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21:40:17

육지수

#redirect
<colbgcolor=#004787><colcolor=#fff> 육지수
陸芝修
파일:육지수.jpg
출생 1907년
한성부
사망 1967년 6월 28일
본관 옥천 육씨
석전(石田)
학력 제8고등학교 (졸업)
도쿄제국대학 (경제학 / 학사)
약력 연희전문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교수
대한지리학회 부회장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서울대학교 신문연구소장
인구문제연구소장
금융통화위원
중앙경제심의회 위원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중앙통계위원회 위원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경제지리학자. 본관은 옥천(沃川), 호는 석전(石田).

육영수 여사의 사촌오빠이다.

2. 생애

1907년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제8고등학교(현, 나고야대학 교양부)를 거쳐 1933년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학부 졸업 후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도쿄제국대학 대학원 잠사경제연구실에서 연구하면서 경제학부 조수로 근무했으며, 인구문제에 관심을 갖고 경제지리를 전공하게 되었다.

1936년 조선으로 돌아와 평양사범학교 교유,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했으며, 1937년부터는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강사로 출강하여 지리학 교과 담임을 맡았다.

경성제대 이공학부 교수였던 김종원과 함께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발족한 조선지리학회(現 대한지리학회)의 초대 부회장에 선임되었고, 1946년에는 경성제대 예과 국대안에 따라 출범한 국립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전쟁 후인 1955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로 임명되어 문리대에 지리학과를 창설하려 했으나, 1958년에서야 설립에 성공하여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초대 학과장 류홍렬 사학과 교수 겸임) 최초의 전임교수[1] 및 초대 주임교수를 지냈다.

1960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경제지리)[2]이 되었다. 1963년에는 서울대학교에 설립된 신문연구소(現 언론정보학과의 전신)의 초대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1965년에는 인구문제연구소의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통계학 개론', '경제지리학', '한국과 세계' 등의 저서와 논문·단문을 엮은 '석전육지수교수 유고문집'이 있다.

1967년 6월 28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1] 육지수에 이어 두 번째로 지리학과 전임교수로 임명된 것은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1952~1958 미국에 유학하여 인문지리학과 응용지리학을 도입한 김경성(1918~1978) 교수.[2] 경제지리라서 그런지 지리학에 속하는 제3분과가 아닌 경제학, 경영학에 속하는 제6분과로 분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