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91919><colcolor=#fff> 이남이 Lee Nam-yi | |
성명 | 이남이 |
본명 | 이창남 (李昌南) |
출생 | 1948년 8월 3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
사망 | 2010년 1월 29일 (향년 61세) 강원도 춘천시 교동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
종교 | 불교 |
가족 | 아내 김옥희 장녀 이단비, 차녀 이이슬 |
학력 | 경희중학교 (졸업) 동대문상업고등학교 (졸업) |
데뷔 | 1974년 '신중현과 엽전들' |
[clearfix]
1. 개요
한국의 가수. 1974년 신중현과 엽전들의 베이시스트로 데뷔했다.왼쪽부터 이남이(베이스) - 신중현(기타, 보컬) - 권용남(드럼)
2. 활동 내역
신중현과 엽전들 활동 종료 후 1977년에 사랑과 평화를 결성하여 활동했으나, 대마초 관련 문제 등으로 이듬해 발매된 정규 1집 크레딧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한 끝에 그룹에서 탈퇴하였다.1988년에 사랑과 평화로 복귀하여 1981년 자신이 작곡한[1] 김세화의 '알 거야'를 리메이크한 울고 싶어라를 발표하며 인기 가수가 되었다.
당시 벙거지 모자를 쓰고 콧수염을 기른 이남이의 독특한 차림과 스테이지 매너는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그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 <울고 싶어라>(1989)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솔로 가수로 활동하였으며, 2000년 강원도 춘천시로 건너가 로컬밴드인 철가방 프로젝트를 결성하고 소설가 이외수와 지역문화 활동에 참여했다. 이외수와의 관계가 어찌나 각별했던지, 그가 세상을 뜰 때 이외수는 동생을 잃어버린 느낌이라며 꽤나 침통한 심정을 남겼다. 그로부터 12년 뒤 이외수도 별세하였다.
1989년에는 MC 황인용과 같이 MBC 토크쇼 '세상사는 이야기'의 진행자가 되었다. 2009년 폐암 판정을 받게 되어서 건강 악화로 요양하다가 2010년 1월 29일, 향년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3. 여담
- 독특한 외모나 창법 때문인지 '괴짜 가수'로 불리기도 했다. 이남이가 솔로가수로 인기를 얻었을 무렵인 1990년 전후로 해서 김흥국이 무명생활을 끝내며 호랑나비로 크게 뜨기도 했고 송골매의 '모여라' 가 꽤나 개성있고 독특한 노래로 어린층들에게도 인기를 얻으며 좀 독특한 생김새에 콧수염을 길렀다는 공통점을 가진 저 세 사람을 엮어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그 시절에는 콧수염 기른 가수들은 좀 독특하고 재미있다는 식의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었다. 지금 보면 좀 의외일지는 몰라도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저 세 사람의 이미지가 꽤 비슷했다.
- 1991년에 솔로 3집 앨범까지 발표한 후, 활동을 중단하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백담사에 들어가서 살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에 괴팍하기로 소문난 중광 스님 밑에서 10년 가까이 도를 닦기도 했다고...
- 절에서 내려와 춘천에서 살 때는 지역 세차장에서 일하거나 중국집 짜장면을 배달하는 친구들을 모아, 밤에 음악 공부를 시켰다. 음악을 배달한다는 의미로 '철가방 프로젝트'라는 로컬밴드를 만들고, 춘천의 인디 뮤지션들과 콜라보 공연 활동도 했다. 이 때 노래의 가사를 이외수가 썼다. 상세는 항목 참조.
- 2002년 폐암으로 사망한 코미디언 이주일에 이은 금연 권장가로 병세를 앓은 후로 병문안을 온 지인들에게도 담배를 끊으라고 권장했다. 실제로 한때는 담배를 자주 피웠던 애연가였다고 한다.
- 생전에는 안경에 콧수염을 길렀던 가수로 회자되었던 인물이다.
- TV 손자병법에서 딱 1번 좀 비중있게 나왔다. 극중 회사원인 장비 역 김희라가 어찌 상사들이 당시 인기좋은 울고 싶어라를 어찌 듣네 뭐네 잘못 듣고 이남이를 불러오게 하는 거였다. 여럿 고생하게 하여 이남이를 불러와 노래부르게 하지만 상사들 반응은 심드렁하고 돈쓰고 시간들여 고생만 하던 장비는 마지막에 우는 얼굴을 하며 울고 싶어라가 나오면서 에피소드가 끝났다.
- 이남이의 장녀 이단비도 싱어송라이터이다. 상술한 철가방 프로젝트를 거친뒤 춘천 로컬 인디 밴드 '아이보리 코스트'의 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2007년에는 콘서트 7080 신년 방송에서 두 부녀가 함께 '울고 싶어라'를 불렀다.
- 2012년 밴드 부활 13집 앨범에서 이남이가 작곡한 ‘Color of merging’을 장녀 이단비가 불렀다.[2]
[1] 당시 음반 재킷에는 지명길 작사, 이낙천 작곡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낙천은 어른의 사정으로 본명을 사용할 수 없었을 이남이의 예명 혹은 가명으로 추정된다. 이남이는 사랑과 평화 활동 끝무렵쯤부터 이남이라는 예명을 사용했고, 그 이전에는 본명인 이창남으로 활동했다.[2] 싱어송라이터 이단비 첫 디지털 싱글앨범 '단비에 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