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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01:19:11

아우크스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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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크스부르크
Augs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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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문장
아우크스부르크의 위치
행정
국가
[[독일|]][[틀:국기|]][[틀:국기|]]
시간대 (UTC+1/+2)
바이에른
슈바벤 현
인문환경
면적 146.84km²
인구 303,150명(2023년 12월)
인구밀도 2,064명/km²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정치
시장 에바 베버


1. 개요2. 인구3. 역사4.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www.theodora.com/augsburg_lech_town_hall_and_perlach_tower_bavaria_germany_photo_keute_jochen_deutsche_zentrale_fur_tourismus_ev_tmv.jpg
Perlach Tower와 Lech Town Hall

파일:external/w0.fast-meteo.com/Augsburg.12.gif
지도

독일 남부 바이에른에서도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아욱스부어크"가 현지 독일어 발음에 더 가깝다. 주 내에서 뮌헨, 뉘른베르크에 이어 세번째로 큰 도시이다. 한국인 축구 팬들에게는 지동원, 구자철, 홍정호, 천성훈[1][2]이 뛰었던 축구구단 FC 아우크스부르크로 친숙하며, 종교개혁 당시 루터교회가톨릭 세력이 서로의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아우크스부르크 화의(1555)가 체결된 곳으로 세계사에 이름을 남겼다.

2. 인구


현재 인구수는 약 30만여명 정도이다.

3. 역사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로, 그 기원은 기원전 15년 아우구스투스[3]의 명령에 의해 게르마니아를 로마의 속주로 만들고자 시도했던 티베리우스가 세운 군사 기지이다. 도나우 강알프스산맥 사이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라는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지한 로마 측에서는 이 곳을 라이티아 속주의 주도로 삼는다. 이후 중세 시기에 훈족과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에게 연달아 도시가 약탈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하지만 13세기 후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 자유도시[4]로 지정받으면서 이탈리아 반도에서 독일로 넘어오는 로만틱가도[5]라는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잡아 상업수공업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그에 따라 바이에른 근방에서 가장 세련된 도시이자 활기찬 도시로 승승장구하였다. 마르틴 루터의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종교 개혁이 한창이던 1555년 양 측의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후대에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라고 부르는 양 측의 협상이 이 곳에서 열렸고 그 덕에 전 유럽이 종교를 놓고 피로 물들던 와중에도 평화롭게 지내나 싶었는데... 1618년 30년 전쟁이 터지면서 모든게 수포로 돌아갔다. 전쟁이 한창이던 1634년 스웨덴군이 아우크스부르크 외곽에 주둔하자[6] 이에 발끈한 구교 측이 아우크스부르크를 포위하고 공격했던 것. 그 덕에 포위전 기간 동안 성 안에서는 아사자 및 병사자[7]가 속출하면서 인구가 기존의 7만 명에서 1만 명 가량으로 급감하고 말았다. 아우크스부르크는 이미 인구 수만 명을 보유한 도시였지만 전쟁이 완전히 끝난 1683년에도 인구가 20,000명[8]으로 엄청나게 줄어 있었다. 165년과 1690년에는 황제선거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고 빈 회의를 통해 새로운 유럽의 질서가 결정되는 와중에 아우크스부르크는 자치권을 상실하고 바이에른 왕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이 당시였던 1804년에는 인구가 30,000명[9]으로 증가해 있었지만 전쟁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이후에는 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풍부한 수력을 이용하여 공업, 특히나 섬유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았으며 바이에른 왕국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프로이센 왕국 주도의 독일 제국에 가입하면서 아우크스부르크도 독일 제국의 일원이 되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제3제국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4. 여담



[1] 재미있게도 이 넷은 K리그에서 만나게 되었다.[2] 천성훈은 주로 FC 아우크스부르크 II에서 주로 뛰어 아우크스부르크 본 팀에서는 유명하지 않았다.[3] 아우크스부르크와 아우구스투스가 발음이 비슷한 것으로도 알 수 있지만, 아우구스투스에서 유래된 지명이다.[4] 봉건영주에게 소속되지 않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 직속으로 소속된 도시를 말한다...라고 하지만 황제의 권한은 시간이 지나면서 제국자유도시에서도 유명무실해졌고, 실제 자유도시 국정은 시민 참사회에서 이끌었다.[5] 이탈리아에서 알프스를 넘어온 후 독일 바이에른을 가로지르는 길로, 퓌센에서 출발해서 아우크스부르크를 지나 뷔르츠부르크로 향하는 통상로이다. 로만틱가도라는 이름은 말그대로 로마인의 길이라는 의미이다.[6] 아우크스부르크는 신교도가 당시 더 많았기 때문에 신교측에 우호적이었다.[7] 티푸스가 유행했다.[8] 아우크스부르크/인구 참조.[9] 아우크스부르크/인구 참조.[10] 나머지 M은 Maschinenfabrik, 즉, 기계 공장을 뜻하고 N은 뉘른베르크의 머릿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