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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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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태용의 지도자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코치 경력

2.1. 대한민국 대표팀

파일:external/kfa.or.kr/201494201112.jpg
2014년 8월, 대표팀의 공격 코치.

2014년 9월 A매치 직전까지 신임 감독 선임이 지연되면서, 공격 코치로 합류해 A매치를 치르게 되었다. 감독 경력이 있는 신태용 코치가 임시로 지휘봉을 잡았다. 실질적인 감독 대행이었다.[1]

9월 5일 베네수엘라전 직전에 울리 슈틸리케가 감독으로 선임되었지만, 갑자기 슈틸리케가 지휘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2] 슈틸리케는 고양종합운동장 관중석에서 우루과이전을 관전하며 취임 인사만 하게 되었다. 이전 감독인 홍명보와 달리 전술의 유연성을 보여 주면서, 이동국의 2골을 앞세워 3-1로 베네수엘라에 역전 완승을 거두었다.(9월 5일, 부천종합운동장)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내가 알제리전을 지휘했다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면서 전임 감독을 우회해서 비판했다.

추석에 열린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거의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결국 후반 25분에 프리킥[3]에서 히메네스에게 헤더 골을 허용하여 0-1로 패했다. 그러나 변칙적인 전술을 선보여 전반전에는 수비의 완벽함을, 후반전에는 맹렬한 공격을 보여줘 져도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얻게 되었다. 이 경기가 끝나고 예전에 뛰었던 팀의 모기업에서 생산하는 보리탄산음료인 "맥콜"을 본떠서 맥콜라리라는 별명을 얻었다.[4]

그리고 10월부터 새롭게 선임된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같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5]를 맡았다. 자세한 것은 슈틸리케호 문서를 참고.

얼마 못가 이광종 감독의 급작스런 사임으로 후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국가대표팀 코치와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겸임했다.
파일:神태용.jpg
파일:20221106_213855.gif
선수단에게 전술 지시를 내리는 신태용 수석 코치
2020년 뽈리TV와의 인터뷰에서 신태용은 슈틸리케 감독 시절 전술과 훈련을 자신이 대부분 맡았다고 털어놓았다. # 2015 아시안컵 16강 본선 조별 리그 1~2차전을 1:0으로 간신히 이긴 후 선수들의 항명이 있자 슈틸리케가 수석 코치인 신태용에게 지휘권을 냅다 넘겼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슈틸리케의 유일한 업적인 아시안컵 준우승은 사실상 신태용의 공이다. 신태용이 A대표팀 코치와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다 2017년 U-20 월드컵에 집중하기 위해 2016년 11월에 A대표팀 코치직을 내려놓았고 2017년에는 A대표팀이 중국, 카타르에게 패했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는 의혹이다.

3. 감독 경력

파일:external/img.sportalkorea.com/SK001_20121126_100801.jpg

사진 오른쪽 인물. 왼쪽은 전 베트남 대표팀박항서 감독.

올림픽 대표팀과 U-20 대표팀, 성인 대표팀 감독직 모두 전임 감독의 갑작스러운 퇴진으로 소방수로 부임했다.

3.1. 성남 일화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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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사퇴 이후

파일:external/pds.joinsmsn.com/htm_2013042916594463006330.jpg

유럽으로 축구 유학을 갔을 때 함부르크에서 손흥민을 만난 자리에서 찍은 사진.

사퇴 후 유럽으로 축구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가면서 일간스포츠에 '신태용의 신의 한수'라는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귀국하면서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이 출전하는 툴롱컵을 통해 JTBC의 축구 해설 위원으로 데뷔했다. 아울러 K리그 홍보 대사를 겸임하며 본인의 친정이었던 성남 일화 천마의 마지막 홈경기에서 사인회를 열었다.

이후 성남 FC의 초대 감독 물망에 올랐지만 스승의 그림자를 넘을 수 없었고 새 수석 코치와 자리를 이어받듯이 2014년부터 K리그 클래식 경기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3.2. 대한민국 U-23 대표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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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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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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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pnimage.edaily.co.kr/PS15100500339.jpg

2015년 2월 5일 킹스컵을 지휘하다 백혈병으로 하차한 이광종 감독의 후임으로 리우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2015년 4월 27일, 올림픽 대표팀의 감독직과 국가대표팀의 코치직을 겸임하는 것으로 공식 발표가 났다. 새 인물을 국가대표팀 코치진에 합류시키는 것보다 기존에 손발을 맞췄던 신태용 올림픽팀 감독을 겸직시켜 양팀의 가교 역할은 물론, 올림픽 연령대의 젊은 선수들을 광범위하게 파악하는 것이 향후 국가대표팀 운영에도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 밝혔다.

3.3.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16년 11월 22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안익수의 후임 감독으로 거론된 최종 후보 2인[6] 중, 신태용이 새로운 U-20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 기간은 2017년 5월 20일부터 6월 11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열리고 있는 2017 FIFA U-20 월드컵 대한민국까지다. 일정 문제로 인하여 국가대표 A팀 슈틸리케호에서는 완전히 물러나기로 했다.

U-20 월드컵 축구 청소년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의 행적은 신태용호(U-20)을 참조.

결과는 U20 최다 우승국 아르헨티나를 격파[7]시키며 16강 10위로 마감하였다. 아쉬운 부분은 개최국이라는 것과 과거 U-20 대표팀이 몇 차례 8강에 진출했다는 것 등을 고려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특히 24강 조별 리그 잉글랜드전에서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3-5-2 포메이션을 사용하고, 16강 포르투갈전에서는 본래 공격수로 활용되던 이승우백승호를 윙어로 배치하는 4-4-2 포메이션을 쓴 결과 원래 부실했던 측면 수비가 더욱 부실해지는 등, 실험적이고 공격적인 전술이 지적받았다.

3.4. 대한민국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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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5일 국가대표팀의 감독 울리 슈틸리케가 경질됨과 동시에 카타르전 경기를 보던 축구팬들은 짧은 시간 내에 괜찮은 결과와 성인팀과 달리 공격적인 축구 철학과 유연한 전술 운영을 보여 줬던 신태용 감독을 재평가했고 감독 대행 시절에도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 준 신태용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여론과 우선은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만 전념시켜 한다는 여론이 대립했다.

이후 차기 감독 후보로 허정무, 최용수, 정해성 수석 코치 등과 함께 후보군에 올랐다. 이에 본인은 "설레발은 치지 않겠지만, 제안이 온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인터뷰를 했다. 후보군으로 언급되는 허정무 감독과 최용수 감독이 자리를 고사했기에 사실상 신태용으로 결정이 났다는 반응도 있다.

결국 2017년 7월 4일부터 이전에 경질된 울리 슈틸리케의 뒤를 이어서 태극전사를 이끌게 되었다.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신태용호 문서와 그 하위 문서를 참조하자.

잘하는 것은 철퇴인데, 하고 싶은 것은 빌드업이라는 딜레마에 빠졌던 시절로 요약할 수 있다. 신태용이 하고 싶었던 전략은 후방 빌드업을 통한 축구인데 기성용을 제외한 빌드업 가능 선수의 전무, 오버래핑을 해줄 풀백진의 수준 미달 등으로 역시 현 한국 국대에서 이상적일 뿐 실현하긴 어려운 전술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빌드업을 통한 유기적인 플레이를 하려면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오면서 팀적인 호흡을 끌어올리는 게 필수적인데, 짧은 기간에 그런 빌드업 플레이를 입히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그동안 해 온 걸 포기하고 전문가들이 얘기한 쉽고 과거부터 자주 해 왔던 4-4-2로 돌아서면서 경기력이 좋아졌다. 급하게 부임한 소방수 감독, 부임 전부터 히딩크 부임설 등 멘탈을 흔들리게 할 만한 각종 언플과 여론, 핵심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 등 갖가지 악재가 겹친 것은 사실이나 그런 환경 속에서 본인도 스스로 우왕좌왕했던 부분은 많이 아쉽다.

계약 종료는 러시아 월드컵 이후 2018년 7월 31일에 이루어졌다. 감독 선임을 담당하는 김판곤이 이번 대회 성적과 월드컵 준비 과정 등을 보고 그의 거취를 결정하기로 했고 7월 5일 에 감독선임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신태용을 차기 감독 후보 중 하나로 두고 다른 감독 후보들과 경쟁시킬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전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감독 파울루 벤투를 대표팀 감독을 선임했다. 이로 인해 퇴임 기자 회견조차 가지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했다.기사[8]

그래도 네이버 댓글, 각종 커뮤니티들의 FC 코리아를 제외하고는 좋게 평가받았다. 짧은 시간 안에 팀을 재건한 것과 부상 때문에 너덜너덜해진 상태로[9] 독일과의 월드컵 32강 본선 조별 리그 3차전에서 강렬한 마지막을 보여주었기에 언젠가 복귀하기를 바라는 이들도 제법 있다. 퇴임 후 첫 공개강연에서 이미 가기 전부터 많이 두드려 맞아 선수단에 사기 저하가 왔다며 FC 코리아들에게 또 다시 소신발언을 했으나 FC 코리아다운 반응을 볼 수 있다. 베플은 욕 겁나 많이 먹은 황의조는 겁나 잘하던데ㅎ[10][11]로 자신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인신공격과 비난을 정당화하는 추악함까지 볼 수 있다.[12]

2017 일본 동아시안컵 도쿄에서 알제리 쇼크 감독의 일본을 4:1로 격파하며 우승하였고[13], 2018 월드컵 19위를 기록했으며, 마지막 경기에서 피파 랭킹 1위,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2:0으로 이기면서 신 감독 개인으로서도 자랑할 만한 타이틀이 생겼다. 바로 아시아 국적 축구 감독으로서 최초로 독일을 이긴 감독과 세계 최초로 독일을 월드컵 1라운드 32강 조별 리그에서 탈락(22등)시킨 감독[14], 월드컵 우승 감독을 상대로 승리, 아시아 최초로 원정 월드컵에서 2017 컨페드컵 우승국, 피파 랭킹1위, 디펜딩 챔피언 2:0 승리 및 탈락시킨 감독 타이틀이다. 2004년에 독일을 3:1로 이길 때 조 본프레레 감독은 네덜란드 국적이다. 그러니 신 감독이 아시아 국가 국적의 감독으로선 최초로 독일을 이긴 사람이다. 두 번째 타이틀은 당시 멕시코를 이끌고 독일을 1:0으로 이긴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과 공동으로 갖고 있는 타이틀이다. 독일은 78월드컵 당시 2라운드 8강 조별 리그 탈락(6등) 이후로 조별 리그 탈락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멕시코와 대한민국에 패배하며 1라운드 32강 조별 리그에서 탈락(22등)하며 그 기록이 깨졌다. 그래서 신 감독이 오소리오 감독과 더불어 공동으로 독일을 세계 최초로 월드컵 1라운드 32강 조별 리그에서 탈락시킨 감독이란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3.5. 인도네시아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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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경질 이후

4. 전술 스타일

여러 팀을 거치는 동안 4-2-3-1, 4-4-2, 3-5-2 등 다양한 포메이션을 사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포메이션은 팀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경한다.

그러나 전술 기조에 있어서는 일관적인 모습들이 꽤 드러나는데, 가장 큰 특징은 어떤 팀을 맡든 상대에게 강한 압박 수비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직접 "공격수는 전방에서 뛰는 수비수다" 라고 언급한 듯이 상대를 전방에서부터 누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감독 생활 초창기인 성남 FC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 때도 상대에게 압박을 걸 수 있는 스피드와 체력을 갖춘 손흥민과 이근호를 투톱으로 활용하는 4-4-2 전술을 시도하였다.

강한 압박 수비를 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를 선발할 때 체력과 활동량을 중시하고 훈련의 강도도 매우 높다. 다만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는 문제가 되었는데, 대회 직전까지 고강도의 체력 훈련과 몸싸움 훈련을 진행하여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체력이 소진되고 대회 중 주축 선수들을 부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불러왔다.[15]

또 다른 특징으로는 공격적인 축구를 추구한다는 점이 있다. 이는 상술한 압박 전술과도 통하는 부분으로, 공을 끊어낸 뒤 천천히 후방에서 플레이를 만들어가기보다는 바로 공을 전방으로 보내 공격을 시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공을 보내는 방식은 팀의 상황에 따라 짧은 패스와 롱 볼을 적절히 사용한다.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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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걸 감안해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정식 부임 이후에도 몇 개월 동안은 신태용 코치가 선수 선발 및 작전에서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2] 비슷한 시기에 친정 구단의 감독 교체가 있었지만, 성남은 국내파이고 연고자라서 무리가 없었다.[3] 이전에는 코너킥으로 기술되었으나, 사실은 기성용과 손흥민의 공격 실패 직후 역습을 당하며 우리 골대 오른쪽 골라인 부근에서 반칙을 범해 허용한 프리킥이다.[4] 정작 슛포러브에서는 맥콜을 맞았을 때 기분이 좀 그랬다고 해명했다. 아래 쪼옵쪼옵 짤방을 맥콜 빨면서 재현하기도...[5] 수석 코치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슈틸리케 감독보다 5살 많은 카를로스 아르무아. 아르무아 수석 코치는 피지컬 코치도 겸임한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레알에서의 선수 경력에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고 있다 보니 스페인어에 능통한지라 아르무아 수석 코치를 위해 스페인어 통역관을 요구했다. 따라서 2001년의 박항서 코치를 승계한 셈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르무아 코치와의 친분으로 공식 석상에서도 독일어보다 스페인어를 많이 쓴다고 한다.[6] 나머지 후보 1명은 감독 대행으로 수원 컨티넨탈컵 우승을 이끌었던 정정용 감독.[7]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훗날 2021 코파 우승과 유럽리그로 이적하는 마르코스 세네시, 후안 포이스, 곤살로 몬티엘, 산티아고 콜롬바토, 에세키엘 팔라시오스, 산티아고 아스카시바르, 라우타로 마르티네스(1차전 잉글랜드전 퇴장으로 한국전 불참)가 뛰었으며, 이 중 곤살로 몬티엘,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후안 포이스, 에세키엘 팔라시오스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 멤버다.[8] 신태용 감독 역시 아시안컵 이후에 이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괜히 후보군에 넣어서 외국인 감독과의 협상카드로 사용하기 보다는 믿고 맡겨주든 그냥 보내주든 깔끔하게 끝나기를 바랐던 모양. 사실 허정무 전 감독도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하였음에도 추악한 FC코리아들은 아르헨티나전 4:1완패와 16강전 우루과이 첫골 실점을 언급하며 허정무 감독을 비난한 사례가 있었으며, 허정무 감독도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는데로 마쳤다.[9] 당시 팀은 월드컵 직전에 이근호, 권창훈, 김진수, 김민재, 염기훈 5명이 빠졌는데, 이 중 4명이 핵심 선수였고 백업 조커마저 아웃되었다. 본선에서 박주호기성용까지 빠져버렸으니 얼마나 처참한 스쿼드였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10] 이것도 몰라서 하는 소리다. 황의조는 자존심이 정말 강한 선수고 오히려 K리그나 J리그에서 보여준 활약도에 비해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해서 기회를 많이 받지 못한 편이다.# 그래서 비난 받은 만큼 오기가 생겨서 활약한 것이다. 다시 말해 알지도 못하고 깐 놈들은 선수에게 빅엿을 먹었음에도 그것도 생각하지 못한 체 태도 싹 바꿔서 추종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11] 월드컵 이후 열린 아시안게임 때 황의조 선발 했을 때 온갖 비판이 황의조한테 갔는데 아시안게임전 열린 월드컵 때 황의조를 선발했으면 비판을 아시안게임때 보다 더 먹으면 더 먹었지 적게 먹지 않았을거다.[12] 다만 답글에선 댓글 작성자를 맹비난하는 댓글들이 많다.[13] 2006 월드컵 우승 감독 마르첼로 리피의 중국까지 제치고 우승. 리피 중국과 2:2 무승부[14] 독일은 1978 월드컵 2라운드 8강 조별 리그에서 탈락(6등)한 적이 있다.[15] 월드컵 첫 경기인 스웨덴전에서 박주호가, 두 번째 경기인 멕시코전에서 기성용이 부상으로 대회 중 낙마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