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00:01:14

문국진(1925)

{{{#!wiki style="margin: -15px -10px -21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43%"
<tablebordercolor=#fff><tablewidth=100%><tablebgcolor=#fff> 파일:대한민국 학술원 휘장.svg}}}{{{#!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57%"<tablewidth=100%><tablebordercolor=#231f20><tablebgcolor=#231f20>대한민국학술원 회원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현재 회원
인문사회과학부 자연과학부
[분과별 학문 분야]
1분과: 철학, 윤리학, 논리학, 미학, 종교학, 교육학, 심리학
2분과: 어문학
3분과: 사학, 고고학, 민속학, 지리학, 문화인류학
4분과: 법학
5분과: 정치학, 행정학, 사회학
6분과: 경제학, 경영학
[분과별 학문 분야]
1분과: 수학, 물리학, 화학, 천문학, 대기과학
2분과: 생물학, 지질과학, 스포츠과학, 영양학, 가정학
3분과: 건축공학, 금속공학, 기계공학, 섬유공학, 자원공학, 전기공학, 전자공학, 정보공학, 조선공학, 토목공학, 항공공학
4분과: 의학, 치의학, 약학, 수의학
5분과: 농학, 임학, 축산학, 수산학
1분과 2분과 3분과 4분과 5분과 6분과 1분과 2분과 3분과 4분과 5분과
정진홍 조동일 차하순 고상룡 임희섭 이현재 안세희 이상만 박중현 이상섭 홍성각
차재호 홍재성 이기석 김남진 강신택 곽수일 노재식 김수진 김상용 문국진 이병일
이돈희 김학주 이기동 정동윤 안병준 정기준 박세희 이정우 노오현 김낙두 김현욱
소광희 이정민 김영한 박병호 김경동 김기영 권숙일 맹원재 윤덕용 김병수 황병국
윤사순 김수용 이성규 김상용 김용구 유장희 기우항 임번장 현병구 이순형 류순호
이한구 조주관 이태진 김효전 진덕규 이학용 김용해 장호완 나정웅 김영중 장동석
박종현 장경렬 한상복 임종률 백완기 이지순 이은 김상구 한송엽 고재승 이홍석
정찬섭 남기심 최병현 권오승 이정복 조장옥 조성호 정진하 최향순 신희섭 김윤수
진동섭 김인환 임돈희 최병조 김홍우 한인구 이호인 조완규 이장무회장 이영순 박승우
박용운 신동운 신용하 전병헌 김도한 이기화 이병기 이승규 최양도
김호동 김문현 임현진 박성현 안진흥 황규영 이종호 홍성윤
김영식 신명순 김진의 임정빈 유정열 박성회 김수일
고동환 최진호 박종욱 손장열 이명식 고희종
이형목 우경식 고규영 김용균
송진원 한재용
작고 회원
인문사회 분과 자연 분과
1분과 2분과 3분과 4분과 5분과 6분과 1분과 2분과 3분과 4분과 5분과
고형곤 권중휘 이병도 최태영 신기석 고승제 안동혁 손치무 이균상 한구동 정문기
안호상 이숭녕 김상기 유진오 이상백 최호진 김동일 강영선 원태상 윤일선 조백현
박종홍 이희승 신석호 고병국 신도성 신태환 이태규 정태현 최경열 이제구 현신규
김두헌 최현배 이선근 이근칠 민병태 유진순 전풍진 박동길 이종일 이종륜 우장춘
김기석 양주동 조의설 윤세창 김성희 조기준 최규남 김호직 이채호 박영진 김호식
김활란 이양하 김재원 이종극 고황경 김순식 권영대 이민재 최방진 이재춘 송재철
김계숙 이병기 류홍렬 김병노 김상협 김효록 최윤식 조복성 윤일중 이진기 이근태
이종우 김윤경 이홍직 이항녕 최문환 육지수 박철재 이병위 민한식 박호풍 박승만
이상은 손우성 홍이섭 박원선 정인흥 김준보 박하욱 김옥준 김기덕 김두종 심종섭
이인기 정인승 고병익 정광현 이만갑 이상구 조광화 최례석 최호영 이세규 지영인
김동화 조윤제 한우근 유기천 윤천주 권오익 이원철 김준민 김재근 김명선 이춘녕
김준섭 김형규 전해종 이한기 박동서 정수영 장기원 김창환 김종석 기용숙 박병희
오천석 차상원 이기백 이희봉 이용희 임원택 성좌경 김삼순 최형섭 한심석 윤상원
류승국 차주환 이광린 문홍주 김대환 박기혁 박정기 홍순우 김문상 우린근 이창구
이희철 여석기 김원용 서돈각 김운태 김옥근 박봉열 김봉균 신영기 나세진 김성원
서명원 조성식 김철준 손주찬 홍승직 오상락 최상업 윤석규 이량 이우주 이은웅
임한영 김동욱 이두현 남흥우 차기벽 정병휴 조순탁 주진순 장석윤 이문호 정후섭
최재희 정병욱 민석홍 황산덕 구영록 김동기 김치영 이대성 윤동석 김용관 강제원
김규영 강두식 이찬 김증한 박광순 이상수 정영호 한만춘 서병설 백운하
유형진 이기문 윤무병 김치선 조순 김정수 김훈수 강명순 이영소 김문협
백낙준 이능우 이우성 박일경 변형윤 최규원 이영록 윤장섭 권이혁 고재군
조요한 동완 황수영 김기두 윤기중 심정섭 김오중 오현위 이장락 최병희
김성태 장덕순 양병우 정영석 박을룡 김준호 최계근 김기홍 박영호
김태길 이가원 민영규 김현태 윤세원 하두봉 이승원 박수선 전세규
윤명로 김현창 김용섭 김정균 김태린 박희인 김재극 장신요 조재영
김종철 김용직 이성무 김홍규 박태원 정창희 우형주 이기영 오봉국
정양은 정명환 황적인 윤갑병 박상대 이택식 김주환
박영식 이경식 심헌섭 윤능민 황종흘 김용일
김충렬 김완진 김철수 이익춘 이만영 김정룡
조명한 장석진 김종원 송희성 조선휘 이호왕
오병남 이형국 고윤석 이리형
정범모 장세헌 이충웅
조대경 김상주
길희성
이성진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명예회원
시오노 히로시 빈센트 푸어 노요리 료지 피터 그루스 위르겐 코카
크리스티안 슈타르크 로거 비치 앨런 히거 난 린 허준이 }}}}}}}}}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문국진
文國鎭 | Moon Gook-jin
파일:문국진.jpg
<colbgcolor=#862633><colcolor=#d7c9b1> 출생 1925년 3월 9일 ([age(1925-03-09)]세)
평안남도 평양부
거주지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배우자 이복선
슬하 1남 2녀
학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 / 박사)[1]
콜럼비아퍼시픽대학교 (법학 / 박사)
현직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약력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교수, 교수
대한법의학회 회장

1. 개요2. 생애3. 저서 일람(법의학 분야)4. 여담5. 읽을거리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사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법의학자로서 법의학계의 태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 생애

원래 법대에 가고 싶었던 그는, 재학 중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관심을 갖게 된 낯선 학문인 후루하타 다네모토(古畑種基)의 법의학이란 분야에 꽂혀서 법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대학 졸업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들어가 법의관으로 활동했고, 그후 1970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2] 1976년에는 법의학의 불모지인 한국에 최초[3]의 법의학교실인 고려대학교 법의학교실을 설립하였다.

그 후 여러 곳에서 법의학 관련 강연을 하고, 법의학 관련 연재 활동을 활발히 했다. 1990년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에서 정년 퇴임하고 현재는 여러 저작을 통해 대중들에게 법의학을 알리고 있다. 우리나라 법의학을 홀로 개척하신 선구자, 많은 법의학 교수들이 이 분의 영향을 받아 법의학에 투신하게 되었다.[4]

장기려의 제자이다. 문국진이 법의학을 하겠다고 하니, 법의학은 학문도 아니라면서 화를 냈다고 한다.[5] 졸업과 동시에 운 좋게 국과수가 생겨 법의관이 되었으나, 동기와는 월급이 5배 차이가 났고[6], 경찰들의 태도와 새파란 젊은 검사가 검찰청으로 오라가라 하며 피의자를 취조하는 의자에 앉혀서 아랫사람 대하듯이 말하고 빨리 말을 안하면 호통을 쳤으며 이에 대해서 매우 언짢았다고 한다. 도와주는 사람한테 이게 무슨 태도냐고 항의하자 검사를 모욕하는거냐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왔다고 한다. 몇년간 부검의로 일하다가 도저히 못하겠어서 외과를 하려고 장기려 교수님을 찾아갔으나 이번에는 반대로 계속 부검의했으니 계속하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부검의를 계속하라고 하셨다.#

예술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데, <미술과 범죄>라든가 <그림으로 보는 신화와 의학>, <명화로 보는 사건>, <모차르트의 귀>, <바흐의 두개골을 열다> 등 서점에서 문국진의 책을 찾아보면 일반 법의학 책보다 미술사, 클래식 등 예술과 접목시킨 책이 더 많이 나온다(…)

2014년에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자녀인 문태영 박사는 국내 최초의 곤충법의학자로, 고신대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오대양 사건 당시 부검을 맡았다. 또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부검을 맡은 황적준 前 고려의대 교수가 문국진 교수의 제자이다.

3. 저서 일람(법의학 분야)

4. 여담

국내 최초로 사자명예훼손죄로 피소된 적이 있었다. 1967년 8월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1961년 있었던 황윤석 판사[8] 의문사 사건의 사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때 재판부의 확정결론이었던 "불상의 약물 과다투여로 사망"을 부정하고, "감기약흥분제를 같이 먹어 그 부작용으로 황 판사가 사망했다"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황 판사의 유족들로부터 고소당했기 때문이었다. 구속 기소되어 1심 재판을 받던 중, 많은 의학계 동료들의 구명활동과 유족과의 원만한 합의로 고소인인 유족들이 고소를 취하하면서 다행히 면소되어 풀려났다.
드라마 싸인의 연출과 각본에 참여한 장항준에게 연구원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범죄 예방에 기여한 감사의 의미를 담아 국과수의 이름으로 감사패와 상금을 전달했다. 이 때 감사패와 상금 모두 개인의 사비였다고한다.

5. 읽을거리



[1] 박사 학위 논문: 瀉血이 組織肥반細胞에 (Mast cell)에 미치는 影響에 關한 實驗的硏究(1965)[2]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재직 시절에도 고려대학교 병리학 외래 교수로 출강하곤 했다.[3] 사실 일제시대때 경성제국대학법의학교실이 있었으나 해방 후 미국의 제도를 본떠 의과대학 제도를 만들다 보니 법의학교실이 모두 없어졌고, 의대생들은 법의학 강의를 5시간 정도 공부한다. 부검은 의사 또는 병리과 교수에게 의뢰하는 구조가 되었다.[4]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윤성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재학 당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형이 문국진 고려대 교수의 법의학 강의를 듣고 왔던 것을 계기로 법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5]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없었고 지금보다도 상황이 훨씬 열악했다. 국내에 법의학 교실이 없어서 배울 곳도 없고, 법의학은 의과대학에서 5시간 정도 밖에 안가르쳤다. 제대로 배우려면 해외로 유학을 가야했다. 그야말로 법의학의 불모지라서 처음부터 개척해야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6]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공무원 월급으로 쌀한가마(80kg)살 수 있었다고 하니, 직장 다니며 겨우 밥만 먹고 사는 정도이다.[7] 이 제목은 시체에 칼을 대는 것을 두벌주검으로 보던 시절에, 한 피해자의 시신을 해부하려다 피해자의 할아버지가 문국진 교수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찍은 에피소드에서 따온 것. 여담으로 이 사건은 법의학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그리고 '죽을 뻔했디'는 오타가 아니고 정말 책 제목이 그렇다. 문국진 교수가 평양 출신이기 때문에 서북 방언을 쓰기 때문.[8]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로 부친인 황의돈은 역사학자로 황현의 7촌 조카이다. 즉, 황현의 8촌 조카이기도 하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30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30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