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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1호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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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oulmetro1_icon.svg 수도권 전철 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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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표
1.1. 신설구간 개통1.2. 운행구간 변경
2. 역사
2.1.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과 경인선/경부선/경원선 전철화2.2. 서울 지하철 1호선 구간2.3. 경인선 구간(동인천/인천행)2.4. 경부선/장항선 구간(병점/서동탄/광명/천안/신창행)2.5. 경원선 구간(의정부/양주/동두천/소요산/연천행)2.6. 추가 연장 계획2.7. 과거 운행 구간

1. 연표

[ 범례 ]
* 원: 경원선

1.1. 신설구간 개통

<rowcolor=white> 시기 해당 사항 역 개수 계통 비고
1974.08.15. 성북역~청량리역 3
청량리역~서울역 8 1
서울역~수원역 16
구로역~인천역 11
1979.02.01. 율전역 1
1980.01.05. 신이문역 1
1980.04.01. 회기역 1
1982.08.02. 석수역 1
1984.05.22. 신도림역 1
1984.11.20. 백운역 1
1985.01.14. 석계역 1
1985.08.22. 창동역~성북역 3
1986.09.02. 의정부역~창동역 6
1987.10.05. 의정부북부역~의정부역 1
1987.12.31. 중동역 1
1988.01.16. 온수역 1
1994.07.11. 간석역, 도원역 2
1995.02.16. 구일역 1
1996.03.28. 부개역 1
1997.04.30. 신길역 1
소사역 1
1998.01.07. 독산역 1
2001.11.30. 도화역 1
2003.04.30. 수원역~병점역 2
2005.01.20. 병점역~천안역 8
2005.12.21. 동묘앞역 1 1
2005.12.27. 세마역, 오산대역 2
2006.06.30. 진위역, 지제역 2
2006.12.15. 소요산역~의정부북부역 8
시흥역~광명역 1
2007.12.28. 덕계역 1
2008.12.15. 천안역~신창역 6
2010.01.21. 당정역 1
2010.02.26. 병점역~서동탄역 1
2021.10.30. 탕정역 1
2023.12.16. 연천역~소요산역 4 [3]
2025.12. 풍기역 1
2027. 부성역 1
2027.12. 회천중앙역 1
2029. 서동탄역~동탄역 3

1.2. 운행구간 변경

<rowcolor=white> 시기 해당 사항 계통 비고
1981.12.23. 구로역~수원역 2복선화
서울역~수원역 급행 신설
1991.11.23. 영등포역~구로역 3복선
영등포역~주안역 계통 신설 부·인
1994.04.01. 안산선·과천선 4호선 편입 안·과 [4]
1996.12.31. 용산역~영등포역 3복선
1999.01.29. 구로역~부평역 2복선화
용산역~부평역 급행 신설
영등포역~주안역 계통 폐지 부·인
2002.03.15. 부평역~주안역 2복선화
용산역~주안역 급행 연장
2003.04.30. 노량진역~안산역 계통 폐지 부·안 [5]
서울역~병점역 급행 연장
2005.01.20. 서울역~천안역 급행 연장
용산역~천안역 급행 신설
2005.12.16. 용산역~회기역 중앙선 편입
용산역~성북역 계통 폐지
2005.12.21. 주안역~동인천역 2복선화
용산역~동인천역 급행 연장
2006.12.15. 용산역~광명역 계통 신설 부·고
동두천역~인천역 급행 신설 원·1·부·인
2008.12.01. 영등포역~광명역 계통 단축 부·고
2016.12.09. 용산역~신창역 급행 연장 부·장
2017.07.07. 용산역~동인천역 특급 신설 부·인
2019.12.30. 서울역~신창역 급행 폐지 부·장
청량리역~신창역 급행 연장 1·부·장
광운대역~신창역 계통 일괄 연장 원·1·부·장 [6]
2020.01.08. 서울역~병점역 급행 신설 [7]
2020.01.28. 서울역~천안역 급행 연장 [8]
2020.03.23. 서울역~신창역 급행 연장 부·장

2. 역사

<rowcolor=white> 2022년 기준 수도권 전철 1호선 전 구간

2.1.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과 경인선/경부선/경원선 전철화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되어 서울의 인구는 폭증했으나, 서울 전차가 1968년에 폐지되면서 서울의 대중교통의 거의 전부였던 버스는 포화상태를 맞았다. 그리하여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이 재임하던 1960년대에 지하철 노선들이 계획됐다. 이 때 정해진 1호선 노선은 현재처럼 서울역에서 출발해 서울시청, 세종로사거리를 거쳐 종로로 진입해 청량리역에서 끝나는 경로였다. 이 구간이 서울의 핵심 도로이고 교통량이 집중되는 도로였기에 정부 수립 이전인 1930년대에도 지하철 계획이 언급된 바 있고, 정부 수립 이후 서울시도 같은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한국의 기술 수준에서 지하철을 건설 및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컸고, 더불어 김현옥의 각종 건설사업으로 인해 서울시의 재정상태는 매우 나빴다. 또한 지하철이 서울 인구집중을 오히려 부추길 것이라는 중앙정부 관료들의 반발에 부딪혀 계획은 지지부진했다.

김현옥 시장이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후 양택식 시장이 부임했다. 양택식은 전 철도청장으로서 철도와 지하철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서울의 만성적인 교통혼잡을 지하철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 하에 계획을 밀어붙인다. 이에 따라 지하철 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하자 김학렬 경제부총리는 서울로의 인구 집중,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폭언을 쏟아부어가며 반대했다. 평소에도 욕을 입에 달고 살던 김학렬은 보고를 듣자마자 '촌놈이 알지도 못하고 건방지게...'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막대한 돈이 드는 계획은 중앙정부 경제관료의 평가를 거쳐야 하는데 그것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울에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도 남겼다. 그러나 이후락 당시 주일대사가 지하철 건설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하면서 양 시장의 손을 들어주자 박정희 대통령도 지하철 건설을 지지했다.[9]

양택식 시장의 서울시청은 현재의 1호선과 함께 2호선에서 5호선까지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이 중 서울역과 청량리를 잇는 서울지하철 1호선을 짓고 경부선(서울~수원), 경인선, 경원선(청량리~성북)을 전철화해 1호선과 직통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지하철을 지을 자금과 이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다. 이에 따라 일본 OECF(JICA의 전신)에서 차관을 들여오기로 하고, 일본 기술자와 관료를 초청해 지하철 계획 및 공사, 운영에 대한 자문을 얻었다. 일본 기술자들이 한국에 도착해 현장조사를 한 결과 한국의 지하철 건설에서 차량이나 신호 및 통신 분야에는 일본이 제조 및 기술 제공 등으로 협력하고 지하철 공사 그 자체는 한국 기술진이 추진하는 것으로 했다.[10]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사는 1971년 4월 12일에 시작했고, 경인선/경부선/경원선 전철화는 1971년 4월 7일에 시작됐다. 해당 구간은 모두 1974년 8월 15일에 개통됐다. 기존선 전철화가 이루어진 경인선에는 개봉역, 송내역, 동암역이 추가됐고, 경부선에는 남영역, 대방역, 구로역[11], 가리봉역(현 가산디지털단지역), 관악역, 명학역, 화서역이 추가됐다. 경원선에는 휘경역(현 외대앞역)이 추가됐다. 개통에 맞춰 초저항이라 불리는 일본산 전동차들이 수입됐으며, 전동차는 6량 1편성으로 운행되지만 승강장 길이는 최대 10량 1편성을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장래의 수요 증가에 대비하도록 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로서 개통식이 성대하게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개통식 직전의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때문에 무산됐다. 원래는 박정희 대통령도 올 예정이었지만[12], 영부인 육영수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초유의 사건을 당하여 참석하지 못했다.

2.2. 서울 지하철 1호선 구간

파일:20240316_145447.jpg
개통 직후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 구간(서울역-청량리)만을 왕복하는 열차가 많았다(최소 5분 간격). 시각표를 보면 40분 주기로 시각표가 짜여졌는데, 성북 - 수원 40분 간격, 청량리 - 구로 40분 간격, 청량리 - 인천 20분 간격이었고 여기에 출퇴근시에는 서울역 - 청량리 10분 간격의 셔틀열차가 투입되어, 서울역 - 청량리 구간은 최소 5분 간격으로 운행했다. 그러나 국철 구간의 이용객 폭증으로 인해 1980년대 이후 전 열차 직통운전을 실시, 2005년 이후 이 구간만을 운행하는 열차는 막차타임을 제외하면 없어졌다.

다른 수도권 전철 1호선 구간과는 달리 서울 지하철 1호선 구간은 개통 때와 비교하면 2005년의 동묘앞역 추가를 제외하고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개통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서 낡은 티가 나는데, 그 때문에 시청역, 종각역 등 여러 역에서 리모델링 공사가 있었다.

본래 서울 1호선은 서울 지하철 1호선만을 이르는 것이었고 나머지 수도권 전철 1호선 구간은 '국철' 따위의 이름으로 불렸으며, 서울 지하철 1호선의 노선색도 현재와는 다른 빨간색이었고 '국철' 구간은 정해진 노선 색이 없었다. 그러나 2000년 4월에 철도청서울지하철공사가 직통운전 구간의 운행계통명과 색상을 통일하기로 함으로써 서울 지하철 1호선 외 1호선이 직통하는 모든 구간이 1호선으로 안내되기 시작했으며, 서울 지하철 1호선의 노선 색깔은 '국철' 구간과 통일하여 파란색으로 정해졌다.

2.3. 경인선 구간(동인천/인천행)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과 함께 경인선 구로 ~ 인천 구간에도 전철이 운행하기 시작했다.

개통 직후에는 인천행 열차가 최소 20분의 배차 간격을 보였는데 이는 현재의 천안행, 동두천행과 비슷한 빈도이다. 인천발 열차는 대부분 청량리행이었으나(첫차만 성북행), 경원선 구간 연장을 거치며 대부분의 경인선 열차가 1호선을 거쳐 경원선 구간과 직통하도록 됐다.[13]

그러나 개통 이후 얼마 못 가 주변 지역이 개발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경인선을 이용했다. 경인선 전철이 서울시 구로구부천시, 인천시 북구(부평구), 남구(미추홀구) 일대의 개발을 촉진하면서, 결국 1980년대부터는 서서히 수송능력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옛날 신문 기사에 나오는 혼잡률 250~300% 따위의 기사들은 모두 이때의 경인선이 기록했다. 전철역의 혼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중간역을 대거 추가했고, 열차의 혼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동차 칸 수를 늘려 1981년부터 경부선보다 먼저 대부분의 열차를 10량으로 증결했다.

그러나 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인선 수송능력 포화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경인선 전철이 서울역 - 구로역 구간에서 경부선 전철과 같은 선로를 써서 경인선 구간의 열차 운행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었다.

파일:서울구로.jpg

이에 대한 대책으로 철도청은 1호선 전동차가 다닐 신규 철로의 증설을 결정하고, 서울 - 구로 간 3복선화와 구로역~신도림역~영등포역~대방역~여의도(고수부지)역~서부용산역(용산전자상가)~남영역~서울역에 이르는 전철 노선 신설 중 하나를 고심하다가 서울 - 구로 간 3복선화를 택했다. 공사는 1989년에 시작됐고, 우선 1991년에 영등포역 ~ 구로역 구간을 3복선화하고 영등포역 ~ 주안역을 반복 운행하는 계통을 투입했다. 그리고 1996년에 서울역 ~ 구로역 구간의 3복선 공사가 완료되어[14], 영등포 ~ 주안 계통을 용산역까지 연장했다. 이에 따라 서울역 ~ 구로역 구간에 있던 수도권 1호선 전용 역사(대방역, 신도림역, 구로역)들이 대폭 개량되거나 신축되고, 한강철교 D선이 신설됐다.

그리고 경인선 단독 구간인 구로역 ~ 인천역 구간도 2복선화 공사가 이루어졌다. 1991년에 구로역 ~ 부평역 구간을 착공했고, 1996년에 부평역 ~ 동인천역 구간을 착공했다. 이 중 구로 - 부평 복복선화의 경우 중동신도시 교통대책을 겸하는 이유로 중동신도시의 개발 이익금이 일부 투입됐다. 1999년에 부평역까지 복복선화를 완료하면서 용산역 ~ 주안역 반복 계통을 폐지하고 대신 급행열차를 투입했으며, 2복선 구간도 2002년에 주안역까지, 2005년에 동인천역까지 연장됐다. 복복선 공사와 함께 역사도 대부분 다시 지었다.

서울~구로 3복선 공사와 구로~동인천 2복선 공사는 철도 옆에 빽빽히 들어찬 시가지를 밀어내야 하는 특성상 토지보상 문제가 심하여 본래 계획보다 완공이 상당히 연기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1995년에 동인천역까지 2복선화가 완료됐어야 했으나 1995년이 되도록 공사는커녕 토지 매입도 못한 구간이 있었다. 토지 매입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착공식을 하라고 압박을 주며 공사 준비도 안 끝났는데 착공식부터 먼저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중동신도시의 개발 주체 중 하나인 부천시가 한때 중동신도시 개발이익금의 경인선 2복선화 건설비 전용을 거부하여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결국 부천시가 굴복하여 해결됐다.

구로~부평 2복선 구간의 완공으로 1999년부터 용산역과 부평역을 오가는 급행열차의 운행이 시작됐다. 급행열차는 안쪽 2개 선로, 기존 전역정차 열차는 바깥쪽 2개 선로를 쓴다. 본래는 경부선 서울 - 수원 급행열차와 함께 직통열차라는 이름을 썼으나 '직통'이라는 이름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어 2003년에 현재와 같은 급행열차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급행열차는 2002년 부평 - 주안 2복선화에 따라 주안역까지 운행구간을 연장했고, 2005년에는 주안 - 동인천 2복선화 완공에 따라 동인천역까지 운행구간을 연장한다. 경인선 구간을 운행하는 급행열차는 1974년 전철화 개통 때 이미 있던 역 위주로 정차한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기존 급행열차가 시간 단축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을 받아들였는지, 급행열차를 급행 A와 급행 B가 분리했다. 급행 A는 출퇴근 시간대에만 2회 운행하며 기존 급행 정차역 중 일부를 통과하는 것이었고 급행 B는 기존 급행열차와 같았다. 그러나 2012년에 폐지됐다.

2017년부터는 용산 - 동인천 특급의 운행이 시작됐다. 급행 A와는 다르게 송내역에 추가로 정차하는 대신, 급행 A가 통과없이 정차했던 용산역 - 구로역 구간[15]에서는 노량진역, 신도림역에만 정차했다. 급행 A보다 운행 횟수도 늘었다.

2022년 6월 20일, 용산 - 동인천 특급 열차의 영등포역, 역곡역 추가 정차가 이루어졌다. 이로써 용산역 - 구로역 구간 통과역은 대방역, 신길역만 남게 됐다.

2.4. 경부선/장항선 구간(병점/서동탄/광명/천안/신창행)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과 함께 경부선 서울 ~ 수원 구간에도 전철이 운행하기 시작했다.

개통 직후 배차 간격은 40분이었다. 그리고 이때는 수원발 열차가 대부분 북쪽 종점까지 가는 성북(현재 광운대역)행이었다가, 후에 경인선 증차로 인해 청량리행이 됐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점차 광운대행이 늘어났다가 현재는 일부 열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열차가 다시 광운대역에서 종착한다.

경인선과 달리 일반열차(여객, 화물)와 선로를 공유해서 경인선처럼 쉽게 많은 열차를 투입하기도 곤란했으며 아무리 늘려도 12분당 1대가 고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열차의 정시성은 잘 지켜지지 않았던 상황이다 보니 한 번 대피할 때 10~20분을 대피해 있어야 하는 상황도 흔했다고 하며, 지연 및 연착도 동반되었다.

이 문제는 1981년에 경부선 영등포역 ~ 수원역 2복선이 완공되면서 안쪽 2개 선로를 일반열차가 사용하고, 바깥쪽 2개 선로를 수도권 전철이 이용하게 되면서 일단 어느 정도 해소됐다. 더불어 선로 용량이 증대되면서 안쪽 2개 선로에 출퇴근 시간대에 6편의 서울(지상 서울역) - 수원 간 급행열차(개통 직후의 이름으로는 직통열차)를 운행하게 되는데 이는 수도권 전철 최초의 급행열차이다. 하지만 수원역에서 수도권 전철이 회차하려면 수많은 일반열차가 다니는 경부1선을 평면교차로 거쳐야 하는 식으로 배선이 이루어져 있어 경인선만큼 많은 열차를 투입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한창 경인선 수송량이 정점을 찍었을 때에는 경인선과 경부선의 수도권 전철 편수 비중이 특정 시간대에 4:1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수원역 배선 문제로 지연먹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편 1990년에는 수원역에서 천안역까지를 복선에서 2복선으로 확장하는 계획이 제안됐고 1996년에 착공됐다. 이 공사는 외환위기 및 IMF 관리체제로 인해 지연됐다가 수원역 회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에 선제적으로 병점역까지 2복선화 공사를 완료해 수도권 전철의 연장이 이루어졌다. 이 때 수원역 배선이 대대적으로 수정되어 수원에서는 회차가 불가능해졌고, 대신 경부선 아래로 통과하여 병점기지에 갔다 오는 형태로 외선을 그대로 사용하여 입체교차로 회차하는 시설을 만들어 수원행 열차를 모두 병점역으로 연장하면서 평면교차는 해소됐다. 서동탄역 개통 이전 병점행은 병점역이 외선을 전철선으로 쓰는 관계로 회차선 설치가 불가능하다 보니 종착 후 병점차량기지까지 가서 회차해 병점, 서울역 방면 타는 곳으로 되돌아오는 방식을 썼다. 더불어 급행 열차도 병점역까지 연장됐다.

2005년에는 병점-천안 간 2복선화 공사가 완료되어 천안역까지 수도권 전철이 연장됐다. 병점-천안 구간은 인구가 많았던 지역이지만 경부선 일반열차는 속달성의 문제로 수원-천안 사이의 역에 대한 정차횟수가 적어 불편했다. 수원~천안간 시외버스(오산, 송탄, 평택 경유)가 2004년까지 경부선 인근 지역에서 겹침에도 불구하고 잘나갔던 것은 이러한 사정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2005년에 수도권 전철의 천안 연장이 이루어지면서 오산, 송탄, 평택 지역 사람들이 뜸한 일반열차 대신 비교적 자주 오는 수도권 전철을 탔고, 시외버스는 몰락했다. 개통과 함께 기존 지상 서울역 착발 급행은 천안역까지 연장됐고, 기존 지상 서울역 발착 급행과는 다른, 용산역에서 천안역까지 운행하는 새로운 급행열차가 생겼다. 그러나 새로운 급행열차는 1시간에 1대씩밖에 운행하지 않아 이용하기 불편했다.

2006년에는 광명역 접근성 개선을 위해 용산역에서 출발하여 금천구청역에서 경부고속선에 진입해 광명역에서 종착하는 일명 광명셔틀이 운행을 개시했다. 그러나 열차가 너무 적고 홍보가 미진해 저조한 이용객 수를 기록했고, 이에 2008년에는 운행 열차를 10량 1편성에서 4량 1편성으로 단축하고는 영등포역 - 광명역 반복운행으로 바꾸었다. 수도권 전철 1호선/광명셔틀 문서를 보라.

2008년에는 장항선 천안 - 신창 간 복선전철화에 맞춰 수도권 전철 1호선도 신창역까지 연장됐다. 본래는 천안역에서 온양온천역까지만 복선전철화하고 수도권 전철도 온양온천역을 종점으로 하고자 했으나, 아산시의 요구로 신창역까지 연장됐다. 장항선 구간은 일반열차와 수도권 전철이 모두 운행이 뜸하므로 복선에 일반열차와 수도권 전철이 모두 운행된다.

2010년에는 막장 상황에 이른 동탄신도시의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점기지선을 활용해 서동탄역을 개설했으며, 기존 병점행 열차는(병점차량사업소 입고 열차를 제외하고) 모두 서동탄행으로 변경됐다. 병점차량사업소로 입고하는 열차 때문에 아직도 병점행 편성이 남아있기는 하다.

이때 발생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병점역 연장개통 초기에는 병점(당시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병점리)이라는 지명의 인지도 부족과 함께 29년이나 사용했던 '수원행'에 익숙한 서울 시민들 때문에 병점행 열차를 역 안내 전광판에는 '수원병점행'이라고 표시했고, 훗날 천안역 개통이 되고 나서야 병점행 열차를 전광판에 제대로 '병점행'이라고 표시했다. 또한 초창기에는 '병점행' 롤지를 만들지 않았기에[16] 병점행 열차의 경우 '수원행' 롤지가 표시되어 있고 앞에 '병점'이라고 써있는 행선판을 가져다 놓는 형태였다. 마찬가지로 신창역까지 연장된 뒤에 천안은 다들 알아도 신창이 어딘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이유로 신창행 열차는 행선 안내기에는 '천안·신창행'이라고 표기되고 있다. 로마자로도 "Cheonan·Sinchang"이라고 표기한다. 신창역 개통 초기에는 '천안·신창행'이라는 표기가 나오면서 그동안 잘 적응되어서 쓰고 있던 '병점행'도 다시 '수원·병점행' 표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서동탄역 개업 이후에는 '수원·서동탄행'등의 표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2011년 이후로 LCD 행선기가 설치되어서 도입되는 신조차량에는 그냥 병점행, 신창(순천향대)행이라 표기한다. 그 이전에 도입된 열차는 여전히 천안·신창행으로 표기한다.

수원역 이북의 경우 2복선 공사로 역사를 거의 다 새로 갈아엎은 경인선에 비해 전체적으로 역사가 낙후되어 있다.

2016년 12월 9일부터는 장항선 누리로가 폐지되면서 일부 천안급행 열차가 신창역까지 연장됐다. 천안역에서 신창역까지는 전역 정차한다.

2019년 12월 30일에는 시간표 대개편이 이루어졌다. 우선 막차시간대 열차를 제외한 모든 완행열차가 광운대역까지 가게 됐고, 지상 서울역 - 천안 급행이 폐지됐으며 대신 경부2선(경부선 2복선 중 바깥쪽 2개 선로)에 대피선을 보강해 기존 용산 - 천안/신창 급행을 청량리 - 천안/신창 급행으로 바꾸었으며, 동시에 정차역을 조정하고 대거 증편하여 약 1시간 배차간격이었던 것이 30분까지 줄었다. 그러나 시각표 혼란과 심각한 지연, 평소 지상 서울역 - 천안 급행 열차를 출퇴근시간에 애용하던 승객들의 폭발적인 민원으로 인해 2020년 1월 8일 임시적으로 병점 - 서울 간 출근시간대 급행이 생겼고, 2020년 1월 28일 천안 - 지상서울역 간 급행이 출근시간대 2편성, 퇴근시간대 1편성으로 부활했으며 또한 완행 열차들의 연착이 매우 심하여 광운대행 중 일부만 청량리 착발로 바뀌였다.

2.5. 경원선 구간(의정부/양주/동두천/소요산/연천행)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과 함께 경원선 청량리 ~ 성북 구간에도 전철이 운행하기 시작했다. 개통 직후 배차 간격은 40분이었다. 과거에는 성북에서 출발한 열차의 절대다수가 수원행이었으나 경인선 증편과 경원선 연장을 거치면서 성북역 이북의 경원선 구간에는 경부선 방면 열차가 운행하지 않게 됐다.

경부선이 처음에 일반열차와 선로를 공유했던 것과는 달리 이쪽은 비둘기호(완행열차) 정도만 다녔던 탓에 처음부터 일반열차를 제치고 완전히 수도권 전철만이 운행됐다.

서울의 도시 규모가 확장되면서 출퇴근 혼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8년에 경원선 복선전철화 구간을 의정부역까지 연장하는 계획이 입안됐고, 1982년에 착공되어 1985년에 창동역까지, 1986년에 의정부역까지 개통됐다. 그리고 추가로 1987년에 의정부북부역(현재의 가능역)까지 단선 전철로 개통됐다. 이 구간은 단순히 기존 선로를 하나 더 증강하고 전철화하는 것을 넘어 건널목을 없애고 지하차도 및 육교를 건설하거나(성북-창동), 아예 철도를 고가화하여(창동-의정부) 입체교차를 도모해 사고 가능성을 크게 줄였다는 의의가 있다. 그 이전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나 부주의한 아이들이 철로에 있다 달려오는 열차를 미처 보지 못해 치여 사망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1997년에는 양주시동두천시의 교통난 해소를 위해 경원선 의정부~동안(동두천) 복선전철화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 기간 동안 동안역에서 하나만 더 가면 등산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소요산역이 있기에 동두천시에서 소요산역까지 전철을 연장할 것을 요청했으며, 해당 사업은 2003년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비용 대 편익비(B/C) 4.062, AHP 0.830(단선 지상 전철 기준)을 받아[17] 2005년에 단선 전철 구간으로 확정되었다.[18] 경원선 의정부~동두천 복선전철화와 동두천~소요산 단선전철화는 광역교통망 관리에 특별법에 따라 다른 1호선 구간과는 달리 광역철도 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며 해당 구간은 2006년에 개통되었다. 개통과 동시에 동두천~인천 급행 운행이 시작됐으며, 2008년에는 급행 운전구간이 동두천~가능에서 동두천~성북(현 광운대)으로 연장됐다.

2014년 10월부터는 소요산-연천 구간을 복선 전제(복선 노반 확보) 단선으로 전철화하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해당 사업은 연천군에서 계속 요구해온 것으로, 초기에는 복선전철화를 요구했으나 2009년 예비타당성조사 과정에서 복선전철화를 포함해 여러 대안을 검토한 결과 복선 전제 단선 전철의 비용 대 편익비(B/C)가 0.89로 비교적 높게 나오고, AHP에서도 0.564로 높게 평가되어 단선전철로 추진되었다. 소요산~전곡 구간은 기존에 선형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였기에 선로를 최대한 직선으로 이설했고, 동두천-소요산 구간은 고가화하였다. 해당 구간은 2023년 12월 16일 개통되었다.

경인선이나 경부선과는 달리 이용객이 상대적으로 적어 역사 규모가 작고 오래된 역사들이 많다. 경인선이나 경부선도 이런 역사가 많았지만 2복선화민자역사 건설 등의 이유로 많이 사라졌고, 특히 경인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인천역 정도). 물론 경원선도 2006년 이후 개통 + 민자역사, 환승역 등의 이유로 개량된 회룡역 이북구간의 역사는 최신식이다. 또 경인선과 경부선에는 오래전에 없어진 건널목이 여기에는 아직도 있다. 회기역 근처 휘경2건널목. 이것도 마찬가지로 경인선과 경부선에도 많이 있었지만 여기는 열차 통행량이 너무 많아서 2복선화를 하면서 도로와의 입체 교차가 빨리 진행된 반면, 경원선은 상대적으로 열차 통행량이 뜸해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됐다.

대부분의 구간이 복선 전철화되어 있지만, 동두천역 ~ 연천역 사이의 구간은 단선이다.

2.6. 추가 연장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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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과거 운행 구간

2.7.1. 경원선 용산 - 청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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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촌1호선2004년.jpg
이촌역에서 촬영된 사진
1978년 12월 9일에 전철화되어 수도권 전철이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 구간은 수도권 전철 1호선 중에서도 유독 홀대가 심했다. 개통 때는 용산역과 성북역을 오가는 셔틀열차로써 초저항 6량 편성이 1일 36회 투입됐는데, 1일 36회 투입됐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배차 간격이 30분에 달해 전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각표를 보고 타야 했다.

그마저도 1980년 이후 수도권 전철 1호선 본선(특히 경인선)의 수송량이 폭증함에 따라 이 전동차들이 다시 본선 쪽으로 차출되고, 1983년부터 고상 승강장에 맞게 개조한 DC 디젤동차가 2량~4량의 병결 편성으로 운행하게 됐다. 1991년 7월이 되어서야 중저항 4량 편성이 다시 투입됐으며, 이후 1994년 4월, 6량 편성을 거쳐 1996년경이 되어서야 10량 편성의 열차가 이 구간을 운행하게 됐다. 그리고 열차 운행 횟수도 그와 함께 늘어났으나, 일반적인 배차 간격이 15분~20분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다른 노선에 비하면 부족했다.

용산-성북 구간의 편수가 증가함에 따라 청량리역회기역 사이에서 1호선 본선 열차와 용산 - 성북 열차가 평면교차하는 문제가 발생했으며, 여기에 경춘선 무궁화호[19]까지 더해져, 이는 결국 서로의 운행 편수를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5년에 중앙선 청량리 ~ 덕소 구간이 복선 전철화되자 이 구간은 회기 - 덕소 구간과 병합해 수도권 전철 중앙선으로 편입됐으며, 현재는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의 일부가 됐다. 용산역, 구로역 착발 급행열차, 동묘앞역, 청량리역 시종착열차를 제외한 수도권 1호선 계통의 모든 열차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해 경원선과 경부선 사이를 오가게 됐다.

2.7.2. 안산선 금정 -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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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국철도공사 1x56편성(터널 도색).jpg
안산역에서 촬영된 사진
안산선 계획에는 사당역에서 금정역까지 전철을 건설해 서울 지하철 4호선과 직통할 계획도 있었으나, 실제 착공 및 개통 과정에서는 4호선 직통은 미뤄지고 대신 1988년 개통 후 한동안 초저항중저항 4량 1편성 혹은 6량 1편성이 청량리역을 출발해 안산역까지 운행하거나 금정역과 안산역 사이를 반복 운행했다. 안산선이 수도권 전철 4호선에 편입된 이후에도 운행구간이 용산 - 안산, 노량진 - 안산 등으로 단축되어 1호선 전동차가 출근 시간대에만 하루 3왕복을 운행했었으나, 2003년 4월 30일에 수도권 전철 1호선 수원 - 병점 연장과 함께 없어졌다.

2.7.3. 과천선 금정 - 인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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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벌말중저항.png
벌말역(現평촌역)에서 촬영된 사진
과천선은 본래 서울 지하철 4호선과 직통 운행할 때에 맞춰 개통될 예정이었으나, 공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일단 급박했던 평촌신도시의 교통 대책을 위해 1993년에 금정역 ~ 인덕원역 구간만 부분 개통하여 1호선 열차가 투입되었다. 과천선 선로에는 ATC가 신호로써 설치됐지만 1호선 전동차ATC 신호에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제사와 무선통화하여 운행했고, 이 때문에 배차 간격이 길어졌다. 이때는 서로 연결되는 선로가 경부선, 안산선 등 수도권 전철 1호선밖에 없어서 임시로 1호선 전동차 6량 1편성이 산본역 ~ 인덕원역 및 안산역 ~ 인덕원역 계통으로 운행했다. 1994년 4월 1일에 과천선이 전 구간 개통하면서 수도권 전철 4호선에 편입됨에 따라 폐지됐다.


[L4] 수도권 전철 4호선으로 이관.[L4] [3] 역 승강장은 복선이며, 나머지 구간은 복선전제 단선전철화 구간이다.[4] 동시에 운행 구간도 용산~안산으로 단축됐고 평일 출근 시간대에만 운행하게 된다.[5] 이로써 1호선의 안산선 계통은 완전히 폐지됐고, 안산선은 2020년까지 4호선의 전유물로 남게 됐다. 이후로는 수인·분당선과 선로 공유 중이다.[6] 과거에는 광운대행과 청량리행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광운대행으로 통합했다.[7] 상행, 출근 시간에 운행[8] 동시에 하행(퇴근 시간)도 운행하기 시작했다.[9] 「"한국도시 발전 속 드라마 같은 이야기"」, 노컷뉴스, 2005-08-29[10] 출처: 서울지하철 1호선 건설지[11] 구로역은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 이전에도 신호소로써 개업한 바 있지만 여객취급은 하지 않았다.[12] 원래 박정희 본인은 가려고 했는데 참모진이 말리고 말려서 가까스로 고집을 꺾었다고 한다.[13] 참고 자료: 1974년 개통 당시 운행 시간표, 출처: 디시인사이드 철도(지하철) 갤러리[14] 사업 이름은 서울 ~ 구로 3복선 건설이지만, 서울 - 용산 구간은 선로 증설을 고려했다가 포기했고, 새로 건설된 경부3선(동인천 급행이 사용하는 선로)는 용산역에서 타절됐다.[15] 경부선 구간에서 표정속도 84 km/h를 찍었던 경부선 특급도 이 구간에서는 모든 역에 정차했다.[16] LED 행선판이 달린 열차는 서울특별시 지하철공사 1000호대 VVVF 전동차 뿐이었다.[17] 경원선 전철 연장(동안~소요산) 사업[18] "동두천 경원선전철 2.4km 추가연장 확정", 경기일보, 2005.11.01.[19] 경춘선 무궁화호(2004년 4월 이전 통일호 포함) 및 용산 - 성북 전철은 청량리 ~ 성북 구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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