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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9:30:44

제7기동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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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기동군단
第七機動軍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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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기동! 북진선봉! 인화단결!
전장을 지배하는 초일류 기동군단
창설일 1969년 1월 18일(동해안경비사령부)
1982년 8월 16일(제7기동군단)
상징명칭 북진선봉(北進先鋒)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지상작전사령부
규모 군단
역할 공격 부대, 전시 진격
군단장 중장 박재열 (육사 49기)
부군단장 준장 신창대 (3사 26기)
참모장 준장 김종연 (3사 31기)
위치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1. 개요2. 연혁3. 특징4. 편제
4.1. 직할부대4.2. 예하부대
5. 과거부대6. 출신 인물
6.1. 군단장6.2. 장교/부사관6.3. 병
7. 기타
7.1. 근무환경7.2. 상승레스텔7.3. 군단가
8. 논란 및 사건사고
8.1. 제7기동군단 헬기 추락 사고8.2. 코로나 확진자 부실 급식 사건
9.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국군에 존재하는 유일한 기동군단[1][2]으로서 1980년대 초반에 창설된 부대이다. 베트남전 이후 1972년 수도사단을 수도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하면서 이후 (구)제20보병사단을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하고 7군단을 본격적인 기동 군단으로 편성하게 된다. 예하에 전차기계화보병, 특임보병 그리고 자주포로 구성된 강력한 기계화보병사단 만을 두고 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강의 군단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화력을 보유한 최상급의 기동전 제대이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최고 최정예 육군 기동 엘리트 군단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육상 현대적 전술을 구사 할 수 있는 군단.

사령부는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위치하여 있다.

2. 연혁

1969년 1월 18일 現 제7기동군단의 전신인 동해안경비사령부로 처음으로 창설되었다. 같은 달 31일 강원도 삼척시로 이동했고 강원도 동해안부터 경상북도 일부 지역까지 방어했다. 당시 동해안경비사령관은 소장 2~3차 보직으로 중장 진급이 어려운 한직이었다고 한다.[3] 동해안경비사령부는 1982년 8월에 제7군단으로 확대 개편됐고 이듬해인 1983년부터 임무가 바뀌어 공격에만 주력하는 기동군단으로 선택됐다.[4]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2030)에 따라 곧 제30기계화보병사단을 배속받아서 예하에 3개의 기계화보병사단을 편제할 예정이었다.#[5] 그러나 8사단, 11사단, (구)26사단이 2016년 12월 1일부로 7군단 예하에 배속된지라 당분간 전투력만은 야전군 수준을 유지할 예정이다.

이후 2016년 12월 1일을 기해 제8기동사단, 제11기동사단, (구)제26기계화보병사단[6]을 이관받아 다른 군단들에 비해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게 되었다.[7] 이는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해당 사단들을 해체해 여러 개의 기갑 여단으로 개편하려는 계획에서 통제의 용이성을 위해 임시 배속시킨 것으로 해석된다.[8] 여기에 더해 제3군단에 속해있던 제2보병사단을 공정사단으로 개편하면서 7군단 예하로 예속전환하고 제2작전사령부 예하 독립여단인 201, 203 특공여단을 2사단으로 예속전환 후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개편하여 두고 있다.

2018년 11월 30일 (구)제26기계화보병사단제8기동사단으로 통합되었고 2019년 11월 30일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제11기계화보병사단으로 통합됐다. 그리고 2019년 12월 6일 종전 제3군단 소속이었던 (구)제2보병사단이 해체되고 2021년 1월 1일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개편돼 7군단 예하부대가 되었다.[9]

2021년 이후 기동군단으로 개편이 끝나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2신속대응사단, 제8기동사단, 제11기동사단을 예하에 두고 있다.

3. 특징

유사시에 북한군이 만약 남침을 개시하면 주둔지에서 조금씩 물러서 예비군을 보충 받으며 공세를 격파하는 여타 다른 군단들과 달리, 개전 즉시 주둔지를 떠나 북으로 진격하여 본격적인 기동전을 펼치는 것을 상정하고 있는 군단이다. 그래서 포병여단 예하 대대는 다른 군단 지역으로 넘어가서 훈련하고 돌아온다. 때문에 하고 있는 훈련도 대부분 기동전에 관한 것이며, 방어 작전도 거의 하지 않는다. 상급부대 지휘소 연습에 참가할 시에는 방어 훈련간에는 할 일이 없어서 상급 지휘관에게 보고할 것이 딱히 없기 때문에 온갖 잡다한 것을 상황 보고에 끼워 넣느라 고생한다. 물론 공격 훈련 시에는 그야말로 단독 주연으로, 혼자서 다 해내야 하기 때문에 제7군단장은 매우 요직이다. 다만 대장 진급에 있어서는 미묘한데, 이유는 아래 후술.

즉, 사실상 공격에만 몰빵한 군단이며 경례 구호부터 북진이다. 전쟁 발발 직후에 일단 북한의 공세를 방어하는 것이 첫 목표인 다른 군단과는 달리 사령부 시설에 그다지 투자도 하지 않는다. 그 흔한 극장 하나 없으며[10] 사령부 건물도 다른 군단과는 구조부터 다르다. 다른 군단이나 사단 사령부 건물은 죄다 지하에 있어서[11] 외부에서 시설이 보이지 않는 반면, 제7기동군단 사령부만 유일하게 모든 시설이 지상에 올라와 있다. 전쟁 나면 사실상 사용하지 않고 버려지거나 박살날 건물들이라 별로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규모 자체가 꽤 방대한데 3세대 이상 전차대대가 11개에 155mm 포병대대 역시 16개나 된다. 3각 편제의 11개 전차대대면 최소 370여 대로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각 국가의 전차 대수보다 많다. 여기에 더해 장갑차까지 포함하면 총4000대이상의 전투장갑차량과 지원장갑차량이 라는 엄청난 규모다. 800여 대가 있는 군단이다.

기동군단의 특성상 예하 사단이 모두 기계화보병과 기동사단이다. 대한민국 국군이 보유한 3.5세대 전차 전량을 7군단이 보유하고 있을 정도.

대한민국 육군의 주력 부대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사항 중 하나는 이 군단의 보급 상황이다. 공격전을 수행하는 기동군단의 특성상 우수한 기계화 장비들이 필요하기에, 기계화 장비의 보급이 가장 잘 되고 있는 부대이다. 예하의 제20기계화보병사단이 K-1A1 전차, K-21 보병전투차, K-2 흑표 전차를 전군에서 가장 먼저 수령한 부대이며, 개편 이전까지 다른 한 부대였던 수도기계화보병사단도 차순위로 해당 장비들을 수령해 국군 중 가장 빠르게 신형 기계화 무기체계들로 무장한 부대가 되었다. 더구나 천무 다연장로켓, K-9 같은 기계화/기동화 포병장비들 또한 이 군단의 예하 포병제대들에 우선 배치되어 있어 육군 군단 중 가장 화력이 강한 군단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예전에는 전략 무기인 현무 탄도 미사일까지 운용한 적이 있다. 7군단 예하 제7포병여단에는 '제1000대대'라고 하여 현무 운용을 담당하는 부대가 있었다. 유도탄사령부를 창설한 뒤 현무 미사일의 운용을 유도탄사령부에서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다른 군단과 달리 제대로 된 관할 위수지역이 없다고 볼 수 있는데, 7군단의 예하 부대들이 있는 지역이 수도군단 지역, 제2군단, 제3군단, 제5군단 지역이 겹치기 때문.[12]

평시에 따로 담당구역이 없기 때문에 각종 훈련 참가,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위한 연구 배당 등이 매우 잦은 편이다. 대표적인 예로, 다른 군단은 몇 년에 한 번씩 차례가 돌아오는 '군단급 FTX 연습'에 매년 참가한다. 홀수년에는 통제부대, 짝수년에는 실제 훈련부대로 참가하는데, 통제부대든 훈련부대든 힘들긴 마찬가지이다. 특히 사령부 작전과의 업무량이 어마어마한데, 실제로 이쪽 간부들의 경우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는데도 몇 달간 못 보고 사는 경우가 빈번하다.[13]

사령부의 주요 장교들은 소령급인데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려면 그야말로 피와 살을 깎는 고비를 넘겨야 한다. 특히 육군 주요 보직은 보병 병과가 차지하기 때문에 기갑 병과는 진급이 쉽지 않은데 7군단 사령부는 보병 반 기갑 반인 사령부 구성원 특성상 그나마 기갑 간부들이 진급하기 쉬운 곳이다. 가끔은 한 처부에서 중령 진급자가 두 명이나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만큼 요직을 맡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실제로 소령들 중에서 너도나도 작전장교를 맡겠다고 멱살 잡고 싸우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실제로도 7군단의 군단장, 부군단장, 참모장은 보병, 포병, 기갑 중에서 하나가 오며 주임원사는 어지간하면 기갑이 온다.

부대 안에 야생화된 흑염소 무리가 산다. (최소한 이준구 중장 이전의) 군단장이 사적으로 기르던 것을 방사했더니 야생화 되었다고 전해진다. 여름에는 낮은 지대-화학대 쪽으로 내려가고, 겨울에는 높은 지대-통신단 쪽으로 이동하며 사는 듯하다. 닭도 방사해서 키우고 있다. 토끼도 있다.[14]

4. 편제

4.1. 직할부대

4.2. 예하부대

5. 과거부대

6. 출신 인물

6.1. 군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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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군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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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동해안경비사령관(소장)
초대 강원채 예) 소장 육사 5기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2대 김판규 예) 소장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
3대 유학성 예) 대장 육사 1기 제3군사령관 국가안전기획부장
4대 전성각 예) 중장 육사 8기 제3군단장
7대 이광노 예) 중장 육종 1기 수도군단장
8대 김상언 예) 소장 육종 7기 마지막 동해안경비사령관
대리 김영규 예) 소장 갑종 4기
제7기동군단장(중장)
9대 정진권 예) 대장 육사 8기 합동참모의장
10대 정호근 예) 대장 갑종 5기 합동참모의장
11대 여운건 예) 중장 육사 13기 군단장
12대 최평욱 예) 중장 육사 16기 보안사령관 前 산림청장, 철도청장
13대 송응섭 예) 대장 육사 16기 합동참모본부 제1차장
14대 김정헌 예) 중장 육사 18기 육군사관학교장
15대 이현부 예) 중장 육사 20기 [30]
16대 이재달 예) 중장 육사 20기 군단장
17대 이유수 예) 중장 육사 20기 군단장 [31]
18대 양인목 예) 중장 육사 22기 군단장
19대 이종옥 예) 대장 육사 24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0대 김승광 예) 중장 육사 25기 국방대학교
21대 이선민 예) 중장 학군 6기
22대 김장수 예) 대장 육사 27기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국방부, 국회의원(한나라당),
국가안보실[32]
23대 김병관 예) 대장 육사 28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제1야전군사령관 [33]
24대 김근태 예) 대장 육사 30기 제1야전군사령관 국회의원(새누리당) [34]
25대 김영후 예) 중장 육사 31기 군단장 병무청장
26대 박성규 예) 대장 3사 10기 제1야전군사령관 [35]
27대 이준구 예) 중장 육사 34기 군단장
28대 임국선 예) 중장 학군 17기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36]
29대 박찬주 예) 대장 육사 37기 제2작전사령관 [37]
30대 장재환 예) 중장 육사 39기 육군교육사령관 [38]
31대 이종섭 예) 중장 육사 40기 합동참모차장 국방부 장관
32대 이정기 예) 중장 육사 41기 육군항공작전사령관
33대 윤의철 예) 중장 육사 43기 대한민국 합동참모차장 [39][40]
34대 허강수 예) 중장 3사 23기 군단장
35대 고현석 중장 학군 29기 육군참모차장
36대 김호복 중장 3사 27기 군단장
37대 박재열 중장 육사 49기 군단장

워낙에 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휘하에 둔 사단도 많다 보니 7군단장이 군단장급 지휘관 중 대장 진급률이 가장 높은 최고 요직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군단장 중 대장 진급률이 좋은 편이 아니다.[41] 덤으로 최근들어 연속으로 비육사 중장이 군단장에 보임되며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자리로 여겨짐을 알 수 있다.

사실 7군단이 분명 신형 무기체계의 대다수를 가장 먼저 배속받는 정예 부대이긴 하나, 육군에서 중시되는 휴전선과의 거리 면에서는 후방에 가깝기 때문에, 전방의 주요 축선을 방어하는 전통의 요직인 제1군단장(서부전선)과 제5군단장(중부전선)에 원래 밀렸고, 덤으로 최근엔 제3군단장(동부전선)도 육사 출신 중 선두주자가 보임되며 꽤나 요직으로 여겨진다.[42] 7군단과 마찬가지 논리로 서울에 주둔하며 권력자와 밀접한 최요직 군단장이던 수도방위사령관육군특수전사령관도 최근엔 후방 담당인 게 강조되는지 그닥 진급률이 높지 않다.

사실 7군단 지휘관의 병과 문제도 있는데, 다른 군단보다 포병기갑 출신 군단장이 자주 보임되고[43], 이들은 일반적인 보병 출신 장군보다 대장 진급이 많이 어렵기에[44] 그로 인해 진급률이 낮은 것이기도 하다.

6.2. 장교/부사관

직할부대 출신만 기재 요망.

6.3.

직할부대 출신만 기재 요망.

7. 기타

7.1. 근무환경

부대 내에 신막사와 구막사가 서로 짬뽕되어 있어 막사에 생활환경은 복불복이다. 신막사 같은 경우에는 2010년도 안팎으로 지은 건물들이라서 타 부대들에 비해 시설이 매우 훌륭하다.[48]

다만 교통편은 매우 열악하다. 외출, 외박을 대부분 이천 시내나 장호원, 태평리에서 보내는데, 외딴 시골 구석이라 근처에 버스정류장은 배차 간격이 하루 3~4대 이런 식이다. 그렇기에 출발이나 복귀 시 부대에서 운영하는 부대버스를 이용하여 가까운 시내까지 나가거나 콜택시를 이용한다.

7.2. 상승레스텔

상승레스텔
常勝[49] 레스텔
Sang Seung Restaurant & Hotel
위치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경충대로 719-13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7.3. 군단가

겨레의 부름에 젊음을 바쳐
조국수호 다짐한 피끓는 용사
필승의 함성 아래 굳게 뭉쳤다
나가자 앞으로 백두산까지

내 생명 백골 되어 다할 때까지
북진선봉 주력되자 기동 7군단!

민족의 소망아래 목숨을 걸고
북진통일 맹세한 피끓는 용사
북진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쳤다
진격이다 앞으로 두만강까지

원수의 붉은 무리 멸할 때까지
민족통일 선봉되자 기동 7군단!

파일:제7기동군단 부대마크.svg

8. 논란 및 사건사고

8.1. 제7기동군단 헬기 추락 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제7기동군단 헬기 추락 사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8.2. 코로나 확진자 부실 급식 사건

2023년 7월 13일,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통해 코로나19 확진자에게 정량에 못 미치는 급식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반찬을 담을 곳에 케첩 아주 조금 담고, 케첩을 담을 곳에는 아주 작은 동그랑땡 2조각만이 담긴 충격적인 사진이 함께 게시되었다.

7군단 측도 부실 급식을 인정했고,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9. 여담



[1] 1990년대에 6군단이 기동군단으로 개편된 적이 있으나 2000년에 다시 통상 군단으로 환원되었다.[2] 다른 방어 군단과는 다르게 오로지 공격만을 위해 창설 된 군단으로서 적의 방어를 단번에 깨뜨리고 돌파하여 사령부 제압만을 목표한다[3] 1979년 당시, 핵심 요직인 국군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배경에는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의 월권행위를 보다 못해 이곳으로 보직 이동을 시키려고 했던 것도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4] 그 과정에서 1983년부로 제22보병사단제68훈련단제3군단으로 예속 전환됐으며 사령부는 의정부로 이동했다가 1985년에 장호원에 위치한 현 위치로 이동했다.[5] 본 기사에서는 30기보사를 배속시킬 예정이라고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3개 기계화보병사단이 7군단에 배속될 텐데 11, (구)26, 8사단이 해체될 예정임을 감안한다면 30사단이 7군단에 배속될 것임을 간접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6] 2018년 11월 30일 제8기동사단으로 통폐합[7] 각각 제5군단, 제1야전군사령부, 제6군단에서 편입.[8] 따라서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 (구)제26기계화보병사단이 해체되고 (구)제30기계화보병사단은 제1군단 예하 30기갑여단으로 개편됐으며 제11기동사단 예하의 제20기계화보병여단은 독립하여 제3군단으로 이관되면서 제20기갑여단이 되었다.[9] 그러나 작전권은 제2작전사령부에 있으며 제2작전사령부 예하였던 제201특공여단, 제203특공여단은 제2신속대응사단 예하로 이관되면서 제201신속대응여단, 제203신속대응여단으로 개편됐다. 2008년 11월 30일에 해체됐던 (구)제205특공여단의 경우 삼각편제를 위해 제2신속대응사단 예하 제205신속대응여단으로 재창설될 가능성이 높다.[10] 북진관이라는 다용도관에서 매주 상영한다. 좌석은 없기 때문에 접이식 의자나 오락실 의자를 지참해 관람한다.[11] 혹은 본청은 지상에 있지만 지휘통제시설 등 중요 시설만 벙커에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12] 본래는 수도군단 및 제6군단과 위수지역이 겹치는 수준이었으나 기계화보병사단 개편에 따라 이렇게 넓어진 것. 참고로 제6군단은 2022년 하반기에 해체되었다.[13] 작전처 간부와 행정병이 함께 늙어가게 된다. 행정병들은 매일 야근을 불려가서 야간 점호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며, 작전처나 정보처 내무실들은 전원이 사령부에서 일하느라 점호시간에 아예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아서 내무실 문을 잠궈 놓기 일쑤다. 특히 훈련과 각종 보고가 피크를 이루는 3월-6월경에는 야간점호나 아침 점호를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과 후 본부대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방송은 누군가를 야근으로 부르는 전화가 왔다는 방송이며, 장교들의 인사이동이 있는 늦가을을 제외하면 일 년 내내 바쁘다. 작전병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보고 시즌의 작전병은 점호에 참여하는 게 드물다[14] 이준구 중장-박성규 중장-김영후 중장 때에도 관사에 동물은 많이 있었다.[15] 편제상 본부근무대 관할이며, 제20기계화보병사단 군악대를 군단 직할로 돌린 것이다. 본래 군악대는 군단 본부근무대에 없던 편제였다. 필요할 때마다 예하 사단의 군악대를 불러다가 쓰는 식이었다. 그러나, 국방개혁으로 인해 사단들이 해체되면서 해체되는 인접 사단의 군악대를 군단 본근대 예하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예시로는 1군단 군악대(30사단에서 예속 전환), 2군단 군악대(27사단에서 예속 전환), 3군단 군악대(2사단에서 예속 전환), 5군단 군악대(23사단에서 예속 전환)가 있다.[16] 항공단 야전 군단 직할 배치 계획에 따라, 군단 직할부대로 편성.[17] 제707특공공정연대 - 제7강습대대 - 제1/2강습대대[18] 제707특공공정연대 - 제7강습대대 - 제1/2강습대대[19] 2022년 10월 1일 해체후 본부근무대와 통합, 본부근무대 경비중대로 바뀌었다.[20] 다른 군단과 달리 대대급이다. 다른 군단은 단급이다.[21] 8사단 한정.[22] 6군단 해체과정에서 7군단으로 예속전환.[23] 11사단 예하 제61기계화보병여단에서 관리 중이다.[24] (구)제2보병사단 해체 후 개편된 부대로 사단 사령부와 본부근무대 인원을 편제하고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 사령부 자리에 주둔하고 있다. 소속은 7군단이지만, 작전권은 제2작전사령부에 있으며, 2021년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창설되었다.[25] 21년 1월 1일부로 기계화사단에서 명칭변경[26] 21년 1월 1일부로 기계화사단에서 명칭변경[27] 2013년에 진짜사나이에서 촬영된 적이 있다. 7공병여단 청룡대대#17공병여단 청룡대대#2[28]제2군수지원사령부제5군수지원여단으로 개편되면서 신설, 5군수지원여단과 주둔지를 함께하다가 현재는 양평군으로 이전했다.[29] 그러나 사령부 위치나 예하부대 구성을 보면 현재의 8사단은 舊 8사단보다 舊 26사단에 더 가깝다.[30] 군단장. 기계화보병의 아버지이지만, 부임한 지 얼마 못 가 사고를 당해 순직했다.[31] 기갑출신 첫 3성장군, 기갑출신 첫 군단장[32] 대장까지 진급하여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후 예편(이게 대단한 게 국방부 장관을 시키기 위해 육군참모총장 임기를 다 채우지도 않았는데 예편 처리시킨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2007년 12월까지 재임해야 하지만 2006년 12월에 전역했다.)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까지 올랐다. 2013년 2월 신설된 국가안보실의 초대 실장에 임명되었다.[33] 대장까지 진급하여 1야전군사령관을 거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한 후 예편했다. 이 사람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화공과를 한 학기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 진로를 바꿔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해 수석으로 입학 후 수석 졸업까지 했다. 한국경제 기사 심지어 곧바로 육사에 진학하지 않고 서울대를 한 학기 다녔다가 들어간 이유에 대해 "고등학교에서 워낙 입시 위주 교육만 받는 바람에 사회성이 부족하다 싶어 1년 쉬었다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新東亞 인터뷰 또한 손자병법에 통달한 전술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데 2사단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오전 8시에 시작한 전술 강의를 오후 6시에 끝낸 것은 유명한 일화로 회자된다. 2013년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되었으나 방산업체 로비문제가 불거져서 자진 사퇴하였다.[34] 대장까지 진급하여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예편했다(이근안에게 고문당했던 민주화운동가/정치인인 김근태와는 무관한 동명이인). 전역 후 새누리당에 입당해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자격을 상실했다.[35] 육군3사관학교 출신 가운데 2번째로 대장에 진급한 동시에 이 출신 최초로 제1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 7군단장에서 교육사령관을 거쳐 제1야전군 사령관에 보임되었다.[36] 이 사람은 소장이었던 20사단장 시절 예하부대를 순시 중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노인을 발견하고 직접 물속으로 뛰어들어 구조해내어 유명해진 인물이다. 기사 전문 2013년 4월 군단장 임기를 마치고 2작사 부사령관으로 전보되었다. 대장 진급에는 실패했으며 최종 보직은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이다. 학군 17기로 임관했는데 특이하게 임관하자마자 특전사 부중대장이 된 탓에 소대장 경력이 없었고 이게 발목을 잡아 대장 진급에 실패했다.[37] 기갑 병과 최초의 대장. 2014년 10월 육군참모차장으로 이임하고 이후 대장으로 진급해 제2작전사령관까지 지냈다가 이후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이 때문에 다른 대장들이 전역하는데 혼자 대장 2차 보직으로 인사사령부 정책파견연수관을 받고 군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르고 말았다..[38] 2017년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으로 전군의 공관병 갑질 등의 전군의 대대적인 조사로 부대복지기금을 전용해 지휘관 관사 비품을 구매한 것이 발각되어 대장 진급에 차질을 빚고 김용우에게 시원한 물 한사발을 먹었다. 물론 이건 박찬주가 육참차장으로 갈 때 비품을 알뜰하게 다 가져가서 비품을 마련하겠다고 무리수를 둔 것이지만.[39] 2018년 12월 7일 취임하였는데, 비합리적인 수준의 체력단련 강조와 동시에 특급전사를 강요하고 특급전사가 아닌 인원을 비하하는 등으로 군 안팎에서 논란이 발생하고 있어서 7군단의 간부와 병사들은 윤의철이 빠른 시일 내 떠나길 바라고 있는 분위기이다. 결국 2019년 후반기에 육군교육사령부 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40] 박찬주가 군단장을 하던 시절에는 참모장을 역임했으나 이 시기에도 특유의 과도한 훈련 및 특급전사 강요 때문에 군단장인 박찬주에게 적당히 하라고 질책을 받기도 했다.[41] 2001년 취임한 23대 군단장 김장수 중장 이래 2022년 지휘관인 35대 허강수 중장까지 군단장을 역임한 13명 중 대장까지 진급한 인물은 4명으로, 대장 진급률이 3분의 1도 안 된다.[42] 현 군단장을 제외하고, 최근 군단장 역임자 10명의 진급 여부를 살펴보면, 1군단은 권오성, 엄기학,김용우, 서욱, 안병석 5명, 3군단은 김병주, 김승겸, 전동진, 신희현 4명, 5군단은 조정환, 김현집, 김영식, 임호영, 최병혁, 안준석 6명이 대장으로 진급해 각각 50%, 40%, 60%의 진급률을 보인다. 반면 7군단은 최근 군단장 10명 중 박성규, 박찬주 단 2명만이 대장 진급에 성공했다.[43] 33~35대 군단장인 윤의철, 허강수, 고현석 장군은 모두 포병 출신이다.[44] 포병 출신 대장은 십 년에 한 번 정도 나오고, 기갑 출신 대장은 박찬주 딱 한 명 있다.[45]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46] 대구대학교[47] 군단 본부대 본청 간부식당 병사들은 진짜로 새벽에 출근하고 저녁 늦게 들어온다. 간부식당 동기를 두었던 본부대 병사의 증언이다. 꼭 본부대 취사병뿐만이 아니라도 대부분의 취사병들도 대부분 저런 패턴이 많다.[48] 궁금하면 진짜사나이 청룡대대편을 참고하자.[49] 위로 올라간다는 의미의 상승()이 아닌, 떳떳할/항상 상(), 이길 승() 자를 사용하여 늘 이긴다는 의미의 상승(常勝)이다. 지도 거리뷰로 상승레스텔 앞의 '常勝會館(상승회관)' 표지석을 확인할 수 있다.[50] 그 외의 부대는 육군훈련소, 육군정보통신학교도 있다.[51] 육본 정보작전지원참모부장은 소장 보직이지만 사실상 중장(진)급이라 봐도 좋은 보직이다. 수많은 제1야전군사령관제3야전군사령관이 거쳐 갔고 무려 전직 대통령도 거쳐간 자리이다.[52] 2019년 하반기 장성급 장교 인사에서 육군사관학교 44기 동기인 박정환, 강창구, 김현종 소장과 육군3사관학교 23기인 허강수 소장, 학군 26기인 박양동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하였는데, 이 중 허강수 중장이 7군단장을 맡았다. 2차 진급자로 작전 전문가가 아닌 정책 전문가인 김도균 소장이 낙점됐고 수도방위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논란이 있었다. 3차 진급에서는 1기수 선배인 이영철 소장, 동기급인 정철재 소장, 1기수 후배들인 전동진, 이정웅, 강건작, 안병석 소장 등이 중장으로 진급했다.[53] 오정석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