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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03:31:34

일본 26위 성인

파일:나가사키의성바오로미키와동료순교자.jpg
나는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지만, 단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죽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죽게 됨을 기쁘게 생각하며,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내려 주신 커다란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1]
잠깐의 생명과 영원한 목숨을 바꿀 수 없습니다.[2]
1. 개요2. 성인의 명단3. 26위 성인 순교 성지4. 조선 출신 15인의 순교복자5. 기타

1. 개요

일본 26위 성인1597년 2월 6일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책형을 당한 26명의 천주교 신자다. 통상 26 성인의 순교라 지칭하고, 이들을 일본 이십육 성인이라 부른다.[3] 26명 모두 일본인은 아니고 스페인인, 중국인, 인도인, 멕시코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처형된 지 265년 뒤인 1862년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이들은 예수가 죽은 골고다 언덕과 비슷한 니시자카(西坂)[4]에서 죽기를 원했고 처형 장소가 되었다. 지금은 순교성지가 되었으며 기념관도 함께 있다.

2. 성인의 명단

순서는 각 성인이 매달린 십자가의 동쪽부터다.[5]

일본에선 세례명을 성 앞에 붙인다.
순교자 직분 특기사항
성 프란시스코[6] 미상 체포되지 않았으나 순교하고자 나가사키로 가다 체포되어 처형당함.
성 코스마 타케야(38세) 선교사 오와리 출신. 칼 장인이었음.[7]
성 베드로 스케지로 미상 순교자들을 돌보고자 파견되었으나 포박당하여 같이 순교.
성 미카엘 코자키(46세) 활 장인 프란치스코회 3회 소속.
성 디에고 키사이 수도자 창으로 몸이 찔렸을 때 작은 목소리로 예수 그리스도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부름.
성 바오로 미키(33세) 수도자 미요시 가문의 가신 미키 한다유의 아들. 죽기 전 "나는 아무 죄도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했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합니다" 라고 말함.
성 바오로 이바라키(54세) 미상 죽기 전 "주님!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도함.
성 요한 고토(19세) 수도자 "아버지도 하느님의 가르침을 믿고 게으르지 않게 하느님을 섬기시기를"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묵주를 아버지에게 건냄.
성 루도비코 이바라키(12세)[8] 미상 본래 체포 시 제외되었지만 스스로 자청해 체포되었고 형장에 가서는 "내 십자가는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음.
성 안토니오(13세) 미상 중국인과 일본인의 혼혈. 형장에서 한탄하는 양친을 달램.
성 베드로 밥티스타(48세) 신부 스페인인. 그리스도처럼 양손이 못박히기를 희망함.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사망함.
성 마르키노 데 라 아센시온(30세) 신부 스페인인. 창으로 몸이 찔렸을 때 "주님! 저의 영혼을 주님께 맡기겠습니다."[9]라고 외침.
성 필립보(24세) 수도자 멕시코인. 형 집행 중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성가를 부르면서 숨을 거뒀다.
성 군디살보 가르시아(40세) 수도자 인도인. 형 집행자에게 개전과 개종을 권유함.
성 프란치스코 브랑코(28세) 신부 스페인인. 사후에도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음.
성 프란치스코 데 산 미구엘(53세) 수도자 스페인인. 젊은 시절에 프란치스코회에 입회.
성 마티아스 미상 세례성사를 받은 직후 박해가 시작되어 체포됨.
성 레오 카라수마루(48세) 선교사 이전에는 불교 승려였으나 개종함.
성 보나벤투라 미상 이전에는 불교도였으나 유아세례를 받은 것을 알고 기독교로 개종.
성 토마스 코자키(14세) 미상 마르티노 신부를 도움. 나중에는 사제가 될 계획이었음.
성 요아킴 사카키바라(40세) 미상 의학을 공부하였음. 설교에 감동하여 세례를 받고 가난한 병자들을 위해 일하였음.
의사 성 프란치스코(46세) 미상 교토에서 세례를 받고 성 요셉 병원에서 일함.
설교자 성 토마스(36세) 선교사 정의감이 강했음.
성 요한 키누야(28세) 미상 수도원 가까이 살아 선교사와 접촉기회가 많았음.
성 가브리엘(19세) 미상 개종자. 양친 역시 가톨릭 신자가 됨.
성 바오로 스즈키(49세) 선교사 외국인 신부의 선교를 도움.

3. 26위 성인 순교 성지


파일:일본 26위 성인 기념비와 성 필립 교회.jpg
일본 26위 성인 기념비. 오른쪽의 2개의 탑이 있는 건 성 필립 성당

시성 100주년인 1962년에 순교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1981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고 니시자카는 2012년 6월에 일본 가톨릭 교회 공식 순례지로 승인되었다.

26위 성인 기념관은 개관 시간이 09:00 ~ 17:00이며 연말연시에는 휴관한다. 입장료는 성인 500엔, 중고생 300엔, 초등학생 150엔이다. 나가사키역에서 멀지 않다. 기념관 안에는 26성인에 대한 자료 외에도 일본 가톨릭의 역사에 대한 자료들이 많은데 한국어 팜플렛이 구비되어 있으니 요청하면 된다.
파일:일본 26위 성인 기념관의 마리아 관음 돌조각.jpg파일:일본 26위 성인 기념관의 마리아 관음 도자기.jpg
카쿠레키리시탄의 마리아 관음상들

특히 카쿠레키리시탄이 만든 마리아 관음상과 기도에 활용된 미륵상을 볼 수 있으며, 당시 조정의 금교령, 기독교를 전도하기 위해 온 선교사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자필 편지와 조각상,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의 조각상 등이 있다. 조선인으로 임진왜란 때 끌려왔다가 선교사를 만나 개종한 뒤 막부의 탄압으로 화형당한 카이요[10]에 대한 기념비도 있는데 한일 양국의 가톨릭 교회 우호의 상징으로 2016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파일:일본 26위 성인 기념관의 일본과 조선 지도.jpg
1595년에 제작된 일본 지도.

기념관 내부에 전시된 1595년 무렵의 일본 지도인데 당시 서양에서 파악한 일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르투갈 예수회의 Ludoico Teisera가 제작한 지도로 원본은 여기 참조. 홋카이도는 나타나지도 않고 도호쿠 지방은 상세하지 못하며 당시의 조선은 섬(COREA INSULA)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 정확한 지리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기념관 바로 옆에 있는 성 필립 성당은 기념관과 같이 지어진 건물로 2개의 탑이 인상적이다. 왼쪽의 탑은 지상에서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걸 뜻하며 오른쪽 탑은 하늘에서의 자비로운 성령이 내려오는 걸 나타낸다.# 교토에서 처형지인 나가사키까지 걸어온 고난의 길을 기리는 기념물들이 많다.

'성 토마스 니시와 15명의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나카마치 성당이 니시자카 공원에서 나가사키 역사문화박물관 가는 중간에 있으니 관련 종교 순례자들은 들러보는 것도 좋다.

4. 조선 출신 15인의 순교복자

5. 기타



[1] 성 바오로 미키의 십자가 위에서의 설교.[2] 12살의 성 루도비코 이바라키에게 "배교하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하자 돌아온 대답.[3] 이들 외에도 성인 바로 전 단계인 복자로 선포된 일본인 천주교 순교자들의 수는 3백명이 넘는다.[4] 나가사키시나가사키역 근처[5] 아래의 기념비 사진에서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6] 후술하는 사나다마루에 목수로 등장한다.[7] 26성인 코스마는 오와리 출신의 일본인이다. 진짜 조선인 순교복자 코스메 소자부로 타케야는 1619년 11월 18일 순교했다.[8] 최연소 순교자다.[9] 루카 23,46을 인용.[10] 일본 기록밖에 없어서 이름이 그렇게 남아 있다.[11] 한국식으로는 권 빈첸시오.[12] 시코쿠 남부[13] 당시 히데요시의 직할령이 222만석이고 다이묘중 제일 세력이 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250만석이었으니 엄청난 가치다.[14] 히데요시를 오랫동안 섬긴 오오타니 요시츠구는 사위 사나다 노부시게에게 "화물에 욕심이 난다고 죄없는 사람들을 책형에 처할줄이야, 전하는 너무 오래 사셨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히데요시에게 맞서다가 굴복했지만 이후 역사에 아는대로 도요토미를 멸도쿠가와 이에야스혼다 마사노부에게 "태합 전하의 처사는 상식을 벗어났다.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태합님은 망령나신 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