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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17:43:49

성형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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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바우르탕어(Bourtange)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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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핀란드의 스바르톨로마(Svartholma) 요새

1. 개요2. 명칭3. 배경4. 요새의 특성5. 공략 방법6. 쇠퇴와 현대적 활용7. 성형 요새 목록8. 매체에서9.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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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형 요새(, star fort[1])란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에서 화약을 사용하는 화포(공성포)가 전장을 지배하게 되면서 이를 이용한 공격을 방어하고자 축성되었던 요새의 한 양식이다. 포탄을 효율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성곽의 배치가 별 모양을 닮았기 때문에 '성(星)' 형 요새라고 부른다. 이러한 형태의 요새는 근대 이후 19세기까지도 활발히 건축되었으며, 그 가운데 몇몇은 오늘날까지도 제한적 용도로 관리되고 있다.#

성형 요새의 공통적인 설계는 오각형, 혹은 육각형의 건축물에 돌출지점마다 포루(bastion, 배스천)[2] 또는 능보(稜堡)라고도 불리는 성채가 설치된 형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포루에 적의 포병을 상대할 화포를 배치하고 궁수들이나 총병들을 배치하여 적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2. 명칭

영문 명칭은 '스타 포트(star fort)' 혹은 '바스티온 포트(bastion fort)'가 주로 쓰이며 학술적으로는 '이탈리아 전선(italian outline)'이라는 뜻의 '트레이스 이탈리엔(trace italienne)[3]'이라고도 한다. 한국어 명칭은 일본에서 한자어로 '성형 요새'라 직역한 것을 중역한 것이다. 동음이의어를 피하기 위해 '별 모양 요새' 등으로 바꿔 쓸 수 있으나 용례는 많지 않으며, '능보(bastion)'를 활용한 건축학적 특징을 따 '능보 요새'라고도 할 수 있으나, 이 역시 어려운 한자어 용어이다. 이에 학술적으로는 물론이고 대다수의 교양 서적, 잡지 및 시사 보도에서도 '성형 요새'라는 표기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흔히 축성술로 유명한 인물인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의 이름을 따서 보방(Vauban)식 요새로도 알려져 있으나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이러한 형식의 요새는 15세기 중반 이탈리아 전쟁을 거치면서 탄생했으며, 보방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이탈리아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장 유럽에서도 프랑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4]

3. 배경

성형 요새 이전에 지어진 유럽의 성채들은 대부분 성벽이 비교적 얇고 높았다. 당시 화약무기는 흔치 않거나 없었기 때문에 수성전의 주력은 궁병대였으며, 높은 성벽은 더 먼 사거리를 확보해주고 상대 궁병대로부터 아군을 지켜주고 적 부대가 성벽을 타넘기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곽의 형태 자체도 위협적인 공성병기가 딱히 없었던 만큼 원형 또는 원기둥에 가까웠다.[5]

그러나 이러한 성곽은 15세기 중반부터 대포가 빠르게 발달하면서 무력화된다. 성벽이 높으면 그만큼 맞히기도 쉽고 무너뜨리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당시 오스만 제국은 난공불락이라 일컬어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삼중 성벽을 공략하는 데에 대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도 대포가 점차 널리 활용되고 있었다. 특히 100년 전쟁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이었던 프랑스가 대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프랑스인들은 야전은 물론 공성전에서도 대포가 유용함을 입증해 나가고 있었다.[6]

대포의 발달은 당시 한창 문화적 부흥기를 구가하고 있던 당대 이탈리아 여러 국가들에게 위협적인 것이었다. 당대 이탈리아 각국은 동로마 제국과 밀접한 애증관계를 맺고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베네치아와 제노바를 중심으로 수많은 이탈리아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기존 성채가 대포 앞에 무력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탈리아인들에게 큰 충격과 함께 고민거리를 안겨줬다. 시간이 좀 더 흘러 1494년에는 프랑스 왕국이탈리아 반도를 침공하면서 이제 이탈리아인들은 대포의 위력을 몸소 체험하는 처지가 됐다. 이후로 거의 1세기 가까이 이탈리아 반도 전체가 전란에 휩싸였고 각국은 필사적으로 대포에 대응할 수 있는 축성 방식을 고안해내야 했다.

때 마침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 문화의 사조 덕택에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유능한 기술자, 건축가 및 학자들이 이미 이탈리아 각국에 초빙되어 후원을 받거나 고용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곧 이탈리아에서 성형 요새가 탄생하게 된 인적 배경이 됐다.[7] 따라서 성형 요새는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전반까지 이어진 프랑스의 이탈리아 침공 시기에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미켈란젤로피렌체 공화국의 수도 피렌체 성벽에 성형 요새 형식을 도입하였고, 이후 페루치와 스카모치에 의해 개수된다. 이 설계는 1530년대부터 40년대까지 이탈리아 전 지방으로 퍼지게 된다.

1500년 피사가 프랑스와 피렌체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을 당시 포병의 공격을 받아 취약해진 성벽에 토사로 방벽을 쌓은 것이 포병의 공격에 효과가 있음이 밝혀진 것이 처음으로 성형 요새의 가능성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후 1509년 베네치아 공화국은 성벽의 높이를 절반으로 낮추고 인근에 둔덕과 해자를 둘러쳤으며, 포병이 무력화된 프랑스군은 엄청난 희생을 치러가며 보병으로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축성 방식과 성채가 효용성을 보이면서 이탈리아 너머 유럽 각국에서도 기술자들의 수요가 폭발했으며, 이후 유럽 각지로 퍼져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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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자 오래된 성채에도 일부나마 성형 요새의 구조를 도입하는 방식도 종종 시도되었다. 사진은 파리 성과 바스티유 요새(위), 크론보르 성(아래).

4. 요새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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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쿠보르던의 전형적인 성형 요새.

성형 요새는 모서리마다 있는 다각형 모양의 포루가 상호 간 엄호해줄 수 있도록 설계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겹의 참호와 둔덕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직사포밖에 없었던 당시로서는 포병이 직접적으로 성벽을 때리는 것 자체부터 어려웠다. 타격했다 치더라도 성벽의 형태 자체가 낮고 두꺼웠던 데다 성벽 뒤에 흙을 쌓아올려 포탄의 충격을 흡수했기 때문에 방어력이 막강했다. 더군다나 성형 요새 자체에도 요새포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적 포병에 대한 반격도 가능했다.

물론 포격에 대비하기 위해 낮아진 성벽은 그만큼 적 보병육박 강습에는 취약해졌다. 이는 해자를 더 넓게 파는 것과, 해자를 파내며 나온 토사로 둔덕[8]을 쌓는 것으로 해결하게 된다. 또한 후술 되듯이 성형 요새는 정면 전체가 사각이 없어 보루마다 교차사격을 가할 수 있다. 따라서 보병이 요새에 강습을 가할 만한 지점은 죄다 전사자 다발지역이나 다름 없다. 벽을 넘는 난이도를 낮춘 이상으로 적병력을 죽이는 위력을 높인 구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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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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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cis라고 쓰여있는 부분이 성벽 앞 제방이다. 이 제방이 성벽 하단부를 완벽하게 가려주기 때문에 당시 쓰이던 직사포로 타격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상단부 뿐인데 상단부만 때려서야 보병이 진입할 틈을 만들 수 없다. 게다가 보병들이 여기를 기어올랐을 경우 산탄으로 쓸어버리기 딱 좋은 높이라서 공격측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애먹는 구조물이었다.

이외에도 성벽 밖에 다리를 걸쳐두고 별도의 작은 요새를 그 앞에 둔다거나[9] 각종 시설물들이 옵션으로 붙어 있었다. 결국 포병대가 유의미한 타격을 주기 어려워지면서 다시금 중세 시대마냥 보병들이 성벽을 기어오르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당연히도 그 피해는 엄청났다.

이 시대의 성벽의 특징을 더 하나 꼽자면 완전히 벽돌로 지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돌로 된 성벽은 포탄에 하나가 깨어지면 그대로 성벽이 붕괴될 위험성이 있었다. 그러나 벽돌로 지은 성벽의 경우 포탄이 착탄한 부분의 벽돌만 깨질 뿐 나머지 벽돌은 온전하기 때문에 성벽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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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루가 각진 삼각형 형상을 한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포루가 원형인 경우 바로 앞에 바짝 붙은 적을 걷어낼 수 없는 반면에 각진 형태라면 사각이 없다. 사각 없는 교차사격이 보병에게 날아드는 것이다. 즉, 보병이 강습해볼만한 요새 정면 전체가 전사자 다발지역으로 공격자 측에 막대한 인명 손실을 강요할 수 있다. 물론 축성이 제대로 됐다는 전제 하에.

결국 공성측 역시 무작정 하는 돌격을 자제하고, 성벽과의 각도를 재어[10] 참호를 파 들어가며 공격에 들어가게 된다. 이 작업은 공략에는 확실하지만 시간과 예산과 물자가 국가 예산이 휘청일 만큼 끝도 없이 소모된다.

반면 강습은 기습적으로 성공만 시킨다면 비교도 안 되게 적은 대가로 공략을 성공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성형 요새를 공략하는 지휘관들은 기습을 통한 보병 강습으로 요새를 점령하고 싶은 유혹에 항시 시달리곤 했다. 특히 겨울철이 다가온다거나[11] 방어 측 구원군 또는 동맹의 참전 징후 등 시간의 압박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피해를 감수하고 강습을 감행하게 된 사례도 많다.[12]

5. 공략 방법

성형 요새 공략에는 특히 공성용 박격포(지상전), 박격포함대(해전 및 상륙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공자측이 여러 난관을 헤쳐나가며 보루 정면에 가까운 지점까지 참호를 파는 데 성공하면 공성포를 배치할 수 있게 된다. 박격포의 경우는 직사가 아닌 곡사화기인지라, 성벽 너머 요새 내부의 시설 및 수비군과 주민들을 직접 타격하는 것이 가능했다. 대신 박격포의 사거리가 길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수비 측의 요새포를 침묵시키고 성벽 코 앞까지 참호를 구축해 나가야 됐다.[13] 어찌됐든 일단 공성포가 배치되고 나면 사실상 함락까지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거나 마찬가지였다. 수비측은 요새에 틀어박혀있다가 성벽 너머로 날아오는 포격을 맞으며 산산조각이 나든지, 항복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적 포대를 제거할 방법을 강구하든지 해야했다.[14]

아이러니하게도 성형 요새의 공략 방법을 수학적, 공학적으로 정교한 체계로 고안해내고 성공적으로 실행한 사람이 다름 아닌 요새 축조의 대가로 명성이 높은 보방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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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요새 공략법. 전통적 형태의 공성전략을 이용해 봤자 막대한 손실을 당할 뿐이고 강력하고 정교해진 적의 화력과 화망을 피해 대규모의 참호 건설과 맞 포격을 위한 포격진지 건설을 통해 포위망을 형성해 공성을 했다. 타 문화권을 압도해 나가는 수준으로 발전해 나가던 서구권의 대포의 위력 앞의 고육지책이었으며 공성 전술의 변화가 강제 될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 또한 자신의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툴롱 포위전에서 저런 식으로 포진지를 축성해가며 공성을 했다.

6. 쇠퇴와 현대적 활용

이렇게 뛰어난 방어력으로 나폴레옹 전쟁 시기까지 3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위력을 발휘한 성형 요새도 결국 19세기 이후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된 강선포와 인마살상력이 극대화된 작렬탄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된다. 이후에도 성형 요새는 외부 구조물이 사라지는 등 보다 단순화된 다각형 요새로 진화했으나 그마저도 전차공군이 등장하면서 무력화되었다. 몇몇 성채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방어진지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공군폭격까지 나오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단, 이렇게 쇠퇴한 것으로 보이던 성형 요새도 개념적으로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전장이 있다. 바로 공격 측이 현대적 포병 없이 소총 정도의 소화기로만 무장한 경우이다. 성형 요새의 성벽을 참호와 철조망으로 대체한 개념적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중대전술기지베트남전에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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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말리 전선에 축성된 프랑스군의 파이어 베이스
이러한 성형 요새의 검증된 방어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데, 프랑스군은 아프리카 지역에 성형 요새를 건설하여 거점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현대적인 공군과 포병을 대규모로 보유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성형 요새가 아직까지도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7. 성형 요새 목록

8. 매체에서

8.1. 게임

8.1.1. 도미네이션즈

능보 방어 건물로 등장한다.

8.1.2. 시드 마이어의 문명

8.1.3. 토탈 워 시리즈

9. 기타



[1] '바스티온(능보) 요새'라는 뜻의 'bastion fort' 또는 '이탈리아 선'이라는 뜻의 'trace italienne'으로도 불린다. (→ '명칭' 문단 참고).[2] 직역하면 요새, 보루, 치성에 해당한다. 성형 요새를 구성하는 구조물로서 역할상 포루에 해당하여 '포루'로 번역했다. 본 문서에서 이후 등장하는 '포루'는 모두 'bastion'을 의미한다. 공격측 입장에서는 능보 하나 하나가 다른 능보나 요소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미니 요새 그 자체이기도 했다.[3] 본래 프랑스어 속어에서 유래하여 영어로 유입된 용어.[4] 보방의 축성술은 독창적이기 보다는 이전부터 계속 축적되어온 축성기술을 체계화, 개량하여 적용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즉 보방은 성형 요새를 고안했다기보다는 성형 요새의 개념을 '완성' 시켰다고 할 수 있다. 보방은 국경 지역에 산재해 있는 개별 요새들을 지리적 조건, 보급과 통신망 등의 요소로 체계적으로 연계시켜 하나의 방어 시스템으로 정립했다. 축성가로서의 업적보다도 요새의 전략적 가치와 역할을 통찰하고 극대화시킨 전략가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5] 화포를 동원하는 포병이 없던 시절에는 오히려 이러한 원형 성벽의 방어력이 더 뛰어났다. 원기둥 구조 자체가 사각 기둥보다 공병 또는 공성추 등의 외부적인 충격에 구조적인 저항력이 더 강했다. 원리는 아치 구조와 동일하다. 중세 초기에는 사각 기둥의 형식을 띠던 성들도 십자군 전쟁 등을 통해 동방의 기술력이 들어오면서 원기둥 형태로 전환되었다.[6] 위 사례들만 해도 기술적인 한계로 당대 대포의 위력이 시원찮았고 승패를 결정지은 요소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15세기 이후 해가 지날수록 대포의 위력과 정확도가 상승하고, 운용기술이 정립되며 위협적인 요소로, 특히 공성병기로 급격하게 발전해 나갔다는 사실을 딱히 부정하기는 어렵다.[7] 대표적으로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의 요새화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가 있다.[8] Glacis - 제방으로 해석,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선 물이 아닌 다른 걸 막는게 목적이다.[9] 보통 구름다리나 도개교로 성벽과 연결되어 있다가 적의 수중에 떨어지면 구름다리를 끊어버리거나 도개교를 올려버린다.[10] 드립이 아닌 게 보통 지그재그로 참호를 파서 전진해야 되는데 이때 각도를 잘못 맞춰서 방어 측 사선에 노출되어 버리면 일제 사격 한방에 참호가 피투성이 시체로 가득차버릴 수도 있다.[11] 성형 요새의 군사적 가치가 여전히 유효했던 나폴레옹 전쟁 시기만 해도 물자의 현지조달이 필수적이었다. 겨울에 포위를 유지하고 참호 파면서 공성전을 벌여야한다는 건 공격자 입장에선 거의 악몽이나 마찬가지였다.[12] 이베리아 반도 전쟁 중 영국군은 바다호스 요새를 공략하면서 무려 5,200여 명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피해가 어찌나 심각했던지 당시 지휘하던 아서 웰즐리 장군조차 안색이 창백하게 변할 정도였다고 한다.[13] 이러한 박격포의 한계는 결국 곡사포의 등장을 초래했다. 실제로 성형 요새를 비롯한 요새라는 개념 자체의 몰락에 곡사포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성벽 바로 뒤에 바짝 붙은 적을 타격하려면 결국 높은 발사각을 가진 박격포가 필요하기는 했지만, 성벽 안의 핵심적인 구조물들을 부수는 데에는 곡사포로도 충분했던 것이다.[14] 이런 딜레마는 성형 요새가 퇴색된 이후인 근현대전에 이르러서도 유효했다. 수많은 포위전, 대표적으로 뤼순 공방전이나 디엔비엔푸 전투에서도 수비 측이 공자 측에 고지를 내어주고 공자 측 포병이 배치되는 순간 항복은 거의 시간문제나 다름이 없게 됐다.[15] 원래 로마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요새체계의 일부였는데, 로마시를 둘러싼 성벽은 시가지 확장 과정에서 일부가 철거됐다. 지금은 도시 속에 남아있는 성채인 셈.[16] 단, 브란덴부르크 문은 요새 문이 아니라 그냥 톨게이트 역할을 했던 관세벽의 문이다.[17] 정확히는 2017년 본토 영토(스타토 다 테라)와 해상 영토(스타토 다 마르) 6개의 요새가 선정됐으며 팔마노바는 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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