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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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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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궁 제12대 궁주 | |
<colbgcolor=#043762><colcolor=#fff> 제3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 이수길 李壽吉 | |
황실명 | <colbgcolor=#fff,#1f2023>이주 (李鑄) |
보명 | 이해창(李海昶)[1] |
호적명 | 이해일 |
본관 | 전주 |
출생 | 1917년 2월 13일 |
경기도 경성부 사동궁 | |
사망 | 1982년 12월 10일 (향년 65세) |
양부 | 이인용 |
양모 | 조중인 |
생부 | 의친왕 |
생모 | 수인당 김흥인(修仁堂 金興仁)[2] |
배우자 | 하시구치 치에코, 김신덕 |
자녀 | 장녀 이순주, 차녀 이영주, 장남 이한주, 차남 이범주, 삼남 이호 |
경력 | 대궁 봉사손(1950~1982)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1961)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이사장(1971~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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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공무원.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5남이며 인평대군 종가의 봉사손이다.2. 생애
1917년 2월 13일에 태어났다. 생모는 수인당 김흥인이며 친형제로는 이우, 이곤이 있다.1937년 7월 24일에 이재극의 장남이자 생가로 11촌 숙부뻘인 인평대군파 종손 이인용의 양자로 입적했다.
일본 도쿄대학 농과대학을 다니다 중퇴했다. 광복 이후에는 구황실사무국 총무과장을 거쳐 잠시 주일대표부 서기관으로 일했다. 귀국 후 인화무역주식회사 고문으로 있다가 1961년 1월부터 7월까지 구황실재산사무총국 국장(현 문화재청장)직을 역임했다.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 직을 맡았다. 박정희 정권기에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칠궁에서 살았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때 강제로 쫓겨났고, 그 충격으로 1982년 12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3. 여담
- 영친왕이 1963년에 귀국할 때 많은 역할을 했다. 영친왕은 어릴 적 일본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광복 후에도 돌아오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 친할아버지인 고종과 다르게 키가 175~180cm로 당시 시대기준으론 장신에 속했다.[4]
4. 가족
- 전처 하시구치 치에코(橋口千枝子, 1919년 10월 2일 ~ 1954년 12월 21일)[5]
- 장녀 이순주(李淳柱, 1939년 1월 4일생)
- 차녀 이영주(李泠柱, 1941년 1월 30일생)
- 장남 이한주(李漢柱, 1943년 12월 18일 ~ 2011년 5월 25일)
- 차남 이범주(李范柱, 1947년 7월 30일 ~ 1969년 11월 14일)
- 후처 김신덕(金信德, 1923년 2월 24일생)[6]
- 삼처 이영옥(李榮玉, 1934년 7월 3일생)[7]
이수길은 한일혼혈로 알려진 하시구치 치에코(橋口千枝子)와 연애결혼해 이한주와 이범주 등 두 아들과 이순주, 이영주 등 두 딸을 두었는데, 치에코는 차남 이범주를 출산할 때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1년 뒤 후처 김신덕과 재혼하였다.[9] 이한주는 2011년 67세의 나이에 외가가 있는 도쿄에서 사망했고, 장남 이덕이 대궁 사손 지위를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