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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야전군사령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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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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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6년 9월 5일[1] ([age(1966-09-05)]세) | ||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두리 | |||
재임기간 | 제45대 제2작전사령관 | ||
2022년 5월 27일 ~ 2023년 10월 31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2e3192><colcolor=#fff> 학력 | 삽교고등학교 (졸업 / 8회) 한남대학교 (회계학 / 학사) 경원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2]) | |
가족 | 배우자, 아들 신윤철, 딸 신보혜 | ||
종교 | 개신교[3] |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1989년 ~ 2023년 | |||
임관 | 학군사관 (27기) | ||
최종 계급 | 대장 (대한민국 육군) | ||
최종 보직 | 제2작전사령관 | ||
주요 보직 | 제3군단장 제2신속대응사단장 제36보병사단장 수도군단 참모장 육군본부 개편지원과장 제51보병사단 참모장 제3보병사단 제22보병연대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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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최종 계급은 대장이며, 제45대 제2작전사령관을 역임했다.2. 생애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두리 출신으로 삽교초등학교(47회), 삽교중학교(27회), 삽교고등학교(8회)를 졸업하고 한남대학교 회계학과(85학번)에 입학하여 1989년 졸업 및 학군사관 27기로 임관하였다. 육사 45기와 임관동기로, 그중 전동진, 안병석 장군과 대장 진급을 같이 했다.영관장교 시절 경원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경원대학교는 2012년 이후 가천대학교로 교명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주요 직위
- 대령
- 준장 2016년 10월 2차 진급[5]
- 소장 2018년 11월 3차 진급
- 제36보병사단장 (2018.12 ~ 2020.12)[7]
- 제2신속대응사단 창설추진단장 (2020.12 ~ 2021.01)[8]
- 제2신속대응사단장[9] (2021.01 ~ 2021.12)[10]
- 중장 2021년 12월 2차 진급
- 대장 2022년 5월 1차 진급[12]
- 전역
- 한남대 경영·국방전략대학원 석좌교수
4. 지휘 철학
- 병영문화혁신의 일환으로 5관(管) 3략(略)을 강조한다. 5관은 5대자기관리(음주, 이성, 금전, 말, 보안), 3략은 3•3전략, 즉, 3가지 없애기(구타/가혹행위, 폭언/욕설/인신공격, 질책/사생활 침해행위) 및 3가지 잘하기(존중/배려, 칭찬/감사/웃어주기, 전우사랑) 라는 의미이다. 사단장 및 군단장 시절에도 실천하였으며, 제2작전사령관 시절에도 그러했다.
5. 평판
- 말로 끝내지 않고 본인이 먼저 솔선수범하는 타입의 지휘관이라는 평이 많다. 기간병들의 생활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였고, 선진화된 군대 육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또 사단에 슬로건을 만들어 군대 내 폭력, 사고 등을 철저히 예방하는 등 사단장으로서 행보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오랜만에 등장한 덕장 4성장군
- 한 예비역 학군 출신 간부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이 학군단에 있었을 적 계급이 대위인 훈육관이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자상하고 인정도 많았는데, 잘못한 것이 있으면 가차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후보생들을 아껴주는 마음이 있었다고 하며, 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지낸다고 한다.
- 한 예비역 간부에 따르면, 자신이 소대장이었을 때 병사와 간부 모두가 존경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굉장히 솔선수범하면서 사는 사람이라는 평이 있었다.
- 제22보병사단 부사단장 시절 용사들한테 고생한다면서 안마를 해 주고 갔다. 당시 용사들의 평가는 '배려심 깊은 장군'이었다.
- 제36보병사단장 시절에도 밧줄 타기ㆍ레그턱ㆍ전장순환 운동ㆍ240m 왕복달리기ㆍ3㎞ 산악 뜀걸음ㆍ5㎞ 군장 뜀걸음ㆍ10㎞ 급속행군을 시켰다. 또, 환자 끌기와 환자 어깨 메고 지그재그 및 직선 달리기도 시켰다. 실제로 환자 대용으로 40kg 의류대를 끌게 하였다.[14]출처 예비역 병장들의 평에 따르면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보다 실전에 유용한 체력단련이며 전쟁을 대비하기에는 좋다는 의견이 많다.
- 제36보병사단장 시절 국기게양식이랑 대연병장 잡초 뽑기를 용사들에게 시키지 않았다. 용사들은 불필요한 작업을 하지 말고 교육과 훈련, 사격, 체력 단련에만 전념하라고 하였다.
- 본인이 먼저 앞장서서 행동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평판이 좋다. 전술한 제36보병사단장 시절 훈련 역시 본인도 같이 뛰었다. 이러한 행보로 중장 1차 진급에서는 누락되었으나 2차로 진급, 제3군단장이 될 수 있었다. 거기에 정권 교체와 함께 1988년 이전에 임관한 기존의 중장·대장들이 대부분 전역하면서 3군단장으로 부임한 지 5개월 만에 대장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
6. 여담
- 3부녀 학군장교 가족으로도 알려져 있다.관련기사
- 2020~2021년 사이에 소장급 학군 동기인 권영현 장군과 중장 진급을 놓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두 명 모두 중장 진급에 실패한 데다[17], 학군 1기수 후배인 이상철 소장이 중장 진급 후 군사안보지원사령관에 취임하면서 진급이 막힌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단장직을 2회[18] 역임한 데다 제8군단 해체의 잠정적 연기 등으로 2021년 하반기에 마지막 중장 진급을 기대해 볼 만했고 결국 중장으로 진급하였다.[19]
- 관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2년 5월, 임관 동기이자 육사 출신인 안병석, 전동진 중장과 함께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2작전사령관으로 보직되었다. 중장으로 진급한 지 5개월 만이다.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는데, 육군참모총장에 지명된 박정환 대장이 88군번이라서, 유독 쟁쟁한 비육사 장군이 많았던 88군번급의 대장 진급이 유력했던 중장들(박양동, 허강수, 정철재, 소영민)은 졸지에 전부 배제되었고, 그 여파로 유일한 89군번 비육사 중장이었던 신희현 중장이 어부지리로 비육사 TO의 대장 진급자로 선택되었다.
- 매우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36사단장 시절 사단본부 내 교회에서 볼 수 있었다.
- 3군단장 취임 다음 날 병사와 면담을 실시했다.
- 3군단장 재임 당시 한남대학교 인터뷰를 한 지 3주 만에 대장으로 진급, 제2작전사령관으로 발령받았다.
- 제36보병사단장으로서는 박영하 사단장(3사 1기) 이후 16년만의 대장 진급자이다. 박영하 사단장 이후로는 박창명(학군 12기), 위승호(육사 38기), 이진성(3사 22기) 사단장만이 중장 전역하고 나머지 사단장들은 소장 전역하였다.
7. 관련 문서
[1] 음력 7월 21일[2] 석사 학위 논문: 민간기업의 산업재해와 군의 안전사고 특성 비교에 관한 연구 (2005. 08.)[3] 제2작전사령관 재임 중에 촬영된 동영상에서 독실한 개신교 신자임을 알 수 있다.[4] 당시 사단장은 초대 지상작전사령관을 지낸 김운용 예비역 대장(육사 40기)이었으며, 전임 연대장이 강건작 전 육군교육사령관(육사 45기)이다.[5] #[6] 당시 사단장은 육사 43기의 김정수 소장(2021년 중장 예편)이었다.[7] 전임자 이진성, 후임자 이용환[8] 전임자 석종건[9] 제2신속대응사단 초대 사단장으로 취임하면서 사단장직을 두 번 역임하게 되었다.[10] 후임자 표창수[11] 전임자 전동진, 후임자 김봉수[12] 중장 진급 후 5개월만에 대장에 진급하긴 했으나, 정부 교체 이후 세대교체가 급격하게 이루어져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육참총장이 육사 44기로 배치되었기에 지작사, 2작사, 연부사에 육사 45기와 그 동기인 학군 27기 신희현 장군이 배치되는 게 필연적이었기 때문. 같이 진급한 육사 45기 전동진 장군과 안병석 장군도 중장 진급 1년 반만에 대장으로 진급했다.[13] 전임자 김정수, 후임자 고창준[14] 실제 부상병은 의류대보다도 1.5배에서 2배 정도 무겁다. 건장한 성인 남성은 평균 70~80kg 정도 나가니까. 그 이상 나가는 경우도 많다.[15] 육군학생군사학교장[16] 육군본부 정보화기획참모부장[17] 2020년 12월 중장 진급자는 동기급인 육사 45기의 강건작, 전동진, 안병석, 이정웅 장군과 3사 23기의 정철재 장군, 학사 11기의 소영민 장군인데 정철재, 소영민 장군은 1년 선배인 육사 44기와 동기급이다. 2021년 상반기 인사에서는 중장 진급자가 없었다.[18] 제36보병사단, 제2신속대응사단[19] 중장 진급 후 받은 보직이 제3군단장이다.[20] 양손에 들고 있는 건 탄약 상자(탄통)다. 크기가 작아보여도 무게가 꽤나 나가는 물건이다![21] 저 체력단련은 '전장순환'인데 36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체력단련때 실시하는 종목이다. 대부분 훈련병들이 처음에는 자신있게 뛰어가지만 어느순간 대부분 걷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엄청 힘들다.[22] 현역 장교가 해외로 나갔다면 그 장교는 해외출장, 파병 또는 국방무관으로 간 것이다. 주미대사관 국방무관의 경우는 임기제 진급한 소장들이 보직되는 자리이며, 개발 도상국의 국방무관의 경우는 한직 중에서 가장 안 좋은 한직으로 보임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23] 참고로 이순진 前 합동참모의장 역시 40년 넘게 군 생활을 하면서 해외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