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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오라녀 자유국 Oranje-Vrijstaat }}} | |||||
| | ||||
국기 | 문장 | ||||
Geduld en Moed, Vryheid, Immigratie 관용, 용기, 자유, 이민 | |||||
1854년 ~ 1902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오렌지강 통치령 | 오렌지 강 식민지 | ||||
<colbgcolor=#003DA5><colcolor=#fff> 국가 | 자유국 찬가 Vrijstaatse Volkslied | ||||
수도 | 블룸폰테인 | ||||
언어 | 네덜란드어 | ||||
정치 체제 | 공화제 | ||||
국가 원수 | 대통령 | ||||
인구 | 207,503명(1890년)[1] | ||||
위치 | 남아프리카 공화국 북부 일대 | ||||
역사 | 1854년 오렌지 자유국 건국 1902년 오렌지 자유국 멸망 | ||||
통화 | 오라녀 자유국 파운드 |
언어별 명칭 | |
네덜란드어 | Oranje-Vrijstaat |
아프리칸스어 | Oranje-Vrystaat |
영어 | Orange Free State |
한국어 | 오라녀 자유국 |
1. 개요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 오렌지 강과 발 강 사이에 위치한 국가로 1854년부터 1902년까지 존속했다.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프리스테이트 주에 있었다. 영어식으로 오렌지 자유국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남아프리카 연방 국기 중간에 그려진 작은 국기들 중 중앙의 것이 이 나라의 국기이다.
2. 역사
2.1. 건국 배경
보어인들이 대규모로 오렌지강 너머로 이주한 트렉보어(Trekboers) 와중인 1836년 보어인들이 최초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정착한 보어인들은 자체적으로 자치 정부를 만들었다. 한편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선주민인 흑인 소토족의 일파인 바소토족(현대의 레소토)들은 보어인들이 자신들을 위협할 수도 있을 정도로 공격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영국에게 이 지역을 통치해줄 것을 요구했다. 영국 정부는 오렌지강 너머까지 통제할 만한 여력이 없다며 거부하려 했으나, 성공회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인들을 보어인에게서 보호해야 한다며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퍼지면서, 영국은 소토족들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그들을 보호하고 보어인을 견제하기 위해 보호령으로 편입한다고 선포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보어인들은 극도로 분노했고, 소토족과 보어인 사이의 관계는 일촉즉발로 치닫게 된다. 그러나, 영국이 오렌지 강 남쪽의 필리폴리스에서 선주민인 그리콰족과 똑같은 조약을 맺었다가 반란을 일으킨 보어인들이 영국군에 의해 진압되는 바람에, 이 지역의 보어인들의 여론도 다소 진정되었다.한편, 우호적이었던 바소토족과 영국의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소토족이 주변 토착 부족들과 지속적으로 영토 분쟁을 치르면서 영국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보호령 당국이 개입해 바소토족과 주변 부족들 사이에 국경선을 새로 그어 사태 마무리를 시도했으나, 바소토족은 오히려 자신들이 많은 손해를 보았다며 영국에게 항의했다. 이에 영국은 두차례 바소토족에 대한 징벌을 시도했으나 두번 다 패배했고, 오히려 바소토족들이 주변 부족의 영토를 아예 점령하고 그들을 내쫒아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오렌지 강 너머를 통치할 능력이 없다는 원래의 견해로 서서히 복귀하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1852년 더 북쪽에 위치했던 트란스발 지역 보어인들의 독립을 인정했으며(트란스발 공화국), 이어 1854년에는 보어인들이 영국의 통치가 이어져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독립시켰다. 결국 이렇게 해서 설립된 나라가 바로 오라녀 자유국이다. 국명은 네덜란드 왕실의 이름(오라녀나사우 왕조)에서 유래되었다.
2.2. 건국 이후
일방적으로 독립'당한' 이후인 1854년 4월 헌법이 제정되면서 정식으로 정부를 갖추게 되었다. 시민권은 6개월 이상 거주한 백인들에게만 부여되었다. Volksraad라고 불리는 단원제 의회를 구성했으며, 시민권을 가진 모든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두었다.설립 직후, 북쪽의 또다른 보어인 국가인 트란스발 공화국으로부터 합병 제의가 왔으나 거절하자, 트란스발 측에서 일방적으로 오라녀 자유국을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발한다. 그러나 양측 모두 군대가 극도로 적었기에 적극적인 대결을 피했고, 결국 별 소득 없이 휴전협정을 맺었다. 이 직후 다시 한번 영국의 통치를 받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해 영국 정부에게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한편, 이 시점에 자유국은 바소토족과 영토분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결국 이 대립은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 게릴라 작전을 편 바소토족이 승리했고, 영국의 중재 하에 휴전협상을 맺는다. 그러나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 무려 10년 넘게 두 차례의 전쟁을 더 치루었고, 기술력의 압도적인 차이로 인해 보어인 군대가 결정적인 승리를 점하게 된다.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바소토족은 급하게 영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영국은 둘 사이의 정전협정을 주선한 후 바소토족의 요청에 따라 그들을 보호령으로 편입했다. 그 결과 오렌지강과 칼레돈 강 사이 영토를 추가로 얻게 된다. 이후 영국령 나탈 식민지와도 협정을 맺어 보어인들이 살던 일부 영토를 할양받았다.
한편, 바소토족과의 전쟁이 끝난 후 그리콰족과의 접경지대에서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었고, 이는 둘 사이의 영유권 분쟁으로 이어졌다. 결국 그리콰족들이 먼저 선수를 쳐서 다이아몬드 광산 지대를 포함한 자신들의 영토를 통째로 영국의 보호령으로 삼아줄 것을 요청했고, 영국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광산은 통째로 영국에게로 귀속되었다. 이에 여론이 들끓었고, 일부 사람들은 영국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영국과의 관계가 상당히 험악해졌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중앙정부의 식민지 장관이었던 헨리 허버트가 광산을 영국에 영구히 귀속시키는 댓가로 무려 9만 파운드에 달하는 금액을 제공하기로 합의하면서 문제는 해결되었다. 당시 자유국은 바소토족과의 오랜 전쟁으로 인해 재정이 파탄 상태에 이르렀고, 화폐 가치는 폭락해 물물교환이 등장할 정도로 최악의 경제 침체 상태였는데, 이 돈을 받으면서 재정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다른 지역들에서도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면서, 손해를 벌충하고 경제적 호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하며 그럭저럭 잘 나가다가, 영국과의 보어 전쟁으로 인해 멸망하고 대영제국의 오렌지 강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남아프리카 연방의 국기에 오라녀의 국기가 남아있었다. 보어전쟁 발발 직전에는 장래에 트란스발 공화국과 통합하여 통합 연방을 창설하기로 합의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군사 방위조약을 맺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