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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0:22:55

올로프 팔메 총리 암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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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c002d><colcolor=#fff> 올로프 팔메 총리 암살 사건
Mordet på Olof Palme
Palmemordet
파일:Palme_Trauer_1986.jpg
▲ 사건 다음날 사건 현장에 놓여진 꽃들
▲ 사건 발생 위치
일시 1986년 2월 28일 오후 11시 21분[CET]
사고일로부터 [dday(1986-02-28)]일
유형 살인
위치 스웨덴 스톡홀름 스베아베겐 거리
가해자 미상
범행 동기 불명
피해자 <colbgcolor=#bc002d> 사망 올로프 팔메 제26대 스웨덴 총리
부상 리스베트 팔메 팔메의 부인

1. 개요2. 올로프 팔메는 누구인가?3. 총리 암살
3.1. 용의자 1: 미국3.2. 용의자 2: 소련3.3. 용의자 3: 스웨덴 극우 및 재벌3.4. 용의자 4: 남아공3.5. 용의자 5: 크리스터 페테르손3.6. 기타: 허위 자백들3.7. 장기 미제 사건으로
4. 살인 공소시효가 폐지되다5. 재수사와 수사 종결6. 대중매체7. 참고

[clearfix]

1. 개요

파일:dagensnyheter_palmemordet.jpg
1986년 3월 1일 다겐스 뉘헤테르 1면
팔메 암살 후 SVT의 보도
1986년 2월 28일 당시 스웨덴 총리였던 올로프 팔메스톡홀름 시내 극장에서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본 후 지하철로 가던 중 괴한의 총격에 사망한 사건이다. 현재까지 범인을 체포하지 못한 미제사건이기도 하다.

2. 올로프 팔메는 누구인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올로프 팔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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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로프 팔메는 1927년 1월 3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출생했다. 팔메 가문은 한때 발렌베리와 자웅을 겨뤘을 정도로 명문가였고 생가는 현재 루마니아 대사관저로 쓰이고 있는 대저택이었다.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 생활을 하던 중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목격하였는데 이 경험은 그의 정치적 견해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학 졸업 후 스웨덴 사회민주노동자당에 입당한 팔메는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종래에 차등적으로 지급되었던 연금을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개선했고 고등 교육을 확대하는 등 복지 제도 개혁에 힘썼다.

1969년 총리에 취임한 후 대외적으로는 중립 노선을 강화하고 대내적으로는 장애인 불임수술 정책을 폐지하는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개선하는 정책을 펼쳤다. 1976년 세금 문제에 대한 여론의 압력에 밀려 사임했으나 1982년 재선되었다. 이후에는 제3세계 지원과 이란-이라크 중재, 남아공아파르트헤이트 비판 등 인권과 평화주의에 기반한 외교 정책을 수행했다.

출처

3. 총리 암살

사건은 1986년 2월 28일 밤에 일어났다. 올로프 팔메 총리는 그의 아내 리스베트 팔메와 함께 스톡홀름 시내에 위치한 그랜드 시네마 극장에서 수잔 외스텐의 'The Mozart Brothers'라는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지하철 역으로 가던 참이었다.

그 때 뒤에서 한 남자가 다가와 권총을 꺼내 총리 내외를 향해 여러 발을 난사했다. 영부인은 총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던 반면, 총리는 등에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현장에 있었던 두 소녀가 총리 내외에게 달려간 사이 인근을 지나던 택시기사가 구급차를 불렀다. 행인들이 모두 총리 부부에게 다가간 사이 범인은 어둠을 틈 타 유유히 현장에서 달아나 버렸다. 불행하게도 이날 총리 내외의 곁에는 경호원이 없었고, 부부 단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갔다가 변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애초에 팔메 총리는 격식을 차리기 좋아하지 않아 경호원 없이 다니는 걸 즐겼다고 한다. 올로프 팔메 총리는 긴급하게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결국 3월 1일 자정에 향년 59세로 사망하고 말았다.

시내 한복판에서 총리가 권총에 피격당해 암살당한 초유의 사태에 스웨덴 사회는 일제히 충격에 빠졌다. 곧바로 경찰은 총리 암살범을 찾는데 집중했다. 팔메 총리는 화끈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인해 친구도 많았지만 적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총리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었다. 팔메 총리 암살 배후로 지목된 세력들은 다음과 같다.

3.1. 용의자 1: 미국

올로프 팔메가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던 시기 베트남 전쟁이 터지자 팔메는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1972년 12월 크리스마스 폭격 직후 팔메는 연설에서 게르니카 폭격,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 바빈야르 학살, 카틴 학살, 리디체 학살, 샤프빌 학살[2]을 거론한 뒤 "이제 이 학살 목록에 하나가 더 추가되겠군요. 하노이, 1972년 크리스마스"라고 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이 연설을 듣고 "소련, 중국도 이 폭격에 대해 미국을 비난했지만 올로프 팔메는 그보다도 더하다."고 했을 정도. 팔메 집권기에 미국과 스웨덴의 관계는 당연히 매우 악화되어 미국이 스웨덴 대사를 철수시켰을 정도였다.

또 총리가 된 후에도 그는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두고 "나는 미국 유학 시절에 미국의 이런 모습을 보고 사회주의자가 되었다."고 강조했고 1950~80년대 미국이 냉전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중남미와 아시아 등지에서 극우 독재 정권을 지원해 수많은 인권 탄압과 정적 제거, 민간인 학살을 방관하는 등 이른바 더러운 전쟁을 강하게 비판했다.[3] 이 때문에 미국 정부가 CIA 요원을 파견해 올로프 팔메 총리를 암살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3.2. 용의자 2: 소련

올로프 팔메는 모든 유럽 국가에게 핵무기 보유를 금지하자고 주장했던 반핵주의자였다. 그는 평소 유럽이 비핵화를 하지 못한 원인을 소련이라고 생각했다.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하니 유럽의 강대국인 영국프랑스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덩달아 핵무장을 하느라 유럽이 비핵화를 하지 못하게 됐다고 여겼기에 유럽 비핵화를 위해 핵무장을 한 소련을 강도 높게 비난해 왔다.

팔메는 1986년 3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비핵화 회담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암살 시점은 회담이 열리기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이 때문에 소련에서 KGB 요원을 스웨덴에 보내 팔메 총리를 암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3.3. 용의자 3: 스웨덴 극우 및 재벌

올로프 팔메 총리는 부의 재분배를 통한 사회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고 오늘날 스웨덴복지국가의 대명사가 된 것은 모두 올로프 팔메 총리의 공이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스웨덴의 대기업과 극우 세력은 팔메가 스웨덴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올로프 팔메 총리가 평소 강대국 위주의 세계 질서에 반감을 표하고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진보 정치권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등 냉전 시대 제3세계 좌파를 대변한 행적 때문에 친미 성향을 가진 스웨덴 극우의 반감을 샀다. 당시 스웨덴은 미국과의 관계가 매우 악화되었는데 극우파들은 이의 원인이 모두 팔메 총리에게 있다고 보았고 스웨덴의 대기업들도 복지 확대를 위해 납부해야 할 세금이 늘어나자 올로프 총리에 대한 반감이 매우 강했다. 이 둘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스웨덴의 대기업에서 극우단체들을 고용해 팔메 총리를 암살했다는 주장이 있다.

3.4. 용의자 4: 남아공

마지막으로 거론된 용의자는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보기관이었다. 팔메 총리는 평소에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감정적인 표현까지 사용하며 매우 강도 높게 비난하였다. 사망 일주일 전인 1986년 2월 21일 연설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는 인류를 좀먹는 제도다. 우리는 남아공 흑인 민중을 지지한다고 선언함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고립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 역겨운 제도를 뿌리뽑아야 할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개혁의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사건 발생 10년 후인 1996년 남아공의 비밀경찰인 C10, 일명 "블라크플라스 암살대(Vlakplaas)"의 전직 사령관이었던 유진 데 콕 (Eugene de Kock)이 남아공의 정보 기관이 팔메를 암살하였다고 폭로하였다. 그는 팔메 수상을 암살한 것은 그의 동료였던 크레이그 윌리엄슨(Craig Williamson)이며 작전명은 "롱리치"였다고 구체적인 부분까지 털어놓았다. 그는 팔메 암살을 두고 "남아공에 비판적인 해외 인사들을 침묵시키기 위한 정권 차원의 비밀작전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6건의 살인을 포함해 89건의 범죄 혐의로 기소된 와중에 종신형을 앞둔 상황에서 사면령을 기대하며 폭로한 것이라 신뢰할 수는 없다.#

3.5. 용의자 5: 크리스터 페테르손

한편 경찰의 조사 결과 올로프 총리를 암살하는 데 쓰인 권총은 1983년 모카피아르트 우체국 강도 사건의 총탄 성분과 일치하는 스미스 웨슨제 권총으로 밝혀졌다. 1988년 리스베트 팔메는 팔메 총리의 암살범으로 어느 남자를 지목했는데 알코올 중독자이자 마약 중독자였던 크리스터 페테르손(Christer Pettersson)이란 사람이었다.

하지만 페테르손이 암살범이란 사실을 입증할 결정적인 물증이 나오지 않았고[4] 정신병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으며 마땅한 살해 동기가 없는 점, 총리 부인의 기억이 객관적 증거로 채택하기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만약 페테르손이 진범이 맞다면 범행 동기는 마약으로 인한 우발적 충동[5]이거나 정신병으로 인한 망상일 것이다. 실제로 조현병 환자들의 망상은 정부와 관련된 경우가 많고 정신질환자들이 정치적 이념과 무관하게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유명인을 암살하려고 한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6]

3.6. 기타: 허위 자백들

이후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이 올로프 팔메 총리를 암살했다고 자백했으나 허위 자백으로 밝혀졌다. 이들 중에는 튀르키예쿠르드족 독립운동가도 있었다.

3.7. 장기 미제 사건으로

2004년 팔메 총리 암살범으로 지목되었던 크리스터 페테르손이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런데 크리스터 페테르손의 친구이자 저널리스트인 게르트 필킹이 페테르손이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자백했다고 발표했다.

게르트 필킹의 발표로 크리스터 페테르손이 올로프 총리의 진짜 암살범인지 논란이 일어났는데 2006년 유력한 단서가 발견되었다. 익명의 제보를 받은 수사 당국은 스웨덴의 한 호수에서 낡은 권총을 발견했는데 그 총은 팔메 총리를 암살하는 데 사용된 총과 동일한 기종인 스미스 웨슨제 권총이었다. 그러나 총이 너무 오랫동안 호수 속에 방치되어 지문이 씻겨내린 탓에 정말로 총리를 암살하는 데 쓰인 권총인지 여부를 밝혀낼 수 없었다.

4. 살인 공소시효가 폐지되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를 25년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2011년 2월 28일에 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0년 스웨덴 정부가 이 사건을 계속 수사하기 위해 사안이 심각한 특정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는 것으로 법을 개정함으로써 팔메 총리의 암살범 수사는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범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5. 재수사와 수사 종결

2016년 11월 15일, 스웨덴 당국이 사건 발발 30년을 맞아 다시 올로프 총리 암살사건을 재수사하기로 결정했다. 스웨덴 검찰은 크리스터(Krister) 페테르손 검사가 오는 2월 1일부터 재수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유력한 용의자 페테르손은 Christer로 이름이 다르다. 여튼 이에 대해 여러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페테르손 검사는 2003년 당시 외무장관이던 안나 린드 피습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등 세간의 이목을 끈 사건을 맡아 온 조직범죄 전문 베테랑이다. 그는 "무척 흥미롭고 중요한 일이며 (중략) 영광으로 생각하고 엄청난 열정으로 이 임무를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비록 올로프 팔메 총리는 [age(1986-02-28)]년 전에 암살당했지만 여전히 스웨덴 국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사회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재수사에 스웨덴 국민들도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고 한다.

2020년 6월 10일에 수사를 종결하였다.# 스웨덴 검찰은 2000년에 사망한 스티그 엥스트롬을 용의자로 지목했으나 그에 수반하는 새로운 증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엥스트롬은 팔메 암살 당시부터 용의자로 지목됐으나 목격자로 행세하면서 진술이 엇갈리고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서 풀려났는데 그를 다시 용의자로 확정한 것이다. 그의 아들 모르텐 팔메(Mårten Palme) 역시 엥스트롬을 범인으로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지만# 확실한 증거가 공개되지 않아서 여전히 팔메 암살의 진상은 의문 속에 있다.#

6. 대중매체

2021년 이 사건을 바탕으로 스웨덴에서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뜻밖의 살인자'[7]가 공개되었다. 5부작 미니 시리즈이다.

7. 참고


[CET] 중앙유럽 표준시각[2] 1960년 3월 21일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흑인 시위대 69명을 학살한 사건.[3] 실제로 앞에서 언급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이것 때문에 전 세계에서 '기소되지 못한 전범'이라며 까인다.[4] 총리를 암살하는 데 사용된 권총이 발견되지 않았다.[5] 이 경우 범인은 팔메 총리를 암살할 의도가 없었고 피해자가 우연히 팔메 총리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6] 대표적으로 1982년 미국에서 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대통령을 저격한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이 있다.[7] 스웨덴어 원제목: Den osannolika mördaren. 영어 제목: The Unlikely Murder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