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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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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국가철도 및 전용철도 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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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oulmetro1_icon.svg 수도권 전철 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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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
(60.7km, 27.73%)
서울 지하철 1호선
(7.8km, 3.56%)
경인선
(27.0km, 12.33%)
경부선
(93.6km, 42.76%)
천안직결선
(3.1km, 1.42%)
장항선
(19.4km, 8.86%)
병점기지선
(2.2km,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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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km,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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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목록 | 운행 계통(급행 / 광명셔틀) | 역사 | 연장 | 문제점 | 사건 사고
<colcolor=#fff><colbgcolor=#0054A6> 경인선
京仁線 | Gyeongin Line
파일:경인선 노선도.svg
소유자 대한민국 정부
국가철도공단에 소유권 행사 위임
운영기관 한국철도공사
노선번호 301
노선명 경인선 (京仁線)
종류 간선철도, 일반철도
광역전철
노선
전 구간
영업거리 27.0㎞
궤간 1,435㎜
역수 21
기점 구로역
종점 인천역
급전방식 단상 교류 25,000V 60㎐ 가공전차선
신호장비 ATS-S2
선로최고속도 구로 - 부평: 100km/h
부평 - 간석: 75km/h[1]
간석 - 동인천: 100km/h
동인천 - 인천: 80km/h
선로 수 4 (구로 - 동인천)
2 (동인천 - 인천)
개업일 1899년 9월 18일
운영노선 수도권 전철 1호선
화물열차
1. 개요2. 연혁3. 일반열차 운행 문제4. 지하화 문제와 추진 과정5. 기타6. 역별 승하차 통계7. 역 목록8.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수도권 전철 1호선 인천구로(→ 연천) 전면 주행영상[2]
서울특별시 구로역인천광역시 인천역을 연결하는 총 길이 27km의 철도 노선.

노면전차를 제외한 한반도 최초의 철도 노선이자[3] 현재 존재하는 한국 철도 노선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유일하게 19세기에 만들어졌다. 고속도로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가 최초의 전 구간 개통 고속도로 노선인 경인고속도로를 제치고 고속국도 1호선을 부여받았지만, 일반철도만큼은 경인선이 1번(301)을 부여받았다. 경부선은 302번, 고속선의 경우에는 서울-인천 사이에 고속선이 없기 때문에 경부고속선이 1번(101)이다.

개통 당시에는 노량진이 기점이었으며 1900년 7월 경성까지 연장되었으나, 1905년에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구로 이북 구간이 경부선 구간에 편입되고 나머지만 경인선으로 남았다. 그 흔적은 경부선 용산 - 구로 구간 중 경부3선에 남아있는데 경부3선은 사실상 경인선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부3선을 타는 열차는 대부분 1호선 경인선 계통인 용산-동인천 급행/특급열차이며, 경부선 열차는 1호선 영등포-광명 셔틀열차밖에 없다.

이 노선을 운행하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역번호는 경원선-서울 지하철 1호선-경부선(서울~구로)-경인선을 본선으로, 경부선(가산디지털단지~두정)-천안직결선-장항선(천안~신창)을 지선으로 부여되어 있다.

2. 연혁

경인선 단선철도 시대
1897년 경인선이 주한미국전권공사 주도로 착공
1898년 주한미국전권공사 측이 경인철도합자회사로 경인선 건설 양도
1899년 경인선 완공
노량진 - 인천 개업[4]
1900년 한강철교 완공 및 서울-노량진 연장개통[5]
1906년 우각동 폐지
1908년 제물포-동인천 직선화 개량[6]
1910년 주안 개업
1959년 제물포 개업
경인선 복선철도 시대
1965년 구로-인천 복선확장 완공
1967년 역곡 개업
1969년 구로 개업
경인선 복선전철 시대
1974년 구로-인천 전철화 완공
전 구간 수도권 전철 1호선으로 변경[7]
일반열차 폐지
1984년 신도림, 백운 개업
1987년 중동 개업
1988년 온수 개업
1994년 간석, 도원 개업
1995년 구일 개업
1996년 신길, 부개 개업
1997년 소사 개업
경인선 2복선전철 시대
1999년 구로-부평 2복선화 개량
경인선 급행전철 운행 개시[8]
2001년 도화 개업
2002년 부평-주안 2복선화 개량
경인선 급행전철 1차 연장[9]
2005년 주안-동인천 2복선화 개량
경인선 급행전철 2차 연장[10]
2016년 경인선 급행전철 정차역 추가[11]
2017년 경인선 특급전철 운행 개시[12]
2022년 경인선 특급전철 정차역 추가[13]

2.1. 착공과 개통

1897년 3월 22일 대한제국은 주한미국전권공사 겸 기업가인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에게 사업을 맡겨 기공하였다. 미국이 기공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대한제국 정부가 '국내철도규칙’(1896. 7. 15.)을 반포하면서 철도규격을 표준궤로 채택하였는데, 미국 철도가 표준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사업권을 가져오기 위해 대한제국 정부 조직이 매우 불안정하여 조만간에 나라로서 지위를 상실할 것이라고(경술국치) 대놓고 소문을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미국의 대한반도 투자를 크게 위축시켰다. 그리고 1898년에 자금난을 겪어 공사가 잠시 중단되었던 것을 당해 5월 10일에 일본의 '경인철도합자회사'가 양도받아[14] 1899(광무 3)년 9월 18일에 완공시킨다(철도의 날). 당시 일본의 철로는 협궤였기 때문에 협궤로 바꾸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이미 표준궤로 공사가 진행중이었고 대륙과 연결이 용이하단 이점 덕에 협궤논의는 무산되고 계속해서 표준궤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 같아서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에서 연기는 반공(半空)에 솟아올랐다. 수레 속에 앉아 영창을 내다보니 산청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도는 듯하고, 나르는 새도 따르지 못하였다. 대한(大韓) 이수(里數)로 80리 되는 인천을 순식간에 당도하였는데 그곳 정거장에 배포한 범절은 형형색색 황홀 찬란하여 진실로 대한(大韓)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였다.
1899년 9월 19일자 독립신문

당시 노선은 제물포(현 인천역) - 축현(현 동인천역) - 우각동[15] - 부평 - 소사(현 부천) - 오류동 - 노량진이었다. 1899년 개통 당시 노량진역은 임시 정류장이었다. 이후 한강철교 완공과 함께 용산을 지나 경성까지 가는 노선이 완공되었다.

개통 당시 길이는 33.2km, 최고 속도는 30km/h였다. 모갈 증기기관차가 운행하였다. 노량진까지 소요시간은 1시간 40분으로, 표정속도는 19.8km/h였다.[16] 당시 운임은 상등석 1원 50전, 중등석 80전, 하등석 40전이었다. 쌀 한 가마니가 4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으므로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상등석이 60,000원, 중등석은 32,000원, 하등석은 16,000원 정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인천 - 노량진 구간 소요시간은 완행열차로 58분, 동인천 - 노량진 구간 소요시간은 급행열차로 약 43분, 특급열차로 38분이고 운임은 현금으로 2,350원[17]으로 소요시간은 특급 기준 40%정도로, 운임은 하등석 기준 11%정도로 감소한 셈이다.

급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선형이 매우 좋지 못했고[18], 그래서 개통 10년도 못 된 1907년과 1908년 사이에 대규모 개량공사가 진행되었다. 이 개량공사를 통해 현재의 주안 - 동인천 구간 선형이 크게 변경되었다. 미카형 증기기관차가 미국에서 직수입 혹은 일본을 통해 간접 공수되어 투입되었으며,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운행되었다.

2.2. 일제강점기

개화기 경인선은 명목상 사철이지만 사실상 국유철도로 기능했는데 한일합방조약 이후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설치되고 정식으로 일본의 국유철도가 되었다. 1904년 경부선 개통으로 경인선은 실질적으로 경부선 지선이 되었지만 조선 수위도시 서울과 외항 인천을 연결하는 노선으로써 그 당시부터 수송량이 많았다.

1922년의 기사에 따르면, 무려 1910년(메이지 43년)에 조선총독부 철도국 당사자가 경인선 전철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사한 적이 있었으며, 1920년(다이쇼 9년) 시점에는 경인선의 복선화를 전제로 한 전철화에 대한 계획이 상당히 진척되어 있었다고 한다.[19] 경인선 전철화에 대한 여론 또한 1920년대부터 존재했다.[20] 이후 1926년에는 당시 한반도 최초의 전기철도금강산선을 건설 중이었던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에서 경인선의 복선전철화를 제안한 적이 있었다.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의 계획은 일본 본토의 사철들처럼 별도의 노선을 건설하는 대신, 기존 경인선을 복선화하여 금강산전기철도 측에서 위임경영할 계획이었다.[21][22] 이에 1926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는 전철화 계획은 거절했으나, 복선화 계획은 확정했다.[23]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는 1930년대 초까지는 경인선 전철화에 반대했으나,[24] 1930년대 후반 일제가 병참기지화 목적으로 경인통합을 추진하면서 철도국 또한 경인선 복선전철화를 재추진하게 되었다.[25]

1939년에는 경인선 복선전철화 계획이 더욱 구체화되었는데, 1940년 착공하여 1942년(쇼와 17년)에 준공할 계획이었다. 일본 본토보다 앞서 급행전차를 운행하는 것을 목표로 직류 3,000V 전철화를 채택하였다.[26] 배차간격은 기존 1시간 간격에서 20분 간격으로 단축하고, 소요시간은 40분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전동차는 총 20편성을 제작하여 2량 1편성으로 병결할 계획이었다. 여기에 경성역(현 서울역) ~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간 약 1km 구간의 지하철 건설 및 경인선 전철과 직결운행까지 계획되어 있었다.[27] 그러나 일제가 전시체제에 돌입하면서 경인선 전철화 계획은 중지되었다.[28] 이와 별개로 경인공업지대의 중요성 때문에 경인선의 복선화는 계속 추진되었으며, 1940년에 측량까지 진행되었다.[29][30] 그러나 복선화마저 전시체제 속에서 우선순위가 밀리게 된 끝에, 경인선의 복선화, 전철화 모두 광복 전에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도 현재처럼 선택정차 운영이 비효율적인 것으로 판단해 모든 역을 필수정차역으로 운영했다.[31]

2.3. 해방 이후~1974년

1945년 해방으로 일제가 한반도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경인선은 해방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운영을 보였으며, 미군정에 의해 운영되다가 정부 수립후 교통부가 관할하고, 1963년에 대한민국 철도청이 출범하면서 철도청이 경인선을 관할했다. 1947년 미군정 운수부 철도국에서는 광복 이후에 공사 중단된 중앙선 제천 ~ 풍기 간 전철화와 함께 경인선 전철화를 재추진하기로 결정하였으며[32] ,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9년에도 교통부(현 국토교통부)에서 경인선 전철화 계획을 재차 결정했다.[33] 그러나 6.25 전쟁으로 경인선 전철화 계획은 다시 무산되었으며, 경인선도 조선인민군에 의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1955년 한국 정부는 일제가 이루지 못한 경인선 복선화부터 다시 계획하기 시작했다.[34] 4.19 혁명 이후 1960년 장면 내각에서도 경인선의 복선전철화 계획을 수립했으며,[35][36] 5.16 군사정변 이후 집권한 군정 내각에서도 경인선 복선전철화 계획을 계속 추진했다.[37] 이후 전철화 공사는 미국 국제개발처에서 계획을 재고할 것을 요청하여 착공하지 못했으나,[38] 복선화 공사는 1963년에 착공했다.[39] 부족한 재정 상황에서도 어렵게 추진된 끝에, 마침내 1965년 구로 - 인천 구간 복선화가 완공되었다.[40] 이 시기에 증기기관차 - 객차 편성을 대신해 일본에서 니가타 디젤동차를 도입하여 운행시간 단축을 이뤄내기도 하였다.[41]

1960년대에도 모든 열차가 모든 역에 정차했다.

2.4. 수도권 전철 1호선

1970년부터 박정희 정부에서 1기 지하철 계획과 수도권 전철화를 계획했고, 1971년 경인선 전철화에 착공했다.[42]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과 동시에 전철화를 하여 직결된 수도권 전철 1호선에 편입되었다. 이후로 일반열차는 비정기적 관광열차 외에는 운행하지 않으며 통근형 전동차가 운행 중이다. 기록상 일반열차의 마지막 운행일은 1974년 8월 14일이다. 초기에 중장년층 이상 연령대에서 주로 기억하는 '식빵' 이라는 별명을 가진 초저항 전동차가 전철화 직후 주로 운행했다.

이후 통행량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1999년에 구로 - 부평 구간이 2복선화되었고, 2002년에 부평 - 주안, 2005년에 주안 - 동인천 구간이 2복선화되었다.[43]

초저항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는 2020년에 모두 퇴역되었으며, 현재는 한국철도공사 31x000호대 전동차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전동차가 투입되어 운행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수도권 전철 1호선, 수도권 전철 1호선/급행, 수도권 전철 1호선/운행 계통 문서를 참고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3. 일반열차 운행 문제

2023년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경인선을 경유하는 정기열차의 운행 빈도는 다음과 같다.(단위: 회/일, 작성기준: 편도, 주중)
2023년 경인선 운행구간별 열차운행빈도
운행구간 선로용량 일반여객 전동차 화물열차 운행총계
구로 - 동인천(1선) 320 0 98 0 98
구로 - 인천(2선) 263 0 105 0 105
복선 전철화 이후 경인선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일반열차가 운행하지 않는다. 서울-인천에 일반열차를 운용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데, 설령 한다 하더라도 무궁화호 기준으로도 서울 - 영등포 - 부천 - 부평 - 동인천 - 인천만 서게 되어서 소요시간은 짧지만 수익성이 크지 않으며 동인천 특급에서 정차역을 극한으로 줄인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일반열차용 저상홈이 없어 입선 가능한 일반열차는 고상홈 정차가 가능한 ITX-청춘, 누리로, ITX-마음 뿐이고, 경부선 측의 선로 용량이 그렇게까지 넉넉하지도 않아 일반열차를 넣을 틈이 사실상 없다. 결정적으로 경부선 일반열차선에서 경인선으로는 연결선로가 없다. 여객열차가 들어가려면 영등포 등지에서 평면교차를 통해 전철 급행선로나 일반선로로 들어오거나 구로삼각선을 이용해 구일로 들어와야 한다.

수도권 전철 개통 이전에는 보통 등급 일반열차(비둘기호 등)가 통근열차 역할을 하며 운행되었으며, 지금도 아주 가끔 관광용 단체 무궁화호가 새벽 및 밤시간대에 들어오기도 한다. 때문에 철도통계연보에서 수송실적이 잡히는 역들이 간헐적으로 있다. 스크린도어 위치와 일반열차 출입문 위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스크린도어가 없는 1선(급행선)에서 승하차한다. 주로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위한 전세열차로서 투입되는 경우인데, 철도 패키지 여행 특성상 대부분 승객은 중년 여성들이다. 내장산 단풍 구경을 위해 임시 새마을호가 경인선에 들어와 패키지 관광객들을 가득 태우고 정읍으로 떠난 적도 있으며, 이런 임시열차는 직통으로 다니거나 아니면 중간에 한 역에 정차해 다른 관광객들을 더 태우고는 바로 목적지로 가는게 주 패턴이다. 임시 무궁화호 목적지도 정선이나 곡성과 같은 관광지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개찰구는 비상용 게이트를 개방하거나 자동개집표기를 비상 모드로 전환하여 통과한다.

4. 지하화 문제와 추진 과정

경인선 인근 지역 중 상당수는 부설 이후부터 무계획적인 시가지가 들어서 시가지 단절이 심하다. 이어져야 할 지선도로들도 단절되어 있고 이로 인해 간선도로의 정체도 심각한 수준이다. 횡단하는 도로(과선교, 지하차도 등)를 건설하기도 어려워 자동차로 건너기도 힘들며, 이외에도 소음도 매우 심하다.

경인선은 수도권 전철 운행 개시 이래 상상 이상의 수송량을 보이고 있다. 이 엄청난 수송량에 대처하기 위해 2복선이 건설되었지만[44], 이는 시가지 단절을 더 심화했다.

그러한 이유로 지하화를 원하는 주민들이 꽤 있으며, 이로 인해 인근 지방자치단체국회의원의 필수 공약이기도 하다. km당 건설비를 1,500억으로 계산하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9호선 1단계 구간 km당 건설비가 약 1,400억). 비용을 감수할 정도로 편익이 있는지가 문제이다.

송도에 인천신항이 건설되면서 인천항을 이용하는 화물운송은 장기적으로 수인선, 인천신항선,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로 옮겨갈 예정이기 때문에 경인선 지하화로 인해 생기는 화물운송 제약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온수소사, 부평 등 지하로 교차하는 부분에서는 공사 과정이 고난도이다.

현재 기본 계획은 선로를 현 선로 지하에 건설하고 현재 선로 부지는 매각하여 사업비에 충당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선로 부지가 아닌 부일로, 경인로 등의 인근 도로에 지하철처럼 건설될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인천시에서는 복복선보다는 복선+대피선 건설쪽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애초 정부가 그 많은 돈을 들여 경인선을 2복선화 한 것 자체가 엄청난 수요때문이었음을 감안하면 대체노선이 없이 복선으로 선로를 줄이는것은 사실상 불가하다.

위 내용은 어디까지나 추진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 것일 뿐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부천, 재정자립도도 높고 그 많았던 빚도 다 해소했지만 그래도 아직 거대 토목 사업을 벌이긴 부담스러운 인천, 재정자립도는 높지만 그만큼 쓸 곳이 많은 서울[45] 모두 교통 예산이 풍족하지 않고 국비를 사용하려 해도 예타조사에서 통과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 국비 투입이 거의 불가능하므로[46] 민자 유치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요금이 비싸진다는 단점이 있어 쉽지 않다. 인근에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시행된다면 교통분담금 명목으로 사업비를 조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사업과 동시에 인근 재개발을 동시에 시행할 가능성도 높다.

2016년 3월 12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타당성 분석은 추진한다고 한다.[47]

2016년 10월 25일, 사업 타당성 연구 용역에서 경제성이 낮아 철도부지를 일반 재산화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와 경인선 지하화가 난관에 봉착했다고 한다.[48]


2024년 3월, 정부는 경인선 철도와 경인고속도로부터 지하화를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철도 지하화 특별법이 통과됨에 따른 것으로 특히 경인선과 경인고속도로는 정부 차원에서 선도 사업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경인고속도로의 지하화도 같이 추진된다. 그러나 이 지하화 특별법은 가덕도 공항 특별법과 달리 무조건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는 사실 아니며 기존 경인선 연선의 지하 시설물+연약지반[49] 등의 문제로 곧이곧대로 실현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5. 기타

노반이 지나는 서울, 부천, 인천 구간 중에 큰 산이 없어서 터널이 없다. 백운~동암 구간, 부평아트센터 근처를 통과할 때 짧게 있긴 하나, 이 곳은 2015년 이후로 새롭게 조성한 공원이 들어선 것이라서 터널이라 보기에는 약간 미흡하다. 평야 지형을 따라가는 지질적 장점도 있었지만 처음에 경인선이 부설되던 시기만 하더라도 터널을 굴착하는 기술이 매우 미흡했기에 산이 있으면 그 산을 돌아서 가는 형태로 철로를 깔았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역들은 스크린도어가 열릴 때 "안전문이 열립니다." 나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 라는 방송이 나오는데 음질이 매우 안 좋다. 이는 GS네오텍(소사역 등)이나 현대엘리베이터(부평역 급행 승강장 등)의 스피커 부품 문제이다.

경부철도가처럼 경인철도가라는 철도찬가도 있다.

간선도로인 경인로가 나란히 지어져 있다. 그래서 경인선과 경인로 모두 상시 혼잡한 상태를 유지 중이며, 혹여나 경인선이 기후 등의 이유로 운행이 중단되었을 경우 경인로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에 빠지며, 부평역부터 영등포역까지 완전히 겹치는 88번은 특히 더욱 그러하다.

서울 남서부와 인천 남동부를 이어주는 제2경인선 계획이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됐다.

지금은 옛말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경원선과 더불어 저항제어 차량이 자주 다녀서 발열 등의 문제로 인해 승객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었다. 오히려 2024년 기준으로 그때와는 정반대로 대부분의 차량들이 신차들 위주로 다니고 있는 중이다. 이 신차들이 옛날 저항차량들을 대체하기 위해 투입됐기 때문이다.

6. 역별 승하차 통계

2022년 기준 경인선 일평균 승하차 순위이다. 환승역의 경우 경인선이 아닌 다른 노선의 승하차객은 제외한다.
수도권 전철 1호선(경인선)
노선 총합
역수 구간 역당 일평균 이용객 일평균 승하차량 2022년 승하차량 최다 이용역 최저 이용역
20개 구일 ↔ 인천 24,582명 491,633명 179,446,173명 부천 도원
일일 이용객 수
역수 구간 10만명 이상 5만명 - 10만명 2만명 - 5만명 1만명 - 2만명 1만명 이하
20개 구일 ↔ 인천 없음 1개역[50] 9개역[51] 7개역[52] 3개역[53]
수도권 전철 1호선(경인선)
역별 순위
순위 역명 일평균 승하차량 2022년 승하차량
1위 부천 60,462명 22,068,479명
2위 역곡 49,525명 18,076,562명
3위 송내 47,820명 17,454,195명
4위 부평 46,047명 16,807,042명
5위 개봉 38,235명 13,955,852명
6위 주안 36,043명 13,155,641명
7위 동암 28,274명 10,320,112명
8위 동인천 25,198명 9,197,367명
9위 소사 20,727명 7,565,534명
10위 오류동 20,703명 7,556,425명
11위 제물포 18,750명 6,843,606명
12위 중동 16,289명 5,945,333명
13위 부개 15,086명 5,506,293명
14위 구일 13,392명 4,888,258명
15위 온수 13,017명 4,751,268명
16위 백운 12,437명 4,539,624명
17위 간석 10,348명 3,776,947명
18위 도화 7,300명 2,664,399명
19위 인천 6,218명 2,269,527명
20위 도원 5,764명 2,103,709명

==# 역명코드 #==
역명코드 한글 한자 로마자 비고
0824 파일:Seoulmetro1_icon.svg 구 로 九 老 Guro
0801 파일:Seoulmetro1_icon.svg 구 일 九 一 Guil
0802 파일:Seoulmetro1_icon.svg 개 봉 開 峰 Gaebong
0803 파일:Seoulmetro1_icon.svg 오류동 梧柳洞 Oryu-dong
0804 파일:Seoulmetro1_icon.svg 온 수 溫 水 Onsu
0805 파일:Seoulmetro1_icon.svg 역 곡 驛 谷 Yeokgok
0806 파일:Seoulmetro1_icon.svg 소 사 素 砂 Sosa
0807 파일:Seoulmetro1_icon.svg 부 천 富 川 Bucheon
0808 파일:Seoulmetro1_icon.svg 중 동 中 洞 Jung-dong
0809 파일:Seoulmetro1_icon.svg 송 내 松 內 Songnae
0810 파일:Seoulmetro1_icon.svg 부 개 富 開 Bugae
0811 파일:Seoulmetro1_icon.svg 부 평 富 平 Bupyeong
0812 파일:Seoulmetro1_icon.svg 백 운 白 雲 Baegun
0813 파일:Seoulmetro1_icon.svg 동 암 銅 岩 Dongam
0814 파일:Seoulmetro1_icon.svg 간 석 間 石 Ganseok
0815 파일:Seoulmetro1_icon.svg 주 안 朱 安 Juan
0891 파일:Seoulmetro1_icon.svg 도 화 道 禾 Dohwa
0816 파일:Seoulmetro1_icon.svg 제물포 濟物浦 Jemulpo
0817 파일:Seoulmetro1_icon.svg 도 원 桃 源 Dowon
0818 파일:Seoulmetro1_icon.svg 동인천 東仁川 Dongincheon
0819 파일:Seoulmetro1_icon.svg 인 천 仁 川 Incheon

7. 역 목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경인선/역 목록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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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외부 링크



[1] 곡선반경이 400R인 급커브 구간이다.[2] 구로부터 서울역까지는 경부선, 서울역부터 청량리까지는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부터 연천까지는 경원선이다.[3] 노면전차를 포함하면 1899년 5월 20일 개업한 서울 전차가 최초다.[4] 노량진, 오류동, 부천, 부평, 우각동, 동인천, 인천 개업[5] 남대문, 용산, 영등포 개업[6] 12월 선로 이설[7] 남영, 대방, 개봉, 송내, 동암 개업[8] 당시 용산-노량진-대방-신길-영등포-신도림-구로-역곡-부천-송내-부평 구간 운행[9] 부평-동암-주안[10] 주안-동인천[11] 개봉, 제물포[12] 당시 용산-노량진-신도림-구로-부천-송내-부평-주안-동인천 구간 운행[13] 영등포, 역곡[14] 2019년에 경인선 부설권을 갖기 위해 미국과 꾸준히 합의했다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경인선 日완공 11년전 朝-美 논의’ 외교문서 나왔다」, 문화일보, 2019-02-13[15] 도원이 가장 가깝다. 미국 공사 호러스 뉴턴 알렌의 별장 가까이에 역을 짓는다는 이유로 선로까지 꺾어가며 지었다. 부설권이 일제로 넘어가자 존재 이유는 사라졌고 1906년에 폐역했다. 선로도 1908년에 이설하여 더 이상 역 터에 선로는 존재하지 않는다.[16] 지금은 특급 기준 48km/h까지 나온다.[17] 이 중 1회용 교통카드는 보증금 500원이 들어있다. 선후불교통카드 사용시 1,750원이다.[18] 관련 게시글, 출처: 네이버 블로그[19] 「京仁電鐵可能(경인전철가능) 工費約二百萬圓(공비약이백만원)」, 동아일보, 1922-05-02[20] 「電氣鐵道(전기철도)와海水浴塲(해수욕장)의 速成大會開催(속성대회개최)」, 조선일보, 1921-08-25[21] 「京仁間鐵道(경인간철도)에 電化問題擡頭(전화문제대두)!」, 조선일보, 1926-11-19[22] 이 당시에는 일본에도 교류전철화 기술이 없었으며, 1920년대 후반 일본 본토의 국철과 사철들은 직류 1,500V로 전철화하는 추세였다. 금강산선 또한 직류 1,500V로 전철화한 것을 볼 때, 경인선도 직류 1,500V로 전철화가 계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23] 「宿題(숙제)인 京仁線(경인선) 複線(복선)은 確定(확정)」, 조선일보, 1926-12-09[24] 「京,仁電化問題(경, 인전화문제) 局長反對(국장반대)로難涉(난섭)」, 조선일보, 1930-03-21[25] 「京城仁川一體計劃(경성인천일체화계획) 京仁線(경인선)을複線電化(복선전화)」, 동아일보, 1938-05-05[26] 같은 시기 경원선 복계 ~ 고산 간 및 중앙선 제천 ~ 풍기 간 전철화 계획과 같은 규격이다.[27] 「電鐵化計劃遂具體化(전철화계획수구체회)」, 동아일보, 1939-07-22[28] 「京仁線電化中止(경인선전화중지)」, 조선일보, 1939-11-05[29] 「京仁複線遂具體化(경인복선수구체화)」, 조선일보, 1940-02-21[30] 경부선의 복선화와 맞물려 경성역(현 서울역) ~ 영등포역의 2복선화도 추진되었으며, 이 구간은 1944년에 완성되었다. 경인선 복선화가 완료되면 한강철교 중에서 기존의 A, B선은 경인선이, 새로 지은 C선은 경부선이 사용할 계획이었다.[31] 「1944년 조선열차시각표-경부, 경의, 경인, 만포, 평원선」, 네이버 블로그[32] 「京仁線電化計劃(경인선전화계획)」, 조선일보, 1947-01-18[33] 「京仁線(경인선)을 電化(전화)」, 조선일보, 1949-09-03[34] 「京仁線復線計劃(경인선복선계획) 總工事費三億餘圜計上(총공사비삼억여환계상)」, 경향신문, 1955-02-04[35] 「서울 仁川間(경인간)에 「電鐵(전철)」, 경향신문, 1960-12-03[36] 해당 기사의 사진에 등장한 열차는 일본국유철도가 1956년부터 도입한 151계 전동차이다. 당시에는 도입된 지 4년 밖에 안 된 신차였다.[37] 「京仁線(경인선)39粁(천)에豪華版電鐵(호화판전철) 우선漢江橋(한강교)부터」, 조선일보, 1962-01-21[38] 「京仁線電鐵化計劃(경인선전철화계획)에蹉跌(차질)?= 美側(미측)서再考(재고)요청」, 조선일보, 1963-03-08[39] 「京仁線(경인선) 複線(복선)기공」, 동아일보, 1963-11-22[40] 「京仁間複線(경인간복선)개통」, 동아일보, 1965-09-18[41] 「대한뉴스 제 538호-경인복선 개통」, KTV 아카이브, 2016-11-14[42] 「朴大統領(박대통령)참석 京仁電鐵(경인전철)기공식」, 매일경제, 1971-04-08[43] 「대한뉴스 제 1881호-경인 전철 복복선 착공식」, 아까이브, 2017-01-02[44] 「대한뉴스 제 1881호-경인 전철 복복선 착공식」, KTV 대한늬우스, 2017-01-02[45] 서울시 차원에서는 경인선 인근이 외곽 주거 지역인데다 이미 재개발된 곳이 많아 효용도 크지 않고 재원 확보도 어렵다.[46] 인근 지역의 낙후화가 사회적 문제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전제가 붙을 것이다.[47] 「'경인선 지하화' 탄력?…7월 타당성·기술 검토 끝난다」, 아시아경제, 2016-03-12[48] 「사업비 대안 부딪친 '경인선 지하화' 난항」, 인천일보, 2016-10-25[49] 인천 앞바다에 해저 단층대가 있다.[50] 부천[51] 개봉, 오류동, 역곡, 소사, 송내, 부평, 동암, 주안, 동인천[52] 구일, 온수, 중동, 부개, 백운, 간석, 제물포[53] 도화, 도원,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