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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전투병과교육기지사령관 | |||||
| 초대 오덕준 | 2대 박병권 | 3대 김익렬 | 4대 김동빈 | 5대 임충식 | |
| 6대 한신 | 7대 신재식 | 8대 송호림 | 9대 | 10대 | |
| 11대 | 12대 | 13대 | 14대 | 15대 | |
| 16대 | 17대 | 18대 | 19대 | 20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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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대 | 32대 최평욱 | 33대 김진영 | 34대 조남풍 | 35대 편장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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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대 박영익 | 42대 김승광 | 43대 신일순 | 44대 류해근 | 45대 이상태 | |
| 46대 박영하 | 47대 이영계 | 48대 한기호 | 49대 박성규 | 50대 황인무 | |
| 51대 류제승 | 52대 김종배 | 53대 나상웅 | 54대 장재환 | 55대 제갈용준 | |
| 56대 최영철 | 57대 윤의철 | 58대 박상근 | 59대 정철재 | 60대 강건작 | |
| 61대 이규준 | 62대 정진팔 | 63대 김봉수 | 64대 강관범 | ||
| ※ 초대~00대 : 소장 · 00대~현재 : 중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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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 | 법무법인 로백스 고문 육군대학 명예교수 |
| 학력 | 신성고등학교 (졸업 / 9회) 대전대학교 대학원 (군사학 / 석사[1]) |
| 군사 경력 |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1989년 ~ 2023년 |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45기) |
| 최종 계급 | 중장 (대한민국 육군) |
| 최종 보직 | 육군교육사령관 |
| 주요 보직 | 제6군단장 국가안보실 국방개혁비서관 국가안보실 국가위기관리센터장 제28보병사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처장 제5군단 작전참모 제3야전군사령부 작전과장 육군본부 정책과장 제2작전사령부 행정실장 제3보병사단 제22보병연대장 제11기계화보병사단 제13기계화보병여단 제112기계화보병대대장 |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장성으로 최종 계급은 중장, 병과는 보병, 직능은 작전이다. 마지막 제6군단장을 지냈다.2. 생애
경기도 안양시에 위치한 신성고등학교(9회)[2]를 졸업하고 1985년 육군사관학교 45기로 입교하여 1989년 졸업과 함께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대전대학교 대학원에서 군사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2.1. 군 경력
| 제6군단장 시절 |
- 소위
- 제26보병사단 소대장
- 중위
- 육군사관학교 의장소대장
- 소령
- 제3보병사단 수색대대 작전장교[3]
- 육군대학 방어전술 교관[4]
- 제11기계화보병사단 근무
- 중령
- 제11기계화보병사단 제13기계화보병여단 제112기계화보병대대장
- 제32보병사단 작전참모 (2008)
- 국방부 근무 (2009)
- 대령
- 소장 2017년 12월 1차 진급
- 중장 2020년 12월 1차 진급
- 예편 2023년 7월 19일
2.1.1. 군 시절 여담
- 복무했던 부대에서의 평판이 매우 좋다. 킹건작, 갓건작 등의 긍정적 별명들이 많을 정도다. 실제로 11사단 대대장 시절, 3사단 연대장 시절, 평판이 매우 좋았다. 당장 백골부대 갤러리에서도 김운용 대장처럼 예비역들의 호평이 많다. 게다가 28사단장 때에는 전임자[15]가 한국군 역사상 최악의 똥별을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역대급 인물인지라, 그에 대한 반발작용으로 더욱 평이 높다. #1
- 준장 시절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부 작전처장[16]으로 재직 당시 소장으로 진급하여 28사단장 부임을 앞두고 있던 때 운전병이 28사단으로 함께 모시고 가겠다라고 전했는데, [17] 병사 복지나 운전상황이나 서울이 더 좋으니 서울에 남아서 열심히 복무하라고 하였고, 28사단장으로 재직 시 서울에 볼일이 있어 잠깐 연합사 본청에 왔는데 당시 운전병과 재회하여 덕담을 주고 나눴었다.
- 여러 면에서 전임 사단장인 윤의철 장군과 비교되고 있는데, 윤의철 장군이 본인 이전에 취임했던 김승겸 장군이 만들어둔 모든 휴가를 없애버리고 특급전사 포상휴가만 남겨버렸는데, 강건작 장군은 사단장 부임 후 기존에 김승겸 장군이 짜뒀던 합리적인 포상, 보상휴가 프로그램을 복구시키고 훈련 간 병사들의 인권을 존중해주었다. 특히 종교행사 참여 마일리지가 없어서 병사들이 힘들어 했는데 20번 참석에 휴가 1일을 만들었다.
- 그리고 윤의철 장군이 단순히 훈련량만 생각하여 보급과 비전투 병력손실을 무시하고 훈련을 강행시켰다면, 강건작 장군은 훈련의 질 향상에 집중하여 불필요한 훈련을 최소화하고 최신 자료를 토대로 훈련방침을 세웠으며, 최소화한 훈련은 정신교육으로 대체했다. 심지어 특기에 상관없이 불필요하고 고된 육체적인 훈련만을 강조하거나 특급전사를 무작정 강요하는 참모가 있었는데, 윤의철 때에는 그러한 건의가 잘 먹혀들었으나 강건작 장군님께서는 촌철살인 격으로 몇 마디 없이 시원하게 털어버렸다.
그리고 당시 참모장께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교육부사단장으로 영전했다
- 인품 및 평판과는 별개로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이력[18] 때문에 결국 대장 진급은 육사 45기 동기인 전동진, 안병석 장군 그리고 임관 동기인 학군 27기 출신 신희현 장군이 하게 되었다.
- 2022년 12월에 6군단 해체와 동시에 교육사령관으로 전보되었으며, 2023년 4월 교육사령관 후임으로 육사 1기수 후배인 이규준 중장이 임명됨에 따라 최종계급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2.2. 전역 후
- 강건작 장군은 육군 89군번 중 특출나게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여러 번 대장 진급 추천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89군번의 진급은 윤석열 정부에서 단행했기에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인 본인에게 자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중장으로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 법무법인 로벡스 고문(2023-현재) #, 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2023-2024), 육군대학 명예교수(2024-현재) 등으로 근무하였다.
- 2025년 5월 28일, 이재명 지지 예비역 장성단 93명에 이름을 올렸다.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차관으로 하마평에 올랐으나 육사 1기수 후배인 이두희 예) 중장이 국방부차관으로 임명되었다. 다만, 다른 자리에서 기관장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있다.
3. 저서
- 무기와 전술. 대전: 율커뮤니케이션, 2005.
- 장비와 전술의 발전, Ⅰ : 등자를 중심으로. 육군대학, 2004.
- 장비와 전술의 발전, Ⅱ. 육군대학, 2004.
- 장비와 전술의 발전, 3. 육군대학. 2004.
- 장비와 전술의 발전, 4 : 성곽, 갑옷 그리고 야전삽. 육군대학, 2004.
- 장비와 전술의 발전, 최종회 : 전차, 항공기 그리고 정보전. 육군대학, 2005.
- 한국군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강군의 조건 클라우드나인, 2025.
4. 여담
- 180cm 이상의 장신이다. 덩치도 크다.
5. 관련 문서
[1] 석사 학위 논문: 동·서양 무기체계 발전에 대한 상관관계 연구 (2005. 02.)[2] 원천희 중장이 2년 후배다.[3] 당시 명칭상 작전장교이며, 현재의 작전과장과 같은 보직이다.[4] 군대 특성상 교육기관에서 교관을 하려면 해당 교육기관 수료 성적이 최상위권인 동시에 해당 직능 분야에서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 육군의 장성 진급 코스 가운데 학교장 보직은 전역할 사람이 가는 보직(물론 예외도 있다)이지만, 교관 보직은 진급 때 매우 유리하다.[5] 후임 신희현[6] 후임 심진선[7] 후임 이규준[8] 전임 윤의철, 후임 이두희[9] 해군 이성열 제독에게 직을 넘겼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영향으로 해군이 기용된 듯 하다.[10] 전임 윤의철, 후임 이성열[11] 전임 안준석[12] 후임 강신철[13] 전임 박양동. 마지막 군단장[14] 전임 정철재, 후임 이규준[15] 해당인물 논란 참조.[16] 연합사 작전참모차장(소장)과 연합사 작전처장(준장)은 많은 진급자들을 배출한 요직이다. 연합사 작전참모차장은 비육사 출신 부임 사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연합사 작전처장 또한 비육사 출신의 부임 사례가 3사 13기 출신 권태오 예) 중장이 유일할 정도로 육사 출신들이 독점하고 있다.[17] 현재는 연합사가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했지만, 당시 국방부랑 같은 용산기지 부지에 주둔해있었는데, 국방부 근무지원단 만큼이나 일반 병사들이 자대 배치 받기 어려울 정도로 교통, 복지 여건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런 좋은 복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병사가 같이 따라가겠다고 한건 그 만큼 강건작 장군이 부하들을 잘 챙겼다는 것이다.[18] 국가위기관리센터장 재임 당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문에 전역하고 육사동기인 전동진과 함께 관련재판 검찰측 증인 출석이 매우 많다. 재판출석때 서훈의 월북조작 지시를 생생히 증언하면서 친히 박제하였고, 후배인 강호필도 관련재판 증인 출석때문에 1경비단장 시절 직속상관인 김용현이 12.3 내란 계획당시 계엄을 사전에 알지 못한듯 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무위키에 올라오지만 사실관계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19] 그리고 동년 8월 17일 이재명 정부 국방부에서 국군방첩사령관 직무대리 겸 국군방첩사령부 참모장 직무대리로 학사 30기 편무삼 준장을 임명하면서 방첩사 해체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