운 건 그쪽 아니냐며 맞받아친다.
아무튼 상준은 서로가 지켜야 할 선을 잡자고 말한다. 현아는 정식으로 사귀는 게 아니니 어느 정도는 풀어줄 걸 제안하는데, 상준은 만약 자신에게 다른 여친이 또 생긴다면 어떡할 거냐고 묻는다. 현아는 살짝 표정이 굳었다가 다시 장난스럽게 웃으며[261], 상준을 방에 가둘 거라며 오싹하게 웃는다. 상준은 혹시 진심이 아닐까 살짝 두려워한다.
상준은 지난번과 같은 예시를 들었으나 이번엔 다른 대답을 한 이유를 묻는데, 현아는 얼굴을 붉히며 이젠 상준을 뺏기기 싫어서라고 답한다. 상준이 그 말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다, 현아는 뺨을 잡아당기며 브레이크 잡기로 하지 않았냐고 웃는다. 상준은 현아가 당황스럽게 웃는 걸 보고, 마치 처음으로 사랑을 하는 것처럼 이런 미묘한 두근거림을 즐긴다고 생각한다.
그 때 상준은 옥상에 있는 유리판에서 유리가 썩은 표정으로 관음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상준이 언제부터 훔쳐보고 있었냐며 소리치자, 유리는 둘이서 염장질 잘 한다는 뉘앙스의 말과 함께 사진을 찍고 도망가버린다. 상준이 붙잡으려고 쫓아가려하나, 현아는 그런 상준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현아는 유리를 보지 못한 것인데, 상준은 각도상 거울이 현아 쪽에서 더 잘 보였음에도 못 본 것에 의아해한다.

《04: 교감》
* 《기억의 저편 #3 현아》
* 《기억의 저편 #3 현아》 ~ 《기억의 저편 #6 현아》에서 상준과 농땡이를 피우던 때로 보인다.
어느 날 현아의 병실로 향하던 상준은 검은 것들의 행렬을 피하던 도중, 자신 앞에 햄스터나 병아리 정도 크기의 검은 것들이 있는 걸 목격한다.[262] 상준은 자극할 거 같다는 생각에 작은 검은 것들을 넘어가는 걸 망설이는데, 상준 뒤에 인간형 검은 것들의 행렬이 점점 길어지자 결국 넘어가기로 한다.
조심히 넘어간 상준은 안심하지만, 작은 검은 것들이 합체를 하더니 상준 쪽으로 쫓아오기 시작한다. 엄청난 속도에 상준은 도망갔다간 역공당할 거라 생각해서 곧바로 걷어찰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합체해서 강아지 크기가 된 검은 것들을 차려는 순간, 현아가 나타나 상준을 말린다. 이 때 검은 것들도 달리는 걸 멈춘다.
상준은 자신을 막아세운 이유가 혹시 검은 것들이 가진 또 다른 위험한 특성이 있어서냐고 묻는데, 현아는 그게 아니라 단순히 작은 검은 것들이 귀여워서라고 답한다. 그리곤 걷어찰 생각부터 한 상준을 질책한 뒤, 작은 놈 하나를 잡아 올린다. 움직이지 못하게 양손으로 꽉 쥔 뒤 귀엽지 않냐고 묻는데, 검은 것은 마구마구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이후 현아는 검은 것들을 정성스레 포용해주면 서로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다는 이상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상준은 검은 것이 발버둥치고 현아 손을 물어뜯는 걸 보고[263] 아무리 봐도 교감이 아닌 거 같아서, 현아의 말에 딴죽을 건다.[264] 이에 현아는 다른 검은 것들도 자기가 안아주길 기다리는 듯 도망 안 가고 있지 않냐며 묻는데, 상준은 동료가 잡혀서 못 도망가는 거라고 딴지를 건다.
그리고 상준이 현아가 쥐고 있던 검은 것 하나를 동료들 사이에 놓자, 검은 것들은 겁먹은 채로 모두 상준 등 뒤로 숨는다. 현아는 그 모습을 보자 교감한 게 아니란 것이 충격받은 듯 얼굴이 굳어진다. 이후 검은 것들이 현아를 보고 순식간에 도망가버리자, 현아는 섬뜩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상준이 검은 것들이 도망간 루트를 막으려 하는 순간, 현아는 과장된 동작으로 시무룩해하며 주저앉는다.
그리고 상처받았다며 안아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의 장점 10가지를 말해서 위로해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상준은 현아를 하루종일 달래주며 하루를 보내는데, 상준은 현아의 목적이 처음부터 이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굳이 이런 연기 안 해도 그냥 부탁해도 들어줬을 거라고 덧붙인다.

《05: 영화》
상준은 현아가 영화에 의외로 많은 흥미를 보였기에 장르에 따른 반응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 스릴러 영화: 상준의 기대와 달리 의외로 심드렁했으며, 살인마가 피해자를 추격하는 장면에선 아예 고증이 엉망이라며 웃기까지 한다. 가령 목을 나이프로 자르면 목뼈에 걸리기에 영화처럼 깔끔하게 잘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던가. 가끔 이렇게 잔혹한 경험담을 전파하다가 뒤늦게 이미지 관리를 위해 얼버무린다고 한다.
* 판타지 영화: 판타지 영화의 CG를 보고 압도된 듯 매우 신기해한다. 본인 말로는 머리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믿을 수 없다고. 상준은 이것도 옛날 영화니 나가면 4DX를 갈 것을 제안하는데, 현아는 그게 뭔지 몰라 어리둥절한다. 참고로 이후 몰래 영화에 나왔던 주인공의 동작을 따라하다가 딱 걸렸다고.[265]
* 로맨스 영화: 현아는 주인공들이 서로 좋아하는 걸 알고도 사귀지 않는 것에 답답해한다.[266] 이후 주인공이 먼저 떠난 애인을 돌아오라고 설득하는 장면에서, 현아는 저런 스토리는 딱 두 번까지만 써야 보는 사람이 안 지친다며 따진다.
* 공포 영화: 현아는 갑툭튀를 보고 움찔하는 상준을 보고 귀여워한다. 평소엔 더 한 걸 본다는 말과 함께 영화에 크게 집중 안 하는 현아는, 겁먹은 상준을 안아준 뒤 영화를 실황하기 시작한다. 상준은 겁먹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걸 깨닫고, 현아가 예전에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한 걸 떠올리고 곤란해한다. 이후 현아는 자신이 영원히 손 잡아주겠다며 다독인 뒤, 마지막에 영원히 잡겠다며 얀데레스러운 한 마디를 덧붙인다. 참고로 현아의 평을 반영하면 공포 영화가 그래도 제일 좋았다고.
* 포켓몬 극장판: 현아의 반응이 제일 좋았으며, 옆에서 이상해씨를 열심히 응원했다고 한다.

《06: 이건 전투복이야.》
* 해금 시기/조건: 《사건의 지평 #5》 + 메이드복 스킨 구매
* 시점: 상준이 부상을 입은 《기억의 저편》으로 보인다.
상준이 부상을 입고 나자 현아는 상준을 항상 앞서나가며 경호를 하기 시작한다. 상준이 괜찮다며 만류해도 현아는 애교를 부리며 경호를 이어나가다가, 경호가 필요하지 않다면 자신을 한번 안심시켜보라고 말한다.[267] 현아는 일단 상준의 피지컬은 인정하나, 이쪽 세계는 상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닥쳐도 냉정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능력을 측정할 수 있게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한다. 현아가 제안한 측정법은 상준이 병실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걷는 동안, 갑자기 튀어나오는 현아의 기습을 막아내는 것.[268] 상준은 합격 기준도 방향성도 알기 힘든 기묘한 테스트라고 여기고, 솔직히 현아가 놀고싶어서 제안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에 응해주기로 한다.
상준은 복도를 걸으며 여기저기서 현아가 인기척을 내는 걸 목격한다. 이후 현아는 귀신 웃음소리를 내는데, 상준이 겁을 먹으며 주춤하자 뒤에서 튀어나온다. 상준이 뒤를 돌아본 순간,
파일:그세계 현아5.png
메이드복 차림의 현아가 나타난다. 상준은 심장이 순간 위험했으나 곧바로 현아가 나이프를 들고 달려들고, 상준은 미인계를 쓰는 법이 어딨냐며 따진다. 그리고 누나가 돼서 부끄럽지도 않냐고 지적하지만, 현아가 그래서 싫냐고 묻자 부정한다. 이후 상준은 나이프를 든 현아의 손을 막아내며 힘겨루기를 하는데, 그 와중에 왜 하필 메이드복이냐고 묻는다. 이에 현아는 상준이 좋아할 거 같아서 선택했다고 답한다. 이에 상준은 얕은 수라고 생각하나 통하지 않는다고는 말 못한다.
상준은 현아의 힘이 여전히 상상 이상이지만 묘하게 평소보다 약하다고 여긴다. 현아가 자신이 예쁘냐고 묻는 질문에 긍정하고, 현아는 웃으면서 나이프를 바닥에 던진다. 그리고 상준은 그런 현아를 껴안는데, 그 순간 현아가 치마 안쪽에서 다른 나이프를 꺼내 기습을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상준에게 막혀버리고 시무룩해한다. 상준 말로는 펑퍼짐한 옷을 입었을 때부터 의심했다고.
현아는 어떻게 자기를 의심할 수 있냐며 힘겨루기를 다시 하는데, 그냥 한번 찔려 주는게 그리 어렵냐고 따진다. 상준은 냉정하게 대처하라 하지 않았냐며 지지 않는데, 현아가 노골적으로 눈물이 섞인 애교 및 유혹을[269] 부리자 당하고 만다.
어찌어찌 해서 현아의 경호는 계속되기로 했으나, 현아는 게임이 끝나고 현타가 온 건지 급격이 얌전해져 있었다. 본인 말로는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수단과 방법을 안 가렸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부끄럽다고. 이에 상준은 엄청난 승부욕을 지닌 현아가 현실로 돌아가서 게임을 시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한다.
참고로 게임이 끝났음에도 현아는 메이드복을 벗지 않았다. 그 이유는 상준이 예쁘다고 말한 것이 기분이 좋아서라고. 그 말에 상준은 자신만이 이 세계에서 현아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기쁘다고 생각한다.

《07: 이런 이벤트는 아직 이른 관계.》
* 해금 시기/조건: 《사건의 지평 #5》 + 서큐버스 스킨 구매
* 시점: 상준이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농땡이를 피우던 《기억의 저편 #3》 ~ 《기억의 저편 #6》으로 보인다.
현아가 상준의 부상을 핑계로 탈출을 미루자, 상준은 한번 탈출을 재촉해본다. 현아는 투정부리면서 더 미루자고 답하는데, 상준이 무슨 사정이 있냐고 묻자 할 말이 없진 않다고 중얼거린다. 상준은 저번에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서로 쌓아두지 말자는 약속을 했으니, 말해줄 것을 요청한다. 이에 현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상준의 방으로 갈 것을 제안한다. 갑자기 자기 방으로 가는 건 물론 현아가 자기 먼저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까지 하자, 상준은 더욱 어리둥절한다. 그래도 현아가 뭔가를 결심한 표정을 짓자 받아들인다.
상준이 현아를 먼저 들여보내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현아의 부름에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현아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입장한다. 그런데
[후방 주의]
파일:그세계 현아6.png
그곳엔 서큐버스 차림의 현아가 있었다. 현아는 부끄러움과 도발이 반반 섞인 웃음을 보이며 이래도 쉬지 않을 거냐고 유혹하고, 상준은 곧바로 꼬리를 내려 쉬겠다고 한 뒤 현아 옆에 앉는다. 현아는 부끄러웠는지 자기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칭찬해달라고 부탁하고, 상준이 폭풍 칭찬을 한 뒤 사랑한다는 말까지 하자 웃는다.
이후 현아가 상준의 귀를 깨물며 유혹을 하기 시작하자 상준은 이참에 현아를 그대로 눕히려 한다. 그런데 현아는 당황하더니, 배게를 끌어와 상준을 가로막는다. 현아는 도발적인 복장을 입긴 했지만 사실 연애 진도를 뺄 생각은 아니었으며, 원래는 이 이벤트는 나중에 보여주려던 건데 조급한 심정에 먼저 선보였다고 허둥거리며 해명한다. 상준은 대강 예상하고 있었기에 마음을 진정하고 현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현아는 다시 진정한 뒤 물리 치료를 해주겠다며 어깨를 눌러준다. 상준은 현아가 초창기처럼 자기가 흐름을 주도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 어울리기로 한다. 현아는 어깨를 주물러주며 이런저런 말들을 속삭이다가, 역으로 상준 쪽이 조급한 거 아니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신은 사라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상준을 기다릴 거라며 웃는다. 그런데 부끄러웠는지 또다시 얀데레스러운 호러 분위기를 내기 시작하고, 상준이 정곡을 찌르자 현아는 쑥스러워한다.
그래도 상준은 서로가 휴식이 부족한 게 맞다고 말한 뒤, 지금만큼은 다 잊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둘은 이불 속에서 서로의 손을 꼭 잡는다.
이후 폐허가 된 병원 옥상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현아와의 스토리는 완전히 끝이 난다.
2.1.13.2. 서브 스토리: 유리
《01: 내 오른팔의
* 해금 시기: 《유리의 세계 #3》
* 시점: 해금 자체는 《유리의 세계 #3》 에서 이루어지지만 이후 한동안 학교 세계를 방문해서 유리와 만담을 나누지 않으므로, 정확한 시점은 《기억의 저편 #1》 ~ 《기억의 저편 유리 #5》으로 보인다.
어느 날 상준은 그동안 궁금했던 유리가 붕대를 감는 이유를 본인에게 물어본다. 유리는 당황하더니 복장 단속도 아니고 그런 질문을 왜 하냐며 딴죽을 건다. 상준이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다고 답하자 유리는 영문 모를 웃음을 짓더니 답한다. 감고 있는 이유는 단순 징크스라고 한다.. 안그래도 꿈 같아서 불안정한 세계인데[270] 사소한 걸로 마음이 안정되면 득 보는 거니 감고 있는 거라고 해명한다. 상준도 비슷한 멘탈 테크닉을 하는 운동선수를 봤기에 조금은 납득하지만,[271] 오히려 그렇기에 유리가 이곳에서 나가지 않는 이유를 더더욱 궁금해한다. 징크스 관리까지 해야 할 정도로 스트레스 받는 세계에 굳이 머무는 게 납득이 안 갔기 때문.
이후 유리는 상준에게 붕대를 감아볼 것을 권유한다. 상준은 처음에 거절하지만[272] 유리가 열정적으로 다시 권하고, 아예 쫄았냐고[273] 도발까지 하자 받아들인다. 그렇게 상준의 머리엔 야성적인 형태로 붕대가 감겼는데, 상준은 별 다른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유리가 이걸 감는 이유를 더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혹시 상준은 유리에게 중2병 걸려서 멋있다고 생각해 감냐고 묻고, 지금은 멋있을지 몰라도 3년만 지나면 후회할 거라며 충고한다. 유리는 절대 아니라는 듯 과장된 반응으로 부인한다.[274] 이후 상준이 병원 세계로 가려고 하자, 유리는 조심스레 붕대를 감는 이유가 자신의 마음속 이미지의 문제면 어떨 거 같냐고 묻는다.
상준이 진짜 그런 이유면 미안해질 거 같다며 주춤해하자, 유리는 거짓말이라며 웃는다. 하지만 상준은 유리의 웃음에 미묘한 슬픔을 감지한다.
까먹고 붕대를 안 풀고 간 상준은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놀라는 현아를 마주한다. 현아는 처음엔 다친 줄 알고 놀라지만, 그냥 감았다는 걸 알자 혹시 멋있어서 감은 거냐고 묻는다. 그리고 지금은 멋있을지 몰라도 3년만 지나면 후회할 거라며 충고한다. 상준은 절대 아니라는 듯 과장된 반응으로 부인한다. 그런데 현아는 붕대를 감는 모습이 의외로 취향이었다는, 불안한 말을 한다.

《02: 데미지》[275]
* 해금 시기: 《기억의 파편 #2》
* 시점: 《유리의 세계 #1》 ~ 《유리의 세계 #5》로 보인다.
어느 날 상준은 학교 세계 거울에 살려달라는 메세지가 붙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들어간다. 그곳엔 유리가 팔이 또 빠졌다며 신음을 내고 있었는데, 상준이 병원 가라고 닦달하자 유리는 여전히 여기서 나가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한다. 그러자 상준은 그럼 스팀슨 기법이라도 쓰지 그랬냐고 묻는데, 유리는 그렇게 무서운 건 혼자 못한다며 수척해진다.
움츠러든 태도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유리를 보고, 상준은 그 띠껍던 애가 다치면 순식간에 불쌍해진다고 느낀다. 유리는 자신을 안아든[276] 상준에게 자기가 다치면 착해진다고 말한다. 상준은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었기에 부정은 하지 않고 툴툴대는데, 여기서 유리가 음흉한 표정을 짓는다. 상준은 흉계를 꾸미는 걸 보고도 유리를 싫어하지 않는 이유로, 이런 걸 음흉하게 몰래 숨기지 않는 걸 든다.그런데 유리는 다시 연극톤으로 아프다는 시늉을 하자 방금 생각을 취소한다.
상준은 유리에게 스팀슨 기법을 실시하면서 병원에 갈 것을 재차 강조한다. 물론 유리는 흘려듣고, 오히려 자긴 부상자니 오늘은 친절하게 대해주는 거냐고 해맑게 묻는다. 상준은 부상이 좀 불쌍하다고 느꼈는지 받아들이는데,[277] 유리는 상준에게 지금 심심하니 웃겨볼 것을 요구한다. 그러자 상준은 물 패트평 뚜껑을 열어 유리 머리 위에 쏟기 직전의 상태로 두고, 웃으라고 협박한다. 유리는 식겁한 표정으로 웃기 시작한다.[278]
이후 어깨가 다시 붙은 유리는 병원 세계로 가는 상준을 배웅한다. 그런데 멋쩍게 사과를 하는데, 상준이 사과하는 이유를 묻자 유리는 자신이 조금 나쁜 생각을 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비겁해서 관뒀고, 무슨 생각인지는 말하지 않겠다며 웃는다. 상준은 유리의 웃음이 어쩐지 서늘하다고 느낀다.

《03: 부스스》

* 해금 시기: 《기억의 저편 #4 유리》
* 시점: 《기억의 저편 #1》 ~ 《사건의 지평 #2》으로 보인다.
상준은 어느날 머리가 잔뜩 뻗치고 떠 버린 유리를 보고 깜짝 놀란다. 평소보다 3배는 더 네거티브한 분위기의 유리는 계속 쳐다보면 신고하겠다고 틱틱대지만, 상준이 그럼 현실로 나가야겠다고 맞받아친다. 그런데 유리는 평소와 달리 더 띠껍게 굴지 않고 포기하듯 한숨을 푹 쉰다. 상준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유리는 자긴 습하면 머리가 엄청 심하게 뜨는 타입이라고 설명해준다.[279]
그리고 부럽다는 듯 상준 머리는 곱슬기가 없진 않은데 뜨지 않는다고 말하고, 혹시 숱이 부족하냐며 놀린다. 상준이 부정하자 10년 뒤에 상준에게 탈모가 오는지 내기하자고 하는데, 상준이 그럼 10년 뒤에도 친하게 지내는 거냐고 되묻는다. 그러자 유리는 얼굴이 살짝 빨개진 채로 맞다고 중얼거린다. 이에 상준은 평소보다 굉장히 유해진 유리에 놀랐는지 맛이라도 갔냐고 묻는데, 유리는 시비 거냐고 띠겁게 답한다. 상준은 이에 평소의 유리가 맞다고 안심한다.
아무튼 유리는 자신의 머리 좀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상준은 자기가 미용사도 아니라 도구를 쓸 엄두를 못내고, 그냥 손으로 꾹 누를 걸 제안한다. 유리는 누른 부분만 눌려서 이상해질 거라며 거부하다가, 상준의 손은 크니 괜찮을 거라며 눈이 반짝인다. 상준이 양손으로 유리의 머리를 감싸자, 유리는 헬멧 쓴 거 같다며 희희덕거린다. 상준은 오늘따라 유리가 참 이상하다고 여긴다.
상준은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감촉이 특이하다고 느끼다가, 유리의 머리를 개털에 비유한다. 유리는 발끈해서[280] 상준의 배를 치는데, 단단한 복근 때문에 오히려 본인이 아파한다. 상준이 최상급 개털이라고 해명하지만, 유리는 결국 개털이라며 한번 더 치려고 한다. 그러자 상준은 유리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들어올린다.[281] 원래는 서울 구경이라 불리는 가혹행위지만 유리가 아파지기 전에 내려놓은 덕에, 유리는 재밌다면서 계속 해보라고 부탁한다. 이후 유리의 머리카락이 떡질 때까지 놀아줬다고.
참고로 유리의 머리는 날씨가 건조해지자 저절로 돌아갔다고 한다.

《04: 용서할 수 없는
* 해금 시기: 《기억의 허상 #4》
* 시점: 《기억의 저편 #1》 ~ 《사건의 지평 #2》으로 보인다.
이날 유리는 상준이 펩시를 가져다 주자 노골적으로 표정이 썩는다. 이유는 펩시를 콜라 취급을 하지 않을 정도로 싫어하기 때문인데, 진지하게 충격받은 표정으로 상준을 질책한다. 상준이 그럼 펩시랑 코카는 물론 제로 콜라랑 음료수 기계 콜라까지 전부 구분할 수 있냐며 어이없어 한다. 그런데 의외로 유리는 갖다준 적 없는 음료수 콜라를 제외하면 당연히 할 수 있고, 아예 캔 콜라랑 페트병 콜라까지 구분할 수 있다며 자신만만해 한다.
상준이 얼척 없는 소리 취급하자 유리는 진지하게 내기를 신청하는데, 상준이 유리가 이기면 형이라고 불러주겠다며 받아들인다. 그런데 유리는 누나라고 불러주면 안 되냐고 수줍게 묻자, 상준은 살짝 당황한다. 상준은 이후 자신이 이겼을 때의 보상을 얘기하려 하나, 유리는 어차피 질 일 없다며 무시한다.
다음 날 상준은 동네를 돌며 많은 종류의 콜라를 모은 뒤 가져다준다.[282] 그리고 상준이 아무 콜라나 랜덤하게 종이컵에 따르고 준다. 유리는 콜라를 와인마냥 음미하며 마시더니, 씨익 웃으며 '유리병에 담긴 코카콜라'라고 정확히 맞춘다. 상준은 매우 놀라고 유리는 거만하게 웃는다. 상
상준은 결국 그날 하루 동안 유리를 누나 대접해줬다고 한다. 참고로 본인이 사온 콜라들을 전부 마셔본 결과, 종류가 다른 걸 자각하고 마시니 실제로 맛을 다르게 느꼈다고 한다. 다만 캔이나 페트, 유리병의 차이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05: 함께 가는 사람이 나였다면》

* 해금 시기: 《사건의 지평 #3》
* 시점: 《사건의 지평 #3》에서 현아가 탈출을 받아들이고, 상준이 통로 연결을 위해 유리를 찾아간 때다. 다른 유리의 서브 스토리들과 달리 진지한 분위기고, 시점이 매우 명확한 걸로 보아 정황상 본편에 넣을 만담이 길어져서 따로 빼놓은 듯.
상준은 유리가 교실에서 뒹굴거리는 걸 보고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283] 상준이 언제까지 여기서 눌러앉을 거냐고 묻자, 유리는 꼰대질 할 거면 돈 주고 하라면서 찡그린다. 그런데 의외로 상준이 그렇냐면서 차분히 받아들이자, 유리는 평소와 달리 왜 바로 찌그러지냐며 궁금해한다. 상준이 밝히길 돈을 달라는 건 유리에게 사회 복귀의 의지가 아직 남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유리는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게 된 상황에서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있냐고 묻는다. 상준이 괜찮으니 공부부터 시작할 걸 추천하자, 유리는 경멸하면서 요즘 은근히 되게 친절하다고 따진다. 유리 말로는 아예 삼촌이 조카 보듯 한다고. 유리가 현아랑 우비, 자기 중에서 누가 제일 만만하냐고 묻자 상준은 고민도 안 하고 유리라 답한다. 유리는 당연히 너무하다는 반응.
상준이 그러니 공부라도 해야 한다고 충고하는데, 유리는 자긴 공부가 적성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장래엔 연예인을 생각 중이라고 답하는데, 상준은 어안이 벙벙한 건지 침묵한다. 유리는 굳이 연예인인 이유가, 상준이 예전에 개인이 영상을 올리는 시대가 대세라고 말한 것 때문이라고 말한다. 상준이 그럼 춤을 잘 춰야 하며, 춤에는 피지컬이 필요하니 자신이 가르쳐주겠다고 답한다. 그리고 운동 루틴을 짜주겠다며 인쇄된 종이 뭉치를 꺼내는데, 유리는 그걸 보자마자 최대한 거리를 벌리며 경멸한다.
그리곤 자기에게 왜 신경 쓰냐고 소리지르다가, 뭔가를 눈치챘는지 침묵한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서 고개를 숙이고, 무슨 말을 할지 정리하는 듯 침묵한다. 상준은 자신이 태도를 약간만 바꿔도 의도를 곧바로 눈치채는 걸 보고, 유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아이가 맞다고 확신한다. 유리는 눈물이라도 닦는 듯 얼굴을 훔치더니,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피식 웃는다.
이후 드디어 탈출하는 거냐고 묻고, 길을 가르쳐 줬는데 늑장이나 부리는 거냐며 농담 섞인 잔소리를 날린다. 상준은 유리 덕에 걱정 없이 다녀올 수 있겠다며, 속으로 감사를 표한다.

《06: 반드시 기억해라.》
* 해금 시기/조건: 《사건의 지평 #5》 + 고스로리 스킨 구매
* 시점: 《사건의 지평 #1》 ~ 《사건의 지평 #2》로 보인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유리는 저기압인 상태로 환자복 차림으로 뒹굴거리고 있었다. 상준이 잔뜩 뻗친 유리의 머리를 보고 혹시 정서에 문제 있냐고 묻는데,[284] 유리는 오늘 같이 비 오면 저기압이라며 좀 놔두라고 한다. 상준이 이 비가 유리의 영향력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말하자, 유리는 자기도 전지전능해진 거냐며 좋아한다. 이에 상준은 지난번에 자기한테 발린 건 벌써 잊은 거냐며 속으로 어이없어 한다.
상준의 노트북을 뒤적거리던 유리는, 사람 심리를 자극할 정도로 어두운 내용의 영화를 찾는다. 이유는 자신이 '유리'가 아닌 것이 밝혀졌기에, 자아를 찾는 마음에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상준은 유리의 요구대로 미리 다운 받아놓은 어두운 영화를 보여준다. 상준 왈 유리에게 추천하기엔 좀 그런 내용이나 옛날 영화라 그런지 패키지 할인이 있어서 골라줬다고.
다음 날, 영화에 심취한 건지 유리는 괴상한 복장을 입고 나타난다. 프릴이 가득 달린 검은 옷에 컬러렌즈를 한 쪽만 빼서 오드아이를 연출한 유리는, 단단히 컨셉에 몰입했는지 아예 상준을 '오라버니'라고 부른다. 그리곤 자기가 '각성'했다느니, 학교 세계를 '저의 세계'라고 부르는 등 현아마냥 중2병 가득한 용어들을 사용한다. 유리는 자기 입으로 머리가 뻗치면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자아라는 영문모를 소리들을 거창하게 한다.[285]
상준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유리는 살짝 실망했는지, 의자에 다리를 꼬고 걸터 앉는다. 거만하게 턱을 치켜뜨고 내려다보려 하지만 키가 작은 탓인지 결국 올려다보고, 자신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 '각성'했으니 까불지 말라고 말한다. 여기서 연습한 듯한 손동작을 선보이는데, 그 순간 대량의 학생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상준은 자아를 찾을 거면 바다라도 가지 그랬냐며 딴죽을 거는데, 유리가 세상의 실체는 바다같은 곳에 없다며 컨셉을 유지한다. 하지만 상준이 다시 딴죽을 걸자 유리는 시무룩해하고, 유리의 멘탈에 영향을 받은 건지 학생들이 사라진다.
유리는 근엄한 목소리를 내다가 목이 갈라졌는지 콜라를 향해 손을 뻗는데, 팔이 짧아 휘적거리기만 한다. 결국 상준에게 부탁하는데, 상준이 콜라도 못 집는게 무슨 전지전능이냐며 비웃자, 유리는 발끈해서 진짜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외친다. 그리고 상준에게 폰 화면을 내밀고, 최면이라도 걸려는 듯 주문을 외기 시작한다. 상준이 어이없어 하지만 유리의 도발에[286] 장단을 맞춰주기로 한다.
유리의 명령대로 콜라도 갖다주고 과자도 먹여주는데, 유리는 현아마냥 뺨을 쭉쭉 잡아당기며 우쭐해한다. 상준은 10초 만에 질렸으니 관둘 생각을 하나, 유리의 무릎 꿇으라는 명령에 그대로 따른다. 슬슬 최면 컨셉 자체가 자기를 갖고 놀라고 잡은 것으로 의심할 무렵, 유리는 상준에게 발을 내민다. 그리고 어디서 본 건 있었는지 핥으라는 명령을 하려 하지만, 결국 부끄러워하며 포기한다. 대신 자길 안아들고 교실 한 바퀴 돌아줄 것을 명령한다.
유리는 안아들린 상태로 최면을 풀어줄 테니,[287] 혹시 곱슬머리를 싫어하면 현아처럼 생머리로 바꿀지를 묻는다. 상준으 자기가 제정신일 때 물어보긴 부끄러웠냐고 묻고, 유리는 차분하게 긍정한다. 상준은 유리가 갑자기 착해졌다고 느끼며, 마음대로 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머리 많이 신경 쓰는 거 같은데 놀려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유리는 사과 받을 생각이 아니었다며 당황한다.
상준은 머리가 뜨면 자기같은 사람에게 눌러달라고 부탁하라고 답한다. 유리는 별 효과는 없었으나 마음은 알겠다며, 해맑게 웃는다. 그리고 최면을 풀어주겠다고 외치는데, 상준은 그 전에 오늘 벌인 중2병 짓거리들은 앞으로 평생 기억하라고 충고한다. 유리는 영문을 몰라 갸우뚱하며 받아들인다.
며칠 뒤, 유리는 중2병 감성의 애니를 보면서 웃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조금 부끄러운 추억이 떠올라서라고 하는데, 상준이 그 추억이 뭔지를 간파하고 유리 앞에서 지난번의 만행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자신의 중2병 짓거리들이 떠오른 유리는 괴로운 표정을 짓더니, 오빠는 십색기라며 경멸한다. 그리고 쑥스러웠는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다.

《07: 혼자 두면 죽는.》
* 해금 시기/조건: 《사건의 지평 #5》 + 바니걸 스킨 구매
* 시점: 《사건의 지평 #1》 ~ 《사건의 지평 #2》로 보인다.

평소처럼 유리와 틱틱대던 어느 날, 유리는 자신이 '유리'가 아닌 게 밝혀졌으니 어른일 수도 있지 않냐며 따지고 있었다.[288] 상준은 그런데 정신연령이 애라고 반박하는데, 유리는 그쪽이 더 애라고 받아친다. 유리는 유치하게 말싸움을 하다가 책상에서 내려오고, 어쩌면 자기가 현아보다 연상일지도 모른다며 미묘한 표정으로 말한다. 상준은 현아가 얼마나 어른스러운지는 아냐고 말하려다, 요즘 애같은 면모를 많이 보여주는 현아를 떠올리고 말문이 막힌다.
아무튼 유리가 원하는 건 누나 대접이었다. 상준은 가능은 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박힌 이미지란 게 있는데, 갑자기 누나라고 부르면 어색할 거 같다며 거절한다. 유리는 자기를 어른으로 안 보는 거냐며 발끈하고, 어떻게든 누나라고 부르도록 만들 테니 내일 이 시간 다시 와보라고 소리친다. 마치 결투라도 신청하는 듯한 분위기에 상준은 받아들인다.
다음 날, 유리를 찾아 학교 세계로 온 상준은 유리가 보이지 않자 이상해한다. 그 때 계단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 달려가는데, 유리가 심히 당황한 말투로 더 이상 오지 말아달라고 소리친다. 유리는 상준에게 자기 쪽으로 오라고 하다가, 또 오지 말라고 하는 등 말이 중구난방인 상태다. 결국 상준은 곧바로 유리 쪽으로 올라가는데,
[후방 주의]
파일:그세계 유리5.png
그곳엔 바니걸 차림의 유리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당황해서 침묵하다가, 유리는 명백하게 무리하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려 분위기를 전환하려 한다. 그러면서 왜 자길 보냐고 쑥스럽게 소리치는데, 상준이 고개를 돌리자 이번엔 고개를 돌리면 어떡하냐고 따진다. 상준이 어쩌라는 거냐고 묻자 유리는,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만 쳐다 보면서, 적절하게 칭찬을 해주며, 오빠보다 어른스럽다는 사실을 인정해달라고 명령한다. 상준은 토끼 귀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뒤 기특하게만 생각하기로 마음먹고, 자기보다 어른이라는 걸 인정한다고 답한다.
유리가 어떤 부분에서 어른이냐고 묻는데, 상준이 자신감이라고 답하자 유리는 표정이 썩는 것도 모자라 욕이 튀어나온다. 그러자 상준은 자기라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유리가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한다. 유리는 꼽주는 거로 들리니 좀 더 솔직하게 칭찬하라고 따지는데, 상준은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입장도 이해해달라고 답한다.
이에 유리는 자신감이 생긴 것처럼 씨익 웃더니, 만약 입장이 달랐다면 다른 말을 해줬을 거라고 생각해도 되냐며 웃는다. 누가봐도 현아를 의식하는 듯한 말에 상준은 따진다. 하지만 슬프게 웃은 유리는, 상준 입장도 이해한다며 한숨을 쉰다. 이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며 푸념을 하다, 자제하는 것처럼 츄리닝을 입는다. 그리고 만약 현아보다 자기를 더 일찍 만난 가상의 오빠는, 지금 누구 편을 들어주고 있을 거냐고 묻는다. 상준이 입을 열려 하자 유리는 말을 끊은 뒤, 일단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생각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들어 미소짓는다. 마치 아쉬움은 남되 후회는 없는 듯한 웃음을 보이며, 자긴 비겁한 성격이니 오늘은 상준에게 잔뜩 심술부릴 것을 선포한 뒤 웃는다. 상준은 활짝 웃으며, 자신이라면 정말 유리의 결단을 내지 못했으니 정말 어른으로 인정하겠다고 답한다. 유리는 잠시 감상에 젖은 눈빛으로 상준을 바라보고, 상준도 아까와 달리 조롱이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유리는 이제 자기가 승부에서 이겼으니 누나 대접 받아야겠다며 웃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 많이 쓰인 종이 쪼가리를 꺼내 흔들며, 이전의 대사는 자기가 연습한 것이고 아깐 전부 연기였다는 걸 증명한다. 여기에 상대를 쉽게 이기려면 상대를 미안하게 만들라고 하지 않았냐며 폭소한다. 결국 상준은 유리에게 하루종일 누나 대접을 해줬으나, 유리의 말이 정말 연기 뿐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여긴다.
이후 미묘한 유리의 표정을 마지막으로 보여주며, 유리와의 스토리는 완전히 끝이 난다.
2.1.13.3. 서브 스토리: 우비
《01: 등 뒤에 있어.》
* 해금 시기: 《유리의 세계 #1》
* 시점: 《기억의 파편 #1》 ~ 《기억의 저편 #8》 즈음으로 보인다.
어느 날 우비는 그림자 상준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공포 영화마냥 조금씩 점멸하듯 움직이던 술래 우비는, 비옷을 벗어 자신으로 속인 뒤 상준을 붙잡는다. 상준은 노란 잠옷 차림의 우비를 빠르게 건물로 들여보내 빗물을 닦아 준다. 우비는 비를 맞아서 추운지 몸을 살짝 떠나, 상준을 잡았다는 사실이 좋은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질을 하며 상준을 패배자라고 부른다.
상준이 그러다 감기 걸려도 모른다면서 잔소리하는데, 우비가 오빠도 비옷 없이 나대지 않냐고 반박한다. 상준이 자신은 가짜라고 반박해도, 우비는 그래도 추운 건 마찬가지라는 말로 상준의 말문을 막히게 한다. 이후 우비는 수건을 빼앗아 들더니 상준의 머리를 털려 하는데, 손이 닿지 않자 상준에게 꿇으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멱살을 잡아 끌어 내리고, 그제서야 만족스럽다는 듯 머리를 벅벅 문지른다.
상준은 이후 우비에게 아까 공포 연출을 한 이유를 묻는다. 우비는 그런 어려운 말 모른다며 어리둥절하는데, 상준이 차분하게 다시 어린아이 눈높이에 맞춘 말투로 설명해주자 이해한 듯 해명하기 시작한다. 자기가 예전에 엄마 몰래 티비에서 하는 공포 영화를 봤는데, 거기서 아까 자신이 쓴 연출로 귀신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보고 무서워하긴 커녕, 그냥 잡지 않고 귀찮은 연출까지 써 가며 잡은 귀신이 측은해졌다고 밝힌다.
그 다음 우비는 자기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감상을 남긴다. 그 말에 상준은 혹시 자기를 귀신이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묻는데, 우비는 그런 말은 잘 모른다며 잡아뗀다. 그러다 그림자 상준도 그 비슷한 것이니, 그러니까 동맹이라고 단정짓는다. 상준이 동맹의 뜻은 아냐고 묻는데, 우비는 그건 상관없다는 듯 일단 더 놀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상준은 애들이 그렇듯 참 종잡을 수 없는 아이라고 여긴다.

《02: 나만의 보물

* 해금 시기: 《기억의 파편 #1》
* 시점: 《기억의 파편 #1》에서, 그림자 상준이 우비의 과거를 보기 전으로 보인다.
우비는 그림자 상준의 싸대기를 후려치며 깨우고 있었다. 이후 본체가 잠들자 그림자 상준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곧바로 상준에게 놀자고 조른다. 상준은 피곤하다면서 거절하려 하나, 우비가 굉장히 비참한 표정을 짓자 상준은 죄책감이 증폭되어 결국 놀아주기로 한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애가 평소에 마음껏 뛰놀지 못해서 자신에게 푸는 느낌이라고.
우비가 제안한 놀이는 보물찾기였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우비가 숨긴 보물을 상준이 찾는 게 아닌, 우비가 마음에 들어할 보물을 찾기 위해 비 오는 세계를 떠도는 놀이다. 우비는 시야 확보라는 이유로 상준의 등을 마구 꼬집으며 상준 위로 올라탄다.[289]
그런데 우비는 보물을 찾는다고 해놓고 주위를 뒤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처음부터 갈 곳이 정해져 있었다는 듯 상준에게 방향을 구체적으로 지시한다. 그것도 꽤나 진지한 모습으로.
꽤나 높은 언덕까지 올라간 뒤, 상준은 멀리서 그림자들이 어디론가 천천히 걸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우비는 그 중 하나의 그림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는데, 우비는 그 그림자를 보고 보물이라고 중얼거린다. 상준은 저 그림자가 보물이라기엔, 우비가 굉장히 한이 많아 보이는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어서 의아해한다. 상준이 말하길 마치 어린애가 가져선 안 될, 감정을 삭이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이후 돌아가냐는 상준의 질문에 우비는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한동안 비를 계속 맞으며 멀어지는 그림자들을 바라본다.

《03: 안전교육》
* 해금 시기: 《기억의 저편 #1》
* 시점: 《기억의 파편 #1》 ~ 《기억의 저편 #8》 즈음으로 보인다.
어느 날 상준은 우비에게 식칼은 위험하니 그만 들고 다닐 걸 부탁한다. 우비는 어른은 식칼을 들고 다니면 안 다치냐고 묻는데, 상준이 어른도 다친다고 답하자 그럼 결국 둘이 똑같지 않냐며 따진다. 우비에게 말려버린 상준은 잠시 당황하다가, 위험하니 어른들도 안 들고 다닌다고 반박한다. 그런데 우비는 오빠야도 무기 들고 다니지 않냐며 재반박하는데, 상준이 안 들고 다닌다고 말하자, 쪼르르 달려와서 상준의 오른팔을 잡는다. 알고 보니 우비가 말한 그 무기란 것이 상준의 근육이었다.
상준은 자기보다 강한 사람이 널려 있으니 이런 건 무기도 아니라고 말하나, 우비는 그럼 자기같이 연약한 사람들은 식칼이라도 들고 다녀야 하지 않냐고 묻는다. 상준은 칼은 방어용이 아니니 태권도장을 다니라고 하는데, 우비는 애가 태극 1장 배운다고 도움 될 일 없고, 오히려 애들 체력 빼서 밤에 빨리 재우려는 수단인 거 다 안다고 답한다.
상준이 그걸 어떻게 알았냐며 당황하자, 우비는 그런 일을 겪은 애들이 지금 다 어른이 됐으니, 그럼 자기가 배워 봐야 하위 호환이라고 소리친다. 상준이 하위 호환이라는 단어는 또 어디서 주워들었냐고 묻자, 우비는 식칼을 휘두르며 이리저리 웃으면서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상준이 이곳이 애들 정서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할 무렵, 우비는 자기가 든 것이 식칼이 아니라는,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그리고 찔려보면 안다며 달려들다가, 잘 놀아주면 식칼 안 꺼내겠다고 말한다. 상준은 자기가 지켜주는데도 계속 꺼낼 거냐고 묻는데, 우비는 자기 방어를 타인에게 의존해선 혼자 남았을 때 대응할 수 없다고 답한다. 어려운 말이나 사실 비옷 속에 감춰둔 종이 쪼가리를 따라 읽은 것이었다.[290] 상준은 어쨋든 위험한 세계인 건 맞으니 식칼 정도는 들고 다니게 냅두기로 한다.
하지만, 우비가 든 칼이 식칼이 아니라고 한 말은 조금 신경을 쓴다.

《04: 점프 스퀘어》[291]
* 해금 시기: 《기억의 저편 #6》
* 시점: 《기억의 파편 #1》 ~ 《기억의 저편 #8》 즈음으로 보인다.
최근 우비는 상준을 놀래키는 장난을 하는 빈도가 크게 늘었다. 상준이 별 반응을 안 하자 우비는 요즘 협조성이 떨어진다며 질책하는데, 상준은 협조성이 무슨 뜻인지는 아냐고 묻는다.[292] 우비는 본체 상준은 얼굴만 없앤 채로 달려들어도 자지러졌다며 아쉬워하고, 그림자 상준은 본체는 그야 우비를 얼마 안 봤으니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우비가 다시 놀래키려고 소리를 지르자, 상준은 그냥 소리 지르면 안 놀라니 연출을 섞어보라고 조언한다. 우비는 처음의 마음을 유지할 수 없고, 결국 자주 보면 변해가는 거냐며 절망적인 표정으로 묻는다. 상준은 그런 말도 신문기사에 있었냐고 물어보지만, 우비는 얄미운 표정으로 까먹었다고 잡아뗀다.
상준은 언제까지나 그런 변명이 통하는 나이일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는데, 우비는 그게 몇 살까지냐며 갸우뚱한다. 상준은 아직 우비는 멀었다고 답하는데, 우비는 자긴 또래에 비해 작다는 말을 자주 들었으니 보이는 것만큼 어리진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상준이 몇 살이냐고 물어보자, 우비는 서로 만난 지가 언젠데 이제서야 나이를 묻냐고 질책한다. 그런데 상준이 사과하자 우비는 자기도 까먹었다며 웃는다.
그런데 곧바로 슬픈 표정으로 바뀌더니, 자신은 현재 체형에서 멈춰버린 상태라며 우울해한다. 그리고 그림자 상준이 있어줘서 다행이라며, 주섬주섬 후드를 쓰기 시작한다. 상준은 연민이 느껴져서 자신도 모르게 우비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데, 그순간 우비가 사라져 비옷만이 널브러진다.
상준이 당황하자마자 아무것도 없던 비옷 속에서 우비가 나타나 깜짝 놀래킨다. 이번엔 진심으로 놀란 상준은 가슴을 쓸고, 우비는 오빠 말대로 연출을 섞어봤다며 비웃는다. 하지만 우비는 이후, 상대를 걱정시키는 걸로 놀라게 하는 연출은 하지 말라는 상준의 설교를 들었다고 한다.

《05: 영원할 순 없어》
* 해금 시기: 《기억의 허상 #5》
* 시점: 《기억의 허상 #5》에서 우비가 병원 세계로 향하기 직전이다.
그림자 상준은 우비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자 전신을 복구받지 못한 채로 머리만 남은 상태였다. 우비는 머리만 남은 그림자 상준이 당황하는게 즐거웠는지, 들고 이리저리 흔들면서 좋아한다. 상준은 뇌가 흔들리는 거 같아 고통스러워한다. 하짐나 우비는 들기만 하다 들려지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고, 이젠 자기가 어른이라며 웃는다.
그리고 또 즐겁게 손을 뻗다가, 살짝 미안해졌는지 아까보단 살살 흔들기 시작한다. 상준이 들려지기만 하다 들어본 소감을 묻자, 우비는 즐겁다고 답하려다 무겁다면서 내려놓는다. 상준이 사람 머리는 약 4~5kg라고 tmi를 덧붙이는데, 우비가 사키로가 뭐냐고 묻는다. 상준이 볼링공에 비유하지만 우비는 볼링이 뭔지 몰라 갸우뚱한다. 결국 상준은 어른이 감당해야 할 무게라고 답한다.
어른이라는 말에 우비는 뭔가 생각을 하는 것처럼 주저앉는다. 그러곤 왜 그런 어른이 되버린 거냐고 묻는데, 상준은 자기한테 하는 소리냐고 따지지만 우비는 고개를 젓는다. 상준은 우비가 누구를 디스한 건지 감을 못잡고 의아해한다. 이후 우비는 훌륭한 어른이 되지 못하는 원인을 묻는데, 상준은 어린 시절이 엇나가는 것이라고 답한다. 우비는 만약 이미 어른이 됐으면 어떻게 되냐고 한번 더 물어보고, 상준은 그러면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 없으니 못 바꾼다고 딱 잘라 말한다.
우비가 점점 시무룩해하자, 상준은 혹시 과거를 바꾸고 싶냐고 묻는다. 우비가 긍정하자 상준은 어린애가 벌써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놀란다. 우비는 자신이 과거에 다르게 행동했으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하루라도 빠짐없이 생각한다고 고백한다. 상준은 우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며 진정시키는데, 어린애가 저런 말을 한다는 시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비는 그림자 상준을 만난 뒤로 이런 후회는 잘 안 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과거가 바뀌면 그림자 상준을 못 만나기 때문인데, 상준은 우비가 기특하게 자랐다고 생각해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우비는 상준이 우는 걸 보고 놀리다가, 상준의 머리를 들어올린다. 그리고 오빠야랑 있는 이 순간이 좋으니, 지금 이대로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하지만 이 소원은 이루지 못할 거 같지 않냐며, 글썽인 채로 묻는다.
이후 우비는 사라져 가는 비 오는 세계와 포효를 하는 피 묻은 발을 뒤로 하고, 현아를 만나기 위해 병원 세계로 달리기 시작한다.

《06: 오리는 삐약삐약.》
* 해금 시기/조건: 《사건의 지평 #5》 + 오리 스킨 구매
* 시점: 《기억의 파편 유리 #8》 ~ 《기억의 허상 #1》으로 보인다.
우비는 여느 때처럼 그림자 상준을 복구하던 도중, 자신이 무섭냐고 묻는다. 물어본 이유는 본체가 자길 보고 소름끼친다고 말해서 상처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상준은 우비 쪽이 먼저 놀래킨 거 아니냐고 묻는데, 우비는 그치만 상준은 무서워하거나 아파할 때 잘생기다고 느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답한다. 상준은 오싹해하지만, 우비가 그래도 본체가 안아주기 싫어하는 건 싫다며 침울해하자 복구된 팔로 꼭 안아준다.
우비는 안겨서 좋아하다가 곧바로 놀래키는데, 우비가 너무 놀래키기만 한다고 생각한 상준은 나긋나긋한 말투로 훈계를 시작한다. 우비가 좋아하는 동물을 묻는데, 우비는 삐약이라고 답한다.[293] 그리고 상준은 만약 우비가 삐약이를 안았는데 갑자기 파닥거리면서 놀래키면, 계속 안아주고 싶겠냐고 묻는다. 우비는 동물을 책임지겠다고 했으면 감당해야 한다고 답하자, 상준은 잠시 당황하더니 어디서 주워들은 말 쓰지 말고 우비의 생각을 말하라고 재차 묻는다.
그러자 우비는 기껏 안아주는데 파닥거리니 싫어할 거라고 솔직하게 답한다. 이에 상준은 우비가 인용하는 말이랑 본심이 정반대인 것에 이상하다고 여긴다. 그러다 우비가 그림자 상준은 자기가 놀래켜도 계속 안아주는 이유를 묻는데, 상준은 우비가 나쁜 마음으로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알아서 안아준다고 답한다. 우비가 본체 상준도 그걸 알아주면 된다고 말하자, 상준은 자신의 마음을 남이 눈치채주길 기다리며 묵히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에 우비는 어른도 그런 걸 눈치 못채니, 어른 별거 없다며 시무룩해한다. 상준도 어른 별거 없다며 맞장구친다.
우비는 본체가 자신의 빨간 비옷을 무서워했다고 알려준다. 이에 상준은 본체가 우비의 과거를 봤고, 빨간 비옷 입은 귀신 얘기도 많으니 그렇다고 설명해준다. 우비가 빨간 비옷 귀신이 많다는 말에 놀라더니, 어떤 년이냐고 묻는다. 상준이 당황하자 우비는 어떻게 생겼냐고 다시 물어본다. 상준이 보여줄 방법이 없다고 하나, 우비는 볼 수 있다며 바느질 하던 상준의 머릿속을 손으로 팍팍 헤집기 시작한다.
우비가 상준의 머릿속을 헤집으며 생각들을 읽어내는 걸 보고,[294] 상준은 그동안 우비가 써 왔던 어려운 말들의 출처가 자신의 머리를 헤집는 것이었다며 충격받는다. 이후 상준의 생각에서 빨간 비옷 귀신의 외형을 보는데, 우비는 못생겼고 많기까지 하다며 싫어한다. 그리고 곧바로 상준의 머리를 다시 바느질한다.
파일:그세계 우비4.png
다음 날, 복구가 덜 돼서 방치되어있던 상준에게 오리 코스튬을 입은 우비가 나타난다. 상준이 살짝 당황하다가, 비옷이 바뀌었다고 말하자 우비는 원래부터 이 비옷이었다고 소리친다. 그리고 기존의 빨간 비옷은 상준에게 덮어씌우고, 신난 모양인지 우비는 눈을 감고 몸을 흔든다. 상준은 새 거 입으니 좋냐고 묻고, 우비가 긍정하자 친구에게 하찮은 걸 주면 어떡하냐고 잔소리한다. 우비가 빨간 비옷도 좋은 거라고 반박하나, 다시 입겠냐는 제안에는 거절한다. 상준은 빨간 비옷엔 우비의 마음의 상처가 반영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갈아입으면 되는 거였냐며 황당해한다.
우비는 오리 코스튬을 입었지만, 상준이 오리라고 부를 때마다 이건 오리가 아니라 삐약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이에 상준은 우비와 말이 안 통하는 건 오랜만이라고 느끼고, 자신을 바느질해주는 우비에게 비옷을 바꾼 이유를 묻는다. 우비는 상대가 삐약이를 보면 방심할 거라고 답하는데, 상준은 그럼 본체에게 선보일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비는 이 옷은 일회용이고, 또 만들기도 못해먹겠고, 본체도 당분간 안 올거 같아 부정한다.
그리고 이 옷을 만든 이유는 순수하게 그림자 상준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비는 쓸쓸한 표정으로, 마치 엄마처럼 자신이 아는 오빠야는 오빠야 뿐인 것이 너무 좋았으나, 반대로 상준이 아는 빨간 비옷은 귀신을 포함해 너무 많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그 수많은 빨간 비옷 중 하나가 되니, 하나뿐인 노란 비옷의 모습을 기억해달라는 의도였다고 밝힌다.
우비의 어른스러운 생각에 상준은 감동하고, 우비가 정말 착한 아이지만 불행한 인생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상준은 빨간 비옷이여도 자신은 우비를 알아볼 수 있다고 답한다. 마치 우비가 수많은 그림자들 중에서 자신을 구분하는 것처럼, 다른 점이 있어서 특별한 게 아닌 특별해서 달라보이는 거라고 알려준다. 즉 외형이 아닌 사람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인데, 우비는 어려운 말이라 그런지 이해하지 못한다. 상준은 그냥 자신이 알아볼 수 있다고만 알아놓으라 결론짓고, 우비는 해맑게 긍정한다.
상준은 비 오는 세계인 이상 이곳엔 비가 계속 내릴 것이고, 우비의 비옷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나, 우비가 언젠가 행복해지는 날이 오면 그 자리엔 자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295]

《07: 뭘 해도 용서받는.》
* 해금 시기/조건: 《사건의 지평 #5》 + 고양이 스킨 구매
* 시점: 《기억의 파편 유리 #8》 ~ 《기억의 허상 #1》으로 보인다.
우비는 어느 날 그림자 상준에게 보물이 있냐는 질문을 한다. 상준은 본체도 아닌 자신은 없다고 말하는데, 우비는 뾰로퉁한 표정으로 상준 주변에서 얼쩡거린다. 그리곤 이 근처에서 보물을 찾아도 될 거 같다고 말하는데, 상준이 좀 애매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우비는 협조성을 지키라며 소리친다. 상준이 뭐라도 찾기 위해 일어서자, 우비는 근처에서 찾으라고 하지 않았냐며 상준을 가로막는다.
상준은 우비의 의도가 바로 여기서 보물을 찾으라는 것임을 눈치채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양이 모양 크리처를 들어올린다. 마치 그림자 형태의 고양이는 실제로 살아있으나, 우비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탓인지 그림자 형태였다. 상준은 고양이와 씨름한 뒤 애써 교감에 성공하고, 우비에게 고양이를 보물이라며 갖다준다.
그런데 우비는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왜 고양이를 골랐냐며 축 늘어진다. 상준은 혹시 보물이 우비였냐고 묻는데, 우비는 침울하게 긍정한다. 상준이 보물에 우비까지 포함됐으면 당연히 우비를 골랐다고 해명하나, 우비는 변명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상준은 우비가 이럴 때만 발음이 참 똑바르다고 생각한다.
우비는 왜 하필 꼬양이를[296] 골랐냐고 묻는다. 상준이 혹시 싫어하냐고 묻는데, 우비는 매우 좋아한다며 기뻐한다. 그 때 고양이가 상준을 깨물고 뒷발로 차기 시작하는데, 우비는 만약 자신이 상준에게 저랬다면 설교당했을 거라고 중얼거린다. 상준이 긍정하자 우비는 왜 꼬양이만 봐주냐고 묻는데, 상준은 동물이라 말도 안 통하니 어쩔 수 없다고 답한다. 그러자 우비는 사악한 표정으로 흉계라도 꾸미는 듯, 미친듯이 웃기 시작한다.
파일:그세계 우비3.png
얼마 후, 우비는 고양이 코스튬을 입은 채로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우비 왈 이제부턴 자긴 꼬양이니 뭘 해도 용서받을 수 있으며, 이제부턴 인생을[297] 날로 먹을 것을 다짐한다. 이후 상준을 치는 장난을 하기 시작하는데, 상준의 복근을 때려놓고 단단함에 놀란다. 이후 복근이 뚫릴 때까지 연타를 하나 결국 먼저 지쳐버린다.
이후 우비는 창가로 가서 물건들을 마구 넘어뜨리며, 뭘 해도 용서받는 꼬양이니 계속 말썽부릴 거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상준이 결국 자기 물건 아니냐고 묻자 우비는 뒤늦게 깨달았는지, 자신이 넘어뜨린 물건들을 처량하게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려고 해서, 상준은 우비를 그대로 안아든다.
우비는 헤실거리며 상준의 머리카락을 마구 잡아당기며, "죽어라 인간"이라고 외친다. 상준은 고양이는 그런 말 안 한다고 잔소리하나, 우비는 고양이랑 대화 해 봐서 안다며 부정한다. 이에 상준은 대화 해 봤으면 어쩔 수 없다며 꼬리를 내린다.
이후 우비는 손가락을 깨물려는 듯 입을 벌리다가, 이빨이 부러질 거 같다며 관둔다. 상준은 그렇게까지 세게 물려 했냐고 묻는데, 우비는 그래도 꼬양이는 야옹하면 다 용서받는다고 답한다. 상준은 실제 고양이는 야옹으로 안 운다고 알려주자 우비는 그럼 어떻게 우는지 궁금해한다. 그러자 상준은 실제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흉내낸다.[298] 우비는 오빠 좀 이상하다며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상준은 멋쩍은 듯 니가 부탁하지 않았냐고 말한다.
상준은 우비를 내려놓으며, 우비가 고양이 코스튬을 입은 이유를 묻는다. 우비는 자신은 잘못을 많이 했으니, 뭘 해도 용서 받을 수 있는 꼬양이가 되었다며 웃는다. 상준은 그건 우비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재차 강조하는데, 우비는 그 잘못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오늘 상준을 하루종일 괴롭히는 걸 말하는 거라며 웃는다.
상준은 꼬양이라 지적 못하지 않냐며 조롱하는 우비에게, 혼을 내려한다. 하지만 우비가 상준이 지난번 우비를 보물로 선택하지 않은 걸 다시 언급하자, 상준은 식은땀이 흐르더니 결국 사과한다. 우비는 그런 상준에게 괜히 맨날 진지하다며 비웃고, 상준은 이대로라면 우비의 화도 풀릴 거라며 받아들인다.
침대 위에서 방방 뛰는 우비를 보던 상준은, 문득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고 우비에게 질문을 한다. 이 세계에 돌아다니는 검은 것들은 잊힌 기억이고, 우비는 그 기억을 먹고 어느정도는 흡수할 수 있으니, 혹시 지난번 고양이를 잡아먹은 거냐고 묻는다. 우비는 눈치 빠른 오빠야가 좋다고 소리친 뒤, 고양이 그림자를 하고 달려들어 놀래킨다.
상준을 놀래킨 우비가 멀쩡한 고양이를 꺼내보이며, 이번엔 무서웠냐고 웃는다. 상준의 반응에 크게 만족하는 우비와, 가슴을 쓸어내리는 상준이 나오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우비와의 스토리는 완전히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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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병원은 모교의 등굣길에 있어 과거 자주 가로질러 지나갔다고 한다.[2] 방은 두 개의 문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였다.[3] 순간 병원 내에 존재하는 생체실험용 비밀 공간에라도 온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바깥 풍경까지 폐허가 된 걸 떠올리고 철회한다.[4] 참고로 상준은 슬라임에서 마치 사람 냄새 비슷한 것이 남을 느낀다.[5] 쇠파이프를 들고 자신감있게 덤빈 것도 그렇고, 사람의 팔을 꺾는 느낌이 어떤지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상준이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6] 대학생이라고만 말하지 정확한 나이는 상준도 나오지 않는다.[7] 상준은 대학생인 자기보다 훨씬 많으면 30대 아니냐고 의심한다.[8] 이전에 상준이 먼저 앞서서 문을 연 것도, 과거 여친이 먼저 문을 안 열어줬다는 이유로 헤어지자고 통보했기 때문이었다.[9] 다만 VIP 입원실은 이 건물이 맞다고 덧붙인다.[10] 처음 보는 번호였기에 아마 차단한 나머지 친구 폰으로 건 것이라 생각한다.[11] 여기서 상준은 운동은 하고 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이세계에 떨어져 죽을 위기를 겪은 날임에도 운동은 거르지 않는 진성 헬창인 것이 드러난다.[12] 여기서 순간 조건이 이별이라고 생각해 또 헤어져야 하는 거냐고 생각한다..[13] 이전부터 운동을 자주 한다는 묘사가 있긴 했지만 격투 실력까지 뛰어난 건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14] 전날 마주한 슬라임과는 색과 형태가 다르다.[15] 유리 조각을 뽑은 자리에서 피가 나오는데 현아는 그걸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본다.[16] 상준 말로는 보통 화가 난 걸 숨기려면 입은 웃고 눈만 그대로인데, 현아는 반대로 눈은 웃는데 입이 굳었다고 한다.[17] 참고로 나이프를 빙빙 돌리며 난동 부리는 사람들을 처리하는 게 귀찮다고 말한다.[18] 상준은 여기서 자긴 트럭에 치인 적 없다고 딴죽을 걸자 현아는 뉘앙스로 이해하라고 말한다.[19] 그 와중에 자신과 상준을 제외한 주변 배경은 모조리 검은 배경으로 찍혔다.[20] 그 와중에 찍은 사진은 SNS에 올려서 커플 사진 찍은 것처럼 자랑하라고 자신감 있게 말한다.[21] 그런데 음식은 애들이 좋아할 과자나 통조림 밖에 없다고 덧붙인다.[22] 여기서 상준은 군대에 갇히는 것도 힘들었는데 폐허에서 훨씬 오래 갇히는 건 더 참혹하다고 생각한다.[23] 이걸 말하자마자 멀리 있던 거대한 짐승이 자신을 쳐다본 듯한 기분을 느낀다.[24] 종이 하단에 낙서를 그린 이유는 서브 스토리에서 설명된다. 현아 서브 스토리 《01: 너도?》참고.[25] 이 에피소드 이후 실제로 빛 덩어리 하나가 인벤토리에 들어온다.[26] 상준은 지난번 작별 멘트도 그렇고 현아가 묘하게 중2병스러운 명칭과 대사를 즐겨쓰는 것을 느낀다.[27] 자신은 비 오는 세계의 파편만 주울 수 있으니 병원 세계의 파편은 못 줍는다는 말.[28] 하지만 그 인성머리를 떠올리고 확실히 정신이 아파 보이긴 했다고 생각한다..[29] 꿈에서 만난 기억이 어렴풋하게나마 남아있기 때문이다.[30] 그와중에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리고 이는 근손실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등 진성 헬창의 면모를 보인다.[31] 본인 말로는 조카들 때문에 그동안 애새끼는 악의 화신으로 알았다고 한다.[32] 상준은 순간 미국갔냐고 생각한다.[33] 이 때 우비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는 《우비의 세계 #4》에서 드러난다.[34] 과거 상준은 오른손잡이 양아치가 유튜브를 보고 사우스 포에 심취한 걸 본 적 있다고 한다.[35] 참고로 상준이 입으려는 스포츠 웨어의 상표는 유명 상표가 여러 개 뒤섞인 데다 한글도 의미없이 나열된 괴상한 모양이었다고.[36] 분무기의 물은 유리에 막혀 상준에게 닫지는 않았다.[37] 원래는 생각으로만 하려던 말이었지만 화난 나머지 실수로 나온 거라고 한다.[38] 이름이 유리가 아니라, 성이 '유'고 이름이 '리'다.[39] 참고로 유리가 이러다 보증까지 서는 거 아니냐고 묻자 상준은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도 보증 만큼은 자기도 안 설 거라며 단호하게 말한다.[40] 귀신을 두려워 한 이유는 단순히 안 때려지기 때문.[41] 이 말을 들은 상준은 그게 결국 귀신 아니냐면서 기겁하는데, 현아는 귀신은 어쨋든 아니라며 얼버무린다.[42] 그 와중에 현아의 악력이 왠만한 남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43] 상준은 예시로 민트초코 -> 치약을 든다.[44] 머리 괴물이 하늘의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사라지는 가짜 문이 어디로 연결되는지.[45] 너무 긴장한 나머지 깨문 손에선 피맛이 났다고.[46] 원래 이 시간에 나오지 않는다고 덧붙인다.[47] 병원 옥상에서 볼 땐 엄청 멀어보였지만 실제로 걸어보니 금방 도착했다고. 상준은 마치 거리감각이 상실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48] 현아의 부탁을 듣고 발을 뺄 수 있겠냐는 말.[49] 꿈 속에서의 기억이 어렴풋하게나마 남은 것이다.[50] 상준은 몰래 가져왔으나 아까 자기가 우산'도' 챙기냐고 물은 탓에 들켜버렸다.[51] 상준은 자기가 열려 했을 땐 꿈쩍도 안 한 문이 우비가 건드리자 곧바로 열리는 걸 보고 이상해한다.[52] 100 -> 92 -> 88 -> 70[53] 사실 우비는 100을 다 셌지만 1에서 0으로 넘어가지 않고 분수까지 세다 지고 만다.[54] 그 와중에 우비는 이기니까 좋냐고 따지는데, 상준은 그럼 인형을 건물 밖에 던저놓지 그랬냐며 어이없어 한다.[55] '목스님'..[56] 이불을 걷으면서 이불 안에 시체가 있는 걸 본 적 있다고 생각한다.[57] 목소리만 우비지 톤이 완전히 다르다.[58] 우비가 콩벌레 자세를 해야 살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정말이었다.[59] 상준은 아까 우비 목소리도 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60] 여기서 상대의 발만 보고도 필살기를 명준시키는 상준의 실력이 드러난다. 여기서 상준은 백스핀 엘보를 날렸는데, 경기에서 한 번도 못 맞힌 걸 성공시켰다고.[61] 매우 빠른 달리기, 거인화, 파편 흡수, 문 잠금해제 등.[62] 참고로 상준이 등에 가진 가장 큰 흉터는 손바닥으로 밀친 듯한 화상자국 두 개였다. 묘하게 프롤로그에서 우비가 밀친 것이 연상되는 부분.[63] 여기서 상준은 멘탈은 깨졌지만 체력은 아직 남았다고 한다. 그 많은 일을 겪고도 체력이 남는 걸 보면 정말 괴물같은 신체력을 지닌듯.[64] 눈치챘겠지만 《우비의 세계 #1》 시점에서 그림자 상준이 본체와 만나 전투하는 장면이다. 이번엔 본체 시점이라는 차이가 있지만.[65] 파편이 하나씩 전달될 때마다 기억이 떠오르는 모양인지 현아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66] 그 와중에 현아는 꽉 안아 주는 걸로 전부 퉁쳐질 줄 알았다며 자신감있게 말한다.[67] 키가 상준보다 작았기에 어깨를 짓누른다. 상준 말로는 체육관 아저씨들보다도 악력이 강하다고.[68] 상준이 늦장 부리다 자신을 다른 여친에게 뺏기면 어쩌냐고 묻자, 현아는 자신보다 외모 및 능력이 뛰어난 여친이 있을 리 없다고 웃는다. 그런데 상준도 반박하지 못한다.[69] 정리하면 현아는 격통을 감내해서 상준에게 상처를 낸 것에 대한 복수를 이룬 것이다.[70] 상준은 눈치채지 못한 채 자신이 최근 날카로워졌다고만 느낀다.[71] 거에 비친 유리의 몸이 그림자처럼 보였다고 한다.[72] 물웅덩이도 일시적으로 거울 역할을 할 수 있어서 학생 괴물이 나올 수 있었다.[73] 본래 생각만 했으나 정신이 없던 나머지 실수로 입으로 튀어나와 버린다.[74] 오늘 상준을 만난 타이밍이 학생을 피해 숨으러 가던 도중이라고 한다.[75] 그림 양식이 현아와 똑같은 걸로 보아 이전에 현아가 설명해준 걸 훔쳐본 듯. 참고로 유리 말로는 자긴 촉법이니 마음껏 스토커짓해도 된다고 단정짓는다. 물론 상준은 지랄한다고 쏘아붙인다.[76] 마치 하체 두 시간 조지고서 마지막 세트를 드는 기분이라고.[77] 아까 학교와 비 오는 세계에서 무서운 체험들을 해서 그런지 병원이 이젠 내 집 만큼 편안하다고 느낀다.[78] 빠진 어깨의 팔을 침대 밑으로 늘어뜨린 다음, 팔에 모래주머니를 달아 근육을 이완시켜 관절을 복구하는 치료법.[79] 참고로 탈골 문서에 나와있듯 이 치료법은 절대 해서는 안 되며, 사실 이 스팀슨 치료법도 일반인이 하는 건 추천되지 않는다고 한다.[80] 브라질리언 킥은 여러모로 높은 난도 때문에 실전에서 활용하려면 많은 연습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런 킥을 상준의 머리 높이까지 차서 상준도 깜짝 놀란다.[81] 상준은 유리의 요청에 따라 병원에 유리를 데려왔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82] 상준은 우비나 유리와 달리 현아에겐 쇄골 밑에 손을 대고 오래 기다려야 파편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이상해한다.[83] 유리에게 상준의 연인은 자신이니 넘보지 말라는, 일종의 도발을 한 셈이다.[84] 참고로 키스를 반사적으로 하는 건 전 여친 때문에 생긴 버릇이라고.[85] 아까 과감한 복장을 한 것도 상준이 안 온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라고. 상준이 멋있었다며 칭찬하지만 본인은 네가 멋있다고 말하는 게 다가 아니라며 부끄러워한다.[86] 만약 유리나 우비 때문에 못 돌아가는 상황이 나오면, 최악의 경우 현아가 상준에게 협박이나 살해를 명령할 수도 있다는 얘기.[87] 자신도 현아와 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란 걸 강조하기에, 현아와 마찬가지로 상준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어필하는 장면이다.[88] 실제로는 한 달 동안 운동을 쉬다 상하체 전부 조진 다음 날 수준으로 전신이 쑤셨다고.[89] 우비 왈 오빠는 아플 때 잘생겼다고..[90] 그와중에 상준이 어른이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말하자 우비가 오빤 항상 그런 식이라고 따진다. 상준이 애다운 말을 쓰지 않는다고 잔소리하자 우비는 애가 모를 수도 있지 않냐며 반박한다.[91] 이 때부터 상준은 피 묻은 발이라고 계속 부르기도 뭐하니 지부장이라는 호칭을 쓰기 시작한다.[92] 다만 예전과 달리 세계에 온 횟수가 늘어서인지 더 잘 들린다고 느낀다.[93] 여인의 말에 따르면 친척은 바자회라 속이고 데려왔다고 한다.[94] 미리 포교 대상자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한 다음, 그 사람의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속이는 방식으로 포교했다. 덧붙여 사람들이 말하지 않은 부분들은 교묘한 화술로 조금씩 알아맞췄다고.[95] 우비는 여기에 본체에게 처발리지 않았냐고 따진다.[96] 뒷조사 인력을 파견할 수도 있었으나 인건비가 드는 탓에, 이건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에게만 한다고.[97] 나중에 사이비가 직접적으로 일으킨 교통사고였다는 것이 드러난다.[98] 어린애 주제에 어른의 일에 왠 참견이냐는 식.[99] 엄마가 사이비에 빠지면서 생겨난 불화들.[100] 그래도 괴물일 경우를 대비해 언제라도 턱을 칠 수 있게 다른 손은 대비를 해 뒀다고.[101] 독 넣은 거 아니냐고 묻자 상준은 자기가 유리를 패는데 독을 쓸 필요가 있겠냐고 반박한다. 유리도 상준의 피지컬을 알고 있었기에 짜증내면서도 납득한다.[102] 요리 사고방식이 과거 알바한 급식실 기준으로 맞춰져 있기에 한번 요리하면 5인분 이상이 나온다고 한다.[103] 참고로 상준 본인은 현아가 부탁해도 절대 애를 팰 수 없다고 생각해 대화로 해결하는 걸 납득한다.[104] 자신도 현아의 탈출에 맞춰 연애 진도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105] 부끄러워하는 현아를 본 상준은 장난을 치는데, 현아가 요즘 만만하게 취급한다며 귀를 잡아당긴다.[106] 아프다곤 했지만 이전에 현아가 말한 것과 달리 상처가 하나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107] 어린 애라 차마 주먹을 날릴 수는 없었다고.[108] 상준은 수척한 여인의 눈이 단단히 정신 나간 것 같다고 생각한다.[109] 즉 우비가 입고 있던 비옷의 붉은색은 피로 물들어 생긴 것이었다.[110] 여기에 만난 적 없다는 건 누구나 그렇다는 의미심장한 말까지 덧붙인다.[111] 이전에 상준과 꽁냥대면서 거울 쪽을 바라본 것이 유리를 불러내기 위한 도발이었다.[112] 상준은 유리가 현아를 피하는 이유가 현아의 고의적인 연애 도발 때문이라고 지적하려다 관둔다.[113] 상준은 현아가 미묘하게 무서운 눈빛을 한 걸 보고 살짝 쫄아버린다.[114] 이에 상준은 자신의 약점이 귀신을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런데 현아는 이미 알고 있다고 답한다.[115] 상준이 모든 히로인을 한 번씩 직접 대면하는 첫 에피소드다.[116] 상준을 유리에게 빼앗길 까봐 초조해한 것.[117] 소고기가 있었다고. 상준 말로는 자길 구해줬으니 특별히 신경 썼다고 한다.[118] 상준은 상의탈의를 하고 자는 습관이 있다.[119] 상준은 배려가 미묘하다고 생각한다.[120] 상준이 몇 시 쯤에 열면 안 되냐고 묻자 벌써 열 생각부터 한다며 잔소리한다. 참고로 위험해지는 시기는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121] 상준이 말하길 계획적으로 준비한 거마냥 이불이 무지 컸다고.[122] 상준은 근육이 바이러스는 왜 못 막는 거냐며 한탄해한다..[123] 상준이 독백하길 본인의 자신감은 근육과 같은 몸 상태에서 솟아나기에 지금처럼 아프면 쫄보가 된다고 한다.[124] 상준은 왜 위험하게 밤에 돌아다니냐고 잔소리, 현아는 새벽에 문 열어주면 안 된다고 잔소리.[125] 머리 스타일이 어지간히 망가졌는지 현아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126] 참고로 일부러 열받게 해서 문을 열게 만든 건 의도였다고 말한다. 상준은 자신을 너무나도 잘 파악한 현아에 대해 살짝 무서워한다.[127] 이 때 부르는 자장가는 본작의 엔딩곡이다.[128] 참고로 상준이 그릇 다 먹고 나면 가져오라 하자 유리는 그걸로 뭘 할 거냐며 부끄러운 듯이 말한다. 상준이 설거지 때문이니 쓸데 없는 소리 말라고 하자, 유리는 재미없다는 티를 낸다.[129] 화장 안 했냐고 상준이 묻자 자긴 원래도 생얼이라고 지적한다.[130] 유리가 혹시 렌즈 밟아서 깨뜨리면 오빠를 밟을 거라 위협하는데, 상준은 네가 밟을 수는 있냐고 따진다. 그런데 유리가 자기가 울면 불쌍해서 밟혀줄 게 확실하다며 웃자, 상준은 아주 만만하게 본다고 투덜대면서도 부정하진 않는다.[131] 단순히 안경닦이로 벅벅 닦는 게 관리의 전부인 안경과 달리 렌즈는 세척을 비롯한 관리들을 해줘야하기 때문.[132] 이 말을 하는 순간 거울들에 학생들이 바라보는 광경이 스쳐지나간다.[133] 즉 유리는 현아와 키스하는 것까지 전부 감시하고 있었던 것.[134] 방을 옮길 생각도 했지만 그랬다간 한계점이 새로 생길 거 같아 관둔다.[135] 그 증거로 유리는 오빠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면 믿을 거냐고 묘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물론 상준은 질색.[136] 운동인치곤 땀내도 안 나고 쾌적하다며 좋아하는데, 상준 말로는 자기 포함 체육인들은 땀내 난다는 편견 때문에 항상 청소를 무진장 한다고. 이에 유리는 그냥 밖에서 운동하라고 제안하지만 상준은 굳이 그러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137] 상준이 그래도 샤워실은 된다고 덧붙이지만, 유리는 지금 이상한 생각하냐며 얼굴을 붉힌다. 이후 상준이 이해하지 못하자 혼자 얼버무린다.[138] 물론 상준은 유리의 성격상 단순 거짓말이라고 보진 않았을 듯하다.[139]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가장 짧은 에피소드다.[140] 상준은 엄마가 자신을 학대했음에도 호칭이 엄마에서 바뀌지 않은 것에 안타까워한다.[141] 학대 장면이 워낙 인상깊어서 그렇지 이 엄마란 사람도 타락하기 전에는 우비에게 안전 교육을 철저히 시키는, 훌륭한 부모였다는 점이 드러난다.[142] 상준은 놀라서 우비를 놓치면서도 다치지 않게 살살 내려준다.[143] 상준은 지난번에 현아가 준 환자복은 손세탁해서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멸망한 세계의 물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계 전환이 가능했던 걸로 보아 옷은 현관 밖 앞에 걸어놓았던 것으로 보인다.[144] 가전제품들은 작동이 안 되는 경우가 흔하지만 드라이기는 다행히 작동했다고.[145] 여기서 현아는 머리 묶는 포즈도 취하지만, 부가요소의 CG 모음집에는 해당 포즈가 수록돼 있지 않다.[146] 여기서 상준은 반말을 썼다가 허벅지를 가볍게 얻어맞는다.[147] 상준이 이걸 알아낼 수 있었던 우비가 입구를 막기 직전 썼던 붉은 글씨 방의 한계점과, 학교 세계의 한계점도 모조리 막힌 걸 봤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막았다기 보단 그냥 한 번에 전부 막았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기 때문.[148] 그렇다고 유리마냥 나가기 싫다는 건 아니었다고 말한다.[149] 여기서 현아는 상준이 입었던 부상 수준이면 진짜 탈출구가 있었어도 쉬게 냅뒀을 거라며 오해하지 말라고 덧붙인다.[150] 이전에 우비가 말했던 대로, 현아는 속내의 모든 부분을 말해주지 않았다.[151] 얼굴을 그림자로 바꿔서 놀래킨다.[152] 우비가 힘이 왤케 세냐는 말에 상준은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이렇게 된다고 답한다. 그런데 근육돼지가 되긴 싫은지 우비는 노골적으로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153] 외형 관찰의 목적은 그림자 상준의 복구인 것으로 보인다.[154] 여기서 상준은 자신을 오빠라고 칭하며 살갑게 대하지만, 우비는 자길 오빠라고 부르면 자괴감 안 드냐며 비웃는다.[155] 인터뷰를 한 듯 머리가 긴 중년 여교사의 사진도 실려 있었으며, 기자가 열정을 가진 건지 정보가 많이 적혀있었다고 한다.[156] 이 때 상준 눈에 보이지 않는 우비의 환영이 등을 밀었다는 묘사가 나온다.[157] 순간 상준은, 이전에 마음의 상처를 회복시키는 방법에 대해 현아와 토의하던 중, 현아가 마치 귀신 성불시키는 것과 비슷하다고 중얼거린 걸 떠올린다.[158] 진실이 모두 밝혀져 궁지에 몰린 상황이니, 이번이 상준과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애정표현을 요구한 것이다. 사실상 이번 행동으로 유리가 상준을 좋아한다는 것이 확정된 셈.[159] 험하게 다루지 않고 다치지 않게 내쫓기만 한다는 점에서, 유리가 여전히 착한 아이라는 걸 실감한다.[160] 참고로 현아는 옷이 다 안 말랐는지 지난번에 입고 부끄러워서 치웠던 코트 차림을 했다. 과거와 달리 그 차림을 당당히 보여주는 걸 본 상준은 현아가 자신에게 마음을 더 터놓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바로 어제 반나체 차림으로 만났으니 배꼽티 하나 정도는 별 거 아니겠지만..[161] 정확히는 학교 세계에서 막은 것이라 한다. 상준은 거울이 판자로 굳게 닫힌 게 마치 유리의 마음같다고 느낀다.[162] 여기서 현아는 자기가 유혹했던 어제도 야성을 발휘하지 그랬냐며 아쉬워한다..[163] 예전에 머리 괴물과 마주친 거기다.[164] 사실 이 추리는 진작에 했으나 이전까진 증명할 방법이 없어 묵혀두었다고 한다.[165] 멸망한 세계에 두 번째로 들어왔을 때, 현아를 돕겠다고 쉽게 장담했을 때, 우비의 세계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왔을 때, 그리고 지금.[166] 지난번 상준을 끌고 나간 그 세 마리다.[167] 이 전투신에서 격투 용어가 쏟아져 나오기에 지식이 없으면 내용 이해가 힘들 수 있다.[168] 유인이라는 걸 몰랐던 유리는 상준이 도망치는 줄 알고 냉소에 가까운 표정을 짓는다.[169] 바디 블로우는 을 치는 기술로 피격시 엄청난 격통이 뒤따른다. 그 이유는 간은 근육 하나 없는 말랑말랑한 조직이라 신경까지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170] 참고로 이 학생은 아까 덩치 학생을 제압하면서 썼던 기술을 카피했다고 한다. 너무나도 쉽게 잡히자 상준은 만든 지 얼마 안 된 나머지 약해서 유리가 숨겨둔 학생이라고 추측한다.[171] 여기서 유리 주머니에 있던 나이프 하나가 떨어진다.[172] 유리는 화를 내도 어깨를 계속 떨고 있었다고 한다.[173] 이걸 설명하면서 상준은 유리의 팔을 살짝 꼬집는데, 유리는 안 사귈 거면 터치하지 말라고 소리친다.[174] 유리는 화해했어도 자신의 시체는 그대로라 생각한 건지 불안한 표정으로 거리를 둔 채 따라왔다고 한다.[175] 그 와중에 유리는 자신의 뼈를 보여주는 게 부끄러우니 배려를 해달라느니, 상준이 뼈를 잡자 감각이 느껴지는 거 같다며 신음을 내는 등 오두방정을 떤다.[176] 《유리의 세계 #1》에서 상준이 운동장에서 뛰는 아이들을 보던 중, 교복이 두 종류라고 말했던 것이 복선이었다.[177] 참고로 기자가 열정인지 욕심인지 너무 자세하게 쓰는 바람에 소송에 걸렸다고 한다..[178] 《기억의 저편 #5 유리》에서 상준이 '유리'와 나눴던 마지막 친근한 대화라고 말했던 것이, 유리와의 절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해당 인물이 유리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 표현인 것.[179] 상준은 결국 상처가 잔뜩 나서 현아에게 혼나겠다고 생각한다.[180] 상준은 네가 CRT를 아냐며 놀라지만 유리는 그럼 오빠가 아는 것도 이상하다고 반박한다.[181] 다만 건물 모양은 좀 다르다고 덧붙인다.[182] 유리가 깔끔하게 정리한 것을 보고 상준은 왠지 학교에서 필기 잘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183] 현아와 자신에게 모두 차이는 악몽 꾸라는 내용.[184] 《현아의 세계 #1》의 내용이다.[185] 상준의 방이 한계점으로 바뀐 것과, 상준의 의사에 관계 없이 자고 일어나면 세계가 전환되었던 것도 눈의 소행이었다.[186] 상준 말로는 처음엔 요리 실력이 파멸적이었지만 가르쳐 주니 의외로 곧잘 따라했다고 한다.[187] 참고로 유리라는 이름은 맞은편 고등학교의 칼부림 사건 피해자의 것을 도용한 것이지만, 상준은 유리가 그 피해자와 별개의 인물이라는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유리라고 부른다. 이유는 유리 외에는 마땅히 부를 만한 이름이 없어서라고.[188] 굳이 형인 이유는 자길 이성으로 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189] 참고로 상준이 현아를 위해 가져온 구형 노트북은 유리에게 뺏기다시피 빌려준 상태라고 한다. 이유는 유리도 노트북 써보고 싶어서라고.[190] 유리는 여기서 지난번을 '권태기 왔을 때'로 비유한다. 상준은 권태기 뜻은 아냐면서 황당해하는 반응을 보인다.[191] 당연하지만 날이 없는 방향이다.[192] 자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며 웃는데, 상준은 자신이 준 물품들로 학교 세계에 살림을 차린 유리가 할 말은 아니라고 느낀다.[193] 그 와중에 유리는 '굿 럭 ㅗ'라는 메모를 써서 던져놓았다.[194] 너무나도 소중하게 안자 상준은 이상한 생각도 안 들었다고 한다.[195] 일반적인 승용차 뿐만 아니라 승합차도 한가득 있었다고 한다.[196] 이때부터 우비의 목소리도 학교 세계의 학생들처럼 기괴하게 변조된다.[197]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상황이기에, 현재의 우비가 아니라 전신이 그림자로 이루어진 환영이다.[198] 현아가 잠을 못자 비몽사몽할 때 사용했다. 이에 현아는 아이같은 말버릇을 완전히 고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씁쓸하게 웃는다.[199] 검은 것들이 사람 형상을 띈 것도 이런 이유여서였다.[200] 딱 하나 운동 기구가 지나치게 많은 건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물론 자기 관리가 철저한 건 멋지게 느낀다고 한다.[201] 이제 탈출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 참을 필요가 없다느니, 둘이서 아이를 낳으면 상준이 떠나도 혼자가 아니게 된다느니 등.[202] 초반에 상준이 본 네 발 짐승은 사실 매우 거대한 손이었으며, 현아가 병원 세계에서 행사할 수 있는 영향이었다. 이곳에 머문 기간이 우비나 유리보다 압도적으로 길어서인지 그 힘이 둘보다 훨씬 강하다. 상준은 예전에 걱정했던 대로 저것과 싸우게 되었다고 생각한다.[203] 눈이 손의 움직임을 잠시 멈췄으나 현아의 포효 한 번으로 모조리 검은 것들이 밀려나버린다.[204] 원래는 놀란 척하고 위로받으려 했는데, 상준이 다쳐서 오자 그 생각은 접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곧바로 칭찬을 요구한다.[205] 참고로 유리는 동일인물인 걸 알았음에도 여전히 현아와 우비를 별개 인물인 것처럼 말한다.[206] 여기서 유리는 우비가 큰 게 현아니까 그럴 수 있다고 말하다, 자기도 크면 현아가 될 거란 생각을 했는지 표정이 썩는다.[207] 상준이 자기 자신인데 말이 심하지 않냐고 따지자 유리는 자신인데 뭐 어떠냐고 반박한다.[208] 병원 세계가 세상의 중심이자 시작점이므로.[209] 사이비에게 학대당한 기억인 우비보다도 먼저 사라졌기 때문.[210] 아까 현아가 멸망한 세계에 상준의 내면 세계가 형성될 수 있던 이유가, 자신이 이곳으로 진입한 순간 상준이 옆에 있어서라고 말했기 때문.[211] 여기서 유리는 어차피 자기랑 현아는 동일인물이니 켕기는 게 생길 수 없다는 기묘한 논리를 내세운다..[212] 같이 있고 싶어서 핑계까지 대며 붙잡는 것, 조금만 다쳐도 크게 걱정하는 것, 여유로운 척하며 기습에 약한 것. 이에 유리는 자기가 현아 만큼 예쁘냐고 묻는데, 상준은 자신감까지 똑같다고 생각한다.[213] 붕대는 현아가 유리를 자신과 다른 인물로 만들기 위해 갖다붙인 소재니, 현아와 유리의 이질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붕대가 사라졌다는 건 곧, 유리가 현아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214] 이에 우비는 자신은 그 시절의 현아지만, 우비와 유리도 섞여있는 것으로 생각해달라고 말한다.[215] 현아가 나갈 수 없다고 확신했던 그날 밤, 현아는 이 우비를 본 것이었다.[216] 그림자 상준은 본체를 보고 얼굴을 찡그린다.[217] 굳이 식칼인 이유는 찔러넣기 좋아서라고..[218] 그 와중에 분위기 잡았던 우비는 가슴팍까지 손이 안 닿았기에 올려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상준은 허당끼도 똑같다고 생각한다.[219] 여기서 그림자 상준이 본체를 적대했던 이유가 나오는데, 그 이유는 순수하게 자신이 본체가 아니라는 데에서 나오는 열등감 때문이었다고 한다.[220] 여기서 사이비가 발각된 경위가 드러난다. 당시는 선거철이었고, 사이비에 다니던 정치인의 상대 후보가 조사 도중 알아냈다고.[221] 외형은 잠옷 차림의 우비다.[222] 여기서 매점 아주머니가 과자를 공짜로 줬다고 한다. 이전에 현아가 끼니를 매점의 과자로 때운다고 했던 걸 보면, 이것도 기억에 반영된 듯.[223] 이거 때문에 현아의 팔에는 피가 흐를 정도의 상처가 생긴다. 프롤로그에서 상준이 현아에게서 봤다던 상처의 정체이기도 하다.[224] 엄마가 말하길 안 입게 되어 쓸모 없어진 옷을 태워야 주처의 곁으로 갈 수 있다고.[225] 이때 현아의 얼굴이 그림자로 바뀌었다가 돌아온다.[226] 여기서 엄마는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진짜처럼 빨간 피를 흘린다.[227] 이제부터 프롤로그의 장면과 연결된다.[228] 즉, 상준이 교통사고를 그대로 당했으면 마음의 상처를 가지게 되고, 현아와 같이 멸망한 세계에 입성했을 것이다. 아직 치이지 않았음에도 멸망한 세계 진입 직전의 상태가 되는 걸로 보아, 세계 자체가 약간의 예지 능력이 있는 듯.[229] 여기서 줄곧 이름이 우비로 나오다가 처음으로 현아로 나온다.[230] 여기서 비옷을 식칼로 찌른다.[231] 현아는 상준을 위험해 처하게 한 것도 언급하는데, 상준은 의도가 어쨌든 결과만 보자고 말한다. 현아가 왜 이렇게 친절하냐고 묻자 상준은 그저 현아에게 받은 거라 답한다.[232] 상준은 쇠파이프로 생각한다.[233] 현아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나서야 상준을 끌어들인 것도, 눈이 감당할 수 있는 건 한 명 뿐이기 때문이다.[234] 이 과정에서 현아는 공무원의 일 처리 속도에 대한 신뢰를 완벽히 잃었다고 한다.[235] 상준은 약속과 달리 혼자 갔냐고 묻는데, 현아는 일이 좀 있었다며 미안하게 웃는다.[236] 작중에선 누나가 아니었다고만 서술되어 연하인지, 동갑인지 불명이었으나, 작가 본인이 연하가 맞다고 확정지었다.[237] 현아가 상준의 손을 잡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상준은 카페가 선불이라 다행으로 생각한다.[238] 간호사가 사과를 깎아줄 때 썼던 칼이다.[239] 정확한 도주 이유는 이 과정에서 현아가 비명을 질렀고, 주변에 발각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후 동료 신도들이 경찰에 발각되었다고 말한 걸 보면 결국 체포되었을 듯.[240] 이 때 상준을 칠 예정이었던 차는 아까 엄마가 도주하면서 탄 사이비 신도들의 차다.[241] 이곳에서는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으로 새로운 인격이 탄생하는데, 트라우마도 없으면서 일부러 특정 기억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상당히 고된 작업이었을 것이다.[242] 참고로 자신이 이곳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를 알면 의심받을 거라 생각해, 상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정보의 출처를 사람들을 탈출시키면서 알아낸 것이라고 속일 수 있기 때문.[243] 현아가 탈출할 수 없다는 말을, 비 오는 세계가 완전히 막혀 들어갈 수 없다는 말로 이해했다.[244] 해당 공간은 과거 상준이 현아에게 밀쳐 넘어진 그 횡단보도로, 현아가 멸망한 세계에 진입한 그 장소이기도 했다.[245] 이때 현아가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걸로 보아 확실한 듯.[246] CRT 모니터를 학교에서 써본 것이 아닌 단순히 알기만 한 것일 수도 있으나, 유리가 "요즘엔 이렇게 구식인 학교는 없다"고 말했고, 그 예시로 든 것이 CRT이기에 그럴 가능성은 낮다. 구식 학교의 생김새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247] 만담은 본편에도 많으나, 그 중 길어져서 자칫하면 본편 스토리가 늘어질 수 있는 것들을 따로 서브 스토리로 빼놓은 듯하다.[248] 이는 본작의 퀘스트도 마찬가지.[249] 본편만 깨도 총 28개의 파편을 모을 수 있다.[250] 스킨 구매에 파편은 히로인 별로 12개가 필요하다. 스킨 자체는 중후반에 다 해금된다.[251] 탈출 후에도 유리와 우비가 생존한 이유.[252] 상준은 취향이 보인다고 답한다.[253] 무슨 포켓몬인지는 드러나지 않았다.[254] 그런데 상준 말로는 그렇게 최근에 나온 포켓몬은 아니라고 한다. 이에 현아가 생각보다 아주 오래 갇혔다는 걸 실감한다.[255] 이런 식으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거라며 차분한 척한다.[256] 참고로 본작이 발매되고 한 달 뒤 한지우포켓몬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켓몬 마스터우승 이후 방영된 최종장에서도 지우가 달성하긴 커녕, 그것이 정녕 무엇인지조차 드러나지 않고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었다.[257] 참고로 현아가 할 얘기가 있다며 부르자 상준은 깜짝 놀란다. 그 이유는 전 여친과 있었던 트라우마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에 상준은 아직도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자신이 싫어진다고 느낀다.[258] 현아 말로는 자기가 어릴 때 몰래 먹어본 커피가 이거라, 자기 입장에선 나름 추억의 맛이라고.[259] 《유리의 세계 #5》에서 침대 위에서 애정 표현을 하다가, 상준의 자제력으로 연애 진도를 멈춘 것.[260] 이 때 현아의 얼굴은 여유로운 미소였으나 말끝은 살짝 떨렸다고 한다.[261] 그 와중에 정말로 예시가 맞냐고 재차 확인한다.[262] 사람 형태인 기존과 달리 이 녀석들은 슬라임 형태다.[263] 현아는 맨손이었음에도 아파하는 기색이 없었기에 상준은 아마 작아서 무는 힘이 약한 것으로 생각한다.[264] 지금 검은 것들은 교감이 아니라 반감을 느끼는 거 같다고..[265] 상준은 대강 예상을 했다고 한다.[266] 상준은 시작부터 우리가 할 소리가 아닌 말부터 한다고 생각한다.[267] 상준은 순간 의미를 오해해 안아주고 현아도 잠깐 좋아한다.[268] 나이프는 연습용 나이프라고 한다.[269] 아예 상준을 도련님이라고 칭한다.[270] 여기서 유리는 이렇게나 리얼한데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다며 불안하다고 덧붙이는데, 상준은 그럼 주머니에 팽이를 넣어보라는 조언을 해준다. 참고로 유리 말로는 팽이가 여기선 멈춘다고.[271] 굳이 조금인 이유는 그렇다고 붕대를 감는 운동선수를 본 적이 없어서라고.[272] 그 와중에 네가 감던 걸 쓰는 거냐고 묻자 유리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당연히 새 붕대로 감겠다고 말한다.[273] 상준이 붕대에 정신 조종 기능이라도 있냐고 물었기 때문.[274] 여기서 상준의 팔을 찰싹 때리는데 상준이 때린 부위에 힘을 주자 계속 때린다.[275] 표준 표기는 '대미지'가 맞다. 데미지 항목 참고.[276] 사실 걸어도 되는데 안아든 이유는 유리가 무섭다고 움직이지 않으려 했기 때문.[277] 여기서 상준은 계속된 호의가 권리인 줄 알까봐 걱정한다.[278] 사실 물 패트병은 비었다고 한다.[279] 그러면서 아픔에 공감은 안 해주냐고 묻는데 상준은 당당하게 그렇다고 답한다.[280] 머릿결에 어지간히 자신 있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고 한다. 이에 상준은 살짝 미안하다고 느낀다.[281] 손이 다칠 걸 걱정해서 팔을 잡을 순 없었다고.[282] 유리가 가져다 준 적 있는 콜라만 가져오라 했으나 상준은 그러지 않은 콜라도 가져왔다. 이유는 막상 찾다보니 재밌어서라고.[283] 유리는 체육 창고에서 꺼내온 매트와 상준이 가져다 준 걸 깔아서 눕고 있다고 한다.[284] 굳이 이렇게 물은 이유는 붕대를 비롯한 머리가 유리의 심리를 반영한다고 생각해서라고.[285] 그 와중에 오라버니 칭호를 쓰다 말고 다시 상준을 오빠라고 부른다.[286] 상준은 무시하려 했는데 유리가 쫄았냐고 비웃는다.[287] 상준은 유리가 정말 최면이 먹혔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에 좀 미안해한다.[288] 디테일인지 자신이 유리가 아니란 걸 안 뒤로 촉법이라는 말을 안 썼다고.[289] 상준은 우비가 꼬집는 게 아팠는지 그냥 숙여달라고 말하지 그랬냐며 속으로 중얼거린다.[290] 상준은 식칼에 감아둔 신문지를 읽은 것으로 추측한다.[291] 올바른 표기는 점프 스케어다. 점프 스퀘어는 일본의 만화잡지 이름.[292] 여기에 신문 보고 설명하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인다.[293] 상준이 병아리라고 부르자 우비는 병아리 아니고 삐약이라며 소리친다.[294] 상준이 손가락이 뇌를 헤집는 ASMR이 울려퍼진다고 생각하자, 우비는 그게 무슨 뜻이냐며 갸우뚱한다.[295] 결말에서 그림자 상준은 본체에게 흡수되고, 우비가 해피엔딩을 맞는 걸 본체가 지켜보기에 그림자 상준의 소원은 이루어진다.[296] 고양이를 꼬양이라고 발음한다.[297] 상준은 고양이가 됐는데 묘생이라 안 부르냐며 지적한다.[298] "우웨에으엥", "므아아아앍", "곩곩곩곩곩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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