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陳書)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abbadb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 1·2권 「무제기(武帝紀)」 | 3권 「문제기(文帝紀)」 | 4권 「폐제기(廢帝紀)」 | |||||||||
진패선 | 진천 | 진백종 | ||||||||||
5권 「선제기(宣帝紀)」 | 6권 「후주기(後主紀)」 | |||||||||||
진욱 | 진숙보 | |||||||||||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열전(列傳) ] | 7권 「후비전(后妃傳)」 | |||||||||||
장요아 · 심묘용 · 왕황후 · 유경언 · 심무화 · 장여화 | ||||||||||||
8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 9권 「후진등전(侯瑱等傳)」 | 10권 「주철호등전(周鐵虎等傳)」 | ||||||||||
두승명 · 주문육 · 후안도 | 후진 · 구양위 · 오명철 ,배자열, | 주철호 · 정령세 | ||||||||||
11권 「황법구등전(黃法氍等傳)」 | 12권 「호영등전(胡穎等傳)」 | 13권 「서세보등전(徐世譜等傳)」 |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호영 · 서도 · 두릉 · 심각 | 서세보 · 노실달 · 주부 · 순랑 · 주경 | ||||||||||
14권 「형양헌왕창등전(衡陽獻王昌等傳)」 | 15권 「종실전(宗室傳)」 | 16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 ||||||||||
진창 · 진담랑 | 진의 · 진상 · 진혜기 | 조지례 · 채경력 · 유사지 · 사기 | ||||||||||
17권 「왕충등전(王沖等傳)」 | 18권 「심중등전(沈衆等傳)」 | 1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 ||||||||||
왕충 · 왕통 · 원경 | 심중 · 원필 · 유중위 · 육산재 · 왕질 · 위재 | 심형 · 우려 · 마추 | ||||||||||
20권 「도중거등전(到仲舉等傳)」 | 21권 「사철등전(謝哲等傳)」 | |||||||||||
도중거 · 한자고 · 화교 | 사철 · 소건 · 사하 · 장종 · 왕고 · 공환 · 소윤 | |||||||||||
22권 「육자륭등전(陸子隆等傳)」 | 23권 「심군리등전(沈君理等傳)」 | 24권 「주홍정등전(周弘正等傳)」 | ||||||||||
육자륭 · 전도집 · 낙아 | 심군리 · 왕창 · 육선 | 주홍정 · 원헌 | ||||||||||
25권 「배기등전(裴忌等傳)」 | 26권 「서릉전(徐陵傳)」 | 27권 「강총등전(江總等傳)」 | ||||||||||
배기 · 손창 | 서릉 | 강총 · 요찰 | ||||||||||
28권 「세조9왕·고종29왕·후주제자전(世祖九王高宗二十九王後主諸子傳)」 | ||||||||||||
진백무 · 진백산 · 진백공 · 진백신 · 진백인 · 진백의 · 진백례 · 진백지 · 진백모 · 진숙영 · 진숙견 · 진숙명 · 진숙경 · 진숙헌 · 진숙제 진숙문 · 진숙달 · 진숙탄 · 진숙표 · 진숙웅 · 진숙중 · 진숙엄 · 진숙신 · 진숙우 · 진숙평 · 진숙오 · 진숙흥 · 진숙선 · 진숙목 · 진숙검 진숙징 · 진숙소 · 진숙광 · 진숙순 · 진숙모 · 진숙현 · 진숙륭 · 진숙영 · 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진전 · 진번 | ||||||||||||
29권 「종원요등전(宗元饒等傳)」 | 30권 「소제등전(蕭濟等傳)」 | 31권 「소마하등전(蕭摩訶等傳)」 | ||||||||||
종원요 · 사마신 · 모희 · 채징 | 소제 · 육경 · 고야왕 · 부재 | 소마하 · 임충 · 번의 · 노광달 | ||||||||||
32권 「효행전(孝行傳)」 | ||||||||||||
은불해 · 사정 · 사마고 · 장소 | ||||||||||||
33권 「유림전(儒林傳)」 | ||||||||||||
심문아 · 심수 · 척곤 · 정작 장애 육후 심덕위 하덕기 · 전완 · 장기 · 고월 · 심불해 · 왕원규 | ||||||||||||
34권 「문학전(文學傳)」 | ||||||||||||
두지위 · 안황 · 강덕조 · 유지 · 허형 · 저개 · 잠지경 · 육염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채응 · 완탁 | ||||||||||||
35권 「웅담랑등전(熊曇朗等傳)」 | 36권 「시흥왕숙릉등전(始興王叔陵等傳)」 |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 진숙릉 · 진백고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0275d><tablebgcolor=#10275d>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 1권 「송본기상(宋本紀上)」 | 2권 「송본기중(宋本紀中)」 | 3권 「송본기하(宋本紀下)」 | |
유유(裕) · 유의부 | 유의륭 · 유준(駿) · 유자업 | 유욱(彧) · 유욱(昱) · 유준(準) | ||
4권 「제본기상(齊本紀上)」 | 5권 「제본기하(齊本紀下)」 | |||
소도성 · 소색 | 소소업 · 소소문 · 소란 · 소보권 · 소보융 | |||
6·7권 「양본기상·중(梁本紀上·中)」 | 8권 「양본기하(梁本紀下)」 | |||
소연 | 소강 · 소역 · 소방지 | |||
9권 「진본기상(陳本紀上)」 | 10권 「진본기하(陳本紀下)」 | |||
진패선 · 진천 · 진백종 | 진욱 · 진숙보 | |||
}}}}}}}}}
- [ 열전(列傳) ]
- ||<-6><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1·12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은숙의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 진도정 · 유지용 · 배혜소 · 왕보명 · 하정영 · 왕소명 · 유혜단 · 저영거 · 왕순화 · 장상유 · 치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장요아 · 심묘용 · 왕황후 · 유경언 · 심무화 · 장여화 13·14권 「송종실급제왕전(宋宗室及諸王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의경 · 유준고 · 유의진 · 유의강 · 유의공 · 유의선 · 유의계 · 유소 · 유준(濬) · 유삭 · 유굉 · 유탄 · 유위 · 유창 · 유혼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무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범 · 유휴약 ·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15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16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유목지 ·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왕진악 ·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 주수지 · 왕현모 17권 「유경선등전(劉敬宣等傳)」 유경선 · 유회숙 · 유수 · 손처 · 괴은 · 상정 · 유종 · 우구진 · 맹회옥 · 호번 · 유강조 18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19권 「사회등전(謝晦等傳))」 조륜지 · 소사화 · 장도 사회 · 사유 · 사방명 · 사령운 20권 「사홍미전(謝弘微傳)」 21권 「왕홍전(王弘傳)」 22권 「왕담수전(王曇首傳)」 사홍미 왕홍 왕담수 ,왕훈, 23권 「왕탄등전(王誕等傳)」 24권 「왕유지등전(王裕之等傳)」 25권 「왕의등전(王懿等傳)」 왕탄 · 왕화 · 왕혜 · 왕욱 왕유지 · 왕진지 · 왕소지 · 왕열지 · 왕준지 왕의 · 도언지 · 원호지 · 장흥세 26권 「원담전(袁湛傳)」 27권 「공정등전(孔靖等傳)」 28권 「저유지전(褚裕之傳)」 원담 공정 · 공림지 · 은경인 저유지 29권 「채곽전(蔡廓傳)」 30권 「하상지전(何尙之傳)」 31권 「장유전(張裕傳)」 채곽 하상지 장유 ,장승, 32권 「장소전(張邵傳)」 33권 「범태등전(范泰等傳)」 34권 「안연지등전(顔延之等傳)」 장소 범태 · 순백자 · 서광 ·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안연지 · 심회문 · 주랑 35권 「유담등전(劉湛等傳)」 36권 「양흔등전(羊欣等傳)」 37권 「심경지등전(沈慶之等傳)」 유담 · 유열 · 고침 · 고기지 양흔 · 양현보 · 심연지 · 강이 · 강병지 심경지 · 종각 38권 「유원경전(柳元景傳)」 39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40권 「노상등전(魯爽等傳)」 유원경 은효조 · 유면 노상 · 설안도 · 등완 · 종월 · 오희 · 황회 41권 「제종실전(齊宗室傳)」 소도도 · 소도생 · 소요광 · 소요흔 · 소면 · 소경선 · 소적부 · · 소탄 · 소탄지 42·43권 「제고제제자전(齊高帝諸子傳)」 소억 ·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44권 「제무제제자·제문혜제자·명제제자전(齊高帝諸子·文惠諸子·明帝諸子傳)」 소장무 ·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45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46권 「이안인등전(李安人等傳)」 왕경칙 · 진현달 · 장경아 · 최혜경 이안인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무 ·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47권 「순백옥등전(荀伯玉等傳)」 48권 「육징등전(陸澄等傳)」 순백옥 · 최조사 · 설연 · 우종 · 호해지 · 우완지 · 유휴 · 강석 육징 · 육혜효 · 육궐 49권 「유고지등전(庾杲之等傳)」 50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유고지 · 왕심 · 공규 · 유회진 유환 · 명승소 · 유이 · 유규 51·52권 「양종실전(梁宗室傳)」 소경 ,소매 소발 소앙 소욱, · 소의 · 소부 · 소창 · 소융 · 소굉 ,소정인 소정의 소정덕 소정립,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53권 「양무제자전(梁武帝諸子傳)」 소통 · 소종 · 소적 · 소속 · 소윤 · 소기 54권 「양간문제자·원제제자전(梁簡文帝諸子·元帝諸子傳)」 소대기 · 소대심 · 소대관 · 소대림 · 소대련 · 소대춘 · 소대성 · 소대봉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훈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대원 · 소방등 · 소방제 · 소방구 · 소방략 55권 「왕무등전(王茂等傳)」 왕무 · 조경종 · 조의종 · 석천문 · 하후상 · 길사첨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 장혜소 · 장징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56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57권 「심약등전(沈約等傳)」 58권 「위예등전(韋叡等傳)」 장홍책 ·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 악애 심약 · 범운 위예 · 배수 59권 「강엄등전(江淹等傳)」 60권 「범수등전(范岫等傳)」 61권 「진백지등전(陳伯之等傳)」 강엄 · 임방 · 왕승유 범수 · 부소 · 공휴원 · 강혁 · 서면 · 허무 · 은균 진백지 · 진경지 · 난흠 62권 「하창등전(賀瑒等傳)」 63권 「왕신념등전(王神念等傳)」 64권 「강자일등전( 江子一等傳)」 하창 · 사마경 · 주이 · 고협 · 서리 · 포천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강자일 · 호승우 · 서문성 · 음자춘 · 두즉 · 왕림 · 장표 65권 「진종실제왕전(陳宗室諸王傳)」 진의 · 진상 · 진혜기 · 진창 · 진담랑 · 진백무 · 진백산 · 진백고 · 진백공 · 진백인 · 진백의 · 진백례 · 진백지 · 진백모
진숙릉 · 진숙영 · 진숙견 · 진숙명 · 진숙경 · 진숙헌 · 진숙제 · 진숙문 · 진숙달 · 진숙탄 · 진숙표 · 진숙웅 · 진숙중 · 진숙엄 · 진숙신 · 진숙우 · 진숙평 · 진숙오 · 진숙흥 · 진숙선 · 진숙목 · 진숙검 · 진숙징 · 진숙소 · 진숙광 · 진숙순 · 진숙모 · 진숙현 · 진숙륭 · 진숙영
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 진전 · 진번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위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호영 · 서도 · 두릉 · 주철무(1) · 정령세 · 심각 · 육자륭 · 전도집 · 낙문아 · 손창 · 서세보 · 주부 · 순랑 · 주경 · 노실달 · 소마하 · 임충 · 번의 68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조지례 · 채경력 · 종원요 · 한자고 · 화교 · 유사지 · 사기 · 모희 · 심군리 · 육산재 6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심형 · 우려 · 부재 · 고야왕 · 요찰 70권 「순리전(循吏傳)」 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71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7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최위조 · 조충지 · 가희경 · 원준 · 유소(昭)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협 · 하사징 · 임효공 · 안협 · 기소유 · 두지위 · 안황 · 잠지경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완탁 73·74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瑜) · 가은 · 곽세통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구걸 · 사각수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인 · 손극 · 하자평 · 최회순 · 왕허지 · 오경지 · 소예명 · 소교처양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 구관선 · 손담 · 화보 · 해숙겸 · 한영민 · 유풍 · 봉연백 · 오달지 · 왕문수 · 악이지 · 손법종 · 유도민 · 등담공 · 도계직 · 심숭소 · 순장 · 길분 · 견염 · 조발호 · 한회명 · 저수 · 장경인 · 도자장 · 성경준 · 이경서 · 사린 · 은불해 · 사마고 · 장소 75·76권 「은일전(隐逸傳)」 도잠 · 종소문 · 심도건 · 공순지 · 주속지 · 대옹 · 적법사 · 뇌차종 · 곽희림 · 유응지 · 공기 · 주백년 · 관강지 · 어부 · 저백옥 · 고환 · 두경산 · 장영서 · 오포 · 서백진 · 심인사 · 완효서 · 등욱 · 도홍경 · 제갈거 · 유혜비 · 범원엽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77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78·79권 「이맥전(夷貊傳)」 임읍 · 부남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 백제국 · 신라 · 왜 · 부상국· 하남왕국 · 탕창 등지 · 무흥국 · 형옹주·예주만 · 고창 · 쿠처 · 우전국 · 파사국 ·연연 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1. 개요
蕭摩訶(532? ~ 604)[1]남북조시대 후기, 진나라의 장군으로 남조 마지막 맹장으로 일컬어진다.
2. 생애
난릉 소씨 양나라 시흥군승 소량의 아들로 어려서 아비를 여의고 매형 채노양에게서 자라났다. 후경의 반란이 터지고 진 무제 패선이 수도 건강부를 구원할 때 채노양이 무제를 막아섰는데 이때 불과 10대 소년임에도 출전하여 3군 제일의 용맹을 떨치니 당해낼 자가 없었다.[2]창업주답게 병법에 능한 무제에게 패하기는 하였으나 무제의 후원자이자 개국공신인 후안도가 그를 거두어들이면서 항상 정벌에 따랐고, 후안도는 소마하를 아꼈다. 왕승변의 일파였던 임약, 서수휘가 북제군을 끌어들여 진나라의 북방을 약탈하자 무제가 이를 막도록 후안도에게 명했는데, 격렬하게 싸우다가 말에서 떨어진 후안도가 적에게 포위되자 소마하가 크게 소리치며 단기로 돌진해 적을 무너뜨리자 적들이 무너지고 물러났다.
이렇듯 경력의 전반기에는 후안도를 따랐으나 후안도가 진 문제에게 숙청[3]된 이후로는 오명철을 따라다니며 활동한다. 진 선제가 즉위한 이후 반란한 구양흘을 진압하는 데에도 공을 세웠다.
북제의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곡률광도 모살되어 국방력이 약해진 틈을 타 진나라는 573년부터 북벌을 계획하여, 이에 출정하여 도독 오명철의 휘하에서 북제의 진주(秦主)를 공략했는데, 이에 제나라는 대장 울파호가 통솔하고 창두(蒼頭), 서각(犀角), 대력(大力)이라는 깃발의 신장 8척에 완력이 절륜한 선봉들과 궁술이 뛰어난 서역호(외국용병)를 동원한 10만 구원군을 보내니, 사람들은 특히 서역호를 두려워했다.
소마하는 오명철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신 후, 말을 타고 제군에 돌진하였고, 서역호가 앞으로 나와 활을 당기나 쏘지 못하였다. 소마하는 멀리서 끌(끝이 넓은 송곳)을 던져 서역호를 쓰러뜨렸다. 그 후에도 제군 대력이 십수명 출진하자 소마하는 그들을 베어버렸고 이에 제나라 구원군 10만은 퇴각했다. 군공으로 후작으로 작위가 상승한다.
575년에는 다시 오명철을 따라 적을 포위, 왕진덕이 이끄는 제군을 격퇴하였으며 577년에는 여량(呂梁)에서 7기만을 이끌며 선봉에서 돌진하여 제군의 깃발을 빼앗아오니 제군이 크게 무너졌다. 군공으로 지절, 무위장군, 초주자사로 전임한다.
제를 멸망시킨 주나라가 여량을 빼앗으러 오자, 12기를 이끌고 주군을 돌파하고 다니며 많은 적을 베었다
578년, 주나라가 상대장군 왕궤(王軌)와 원군을 파병해 여량 하류를 쇠사슬로 봉쇄시키려 하자, 소마하는 이를 파괴할 것을 건의하나 거부당한다. 열흘 만에 수로는 봉쇄됐고, 주나라의 군세는 계속해서 불어났다. 이에 소마하는 밤에 적을 돌파할 것을 건의하자 오명철은 소마하의 계책을 인정하며 후방에 가고, 소마하가 선봉에 서기로 한다. 소마하는 80기를 이끌고 밤에 출발해 적과 충돌하며 아침에 회남까지 이르렀지만 오명철은 결국 왕궤에게 잡혔고 북주에서 대장군, 회덕공에 봉하였지만 분통함으로 머지않아 사망했다. 진나라의 북벌도 이것으로 사실상 좌절되었다.[4]
582년 선제가 붕어하고 진숙보가 제위를 계승할 때 이복동생 시흥왕 진숙릉이 후주를 찌르고 동부성으로 도주하자, 칙서를 받고 입궁한 소마하는 100여 보기를 이끌고 쫓아가 토벌하고 수급을 취하였다. 이때 세운 공으로 소마하는 수건군공에 책봉되고 산기상시, 거기대장군에 임명되었으며, 시흥왕이 보유하던 수많은 금과 비단이 전부 포상으로 주어졌다. 머지않아 시중, 표기대장군, 좌광록대부로 승진하였으며 딸이 태자 진윤[5]에게 시집갔다. 대우는 삼공에 준하여 황합을 열고 정무를 볼 수 있게 하였다.
수나라의 하약필이 광릉에 주둔하자 후주는 소마하에게 수나라를 막게 하나 소마하가 건강부에 불려간 사이, 수나라가 도강하여 경구를 습격하였고, 다시 종산으로 진군하였다. 이에 소마하는 역습할 것을 건의하나 재차 거부당했다.
수의 대군이 건강부 외곽에 다다르고 나서야 출전하였지만 수군의 기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포로가 된다.[6] 목에 칼이 들어오나 안색과 어조가 바뀌지 않아 하약필은 감탄하여 그를 예우했다.
포로인 상황에서도 마지막으로 후주를 애써 만나 작별하기까지 군신의 예를 잃지 않았으니 주위에서 감동하였고, 관중으로 입조하여 개부의동삼사에 제수된다.[7]
차남 소세략이 강남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수 문제는 연좌하여 죄를 묻지 않았다. 이후 597년에는 병주총관으로 부임하는 한왕 양량을 따라갔다가 604년 양량이 진왕 양광에게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이에 호응하여 진격하였다가 양소의 중앙군에 패하여 참수된다. 한때 심복이었던 진지심[8]이 직접 염하여 추모하고 장사지냈다.
장남 소세렴은 효성스럽고, 상을 마친 이후에도 추모함이 더욱 정성스러웠으며 평생 병장기를 잡지 않아 주위에서 이를 칭찬하였다고 전해진다.
3. 평가
어눌하였으나 믿음직스럽고 전시에는 기백이 분발하여 대적할 상대가 없었다고 한다.중년에 이르러 북벌에 출진할 당시 이미 그 용명이 관우, 장비에 필적하였다고 한다. 북조에 곡률광이 있다면, 남조에는 소마하가 있었던 셈(단 이 둘은 각자 북주와의 전쟁, 남쪽의 반란 평정에 주로 활동하여 서로 맞붙을 기회는 없었다).
다만, 6세기 남북조사가 진경지의 활동, 후경의 난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북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소마하가 대부분의 군력을 보낸 진나라는 6조 최약의 왕조라 당대의 활약에 비하면 국내에서는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은 점이 많다.
[1] 訶는 呵와 동자로, 음을 나타내는 부분은 可이고 따라서 '가'가 기본음이 되지만, 산스크리트어의 '하' 발음을 가차할 때 쓰이게 되면서 불교쪽 용어에서는 모두 '하'라 읽게 되어 있다. 그래서 '소마가'라 표기된 경우도 있는데, 이 이름은 불교용어 마하(摩訶)를 그대로 사용한 경우에 해당한다.[2] 북사에 표기된 향년이 73이라 이때쯤이면 17~18세인데 13세로 표시된 부분이 있다. 정확한 생년이 알려진다면 수정요청.[3] 개국공임은 물론 북주에 포로로 잡힌 무제의 장남을 제치고 조카인 문제를 옹립하는데도 큰 공을 세웠으나 공적과 권세가 무거워 오만해졌다. 마침 모반 혐의로 참소된 것을 빌미로 문제4년 사사된다.[4] 580년에 양견의 전횡에 반발한 울지형의 반란때 이에 동조한 사마소난의 귀순으로 마지막 북벌 시도가 있었지만 위효관에게 저지됨.[5] 후주가 장여화에게서 낳은 4남 진심을 태자로 삼으면서 폐태자된다[6] 일설에는 후주가 소마하의 처와 NTR로 인하여 지휘할 의욕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7] 다만, 이후의 기록이 미진한 것으로 보아 명예직이었을 뿐 대장군으로서의 병권은 주어지지 않고 사실상 강제 제대한 것으로 보인다.[8] 시흥왕의 반란을 평정할 때 직접 돌격하여 시흥왕을 낙마시키고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