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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13:44:55

세르조 레오네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세르조 레오네
Sergio Leone
파일:leone_portrait.jpg
출생 1929년 1월 3일
이탈리아 왕국 라치오 로마
사망 1989년 4월 30일 (향년 60세)
이탈리아 라치오 로마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3cm[1]
가족 아버지 로베르토 로베르티
어머니 바이스 발레리안
배우자 카를라 레오네
딸 라파엘라 레오네(1961.11.26 출생)
딸 프란체스카 레오네(1964.03.12 출생)
아들 안드레아 레오네(1967.03.09 출생)
직업 영화감독, 프로듀서, 각본가, 배우, 성우
데뷔 1961년, 영화 '로드스의 투기장'
링크 파일:IMDb 로고.svg

1. 개요2. 생애3. 작품 성향4. 이모저모5. 필모그래피
5.1. 감독 및 각본 영화5.2. 제작 및 각본 영화5.3. 미완성 & 무산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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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를 널리 퍼뜨린 감독."
― LA타임즈[2]
이탈리아의 거장 영화감독. 스파게티 웨스턴의 주요 인물이자 영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 생애

부모 모두가 업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10대 후반부터 영화 일을 시작해서, 《오드의 투기장》(il Colosso di Rodi)으로 데뷔한다. 유명한 사실주의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단역으로 나온 적도 있다.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을 심어준 영화는 스파게티 웨스턴 시리즈의 시작인 《황야의 무법자》. 하지만 이 영화는 미국에선 밥 로버트슨 감독이란 이름으로 알려져서 정작 그가 묻혀졌다. 그와 단짝인 엔니오 모리코네도 댄 사비오라는 이름을 써야 했다. 모리코네와 매우 절친했고(어린 시절 같은 반이었다. 작업을 위한 첫 만남 때 모리코네가 먼저 알아봐서 동창임을 알게 된다.) 그의 영화 대부분을 모리코네가 음악을 도맡았다.

이후 석양의 건맨과 석양의 무법자로 스파게티 웨스턴 3부작을 완성한 뒤 할리우드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서부극 두 편을 만드는데, 《옛날 옛적 서부에서》와 《석양의 갱들》이다. 더 이상 서부극을 만들 생각이 없었으나 미국 영화사에서 계속 요청을 하는 바람에 결국 다시 서부극을 만들었다고 한다.

두 작품을 만든 후, 10년 뒤 유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만들며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지만, 제작사가 상의도 없이 영화를 편집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그 뒤 러시아 혁명을 다룬 영화를 기획했지만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그 기획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촬영 때부터 아픈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3. 작품 성향

그의 작품들 대부분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촬영은 미국 밖에서 했으며, 배경 또한 국경 지역이거나 멕시코였다. 미국까지 가려면 제작비가 많이 필요해서 스페인에서 주로 찍었고, 인디언을 맡을 조연 및 엑스트라 캐스팅도 어렵고 분장도 돈이 들기 때문에 이탈리아 배우와 스페인 배우들을 생김새가 비슷한 멕시코인 배역으로 출연 시켰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에서는 미국 제작사의 지원을 받아서인지 미국 나바호에서 촬영하고 인디언도 나온다.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며, 인물들 각도를 잘 잡는 편이다.

좌파 성향이 강한 감독들 중 하나로, 스파게티 웨스턴 3부작도 기존의 서부극들에서 서부 개척 영웅들을 극히 미화하고 우상화하는 걸 철저히 깨부수어 실제 서부개척시대는 정의로운 영웅은 없고 무법과 폭력이 난무한 추악한 시대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또 스파게티 웨스턴을 찍던 시절부터 멕시코계 무산 계급들이 가난을 견디지 못해 범죄자로 전락해가는 모습을 은근히 묘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묘사는 스파게티 웨스턴이 아닌 그의 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도 이어져 정의로운 사람은 없는 연출을 보여준다.

ONCE UPON A TIME 시리즈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그 색깔을 드러내, 《옛날 옛적 서부에서》에서는 전통적인 미국 서부극의 영웅 역이었던 배우 헨리 폰다를 악역으로 기용했다. 진짜 말 그대로 악역. 영화를 보면 어린이를 비롯해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 폰다는 에이브러햄 링컨를 연기했을 정도로 정직하고 선한 이미지의 배역을 주로 해왔는데, 이 때 악역으로 캐스팅되자 원래 배급사가 배급 철회를 하여 배급사가 바뀔 정도였다.[3] 미국인 관객들도 이 영화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정작 폰다는 기존의 배역과는 딴판인 악역을 아주 맘에 들어해서 열심히 연기했다.[4][5] 반대로 악역 전문이던 찰스 브론슨이 선역으로 나온다.

세르조 레오네 감독은 이렇게 처음부터 미국 서부영화의 이상적 기반을 뒤틀고 시작한 데다 영화 자체도 서부극의 탈을 뒤집어 쓴 계급투쟁극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석양의 갱들》은 그 절정에 있으며, 20세기 초반 불꽃처럼 일어난 멕시코 민중 혁명의 열렬한 찬가라고 할만한 작품이다. 물론 그가 서부극을 싫어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웨스트의 경우 존 포드 감독 작품들을 오마주한 장면들이 있다.

또한 그는 시대 고증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미국 역사 도서를 열독했다고 하며, 그 결과 석양의 무법자의 병기 고증은 상당히 놀라운 수준이다. 작중에 투코가 수송되던 기차 뒷편에 달린 대포라든가 폭파되는 목조 다리의 고증 역시 엄청나다.[6]

그의 페르소나격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3부작에 영향을 받아 《용서받지 못한 자》의 감독 겸 주연을 했는데, 이스트우드 감독은 스승이자 친구인 레오네 감독과는 달리 우파인 공화당 지지자이긴 하지만 우익에서도 꽤 진보적인 태도를 취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레오네 감독을 추모하는 문구가 나온다.

4. 이모저모

흔히 세르지오 레오네로 알려져 있지만 외래어 표기법과 구글 검색 결과수에 따라 항목명이 이렇게 되었다. 이탈리아 이름의 'Gio'를 로마자 표기만 믿고 '지오'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발음이 /dʒo/(영어의 'jo'에 가까움)이기 때문에 두음절로 발음되는 글자가 아니다.

황야의 무법자》가 일본영화 《요짐보》를 무단 도용한 것에 대해서 그리 비판을 받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요짐보 항목에서도 나오듯 요짐보조차 대실 해미트가 쓴 소설 《피의 수확》을 일본으로 배경을 바꿔 2개 갱조직을 서로 싸우게 하는 주인공 설정을 표절했기에 레오네로부터 너는 대실 해미트에게 돈주고 사기나 했냐는 소리를 듣자 구로사와는 찍소리도 못했다. 레오네도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구로사와 아키라가 요짐보 보다 자기 덕분에 돈을 벌게 되었다고 큰소리치는 뻔뻔함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요짐보》는 영화의 명성과는 별도로 흥행은 실패해서 제작자들에게 구로사와 아키라 놈은 돈만 날린다고 온갖 욕을 쳐먹었다. 그러다가 《황야의 무법자》의 무단 도용이 문제가 되면서 구로사와 아키라가 《황야의 무법자》의 한국, 일본, 대만 딱 3나라 배급권을 갖게 되는 것으로 부분 합의를 해준 셈. 결과적으로는 《요짐보》로 번 돈의 60배(!)가 넘는 수입을 얻게 되었으니 큰소리 칠 만도 한 것(…). 구로사와는 기분 나빴겠지만 말이다. 살아 생전에 흥행 감독 소리 못 듣고 제작자랑 허구한 날 싸워서 그 당시에도 돈에 쩔쩔매던 터라 이런 엄청난 추가 수익(?)을 얻었기에 뭐라고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만화 《북두의 권》은 이 감독의 작품에서 엄청나게 영향을 받았다. 초반에 신의 부하인 다이아가 어떤 남자를 교수대에 매달아 놓고 어린 딸을 그 남자의 발을 들게 하고 아빠가 죽지 않게 힘내라며 괴롭히는 장면은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초반에 형제 중 형을 매달아놓고 동생보고 형을 지탱하게 하는 장면을 빌린 것이고, 외투 안에 다이너마이트를 잔뜩 매달아놓고 총을 쏠 테면 쏴 보라고 위협하는 악당이 나오는 장면은 《석양의 갱들》에서 IRA 대원인 제임스 코번이 하던 장면을 차용한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에 레오네 감독의 영화들의 오마주가 나오기도 한다. 특히 폭력 묘사는 레오네 감독의 영화들에서 영감을 받았다.

성격이 급하고 배우들에게 위험한 짓을 많이 시키는 데다[7] 카우보이 흉내를 잘 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를 요세미티 샘이라고 불렀다. 관련 기사

엔니오 모리코네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세르조 레오네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가 〈황야의 무법자〉 음악 부탁하려고 모리코네를 찾아갔을 때[8] 모리코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함께 찍은 단체사진을 보여줘서 알게 되었다. 이 인연으로 이후 레오네와 모리코네는 자주 협업했다.출처

대부〉 연출 제안을 거절하고 찍은 작품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이다. 제작비 문제로 허덕이다가 1984년에야 겨우 완성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5. 필모그래피

5.1. 감독 및 각본 영화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81818><tablebgcolor=#181818>
세르조 레오네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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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조 레오네 감독 장편 연출 작품 틀에 폼페이: 최후의 날이 왜 들어가 있냐면 실제 감독이 레오네였기 때문이다. 그가 감독한 8편 모두 각본도 참여.

5.2. 제작 및 각본 영화

5.3. 미완성 & 무산된 영화



[1] 출처[2] #[3] 원래 배급사는 MGM이었는데 파라마운트 픽처스로 바뀌었다.[4] 그의 커리어에서 베드신도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연기했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와의 첫 촬영이었으며, 이에 헨리 폰다의 부인이 촬영장 입회(!)를 요구하였다고 한다.[5] 이 작품의 인연으로 무숙자에서도 같이 작업한다.[6] 그 시절엔 CG가 없어서 다리를 실제로 만들고 진짜 폭파시켜 찍었다. 그런데 소통 혼선으로 카메라를 돌리지 않은 상태에서 폭파시킨 바람에 다시 짓고(...) 재촬영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Sadhill Unearthed에서 이 에피소드가 언급된다.[7] 한 장면 찍으려고 성난 개를 풀거나, 진짜로 달려오는 기차 선로 위에 수갑 채워놓고 올려놓는 등 기행을 일삼았다. 그리고 선로 위에 올려둔 건 조연도 아니고 주연인 일라이 월랙이었다. 까딱하면 죽을 뻔했다.[8] 어린 시절부터 함께 성장한 죽마고우란 세간의 인식과 달리 세르조 레오네가 엔니오 모리코네를 찾아간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