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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5-02 16:58:40

석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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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계역
파일:Seoulmetro1_icon.svg 파일:Seoulmetro6_icon.svg
[[소요산역|
소요산 방면
]]광운대
← 1.1 ㎞
[[수도권 전철 1호선|
1호선
(120)
]]
신이문
1.4 ㎞ →
[[응암역|
응암순환
]]돌곶이
← 0.8 ㎞
[[서울 지하철 6호선|
6호선
(644)
]]
[[신내역|
신내 방면
]]태릉입구
1.0 ㎞ →
다국어 표기
영어 Seokgye
한자 石溪
중국어
일본어 [ruby(石渓, ruby=ソッケ)]
주소
경원선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341 (월계동)
6호선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 지하 347-1 (석관동)
관리역 등급
배치간이역
(광운대역 관리 /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
운영 기관
경원선 파일:코레일_기본_로고.svg
6호선 파일:서울교통공사_Logo.svg
개업일
경원선 1985년 1월 14일
1호선
6호선 2000년 8월 7일
역사 구조
지상 2층 (1호선)
지하 3층 (6호선)
승강장 구조
복선 섬식 승강장 (1호선)
복선 상대식 승강장 (6호선)
노선거리표
[[용산역|
용산 방면
]]신이문
← 1.4 ㎞
경원선
석 계
[[백마고지역|
백마고지 방면
]]광운대
1.1 ㎞ →

石溪驛 / Seokgye Station

1. 개요2. 역명 선정 과정3. 역 정보4. 일평균 이용객5. 승강장6. 역 주변 정보7. 연계 교통
7.1. 운행유형7.2. 1번 출구 정류소7.3. 굴다리 정류소7.4. 화랑로 동쪽 정류소7.5. 기타 정류소

[clearfix]

1. 개요

2. 역명 선정 과정

파일:attachment/seokgyae1.png
수도권 전철 1호선 석계역사. 이 입구는 12m 차이로 성북구 석관동에 속한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과 화랑로[3] 및 조그마한 개천[4]을 사이에 두고 노원구 월계동이 위치한다. 즉, 각 동의 경계선에 있었던 역인지라 각각의 동명인 관과 월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역명을 지었다. 역 이름이 이렇게 된 이유는, 1호선의 역 건물이 성북구 석관동과 노원구 월계동에 걸쳐 있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건설 당시는 성북구와 도봉구[5]의 경계선이 지나갔다는 얘기. 현재도 1호선 역사는 노원구와 성북구의 경계선에 거의 반반으로 걸쳐 있지만, 역사 주소는 노원구 월계동이다.[6] 6호선 역사의 경우는 2, 3번 출구만 월계동 땅에 삐죽 나와 있고, 플랫폼을 비롯한 지하 구조물은 죄다 성북구 땅에 위치해 있다.[7] 여기는 1호선과 반대로 주소는 성북구 석관동이다.[8]

이런 이름을 하게 된 배경은 1984년 당시 성북역과 신이문역 사이에 석관동 지역의 교통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경원선 국철역을 건설하기로 하고 원래 명칭은 석관역으로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역의 주소를 보면 알겠지만 석관동 관할구역 안에 역을 지을 수 있는 충분한 토지가 없어서 역사가 도봉구(현 노원구) 월계동에 많은부분을 위치시키는 형태가 되었다. 역사의 건설은 아무런 문제가 없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문제는 당시에 제1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것. 총선을 앞에 두고 있던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 도봉구 지구당 위원장 홍성우씨가 월계동 지역의 표를 노리고 "역사 건물이 (도봉구의) 월계동 쪽에 위치해 있는데[9] 왜 역이름이 (성북구의) 석관역입니까, 제가 당선되면 도봉구와 월계동의 명예를 걸고 역이름을 월계역으로 바꾸겠습니다" 라고 월계동 주민을 향해 말했다.[10]

이에 같은 당이며 역시 총선을 앞두고 있던 민정당 성북구 지구당 위원장인 김정례 역시 성북구 (특히 석관동) 주민들의 표심을 의식하고 "원래 석관역으로 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는데 왜 이제와서 뒷북? 내가 당선되면 성북구와 석관동의 자존심을 걸고 절대 역이름이 바뀌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역시 석관동 주민들을 향해 선거용 떡밥을 뿌려댔다.

급기야는 역 이름 명칭이 두 동네의 자존심 싸움 비슷한 거로 번지게 되고, 같은 당원끼리 역 이름 공약 문제로 싸우게 된 관계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게 돼서 곤혹스러워진 민정당 측에서 이 '석계역'을 들고나와서 어정쩡한 타협을 설득한 결과물이 이 석계역이라는 괴상한 역 이름이 돼 버렸다. 문제는 그러고 나서 반년쯤 지나서 국철의 노선이 서울 지하철 4호선 환승을 위해 창동역으로 연장되었고 성북역을 지나서 월계역이 생겨버린 것.

월계역이 생겼음에도 이 사건은 이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역을 이용하는 석관동 주민이나 월계동 주민이나 역 이름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으면서 석계역으로 굳어졌고, 이 역 일대를 대표하는 지명 중 하나로 굳어지며 지금까지 역 이름이 이어져오고 있다.[11] 그래서 석계역 주변에 석계치과니 석계호프라든지 석계라는 단어를 단 상호를 쓰는 점포들이 꽤 많다.

3. 역 정보

파일:35 석계(개선).png
역 안내도
막장환승이다. 1호선은 지상 2층, 6호선은 지하 3층이라 환승할 때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많이 오르내려가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이다. 대략 이수역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고가-지하역 환승 특성상 고저차가 있고, 환승통로 무빙워크 쪽은 우이천 밑을 지나는 하저터널인 관계로 경사까지 있다.

사실 두 역은 X자로 교차하기 때문에 막장환승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구조지만 인근 도로 사정 때문에 이렇게 된 듯하다. 물론 이런 역들[12]에 비하면 막장환승은 아니다. 사실 1호선 대합실에서 게이트를 통과한 뒤 그대로 직진하여 6호선 출구로 들어가 6호선 게이트를 거쳐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방법으로 환승 동선을 줄일 수는 있지만 당연히 환승 할인이 안 되고 추가 요금이 지불되는 것이 문제. 1호선과 6호선 게이트 간 소프트환승이 되도록 시스템을 개선한다면 모를까.

1호선의 승강장이 지상 2층에 있는 반면 대합실은 반지하로 되어있다. 그래서 게이트로 들어가려면 계단으로 내려가야 한다. 1997년 6호선 환승이 기획되자 출구개선공사를 위해 반지하 대합실을 임시 폐쇄하고 광운대역 방면에 지상 3층의 임시역사를 지어 영업을 했었다. 2000년 여름 6호선이 개통되자 지금의 모습으로 새롭게 개선되었고 이 후 임시역사는 철거되었다.

2004년에 1호선 승강장의 확장 공사가 완료되었다. 1호선 승강장은 섬식 승강장인데, 일반적으로 섬식 승강장은 확장하기가 힘들지만 이 역은 지상역인데다가 유휴 부지가 있어 확장이 가능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1. 인천행 임시 승강장을 개설
2. 인천행 승강장 폐쇄 후 1호선 하행 열차를 망우선으로 우회
3. 1호선 하행 선로를 걷어내고 그 폭만큼 승강장을 확장
4. 확장 공사 완료 후 다시 인천행 승강장을 원상 복귀

파일:Seokgye9_1.jpg

임시로 사용되던 인천행 승강장의 위치는 석계역 남쪽이었으며, 석계역 위성사진을 보면 석계역 남쪽에 초록색으로 된 방음 구조물이 있는데 여기가 임시 승강장의 위치였다. 석계역의 인천 방면 승강장 바닥 타일을 보면 세로로 줄이 가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폭만큼 승강장이 확장된 것이다.

1호선이 다니는 경원선 선로와 나란히 망우선이 놓여 있지만 선로가 떨어져 있는 관계로 석계역은 망우선상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광운대역까지 1일 2회 운행하는 일부 경춘선 전동차는 당연히 석계역에 정차할 수 없다. 고모역경부고속선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경우와 똑같다.

광운대행 열차를 탈 때 이 역을 안내방송할 때 의정부와 소요산 방면으로 가실 고객님께서는 이번 역에서 하차 후 후속 전동차로 환승하라고 권유한다. 광운대역에서는 계단을 경유해야 해 환승할 때 석계역보다 불편하기 때문이다.[13]

2015년 11월에 드디어 승강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두 곳 중 한 곳에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었다.

1호선 하행의 경우 막차는 23시 25분에 출발하는 구로행으로, 다른 서울 시내 역에 비해 일찍 끊기는 편이다. 만약 11시 25분 이후 1호선 인천•신창 방면으로 갈 경우, 6호선을 타서 동묘앞역에서 환승해야 한다. 역으로 종로선 연선에서 이 시간 이후로 석계역에 오고자 한다면 동묘앞역에서 6호선으로 환승하여 오면 된다. 6호선 봉화산 방면 막차시간은 평일 기준 24시 55분이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지금은 칼질당한 상황.

평일과 휴일 모두 경인선 막차는 23시 09분(인천행), 경부선 막차는 22시 51분(병점행), 전체 막차는 23시 25분(구로행)이다.

4. 일평균 이용객

||<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0052a4><bgcolor=#0052a4> 연도 || 파일:Seoulmetro1_icon.svg || 파일:Seoulmetro6_icon.svg ||<bgcolor=#0052a4> 총합 ||<bgcolor=#0052a4> 비고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 1985년~2009년 ]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1985년 19,955명
1986년 34,382명
1987년 40,210명
1988년 50,020명
1989년 50,387명
1990년 51,827명
1991년 61,283명
1992년 64,790명
1993년 67,644명
1994년 69,687명
1995년 77,504명
1996년 78,597명 [14]
1997년 61,183명
1998년 55,073명
1999년 50,336명
2000년 37,182명 11,674명 48,856명 [15]
2001년 36,904명 20,617명 57,521명 비고
2002년 36,272명 25,517명 61,789명
2003년 37,695명 28,568명 66,263명
2004년 36,892명 28,466명 65,358명 [16]
2005년 41,229명 29,228명 70,457명
2006년 38,775명 30,194명 68,969명
2007년 38,315명 29,547명 67,862명
2008년 37,965명 29,322명 67,287명
2009년 37,805명 28,644명 66,449명 }}}}}}}}}
2010년 37,067명 28,637명 65,704명
2011년 37,416명 28,762명 66,178명
2012년 37,157명 28,520명 65,677명
2013년 38,027명 28,548명 66,575명
2014년 37,669명 28,415명 66,084명
2015년 36,804명 27,784명 64,588명
2016년 35,822명 27,017명 62,839명
2017년 34,558명 26,696명 61,254명
2018년 32,919명 26,848명 59,767명
2019년 32,755명 27,141명 59,896명
2020년 24,386명 20,882명 45,268명
출처
파일:Seoulmetro1_icon.svg : 한국철도공사 광역철도 수송통계 자료실
파일:Seoulmetro6_icon.svg : 서울교통공사 자료실

5. 승강장

5.1. 수도권 전철 1호선

파일:석계역 승강장(수도권 전철 1호선).jpg
파일:석계역 역명판(수도권 전철 1호선).jpg

1호선 승강장은 1면 2선의 섬식 승강장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광운대
1 2
신이문 이문기지
1 파일:Seoulmetro1_icon.svg 수도권 전철 1호선 광운대·의정부·양주·동두천·소요산 방면
2 청량리·구로·인천·서동탄·신창 방면
노선 및 방면 빠른 환승 위치
파일:Seoulmetro1_icon.svg 1호선 (소요산, 광운대 방면) → 파일:Seoulmetro6_icon.svg 6호선 10-4
파일:Seoulmetro1_icon.svg 1호선 (인천, 서동탄 방면) → 파일:Seoulmetro6_icon.svg 6호선 1-1

5.2. 서울 지하철 6호선

파일:attachment/seokgyae6.jpg
승강장

파일:6호선석계상행역명판.jpg파일:6호선석계하행역명판.jpg
역명판

6호선 승강장은 2면 2선의 상대식 승강장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스크린도어가 닫힐 때 경고음이 추가되었다.
돌곶이
태릉입구
파일:Seoulmetro6_icon.svg 서울 지하철 6호선 신당·이태원·공덕·응암 방면
태릉입구·화랑대·봉화산·신내 방면
노선 및 방면 빠른 환승 위치
파일:Seoulmetro6_icon.svg 6호선 (신내 방면) → 파일:Seoulmetro1_icon.svg 1호선 5-2
파일:Seoulmetro6_icon.svg 6호선 (응암순환) → 파일:Seoulmetro1_icon.svg 1호선 4-3

6. 역 주변 정보

파일:attachment/sk.png

성북동이 개발되고 1960년대에 화랑로가 개설되었고, 1984년 화랑고가차도 개통, 1997년 북부간선도로 개통으로 석계역 위로는 2개의 고가도로가 지난다. 석계로 같은 길등은 당연히 옛날부터 있던 길이다.

석계역 앞은 늘 혼잡하다. 특히 출퇴근시간대에는 역과 역 앞의 버스 정류장 모두 헬게이트가 열린다. 원인 중 하나로는 바로 도로 구조의 문제점. 도로 자체가 심히 꼬불꼬불하고, 일방통행 투성이다. [19]

또 다른 원인으로는 신호등도 어정쩡한 곳에 걸려 있고, 덕분에 자잘한 보행신호[20]는 전혀 준수되지 않기에 도로 상황 자체가 24/7 노상 개판인 것이 있지만... 무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굴다리를 그대로 두고 하부도로 확장을 안 한 상태[21]에서 고가차도를 위로 올리면서 석계역 진입은 더욱 꼬이게 되었고, 여기에 1998년에 지어진 두산아파트와 진입로가 복잡하게 꼬이면서 이런 기이한 형태가 만들어졌다.[22][23]

무엇보다 10가지가 넘는 버스노선들이 이 지점을 종점이나 경유지, 주요 환승지역으로 삼기 때문이다. 대표적 예시로 석계역에서 월계동 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나오는 노원구 시내버스 회사인 진아교통 차고지가 있다. [24] 차량 동선상 147번을 제외하고 진아교통 소속 시내버스는 거의 다 석계역 앞을 지나간다고 보면 된다.[25] 또한 진아교통 외에도 태릉교통, 보광운수 소속 노선이나 그 외 각종 마을버스 및 경기도버스 등도 이 역 앞을 지나가기 때문에 이 버스들이 4대 넘게 단체로 몰려올 경우에는 정체가 안 날 수가 없다.]

6호선이 개통되기 전에는 공사 때문에 더욱 심했으나, 6호선 완공으로 그나마 환승 필요성이 줄어든 상태이다. 그래도 출퇴근 시간대면 언제나 카오스. 신호가 아슬아슬할 것 같으면 그냥 달려서 결국 정체가 발생한다. 노선버스 우선이고 뭐고 없다. 닥돌이다. 너무 심하면 석계역에서 태릉입구역 방향으로 난 월릉교를 건너는데만 30분을 넘긴다. 더구나, 태릉입구역이나 화랑대역 주변은 노원구에서 북부간선도로를 타고 구리시로 빠져서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구리IC를 통해 중부고속도로를 타는 길목이기도 해서, 서울특별시 바깥으로 나가려는 차가 많을 때는 걷는 것보다 확실히 더 느려진다. 차라리 걸어가거나, 6호선 타는 게 더 편하다.

광운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삼육대학교의 스쿨버스가 이 곳을 지나간다. 이 3개 대학 덕분에 석계역 상권은 엄청나게 발달했다. 공통적으로 이 3개 대학 모두 다 근처에 제대로 놀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석계역의 상권을 공유하는 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학생들도 노원03, 노원13 버스를 이용해 통학한다.[26] 월계역의 인덕대학교 앞은 2016년부터 재개발로 인해 상권이 아예 없다시피 해서, 인덕대 학생들도 신입생 환영회나 개강파티 등 단체 술자리를 가질 때 석계까지 오는 일이 많다.

인근 군부대 장병들에게 핫플레이스라고 한다. 71사단이 해체되고 6군수지원단이 후적지에 들어온 지금도 유효하다.

7번 출구에서 남서쪽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집들이 이어져 있는데 1971년까지 제기동역 앞에 있던 경춘선 성동역으로 가던 철도 부지이다. 골목 시작점에는 벽화거리, 반대편에는 석계역 음식문화거리라는 홍보물이 있지만 과거 철도였다는 안내는 전혀 없다. 40년 후 폐선되고 숲길이 조성된 광운대역 반대편 구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7. 연계 교통

대부분의 노선이 각 방향에서 석계역을 회차점으로 삼아 돌아가고, 석계역을 중간에 끼워 가로지르는 노선은 많지 않다.

7.1. 운행유형

지선}}}
1131
1132
1135
1136
1141
1155
1156
2113
2114
마을}}}
노원03
노원04
노원13
시내일반}}}
65-1
73
75
76

직행좌석}}}
3100
3500
3600

마을}}}
성북12
성북13
성북14-1
성북14-2

지선}}}
1130
1133

간선}}}
173

심야}}}
N13
지선}}}
1222

간선}}}
261

마을}}}
노원09

7.2. 1번 출구 정류소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dddddd><tablebgcolor=#ffffff,#1f2023> 석계역1번출구·A(11283)
* 1번 출구에 첫번째로 위치한 정류소이며, 화랑로 동쪽 방면에서 진입하여 회차하는 노선이 정차한다.
  • 2번 출구 정류소에서도 하차할 수 있고, 4번 출구 정류소에서도 승차할 수 있다.
  • 진아교통 노선들과 2114번 노선은 차고지 방면과 종점 방면이 동일한 정류소에 정차하므로, 승차시 주의바람.
||
지선
마을
일반시내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dddddd><tablebgcolor=#ffffff,#1f2023> 석계역1번출구·B(11481)
* 1번 출구에서 두번째로 위치한 정류소이며, 화랑로 동쪽 방면, 화랑로45길에서 진입하여 화랑로 서쪽 방면, 석계로로 운행하는 노선이 정차한다.
||
심야
간선
지선

7.3. 굴다리 정류소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dddddd><tablebgcolor=#ffffff,#1f2023> 석계역굴다리앞(08146)
* 7번 출구 건너편에 위치한 정류소이며, 화랑로 동쪽 방면으로 운행하는 노선이 정차한다.
||
간선
지선

7.4. 화랑로 동쪽 정류소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dddddd><tablebgcolor=#ffffff,#1f2023> 석계역2번출구(11284·11479)
* 2번 출구에 위치한 정류소이며, 화랑로 동쪽 방면에서 진입하는 노선이 정차한다.
  • 모든 노선은 1번 출구 정류소도 정차한다.
||
심야
지선
종착 노선
지선
마을
일반시내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dddddd><tablebgcolor=#ffffff,#1f2023> 석계역(08147)
* 4번 출구에 위치한 정류소이며, 화랑로 동쪽 방면으로 운행하는 노선이 정차한다.
  • 모든 노선은 1번 출구 정류소도 정차한다.
  • 직행좌석버스 노선은 운행 경로상 동부간선도로 진입을 위해 편도로만 경유한다.
  • 진아교통 노선들과 2114번 노선은 차고지 방면과 종점 방면이 동일한 정류소에 정차하므로, 승차시 주의바람.
||
심야
직행좌석
지선
마을
일반시내

7.5. 기타 정류소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dddddd><tablebgcolor=#ffffff,#1f2023> 석계역(08781)
* 7번 출구 건너편에 위치한 정류소이며, 화랑로 서쪽 방면에서 진입하여 회차하는 노선이 정차한다.
||
마을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dddddd><tablebgcolor=#ffffff,#1f2023> 석계역문화공원(11607)
* 1번 출구 건너편에 위치한 정류소이며, 화랑로 서쪽 방면에서 진입하여 회차하는 노선이 정차한다.
||
마을
간선}}}
261
마을}}}
노원09


[1] 월계동 36-4번지[2] 석관동 375-14번지[3] 석관동의 북쪽 경계와 월계동의 남쪽 경계는 화랑로이다.[4] 중랑천 물줄기로 들어가는 우이천이 뻗어 있다. 일부 구간은 복개되어 있다.[5] 노원구는 도봉구에서 1988년에 분구되었다.[6] 즉, 1호선 석계역사에 딸린 편의점 등의 경우 실제 위치가 지적부 상 성북구 땅에 위치해 있다 할지라도 노원구 주소로 간주, 세금 납부는 노원구청 및 노원세무서에 해야 한다는 얘기다. 노원구와 성북구는 관할 세무서도 다르기 때문에 나름 중요한 문제. 6호선은 반대로.[7] 못 믿겠다면 네이버 지도를 켜고 지적 편집도 모드로 확인해 보자.[8] 1호선과 반대로 6호선 석계역사에 딸린 편의점 등의 경우 실제 위치가 지적부 상 노원구 땅에 위치해 있다 할지라도 성북구 주소로 간주, 세금 납부는 성북구청 및 성북세무서에 해야 한다는 얘기.[9] 이건 에러다. 1호선 역사 부지는 월계동과 석관동에 모두 걸쳐 있기 때문. 다만 역사 주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노원구 월계동. 88년 노원구 분구 이전에는 도봉구였다.[10] 이 당시에는 1호선이 창동역으로 연장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월계역이 없었다.[11] 사실 석관동 입장에서는 1989년에 6호선에 석관역이 생긴다는 계획이 확정되었고 이 계획대로 2000년에 돌곶이역이 생겼으니 상관없긴 하다. 돌곶이역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돌곶이"가 석관(石串)동을 순우리말로 풀어 쓴 것이다.[12] 노원역, 서울역,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고속터미널역[13] 하지만 간혹 의정부,소요산 방면 광운대역 1번홈에 종착하는 열차도 있다.[14] 역대 최다 이용객[15] 6호선의 자료는 개통일인 8월 7일부터 12월 31일까지 147일간의 집계를 반영한 것이다.[16] 1호선의 자료는 해당 연도까지 철도통계연보의 자료를 반영하였다.[17] 사실상 역명이 석계역이 된 이유이다.[18] 그러나 거기에 종착하는 경기도 시내버스가 적고, 그리고 거기에 다니는 서울시 시내버스도 간선버스보다 지선버스가 더 많기 때문에 실제로 환승 범위가 좁고 환승 인구도 많지 않아 역시 구리, 남양주의 버스들이 종착·경유하고, 교통 거점인 청량리역, 회기역에 비해 가치와 중요도는 떨어진다.[19] 노원구 지역은 대체로 도시계획에 의한 일괄 개발이 이뤄진 덕분에 도로망은 반듯반듯한 경우가 많은데, 석계역은 석관동이나 성북동처럼 1960~1970년대부터 대단위 주택지구였던 곳과 인접한 관계로 주변을 싹 밀어버리고, 구획을 새로 짜는 게 불가능했던 관계로, 도로망이 좀 심하게 복잡하다.[20] 버스정류장 앞에 5~10m 내지의 작은 횡단보도가 있다.[21] 물론 철도운행이 꼬이는건 여전하겠지만 교통량이 덜 혼잡했고 석계역이 없었던 그 시대라면 지금보다는 충분히 도로확장이 더 쉬웠다.[22] 즉,석계역으로 진입하는 굴다리 쪽 도로에서 접촉사고 하나라도 나면 그 일대 도로는 완전 헬게이트가 되어버린다는 소리. 실제로 사고가 난 적도 빈번하다.[23] 이 여파가 얼마나 심하냐면, 일단 기본적으로 출퇴근 시간대만 하더라도 석계역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심하면 태릉입구역, 화랑대역까지 정체가 심하다. 또한 석계역에서 400m 거리에 떨어진 월릉교 앞 사거리에서는 마들로와 접속하는데, 마들로에서도 적지 않은 차량들이 석계역 쪽으로 통행하고 광운대역 쪽의 석계로에서도 이 역에 접속한다. 상술했듯이 석계역은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인데, 이곳에서 사고가 나면 러시아워 시간대는 물론이고 평시에도 헬게이트가 열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도로 구조까지 복잡한 상태니 더욱 답이 없어진다.[24] 원래는 현재 6호선 석계역 인근 현 한진한화그랑빌 상가자리 자리에 진아교통 차고지가 있었고 1985년 이후에 월계시영아파트단지(월계삼호,미성,미륭아파트) 건설 완료 이후 현재의 월계동 이마트 앞으로 차고지를 이전했다.[25] 진아교통 소속 버스 중 유일하게 석계역으로 가지 않는 147번도 개편 전 38-2번 시절에는 석계역 경유 노선이었다.[26] 예전에는 스쿨버스가 운행했지만 마을버스 노원13번이 신설되면서 유지비로 매년 지출되던 1억원의 예산을 장학금으로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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