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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劉諶
(? ~ 2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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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황족이자 유선의 5남.2. 정사 삼국지
259년에 북지왕(北地王)에 봉해졌고 263년에 유선이 장차 초주의 계책에 따라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려 하자 분노하여 말했다,"만약 계책과 힘이 다하여 화란과 실패가 임박했다면, 응당 부자(父子)와 군신(君臣)이 성을 등지고 한번 싸워 사직을 위해 함께 죽고 저승에서 선제(先帝)를 뵙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망하더라도 한번 싸워는 보자는 소리였으나 유선은 이미 항복할 생각이 만만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마침내 옥새를 보냈다. 이날, 유심은 할아버지 유비의 릉에서 곡하고는 먼저 처자식을 죽이고 그 뒤 자살하니 좌우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또 유선의 궁인들을 위나라 장수들에게 나누어주자 후궁 이소의가 '나는 이 치욕을 2번, 3번 감당할 수 없다'며 자결하였다.
2.1. 당대의 맥락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가족을 죽인 패륜아이자, 명예살인감이지만, 그 당시는 목숨보다 충을 중시한 시대인 것을 감안해야 한다.또한 이 부분에서 많은 현대인들이 지극히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며 생기는 오류가 있는데 계백을 비롯해 과거 동아시아에 이러한 사례가 적잖이 나오는 이유는 기득권층에게 나라가 사라진다는 것은 충이라는 대의에 어긋나는 것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도 망국의 기득권 세력이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이전의 춘추전국시대만 해도 수많은 군주들이 강대국에게 집어삼켜져 직접적으로 생명에 해를 입거나 모욕을 당해왔으며 당장 직전의 한나라의 황족들이 그랬고, 이후의 위의 조씨 일가도 그러했다. 더 미래에 가더라도 항복한 망국의 세력들에게 닥치는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오히려 현대인의 시각은 충 때문에 가족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단편적인 면이 강하고 고대 시대의 생존 그 자체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지 않는 문제가 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순 있지만 애초에 고대 중국에 민간인과 포로에 대한 인권개념이 현대와 같을 수는 없다. 아래에 궁인들을 장수들에게 나누어줬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그냥 물건 취급당하는 경우도 잦았다. 원희의 부인처럼 운 좋게 황후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1] 망국의 여인들이 능욕당하거나 후환을 없애겠다고 어린이들까지 싹 죽이는 경우도 흔했다.
즉 '항복하면 살 수 있다'란 전제를 깔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 인권이나 아동인권이란 개념 자체가 희미한 시기였고, 부부가 비교적 동등한 현대와 달리, 부마 같이 아내 쪽의 신분이 확실히 높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처자식은 딸린 가족 개념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이니 '일단 내 처자식은 살려두고 보자'라고 하는 것에 대한 동기가 현대인에 비해 현저히 약할 수밖에 없다.
3. 삼국지연의
행적이 정사와 비슷하다. 263년 촉한의 멸망 시기는 연의에서 117~118회에서 다루는데, 유심은 118회에서 항복하려는 유선을 말리는 역할로 등장한다. 이 때 주변에서 항복을 권하는 초주 등 문관들에게 "썩은 선비들 같으니라고! 남의 나라에 항복하는 천자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라고 고함을 치면서, 성도에 아직 수천의 병사가 있으며 강유와 요화, 장익이 검각에서 분투하고 있고 오나라가 원군을 보내줄 것이니 유선에게 항복하지 말라고 간곡히 요청한다.그러나 우리가 다 알듯이 유선은 항복을 했고, 유심이 물러나와 결단을 말하자 유심의 아내 최부인[2]은 기꺼이 스스로 자결하고 유심은 자기 손으로 자식들을 전부 죽인 후 자기 스스로도 유비의 능 앞에서 자살한다.[3]
4. 평가
촉한의 멸망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지만 삼국지 후반부 인물들이 그렇듯 존재감도 없고 언급된 내용도 이게 전부. 다만 간간히 견부호자 취급을 받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유심은 견부호자로 평가 받기에는 기록이 없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 평가하기는 어렵다.유심이 자살한 것 때문에, 유선이 사마소가 촉이 그립지 않냐고 했을 때 여기서 즐길 수 있다고 안 그립다고 한게 살아남기 위한 연기라는 주장에 대해 "왜 유심처럼 자살하지 않고 구차하게 계속 살아있냐"고 다시 까이기도 한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깐 건 촉의 대신이나 인사들만이 아니라, 위의 인사들조차도 그랬다.
물론 망국의 군주라고 해서 꼭 목숨을 내던지는 것만이 책임지는 자세인 건 아니고 촉이 망한 게 유선 탓만도 아니지만 유선은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도가 너무 심해서, 그래도 옛 군주라고 모시기를 원했던 극정 등 신하들조차 나라를 잃은 군주면 좀 슬퍼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대놓고 까고, 적국의 수장인 사마소조차 망국의 군주면 나라가 망한 것에 대해 능력이 안돼서 항복한 건 이해가 가지만 최소한 죄책감 정도는 가지라고 비난할 정도였다.[4]
5. 기타 창작물
5.1.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9, 10, 11 |
삼국지 12 |
삼국지 13, 14 |
그 충절을 높게 사서인지 백하팔인인 아버지와는 다르게 인재가 드문 후반부에 등장하는 장수치고는 그럭저럭 쓸만한 편인 문관의 능력치를 부여했다. 덤으로 나오는 시리즈마다 항상 의리 부분은 최상급. 전반적으로 유비의 아들들, 손자들 중에서 가장 능력치가 좋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12탄과 13탄의 일러스트가 좀 다른데 12탄 일러스트는 단검을 들고 자결하려는 일러스트였는데 13탄에서는 뒷짐을 지고 있는 일러스트로 바뀌었다. 심의에 걸렸기 때문이거나 범용성을 위해서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입고 있는 의복도 왕자답게 무늬가 추가되었다.
삼국지 3에서는 무지정매육수 순으로 63/61/64/81/62/20. 매력 외에는 평범한 능력치이나, 의리 수치가 98이고[5] 용맹이 무려 13이다.[6]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2/무력 65/지력 70/정치 72. 병법으로는 보병계 병법인 분전, 노병계 병법인 제사, 공성계 병법인 정란, 모략계 병법인 배반, 책략계 병법인 고무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45/58/65/62/75로 그저 그런 문관인데 특기라고 준건 어째 하나같이 능력치에 걸맞지 않은 치안, 고무, 항변. 치안과 고무는 통솔에 의존하는데 통솔 45인 유심을 전투에 데리고 나갈 일이 언제 있을 것이며, 지력이 65에 설전 특기가 항변 하나밖에 없고 명사 특기도 없는데 직접 플레이할 때나 수하로 부릴 때나 설전 할 일이 어디 있어야...
삼국지 11에서는 통솔 60, 무력 62, 지력 69, 정치 73, 매력 82의 준수한 능력치를 가지고 나오며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5, 무력과 지력이 각각 4, 정치력이 11, 매력이 7 상승했다. 특기는 노발이지만 알다시피 잉여 특기다. 반면 아버지는 강운. 왠지 모르게 슬프다.
삼국지 12의 전법이 전공격강화여서 그나마 쓸만한 무장으로 탈피했다. 지력도 70대라서 아버지보다 더 좋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60/62/70/73. 특기는 농업 3, 문화 3, 순찰 2. 전수특기는 농업이고 전법은 속공명령.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0, 무력 62, 지력 67, 정치 70, 매력 80으로 전작에 비해 지력과 정치력이 각각 3 하락했다. 개성은 11 시절과 같은 노발, 주의는 왕도, 정책은 병참개혁 Lv 4, 진형은 어린, 학익, 전법은 대갈, 저지, 친애무장은 유비, 혐오무장은 황호인데 혐오무장이 황호로 있는 것은 뭔가 맞지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초주를 꾸짖은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유심의 혐오무장에 초주가 들어가 있어야 할텐데 말이다. 또한 후반기라는 건을 감안해도 무력이 어느정도 높지만 공격용 전법이 없어서 전법의 서 노가다가 필요하다.
5.2. 그 외
삼국지 조조전의 모드인 촉한부흥전에서는 자결하지 않고 은둔해 있다 강유와 초주에 의해 황제로 옹립된다. 중간중간에 진태나 양호 등에게 막히는 북벌로 인해 좌절해있는 강유를 위로하고 보듬는 역할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로잡힌 허의를 제압하여 설득해 아군으로 만드는 등, 카리스마도 어느정도 갖추고 있다. 이후 강유에 의해 낙양으로 돌아온 뒤 천마칠흉성과의 싸움이 끝난 후, 통일된 대륙의 황제로 군림한다.삼국전투기에서는 촉 멸망이 다뤄지는 검각 전투 (11)편에서 등장한다. 전반적으로 생김새는 유선과 닮은 편이지만 머리스타일이 상대적으로 평범한 편이라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사망한 이후인 검각 전투 (12)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서는 유비의 패기는 이쪽으로 몰려들어간 것 같다고 서술되어 있다.
검각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초주의 말을 들은 유선이 항복을 생각하자 결사항전을 주장하지만 거부당했다. 유심은 선대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낸 나라라며 오열하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진 않았고, 항복 이후 자결하는 장면까지 묘사되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는 유선이 위에 항복하려 하자 먼저 죽은 유비, 제갈량, 오호대장군, 무명소졸들을 언급하며 결사항전을 주장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내가 아이들을 죽인 다음 먼저 자결하고 유심은 유비의 사당에서 자결한다.
84부작 삼국지 에도 등장하여 어마어마한 임팩트를 보여준다. 유선이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자신의 만류를 뿌리치고 위에 항복하기로 결정하자 아내 최부인과 세 아들을 불러 자결 의사를 밝힌다. 이에 최부인이 옳은 생각이라며 자신이 먼저 자결하겠다고 말하자 유심은 "나 혼자 죽으면 되니 가족들은 자결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최부인이 유심의 말을 듣지 않고 먼저 자결해 버린다. 이에 멘탈이 반 쯤 붕괴된 유심이 일가가 모두 죽어 선황을 보러 가자며 칼을 뽑자 첫째 아들이 당당히 죽겠다며 아버지의 칼에 달려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에 완전히 정신이 나간 유심은 죽기 싫다고 울부짖는 어린 두 아들까지 베어버린 뒤 자식들의 피를 뒤집어 쓴 채 유비의 묘로 가 대체 나라가 누구 때문에 멸망했냐며 절규하다 처자식의 수급을 바치고는 그 앞에서 자결한다. '장렬한 일가의 순사' 정도로 간략히 묘사되는 여타 창작물과는 차원이 다른 처절하고 광기어린 장면이다.
반삼국지에서는 유선이 서성의 식객들에게 암살당한 후, 유비도 제위에 오르기 전에 수명을 다함으로써 유심이 황제로 즉위한다. 장자도 아닌데 계승한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반삼국지는 원래 그런 이야기이니 넘어가자.
[1] 그리고 이 원희의 부인, 그러니까 문소왕후도 끝이 좋지 않았다.[2] 정사와 달리 연의에서는 유심의 아내에게 최부인이라는 호칭이 창작되었고, 남편 유심에게 죽는게 아니라 먼저 자결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3] 판본에 따라서는 아내와 자식들의 목을 잘라 유비 능에 바치고 자살했다는 얘기도 있다.[4] 유선의 행태를 보고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저렇게 무심한가! 제갈량이 살아 있었어도 저런 자 밑에서는 결국 나라를 보전하지 못했을 텐데, 강유라면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대놓고 말했다. 유선이 항복해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그가 이럴 정도면 유선에 대한 평가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5] 초선을 제외하면 제갈량과 함께 게임 전체 공동 2위다.[6] 관우, 마초, 하후돈 등과 동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