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이직문(李直文), 이연호(李然晧, 李然浩) |
호 | 청남(晴南), 산은(汕隱) |
출생 | 1897년[1] 6월 10일 |
경상북도 대구군 서상면 서내동 (現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1가) | |
사망 | 1947년 10월 27일 (향년 50세) |
경상북도 대구부 동부출장소 만촌동 자택 (現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 |
본관 | 경주 이씨[2] |
서훈 |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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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상세
호는 청남(晴南), 산은(汕隱)이다. 1897년 대구부 서문로1가 12번지에서 태어났으며 항일 저항시인 이상화, 교수 겸 체육행정가 이상백의 형이다. 부인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인 권기옥이며, 1928년에 결혼했다.[3]3. 활동 내역
3.1.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으로써의 삶
큰 동생 이상화가 문학을 통해 항일 투쟁을 했다면, 이상정은 중국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했다.1923년 만주로 망명했으며 북만주에서 약 2년 간 민족교육을 통한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 원래 군벌 펑위샹의 서북군벌 군대에서 복무하였으나 장제스의 북벌 이후 국민혁명군 소속이 되었다. 이후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국민당 정부의 초청으로 충칭 육군참모학교의 교관을 지내고 항일전쟁에 참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경상도 대표였으며, 1940년에는 한국광복군 창설에도 관여했다. 광복군에 대한 국부군의 통제 조항인 9개 준승을 폐지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신한민주당 창당에도 참여하였다.
국부군에서의 최종 계급은 중장이다. 8.15 광복이 되자 일본군 북지나방면군의 항복을 접수하고 해산하는 업무에 종사했다가 도쿄의 중국 점령군 사령부로 발령받았다. 그러나 그는 제안을 거절하고 전역하였으며, 한국 교민 보호를 위해 잠시 상하이에 머무르다 1947년에 모친상으로 귀국했다.
3.2. 예술가로써의 삶
동생 이상화처럼 그 역시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대표적인 현대 시조 작가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그는 최초의 국내 서양화가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미술 연구회인 벽동사(碧瞳社) 설립하여 대구 지역에 서양미술을 전파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1921년에는 개인전을, 1923년에는 단체전에 참가해 명성을 얻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미술작품들은 현존하지 않는다.3.3. 사망
귀국한 후 40여 일만인 그 해 10월 27일에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뇌일혈이었다.4. 저서
- 표박기(飄迫記)
유고집으로, 청구출판사에서 <중국유기(中國遊記)>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중국에서 망명하던 33년간 지은 시조들과 산문들을 한데 엮었다. 비단 독립운동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동시에 20세기 초반 군벌 시대 중국의 모습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도 꼽힌다.
1936년 동생인 민족시인 이상화가 중국에 방문하여 받아왔으며, 이후 김봉기가 넘겨받아 가지고 있다가 이상정 사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50년에 출판했다. 1936년까지의 기록이므로 중일전쟁 동안 이상정 본인이 남긴 기록은 안타깝게도 남아있지 않다. 이 시기 그의 행적은 지인들의 추도사와 추도문을 통해서만 단편적으로 파악 가능하다.
중국유기는 이상정 사후 76년이 지난 2023년에 원제 그대로 민속원 출판사에서 재간되었다.
5. 가족 관계
- 이상화(1901~1943): 이상정의 둘째 아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등 여러 편의 시를 집필한 시인.
- 이상백(1904~1966): 이상정의 셋째 아우.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체육인, 사학자.
- 이상오(李相旿, 1905~1969): 이상정의 넷째 아우. 수렵가이자 저술가.
- 한문이(韓文伊, 1895~1941): 이상정의 첫째 부인.
- 권기옥(1901~1988): 이상정의 둘째 부인.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독립운동가.
- 이숙희(李淑熙, 1914.1~1914.12): 이상정과 한문이의 첫째 딸.
- 이중희(李重熙, 1918~1995): 이상정과 한문이의 맏아들. 영남대 교수 재직.
- 이선희(李善熙. 1916~?): 이상정과 한문이의 둘째 딸. 포항에서 양조장을 하는 배씨 집안으로 시집갔다고 한다.
[1] 이상정의 생년에 대해 1894년#, 1896년, 1897년, 1898년 등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학계에서는 대체로 경주 이씨 족보에 기재된 1897년 생을 정설로 본다.[2] 39세 상(相) 항렬.[3] 조혼한 첫 부인 한문이가 따로 있다. 권기옥과는 사실상 중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