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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의 주연 5부작 영화는 틀:이소룡 주연 장편 작품 참고 |
1. 개요
이소룡에 대한 여담을 정리한 문서.2. 기타
- 국내, 해외에서 이소룡의 하이라이트 모음집에 빠지지 않고 꼭 나오는 쌍절곤 탁구 영상은 사실이 아니며 영상 속 쌍절곤을 휘두르는 사람 역시 실제 이소룡이 아니며 광고다. 이에 대해 신동엽의 있다 없다에서도 실험을 한 결과, 탁구공이 쌍절곤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죄다 찌그러졌기 때문에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
- 어느 기자가 최영의에게 '당신과 이소룡 중 누가 더 강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살기를 뿜으며, "지금 날 영화배우랑 비교하는 겁니까?"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최영의가 이소룡과의 비교를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것은 국내 출간된 가라테 교범에 있는 이야기다. 혹은 "이소룡은 체중을 더 불려야 한다"는 간단한 말로 대답했다는 얘기도 있다.[1] 물론 어느 쪽이든 진위 여부는 불명이다.
- 인재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척 노리스, 양사등의 여러 무술인들을 모아다가 자신의 영화에 배우로 캐스팅했으며 심지어는 당시 보조출연자였던 성룡을 제대로 된 배우로 키워주려 하기도 했다.
- 상술(上述)한 대로, 《사망유희》는 이소룡이 촬영하다 중단되었기 때문에, 대역이나 뱅크필름을 이용하여 짜깁기처럼 만들어진 영화. 그 때문에 편집에 시간이 많이 걸려 짝퉁영화인 《신사망유희》가 오리지널보다 먼저 개봉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 인터넷에 이소룡 어록이라 하여 이소룡이 한 말들이라며 돌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나는 절대로 내가 천하제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제2인자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를 보면 다소 호전적인 성격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싸울 때는 적극적인 공격을 권장하는 동시에, 평상시에는 성격을 다스려야 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 유명해지기 전 아역이나 단역으로 다수 출연했다. 그 시절 이소룡의 가장 유명한 역은 전술한 《그린 호넷》의 가토 역. 이 《그린 호넷》에서 꽤나 인기를 끌었다며, 간혹 그를 아메리칸 드림으로 엮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미국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홍콩으로 돌아와 대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미국으로 쫓겨나듯 후다닥 가서 접시닦이부터 시작해 별별 일을 다 해가면서 살다가, 아내인 린다와 만나 결혼할 당시, 아내의 안경이 깨졌을 때도 고칠 돈조차 없어 아내가 깨진 안경을 쓴 채로 지내야 했다. 참다못해 어느 정도 알던 사이인 재미교포 태권도 사범 이준구에게 부탁해 돈을 빌리기도 했다. 이준구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밥을 얻어먹으러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 이렇듯 이소룡이 미국에서 크게 이름을 알렸고, 그를 알아본 홍콩영화계가 지인들을 동원해 돌아오라고 계속 설득했다는 일부 주장은 사실무근이다. 《용쟁호투》는 이소룡을 할리우드에서도 크게 대접한 증거라는 반박도 있지만, 단적인 예로, 85만 달러라는 제작비[2]만 봐도, 저예산 영화로서, 결코 제작사가 야심차게 투자한 영화는 아니었다. 다만 예상을 아득히 초월한 대성공을 거두었으므로, 이소룡이 살아있었다면, 영화사가 후속편을 제작했을 가능성은 높다.
- 영화상에서 척 노리스를 이긴 유일한 남자이다. 무술대회에 구경 간 이소룡이 척 노리스와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 척 노리스의 몸놀림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한 이소룡이 이후 《맹룡과강》에 직접 캐스팅했다고 한다. 실제 척 노리스가 영화계에 기웃댄 건 이전부터였지만, 이 영화에서 호평을 받은 척 노리스는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들게 되었다고도 한다. 원래 이 배역은 조 루이스를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이소룡과 조 루이스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척 노리스가 대신 들어왔다고도 한다. 척 노리스는 "자네, 세계 챔피언을 이기고 싶은 모양이야."라고 농담을 건네자 이소룡은 "아니, 세계 챔피언을 죽이고 싶어."라고 받아쳤다.
- 이소룡이 유명해지기 이전에도, 청도관, 무덕관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태권도 유파들 대부분에는 앞후려차기(이소룡 식으로는 스윕 킥 Sweep Kick)→앞돌려차기(훅 킥 Hook Kick)→뒤돌려차기(스피닝 훅 킥 Spinning Hook Kick) 같은 식으로 연속하는 발차기가 있었다. 이를 이소룡이 도입해 《당산대형》에서 활용했는데, 이런 발차기를 처음 보고 놀란 당시 홍콩의 관객들이 붙인 이름이 이삼각(李三脚)이었다. 이 TV 시리즈에서는 이런 이삼각을 무슨 무협영화스러운 기술로 묘사했다. 예비동작이 없는 낮고 빠른 앞차기에 가까운 무영각(無影脚)이 이연걸의 《황비홍》에서 공중을 날아가며 여러 번 차는 발차기로 과장된 것과 비슷하다.
- 그의 생애를 다룬 《드래곤: 브루스 리 스토리》도 있는데, 저주설을 중심에 집어넣은, 수준 이하의 영화에 가깝다. 다만 숱하게 쏟아진 이소룡 관련 전기 영화들 중에는 그나마 이 작품이 제일 완성도가 높다. 2010년에 또 이소룡의 삶을 다룬 영화가 나왔는데, 《드래곤》의 경우는 볼만한 영화였다는 평도 일부 있었지만, 이번 작은 좀 별로라는 듯. 2011년엔 그의 일대기를 드라마화한 《이소룡의 전설》[3]이라는 TV 시리즈도 나왔다. 《소림축구》의 골키퍼 진국곤이 이소룡 역할을 맡았다. 이 TV 시리즈에서 눈에 띄는 건 이삼각(李三脚)이다.
- 상술했듯, 이소룡의 소꿉친구인 소기린 주연의 《기린장(麒麟掌, Fist of Unicorn)》에서, 이소룡이 무술 연기를 도운 적 있는데, 멋대로 감독이 그 장면을 촬영하여 영화에 삽입했다. 이소룡 측의 소송제기로 개봉판에선 삭제했으나, 이소룡이 죽은 후, 그 잘린 장면도 빛을 봤다고. 이런 식으로 필름에 이소룡의 얼굴만 찍혀 있으면, 마구잡이로 여기 저기 영화에 무단 삽입하는 일이 홍콩에선 자주 있었다
- 성룡은 이소룡이 발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기(上記)했듯, 《정무문》에서 이소룡의 발차기에 날아가는 스즈키 관장의 대역을 성룡이 했다. 《용쟁호투》에서는 한의 경비원 중 한 명으로 나왔다. 성룡은 맨 마지막으로 이소룡에게 공격을 당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촬영 전에 맞춘 합이 어긋나, 실제로 이소룡이 성룡을 호되게 때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이소룡은 성룡에게 굉장히 미안해하며, 《용쟁호투》를 촬영하는 틈틈이 성룡을 여기저기에 출연시켜줬다. 그리고 이소룡은 성룡에게 《용쟁호투》 후속작에서는 자신과 공동 주연을 시켜주겠다고까지 약속했다고 하나, 《용쟁호투》를 촬영하면서 이소룡이 사망하는 바람에 이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성룡의 무술솜씨를 눈여겨보았던 라유 감독이 《신 정무문》에 그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등 제 2의 이소룡으로 키우려는 시도를 거듭했다. 하지만 그리 성공하지는 못했고, 결국 대성공을 거둔 《취권》 이후로 이소룡과는 다른 길을 갔지만, 성룡은 이소룡의 공백을 너끈히 메울 정도로 대성공했다.
- 훗날 성룡은 이소룡이 너무 많이 도와줘서 자신의 평생 가장 큰 은인이라고 말했다. 이견(異見)도 있다. 이소룡 전성기 시절의 그를 알던 이들이 이소룡에 대해 방송매체 앞에서 하는 증언과, 개인적으로 그들끼리 하는 얘기가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걸 취재한 홍콩 신문 등을 통해 몇 번 논란이 된 적도 있긴 했다.
- 위에 언급한데로 성룡을 많이 챙겨주기도 했지만, 실제 칠소복 멤버들 중 이소룡의 최측근이나 다름없던 인물들은 홍금보와 임정영이다. 이소룡은 홍금보 특유의 체구에서 나오는 대단한 무술실력과 무술감독으로서의 자질을 일찍이 알아차리며 항상 그와 함께 작업하기를 원했고, 임정영은 스턴트부터 단역배우까지 이소룡의 작품에서 꾸준히 활동하여 매우 친분있는 사이였다. 훗날 이소룡 사후 홍금보와 임정영은 이소룡의 장례식장을 끝까지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4]
- 성룡이 볼링을 치러 쇼핑센터에 방문했는데 우연찮게 이소룡과 만나 같이 갔다고 한다. 슈퍼스타인 이소룡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었고 당시 무명배우였던 성룡이 그들을 제지 했다고 한다. 성룡은 이소룡에게 같이 볼링을 치겠냐고 물어봤지만 그냥 지켜 보겠다며 앉아있었고 자신한테 할말이 있는 듯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고 한다. 그 이후 얼마 안지나서 이소룡이 사망한 소식을 들었다며 무릎팍도사에서 밝힌바 있다.#
- 《킬 빌》을 "백인들에 대한 이소룡의 복수"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우선 주인공인 우마 서먼이 입은 이소룡 복장은, 생전에 이소룡 본인이 원해서 입은 것인데 비해, 1부에서 나온 적들의 의상은 이소룡이 백인의 부하인 케이토(Kato, 카토오, 가토) 역을 맡았을 때의 복장이며, 최종보스인 빌은 이소룡이 주연으로 나오려던 자리를 빼앗은 셈이 된 데이빗 캐러딘이다. 결국 킬 빌에서 이소룡의 복장을 입고 그의 철학을 이은 키도가, 백인들이 이소룡에게 뒤집어씌운 이미지(케이토)와 이소룡의 자리를 빼앗아 간 백인(빌)을 죽이는 셈이니, 졸지에 타란티노가 이소룡의 복수를 대신 해준 셈이 되었다는 것. 1970~80년대 홍콩 시네마키드였던 타란티노의 마니아 기질이 발휘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타란티노 감독은 훗날 2019년에 공개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이소룡을 오만하고 희화화된 인물상으로 묘사해 논란이 되었다. 타란티노 감독의 이소룡 묘사를 비판한 사람 중에는 이소룡의 친딸 섀넌 리, 이소룡 평전을 집필한 매튜 폴리 등 이소룡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들도 있어 가볍게 넘기기 어려울 듯 하다. 거기에 타란티노 감독은 이소룡의 묘사에 대해 자신이 찾은 바에 따르면 이소룡은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오만하게 발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답변해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스포일러]
- 영국계 혼혈이라 홍콩에선 영춘권을 배울 때 불이익을 당했고, 미국에선 황화론이 여전했기에 TV/영화계에서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아픔 때문에 인종차별에 대해 상당히 민감했고, 인종을 가리지 않고 교류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비(非)중국인에게 무술을 가르치지 말라는 중국 무술계와 갈등이 있었다. 물론 결과는 상술(上述)한 대로…
- 포스트 아포칼립스 무술 영화 각본을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하나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 EA의 PS4용 타이틀 UFC 2014에서 이소룡이 등장한다.소개 영상 그것도 DLC가 아닌 ULC로. 언락 조건은 예판 특전으로 언락하거나 커리어모드(난이도 프로 이상)을 클리어하면 추가된다. 사용 가능한 체급은 플라이급, 밴텀급, 페더급, 라이트급.
- 한국에서는 외화 더빙에서 배한성이 많이 담당했으나, SBS에서 1998년 설날 특집 '이소룡 걸작선' 시리즈로 더빙한 《맹룡과강》, 《당산대형》, 《사망유희》에서는 박기량이, 2013년과 2014년 추석에 KBS에서 명절 특집으로 방영된 《정무문》과 《맹룡과강》 더빙판에서는 양석정이 이소룡 목소리 연기를 했다. 배한성과 박기량, 그리고 양석정. 셋 다 베테랑 성우답게 외화 더빙에서 이소룡 연기들을 잘했지만, 이소룡 본래의 목소리를 살린 건 배한성이라는 평가가 더 많다.
- 홍콩 샤틴의 홍콩문화박물관에서 2018년까지 이소룡 관련 전시회를 열었다.
- 중화권 배우 진국곤이 이소룡과 닮은 걸로 유명하다. 애초에 연예인 데뷔도 소림축구 촬영 때 본업인 안무가로 참여했는데 감독 및 주연인 주성치가 이소룡과 너무 똑닮은 그를 보고 즉석에서 골키퍼 캐릭터를 만들어 줘서 가능했었다. 이소룡의 아내 린다 리도 진국곤을 실제로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배우 본인도 이소룡 관련 영화나 드라마[6]에서 이소룡으로 분했다. 이후에도 진국곤은 계속 이소룡 전문 배우로 출연하고 있다.
- 크라잉 넛이 나온 단편 영화명이자 OST인 <이소룡을 찾아라!>는 해당 인물에서 영감을 얻었다.
- 2020년 발매된 NCT 127의 정규 2집 앨범 NCT #127 Neo Zone의 타이틀곡 <영웅 (英雄; Kick It)>에서 Bruce Lee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부분이 있다.
이소룡의 직계후손에 해당되는 렌 키슬러(2003 ~ )이다. 이소룡의 아들 브랜든 리는 대가 단절되었지만 딸인 섀넌 리는 렌 키슬러를 낳았다. 즉 이소룡의 외손녀이다.
- 놓지마 정신줄(드라마)에서 정신이 좋아하는 배우로서 언급된다. 작중 정신이 입고 있는 옷도 이소룡 탄생 50주년 기념 한정판이라고 한다.
- 케이스티파이에서 2020년 12월 17일 공식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 이소룡과의 협업 컬렉션을 출시했다. 관련 기사
- 마이크 타이슨의 발언[8]과 중국 무술가들의 망신 영상의 영향으로 고인드립까지 당하고 있다. 그러나, 상술했듯이 이소룡은 중국 전통무술만 고집한 사람도 아니고[9], 엄연히 세계 여러 나라의 무술을 접목해서 자신만의 무술을 갈고 닦아왔던지라, 고인드립을 당해야될 입장이 절대 아니다. 요컨대, 급격하게 화제가 되는 쉬샤오둥같은 현대 무술가와의 대련에서 전통 무술가들이 패하는 영상을 생각해보면, 이소룡은 쉬샤오둥의 입장에 서있었을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도 종합 격투기계에서는 이소룡을 선구자 중 한명으로 보는 반면 중국 전통 무술계에서는 이소룡을 일종의 사파로 보는 경향을 봐도 알 수 있다.
-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을 관람하다가 동양인 희화화 장면이 나오자 보다가 빡쳐서 나갔다고 한다.
- 그의 형인 이충침은 펜싱 선수로 활동하다가 기상학자가 되었으며 그의 동생인 이진휘는 배우 겸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조카 중 한 명이 대학 교수로 활동 중이다.
- 의외의 일이지만 폴란스키가의 살인사건에 연루되었었다.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인 샤론 테이트의 무술 과외선생이 다름아닌 이소룡이었으며 샤론 테이트는 액션 연기를 실감나게 하기 위해서 당대의 권법가인 이소룡을 과외 선생으로 고용했다. 그런데 수전 앳킨스 등 찰스 맨슨의 부하들이 로만 폴란스키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샤론 테이트와 내빈 및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소룡이 아주 잠깐이지만 용의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진범이 금방 잡혀서 이 오해는 해소되었다. 이소룡이 싸움을 엄청나게 잘했기 때문에 혼자 여러 명을 죽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서 의심을 받은 것이다.
[1] 그의 아들 3형제가 쓴 평전 《This is 최배달》에 이 내용이 나온다.[2] 1973년 제작 인기작들의 제작비: 《007 Live and Let Die》(700만 달러), 《빠삐용》(1,200만 달러), 《스팅》(550만 달러), 《로빈 훗》(1,500만 달러)[3] 한국에서는 이소룡전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고 SBS를 통해 2009년 5월 24일부터 12월 13일까지 매주 일요일 밤 12시 20분에 더빙 방영했었다.[4] 그리고 임정영도 1997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살아생전에도 말술의 대가여서 이소룡이 농담삼아 '너 그러다가 술병나서 죽는다.'라고 말했는데 그말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스포일러] 생전의 이소룡이 하지도 않은 무하마드 알리를 폄하하는 발언,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클리프 부스에게 3번 겨루어 2대 1로 패해 조롱당하는 초기 버전 등 이소룡을 아는 사람들에게 민감한 소재였다는 의견이 많다. 그나마 브래드 피트 등이 타란티노 감독을 설득해 3라운드에서 결판이 나는 것을 폐기했고, 이소룡이 패하고 조롱당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6] 李小龍傳奇(The Legend of Bruce Lee, 2008) 이소룡 서거 35주년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해서 만든 TV시리즈물로,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지원했다.[7] 영화 내용과 달리 엽문은 미국에 가본적도 없고 이소룡이 외국인들에게 영춘권을 가르치는 것 또한 반대했었다고 한다.[8] "이소룡은 훌륭한 격투가이지만 나와는 체급이 다르다"면서 자신이 이소룡을 이긴다고 간접적으로 말하였다. 이때문에 중국 내에서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9] 상술했듯이 중국무술이 다른 나라의 무술보다 우월하다는 발언을 하긴 했지만, 스스로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있던 터라서 내셔널리즘적인 입장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이고, 분명히 그럼에도 타 무술과의 꾸준한 교류를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