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Sick man of Europe한때 유럽에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던 오스만 제국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서 약해진 것을 조롱하는 단어.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전쟁인 크림 전쟁 당시 니콜라이 1세가 오스만 제국을 Sick man of Europe, 즉 "유럽의 환자"로 표현한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대상은 오스만 제국이 원조이고 오스만 제국의 사례가 가장 유명하지만 러시아 혁명 직전 러시아 제국이나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향해서도 사용되는 단어다.
2. 언어별 표현
한국어 | 유럽의 환자 유럽의 병자 |
영어 | Sick man of Europe |
프랑스어 | Homme malade de l'Europe |
스페인어 | Hombre enfermo de Europa |
러시아어 | Больной человек Европы |
튀르키예어 | Avrupa'nın hasta adamı |
3. 정말 환자 수준이었나?
유럽의 환자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유럽 열강의 환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즉, 유럽의 환자라는 조롱은 오스만 제국이 완전히 약소국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오스만 제국이 더 이상 강대국(열강)이 아닌 지역강국으로 지위가 추락했다는 것을 비꼬는 용어가 된다.[1] 달리 말하면 사실상 지역강국으로 쇠락하는 와중에도 뜨거운 감자로 남을 정도의 역량은 보존했다는 것으로 다른 더 상태가 나쁜 나라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것이다.오스만의 열강 지위 상실은 굉장히 긴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일단 오스만은 이제 막 18세기 초중반의 튤립 시대를 지나온 직후였기 때문에 아직은 상당한 여유가 존재하였으며 비록 영국의 도움 덕분에 승전하였다곤 해도 영국의 도움을 받아 이길 정도는 될 정도로 최소한의 군사 역량은 보존하고 있었다. 크림 전쟁 당시 이 표현을 만들어낸 차르 본인은 쓴 패배를 맛봐야만 했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은 빈 공방전 이후 중부유럽 진출을 포기하긴 했어도 러시아, 베네치아 공화국, 이탈리아, 신성 로마 제국 등과 계속해서 분전하여 막대한 위협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군사 체계가 뒤처지는 와중에서도 여전히 위협적이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세력을 과시했다. 그 유산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유럽 열강들이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조금 늦었다곤 해도 전열보병 체계를 받아들여 시대상에 맞는 군사 개선도 이루어졌고 이것은 크림 전쟁에서의 성과로 증명되었다.[2]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타 지역에 "영향력 투사"가 가능한 강대국으로서의 국력은 유지할 수 없었고 이것이 오스만이 유럽의 환자라고 불리게 된 이유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이 유럽의 환자로 불릴지언정 망자가 되는 데는 빅토리아 시대 전체가 소모되었다. 러시아 제국이나 오스트리아 제국 같은 열강의 위협이 있을 때 경쟁 열강인 영국, 프랑스 등의 지원을 못 받은 적이 드물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아라비아 반도에 대한 지배력과 발칸반도에 대한 지배력 모두를 상실하며 문명국가로 취급받기도 힘들 지경으로 몰락한다곤 하지만 개혁과 각종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크림 전쟁, 발칸 전쟁,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할 수도 없었을 것이며, 최초의 군사 항공대를 창시할 일도 없었고, 1차 세계대전까지 국체가 살아남기는커녕 진작에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 혹은 심지어 러시아에게 정복당해 완전히 식민지로 병합된 지 오래였을 것이고, 무스타파 케말이 등장하여 오스만을 전면적으로 철폐하고 튀르키예 공화국이라는 신 체제로 갈아엎을 일도 일어날 수 없었다. 아니, 그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오스만 제국의 군사적 개입을 걱정해서 사보타주를 했을 지경이다![3]
사실 후술할 요인을 보면 오스만 제국의 쇠락은 매우 오랜 기간 다양한 요인이 겹쳐 이루어진 사건이다. 때문에 유럽의 환자는 단순히 오스만 제국을 조롱하는 단어라기보다는 오스만 제국이 쇠락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타이밍에 대한 자조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유럽 열강들의 눈에 보기에 "문명화 의지"를 표출한 나라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성공한 나라는 사실상 일본뿐인 상황이었는데, 그마저도 빅토리아 시대 후반에 가야 겨우 성공해 열강 무대에 올라왔다. 신대륙의 떠오르는 별인 미국도 아직은 2류 국가 수준에 노예제로 국론이 분열되어 내전을 벌이던 마당이었다. 이러한 중에 당장 구시대 극복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국가는 전통적으로 유럽 열강 세력이었던 오스만 제국 하나뿐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제국이 열강 지위 복귀에 실패하고 최종적으로는 지역강국은커녕 문명국으로서의 지위도 무시받을 지경으로 갔으니 유럽 세력들에게 굉장히 경계할 교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유럽의 환자"라는 용어는 본래 오스만 제국에 대한 러시아 제국의 지나치게 이른 모욕 겸 도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 시대 후반의 지식인들, 특히 버트런트 러셀 경 같은 거물들이 더욱 애용하여 지금까지도 쓰이는 관용구로 자리잡기에 이른다. 다만 요즘은 자조적인 의미보단 순수히 조롱으로서의 의미가 더 커진 감이 있다.
자세한 것은 오스만 제국 문서의 11. 경제 문단 참고.
4. 오스만 제국 쇠락의 원인
다른 비유럽권, 특히 동아시아 같은 곳이야 유럽이 멀어서 근대화의 위력을 몰랐다지만 오스만 제국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은 머언 중세 이래 줄곧 서유럽과 치고받고 싸워 왔던 유럽 열강의 일원이었으며 당연히 18~19세기 서유럽의 눈부신 발달상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맞붙어 있으니 교류도 쉬웠고 개혁도 빠르게 이루어졌다. 더욱이 비슷해 보이는 조건의[4] 러시아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할 수도 있었다. 분명 이것은 서구화와 현대화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조건이었고 오스만은 이 제1달성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조건, 특히 노력으로 해결하기 너무나 어려운 원천 조건 부분에서 죄다 막혀 있었기 때문에 기나긴 기간의 투병 끝에 결국 유럽의 "망자"가 되어 버렸다.4.1. 지리
제일 심각한 문제의 원인은 시대상의 변화로 인한 지리적 이점의 상실이다. 언제나 유사 유럽 소리를 들으며 원조 유럽의 환자(...)였던 러시아 제국조차도 존재 자체로, 독일권에는 바로 맞붙은 위협으로, 대영제국에게는 그레이트 게임으로 압박을 줄 수 있는 이점을 가진 것에 비해 오스만은 기존의 전략적 이점을 크게 상실하고 있었다.말라리아라는 거대한 생물학적 장벽으로 인해 아직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던 아프리카 심층부와 달리 나머지 구대륙은 극동을 제외하면 전부 서유럽 열강들이 먹을 대로 다 먹은 포화 상태인 것은 물론 결정적으로 인도를 영국이 독점하고 있는 이상 오스만 제국이 선점했던 지리적 이점은 크게 쇠락한 상황이었다. 결국, 세력 투사가 가로막혀 버렸다.
하필 이런 상황으로 그치지 않고 오스만 제국이 사실상 유일하게 가진 지리적 이점인 이집트에 대한 통제가 상실되었다. 이집트의 이권 문제는 러시아에게 내주게 되는 크림 반도와 함께 오스만이 서구 열강들에 대해 가지는 몇 없는 외교적 카드였지만[5] 오스만이 통제하지 못하는 지역이 되어 버린 이상 오스만 제국의 아킬레스건이자 취약점이기도 했으며 최종적으론 영국에게 내주며 카드 상실로 이어진다.
이것은 러시아가 오만가지 우여곡절과 파탄을 지나면서도 "열강" 지위 자체는 유지한 것과 달리 오스만은 그 지위를 잃는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것은 안보 문제로 직결된다. 오스만 제국은 당장 서로 적대적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서구 열강의 세력권과 딱 붙어있다. 외부의 안보 문제는 결국 비용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오스만 제국이 경제에 투입할 여력을 깎아먹으며 더욱 큰 악재를 부른다.[6]
4.2. 자원 및 인구
이러한 지리와 시대적 상황의 심각한 악화를 넘길 수 있는 다른 수단들도 때마침 이 시기에 맞춰 영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시대적 상황이 세력 투사에 부적합하면 외교적 수단이나 경제적 수단으로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고 더 나은 상황을 노려야 하며, 오스만 제국은 실제로 그걸 시도해서 상당히 성공했으나, 그 부분에조차 때마침 막혀버린 것이다.산업 혁명으로 인해 기존의 귀족-지주 계층이 몰락하고 시민 권력, 곧 자본가와 지식인 계층이 부상한 더 앞선 열강들과 달리 오스만 제국은 산업 변환이 느렸고, 이것은 군사 비용의 폭증을 유발함과 동시에 동원 체계의 급변을 가져온 화포 시대의 고도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연히 군사력의 약화로 직결되어 이 난국을 대외 세력 투사를 통해 극복한다는 선택지가 막히게 된다.
이 와중에 오스만 제국의 자원 분포는 산업화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다. 특히 초기 산업화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석탄과 철의 분포에 대비 영토 구조가 상당히 비효율적이었으며, 비교적 저렴한 인건비로 노동력을 제공할 인구도 이리저리 흩어져 집중되어 있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이 가진 방대한 영토에는 안타깝게도 빅토리아 시대 시점에 쓸만한 자원보다는 활용도가 떨어지는 자원들만 존재하였다. 중계 무역은 인도가 영국에 넘어간 시점에서 망한 사업이 되었고, 그나마 건질만한 곡물도 미국을 비롯한 각종 신흥 지역들에서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되어 가격이 폭락함에 따라 그나마 있는 구시대 산업마저 강세를 잃게 되어 버렸다. 이런 와중에 신흥 산업으로 넘어가기 위한 자원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당대에 발견된 매장량도 애매하기 그지 없는 데다 인구도 드넓은 영토 이곳저곳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물론 이 정도는 러시아도 마찬가지며, 오히려 개발 자체는 러시아보다 더 유리한 점도 많았기에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아니었을 수는 있으나 인구 구성은 치명적이었다. 그냥 땅 파면 어디에서든 자국 문화 정교회 인구가 가득했다. 특히 이런 인구가 밀집된 지역 주변에 마침 당장 접근 가능한 산업 자원이 있던 러시아와 달리, 오스만의 인구 구성은 정반대로 자원이 밀집된 지역들이 죄다 자국 문화와 종교를 따르는 인구보다는 적대적인 인구들이 가득한 지역 위주였다.[7] 이는 동원 체계에도 치명적이었다. 동원할 인구 자체에 하자가 있는 상황이다. 똑같이 소작농들 끌고와서 나사빠진 군대 급조해다 싸우게 시켜도 러시아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이래서야 싸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러시아는 북쪽에서 바로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흑해 무역에도 큰 방해가 되어 보스포러스 관세 수입에도 불이익을 준다.
이런 너저분한 인구 구성으로 인한 분쟁을 규합할 "신식 사상" 같은 것은 오스만 제국에 아직 받아들여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자본가 세력과 지식인 세력이 성장해야하는데 당장 그게 막혀버린 것이다. 반대로 이런 복잡한 인구 구성을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 모든 조건들은 죄다 달성되어 가는 중에 서구 문명의 엉뚱한 혁신(?)으로 되려 신규 불온사상(...)이 유입되며 악조건이 실시간으로 더 불어날 미래는 잔뜩 있는 상황이다.[8]
결국, 외부의 상황이 최악인데 내부의 상황도 여러모로 매우 좋지 않고, 이 와중에 국가의 근본이 되는 경제는 인구 구성과 자원 분포 양면에서 막혀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개혁의 필요성을 위에서부터 느끼고 시행하였음에도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체제 전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열강 복귀 실패로 향하게 된다.
5. 비슷한 사례
오늘날에는 PIGS처럼 경제 위기를 겪는 유럽 국가들에 이 단어를 쓰곤 한다. 프랑스를 환자로 지칭한 예, 이탈리아를 환자로 지칭한 예 독일 역시 독일 재통일 직후 통일 비용의 거대함 때문에 유럽의 환자 소리를 들었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 퇴임 후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다시 유럽의 환자 소리를 듣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이 중국(청나라)을 침략하였고 칭다오에 식민지 조계를 설치하고 사실상 산둥성 전체가 열강의 식민지 관할로 들어오면서 중국도 "아시아의 병자(동아병부, 東亞病夫)"로 불렸다.
근대 영미권의 신문인 North China Daily News에서는 모로코, 페르시아, 청나라, 오스만 제국을 세계 4대 환자라며 비꼬기도 했었다.
필리핀도 "아시아의 환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한 때 "동남아시아의 미국"으로도 비유되었을 만큼[9] 잘 살았다가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붙은 별명이다.[10]
2020년대 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아랍의 봄이 퇴행되면서 튀니지를 "북아프리카의 환자"로 비유하는 사례도 있었다. #[11]
6. 외부 링크
[1] 제1차 세계 대전의 패망 후 맺어진 세브르 조약이 그대로 유지됐다면 지역강국 지위조차도 잃고 분열되었겠지만 튀르키예 독립 전쟁으로 그러한 신세만은 면했다.[2] 에티오피아처럼 열강과 싸워 이긴 다른 나라가 있긴 하지만 이쪽은 2선, 3선급이었고 오스만처럼 1선급과 싸운 건 아니다. 당장 크림 전쟁의 장소 크림 반도만 해도 오스만, 러시아 모두 본토와 가까이 있는 지역으로 당연히 양국 모두 2선급으로 싸울 순 없는 노릇이다.[3] 이 우려는 자기 실현적 예언의 형태로 맞아떨어졌는데 이 우려로 처칠은 오스만에 주기로 한 전함 2척을 빼앗는 만행을 저질렀고 이 때문에 세계대전에 끼어들고 싶지 않던 오스만은 어쩔 수 없이 동맹국 편에 서서 싸우게 되었고 이 때문에 처칠은 갈리폴리 상륙작전을 벌였다가 영국군 역사에 남을 대패를 하게 된다.[4] 아래에서 보듯 차이점도 있지만 광대한 영토, 서유럽과 떨어진 지리적 조건, 늦은 근대화 등은 유사했다. 한국이 일본과 꽤 다를지언정 20세기 중반의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을 벤치마킹할 수 있었던 것처럼 비슷한 모방 대상의 존재는 사회 발전의 난이도를 크게 낮춰준다. 사실 오스만이 지니고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가치를 생각하면 러시아에 비해 단점만 있다고도 할 순 없었다.[5]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고 하는 영국의 그레이트 게임 상황도 포함된다.[6] 똑같이 환자 소리 듣던 청나라는 백년국치 시기에도 적어도 국체를 위협당하지는 않았다. 유럽 열강들은 너무 멀었고 국경을 접한 러시아도 시베리아라는 장벽이 있었으며, 그나마 가까운 일본은 19세기에는 중국을 침략할 능력은 없었고 이후 20세기에 중일전쟁으로 시도는 했지만 결국 무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7] 사실 이러한 문제는 오스만이 굳이 이슬람을 강요하지 않은 탓도 있다. 반대로 이웃 이란 사파비 제국은 대규모 개종 사업을 벌여 당시까지 소수였던 시아파를 다수로 변화시켰다. 그 대가로 이전까지 다수였던 수니파의 분노를 사긴 했지만 이 결과 현 이란 지역은 현재까지도 시아파 국가로 남게 되었다.[8] 사실 이 문제는 딱히 유럽의 환자 소리를 듣지는 않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역시도 오스만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오스만보단 나았다. 다만 민족주의의 충격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오히려 더 직격탄으로 맞아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아예 지역강국의 지위까지 상실하였다.[9] 단, 과대평가가 있는 부분이다. 당대 필리핀이 아시아에서 그나마 생활수준이 괜찮았던 것은 사실이나 일부 호사가들이 말하듯이 '선진국 수준'으로 부유하게 잘 살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자세한 내용은 필리핀/경제 문서 참고.[10] 현재 필리핀은 태국, 말레이시아는 물론 한때 자기네들보다 훨씬 못살았던 베트남, 인도네시아보다도 1인당 GDP가 아래이다.[11] 참고로 2022년 후기에 본격적으로 다시 독재화되기 전에는 아프리카나 중동 세계에서 그래도 가장 세속적이면서 동시에 민주적인 체제였다 보니 다른 주변 나라들 및 아랍 세계에 비해 확실히 살기 좋았다. 사실 2020년 초기까지도 경제적으로서 어느 정도 혼란과 코로나 19만 빼면 다른 아랍 국가들에 비해 그렇게 나쁘지 않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 타격과 온건한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인 엔나흐다조차 점차 무능해지고 부패해지면서 튀니지의 민주주의도 서서히 몰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