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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4:52:23

서북 방언

한국어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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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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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용 지역3. 특징
3.1. 음운
3.1.1. 자음소3.1.2. 모음소
3.2. 문법
3.2.1. 조사3.2.2. 어미
3.2.2.1. 상대 높임법
3.3. 어휘
4. 예시
4.1. 들어보기4.2. 읽어보기
5. 문화에서
5.1. 매체5.2. 서북 방언과 표준 방언
6. 관련 문서7. 참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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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이 동영상 출연자들은 모두 광의의 학술적인 서북 방언을 사용하던 고장에서 태어났다. 김동건 아나운서의 어머니의 말투, 김동길 교수가 언급하는 말투는 평안도에서 쓰이던 말투다.

서북 방언, (평안도 방언)[1], 관서 방언한반도의 서북부에서 사용되는 한국어의 방언이며, 한국어의 대방언[2] 중 하나다. 남한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유명하던 북한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쓰이던 말투다. 현재도 언어에 관심이 크지 않은 일반인은 북한말을 평안도 사투리 위주로 여기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심지어 함경도 사투리는 들으면 북한에서 쓰는 말이 아니고 조선족 만의 말투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북한이탈주민이나 조선족의 말투로 묘사되는 함경도 일대의 말투와 차이가 큰 말투다.

2. 사용 지역

서북 방언은 평양시, 남포시,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사리원 이북의 황해도 일대에서 사용된다.

학자마다 구획하는 기준에 따라 구획선의 차이가 있는데 주로 황해도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나뉜다. 황해도는 중부 방언과 방언연속체적인 특징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리원 이북 지역을 서북 방언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연백 이북으로 볼 경우 황해도의 대부분이 서북 방언으로 구획된다. '디, 티'의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은 지역을 기준으로 나누면 평안도의 행정구역과 얼추 비슷한 지역으로 나뉘게 된다.

3. 특징

현대의 서북 방언은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어의 영향을 받아 문화어에 동화되고 있다. 문화어는 대부분 서울 지역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다음은 전통적이며 일반적인 평안도 일대 서북 방언의 특징이다. 황해도의 방언은 황해 방언 문서를 참조할 수 있다.

3.1. 음운

3.1.1. 자음소

  1. /ㅈ, ㅊ, ㅉ/을 치경음으로 발음한다.
    ㅈ, ㅊ, ㅉ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아 치경음 [ts]/[dz], [tsʰ], [ts͈]으로 발음한다. 이는 17세기 이전의 경기 방언의 발음과 일치한다.
  2. /ㅅ, ㅈ, ㅊ, ㅉ/ 뒤에서 /ㅡ/가 /ㅣ/가 되는 전설모음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남한의 모든 지역은 /ㅅ, ㅈ, ㅊ, ㅉ/의 구개음화 후 /ㅡ/가 /ㅣ/가 되는 전설모음화를 겪었으나 서북 방언은 이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예) 승겁다(싱겁다), 슬건(실컷), 아츰(아침)
  3. 두음법칙이 일어나지 않는다.
    두음법칙은 구개음화로 인해 일어난 현상인데 구개음화가 없었던 서북 방언은 ㄴ 두음법칙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ㄹ 두음법칙은 일어난 정황이 보인다.
    예) 너름(여름), 닐굽(일곱), 누행(유행), 누월(6월), 넝감(영감)

3.1.2. 모음소

3.2. 문법

3.2.1. 조사

3.2.2. 어미

3.2.2.1. 상대 높임법
한국어 방언의 상대 높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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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0fff0> 남한 높임 낮춤
<rowcolor=#eeffee> 표준어 하십시오체 해요체 하오체 하게체 해체 해라체
<rowcolor=#f0fff0> 북한 높임 같음 낮춤
<rowcolor=#eeffee> 문화어 하십시오체 해요체 하오체 하게체 반말 해라체
<colcolor=#f5fff5> 동북 <colbgcolor=#eaeaea,#2d2f34> 육진 하압쇼체 하(오/우)체 하압게체 반말 해라체
동북 하압소(세)체
서북 서북 허라요체
하라요체
허우체
하우체
허시체
하시체
해체 허라체
하라체
중부 황해 허십시오체
하십시오체
해(요/유)체 허어체
하어체
해체 해라체
경기 <colbgcolor=#eaeaea,#2d2f34> 기본 허십시오체
하십시오체
-(이)ㅂ쇼 첨사**
해요체 허우체
하우체
허게체
하게체
남부 해(유/요)체
영서 기본 하십시오체 해요체 하(우/오)체 하게체
남부 해(유/요)체
영동 기본 해요체
북부 해(유/요)체
충청 기본 허십시오체 해유체 허게체
최서부 허시요체
동부 하십시오체 해(유/요)체 하게체
동남 동남 기본 하이소체 해(예/요)체 하소체 하게체 해체 해라체
북서부 해여체
해체
최남서부 해(예/요)체
허이(다/더)체
해체
북북부 하(이)소체 해(요/예)체 하오체
북동부 해(예/요)체
서남 서남 기본 허씨요체 -(이)라(우) 첨사 허소체 해체 해라체
북부 해요체
-(이)라(우) 첨사
최남동부 허이다체
최남서부 하씨요체 -(이)라(우) 첨사 하소체
최북동부 해(요/유)체
제주 제주 ᄒᆞᆸ서체 ᄒᆞ여마씀체
-예/양 첨사
(하오체 계열 어미)* ᄒᆞ여체 ᄒᆞ라체
* 사실상 사멸됨
** -(이)ㅂ쇼 첨사: 서울에서 하인이나 장사치가 쓰는 계층 방언
※ 각 방언의 고유한 어체만 표시
일반 문체 }}}}}}}}}

네이버 지식백과 통일부
허라요체/
하라요체
허시체/
하시체
해체허라체/
하라체
서술-(스)ㅂ네다, -(스)ㅂ무다, -(스)ㅂ데까, -(X)와요/소와요, -(으)우다/(X)웨다/수다/쉬다/쉐다, -어요-(스)ㅂ네, -(스)ㅂ데, -구레, -(X)웨/소웨-어, -디 등등-다/(느)ㄴ다
의문-(스)ㅂ네까, -(스)ㅂ데까, -(X)와요/소와요, -(으)나요, -어요-(스)ㅂ마, -(스)ㅂ데, -(X)와/소와, -(으)우, -(으)오/소-어, -디 등등-니, -네, -나/노, -(이)가, -너니, -언, -간
명령-(으)라요, -(으)시라요, -(으)시우-(으)시, -(으)시다나, -(으)우-어, -(으)라우-(으)라, -어라
청유-(으)ㅂ세다/(으)ㅂ수다, -자요 ? -어-자

서북 방언이 쓰이는 지역은 양반과 상인의 차별, 적자와 서자의 차별, 남녀의 존비가 희박하던 지역이라고 한다. 손위 사람에게는 '존대', 또래나 듣는 이가 항렬은 낮아도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평대'의 말을 쓰며, '하대'는 이것보다 낮춤의 의미를 갖는다. 그나마 남한에서 서북 방언과 유사한 방언을 쓰거나 광의의 서북 방언을 사용하던 백령도 지역에서 쓰이는 방언을 두고 상대가 '습니다'를 '시다'라고 말하는 식의 높임말을 쓰는 것은 정겨움의 표시이니 낮추어 본다고 여긴다는 오해를 하지 말아 달라는 경험담이 있다.

명령법 '-(으)라우'는 '-으라구'에서 ㄱ이 탈락한 형태이며 부드러운 표현이라고 한다. 한국 영화에서 흔히 '하라우!'처럼 거칠게 사용해서 강인한 느낌의 고정관념을 박아 놨지만 실은 아주 친근한 표현이라서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쓸 수 있다. '-(으)라요'는 '-(으)라우'에 '-요'가 결합한 후 줄어든 것으로 '-(으)라고요'라는 뜻을 지닌다.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나 북한 사회과학원의 방언 지도에서 평안도 방언으로 'ㅂ데까', 'ㅂ디까', 'ㅂ네까'가 등장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서북 방언은 '-네-, -데-'가 사용되는 정황이 뚜렷하다. 그러나 최근 평양 지역 출신 탈북민들에 의하면 '-(스)ㅂ네다, -(스)ㅂ네까'라는 말은 '북한에서 사용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문화어의 영향을 받아 사투리가 변화하였으며, 폐쇄적인 환경으로 인해 다른 지역들의 방언 실상을 알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ㅂ네까'는 평양, 평안남도에서 중장년층 내지 고령층은 쓰지만 젊은 세대는 안 쓴다는 증언이 있다.

최근 평양에서도 '-안(언)', '-(으)라' 같은 어미는 아직 쓰인다고 한다. '밥 먹었어?' 같은 말이 문화어에서 쓸 수 있는데도 잘 안 쓰이고 '밥 먹언?'을 쓴다는 정황이 있다. '총 줘'를 '총 달라[3]'라고도 하기도 하며 북한의 구어체를 다루는 북한 드라마에서도 쓰이기도 했다.

2023년 여맹위원회의 선전 자료에서도 북한의 표준어가 규정된 조선말대사전에 실리지 않은 어미가 쓰였는데 '그건 무슨 소리가?'의 '-가', '재간을 배우간.'의 '-ㄴ', '가서 했다대야지.'의 '-대-'이다. # 그러나 옛날 '덩거당에 갔드니 던기불이 번떡 번떡'이라는 식의 구개음화의 심한 미적용 같은 문화어와 차이가 심한 방언은 잘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3.3. 어휘

네이버 사전 평안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서북 방언 - 표준어 순

4. 예시

4.1. 들어보기


남자는 자강도 출신이고 평양에서 오래 거주했으며, 진행자인 김길선은 평양에서 오래 살았다. 김길선은 함경도 집안 출신이므로 문화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말투를 쓴다.


80년대 안주군 출신 실향민들의 읍민회 영상으로, 영상에서 '몰라보갔수다레', '요거이 우리 외동딸이외다~'등의 평안도 지방의 특징적인 표현과 억양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 동영상의 정유나가 과거 평안북도로 관리되던 자강도 출신이고, 아래 동영상에는 함경북도 출신의 방송원이었던 이연아가 출연하고 있다. 이연아는 자강도 출신이 아니지만 북한에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묘사하는 것이다. 정유나의 가족의 발언에서 한국(남한)에서 방언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알 수 있다.


새터민에게서 들어보는 평양말. '알간 모르간', '잇갓니'라는 말을 하는데 이들은 문화어가 아닌 평안도 사투리다. 문화어는 '-자요', '-(으)라요' 같은 어미를 빼고는 평안도말보다 서울말과 더 비슷하다.(북한의 경어법) 문화어에서는 '-느냐'가 줄어든 토가 '-ㄴ'이라고 설명되어 부분적으로 평안 방언을 반영하고 있기는 한데 저 영상에서의 '-느냐'와 대응되지 않을 수 있는 용례와 좀 다르다.


평양 지역어를 구사하는 탈북자. 서울말의 영향도 좀 있다지만 어휘와 억양에서도 서울말과 차이가 있는 말투를 구사한다. '그러지 말라'를 '기러지 말라'라고 말하고, '누가?'를 '누구래?'라고 하는 식이다. 자막 제작자가 동북 방언과 혼동하여 '이잖슴까'라는 자막을 사용하였으나 '이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2019년까지 평양에 거주하던 남성 탈북민이 북한학 연구 교수와 평양 언어 생활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자신이 '평양문화어'를 쓴다고 언급하지만 /ㅜ/와 /ㅡ/의 음성 구분이 모호하다든가, 반말 '-었어?'라는 말은 남한말처럼 생각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남자가 사용하는 말은 전통적인 평안도 말투에 비해서는 문화어의 영향을 받은 말투가 맞으며 진심으로 문화어를 사용하고자 하지만 방언이 섞여 나오는 모습이다. 저 위 '평양의 말투'를 언급하는 동영상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50년대에 자신의 동네에서 쓰던 '-(스)ㅂ네다'는 이제 없다고 여기고 북한 전 지역의 방언에 대해 대강 언급하기도 한다. 교수조차 함경도 방언과 이 남자의 방언이 차이가 심하다는 사실을 생소하게 여기는 모습이 보인다.

4.2. 읽어보기

좋다는 양주 얻어마셔 볼수록 우리 술이 낫다는 생각을 더욱 절감하디요. 내 4대조께서 페양(평양)외성에서 양조업으로 성공하셨고, 나도 광성고보 나오자 스물 둘에 가업을 물려받았으니께니 지금도 훈훈한 문배 냄새가 코에 배어있읍니다레. 일제 때에도 하루 10섬씩 빚었고 해방 직후엔 평천양조·대동양조 두 군데서 최고로 벌여도 봤디요.
1988년, 서울에 거주하던, 평양이 고향인 당시 73세의 이경찬이 평양 문배주에 대해 언급하는 인터뷰에서
뒤이어 누구의 입에선가, 누가 빈 틈을 냈어? 하는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저마다 거 누구야? 거 누구야? 하고 못마땅해 하는 말소리 속에 간난이 할아버지 턱 밑으로 디미는 얼굴이 있어,
“아즈반이웨다레.”[5]
하는 것은 동장네 절가였다.
그러자 저편 어둠 속에서 궁금한 듯 큰 동장의,
어떻게들 됐노?"
파투웨다”
- 황순원, '목넘이 마을의 개(1948)'에서
평안북도 시골의 일제강점기를 묘사한다. 서북간도 이사꾼의 길목이라고 하니 상당히 북쪽에 있는 마을로 보인다. 현재 북한이 '자강도'로 관리하는 곳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의 작가 황순원은 평안남도 출신 실향민이다.
오가왕에서 살았디오 머. 살아게지구, 나 여기 야들 살 데게지구(돼가지고), 여 오가왕에 왔거던요. 오가왕에 왔는데, 친척들두 없디. 해니깐(그러니까) 곤란했디오 머. 곤란해 게지구, 어, 머 친 친척들 있는 데 찾아와서두. 우리가 잘 쌀어야(살아야) 다 친척들두 좋아하디. 친척들두 우리가 못 쌀구 오니까니, 머 정말 보따리만 게구(가지고) 왔디요 머. 쩌 우리 남동생허구. 남동생 고거 네 살 라구(네 살 나서도), 나 야덜(여덟) 살 라서두, 아주 멀 몰랐디요 머. 기거 오가왕에서 살아게지구. 집은 또 얻어게구(얻어서), 살았지오 머. 긴데 우리 우리 아바지가 또 여기 와게지구 또 병중에 앓았다오(앓았어요). 병두 또 더러운 병이라오(병이라요). 그거 정신 좀 나빠게지구 그런 병 걸레 게지구(걸려 가지고) 고생 많앴시오(많았어요). 그링 거 그 병 걸레 게지구 또 머 정말 굿두 허구. 그런 그러케 해게지구 고테시오(고쳤어요), 우리 아바지. 고테 게지구(고쳐 가지고) 기 대맨(그 다음엔) 농업에 들어게지구(들어서) 농새 했디오 머 내내. 내가 열, 열 살 라서부턴 바배씨오(밥 했어요).
평안북도 의주 지역의 방언 #
보통 손전화(휴대전화)로 거래합니다. 이런 식이디요. “선화야! 오늘 저녁 야덟(여덟)시에 출발하는 차(기차)로 활동복이랑 정구(테니스)화랑 쏠(보낼)테니까 역전에 가서 잘 찾으라요. 그리고 금컵(북한 '금컵체육인식료공장'의 상표)에서 나온 과일향 단설기랑 딸기향 알껌이랑 회령 충성이네로 좀 보내달라요. 내가 그쪽에 줄 돈이 있는데 그렇게 처리하면 될끼야. 그럼 부탁하자요.” 손전화가 없으면 장사하기도 힘듭니다. 시장관리원도 챙겨야 해요. 장세(자릿세)는 북한돈으로 받는데 남새(채소) 매대는 500원이고 이문(이윤)이 많은 고기 매대는 2000원입니다. 전 1500원을 냈습니다. 전화비도 그렇지만 매대를 팔때는 중국돈으로, 사용비(자릿세)는 국돈(북한 돈)으로 냅니다. 국가에서 정한 거라 장사를 못 나오는 날도 내야 하니까, 몸이 아파도 쉬지를 못하지요. 그나마 요즘은 혜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내다 팔 수 있으니 그나마 좀 나아졌지요. 관리소에선 수리비를 받으러도 옵네다. 지붕에 금이 갔는지 비가 샌다고 장사치들에게 수리비를 조금씩 내라고 해요. 단속이요? 초코파이 단속이 심합네다. 한때는 그냥 먹고 살라고 봐줬는데, 요즘은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남쪽 물건들을 아야(아예) 철저히 단속합니다.
- 평안남도가 고향인, 혜산시의 시장을 묘사하는 탈북자의 말을 묘사한 중앙일보 기사. #

5. 문화에서

서북 방언 지역은 오랜 세월 동안 한국어가 사용되었지만 본격적인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선 말기부터다.

남북 분단 이전 평안도에서 유명한 문인들이 배출되었고, 서북 방언을 작품에 사용하는 작가가 많았다. 지금도 일부는 한국의 교과서에 실려 일반인이 서북 방언의 옛 형태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백석, 황순원, 김동인, 계용묵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백석은 평북 정주 지역의 방언을 아름답게 묘사하기로 유명한 시인이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문화어 보급정책을 펴면서 대중매체에서 방언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단지 언론 인터뷰나 연설 등에서 나오는 억양이나 이사 온 사람들이 쓰는 방언만을 통해 알 수 있다. 오히려 남한 매체에서 더 많이 묘사된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서북 방언으로 번역된 성경이 있었다.#성경은 진짜 예배 때 쓸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진지한 번역본이었다.[6] 원래 개신교 신자들은 수도권보다 평안도에 더 많았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도 여기서 발생했고, 새벽기도회도 여기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평양의 별명이 조선예루살렘이다.[7] 현재는 북한의 종교 탄압으로 인해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북한 지역을 토대로 두고 남한으로 옮겨온 개신교 미션스쿨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숭실대학교삼육대학교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서북 방언으로 번역된 성경예수셩경전서를 보관하는 곳도 숭실대학교 박물관이다.

과거에는 1세대 이북 출신 실향민에게서 평안도 사투리를 들어볼 수 있었다. 1960년대에는 한국의 홍종철 장관 같이 '살콰주(살려줘) 장관'이라며 매우 짙은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장관도 있었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남대문, 동대문 시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이 말투를 쓰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졌고 현대는 반 세기 넘는 세월간 중부 방언의 영향을 받은 사람만 남게 되었다. # 조선족이나 탈북민의 방언으로 접하기 쉬운 함경도 방언과 달리 평안도계 탈북민은 3000명 수준이기 때문에[8] 탈북민의 방언으로 접할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그나마 평안도계 탈북민 출신 방송인이나 유튜버가 일부 있어 이들의 방언으로 간간히 접할 수 있는 수준이다.

남한에서는 이 방언을 접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어 고령층은 "했수다레" 같은 말투도 "했습니다"를 강조한다는 뜻임을 알지만 젊은 세대는 거의 모른다. "합네다", "하라우", "기다(그렇다)", "내래(내가)"만 아는 경우가 많다.

최근까지 약간이라도 이 방언을 섞어쓰던 남한의 유명 인사로 야구 지도자로 유명한 김응용, 정치 활동으로 유명한 김동길이 남아 있다. 그나마 김응용의 사투리는 부산이나 전라도 등지의 말이 섞이고, 김동길도 생전에도 서울말에 평안도 억양이 섞인 말을 사용했다.

평안도 방언 연구자 한성우의 '문화어 수업'이라는 책에서 평양문화어 보급의 영향으로 '할아버지'와 같은 기본적인 어휘는 서울말과 비슷해지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스)ㅂ네다'라는 표현은 실제 발음을 '-(스)ㅂ네다'라고 하더라도 문화어 보급 정책의 영향으로 '-(스)ㅂ네다'를 글로 잘 쓰지 않아 이런 표현을 직접 보고 읽으면 생소하게 여기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평안도 출신이 아닌 함경도 출신 등의 증언이나 비교적 젊은 평안도 출신의 증언을 듣고 아예 남한에서 만들어낸 사투리라고 여기기도 하는데 앞서 언급했듯 폐쇄적인 북한의 환경에서 비롯된 오해로, 과거에는 진짜로 평안도 출신이 증언하던 사투리가 맞다.

2010년대부터는 아예 밀수된 한류 컨텐츠의 영향으로 평양에서 "자기야", "오빠야" 등을 몰래 쓴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5.1. 매체

한국에서는 흔히 '북한 사투리', '북한말'로 유명한 사투리다. 야인시대시라소니(평안북도 신의주 출신), 오데로 갔나(90년대의 노래), 강성범봉숭아학당에서 연기한 연변 총각의 방언이기도 하다. 실제로 1.4 후퇴 이후 많은 서북 지역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쉽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6.25 전쟁 휴전 이후 대한민국에서 발간한 반공 서적, 반공 동화, 반공 영화를 비롯한 반공매체 등 하여튼 북한인이 등장하는 미디어에서 열에 아홉이면 북한인들은(특히 조선로동당원, 조선인민군) 서북 방언+문화어를 쓰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심지어 북한 이외의 공산권(특히 소련) 사람을 표현할 때도 이의 영향으로 러시아인(공산당원, 소련군 등) 캐릭터가 서북 방언을 쓰는 것으로 묘사될 정도다.[9]

남한에서 연변 사투리를 흉내낼 때 흔히 '서북 방언'을 쓰는데 실제로 연변에 사는 사람들이 이를 보면 매우 어색해하면서 언짢아 한다. 연변은 대부분 동북 방언을 쓰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무작정 가장 유명한 사투리라고 생각하는 서북 방언을 사용해서 생기는 문제다. 영화 공조에서 평안도 사투리와 함경도 사투리가 동시에 등장했는데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배역의 대사는 저게 북한말이냐는 오해도 많았다.

21세기에는 조선족이 한국에 정착하고, 황해, 범죄도시, 개그우먼 이수지도 동북 방언을 강렬하게 묘사하여 '북한 출신은 다 -(으)라우, -(스)ㅂ네다만 쓴다'는 스테레오타입이 잦아들긴 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를 신경쓰지 않아서 서북 방언과 동북 방언을 똑같은 방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의 불시착표치수가 함경도 출신이지만 '후라이까디 말라우'처럼 평안도 사투리를 많이 섞어 쓰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매체에서 흔히 등장하는 '고조', '에미나이', '간나새끼', '저거이 뭐이가'[10] 같은 표현이 북한의 표준말이 아니라 평안도 지역의 사투리다. 사실, 북한이탈주민들이 말하길 한국의 방송에서 흔히 나오는 북한 사투리는 몇십년 전의 할아버지나 할머니 세대에서 많이 사용하는 사투리이고 2020년대에는 북한에서도 사투리가 조금씩 옅어지는 추세라고 한다.

강준식의 《적과 동지》에서는 이 지역(평안남도)에 연고를 둔 김일성안창호가 서북 방언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온다.

5.2. 서북 방언과 표준 방언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어는 과거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조선어표준어'[11]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여기에 일부 서북 방언의 요소를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즉, 문화어는 큰 골자를 서울말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북한 측은 문화어가 '평양말'을 기본 골자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다만 문화어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제정 당시부터 문화어는 평안도 사투리가 아니라고 김일성이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김일성은 '평양말'이 평안도 사투리가 아니라고 했다.

물론 현재 문화어의 규정은 평양말을 지향하여 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서울말을 기초로 하여 굳이 평양에 국한되지 않는 북한 여러 지역의 방언을 가미하여 수정한 것이라 평양말과 차이가 매우 크다. 예를 들면 문화어는 서북 방언의 종결어미를 4~5개 정도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서울의 방언을 쓴다. 이익섭 교수, 로버트 램지 교수는 문화어가 서울말에 깊게 기초했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남한의 젊은 세대들은 북한 당국의 설명이 와전된 주장을 듣고, 문화어가 평양 사투리라고 교육 받으며 별도의 설명을 듣지 못하기에 '원래부터 평양말이 서울말과 비슷했다.'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 서북 방언은 옛 자료와 현재 기록 등에서도 보이듯이 서울 방언과 매우 다르다. 오히려 문화어가 보급되어 방언이 많이 사라지고 점점 서울말과 비슷해지고 있다. 가령 "찔게"가 "반찬"으로 대체되고, "덩거당"이 "정거장", "내래"가 "내가"로 바뀌는 식으로 말이다. 반대의 오해로 평양말에 문화어가 기반하였기에 문화어가 상당히 서울말과 다르다는 오해도 있으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문화어 문서를 참고할 것.

6. 관련 문서

7. 참조 자료


[1] 언어적 특징으로 구분되는 서북 방언은 도 경계로 구분되는 평안도 방언을 포괄한다.[2] 한국어의 방언을 모든 학자가 반드시 여섯 가지 대방언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육진 방언의 독자성을 강조하여 일곱 가지로 구분하는 경우에도 이 구분이 사용되기도 한다. #[3] '달다'라는 동사로,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와 같은 말에 쓰인다.[4] 개신교에서 하느님을 '하나님'이라고 호칭하는데 이거 평안도 방언 맞다. 왜냐하면 이북 땅에 북괴 김일성이 집권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안도의 도시 지역은 개신교의 교세가 강력했기 때문이다. (농촌은 천도교세가 강했다) 당시 평양의 별명도 조선의 예루살렘이었을 정도다.[5] 아즈바니(아주버니)+웨다(-외다)+레(-그려)로 이루어진 문장이다. 문학계에서는 '아주버님이외다그려', '아주버님이시군요' 정도로 해석한다. 9급 공무원 시험 문제에 출제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는데 대부분 지역에서 '-(으)외다'라는 어미는 이미 사어화되었고, 소설이 쓰일 당시인 1940년대와 달리 분단으로 인해 북한의 방언에 대한 지식이 줄어 남한 젊은 세대에서 평안도의 '-레'같은 사투리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말투는 과거에는 대표적인 평안도 말투로 인식되었으나 현대에는 따로 국문학 및 방언학을 공부하지 않는 한 거의 아는 사람들이 없다.[6] 일본에도 간사이벤으로 번역된 성경이 있지만, 이 성경은 만담 같은 성격이다.[7] 주체교의 교주 김일성의 집안도 본래는 개신교 집안이었다. 어머니의 이름인 강반석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반석은 성경에 나오는 반석,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베드로'이다.[8] 이북 5도 체계에 따라 북한 정권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출신지가 평양, 남포, 자강도에 속하는(물론 이들 지역도 평안도 방언이 쓰이는 지역이다) 탈북민도 평안도계로 포함시키면 이 정도 숫자가 되고, 이들을 제외하면 약 2000명 정도이다.[9] 먼나라 이웃나라소련인이 등장할 때 대사가 이북 방언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다만 중국인은 한국의 중화권 묘사가 그렇듯 타 중화권과 별 차이 없이 ~해체로 퉁친다.[10] 사랑의 불시착 같은 드라마로 유명해졌다. 다만 이 드라마는 사투리가 좀 섞였다.[11] 제정 당시는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물론 '국어'라는 표현도 쓸 수 없었다. 당시의 '국어'는 일본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