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7px -10px" {{{#!wiki style="margin:-6px 0px; display:inline-table" | <tablebordercolor=#15832d> | }}} {{{#!wiki style="margin: -5px -2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15832d> | }}}}}} |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81818,#e5e5e5 | |||||
초대 강원채 | 2대 김판규 | 3대 유학성 | 4대 전성각 | 5대 김종구 | |
6대 나동원 | 7대 이광로 | 8대 김상언 | 대리 김영규 | 9대 정진권 | |
10대 정호근 | 11대 여운건 | 12대 최평욱 | 13대 송응섭 | 14대 김정현 | |
15대 이현부 | 16대 이재달 | 17대 이유수 | 18대 양인목 | 29대 이종옥 | |
20대 김승광 | 21대 이선민 | 22대 김장수 | 23대 김병관 | 24대 김근태 | |
25대 김영후 | 26대 박성규 | 27대 이준구 | 28대 임국선 | 29대 박찬주 | |
30대 장재환 | 31대 이종섭 | 32대 이정기 | 33대 윤의철 | 34대 허강수 | |
35대 고현석 | 36대 김호복 | 37대 박재열 | |||
※ 초대~8대: 동해안경비사령관(소장) ▸ 9대~현재: 제7기동군단장(중장) | |||||
관련 직위 둘러보기 | }}}}}}}}}}}}}}} |
제15대 제7기동군단장 이현부 Lee Hyunboo | |
출생 | 1943년 |
사망 | 1992년 2월 14일 (향년 48세) |
학력 | 서울고등학교 (졸업 / 12회) |
신체 | 178cm[1] |
종교 | 천주교 (세례명: 베드로)[2]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64년 ~ 1992년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20기) |
최종 계급 | 중장 (대한민국 육군) |
최종 보직 | 제7기동군단장 |
주요 보직 |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수도기계화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운영차감 제3야전군사령부 정보처장 제6군단 작전참모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1기갑기보여단장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참모장 대구대학교 145학군단장 제32보병사단 작전참모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203차보대대장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최종계급 중장, 최종보직 육군 제7기동군단장.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베드로이다.2. 생애
기계화보병의 권위자. 또한 전두환이 만든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육사 20기 멤버로 알려져 있으나 이 부분은 오늘날까지 진위여부가 불분명하다.[3] 2005년 2월 <신동아>를 통해 공개된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에서 작성한 하나회 회원 全 250명의 명단에는 이현부 중장의 이름이 적혀 있기는 하다.서울고등학교(12회)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20기)에 입교하여 1964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며 대표화랑에 선발되었다. 이후 수도기계화보병사단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그리고 소대장, 중대장, 승호대대장, 번개여단장에 심지어는 사단장(제34대)까지 지휘관 보직을 모두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만 역임한, 장교로서는 다소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 덕에 이현부 중장은 기계화보병의 대가로 명성이 높았으며 이 뛰어난 능력 덕에 동기들 중 안병호 수방사령관과 더불어 가장 먼저 중장에 진급했다. 군단장 보직은 자신이 지휘관 생활을 모두 보낸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의 차상급부대이자 기갑부대를 총괄하는 제7기동군단장이었다. 여담이지만, 훗날 국방부장관이 되는 김관진 대령이 그가 군단장에 재임하던 시절 그의 휘하에서 연대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부임한지 얼마 못가 부대순시를 하던 도중 헬기사고로 인해 이현부 중장과 군단 주요 참모들[4], 수행원들[5]이 목숨을 잃었다. 자세한 사항은 제7기동군단 헬기 추락 사고 문서로. 사후 국립서울현충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가족으로는 중령 시절 결혼한 부인과 슬하에 11살 된 딸이 있었다.[6] 더불어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모여단에서 여단장을 했었고 해당 여단에서는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기도 하다.
[1] 훤칠한 미남이라 한국의 맥아더라는 헌사를 받기도 했다. #[2] 천주교에 귀의한 것은 죽기 7-8년 전부터였으나 세례는 받지 않고 있다가, 세례를 결심하여 받기 직전 비극적으로 사망했다.# 정확히는 세례성사 이틀 전에 사망하여 특별히 화세(火洗), 즉 사후세례를 인정받았다. #[3] 김진선(19기), 안병호(20기) 등도 이현부와 마찬가지로 하나회 멤버로 알려져 있으나 진위 여부에 논란이 있는 인물들이다. 동아일보 기자를 지낸 김재홍 전 국회의원이 직접 밝힌 부분이다. 다만 하나회 일원들이 주로 수도 근교 부대에서 근무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현부 장군도 수기사에서만 근무한 것을 보면 하나회 회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4] 작전, 군수, 감찰참모[5] 비서실장, 전속부관, 당번병[6] 1973년에 결혼하였고, 부인이 몸이 약해 1974년과 1976년에 얻은 아들들이 모두 돌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 딸은 92년 2월 당시 국민학교 4학년이었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딸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는지 딸을 '손녀'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