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서재호 |
출생 | 1981년 11월 16일 |
서울특별시 강동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現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 |
사망 | 2004년 8월 11일 (향년 22세) |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 | |
발인 | 2004년 8월 14일 |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 |
장지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은마길 129 청아공원 |
신체 | 185cm, 78kg, A형 |
가족 | 부모님, 형 |
종교 | 천주교(세례명: 다니엘) |
학력 | 서울토성초등학교 (졸업) 풍납중학교 (졸업) |
데뷔 | 2002년 7Dayz 1집 앨범 |
소속사 | WS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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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로, 그룹 7Dayz와 원티드의 멤버로 활동했다.2002년, 보컬 그룹 7Dayz의 멤버로 데뷔했다. 타이틀 곡 <내가 그댈> 을 필두로 발라드 곡으로 나왔지만, 당시 월드컵 분위기 때문에 크게 히트하지 못하고, 그룹은 해체에 이르게 되었다.[1] 그룹 해체 이후 M.Boat의 박경진 이사에게 픽업되어[2] 세븐데이즈로 함께 활동했던 하동균과 포유(4U)로 활동했던 김재석(가수), 프로듀싱 멤버인 전상환을 영입해 원티드를 결성했다.
2004년 6월 발매된 1집 <발작>이 R&B 열풍에 힘입어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했고, 인기가 올라가며 1달만에 첫 단독콘서트도 개최하며 팬층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2004년 8월 11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서 공연을 마치고, 다음 공연지인 강원도 강릉시 경포대로 카니발 승용차를 타고 이동 중,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앞서가던 5톤 트럭을 추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사망했다.[3][4] 향년 22세. 같이 탔던 하동균과 전상환도 부상을 입었고, 김재석도 1달 가까이 의식불명 상태로 수술을 받는 등 큰 부상을 입었다. 장례식은 3일 뒤인 8월 14일 치러졌으며, 세븐데이즈로 함께 활동했던 이정과 최영준, 린, 거미, 휘성 등 동료 가수들이 참석했다.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른 뒤 화장하여, 경기도 고양시 청아공원에 안치되었다.
경찰이 매니저를 상대로 벌인 조사 결과, 매니저가 졸음운전을 하다가 추돌사고를 낸 것으로 결론지었다.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2. 그 외
출생지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태어난 후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시이지만, 다시 유년기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에서 보냈다. 서울토성초등학교와 풍납중학교를 졸업했는데, 개그맨 김영준과 초등학교-중학교 동창이다.[5]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OST로 부활의 <별>을 부를 예정이었다. 원래 이 곡은 김태원이 작사/작곡해 김재기가 녹음을 앞두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그가 사망하자, 본 앨범에는 가사 없이 연주곡으로 들어갔다. 이 후 서재호가 취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녹음을 앞두고 있었지만, 교통사고로 녹음을 마치지 못하고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김재기와 서재호 모두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기일도 8월 11일로 동일하다. 서재호가 사망하면서 <별> 은 하동균의 허밍이 들어간 연주곡으로 발매하게 되었다. 2011년 11월 28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에피소드로 나온 적도 있다. #
가수 겸 배우 장나라가 서재호의 팬이었다고 한다. 드라마 스케줄 와중에도 콘서트를 관람할 정도로 열성팬임을 자처했었고, 사고가 터졌을 때 매우 슬퍼했다고 당시 소속사가 기사를 통해 이야기했을 정도.
가수 린과 친분이 있었다. 서재호의 비보를 전달 받은 날 린은 당시 스케줄이 있었는데, 화장 안한 얼굴에 검은 색 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하였다. 무대에 올라왔을 때 이미 눈이 부은 상태였는데, 울면서 노래를 하여 대중들도 안타까워 했다. 그외 본인의 싸이월드에 소중한 친구를 잃어서 슬프다며 심정을 토로하였다.
세븐데이즈와 원티드로 함께 활동했던 멤버들은 지금도 명절마다 서재호의 가족들을 찾아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정은 대한민국 해병대에서 군생활을 할 때도 휴가 때마다 꼬박꼬박 서재호의 납골당을 찾기도 했으며, 2012년 나는 가수다 2에 출연했을 때 서재호를 추모하는 의미로 김광석의 <그날들>을 불렀다.
서재호의 사고 이후 원티드는 사실상 해체 수순에 접어들었지만, 2007년 기존 원티드 멤버들과 이정이 함께 콜라보 앨범 형태로 원티드의 2집 앨범을 발매하였다. 이 앨범에는 서재호가 녹음실에서 연습용으로 불렀던 《Fly Me To The Moon》도 수록되어 있다.
한편, 그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숨졌을 때, 동방신기의 팬클럽인 카시오페아 중 악질 팬덤들이 내뱉은 우리 오빠 대신 죽어줘서 고맙습니다라는 희대의 망언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망언은 같은 날 동방신기도 사고가 있었는데, 시간차이(약 4시간)와 장소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 교통사고가 난 것으로 오해한 팬들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일로 동방신기 팬들은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몇몇 강성팬들은 사과는커녕, 몰라서 그랬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식의 답변을 내놓아, 아이돌 팬덤들의 심각한 단면을 더 대중들에게 상기하는 꼴이 되었다. 참고로 이들은 동방신기의 집에 침입하고 괴롭히는 등, 사생팬 짓도 마다하지 않아서 국제 망신을 시키는 동시에 동방신기 멤버들을 힘들게 하였다.
서재호를 추모하기 위해 휘성은 본인 정규 3집에 dear my friend라는 곡을 냈으며, 피처링에 이정과 하동균이 참여했다. 또한 밴드 부활도 그의 1주기를 몇 달 앞두고 발매된 정규 10집에 서재호를 추모하기 위해 Second 8.1.1[6]라는 연주곡을 냈다.
만약 지금까지 생존해있었다면 이정, 하동균 등과 함께 한국 R&B 소울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로 큰 인기와 위상을 쌓았을지 모르기에 팬들의 아쉬움이 유독 크게 남아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같은 사유로 요절한 먼데이키즈의 김민수와 함께 더 큰 가능성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보컬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7]
3. 관련 문서
[1] 같은 팀 멤버로는 이정과(당시에는 본명인 이정희로 활동했다) 하동균, 최영준(당시에는 YJ라는 예명으로 활동)이 있었다.[2] 2000년대 초중반 YG엔터테인먼트와 제휴를 맺고 활동했던 그 회사 맞다. 휘성, 빅마마, 거미 등이 이 회사 출신이다.[3] 사고 당일은 원티드의 데뷔 100일이었다. 이 때문에 팬들이 100일 기념 정모를 준비하다가, 급히 이를 취소하고 함께 조문을 가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4] 공교롭게도 이들이 사고를 당한 지 4시간 뒤, 사고 지점에서 5km 떨어진 곳에서 동방신기도 앞서가던 승용차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동방신기 멤버들은 가벼운 경상을 입고 무사했지만, 승용차 운전자인 41세 남성은 숨졌다. 한 때 이게 와전되어 동방신기와 원티드의 차량이 충돌해 교통사고가 난 걸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5] 토성초-풍납중 코스는 송파구 풍납동에 사는 학생들이 흔히 진학하는 루트이다. 모모랜드의 제인 역시 토성초-풍납중을 졸업했으며, 서재호의 16년 후배이다. 이로써 서재호 본인이 출생한 병원이 22년 뒤 본인의 장례식이 거행된 병원이 된다.[6] 1993년에 그와 같은 날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재기를 추모하기 위해 정규 3집에 수록된 8.1.1의 후속곡이다.[7] 실제 원티드로 함께 활동했던 하동균과 전삼환을 비롯해 세븐데이즈 출신인 이정, 서재호와 절친했던 린, 거미, 휘성, 마스타 우 등은 2000년대 중후반 가요계에서 R&B 열풍을 주도했을만큼 대형급 보컬리스트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