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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8 07:41:45

임진왜란 1592/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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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복식 및 갑옷3. 무기류4. 함선5. 전투6. 건축7. 정치, 문화, 제도, 기타

1. 개요

임진왜란 1592고증에 대해 설명하는 항목이다. 팩츄얼 드라마라는 새로운 시도로서 기존의 한국 사극보다 일부 개선된 부분들도 좀 있는 새로운 시도였다. 보도자료를 발표할 때 제작진은 기록과 사실성에 충실하겠다고 표명하였으나 부분적으로 고증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정말 간단하게 요약하면 중국은 중국 사극의 고질적 문제점을, 한국은 한국 사극의 고질적 문제점을 조금씩 조금씩 따왔다.(...)

2. 복식 및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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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평양성 전투에서 유성룡이 입은 찰갑은 고증에 어느 정도 부합했다. 단, 유성룡이 입었던 찰갑은 금속제가 아니라 가죽으로 모양만 맞춘 물건이었다. 지금까지도 유물이 남아있는데, 다른 임진왜란 사극에서 수시로 까였던 후줄근한 가죽 찰갑이 오히려 고증에 맞았던 셈이다. 실제로 동래성 출토물에서 발견된 찰갑과 재질만 다를 뿐 같은 찰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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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복식이 현대 기준으로도 웬만해선 모방할 엄두가 안 날 정도로 과하게 화려하다.[4] 프로이스의 기록을 보면 일본의 의상을 보다가 조선의 작물이나 의상을 보면 천사가 짠 것인지 매우 놀랍고 아름답다는 묘사가 있지만 일본 의상에 대해선 그런 거 없다.. 가장 화려해야 될 중국이 가장 후지게 그려져 있는 게 국내 사극의 문제점 백의민족이라서 프로이스가 마음에 들어한 거 아닐까?
전국시대 당시의 기모노와 헤어 스타일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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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복식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첫번째 사진에서 나고야라고 되어 있는 건 우리가 아는 그 대도시 나고야(名古屋)가 아니라 히젠[7] 나고야(名護屋) 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전진기지로 활용된 성이다.[8]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제대로 표기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한자 병기를 하지 않아서 고증적인 오류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있는데, 센고쿠 시대 당대에는 지명의 발음이 중요했지, 그 발음에 따른 한자표기는 상대적으로 경시되어 발음에 맞는 한자를 대충 가져다 쓰는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당대엔 일본 중부의 나고야에 대해 名古屋, 那古野, 那古屋, 名護屋 등의 표기가 모두 사용되고 있었고 반대로 히젠의 나고야를 名古屋라고 적은 문헌도 발견된다(....).

같은 발음의 지명을 한자 표기로 구별하는 건 어디까지나 에도시대 이후 지명에 대한 한자가 통일되면서부터나 가능해진 이야기고 전국시대 기준으로 보면 한자 표기 없이 '나고야'라고 한 게 어쩌면 더 고증적으로 타당할 수 있다. 굳이 구분을 해야 한다면 한자를 병기하는 것보다는 (경기도 광주시와 광주[광역]시라는 표기처럼) 히젠나고야 등으로 앞에 그 성이 속한 지역명을 표기하는 게 가장 깔끔할 것이다.
최종화에서는 히젠 나고야 성으로 정확히 명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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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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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포해전에서 애기살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고증에 맞게 통아를 사용해 사격하는 장면이 나왔다. 배우가 숙달되지 않았는지 파지법은 엉성한 편이다.
* 노량해전에선 그 동안 잘 나오지 않은 명군의 화약무기들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명군의 화승총과 불랑기포. 특히 불랑기포는 자포를 교환하며 방포하는 모습을 고증해 냈다.

4.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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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개봉한 영화 명량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고증 오류가 존재하는데, 바로 함선의 크기. 세키부네와 판옥선의 크기가 별 차이가 없다. 당장 일본 쪽 기록만 두고 보더라도 판옥선을 거대한 함선으로 묘사했고, 명량해전 당시에도 일본군은 공성전을 치르듯이 판옥선과 싸워야만 했다는 점을 보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키부네는 판옥선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작은 편인데[14], 극 초반부 세키부네 갑판에서 백병전을 위해 일본군이 점프를 해서 단숨에 판옥선 갑판에 오르는 걸 보면 이는 정말 치명적인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거북선을 비롯하여 함선 CG를 명량 CG 팀이 맡아서 하면서 같은 모델링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판옥선 공성전은 언제쯤이나 볼 수 있을런지?
실제로는 공성용 갈고리와 도선용 판이 나와야 한다.
4편에서는 2편의 한산도대첩이 1분여 가량의 분량으로 요약되어 나왔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안 나온 요약분이었고. 자막으로 왜선 격파수를 명시했다. 제작진도 논란이 될 것을 예상하고 4편에 한산도대첩 관련요약본을 삽입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당시 방영했던 2편에서도 격파된 왜선 수가 4편과 똑같이 자막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5편에서 이순신이 노량해전에 출전하기 전에 회상장면에서 거북선 승조실이 조총 공격에 파손되고 승조원들이 총탄에 쓰러지는 모습이 잠깐이지만 그대로 다시 나왔다. 희생을 기린다는 장치였겠지만.

거북선의 사상자에 대해서는 링크를 참고해 보자.

5.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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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의 함대가 실제로 장사진으로 적 종심을 파고들는 전술을 쓴 것은 오직 부산포 해전 뿐으로 한산도 대첩 이후 일본 수군이 포구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자 부득이하게 사용한 경우로 본작에서는 이순신과 나대용의 부상. 극중 갈등을 위해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각색하지 않더라도 전쟁초기의 포술의 미숙함과 거북선 운용의 경험 부족을 이용하면 충분히 극적인 전개가 충족되었을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연출 실수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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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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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치, 문화, 제도, 기타



[1] 제작진이 공식적으로 밝힌 제작비는 13억원에 불과하다. 방송 분량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같은 웰메이드 사극의 경우에도 제작비가 총100억 가까이 들었다는 점(SBS 84억원, 제작사 36억원)을 생각해보면 회당 제작비로 비교해 볼 때 저예산으로 만든 셈.[2] 그래도 정도전과 징비록이 편당 2억 2천만 원인데, 이 드라마는 편당 2억 6천만 원이니 지원은 더 받은 것이다.[3] 파일:external/muye24ki.com/CP0208317413_F00001.jpg
이렇게 생긴 갑옷이다. 두석린갑은 조선 후기에 주로 제작되었고, 두정갑에 비해 비싸서 그 수도 많지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두정갑이 더욱 고증에 적합하다. 2015년 방송된 징비록에서도 기존의 두석린갑이 아닌 두정갑을 착용하였다.
[4] NHK가 과하게 제공한 모양[5] 히데요시의 모친[6] 대부분의 전국시대 사극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무로마치 시대에서 에도시대 초반의 오비는 폭이 좁고 가늘었다.[7] 지금의 규슈 지역 사가현가라쓰[8] 히데요시는 본래 지금의 후쿠오카시(하카타)에 전초기지를 세우려했으나 수심이 얕은 곳이라 불발되었다. 그 대신 조금 떨어진 가라쓰가 전진기지가 되었다.[9] 환도 패용이 그나마 잘 나온 사극은 '뿌리깊은 나무'의 초반부와 '추노' 정도이며, 액션신을 찍어야 하는 배우는 이 패용법을 무시했다. KBS 소품실에 띠돈이 없는 듯 하다. 조금은 있겠지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 왜 띠돈을 할 수 있는 걸이는 소품칼에 왜 있는 건지?[10] 반론: 익선관 항목을 보면 금실 익선관도 생존시 착용하던 물건이라고 작성되어 있다.[11] 제작비를 고려하지 않은 비판이다. 곤룡포를 하사받았다는 사실을 전달하는데에는 무리없는 연출이었다.[12] 다만 묘사하기엔 꽤 잔인한 장면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조란환은 산탄이기 때문에 실제 전투라면 중상 수준이 아니라 사지가 찢어지는 치명상을 입힌다. 불멸의 이순신과 명량에서도 조란환을 묘사했지만 매우 순화된 모습으로 나온 것을 감안하면 연출이 안된 것은 이해 가능하다.[13] 머스킷이 쓰이전 근대 전쟁 시기를 다룬 유럽이나 미국의 역사극에서는 뒤에서 화약이 터지는 것도 고증한 경우가 많다. 불꽃은 보이지 않더라도 최소한 뒤에서도 연기가 솟구치는 장면을 보여준다.[14] 그런데 하늘에서 본 CG를 보면 또 세키부네는 거북선 크기의 60% 정도로 표현된다.[15] 1화에서 보여준 사천 해전에서는 조총에 안 뚫리고 잘만 싸웠다...[16] 실제 당대 기록을 보면 한산도 해전에서 조선 수군 전체를 통틀어 아군 사망자는 딱 3명에 부상자까지 더해도 17명이다. 그러나 저 장면을 보면 당장 거북선 하나에서만 수십명에 다른 배에서도 사망자가 많이 나온다.(...)[17] 조선군의 화포 실제 가용 거리가 우리의 상식보다 매우 짧은 것이 밝혀진 상황에서, 조총에도 판옥선과 거북선의 선체가 작중 묘사처럼 뚫렸다면 실제 역사에서 이순신이 기록한 기적적인 전상자 수는 나올 수가 없다.[18] 탐망군이 조총에 맞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임진장초및 난중일기에 사상자 수와 당시 전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허구가 아니라 사료에 따라 철저한 사실재현을 사료를 통해 고증해 가겠다는 취지와 다르게 간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반 역사소설이나 일반사극이었어도 역사왜곡 논란으로 바난이 크게 일 수 있는 상황이다.[19] 아마 조선사를 모르는 외국인이 이 드라마를 봤을 때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 조선의 선박건조술에 대한 것이다. 당시 조선은 평저선분야에서는 매우 뛰어난 축조술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를 다 무시했다. 조선은 배를 그렇게 허술하게 만들지 않았다. 배를 튼튼히 만들기로 명성이 내려온 것도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사실이다.[20] 승조원들이 눈과 심장을 조총에 맞고 쓰러져 전멸상태가 되었으나 이가 사망으로 이어졌는지는 극 중에서 확실히 나오지는 않았다.[21] 거북선 반파 자체 뿐만 아니라 반파 정도도 강도가 높고, 승조실이 크게 파손되고 승조원들이 대부분 조총 공격으로 쓰러지는 장면이 극도로 비판받고 있다.[22] 댐(dam)은 동사 '(물 따위를)대다'의 명사화로 생각하기 쉽지만, 엄연히 영단어이다. 히데요시의 제방 이라는 설명과 제방을 터트려라 라는 히데요시의 명령이 나왔으니 제방으로 통일하는게 나았을듯하다.[23] 중국성의 누각은 하나의 빌딩과 같이 거대하지만 한국성은 간단한 정자 정도 크기이다.[24] 만리장성과 수원화성의 모습을 비교해 보자.[25] 고증을 맞춘다면 일본에서도 사는 남생이를 등장시켜야했겠지만 천연기념물을 등장시키기는 힘들다.