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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19:50:34

제11기동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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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097><colcolor=#fff> 제11기동사단
第十一機動師團
The 11th Maneuver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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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世, ruby=세)][ruby(俗, ruby=속)][ruby(五, ruby=오)][ruby(戒, ruby=계)]
종심전투와 자유기동으로 전승하는 화랑부대
창설일 1950년 8월 27일(제11보병사단)
2000년 1월 1일(제11차량화보병사단)
2004년 12월 1일(제11기계화보병사단)
2021년 1월 1일(제11기동사단)
상징명칭 화랑(花郞)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7기동군단
경례구호 화랑
규모 사단
역할 공격 부대, 전시 진격
사단장 소장 권혁동(육사 50기)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화촌면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예하부대4. 과거부대5. 출신 인물
5.1. 사단장5.2. 장교/부사관5.3. 병
6. 특징
6.1. 근무 환경6.2. 매봉산6.3. 태권도6.4. 사단가
7. 사건 사고
7.1. 전쟁 범죄
7.1.1. 사단 창설 이전7.1.2. 사단 창설 이후
7.2. 병영부조리
8. 여담

[clearfix]

1. 개요

제11기동사단 소개영상
파일:11사단부대마크.jpg
제11기동사단의 마크
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대한민국 육군 제7기동군단 예하 제11기동사단. 별칭은 젓가락 화랑부대. 강원도 홍천군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하고 있다.

2. 역사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27일 경상북도 영천에서 창설되었다. 1951년 2월 최덕신의 지휘 아래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일으켰으며 전선이 중부에 고정된 뒤로는 설악산, 향로봉 등 주로 동부전선에 배치되어 전투를 벌였다. 종전 시점에는 화천에 배치되어 있었다.

1967년에 수립된 육군 사단 특성화 계획에 따라 육군에 3개 특화사단이 지정됐는데, 이 중 제11보병사단이[1] 1968년 1월 23일부로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상륙사단으로 전환된 과거가 있었으나 나중에 육군 특화사단 체제가 중단되면서 다시 일반보병사단으로 복귀하였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에는 (구)제2보병사단과 함께 투입되어 큰 전과를 올렸으나 이 과정에서 안타깝게 한 병사가 전사하였다. 하필이면 전사한 병사가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병장이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실은 상병이었고 전사 후 병장으로 추서되었다.

2004년 12월부로 대한민국에서 다섯 번째로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됐다.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수도기계화보병사단다음으로 K-21보병전투장갑차를 전력화 하였고 기갑수색대대에 K-2 흑표 전차를 전력화 중이다.

2016년 12월 1일부로 제11기동사단, 제8기동사단, (구)제26기계화보병사단이 제7기동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되었으며, 따라서 상급부대도 제1야전군이 아닌 제3야전군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제1야전군과 제3야전군의 통합에 따라 지상작전사령부 직속 예하부대로 개편되었다.

2019년 11월 29일 해체된 제20기계화보병사단과 통합하였다.# #

2019년 육군 11사단, 대대급 이하 '6주 집중훈련'을 육군 최초 시행했다.


2021년 1월 1일부로 제11기동사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3. 예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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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기동사단 예하부대
제9기계화보병여단 제13기계화보병여단 제61기계화보병여단
포병여단
※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소속 부대 문단 참고

3.1. 사단직할대

3.2. 제9기계화보병여단 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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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13기계화보병여단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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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61기계화보병여단 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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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포병여단 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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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거부대

4.1. 제20기계화보병여단

2019년 11월 29일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이 11사단으로 통폐합되면서 20여단은 제3군단 직할 제20기갑여단으로 개편되었다. 동홍천IC 근처 화촌면에 위치하고 있는 부대로 통칭 독수리 여단. 부대 마크에도 독수리가 들어가는 디자인이었고 신 여단 마크도 이러한 특징을 부분적으로 이어받았다.

5. 출신 인물

5.1. 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6><bgcolor=#004097> 역대 제11기동사단장 ||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최덕신 예) 중장 육사 특3기 제1군단
2대 오덕준 예) 중장 군영 1기 육군교육사령관 농업협동조합 회장
3대 임부택 예) 중장 육사 1기 제1군단
00대 김세돈 예) 소장 육사 7기 육군보병학교장(제28대)
00대 이세규 예) 준장 육사 7기 국회의원
15대 김광돈 예) 소장 육사 9기 -
16대 전제현 예) 소장 종합 3기 前 육군본부 부대훈련처장1978년 1월 임명
00대 김근태 예) 대장 육사 30기 제1야전군사령관
30대 김시권 예) 소장 육사 31기 사단장
31대 박성규 예) 대장 3사 10기 제1야전군사령관
32대 류제승 예) 중장 육사 35기 육군교육사령관
33대 김철수 예) 소장 육사 37기 육군미사일사령관
34대 홍병기 예) 소장 육사 39기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처장
35대 조영진 예) 소장 육사 40기 육군특수전사령관 직무대리
36대 박주경 예)중장 육사 42기 백신수송지원본부장
37대 김태성 예)소장 육사 44기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38대 강신철 대장 육사 46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39대 박후성 중장 육사 48기 제2군단장
40대 권혁동 소장 육사 50기 사단장

5.2. 장교/부사관

5.3.

6. 특징

강원도 홍천에 제3기갑여단과 함께 주둔 중이다. 이 말은 11기동사단과 3기갑여단을 같이 두고 있다가 강행도하해야 하는 동네는 3기갑, 공병도 같이 가야 하는 대규모의 지원이거나 도하가 필요 없는 경우 11기동사단을 쓰겠다는 뜻이다.[5] 부대마크는 11을 45도 정도로 눕혀놓은 것이다. 경례구호는 '화랑'이다.

서부전선의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8기동사단, 제30기갑여단[6]이 담당하는 역할을 동부전선에서는 11사단[7]이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제3기갑여단과 같이 있으며 같은 임무를 가지고 있다. 1개사단+강행도하가능 1개여단으로 부대도 같이 있고 훈련도 같이 해서 1+1이라고 보면 된다.

작전 반경이 북쪽의 최전방 부대들까지라서 출동이라도 하게 되면 한참을 가게 된다. 동부전선에 유일한 기계화보병사단인데다 한때는 사단급 전방부대임에도 불구하고 군단에 배속되지 않고 곧바로 군사령부 직속이어서 보급순위도 높았지만 현재는 편제가 바뀌어서 순위가 달라졌다.

훈련 강도가 아주 빡세고 힘들어서 일명 육지의 해병대라는 별명으로 악명높은 부대이다. 11사단에 근무하다가 특전사로 간 소대장이 중대를 방문해서 하는 말이 특전사는 훈련이 힘들지만 단기간에 빡세게 하는데 11사단은 1년 내내 행군이나 훈련이 많아서 특전사보다 더 힘들 때도 있다고 했다. 이 부대로 배치되는 사람은 모두 멘탈이 나가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며, 군필 출신 남성들이 하나같이 자기 부대가 힘들다 주장하다가도 젓가락 출신이라고 하면 "너 정말 고생 많았다"며 가장 힘든 부대라고 인정해 주는 경우가 많다. 일반 미필들 사이에선 이기자, 백골, 오뚜기, 백두산은 알아도 화랑부대라고 하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저 네 부대들 출신들조차 힘들다고 인정하는 부대이다. 말 그대로 최소한 현역이거나 현역으로 갔다 온 사람들은 다 아는 숨겨진 헬게이트 부대.

보통 사람들은 젓가락 부대라고 불렀었다. 이유는 물론 11이라는 숫자에 있겠지만 이 부대에 떨어지면 너무 고생해서 젓가락처럼 빼빼 마른다고, 별명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개는 이게 가장 많이 언급된다. 요즈음 입대하는 장병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시외버스 터미널로 나가보면 이 부대 출신 어르신들이 수고한다고 격려해주는 경우도 있다.서울 등 수도권 한복판에서도 전투복 입고 지나가다 보면 그러시는 경우가 왕왕 있다.

기계화되기 전까지는 행군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사단이었으나, 개편 뒤로는 많이 나아졌다가 2021년부로 다시 젓가락부대가 부활했다.
기계화보병사단 최초로 2011년 정찰대가 천리행군을 했는데 1군 예비사단이어서 훈련이 워낙 많기 때문에 부수적으로 행군도 많은 것이다.[8](보병사단시절 1999년 8사단에 총 행군거리가 30km 뒤진적이 있는데 당시 사단장이 전군 최초로 전 사단원의 천리행군을 계획했었음. 시험삼아 사단수색대를 홍천에서 동해 무릉계곡을 왕복했는데 이 거리가 400km이고 수색대원 절반이 복귀후 전투불능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계획이 무산되었음.) 부사관들의 말에 따르면 행군으로 화천까지 가서 훈련한 다음 도로 행군해서 복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현재도 그곳까지 가서 훈련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이동은 장갑차 또는 육공 트럭으로 실시한다. 심지어 보병도 아닌 포병이 화천까지 진지공사하러 걸어왔다고도 한다. 거리로 따져보면 왕복 약 150km 정도이다. 예비사단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부대의 대항군 훈련은 기본이고 작계가 범상치 않아서 화천, 인제까지 가는 경우도 많았다. 돌아올 때는 통신부대 등 몇 부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행군으로 왕복했으며 행군을 자주하는 부대만큼 속도도 남달랐다고 한다.(전날 밤에 출발해서 다음 날 오후에 일찍 도착했는데 출발 장소가 화천 27사단 주둔지이다.) 훈련 때면 안 걸어도 되는 보직까지 일부러 행군을 시키는 경우도 많았고 먼저 부대로 돌아왔지만 아직 보병이 걸어오고 있다고 다음날 아침부터 그들이 돌아오는 시간까지 산악행군을 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대대 당번병(CP병)도 대대장 특별 지시로 행군을 시켰다. 기계화사단으로 바뀐 지 꽤 지난 2011년에는 사단의 모든 일반 보병부대가 무박 100km한적이 있다. 수색대나 정찰대가 아닌 일반 보병들의 완주률이 엄청 높은 편이었는데 이 무박 100km 행군 완주를 위해서 40km 행군을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했었다. 이쯤되면 장갑차 전차가 주전력인 기계화사단이 아니다. 추가로 2012년에는 공병대대도 무박 100km 행군을 했었다.

행군을 많이 하던 시절에는 '11사단은 전투화를 한 켤레 더 받는다.'[9]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기계화보병사단으로 바뀌었다고 훈련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여러 가지 훈련이 매우 많다. 1군 사령부 직속 예비사단이었기에 강원도 전역을 상대로 대항군 노릇도 하고 여러 훈련들로 인해 8사단과 더불어 연간 훈련 계획표상 훈련수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육군 사단이다. 군복무가 24개월이던 시절에는 보통 전역시 까지 18개 정도의 훈련을 뛰었으며 심한 경우 22개의 훈련[10]을 뛴 전역자도 있었다. 98년~00년 군번의 경우 3주 훈련과 4주 훈련도 있었다. 한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흙과 풀더미로 범벅이 된 훈련장비들을 정비하고 있는 도중에 계획표 상에 없던 새로운 훈련이 1주일 후 시작 된다는 소식을 방송으로 듣고 넋이 나간 상태가 되는 일도 다반사이다. 심지어 군장도 없는 전차병에게 보병 군장을 주어 행군시킨 적도 있다.(전차병은 메고 다니는 군장은 없다.) 물론 군대의 특성상 하나를 주면 하나를 얻는 특징이 있어 훈련이 빡빡한 대신 다른 특별한 임무는 별로 없고 모두가 기대하는 ASP 경계근무 투입 정도가 기다리고 있다. 여타 다른 기계화사단들 보다 훈련이 힘들다고 느끼는 원인은 강원도 라는 작전지역의 특징 때문이다. 수기사 만하더라도 시가지를 전시에 작전지역으로 삼기때문에 장갑차로 이동하는 일반보병들이 무리하게 행군하거나 이동시킬 필요가 덜하다. 그에 비해 11사단은 온통 산으로 된 강원도가 주작전 지역이기 때문에 보병들은 훈련장까지만 장갑차로 이동하고 전술훈련은 여타 전방 보병부대와 마찬가지로 산을 열심히 탄다.

다른 기계화보병/기동사단들처럼 훈련과 교육, 작업을 하고 돌아오면 없는 일과 쪼개어 각종 정비와 장비 검열에 동원되는 현실이 마주하는데 거기에 아무리 해도 줄어들지 않는 훈련들의 개수까지 더해져 지옥을 선사한다. 덕분에 기계화보병사단으로 바뀐 초창기만 해도 행군하다 죽어도 좋으니 보병시절이 차라리 나았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선임이나 간부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포병의 경우 북한도발같은 유사시에는 1군 유일 기계화부대의 포병이라는 명목으로 작계지역인 최전방으로 출동을 했었다. 실제로 2015년 8월에 있었던 서부전선 포격 사건 당시 포병여단 4개대대가 작계지역으로 출동해 화력증원임무를 수행했으며 현재는 통합 후 변경됐다.

6.1. 근무 환경

사단 사령부가 터미널과 굉장히 가깝다.(걸어서도 30분 안에 도착한다.) 9여단만 제외하면[11] 대부분 읍내와 지척에 있으니 휴가 나가기 굉장히 좋은 여건이다.(가까운 예로 화천의 부대들은 나오는 데만 시간 단위가 걸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읍내로 나가면 시간 때우는 간부, 운전병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좀 유한 간부는 병사 챙겨준다고 외부병원이나 외부에서 병사 데리고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외부음식을 사먹여주는 경우도 왕왕있는 편.

6.2. 매봉산

홍천과 강원도 내륙에서 비발디파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 위치상 가장 가까운 부대는 2019년 기준 955포병대대[12]이지만 포병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13] 따라서 포병들은 보통 타 군단 지역을 빌려쓴다.

기보대대들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곳이다보니 59전차대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관리소대장과 병력들이 파견나온다.[14] 59전차대대에서 관리하는 이유는 매봉산 훈련 부지가 59전차대대 소속이기 때문이다.[15] 훈련장 내부를 돌아다니다보면 폐막사와 연병장[16]이 있는데 그곳이 원래 59전차대대였다. 59전차대대가 제20기갑여단으로 분리된 후에도 지속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 다만 거리가 본대와 멀다보니 관리소대 점검은 가까이 있는 포병대대들이 하고 있다. 부지는 어마어마하게 넓고 박격포 사격을 11사단뿐만 아니라 강원 남부 지역방위사단도 빌려서 사용한다. 원래는 20포병대대가 가장 가까운 부대이기 때문에 매봉산에서 박격포 사격이 있을 때마다 사격통제관을 파견보냈는데 통폐합 후 최신시설을 이어받은 955포병대대가 이 짬까지 물려받았다.

직할대를 제외한 모든 11사단 출신들이 이 산을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공포의 방화지대 공사 때문이다. 9, 13, 20, 포병여단 예하 모든 대대가 동원되어 해마다 구역을 순환하면서 방화지대 공사를 하는데 공사지역이 하나같이 험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덜 험한 지역이면 관리구역이 어마어마하게 넓고, 구역이 좁다 싶으면 서있기도 힘들 정도에다 애초에 모든 구역으로 가기 위한 산길이 답이 없다... 아예 처음부터 도보로 가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까지는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데 하필 하차하는 공간이 생각보다 좁아서 운전병 한 명만 어리버리해도 개판이 되어버린다.[17] 20여단은 독립하여 이 임무에서 빠졌고 61여단이 매봉산을 짬맞을 것으로 예측된다.

6.3. 태권도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보병사단 당시 이 부대의 태권도 훈련은 상상초월이었다. 근 10년 가까이 전군 태권도 대회에서 다수의 우승을 차지하고 결승상대는 해병대일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부심도 엄청났다. 전 사단 대원의 평시 태권도 훈련도 강도가 높아서 단증을 따지 못하는 부대원에게는 말년 병장이 될때까지 두고 두고 간부와 고참에게 갈굴거리를 제공했다고 한다. 태권도 단증이야 누구나 다 따는 것 아니냐 하겠지만 문제는 이 부대의 태권도 단증 심사. 정확히 말하면 단급심사. 엄청나게 까다로운 기준으로 심사를 보며 제대로 단련을 안하거나 체육에 소질이 부족한 부대원은 당연히 탈락하고, 사회에서 2단 취득한 병사가 기준미달이라며 초단에 도전 다시 취득하게 하였다. 2015년 현재는 타 사단과 비슷해졌다. 일부 태권도 유단자에 한해 교육하고 파견보내는 정도.

여담으로 말년 병장이 단증을 못따 태권도 훈련을 따로 하고 있으면 신병들에게 2단을 따기 위한 특별 훈련이라며 말년을 놀리곤 했다.

===# 부대영상 #===




6.4. 사단가


작사 서정주, 작곡 권영승
1절
지키자 삼천리 화려한 강토
지키자 반만년 찬란한 전통
화랑이 가는곳 승리가 온다
우리는 빛나는 화랑사단 용사

2절
조국에 몸바친 젊은전우여
들어라 빛나는 정의의 총검
받들자 바치자 빛나는 충혼
우리는 영광의 화랑사단 용사

3절
하늘에 호국용이 용틀음 친다.
신라의 빛난문화 화랑의 자랑
나가자 빛내자 화랑의 정신
우리는 씩씩한 화랑사단 용사

4절
영천벌 높이든 구국의 깃발
조국을 지키는 화랑부대다
노도같이 휩쓸며 적을 무찌른
우리는 무적의 화랑사단 용사

7. 사건 사고

7.1. 전쟁 범죄

7.1.1. 사단 창설 이전

7.1.2. 사단 창설 이후

미수복 지구의 주민은 적으로 간주하여 총살하라.
- 9연대 작전명령 5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는 11사단에 의해 벌어진 학살들을 따로 묶어 11사단 사건이라고 칭할 정도로,[18] 한국전쟁 당시 11사단의 학살 행위는 악명높았다. 진실화해위원회 1기 조사단의 일원으로써 한국전쟁 당시 범죄에 대해 조사했던 조사단원 신기철은 11사단의 학살을 작전식 학살이라 칭한다. 사단 창설 목적 자체가 남도의 빨치산 토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광복군 출신의 사단장 최덕신은 중국의 초공작전에서 착안한 견벽청야 작전을 입안하였고, 연대장들은 대부분 일본군 출신으로서 중일전쟁 당시 중국과 해방 후 정부 수립 기간 동안에 벌어진 여러 학살에 가담한 바 있는 인물들로서 실제 토벌과 학살을 수행했다. 13연대는 전라북도를, 20연대는 전라남도를, 그리고 9연대는 경상남도 서부를 포함한 소백산맥 일대를 작전 지역으로 했다.

7.2. 병영부조리

2013년 6월 17일, 악성 뇌종양을 앓던 신성민 상병이 숨졌다. 작년 12월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중대장이었던 서선석 대위[19]는 꾀병이라고 하면서 한 달 동안 방치되었고, 결국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국군수도병원과 일반병원을 오가다 5월 14일부터 급격히 증세가 나빠졌고 폐렴까지 겹치면서 결국 사망했다.

2015년 1월 27일 9여단(투호부대) 여단장이 여군 하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2006년 4월 25일 제102보충대대를 거쳐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같은해 6월 7769부대로 자대전입한 변모군은 입대전 정신장애가 있었으나 제대로 된 치료없이 동반 입대하여 병이 재발하였다. 신병교육대에서도 망상, 주의력결핍 등의 증상이 있었지만 특히 자대전입 초 사단내 자살미수 사건으로 인한 소원수리에서 오해를 받고 병사들과 간부 모두에게 불신을 하게 되었다. 불안, 초조 수면장애 망상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상태로 경계근무 및 훈련, 병영생활 등을 소화해야했고 증상들로 인해 자살충동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과 강박관념, 자신과 보호자도 병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하는 사유 등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군복무를 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인격모독적인 말과 여러번의 입창과 구속을 당했다. 육군교도소를 거쳐 민간교도소로 이감된 후에도 같은 수감자에게 일부러 멍청한 척 한다는 오해를 받으며 모욕적인 취급을 당했다. 수형생활을 마치고 재학중이던 제주대학교 철학과에 복학하였으나 학업이 이어가기 어려워 자퇴한 뒤 약물치료를 받으며 수차례의 취직과 퇴사를 거듭하던 중 ‘정신장애판정’을 받게되어 재활시설에서 직업재활훈련을 받고있다. 아직도 변모군은 그 과정들의 악몽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당시 같이 근무했던 병사들과 간부들에 대한 미안함과 서운함 고마운 감정과 제대로 군복무를 하지못한 부끄러움과 아쉬움에 아파하고 있다.

2021년 10월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카레와 달걀이 장병들에게 배식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더욱 가관인 건 휘하 장병이 지휘계통을 통해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대장은 그냥 넘겼다는 것이다. 기사

공교롭게도 10월 배식사고, 부조리관련 문제가 발생하여 사단 내부적으로 대대적인 설문 및 부조리 관련 설문이 사단장 명령으로 실시되었고, 이 과정에서 직할대 정보통신대대 모 말년 병장이 타 생활관 후임과의 시비가 있던던 것이 밝혀져 포병여단으로 전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2022년 4월, 제11기동사단 출신 예비역 부사관의 제보로 2015년 단순 우울장애 자살로 결론난 고 일병이 부대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것이며 중대장의 주도로 은폐 및 조사 방해가 이루어졌다는 폭로가 나왔다. 기사

8. 여담


[1] 나머지 두 사단은 산악사단으로 지정된 (구)제2보병사단(2021년 공정사단인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재창설)과 공정사단으로 지정된 제5보병사단.[A] 퍼포먼스 영상[3] 공식 웹드라마[4] 경기도지사를 지낸 김문수와는 동명이인이다.[5] 3기갑 공병이 와서 도와줘야 될 만큼 대규모 강하가 아니면 11사단 자력으로 도하한다는 뜻이다.[6] 2020년 12월부터 제30기계화보병사단이 제30기갑여단으로 격하되었다.[7]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을 통합하여 경기 양평권까지 담당.[8] 정찰대의 경우 2년간 공식적으로 인증된 행군 길이만 1,200km에 달한다.[9] 육군의 병 피복 보급이란 게 필요한 건 언제나 부족해서 새 전투화를 받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하지만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되기 전 대부분의 병사들은 지급받은 두 족의 전투화로는 감당이 안 돼서(더군다나 A급 한 족은 남겨두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전역자들이 남겨놓은 전투화 또한 품귀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병사들의 사제 전투화 구입이 일부 묵인되기도 했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 현재까지 이러한 행동은 징계이다.[10] 그 중에서도 몇 개는 2주동안 훈련했다.[11] 여기는 버스로 읍내와 40분 정도의 거리이다. 하지만 양평과 매우 가깝게 있기 때문에 시외버스로 30분 만에, 용문역까지 갈 수 있다. 실제로 가까운 마을에 양평을 경유하는 시외버스가 지나간다. 오히려 기차나 수도권 전철(경의중앙선 한정)을 이용해야하는 입장에선 이쪽이 나을 수도 있다.[12] 구 20포병대대 주둔지였는데 현재는 955대대로 통합되면서 인수했다.[13] 훈련장의 곡사화기 사거리가 너무 짧아서 포병은 자주포 방열 등을 제외하고는 이 훈련장을 쓸 여건이 안된다.(105mm 똥포라면 몰라도 155mm급 자주포들은 이런 단거리에 맞는 장약은 거의 보유하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해보겠답시고 쏘면 그 탄은 민간 지역으로 갈 위험이 너무 크기에 안전 문제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나마 방열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개교장을 활용하다보니 관측반이나 화력지원반 파견 말고는 이 훈련장에 발도 들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혹한기 훈련을 할 훈련장을 못 빌려서 기보여단 사이에 꼽사리 끼는 상황이나 후술할 방화지대공사 빼고 아예 쳐다도 안 본다는 이야기.[14] ‘19년도 9월부터는 관리부대가 56전차대대로 전환되었으며 9 • 13여단 및 기갑수색대대에서 순환 파견식으로 관리 인원들이 파견된다.[15] 마찬가지로 부지도 56전차대대 소속으로 변경.[16] 폐막사 주변에 심하게 녹이 슬어있는 M47 패튼과 M113 장갑차가 서로 같이 붙어있는 전시대 비스무리한 것이 있다.[17] 과장이 아니라 정말 트럭으로 들어갈 경우 테트리스를 연상케하는 수준으로 정말 타이어폭을 딱딱 맞춰 들어가야한다. 트럭을 적당히 몰 줄 안다고 들어갈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능숙한 운전병에 선탑자까지 짬이 좀 되는 간부여야 원활할 것이다.[18] 다만 8사단경찰 역시 연관되어 있다.[19] 2008~2010년 사이에 임관, 군장학생을 하다가 학군사관으로 전환된 임관일 가능성이 높다.[20] 2016년 12월에 7군단으로 이관되고 2019년에 지상작전사령부로 재창설[21] 과거에는 20사단 예하 부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