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명
{{{#!folding 세바스티아누스 명칭변형 펼쳐보기(클릭) {{{#!wiki style="margin: -6px -6px -13px" | 라틴어 | 세바스티아누스 | Sebastianus | ||
게르만어파, 핀란드어, 루마니아어 폴란드어, 체코어 | 세바스티안 | Sebastian | |||
네덜란드어 | 세바스티안 | Sebastiaan | |||
독일어 | 제바스티안 | Sebastian | |||
러시아어 | 세바스티얀 | Севастьян | |||
스페인어 | 세바스티안 | Sebastián | |||
아일랜드어 | 세바스처 | Soibáiste | |||
영어 | 세바스찬 | Sebastian | |||
이탈리아어 | 세바스티아노 | Sebastiano | |||
포르투갈어 | 세바스티앙 | Sebastião | |||
프랑스어 | 세바스티앙 | Sebastian | |||
헝가리어 | 셰베슈첸, 세버스티안 | Sebestyén, Szebasztián | |||
다른 명칭변형 둘러보기 | }}}}}} |
Sebastiano
이탈리아어권의 남자 이름. '세바스티아 출신'이라는 뜻이다. 세바스티아(Sebasteia, Σεβαστεία)는 '존경받는다'는 뜻의 그리스어 '세바스토스(σεβαστος)'에서 파생된 아나톨리아 동부의 도시 이름으로, 현 튀르키예의 시바스(Sivas)이다.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튀르키예어 이름인 시바스 역시 그리스어 이름인 세바스티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래 나올 순교자 성 세바스티아노(Sanctus Sebastianus, 256~288)에서 유래한 인명이기도 하다.
실제 영어 발음은 '서배스천'에 가깝다. 언어별 베리에이션으로는 독일어 제바스티안(Sebastian) 혹은 바스티안(Bastian), 프랑스어 세바스티앵(Sébastien) 혹은 바스티앵(Bastien), 영어권의 세바스찬(Sebastian), 포르투갈어 세바스티앙(Sebastião) 등이 있다.
2. 실존인물
- 세바스티아노 넬라 -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 세바스티아노 로시 -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 세바스티아노 루페르토 -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 세바스티아노 에스포시토 -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 세바스티아노 포체티노 - 1996년생,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첫째 아들. 아버지를 따라다니면 그의 부임지 1군 팀에서 스포츠 사이언티스트와 코치를 하고 있다.
- 제바스티안 코치 - 1962년생의 독일 배우, 영화 슈타우펜베르크, 블랙북, 타인의 삶 등에서 주연을 맡았다.
2.1. 성 세바스티아노
성 세바스티아노, 안드레아 만테냐, 1480년 경 (루브르 박물관 소장) |
(Sanctus Sebastianus, Saint Sebastian, 256~288)
프랑스 나르본 지방 출신으로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순교한 군인으로, 서양권에서는 끊임없이 다루어진 성인. 축일은 1월 20일(가톨릭)·12월 18일(정교회). 군인, 운동선수 그리고 궁술가의 수호성인이자 전염병[1]의 수호성인이다.
묶여 있는 헐벗은 백인이 화살을 맞은 성화는 대체로 그이다. 그는 저렇게 화살을 맞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고, 성녀 이레네의 치료를 받고 회복된다. 회복된 후에도 황제에게 기독교 박해에 대해 직언하다 결국 몽둥이로 맞아 순교했다. 로마에 유해가 묻힌 부근에 자리한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이 있다. 현대에 와서도 회화나 사진으로 재해석되고 있으며, 미시마 유키오는 생전에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해당 포즈와 구성은 BDSM의 클리셰다. 정확히는 에세머 게이(혹은 남성 서브미시브)의 클리셰. 화살에 맞으며 죽어가는 저 표정이 오르가슴에 달한 표정처럼 보인다는 사람이 많은데(사실 저 표정은 서양 미술사에서 종교적 황홀경을 묘사할때 쓰는 전형적인 기법인데 그러한 전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오는 현상이다), 서양에서는 저 회화를 보고 BDSM에 눈을 뜨는 게이가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사디스트 성향으로 알려진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을 보면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를 그린 회화를 보고 흥분해서 성기를 만지다 처음으로 사정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 말고도 성 세바스티아노의 그림은 자주 그려졌는데 그 이유가 자못 비범하다. 당시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엄격한 도덕적 통제로 인해 여성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남성의 누드를 그리기 어려웠는데[2] 때마침 발가벗겨진 채 화살을 맞은 성 세바스티아노는 화가들에게 남성의 벗은 몸을 그릴 수 있는 '합리적인' 소재거리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