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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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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7CEEB><colcolor=#000000> 뷔르템베르크 왕국 카를 1세의 왕비
러시아의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Великая княгиня Ольга Николаевна России
파일:Olga_Nikolaevna_of_Russia.jpg
이름 올가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Ольга Николаевна Романова
출생 1822년 9월 11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망 1892년 10월 30일 (향년 70세)
뷔르템베르크 왕국 프리드리히샤펜
배우자 카를 1세 (1846년 결혼 / 1891년 사망)
아버지 니콜라이 1세
어머니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형제 알렉산드르 2세, 마리야, 알렉산드라, 콘스탄틴, 니콜라이, 미하일
종교 러시아 정교회
파일:Grand Duchess Olga by Franz Xaver Winterhalter (1865).jpg
초상화


1. 개요2. 작위3. 생애
3.1. 어린시절3.2. 혼담과 결혼3.3. 왕세자비3.4. 왕비3.5. 말년
4. 가족관계
4.1. 조상
5. 여담

[clearfix]

1. 개요

뷔르템베르크 카를 1세의 왕비이자 러시아의 공주. 니콜라이 1세프로이센의 샤를로테의 4남 4녀중 차녀이며, 알렉산드르 2세의 여동생이다.

아버지 니콜라이 1세는 자신의 형제자매들의 이름을 자녀들에게 지어줬는데 올가의 이름은 니콜라이 1세의 다섯째 누나의 이름에서 따왔다. 애칭은 올리(Олли)이다.

2. 작위

3. 생애

3.1. 어린시절

1822년 9월 1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니콜라이 1세알렉산드라 황후는 아이들에게 자상한 부모였으며, 자녀들의 교육을 매우 신경을 썼다. 또한 자녀들끼리 매우 가깝게 지내기도 해서 유대감이 형성했다고 한다. 올가는 러시아의 여대공으로서 교육을 잘 받았다고 하며 수학, 역사, 물리학을 배웠고,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를 익혔고, 음악과 예술에 소질이 있었다.

올가는 고집이 세고 완고했던 언니 마리야와 달리 성격이 온화했지만 언니 마리야와 여동생 알렉산드라와 서로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또한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생긴 외모를 가졌기에 유럽 전역에서 아름다운 공주로 유명했다. 이러한 명성으로 올가가 왕비가 될 수 있었다.

3.2. 혼담과 결혼

올가의 아버지 니콜라이 1세는 자신의 딸들이 통치가문의 남성과 결혼하기를 원했기에 올가의 혼담을 신경을 썼다. 1838년 올가 니콜라예브나는 외가인 프로이센에 방문했는데 그 곳에서 바이에른막시밀리안을 만났다. 막시밀리안은 올가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바이에른 왕실에서 올가를 반대했다. 이어서 오스트리아의 슈테판 대공도 올가를 좋아했지만 이번에는 슈테판의 새어머니 마리아 도로테아 대공비가 매우 반대했다.[1][2]

1846년, 양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뷔르템베르크의 카를 왕세자를 만났다. 이때 올가는 매우 아팠을 뿐더러 어머니 알렉산드라 황후가 여동생 알렉산드라의 죽음으로 인해 건강이 안 좋아지게 되자 요양 겸 맞선을 볼 겸 팔레르모에 여행을 갔다고 한다. 올가의 부모인 니콜라이 1세 부부는 올가의 언니인 마리야가 통치 가문이 아닌 로이히텐베르크의 막시밀리앵[3]과 결혼하면서 남은 딸인 올가가 왕족과 결혼하기를 내심 원했다고 한다. 올가와 카를 왕세자는 뷔르템베르크 가문 기준으로 6촌이었다.[4] 당시 뷔르템베르크 왕국은 올가의 할아버지 파벨 1세 시절부터 러시아 제국과 통혼해온 연이은 사돈관계였다. 올가의 할머니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후, 숙모 뷔르템베르크의 샤를로테(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는 뷔르템베르크의 공주 출신이었고 고모 예카테리나는 뷔르템베르크 국왕 빌헬름 1세의 왕비였다.

올가는 1월 18일에 카를 왕세자의 청혼을 받았고, 1846년 7월 13일 러시아 페테르호프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5] 9월 23일에 올가 부부는 뷔르템베르크로 돌아갔다.

3.3. 왕세자비

올가는 그렇게 뷔르템베르크의 왕세자비가 되었지만 남편 카를 왕세자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당시 카를 왕세자의 동성연애에 대한 스캔들을 뷔르템베르크 왕실에서 수습하느라 올가 역시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가정적으로는 나름 안정되었다. 카를과 올가 부부는 1863년 올가의 남동생인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의 차녀인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6]을 뷔르템베르크로 데려와 양육을 맡게 되었다. 베라 여대공은 굉장히 난폭한 성격이었고 부모인 콘스탄틴 대공 부부마저 매우 애를 먹어서 올가 부부가 키우게 되었다고. 처음에는 베라 여대공이 남편 카를을 발로 찼지만 카를과 올가는 지극정성으로 베라 여대공을 키웠고 그 결과 난폭한 성격이었던 베라의 상태가 점차 나아졌다고 한다. 후에 베라를 양녀로 삼아 살았다고 한다.

3.4. 왕비

1864년 6월 25일, 시아버지 빌헬름 1세가 사망하자 남편 카를 1세가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국왕이 되면서 올가도 왕비가 되었다.

올가 왕비는 자선 사업에 열중했으며 특히 여성에 대한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자선 사업가인 샤를로테 발 폰 슈투트가르트에 의해 군인이나 장애인들을 지원하였다. 1849년, 왕세자비의 자리에 있을 때 아동 전문 병원인 올가 병원을, 1872년 올가슈베스트 교회 개신교 수녀회는 올가의 이름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자선 사업에 열정적이었던 올가는 뷔르템베르크의 신하와 국민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며 남편 카를 1세보다 인기가 많았다.

농업을 좋아해 러시아의 독일 볼히니아 식민지[7]에 위치한 농장에서 농사를 지었으며,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아 광물을 수집했다고 한다.

올가는 위엄과 왕비다운 면모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1873년 7월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가 방문했을 때 한 시녀가 올가 왕비에 대해 '그분은 가장 대수롭지 않았다. 왕비는 매우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왕비인 유일한 사람...' 이라고 일기에 적었다고 한다.

3.5. 말년

1891년 남편 카를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시당조카인 빌헬름 2세가 즉위하게 되어 올가도 사실상의 왕대비가 되었다. 남편이 사망한 지 1년 후에 1892년 10월 30일에 프리드리히샤펜에서 향년 70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올가 왕대비의 유해는 알테스슐로스에 안장되었다.

4. 가족관계

4.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러시아의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Olga Nikolaevna of Russia)
니콜라이 1세
(Nicholas I)
파벨 1세
(Paul I)
표트르 3세
(Peter III)
예카테리나 2세
(Catherine II)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공녀
(Duchess Sophie Dorothea of Württemberg)
뷔르템베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2세 오이겐
(Frederick II Eugene, Duke of Württemberg)
브란덴부르크슈베트의 프리데리케[8]
(Margravine Friederike of Brandenburg-Schwedt)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공주
(Princess Charlotte of Prussia)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Frederick William III)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Frederick William II)
헤센다름슈타트의 프리데리케 루이자
(Landgravine Frederika Louisa of Hesse-Darmstadt)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
(Duchess Louise of Mecklenburg-Strelitz)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카를 2세
(Charles II, Grand Duke of Mecklenburg-Strelitz)
헤센다름슈다트의 프리데리케 공녀
(Princess Frederica of Hesse-Darmstadt)

5. 여담



[1] 슈테판 대공의 아버지 요제프 대공은 올가의 고모인 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의 남편이었고 마리아 도로테아 대공비는 뷔르템베르크 가문 출신으로 요제프 대공의 세번째 부인이었다. 참고로 마리아 도로테아는 올가의 할머니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공녀의 남동생 루트비히의 딸로 올가의 아버지 니콜라이 1세의 외사촌이었다. 마리아 도로테아 대공비의 막내딸인 마리 헨리에테레오폴드 2세의 왕비이다.[2] 아무래도 종교의 문제 때문에 혼담이 성사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국교는 정교회였고 바이에른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교는 가톨릭이었기 때문.[3]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양자인 외젠 드 보아르네의 막내아들이다. 누이들 중 조제핀, 아멜리는 각각 스웨덴 왕비, 브라질 황후가 되었으며, 형인 오귀스트 드 보아르네포르투갈 왕국마리아 2세와 결혼 했으나 얼마 안가 요절한다.[4] 올가는 프리드리히 오이겐의 장녀 조피 도로테아의 손녀, 카를은 프리드리히 오이겐의 장남 프리드리히 1세의 손자였다.[5] 이 날은 올가의 어머니 알렉산드라의 48세 생일이었다.[6] 그리스의 올가 왕비의 여동생이다.[7] 현 우크라이나 볼린주·리브네주[8]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외손녀이다.[9] 외젠 드 보아르네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