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ED8F6><colcolor=#000000> 글로스터 공작부인 앨리스 몬터규 더글러스 스콧 Princess Alice, Duchess of Gloucest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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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앨리스 크리스타벨 몬터규 더글러스 스콧 (Alice Christabel Montagu Douglas Scott) |
출생 | 1901년 12월 25일 잉글랜드 런던 몬터규 하우스 |
사망 | 2004년 10월 29일 (향년 102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켄싱턴 궁전 |
배우자 |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 (1935년 결혼 / 1974년 사망) |
자녀 | 윌리엄, 리처드 |
아버지 | 제7대 버클루 공작 존 몬터규 더글러스 스콧 |
어머니 | 레이디 마거릿 브리지먼 |
형제 | 마거릿, 월터, 윌리엄, 시빌, 메리 세실, 안젤라, 조지 |
종교 | 성공회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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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과 인도 제국의 왕자비. 조지 5세의 3남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의 아내이다.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30년을 더 살았으며 역대 영국 왕실 인물들 중 최장수한 인물이다. 또한 전 세계의 왕족 중에서도 가장 장수하여 기네스북에 올랐다.
2. 작위
<rowcolor=#000> 문장 |
- 레이디 앨리스 몬터규 더글러스 스콧 Lady Alice Montagu Douglas Scott (1901년 12월 25일 ~ 1935년 11월 5일)
- 글로스터 공작부인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Gloucester (1935년 11월 5일 ~ 1974년 6월 10일)
- 글로스터 공작부인 앨리스 왕자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1] Alice, Duchess of Gloucester (1974년 6월 10일 ~ 2004년 10월 29일)
3. 생애
3.1. 유년기 및 청년기
1901년 12월 25일, 7대 버클루 공작 존 몬터규 더글러스 스콧과 버클루 공작부인 마거릿 브리지먼[2]의 3남 5녀 중 다섯째이자 3녀로 태어났다. 크리스마스에 태어났기 때문에 미들네임을 '크리스타벨'로 지었다.막대한 부를 지닌 친정 덕분에 유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앨리스의 친정인 버클루 공작가[3]는 스코틀랜드에서 제일 가는 지주 집안이었으며, 증조부인 5대 버클루 공작이 그 당시 영국의 모든 지주들 가운데에서 3~4번째로 부자였다. 그 시절 어마어마한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가문 소유의 대저택들을 포기하던 많은 귀족들과 달리, 버클루 공작가 사람들은 해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 위치한 여러 대저택들을 옮겨다니며 살았고, 때문에 앨리스도 어린 시절부터 1년 동안 무려 5~6곳의 집을 돌아다니며 지냈다고 한다. 이동할 때는 버클루 가문 전용기차가 있었는데 집안사람들과 하인들은 물론이고 수송칸에 말과 마차, 8톤의 짐을 싣고 다녔다고 한다. 런던 사교 시즌이 되면 저택에는 하인들을 포함해 70여 명이 지낼 정도였다고.
<rowcolor=#000> 1910년 |
1919년, 조지 5세 부부가 딸 프린세스 로열 메리를 위해 개최한 댄스 파티에서 사교계 데뷔를 했다. 그러나 본인이 말하기를 수줍은 성격과 통통한 체격 때문에 대부분 기둥 뒤에서 숨어있었다고 한다. 또한 시즌이 거듭될수록 이러한 사교 파티가 지루하고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28살의 나이에 케냐, 인도 등지로 세계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살았다. 특히 여성들은 갈 수 없었던 아프가니스탄에 현지인처럼 변장해서 비밀 루트로 들어가기까지 했다고. 결혼은 안 하고 여행만 다니는 앨리스에게 화가 난 아버지 버클루 공작은 딸을 압박하기 위해 경제적 지원을 끊기까지 했다. 하지만 앨리스는 본인 소유의 미술품들과 보석까지 팔아 여행 경비를 마련하면서까지 여행을 계속 했다고 한다.
1935년, 여행을 하고 있던 와중에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돼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앨리스는 34살이었고 여행도 충분히 했으니 이제 정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때 때마침 뜻밖의 인물이 앨리스에게 청혼을 했는데 바로 조지 5세의 삼남 헨리 왕자였다. 헨리 왕자는 앨리스의 오빠 윌리엄의 친한 친구였으며, 엄격한 왕실 생활의 도피처로 앨리스네 집안에 자주 놀러왔었다고 한다. 헨리 왕자도 당시 35살의 나이로 노총각이었으며 정착을 해야겠다고 느끼던 때였다. 함께 산책하는 도중에 중얼거리며 청혼했으나, 나중에 말하기를 헨리 왕자의 청혼이 전혀 로맨틱하지 않았다고 한다.
3.2. 결혼과 가정
결혼한 지 약 2달 뒤, 조지 5세가 사망하고 에드워드 8세가 즉위하였지만 예상치 못하게 퇴위하면서 조지 6세가 왕위에 올랐다. 이로 인해 두 형들에 비해 비교적 부담이 적었던 삼남 헨리 왕자의 역할이 중요해졌고,[4] 이때부터 남편과 함께 국내외 많은 공무를 담당하였다.
결혼하고 두 번의 유산을 겪었다. 그래서 1938년, 건강과 마음을 되찾을 겸 남편과 함께 케냐에 가기도 했다. 당시 총리였던 네빌 체임벌린은 케냐에서 돌아오는 헨리 왕자 부부에게 퇴위하여 파리에 살고 있는 윈저 공작 부부를 만나고 돌아올 것을 요청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윈저 공작의 거취에 대해 아직 결정을 못내렸고, 이 만남을 통해 여론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두 부부의 만남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국민들의 반응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이로 인해 헨리 왕자 부부는 당시 국민들로부터 안좋은 편지를 많이 받았었다고 한다.
1942년, 시동생 켄트공작 조지 왕자가 비행기 사고로 갑자기 사망했다. 본래 호주 총독직을 제안받았던 조지 왕자를 대신하여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가 호주 총독으로 부임했고, 앨리스는 2년간 남편 및 아이들과 함께 캔버라에서 살았다.
1965년,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에 갔다 돌아오던 중 남편 헨리에게 뇌졸중이 와 교통사고가 났다. 이후에도 헨리는 몇 차례의 뇌졸중을 겪어 휠체어에 의존하고 말을 못했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1972년 7월에 열린 차남 리처드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한 달 뒤 8월에 장남 윌리엄이 비행기 사고로 30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남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앨리스는 아들의 죽음을 말할지 말지 망설이다 말을 안했지만, 아마 그가 뉴스 소식을 통해 알았을지도 모른다고 나중에 말한 바 있다. 앨리스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나중에 "나는 완전히 망연자실했고, 그 후로 결코 전과 같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2년 뒤 1974년, 남편 헨리 왕자마저 세상을 떠났다.
헨리 왕자 가족은 노샘프턴셔에 있는 16세기 저택 'Barnwell Manor'에 살았었는데, 1994년 아들 리처드가 집 유지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집을 팔았다. 이후 앨리스는 켄싱턴 궁전으로 옮겨 살았다.[5] 이 과정에서 에든버러 공작이 집을 팔려는 리처드에게 어머니가 정원 가꾸고 개 키우면서 살고 있는 집을 떠나게 만드는 건 옳지 못하다면서 오랫동안 살던 집에서 계속 살게 해야한다고 말하며 꾸짖었다고 한다.[6] 그러나 형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상당한 상속세를 내 재산이 많이 줄어든 리처드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3.3. 사망
98세의 나이로 공식적으로 공무에서 은퇴했다. 이후 2001년 12월, 만 100세를 맞아 기념식이 열렸다. 이때가 마지막 공식 석상 모습이었다.[7]
2004년, 102세의 나이로 역대 영국 왕실 일원 가운데 최장수 했던 인물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사망하였다. 윈저성에서 장례식이 열렸으며, 프로그모어 왕립묘지에 남편과 아들 옆에 안장됐다.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었음에도 100세가 넘게 장수했다.
4. 가족 관계
4.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글로스터 공작부인 앨리스 (Princess Alice, Duchess of Gloucester) | <colbgcolor=#fff3e4,#331c00> 제7대 버클루 공작 존 몬태규 더글라스 스캇 (John Montagu Douglas Scott, 7th Duke of Buccleuch) | <colbgcolor=#ffffe4,#323300> 제6대 버클루 공작 윌리엄 몬태규 더글라스 스캇 (William Montagu Douglas Scott, 6th Duke of Buccleuch | |
제5대 버클루 공작 월터 몬태규 더글라스 스캇 (Walter Montagu Douglas Scott, 5th Duke of Buccleuch) | |||
샬럿 틴 (Lady Charlotte Thynne) | |||
루이자 해밀튼 (Lady Louisa Hamilton) | |||
제1대 애버콘 공작 제임스 해밀튼 (James Hamilton, 1st Duke of Abercorn) | |||
루이자 러셀 (Lady Louisa Russell) | |||
마거릿 브리지먼 (Lady Margaret Bridgeman) | |||
제4대 브래드포드 백작 조지 브리지먼 (George Bridgeman, 4th Earl of Bradford) | |||
제3대 브래드포드 백작 올랜도 브리지먼[8] (Orlando Bridgeman, 3rd Earl of Bradford) | |||
셀리나 웰드포레스터 (Hon. Selina Weld-Forester) | |||
아이다 럼리 (Lady Ida Lumley) | |||
제9대 스카버로우 백작 리처드 럼리 (Richard Lumley, 9th Earl of Scarbrough) | |||
프레더리카 드럼몬드 (Frederica Drummond) |
4.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자녀 |
1남 | 글로스터의 윌리엄 공자 (Prince William of Gloucester) | 1941년 12월 18일 | 1972년 8월 28일 (30세) | |
2남 |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 공자 (Prince Richard, Duke of Gloucester) | 1944년 8월 26일 | 비르기트 반 더스 헨릭센 슬하 1남 2녀 |
5. 여담
- 친가 쪽 사촌동생이 사라 퍼거슨의 친할머니이다. 또한 앨리스의 외증조부인 3대 브래드포드 백작이 프린세스 로열 메리의 남편인 헨리 라셀레스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즉, 조지 5세의 며느리와 사위가 5촌지간인 셈.
[1] 남편의 사망으로 공작위가 차남 리처드에게 세습됨에 따라, 글로스터 공작부인 작위를 며느리에게 물려주었다. 원래 'The Dowager Duchess of Gloucester(글로스터 공작 대부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해야 했지만, 조카 엘리자베스 2세의 특명으로 Princess 작위를 사용할 수 있었다.[2] 브래드포드 백작 가문의 딸이다.[3] 스코틀랜드의 귀족 가문으로 찰스 2세의 사생아 제임스 스콧의 직계 후손, 그 중에서도 장자 계열이다. 정확히는 4대 버클루 여백작이였던 앤 스콧이 제임스 스콧과 결혼해 공작으로 승격되어 창시된 가문이다. 제임스 스콧은 제임스 2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모든 작위를 몰수당하고 처형당했지만, 버클루 공작위는 앤의 소유였기에 몰수당하지 않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4] 조지 6세의 자녀들인 엘리자베스와 마거릿이 있었기 때문에 헨리 왕자는 당시 왕위 계승 서열 3위였지만, 조카들이 둘 다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성인들 가운데 헨리 왕자가 계승 서열이 가장 높았다. 혹시나 조지 6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엘리자베스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헨리 왕자가 섭정을 해야 하는 위치였다. 이때문에 헨리 왕자는 조지 6세와 동시에 해외에 나가 있을 수가 없었다.[5] 켄싱턴 궁전에는 마치 왕족 타운하우스(?)처럼 여러 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6] 에든버러 공작 필립과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 공자는 같은 항렬이지만, 23살의 나이차이로 거의 부모자식뻘이며, 덴마크 왕실을 기준으로 하면 필립 공의 항렬이 하나 높다.[7] 2달 후 사망한 마거릿 공주의 공식 석상도 이때가 마지막이었다.[8] 헨리 래슬스의 외조부이기도 하다.[9]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부부가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 부부와 절친했기에, 그들의 딸과 사위인 엘리자베스와 필립도 덩달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