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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3cc,#191919> 이름 | 세르게이 바르바레즈 Sergej Barbarez[1] | |
출생 | 1973년 6월 20일 ([age(1973-06-20)]세) | |
유고슬라비아 SFR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SR 모스타르 | ||
국적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8cm | |
직업 |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0033cc,#191919> 선수 | FK 벨레즈 모스타르 (1984~1989 / 유스) FK 벨레즈 모스타르 (1989~1991) 하노버 96 (1992~1993) 1. FC 우니온 베를린 (1993~1996) FC 한자 로스토크 (1996~199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8~2000) 함부르크 SV (2000~2006)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6~2008) |
감독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대표팀 (2024~ ) | |
기타 | 함부르크 SV (2009~2010 / 감독위원회) | |
국가대표 | 47경기 17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1998~2006) |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3. 지도자 경력4. 여담2.1.1. FK 벨레주 모스타르2.1.2. 하노버 962.1.3. 1. FC 우니온 베를린2.1.4. FC 한자 로스토크2.1.5. 보루시아 도르트문트2.1.6. 함부르크 SV2.1.7. 바이어 04 레버쿠젠
2.2. 국가대표 경력[clearfix]
1. 개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현재 분데스리가 팬들이 역대 외국인 득점 순위를 말할 때 꼭 언급되는 선수다.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89년에 FK 벨레즈 모스타르에서 뛴 것부터 2008년에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은퇴할 때까지 436경기 143골을 기록했다.2.1.1. FK 벨레주 모스타르
1989년 7월 1일에 FK 벨레주 모스타르 1군팀에 콜업 되었다. 몇경기를 뛰었는지는 자료가 나와 있지가 않다.2.1.2. 하노버 96
1992년 1월 1일에 2. 분데스리가의 하노버 96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팀에서 뛰기 시작한건 1992-93 시즌이다. 리그에서 18경기 2골을 기록했다.2.1.3. 1. FC 우니온 베를린
1993년 7월 1일에 NOFV-오버리가[2]의 1. FC 우니온 베를린으로 이적했다.1993-94 시즌에 29경기 15골[3] 그리고 팀은 중부 리그에서 1위[4]기록하며 레기오날리가[5]로 승격을 했다.
1994-95 시즌에는 29경기 14골을 기록했다. 팀은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6]에서 2위 FC 작센 라이프치히와 승점 4점차이로 3등을 하며 2년 연속 승격에는 실패했다.
1995-96 시즌에는 30경기 17골을 기록하며 팀을 떠난 고란 마르코프의 빈자리를 잘 메꾸며 이번 시즌에도 팀의 주득점을 책임졌다. 득점왕은 FC 에네르기 코트부스의 데틀레프 이르강이 21골을 기록하며 차지했다. 이렇게 어린 나이임에도 매년마다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1.4. FC 한자 로스토크
1996년 7월 1일에 분데스리가의 FC 한자 로스토크로 이적했다.첫 시즌인 1996-97 시즌에 27경기 2골로 기대했던 모습에 비해서 부진했다. 팀은 15위를 기록하며 강등은 면하게 되었다.
1997-98 시즌에 32경기 11골을 기록하며 다시 부활했다. 그리고 팀 성적 역시 지난 시즌에 강등권인 팀이 맞나 의심할 6위인 호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5위인 FC 샬케 04와 불과 승점 1점차로 아쉽게 UEFA 컵[7]에 진출을 실패하고 UEFA 인터토토컵에 진출했다.
2.1.5.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8년 7월 1일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그러나 첫 시즌인 1998-99 시즌에 초반에는 주전으로 기용 되었으나 좀처럼 골을 기록하지 못하고 그 후에 스테판 샤퓌자에게 밀리며 22경기 4골을 기록했다.
이같은 부진에 1999-2000 시즌에 적게 출전했으며 14경기 2골을 기록했다.
2.1.6. 함부르크 SV
그리고...
첫 시즌인 2000-01 시즌에 31경기 22골을 기록했다!! 그동안 득점왕을 못하고 좀처럼 2~3위(공동 3위도 포함)만 하다가 생에 첫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공동 득점왕인 에베 산은 33경기 22골을 기록했다. 만약 똑같은 경기 수였다면 모르는 일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팀은 13위를 기록하며 망한 시즌이 되었다...[8]
두 번째 시즌인 2001-02 시즌에는 24경기 7골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에 득점왕 이였던걸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다.[9] 참고로 득점왕은 마르시우 아모로주와 마르틴 막스가 18골[10]을 기록하며 2년 연속 공동 득점왕이 생겼다. 그리고 팀은 이번 시즌에도 부진했고 득실도 51득점 58실점으로 -7인데 순위는 오히려 11위로 상승하는 다소 신기한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2002-03 시즌부터 2005-06 시즌까지도 꾸준히 활약하며 팀의 레전드로 자리 잡았다.
6시즌동안 174경기 65골을 기록했다.
2021년 현재까지 함부르크 SV에서 분데스리가로 개편 후 역대 득점 5위[11]고 외국인 선수 득점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1.7.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6년 7월 1일에 정든 함부르크 SV에서 FA로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첫 시즌인 2006-07 시즌에는 32경기 7골을 기록하며 같은 국적의 후배가 생각나는 나름 쏠쏠한 활약을 했다. 그리고 팀은 5위라는 호성적을 기록했다.
2007-08 시즌에는 29경기 4골을 기록했다. 팀은 7위를 기록했다.
2시즌동안 3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기를 90분 풀타임으로 치르며 끝까지 클래스는 죽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2년 계약이 끝나고 2008년 7월 1일에 은퇴를 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1998년 5월 14일에 아르헨티나와의 친선 경기에서 선발 출전을 하며 데뷔를 했다. 팀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5:0으로 대패했다.2006년 은퇴할때까지 43경기 17골을 기록했다. 스텟상 엘비르 볼리치에 가려저서 그렇지 바르바레즈도 상당히 보스니아에서 최전방을 맡으며 골을 자주 만들어 냈었다. 그리고 골 순도율은 즈볘즈단 미시모비치 이전에 보스니아에서 2위를 기록했었다.[12]
그리고 워낙 당시 보스니아가 상당히 국제 대회와 연이 없었는지라 바르바레즈의 국가대표 활약상은 월드컵은 고사하고 심지어 유로마저도 예선에서 그쳤다.
3. 지도자 경력
2009년에 함부르크 SV의 감독위원회에 뽑혔다. 이후 2010년에 감독위원회 자리를 사임했다.2009년 12월 4일에 보스니아 UEFA 유로 2012 예선 때에 감독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스릅스카 공화국 쪽에서 그의 입장을 막으며 결국 무산되었다.
그리고 2011년 1월 5일에 UEFA 프로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3.1.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축구 국가대표팀
2024년 4월 19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4. 여담
- 아버지는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인이고 어머니는 크로아티아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인이라고 한다.
- "세르게이 바르바레즈"가 아니라 "세르게이 바바레즈"라고도 알려져 있다.
- 2000-01 시즌 리그 최종전 FC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후반 45분에 선제골을 넣은 그 선수가 맞다. 이대로면 득점왕을 차지하는 동시에 13위인 함부르크가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리며 FC 샬케 04에게 우승을 안기나 했으나... 후반 추가 시간 4분에 파트리크 안데르손이 동점 극장골을 만들며 뮌헨이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흔히 4분 챔피언으로도 알려져 있는 사건이다. 하마터면 함부르크와[13] 샬케가 동시에 바르바레즈를 영웅 대접 할 뻔한 사건였다.
- 2011년에 뤼트 판니스텔로이가 함부르크 SV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로 다시 이적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서 그 심정이 이해간다고 했다.[14] 다만 뤼트 판니스텔로이는 이후에 말라가 CF로 이적했다.
[1] 세르비아어: Сергеј Барбарез[2] 현 명칭은 레기오날리가다. 당시 3부리그 였다. 현재 NOFV-오버리가는 5부리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3부리그는 3. 리가다.[3] 득점왕은 팀 동료인 고란 마르코프가 21골을 기록하며 차지했다.[4] 거기서 압도적으로 1위를 했다. 30경기에서 26승 2무 2패를 기록하며 승점은 54점을 기록하며 2위인 FC 에네르기 코트부스와 승점 9점이나 차이났다. 여기까지만 보면 잘했다고 생각할수 있으나 득실쪽에서 107득점 11실점을 기록하며 득실이 무려 +96이다.[5] 현 명칭은 2. 분데스리가다. 그리고 현재 레기오날리가는 4부리그 역할을 하고 있다.[6]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와 명칭은 같고 2000년에 사라졌다.[7] 현재는 UEFA 유로파 리그다.[8] 그리고 득실에서는 58득점 58실점을 기록하며 득실 0이 되었다.[9] 그리고 에베 산은 28경기 11골을 기록하며 역시 지난 시즌보다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10] 이는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득점왕중 가장 적은 골이다.[11] 1위는 137골을 기록한 우베 젤러고, 2위는 99골을 기록한 토마스 폰 히센이고, 3위는 96골을 기록한 호르스트 흐루베슈이고, 4위는 76골을 기록한 만프레트 칼츠다. 다만 우베 젤러는 9년을 뛰었고, 토마스 폰 히센은 14년을 뛰었다. 만프레트 칼츠는 무려 20년을 뛰었다. 여기서 그나마 함부르크에서 보낸 시간이 비슷한 선수는 5시즌을 뛴 호르스트 흐루베슈다.[12] 현재는 5위를 기록하고 있다.[13] 대부분이 알다시피 함부르크는 2017-18시즌에 강등을 했으나 바르바레즈가 아니었다면 역사상 최초로 강등을 17년 빨리 당했을 뻔했다.[14] 내용은 "난 그가 현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팀을 옮기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와 같은 클래스를 가진 선수라면 이적설에 흔들리는 게 이해할만 하다.그리고 만약 그가 떠난다면 이 모든 책임은 보드진에 있다. 만약 함부르크가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면 그의 이적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레알이 그를 원하고 있고, 영원히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라고 했다. 본인 역시 선수 시절 함부르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팀은 하위권을 기록했다는 것을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