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60~1980년대에 군대에서 주로 불린 구전가요. 군대의 특성상 성욕을 충족하기 어려우므로 성욕이 넘친 군인들이 만들어 낸 노래다.
백보지는 음모가 없는 여성 성기를 뜻하는 속어이다.
2. 가사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 만드는(공장) 아가씨 하루에 한 갑 두 갑 낱갑이 열두 갑 치마 밑에 감추어서 정문을 나설 때 치마 밑에 불이 붙어서 보지털이 다 탔네 아~아~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는 백보지 백보지! |
3. 커버
남보원이 부른 '성냥공장 아가씨'. 가사가 별로 건전하지 않은 내용이라 남보원은 문제 된 부분을 적절하게 가려서 음반으로 취입했다.
2002년 꽃봉오리 예술단(김지선, 김미진)이 이 곡을 커버한 적이 있다. 물론 원본의 가사가 불건전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 부분이 빽바지로 바뀌었다.
정희라의 앨범 중 노골쏭 4에 이 곡과 제목이 같은 노래가 있다. 가사는 원본처럼 매콤한 노래다. 또한 뚱보의 떡맛에서도 꽁트를 맡은 사람이 이 곡의 일부를 부르다가 다른 사람에게 저지당하기도 한다.
2011년 백영규가 발표한 동명의 곡은 앞서 말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노래로, 건전한 사랑 노래이다.
4. 기타
- 유래는 가사 그대로 인천의 성냥 공장이다. 1917년경 일본 기업이 제물포에 성냥공장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경공업은 1960년대까지 주로 경인선을 낀 경인가도 연변에서 발달했는데 특히 위험한 화학물질인 인을 취급하는 공장은 서울 인근이 아니라 원료 수입이 편리한 인천의 공업지대 일대에 세워졌다. 그리고 당시에는 라이터나 조명기구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기라 성냥의 고정적인 수요가 있었고,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 60년대까지는 성냥 한 갑이 쌀 한 되에 맞먹을 정도로 고가품이었다. 그렇다보니 성냥 공장에서 성냥 한두 갑을 빼돌려 휴무날 시장에 내다 파는 것으로도 쏠쏠한 돈벌이가 되었던 것이다. 다들 못 살던 그 시절을 반영한 시대의 애환이 녹아 있는 셈.
-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성냥은 아무데나 그으면 불이 붙는 일명 '딱성냥'이다.[1] 100년도 더 전에 적린을 사용한 성냥이 발명되었지만, 한국에서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백린을 좀 더 함유한 딱성냥이 많이 쓰였다. 심지어 이 딱성냥은 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에게 앉았다 일어났다 얼차려를 시키는 와중에 호주머니 속에서 자연발화할 정도의 물건이었다, 치마 속에 숨겨 나오다 걸음걸이만으로도 자연발화하기 좋은 물건이었다.
- 지역과 부대에 따라 2절 3절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괴랄한 가사들이 유래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부천의 설탕공장, 부산의 유리공장, 다꽝(단무지), 간장공장 등등으로 지역과 상품만 다를뿐, 숨기고 나오다 큰일난다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며다. 2002년 꽃봉오리 예술단이 커버한 가사에는 여의도 비리공장으로 바뀌었다.
- 1990년대에 몇몇 노래방에선 가사 없이 반주곡만 수록했다. 노래방 반주기 중 오성 패미송이 이 곡도 수록했지만, 가사 내용이 불건전한 탓에 연주곡으로만 내놨다.
- 김무스의 인천 아가씨도 이 곡을 모티브로 하여 나왔다. 물론 가사도 새롭게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